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정전협정 55주년 '비극의 역사' 희귀사진 공개

醉月 2008. 8. 14. 18:34
[화보] 정전협정 55주년 '비극의 역사' 희귀사진 공개 55년 전 그날 포성은 멎었지만…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17개국서 수집
지난 7월 27일은 한반도에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5주년이 되는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빚어진 6·25전쟁은 동포끼리 살육전을 벌이는 참상을 낳으며 3년 만에 일단락을 지었다. 그날이 1953년 7월 27일이다.
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 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란 긴 이름이다.
연합군과 공산군은 수년간 지속된 전쟁에 부담을 느꼈다. 비밀접촉을 거친 양측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이 시작된 지 2년 만에야 ‘남북한 사이에 군사분계선을 긋고, 비무장지대(DMZ)를 설정’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 사인 : 서명하고 있는 유엔군과 북한군.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이 사진에 대해 “유엔군 대표인 미국의 해리슨(Harrison) 소장과 북한군 대표인 남일 중장이 1953년 6월 23일 판문점에서 사인하는 모습”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사진이 어떤 서류에 서명하는 모습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측은 포로교환 조건 등에 이견을 보이며 수차례 회담과 결렬을 거듭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최종 서명하게 된다.
6·25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도시가 파괴되고, 고아가 거리를 떠돌았으며, 포로들이 속출했고, 피란민이 줄을 이었다. 본지는 당시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희귀사진들을 공개한다. 정성길(67)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이 장기간 수집해 보관해온 것이다. 정 명예박물관장은 “사진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17개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보물 같은 사진들”이라며 “상당수가 처음 공개되는 역사의 현장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 출처에 대해 “AP, UPI 등 외국 종군기자들이 촬영해 본사로 송고했던 보도사진들과 존 프레이라는 참전 미군 장교가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사의 한 장면을 후대에 공개하는 것도 애국이라 생각한다”라며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흥남부두 : 국군과 유엔군의 함경도 진격을 환영했던 흥남 시민들은 순식간에 바뀐 전세로 인해 탈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오갈 곳 잃은 시민들이 몰린 곳은 흥남 부두. 미군은 후퇴를 서두르고 있었지만, 자유를 찾아 밀려든 시민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당시 미군 LSD를 타고 북한을 탈출한 흥남 시민은 총 10만여명. 이 사진은 미군 LSD가 출항하기 사흘 전인 1950년 12월 19일의 흥남부두 모습이다. 엔진이 뿜어대는 자욱한 연기 속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보인다.
▲ 원산폭격 :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한 맥아더는 “유엔군이 동해안 원산 일대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할 것”이란 거짓 정보를 흘렸다. 맥아더는 정보를 진짜로 믿게 하기 위해 원산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사진은 B26폭격기가 투하한 소이탄이 작렬하는 모습. 북한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첩보를 통해 유엔군 상륙을 간파했지만 작전 장소를 원산으로 오인해 손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이 러시아 국방부 중앙문서보관소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맥아더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 부산포로수용소 : 1951년 3월, 부산 포로수용소 모습. 부산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것은 1950년 7월이었다. 당초 취지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획득한 포로 전체를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1950년 8월 포로 수가 2000명에서 그 해 12월 13만명으로 급증하자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 고심하던 유엔군 사령부는 거제도에 새로운 수용소를 설치, 운용하기로 결정한다. 뒤편에 포로들 것으로 보이는 빨래가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