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작가 천금성씨가 한국 림팩함대에 동승해 하와이에서 벌어진 2002림팩훈련의 전과정을 참관했다. 림팩함대는 한국 해군 최초로 시스패로 미사일과 서브하푼 미사일을 발사하는 ‘에어쇼’를 벌였다. 림팩함대는 태평양을 건너는 중 월드컵 축구의 승전보를 듣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진주만에서는 서해교전 소식을 듣고 통한의 눈물을 뿌렸다. 2002 림팩훈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
일몰을 앞둔 태양이 수평선 위 한 뼘 높이에서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던 지난 7월8일 오후 5시15분(현지 시각), 하와이 제도 카우아이(Kauai) 섬으로부터 북서쪽으로 80마일(약 150km) 정도 떨어진 해상. 굽이치는 물결 위로 거대한 군함 한 척이 한평생 자신의 치열한 삶을 지탱해온 바다를 응시하며 미동도 없이 떠있었다.
그러나 배는 자신의 종언을 예견한 듯 차츰차츰 중심을 무너뜨리더니 이윽고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0여 분 후, 배는 진수 이래 한번도 내보인 적 없던 함저(艦底)를 물 바깥으로 뒤집어 내놓으며 마지막 발버둥인 양 간헐적으로 물기둥을 뿜어 올렸다.
배는 미사일 두 발과 100여 발의 함포 사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터였다. 온몸이 벌집처럼 뚫린 다음이라 파공(破孔)을 통해 진작부터 바닷물이 엄청나게 밀려들고 있었다. 그 숨가쁜 침수를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배는 마지막 포효로 물기둥을 뿜어 올렸던 것이다.
잠시 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맥아더 원수의 말처럼, 배는 지난 시절의 숱한 무공을 간직한 채 3000여m의 깊디깊은 태평양 해저로 사라져갔다. 엄숙한 최후였다.
이 배는 함포며 레이더며 기타 의장품을 고스란히 갖춘 완전한 군함이었다. 바로 지난 반세기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낸 미 해군 소속 1만t급 퇴역 군수(軍需)지원함 ‘화이트 플레인(White Plain)’이다.
화이트 플레인의 함체가 크게 기울 었을 때 이 배의 좌현 외판 모습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무차별적인 격파사격을 받은 터라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두 개의 파공이 커 보였다. 파공의 직경은 10인치(25.4㎝)도 넘어 보였는데, 그 구멍은 대한민국 해군의 전투함 두 척이 발사한 함대함 미사일이 명중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날 오전 우리 해군 전투함 두 척은 가상 적함인 화이트 플레인으로부터 40마일(약 74㎞) 떨어진 곳에서 각기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다.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1200t급 잠수함 ‘나대용함’(함장 文根植 중령·해사 35기)이다. 나대용함(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참모였던 나대용의 이름을 딴 것)은 잠대함(潛對艦) 미사일인 서브하푼(sub-harpoon)을 발사하였다. 그리고 두 시간 후 1200t급 한국형 초계함인 ‘원주함’(함장 朴文寧 중령·해사 39기)이 함대함(艦對艦) 미사일인 하푼을 쏘아붙였다.
서브하푼을 담고 있는 캡슐은 나대용함 함수(艦首)에 있는 어뢰 발사관인 ‘바우 튜브(bow tube)’에 탑재돼 있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캡슐이 바우 튜브에서 나와 물속에서 145피트(약 44m) 가량 직진한 후 쪼개지고 그 순간 서브하푼이 물 바깥으로 1100피트(약 334m) 가량 솟구쳤다. 그리곤 미리 기억하고 있던 목표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적함의 탐지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해면 80피트(약 24m)쯤으로 고도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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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함 ‘화이트 플레인’의 최후
서브하푼은 초저공 비행으로 40마일을 비행했다. 그리고 목표물 근처에 이르자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200피트(약 61m) 상공으로 솟구쳤다가 적함 중앙부를 향해 내리꽂히듯 돌진했다. 완벽한 명중이었다. 이 사격으로 화이트 플레인 함의 왼쪽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두 시간 후 원주함의 갑판 발사대에서 하푼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하푼 또한 단숨에 1250피트(약 380m) 상공으로 치솟았다가 수면 위 100피트(약 30m)로 고도를 낮춰 목표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서브하푼처럼 표적 근처에서 1250피트 높이로 치솟았다가 화이트 플레인의 함교(艦橋 : 조타실 등이 있는 배에서 가장 높은 곳)로 내리꽂혔다.
이 미사일 사격은 7월1일부터 시작된 환태평양 연안국의 연합해상기동훈련인 ‘2002림팩(RIMPAC; Rim of The Pacific)’의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 전투함에서 쏜 미사일이 명중하는 순간은 보름 넘게 전개된 2002림팩 훈련의 장엄한 클라이맥스였다.
한국 해군은 아홉 척의 잠수함을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잠대함 미사일을 실제 사격해본 적이 없었다. 도상으로만 연습해오던 한계를 2002림팩 훈련에서 드디어 극복한 것이다.
원주함은 초소형 군함으로 불리는 1200t급 ‘초계함’이다. 원주함에 장착한 하푼 발사대는 수명이 다해 퇴역한 미 군함에 붙어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단 한번도 시험발사를 하지 못했는데, 머나먼 태평양에서 미국 함정을 상대로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거대한 덩치의 화이트 플레인함은 정통으로 두 발의 미사일을 맞고도 바로 침몰하지 않았다. 시험발사이기 때문에 두 미사일에서 내장된 화약을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표적이 빨리 침몰하면 다음 훈련에 차질을 빚는다. 화이트 플레인함은 다음 훈련 과정인 연합함대 함포 사격의 목표물도 돼주어야 했다.
오후 3시30분, 이번 훈련에서 ‘다국적군’으로 편성된 미 해군 3함대 소속 이지스(Aegis) 순양함인 ‘포트로열’(Port Royal, 9600t급)함과 같은 미 3함대 소속의 호위함인 ‘잉그래험’(Ingra ham, 4100t급)함, 그리고 한국 림팩함대의 기함인 한국형 구축함 ‘양만춘함’(함장 尹孔鏞 대령·해사 33기, 3200t급)이 함포 사격에 들어갔다.
