FA-50 개발 고자세 배짱 부리기 … 韓 “동맹 헛구호”기술 없는 설움 절감
1916년 ‘록히드’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록히드마틴은 폐업과 중흥을 거듭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P-38 전투기를 내놓으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공군기 제조회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를 제작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방위산업체가 됐다.
록히드마틴은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한국 공군이 180여 대나 보유하고 있는 F-16 전투기와 해군이 독도 방어작전에 활용하는 P-3C 초계기, 그리고 세종대왕함에 탑재한 이지스 시스템이 모두 록히드마틴에서 들여온 것이다.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주도한 세계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공동 개발에도 참여했다. 록히드마틴이 한국에서 벌이는 사업은 소소한 것까지 따지면 100개가 넘는다는 게 군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록히드마틴과 한국 군부 사이가 요즘 아주 불편해졌다. 이유는 T-50을 토대로 한 경공격기 FA-50 개발 문제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록히드마틴은 많은 개발비를 요구하고 한국은 돈을 적게 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 문제는 이런 불화가 한국 공군력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FA-50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공군 전력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현재 공군은 500대 정도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국방개혁 2020에 따라 대수를 420대로 줄일 계획이다. 그러나 E-737 조기경보기와 C-130 수송기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라 전투기 대수는 줄어도 전력은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공군은 1970년대 ‘자유의 투사’로 불린 F-5A/B와 ‘제공호’로 불린 F-5E/F, ‘팬텀’이라는 별명을 가진 F-4 등의 작전수명(30년)이 다해 퇴역하면서 생기는 자연감소분으로 이 계획을 달성한다. 이들이 퇴역하면 공군은 1980년대 ‘평화의 가교(Peace Bridge)’라는 이름으로 도입한 40여 대의 구형 F-16(F-16PB)과 1990년대 중후반 KFP라는 사업명으로 도입한 140대의 F-16(KF-16) 그리고 1, 2차 FX사업으로 도입 중인 60대의 F-15K만 보유하게 된다.
가격 실랑이 양쪽 주장 팽팽
일반적으로 전투기는 대형과 중형, 소형으로 나뉜다. 대형은 전투능력이 강하기에 고급(high), 중형은 중급(medium), 소형은 저급(low) 전투기로 분류된다. 현재 공군은 F-5 시리즈와 F-4 전투기를 소형, F-16 시리즈를 중형, F-15K를 대형 전투기로 활용하고 있다(F-4는 크기로 봐선 중형이나 오래전에 만든 것이라 소형으로 정리한다).
공교롭게도 먼저 도입한 소형 전투기가 모두 퇴역하면 한국 공군은 240여 대의 중·대형 전투기만 갖게 되는데, 이는 한반도 공역을 방어하기엔 너무 적은 수다. 따라서 전체 대수가 420여 대가 되도록 후속 소형 전투기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전투기 도입은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기종을 선정해 계약을 하더라도 2~3년은 지나야 비로소 첫 번째 전투기가 인도된다. 그러나 계획은 여러 차례 변경되기에 계획 단계부터 따지면 10여 년은 지나야 전투기가 들어오는 식이다. 인도받은 뒤에는 조종사와 정비사를 기르고 적응훈련도 시켜야 하니, 실전 배치는 다시 1년여가 지나야 가능하다. 공군의 신형 소형 전투기 도입 계획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항공 선진국들은 소형 전투기를 생산하지 않는다. 서방 국가 가운데 소형 전투기를 생산하는 나라는 스웨덴뿐이다. 사브사(社)의 JAS-39(일명 그리펜)가 그것인데, 이 전투기는 T-50과 같은 엔진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T-50을 토대로 전투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판단에서 시작된 것이 FA-50 개발이다.