미국과 한국의 함정 분류는 달라서 한국 해군은 3000t이 넘으면 구축함으로 부른다. 그러나 미 해군은 5000t까지는 호위함으로, 5000에서 9000t까지는 구축함, 그 이상은 순양함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잉그래험함은 양만춘함보다 덩치가 커도 호위함, 양만춘함은 구축함으로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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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함포 사격술 시합
양만춘함은 작지만 주먹이 매웠다. 양만춘함의 주포 직경은 포트로열함과 같은 5인치(127㎜)이고, 잉그래험함의 주포는 3인치(76㎜)이다. 미국 함정은 미사일을 주로 무장하기 때문에 함포가 작다.
먼저 순서에 따라 포트로열함의 함포가 불을 뿜었다. 양만춘함으로부터 1600여m 전방에 위치한 포트로열함의 함수갑판에서 검은 연기가 보이고, 그로부터 5초 후쯤 함포 발사 포성이 들렸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목표물에 포탄이 명중했다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 순양함이 쏜 첫번째 포탄은 목표물을 훨씬 뛰어넘어 바닷속으로 사라진 게 분명했다.
이윽고 두번째 포성이 울렸으나 이번에는 목표물에 훨씬 못 미친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오류를 반복한 끝에 겨우 포트로열함의 함포는 목표물 이곳 저곳에서 검은 연기를 피어오르게 할 수 있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 해군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사격술이었다.
그 광경을 양만춘함 비행갑판에서 지켜보고 있던 승조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 해군의 주력 이지스함의 사격 솜씨가 ‘별로’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만큼 우리 해군이 사격에 자신 있다는 뜻이었을까.
다음 차례는 양만춘함이었다. 곧 함수갑판에 장착된 5인치 포가 불을 뿜었는데, 포탄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목표물의 중앙부 현측 외판을 강타했다. 그 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화이트 플레인함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 다음부터 주포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그리고 숨돌릴 겨를도 없이 배정된 스무 발의 포탄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목표물에 어긋난 포탄은 단 한 발도 없었다. 함교에서 발사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연락장교인 제프 라드위크 미 해군중령(미 3함대 지휘통제관)은 “원 헌드렛 퍼센트(100%)!”라고 외쳤다.
이어 잉그래험함이 사격에 나섰다. 그러나 잉그래험함의 주포는 세 번이나 목표물을 빗나간 끝에 넷째 탄부터 목표물을 맞췄다.
잠시 후 세 척 전투함이 2차 공격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퇴역함은 조금씩 자세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양만춘함이 피날레 사격으로 스물두 발을 연속적으로 명중시키자 중심이 크게 흔들리며 뒤집어졌다. 태평양전쟁 등 숱한 해전을 치르며 활약해온 화이트 플레인함은 그렇게 생애를 마감했다. 이날 한국 전투함의 사격술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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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미사일 격추 성공
퇴역함 격침 사격 나흘 전인 7월4일에는 가상적이 쏜 대함 미사일의 공격을 막는 근접방어 요격 연습이 있었다. 나대용함이 쏜 서브하푼이나 원주함이 발사한 하푼 같은 것이 바로 대함 미사일이다. 이러한 미사일은 음속(시속 약 1200㎞)의 절반 정도 속도로 날아오는데, 이를 막는 것이 근접방어다.
근접방어 체계에서 발사해 날아오는 적의 대함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미사일이나 함포 사격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다. 미사일이나 함포 사격은 적을 공격하는 것이지만, 근접방어 체계를 운용하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짓는 방어전 때 펼쳐진다. 근접방어 체계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면 아군 함정은 하푼 미사일을 맞은 화이트 플레인함처럼 상당한 피해를 입고 격침된다.
대함 미사일 요격 연습도 포트로열함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졌다. 포트로열함은 가상적이 쏜 미사일을 팔랑크스(Phalanx) 체제로 요격한다.
고대 그리스군은 긴 창과 방패를 든 보병으로 사각형 모양의 밀집된 방진대형(方陣隊形)을 형성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군대에서는 진(陣)을 짤 줄 몰랐다. 병사의 용감성에 의존해 그저 파상적으로 밀어붙이는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그리스군은 방진대형을 짜,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민족 기병과 보병의 공격을 막아냈다.
장방형의 밀집대형을 형성한 그리스군은 사방에서 휘둘러대는 칼과 창을 방패로 막아내면서 긴 창을 찔러 적군을 공격했다. 얼핏 보기에는 그리스군이 이민족군에 포위 공격을 받은 것 같지만 전투가 끝나고 난 다음에 보면, 사방에 이민족군의 시체만 즐비했다. 그리스군의 방진대형 이름이 팔랑크스다.
그러나 포트로열함의 팔랑크스 체계는 대함 미사일을 포착하는 데 두 번이나 실패했다. 덕분에 양만춘함에게 가상적이 쏜 대함 미사일을 요격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긴장 때문인지 양만춘함의 CCC(전투조종실)에 포진한 장교들의 눈빛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훈련인 만큼 림팩함대 사령관인 김주홍(金周弘·해사 31기) 대령과 양만춘함 함장 윤공용 대령이 직접 지휘에 나섰다. 두 지휘관의 눈에서는 살기가 뿜어 나오는 듯했다.
“목표물 컨택(접촉)!”
가상적이 쏜 대함 미사일을 포착한 것이다. 스코프를 응시하고 있던 작전관 김정현(金正鉉·해사 44기) 소령이 외친 한마디가 전투조종실을 일순간에 긴장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양만춘함은 수면 위 3000피트(약 912m) 상공을 250노트(시속 약 463㎞)로 횡단하는 예인기(曳引機)를 포착한 것이다. 예인기는 타깃을 끌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말하는데, 예인기에 끌려오는 타깃이 바로 가상적이 쏜 대함 미사일이다.