T-50에는 현재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순수하게 초음속 전투기 조종술을 익히는 ‘고등훈련기’ T-50이고, 다른 하나는 T-50에 레이더와 기총을 탑재한 TA-50이다. TA-50은 초보적인 전투술을 익히는 용도로도 쓰여 ‘전술입문기’로도 불린다. TA-50에 적기와 싸우는 대공(對空)미사일을 탑재하고, 지상목표물을 파괴하는 대지(對地)공격 폭탄을 다는 것이 FA-50이다.
그런데 미사일과 폭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비행하면 그렇지 않은 때보다 강한 공기저항이 일어나 비행에 영향을 준다. 미사일과 폭탄을 사용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밑으로 떨어뜨리는 조작을 한 폭탄이 공기저항을 받아 떠오른다면 ‘폭탄밥’이 되는 것은 항공기다. 이러한 사고를 없애려면 FA-50에 맞는 비행제어 시스템을 개발해 탑재해야 한다.
폭탄과 미사일을 투하하려면 투하 조작을 가능케 하는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그 단말기를 조종실에 넣어야 한다. FA-50을 위한 새로운 항공전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수많은 전투기를 만들어본 록히드마틴이 ‘선수’이므로 한국은 록히드마틴에 개발을 의뢰했다.
그런데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생각한 것보다 300억원 정도 많은 가격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한국 방위사업청과 공군 한국항공 등이 나서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록히드마틴은 ‘그 가격으론 개발이 불가능하다’라며 버텼다. 그 때문에 한국 군부가 다급해졌다.
지난해 한국은 FA-50 개발이냐, 소형 전투기 수입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다 최저 비용으로 FA-50을 개발한다는 결론을 얻는 데 1년을 보냈다. 이 원칙을 세운 방위사업청은 정부 차원에서 국방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가 FA-50 개발사업을 승인하도록 ‘이 정도 비용으로 FA-50을 개발하겠다’고 했는데, 록히드마틴이 고가를 요구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내놓지도 못할 처지가 됐다.
다급해진 한국, 버티는 록히드마틴
이후 록히드마틴은 한국에 F-35 스텔스 전투기를 판매하자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F-35를 판매하려면 한국은 F-15K의 도입 대수를 늘리지 말아야 하는데 오히려 40대에서 60대로 늘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록히드마틴 사장이 친한(親韓)파이던 핸콕 씨에서 F-22 개발을 지휘한 랠프 히스 씨로 교체됐다.
히스 사장의 등장 이후 록히드마틴은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대표적 사례가 T-50의 해외판매다. 과거의 록히드마틴 경영진은 T-50 수출에서 록히드마틴은 ‘얼굴마담’ 역할만 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히스 체제는 록히드마틴이 주역을 맡고 한국은 T-50 제작만 하는 하청업체가 되라고 주문했다.
히스 체제의 록히드마틴은 한국이 T-50 수출을 위해 공을 들여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측과 접촉해 “자동차 운전을 배우기 위해 훈련용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느냐. 자동차 운전은 운전학원에서 배우면 된다. 우리가 전투기 조종술을 가르쳐주는 회사를 차릴 테니 우리에게 조종사 훈련을 맡겨라. 항공기는 우리가 알아서 값싸게 고르겠다”고 설득했다. 그로 인해 UAE는 고등훈련기 도입 사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게 됐다.
만약 UAE가 록히드마틴을 조종사 훈련회사로 선정한다면, T-50 사정을 잘 아는 록히드마틴은 T-50 가격을 후려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는 것. 이렇게 ‘한 방’을 맞았는데 록히드마틴이 FA-50에서도 받을 것은 받아야겠다고 나오니 한국은 감정이 격앙되는 것이다.
공군의 전력 계획에 맞춰 FA-50을 개발하려면 방위사업청은 8월 중순까지는 록히드마틴 측과 FA-50 개발비에 대한 합의를 끝내야 한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그것은 실행 불가능한 계획이다’라며 버티고 있다. 한국은 속이 탄다. “기술이 없는 게 정말 서럽다. 이것이 한미동맹이고 장기 파트너십이냐. 록히드마틴은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는 심보를 갖고 있다”라는 게 요즘 우리 군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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