작전관은 예인기 후방 7000야드(약 6400m)쯤에 따라서 끌려오는 길이 1.5m 지름 20㎝의 작은 타깃을 발견했다.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사격 개시!”
윤함장의 발사명령을 포술장(砲術長) 최용석(崔容碩·해사 46기) 소령이 복창하자, 사격통제 부사관인 최대윤(崔大潤) 상사가 이미 덮개가 젖혀진 콘솔의 버튼을 힘껏 눌렀다. 양만춘함의 근접방어 체계는 팔랑크스가 아니라 ‘골 키퍼(Goal Keeper)’다. 말 그대로 골 키퍼가 뚫리면 한 골(미사일 공격)을 먹어야 한다. 팔랑크스는 미국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에서 제작했고, 골키퍼는 네덜란드의 시그널사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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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 명중
그 순간 30㎜ 벌컨포 두 문이 “부루르륵!” 소리를 내지르며 500여 발의 포탄을 하늘로 쏘아올렸다. 모두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바로 그때 양만춘함을 향해 내리꽂히는 미사일 한 발이 눈에 들어왔다. 양만춘함에서 쏜 벌컨포를 맞고 떨어지는 타깃이었다. 타깃은 양만춘함 우현 근처의 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 일격 명중(一擊命中).
이날 사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타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양만춘함의 벌컨포가 요격에 성공하는 순간 타깃을 끌고 오던 예인선이 끊어졌다. 끊어진 예인선은 양만춘함에 척 걸쳐지며 떨어졌다.
수병들이 달려가 예인선을 끌어올리자 바다에 빠져버린 타깃이 딸려 올라왔다. 강(强) 플라스틱으로 만든 타깃의 탄두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몸체는 벌집이 돼 있었다. 몸체 후미에서 방향타 역할을 하던 여섯 개의 꼬리날개도 단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100% 완벽한 방어였다.
시속 463㎞로 날아가는 비행체(예인기)에서 7000야드는 매우 가까운 거리다. 자칫 실수하면 전투함의 근접방어체계는 타깃이 아니라 예인기를 격추시키게 된다. 양만춘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근접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해군의 림팩함대는 이렇게 실전과 유사한 연습을 해보기 위해 하와이까지 왔다. 6월7일 진해항을 떠난 이후 림팩함대는 계속해서 넘실대는 태평양에 떠있었다. 망망대해에서는 3000t짜리 구축함도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는다. 태평양을 건너느라 그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지낸 지난 한 달의 추억이 떠올랐다.
6월20일은 날짜변경선을 통과하는 날이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다음 ‘당직자를 제외한 승조원은 모두 비행갑판으로 집합하라’는 함내 방송이 있었다. 집합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필자는 샤워나 할까 하고 어정거리다 갑판으로 나갔다. 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는 민간인이지만, 함에 편승한 이상 함내 규율을 적극적으로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비행갑판의 격납고 셔터에는 ‘날짜변경선 통과 행사’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집합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아하, 용왕제로구나!
오래 전 범선 시대, 오로지 바람의 힘에만 의지하여 항해하던 시절, 어느 범선 하나가 잘못하여 적도 해역의 무풍대(無風帶)로 들어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필경 기아와 병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꼼짝없이 죽게 된 뱃사람들은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님에게 ‘제발 바람을 일으켜 줄 것’을 간청한 데서 ‘적도제’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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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洋海軍’ 기원하는 용왕제
그러나 힘 좋은 기관을 가동해 항해하는 오늘날에는 굳이 용왕님을 애타게 찾을 필요가 없다. 하와이는 북반구에 있어 림팩함대는 적도를 가로지르지 않고도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함상 유희를 마련한 것은 오랜 항해의 삭막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렷다. 하와이까지 가는데 적도를 지날 일은 없으니 누군가가 날짜변경선을 지날 때 용왕제를 올리자고 건의했을 것이다. 곧 “용왕님 납신다!”는 멘트가 있었다. 잠시 후 금빛 색종이로 ‘임금 왕(王)’자를 오려붙인 관을 쓰고 흰색 어의(御衣)를 입은 용왕이 양팔을 사통팔달로 휘저으며 등장했다.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이어서 김규철(金圭喆) 주임원사가 “유세차! 태평양 바다를 관장하시는 용왕님이시여!”로 시작하는 안전항해와 대양해군을 염원하는 제문 낭독을 끝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벤트가 펼쳐졌다. 용왕을 보좌하는 신하가 차례차례 ‘죄인’을 불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맨 먼저 불려나온 죄인은 양만춘함의 최고 지휘권자인 ‘윤함장’이었다. “죄인은 입항중이면 별다른 일도 없이 현문을 들락거려 당직자로 하여금 ‘함장 승함!’ 혹은 ‘함장 하함!’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방송케 하였으니, 그 죄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 죄가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인즉, 당장 곤장으로 다스리는 게 타당한 줄로 아뢰오.” 검사의 기소장 낭독이었다. “허허, 거 고얀지고! 당장 곤장을 치도록 하라!” 용왕의 지시에 죄인은 당장 널빤지 위에 엎디어 뉘어지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팬티 바람에 온몸을 형형색색으로 칠한 형리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널따란 목제 노(櫓)를 들고 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윤함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무위도식하는 죄로…”
그러자 변호인이 나섰다.
“용왕님, 그건 아주 잘못된 기소입니다. 함장이라는 직책은 함 운용은 물론이고, 외국항 기항중에는 해군 외교를 담당하여야 하는 등, 모든 것을 지휘·관장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현문을 자주 출입한 것이지 당직자를 골탕먹이려고 그런 것은 아닌 줄로 아뢰오.”
“어허!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저 벌금 200달러를 선고하심이 지당하신 줄 아뢰오.”
“으흠!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
다음에는 슈퍼 링스 항공대 파견대장 유중령과 ‘소설가’인 필자가 호명됐다. ‘아이고 왜 나를 부르는가.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낸다고 야단치려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출동한 이래 아무 하는 일도 없이 밥만 축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은 즉, 당장 목을 치심이 가한 줄 아뢰오.”
검사의 논고는 시퍼랬다. 그러자 날이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가 두 죄인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칼춤을 춘다. 다행히 이번에도 변호인이 나섰다.
“용왕님, 그게 아니옵니다. 죄인은 비록 무위도식하고 있는 듯하나 항공대장은 훈련이 시작되면 적 잠수함 디핑작전에 엄청난 무공을 세울 것이며, 소설가 또한 이번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해군의 명예와 위상을 떨치게 할 명작을 집필하기로 되어 있은 즉, 다만 밥을 많이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스리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줄로 아뢰오.”
“음, 듣고 보니 그 또한 옳은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저 각각 100달러씩의 벌금으로 죄를 탕감함이 옳다고 아뢰오.”
“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렇게 죄를 뒤집어쓴 죄인이 기관장·부장·작전관·보수관·갑판장 등 20여 명에 달했다. 이들이 살기 위해 내놓은 벌금이 꽤 많이 징수(?)되었다. 필자도 목을 붙이고 있기 위해 100달러를 내놓았다. 그 돈은 승조원들의 복지사업비로 적립된다고 했다.
죄인 문초가 끝나자 여흥이 펼쳐졌다. 어디서 구했는지 여자용 원피스며 치마 차림에 입술에 연지까지 찍어바른 예쁘장한 미인들이 출전했다. ‘미스 양만춘함 선발대회’가 열린 것이다. 배꼽을 쥐어야 할 만큼 색정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선발대회였다. 남성들만 우글거려 삭막한 분위기가 싹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태평양의 한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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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 요격도 성공
근접방어 연습 이틀 후 가상적기를 요격하는 연습이 벌어졌다. 대함 미사일 요격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가상적기 요격은 난이도가 높다. 이 연습은 하와이 사격훈련장 기지에서 발진해 날아오는 가상적기를 요격하는 한판 ‘에어 쇼’였다. 가상적기는 대함 미사일보다 두 배 정도 빠른 음속으로 날아왔다. 가상적기로는 무인기(無人機)가 사용됐다. 역시 김사령관과 윤함장이 전투조종실에 들어와 전체를 지휘했다.
“방위 350, 거리 4만6000(야드), 고도 3000(피트), 속도 1.0(마하)!”
미사일과 연결된 ‘사격통제 레이더’는 유성처럼 빠른 ‘마하 1.0’의 목표물을 모니터 중앙에다 묶어둔 채 빈틈없이 따라잡고 있었다. 양만춘함은 탑재한 대공 미사일 시스패로(Sea Sparrow)를 발사해 이 목표물(적기)을 요격해야 한다.
“사격 개시!”
윤함장의 발사명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양만춘함 함수부에 있던 미사일 발사대에서 시스패로 미사일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시스패로는 잠시 방향을 가늠하느라 주춤거리는 듯하더니 지그재그로 연기 꼬리를 남기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정확히 방향을 잡은 듯 맹렬한 속도로 구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수초가 지났을까. 다국적군 사령함으로부터 “목표물에 명중했다”는 확인 통보가 날아왔다.
그 순간 양만춘함의 300여 승조원의 함성이 광활한 태평양을 마구 뒤흔들었다. 발사대 11번 셀(Cell)을 박차고 나온 시스패로 유도탄(RIM-7 4E)은 313 피트 높이에서 양만춘함에 9000야드까지 접근해온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켜 공중 폭파해버렸던 것이다. 시스패로 미사일을 발사한 함대공 요격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경이롭기까지 한 고난도 전자전의 전형이었다.
한국 해군은 세 척의 구축함(KDX-Ⅰ)을 자체 건조했는데, 그중 한 척이 양만춘함이다. 구축함을 취역시킨 후 한국 해군은 단 한번도 함대공 미사일을 실제로 발사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날 현대 과학의 총아인 함대공 시스패로 미사일을 처음으로 발사해 정확히 목표물을 요격시킨 것이다. 림팩함대는 시스패로 발사 연습을 위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와이에 도착한 후 한국 림팩함대는 림팩을 주관하는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에 대해 가상적기의 크기를 줄여달라고 요청했었다. 가상적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양만춘함이 쏜 레이더파를 적게 발사하니 그만큼 탐지가 어려워진다. 함대공 미사일 요격 연습을 할 때 타깃의 전파발사 면적은 4㎡로 제작하는 게 상례다. 그런데 한국 함대는 그 절반인 2㎡로 축소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 해군은 무인기의 접근 고도도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지구는 둥글다. 따라서 직선으로 나가는 레이더파는 수평선 너머에 있는 비행체를 포착하기 힘들다. 적기가 저공으로 날아올수록 그만큼 방어가 어려워지는데, 한국 함대는 당초 1000피트로 잡힌 가상적기의 침입 고도를 500피트로 낮춰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미 태평양함대 측은 ‘무리’라며 고개를 내저었으나 양만춘함의 윤함장은 물러서지 않고 요청해 이를 관철시켰다.
한국 해군이 시스패로 발사 실험을 해보지 못한 것은 한국 근처 해역에서는 미사일을 발사해볼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발사 연습을 해보려면 근처 수역에 어선이 없어야 하는데, 어민들은 조업 기회가 상실된다며 해군의 미사일 사격 훈련에 반발한다. 여기에 환경단체들도 가세하기 때문에 해군은 해상 사격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때문에 림팩과 같은 기회를 물실호기(勿失好機)로 여겨,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난도 훈련을 자청했던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림팩함대 승조원들은 월드컵 축구 때문에 여러 번 함성을 내질렀다. 림팩함대가 진해 군항의 서해대(誓海臺) 부두를 떠나기 사흘 전인 6월4일 한국 축구대표팀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대0으로 완파했다. 수병들은 그때의 열기를 가슴에 안고 림팩함대에 올랐으니 함 내에서는 틈만 나면 ‘내친김에 16강 진출’이 단연 화제의 초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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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8강, 4강… 광란의 양만춘함
출항 나흘째인 10일은 한국팀의 두 번째 경기인 미국과의 대전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어느 방식으로도 중계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 림팩함대는 한국과 기항지인 괌 섬 사이에 있어 전파를 접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통신요원들은 국내와 교신하는 틈틈이 중간 상황을 엿듣고 그 내용을 함내 방송으로 알려주었다.
마침 사관실에서 저녁식사 중이었는데, 갑자기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해 모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들려 온 첫 뉴스는 ‘이을용 선수가 귀중하게 얻어낸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말았다’였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가 한 골을 내주었다’는 비관적인 소식이 날아왔다. 그런 다음에는 한참 동안 후속 뉴스가 입전되지 않았다.
김사령관이 먼저 침묵을 깼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랬지?”
하도 답답해 한 말이었을 게다. 사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인저리 타임을 적용하더라도 경기는 이미 끝났을 시각이었다.
그때 기관장 김중령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단언했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파가 여기까지 닿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틀림없이 우리가 한 골을 넣어 1대1로 비겼고, 지금 그 소식이 날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함내 방송으로 월드컵 중계
믿거나 말거나 모두들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함내 방송이 “후반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한 골을 만회하여 동점으로 비김으로써 한국은 16강 진출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고 알려주었다. 모두 김중령의 예언력에 혀를 내둘렀다.
6월14일 포르투갈전 때, 함대는 괌을 뒤로 하고 하와이를 향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마땅히 축구중계를 청취할 방법이 없어서 유리한 쪽으로 상상만 하다가 자정이 넘어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충직한 당직사관이 함내 방송으로 “전우 여러분! 박지성 선수가 한 골을 넣은 덕분에 우리가 ‘1대0’으로 이겨 대망의 16강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라며 깨웠다.
일순간 함내에서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태평양의 밤하늘로, “오 필승 코리아”의 구호가 퍼져나갔다.
6월18일. 여전히 하와이로의 항해가 계속되고 있던 이날은 8강진출을 놓고 이탈리아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날이다. 그러나 경기 일정만 외우고 있을 뿐 아무런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우리는 밤 10시 취침나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밤 11시20분, 함교 당직자가 스피커로 잠을 깨웠다.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안타깝게도 안정환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말았습니다.” |
정말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반갑지도 않은 걸로 공연히 잠을 깨웠다’는 비판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왔다. 다시 10분쯤 지났을까 당직자는 “이탈리아가 선취점을 뽑아낸 가운데 전반전 경기가 끝났다”고 알려왔다. 잠을 설친 승조원들은 열을 받아 거의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필자 또한 좁은 침실에서 전전반측하며 억지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로부터 딱 1시간 후인 0시30분(현지시각), “후반전 들어 한국팀이 동점골을 뽑아낸 가운데 연장전에 돌입했다”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그때부터는 잠 자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전부 침상에 걸터앉아 ‘일 내겠군’하며 짜릿한 결과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냉탕이냐 온탕이냐,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축구경기를 상상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새벽 1시1분 당직자는 “한국팀이 연장전에서 한 골을 차 넣어 골든골로 승리함으로써 대망의 8강에 진입하였다”는 낭보를 전해주었다. 일순간 양만춘함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난리통으로 변했다. 혈기왕성한 수병들은 조국으로부터 수만리 떨어진 한 바다를 항해 중이었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경기장과 길거리에 모인 붉은악마에 못지않았다.
진주만에 입항하기 사흘 전인 6월22일은 스페인과 8강전이 벌어지던 날이었다. 이날 저녁 8시 반부터 사관실에서 다과회가 열렸다. 마침 ‘KT(한국통신)가 월드컵 기간중 해외훈련에 참가중인 해군 함정의 승조원들을 위해 무료로 인마세트 전화선 하나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는 전문이 날아온 다음이라, 김사령관의 배려로 함께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듣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 함성이 너무 커서 아나운서의 중계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필자가 “함성이 크면 유리한 것으로 알고, 함성이 작아지면 불리한 것으로 알면 되겠네요”라고 말하자 윤함장이 동의했다. 그런데 결과는 승부차기로 5대3 승. 한국 축구팀은 미국전 이후 유럽의 강호인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내리 격파하는 기적 같은 일을 성공시킨 것이다. 꿈도 꾸지 않았던 4강진출, 양만춘함은 다시 광란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림팩 훈련도 잘될 것이다…, 다 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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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의 날개’ 슈퍼링스 헬기
림팩 훈련은 모든 해상 작전을 실전처럼 연습해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구축함은 탁월한 작전 능력을 가진 함정이지만 최대 속력이 30노트(시속 약 55㎞)에 불과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는 모든 함정의 공통적인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큰 함정에서는 헬기를 탑재한다. 헬기는 시속 200여 ㎞로 날 수 있다. 이러한 헬기에 적을 발견하는 장비를 탑재하거나 적을 공격하는 무기를 장착한다면 구축함의 작전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양만춘함은 슈퍼링스(Super Lynx) 헬기를 탑재하고 있다. 잠수함은 일정 시간 잠항한 다음에는 공기를 보충하기 위해 수면 위로 부상하거나, 수면 바로 밑으로 잠항하며 공기 흡입관을 수면 위로 뽑아올려야 한다. 이 잠수함을 수면에서 불과 10여m 높이에 있는 구축함에서 탐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늘에 뜬 헬기라면 쉽게 포착할 수가 있다. 슈퍼링스 헬기는 ‘은밀함’을 장점으로 하는 적 잠수함을 포착하는 데 더없이 좋은 무기다.
림팩 훈련 동안 가상적군의 잠수함 공격은 예고 없이 펼쳐졌다. 7월3일 다국적군 소속 함이 해상에서 연료유 수급을 하고 있을 때 성정경(成正慶·해사 45기) 소령이 조종간을 잡은 슈퍼 링스는 적 잠수함을 수색하는 임무를 벌였다. 10여 년 간 잠수함 추적 임무를 익혀온 성소령은 적 잠수함이 출현할 수 있는 위치를 예견해, 집중적인 디핑(Dipping : 소나 탐색)을 실시한 결과 10분 만에 적 잠수함 컨택(접촉)에 성공했다.
잠수함은 탐지가 어려울 뿐 쫓거나 파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소령이 조기에 적 잠수함을 컨택해냄으로써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예정된 대잠훈련 스케줄이 빨리 끝나버렸다. 슈퍼링스의 조종사는 두 명이었다. 유성훈(兪聖薰·해사 39기) 중령은, 비행이 없을 때는 CCC에서 항공작전을 통제했다. 유중령은 이렇게 말했다. |
“우리 해군 항공대의 대잠작전 능력은 감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작가 선생님께서도 보셨다시피 이번 림팩 훈련에는 여러 나라에서 50여 대잠 항공기가 참가했습니다만 우리는 해상초계기인 P-3C와 슈퍼링스 각 한 대씩만 참여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잠 작전을 선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미 해군 포트로열함의 초계 헬기 SH-60B는 우리보다 체공시간이 길어 작전 수행에 유리한 데도, 7월5일 실시된 연합 대잠작전에서 우리가 먼저 얻어낸 ‘잠수함 소나 컨택 정보’에 의지해 작전을 벌였습니다.”
슈퍼링스는 구축함에 달린 날개였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항공기는 폭 14m 길이 17m에 불과한 구축함의 비행갑판에 착함해야 한다. 하늘에서 보면 구축함도 그야말로 일엽편주다. 그 일엽편주 중에서도 극히 작은 한 점인 비행갑판에 슈퍼링스를 내려놓으려면 고난도의 조종술이 필요하다.
슈퍼링스는 한번 출격하면 2시간 반 동안 작전을 벌였다. 헬기는 날개가 돌아가기 때문에 정비수요가 많은 편이다. 따라서 비행시간이 25시간 혹은 50시간에 이르면 각각 ‘25시간 주기검사’와 ‘50시간 주기검사’를 실시했다. 림팩 훈련기간은 17일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슈퍼링스는 30회 넘게 출격하였다. 이렇게 많이 출격한 것은 손 빠른 정비 덕분이었다.
슈퍼링스 정비는 해군 항공단 소속 정비기장 박동찬(朴東燦) 중사를 비롯한 여섯 명의 요원들이 맡아 밤낮으로 고생했다. 박중사는 “슈퍼링스 한 대의 부속품 개수가 30만개를 넘습니다. 그 많은 부속품을 우리는 눈을 감고도 끼워 맞출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필자로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엔진 고장, 회항이냐 전진이냐
양만춘함은 림팩함대의 기함으로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양만춘함이 빠르게 기동할 수 있었던 데는 갑판 밑에서 기관을 돌리느라 애쓴 기관부 요원들의 땀이 있었다. 2만9000마력의 가스터빈과 4000마력짜리 디젤엔진을 각각 두 기씩 갖춘 양만춘함은 훈련기간 동안 단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양만춘함은 출항 이튿날 뼈아픈 기관 트러블을 겪어야 했다. 6월9일 오전 10시경, 갑자기 1번 디젤엔진 6번 배기통의 폐기(廢氣) 온도가 급격히 하강한 것이다. 즉각 해당 부품인 ‘센서’를 교환했으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기관부는 엔진을 가스 터빈으로 전환시키고, 디젤엔진 6번 배기통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연료분사 펌프 계통인 ‘로커 암(Locker Arm)’의 재질이 불량해 파손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로커 암의 스페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배는 태평양으로 진입했는데, 부품 하나 때문에 함수를 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기관장 김경원(金卿元·해사 39기) 중령은 궁리 끝에 해당 기통을 차단하고 주의 깊게 운용하는 응급처치 쪽을 택했다. 그리고 괌에 기항하는 즉시 부품을 구해 완벽하게 수리했다.
“아무리 철저한 정비를 거치더라도 기계는 언제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것을 얼마나 적절하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지요. 만약 전투가 벌어진 긴박한 상황에서 트러블이 발생한다면 그건 곧 자멸 아닙니까? 전투는 포술부 요원들만 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관이 고장나 움직이지 못하면 배는 곧바로 적군의 목표물이 되고 맙니다. 이런 점에서 함정에 탄 승조원 전원이 전투요원입니다.” |
기관장 김중령의 말이다. 김기관장이 말한 우리 해군의 자긍심은 훈련 도중 양만춘함을 방문한 미 3함대사령관 버키(Mike Bucci) 중장과 다국적군 사령관이자 미 제5 순양·구축함전단 전단장인 에드워즈(Mark J. Edwards) 준장의 ‘치하전문’에서도 확인되었다. 림팩훈련이 끝난 후 하와이 ‘샤키극장’에서는 참가국 지휘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사후강평(事後講評)이 있었는데 에드워즈 제독은 다시 한번 한국 해군을 칭찬했다.
고장은 기관부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진해항을 떠난 당일인 6월7일, 림팩함대는 진해만을 훨씬 벗어난 R-99 해역에서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모두 10발의 포탄을 발사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두 발이 장전된 채 발사되지 않았다. 즉시 병기관 배수영(裵洙榮) 준위 등이 집채만한 양만춘함의 주포에 매달렸다.
고장 개소를 찾아내고 보니, 배전반 내부의 변압기가 합선돼 눌어붙어 있었다. 애초 주포를 장착할 때 외부 기술자가 실수로 떨어뜨린 단자 하나가 사격시 발생한 충격으로 튕겨 올라 전선에 달라붙어 합선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러한 사고가 림팩 훈련에서 발생했다면 양만춘함은 100% 사격을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120% 출격 기록한 P-3C
한국은 림팩훈련에 고정익 해상 초계기인 P-3C 한 대를 참여시켰다. P-3C는 구축함에 실리는 슈퍼링스 헬기보다 오래 떠있고 체공거리도 멀기 때문에, 월등히 넓은 수역을 감시할 수 있다. 김상석(金相錫·해사 36기) 중령을 비롯한 15명의 P-3C 요원들은 림팩함대가 진해항을 떠나고 난 다음인 6월20일 아침 포항기지를 이륙했다.
괌 공항에 들러 연료를 채운 P-3C기는 바로 괌을 떠나, 열 시간 만에 하와이 오하우(Ohau) 섬 동쪽 돌출부인 카네오헤(Kaneohe)에 자리잡고 있는 ‘태평양 미해군 초계기 사령부 비행기지’에 안착했다. P-3C기의 정비와 전술 분야를 지원할 27명은 여객기를 타고 오하우 섬에 도착해 합류했다.
한국은 림팩훈련에 한 대의 P-3C를 참여시켰지만, 미국 해군은 다섯 대, 일본 해상자위대는 여덟 대, 호주와 캐나다 해군은 각각 두 대를 참여시켰다. 단 한 대가 참여한 한국의 P-3C는 7월1일부터 작전이 종료된 7월16일 사이 매일 같이 출격을 감행해, 하루 평균 10시간씩 대(對)잠수함 및 대수상함전을 펼쳤다.
한국의 P-3C기는 특히 대잠작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타국군의 해상초계기와 비교했을 때 70%가 넘는 경이적인 접촉률을 달성했다. P-3C가 매일 출격하기 위해서는 정비와 지원업무가 매우 중요했다. 여기서도 정비팀은 기민한 솜씨를 발휘해 100% 출격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한국 P-3C에 배당된 추가 출격 임무까지도 성공시킴으로써 120%의 임무 달성률을 기록하였다. 한국 P-3C에 배당된 추가 임무는 캐나다와 호주 해군에게 할당된 것이었는데, 그들 P-3C기의 정비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국 해군의 P-3C가 담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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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핵잠수함 보유해야
림팩훈련 작전이 끝난 16일 아침 8시, 참가국 지휘관들은 자체 총평회를 가졌다. 여기서 다국적군 초계기 사령관을 맡았던 캐나다 공군의 크리스 헤너베리(Chris Hennerbery) 대령은 “이번 림팩은 단연 코리아 네이비의 독무대였다. 한국 해군은 단 한 대의 P-3C로 석 대, 넉 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해군의 전투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캐나다에서는 공군이 P-3C를 운용한다).
이번 림팩훈련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잠수함 나대용함이 태평양에 남긴 ‘항적’이다. 이 항적은 1999년 3월9일부터 4월10일 사이 나대용함과 동급인 한국 잠수함 ‘이천함’이 괌 근처 바다에서 실시된 ‘서태평양 연합해상기동훈련’에서 보여준 ‘궤적’과 비교된다. 그해 3월25일 이천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기함으로 활약했던 미 해군의 퇴역 순양함인 1만6000t급 오클라호마시티함을 향해 독일제 수트(SUT MOD 2) 중(重)어뢰를 명중시켜, 23분 만에 격침시킨 바 있다.
당시 미 해군은 이천함의 어뢰 공격으로는 오클라호마시티함이 격침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부근에 7000t급 핵추진 공격잠수함인 콜럼버스함을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콜럼버스함이 미제 마크-48 어뢰를 쏴 격침을 시도하는데, 그래도 격침되지 않으면, 미 해군의 UDT(해군특수전 부대) 요원을 순양함에 침투시켜 폭약을 설치한 후 터뜨려 가라앉힌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천함은 수트 어뢰 한 발로 오클라호마시티함을 격침시켰다.
이천함의 쾌거에 이어 나대용함은 서브하푼 잠대함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지휘부(양만춘함)에서 서브하푼 발사를 지켜본 림팩함대사령부의 인사참모 박순규(朴淳圭·해사 40기, 잠수함 최무선함 부장) 소령은 “오늘날 일본의 해군력은 가히 태평양 전역을 커버하기에 손색이 없다. 중국 해군 역시 항공모함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태평양은 머지않아 해양패권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해군력 증강이 우려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중국의 경쟁 사이에서 한국이 살아남고 분쟁을 예방하려면, 한국 해군은 두 나라 해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자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해군은 궁극적으로 항공모함은 물론이고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 나대용함이 보여준 서브하푼 발사 성공은 그 길로 가는 전 단계 같아서 여간 믿음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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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에서 들은 ‘서해교전’ 비보
6월28일(현지시각, 한국 시각으로는 6월29일)은 4강전에서 독일에 패한 한국이 터키와 3·4위전을 치르기는 날이었다. 7월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림팩훈련이 개시되므로, 장병들은 마지막 승리를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정오 무렵, 갑판을 서성이던 한 수병이 고국에 전화를 걸었다가 들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오늘 오전, 서해에서 북괴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여 다짜고짜 총을 쏘았는데, 몇 사람이 전사했대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입을 닫았건만, 수병이 전한 섬뜩한 소식은 순식간에 함 전체로 번져나갔고 그 말은 사실인 것으로 판명났다. 함 분위기는 바로 긴장 속으로 치달았다. 림팩훈련을 중단하고 함수를 돌려 서해로 직항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돌았다.
“림팩훈련이 무엇입니까? 언제 발발할지도 모를 국지 해상분쟁을, 태평양 연안의 우방 해군이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고국에서는 우리 전투함말고도 오합지졸을 박살낼 수 있는 막강한 함대가 엄중 대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마냥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작부터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확전 기미가 보인다면 우리는 함수를 고국으로 돌릴 겁니다.”
김주홍 사령관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러나 해군작전사령부로부터 하달된 지시는 ‘우리측의 신속하고도 적절한 대응으로 북괴 경비정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도주하였다. 더 이상 사태악화는 없을 것이므로 림팩함대는 당초의 훈련에 전념하라’였다.
다음날(하와이 현지일자 29일) 오전 8시. 양만춘함 비행갑판에 김사령관과 윤함장을 비롯해 모든 승조원이 모였다. 평상시 같았다면 일과표에 따른 ‘일과정렬’을 할 때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부장 김서진(金西鎭) 소령이 울먹이는 음성으로 추모사를 읽었다.
“우리는 군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군이기 때문에 이 슬픔을 말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사한 전우들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산화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슴 깊이 되새길 때입니다.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겠습니다.”
전사한 희생자에 대한 추모식이었다. 함상에서, 그것도 새하얀 약정복 차림의 해군 장병들 틈에서 함께 묵념을 올린 필자는 목이 메어옴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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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팩의 의미와 교훈
림팩훈련은 1971년 미국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4개국이 2년에 한 번씩 개최키로 하고 닻을 올렸다. 1980년부터는 일본이, 1986년부터는 영국이, 그리고 1990년부터는 한국 해군이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칠레와 페루가 합류하면서 도합 8개국이 동참하는 말 그대로 연합기동훈련이 되었다(영국은 불참).
2002림팩훈련에 미국은 수상함 스무 척에 잠수함 두 척, 다섯 대의 해상초계기와 24대의 전술기를 투입했다. 일본은 7200t급의 이지스 구축함인 ‘기리시마함’을 비롯한 네 척의 구축함(일본식 분류로는 호위함)과 잠수함 한 척 그리고 8대의 전술기를 파견했다. 호주는 콜린스급(3000t) 잠수함 한 척에 해상초계기 두 대, 캐나다는 해상초계기만 두 대, 그리고 칠레와 페루는 각각 2500t급인 호위함인 ‘린치’와 2200t급 호위함인 ‘몬테로’를 출동시켰다.
한국은 앞서 설명한 대로 3200t급 구축함과 1200t급 초계함 그리고 1200t급 잠수함 각 한 척에 P-3C 해상초계기 한 대를 참여시켰다. 규모 면에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번째다.
일본 전투함 중에서 특히 한국 해군의 눈길을 끈 것은 이지스 구축함인 기리시마함이다. 이지스란 무엇인가.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인 제우스가 딸인 아테네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이 세상의 모든 창과 화살을 막아낼 수 있다는 방패가 바로 이지스다. 이 구축함은 양만춘함보다 가격이 다섯 배나 비싸다. 그만큼 성능도 탁월하다.
이 구축함은 수평선 위로 돌출한 물체라면 72㎞까지 포착이 가능하고, 대공으로는 280㎞까지 탐지가 가능한 전방위 레이더인 ‘스파이(AN/SPY)-1D’를 장착하고 있다. 이 레이더는 일반 레이더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성능이 좋아서 200개 이상의 목표물을 동시 탐지한다. 또 다른 레이더인 ‘AN/SPG-62’는 탐지한 정보를 판독해, 한꺼번에 18기의 미사일을 발사시킬 수 있다. 이 레이더가 발사된 미사일을 향해 중간 지령을 내리면 미사일은 각기 다른 목표물까지 정확히 유도된다.
때문에 태평양전쟁 기간중 미 군함에 엄청난 타격을 준 일본 해군 항공대의 ‘카미가제(神風)’와 같은 공격이 펼쳐져도 이 함정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고 격퇴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전투함은 이지스 개발국인 미국, 미국과 함께 태평양을 공유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스페인 해군만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지스함을 도합 66척 갖고 있고 일본은 이지스 구축함을 네 척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배를 갖고 있으니 기리시마함에는 중요 임무가 부여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해군은 전투함 세척에서 각 한 발씩 모두 세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일본의 해상자위대에게는 네 척 구축함에서 모두 10발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
2002림팩훈련은 참가국들이 작전용어와 전술체계 등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열하루 동안 ‘다국적군 예비훈련 과정’을 거친 다음, 분쟁을 야기한 ‘황색국’과 황색국을 상대로 싸우는 림팩 동맹국인 ‘녹색국’그리고 중립적인 입장의 ‘자색국’ 세 개 국가군으로 나누어 펼쳐졌다. 이 연습에서 한국 림팩함대의 수상 세력인 양만춘함과 원주함 그리고 P-3C는 녹색국의 기동부대에 편성돼 해상교통로 보호와 상륙기동부대 호송 그리고 작전해역 초계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수중 세력인 나대용함은 분쟁을 일으킨 황색국 전력으로 편성돼 녹색국 세력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작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열기를 띠었다. 그 결과 분쟁을 야기한 황색국은 보유 수상함의 절반인 여섯 척, 아홉 척의 잠수함 가운데 네 척이 격침되고, 42대의 항공기 중에서 34대를 잃는 등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반면 다국적군은 13척의 수상함 가운데 손상 2척에 항공기 1대가 격추되는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한국 수상함과 P-3C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림팩함대의 작전참모 심승섭(沈勝燮·해사 39기) 중령은 림팩의 의미와 이번 훈련에서 얻은 성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림팩은 긴장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전쟁 억제가 그 본질입니다. 국지전이 발발할 경우 이해를 같이하는 우방국이 연합하여 대처하면 조기종결은 물론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한국 해군은 이번 훈련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터득하였습니다.”
멋진 해군소설 쓸 터
지난해 10월 필자는 해군사관학교 제56기 생도를 태운 원양실습함대에 편승해 석 달동안 동남아 10개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림팩훈련까지 참관하게 되었다. 이것은 무슨 운명일까. 한 편의 ‘해군소설’을 써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필자는 젊은 시절 자그만 원양어선의 선장을 지내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몇 권의 해양 작품집을 낸 바 있다. 바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군 함정에 편승하고 보니, 어선과 다른 해군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필자는 실전과 진배없는 림팩훈련 견문을 토대로 ‘우리 해군’을 소재로 멋진 ‘Navy Story(해군소설)’를 쓸 것이다. 귀중한 기회를 준 장정길(張正吉) 해군참모총장과 해군본부 관계자, 그리고 고독한 항해를 견뎌내고 함께 영웅적인 승전가를 노래한 림팩함대 전 승조원 여러분께 감사한다. 대한민국 해군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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