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한국 핵잠수함 보유, 무엇이 문제인가

醉月 2008. 8. 8. 14:37
‘대양해군’ 추구하다 핵무장 의혹 부른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만든다’는 한 일간지 기사가 1월말 국방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정부는 곧바로 이를 부인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에 담긴 진짜 함의는‘해군력 증강’ 차원을 넘어 ‘핵무장 공식선언’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하와이 진주만의 해군기지에서 수리중인 미국 핵잠수함 그린빌.

원자력공학 전문가인 A씨는 1월말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몸담고 있는 유학시절의 은사와 동료들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한결같이 ‘한국이 핵잠수함 사업을 추진한다는데 사실이냐’는 물음이었다. 메일마다 ‘Nuclear Submarine Project Surfaces Despite Gov’t Denial(정부 부인하지만 핵잠수함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이라는 C일보 인터넷 영문판 기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안보기관 종사자들이 기사를 돌려 읽은 모양이에요. 대부분 ‘한국 정부는 부인했다지만 실제로는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고요.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원자폭탄 개발계획과 연결짓는 이도 있었습니다. 거센 반응에 저도 놀랐습니다.”

논란의 발단은 1월26일 C일보가 보도한 ‘한국, 핵추진 잠수함 개발키로’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한국이 4000t급 핵추진 잠수함 ‘수척’을 2012년 이후 실전배치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적극 검토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검토중인) 핵잠수함은 원자력발전소처럼 저농축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해군은 지난해 6월 30여명 규모의 관련 사업단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A씨가 받은 영문기사는 이 기사를 영역한 것이었다.

국방부는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기사내용을 부인했다. 원장환 획득정책관은 “현재 진행중인 214급(1800t) 잠수함 3척 건조사업이 완료되면 후속모델로 3500t급 잠수함을 독자 개발해 2012년 이후 배치할 방침을 정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 추진방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잘라 말했다.

C일보가 보도한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개발계획’에 대해서는 “미국 등의 사례에 비춰 설득력이 부족하고 비핵화선언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3500t급 잠수함이라면 전기나 디젤로도 충분한데 굳이 핵추진 잠수함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검토하지 않았다면 무능한 것”

이렇게 해서 핵잠수함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전문가들은 ‘새로 개발할 3500t급 잠수함의 추진방식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흐름은 2월 초순 ‘기무사가 관련 내용을 유출한 관계자 색출작업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로는 핵잠수함 보유를 검토하고 있지만 주변국의 우려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부인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추측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무능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장기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선택지 가운데 하나인 만큼 그 추진경로나 예산 등을 추산해보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현재 군 지휘부 가운데 핵잠수함 당위론을 신념처럼 품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핵잠수함 계획의 실체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몇 가지 정보가 군사전문가와 마니아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핵잠수함 준비로 생각할 수 있는 몇몇 연구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지난해 군 관련 연구소에서 잠대지 크루즈미사일(SLCM) 개발 관련사업을 검토했다는 소문. 이는 그 크기나 용도가 재래식 잠수함보다는 핵잠수함에 ‘더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두 번째 정보는 보다 명확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가 개발중인 소형 원자로(SMART)를 선박에 활용하는 방안이 수년 전부터 추진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정부가 1997년부터 총 2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이 연구는 해수담수화 및 전력생산 용도로 동남아 등지에 수출한다는 공식목표를 갖고 있지만, 이를 선박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중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선박용 원자로와 잠수함용 원자로는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 2002년에는 국책사업을 관리하는 모 정부기관 위탁으로 서울대가 KAERI, 한국해양연구원 등과 함께 수년에 걸쳐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핵무기를 장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핵물질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잠수함이 이렇듯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그 핵연료가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저농축우라늄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 않을까.

   

‘대양해군의 꿈’ vs ‘긴장 유발’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핵잠수함(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는 ‘전략 핵잠수함’과 구분하기 위해 정확히는 ‘핵추진 잠수함’이라고 불리지만 편의상 핵잠수함이라 부르기로 한다)이라는 무기체계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잠수함의 가장 큰 위력은 바닷속에 있을 때 레이저나 위성으로도 쉽게 그 위치를 추적할 수 없다는 ‘은밀성’에 있다.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은밀성이 월등히 높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재래식 잠수함은 디젤엔진을 사용하는데, 잠수항해 중에는 산소가 부족해 엔진을 가동할 수 없으므로 일정기간(대개 3일)에 한번씩 수면 위로 올라와 디젤엔진을 돌려야 한다. 이때 발생한 전기를 축전지에 저장했다가 수중에서 사용하는 것.

반면 핵잠수함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핵물질이 중성자에 의해 핵분열할 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산소가 필요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6개월 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디젤엔진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잠수함에는 사용할 수 없다. 잠수함의 무게가 두 배 늘어나면 바닷물의 장력과 저항 때문에 엔진은 네 배의 힘을 갖고 있어야 같은 속력을 낼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 출력을 갖는 디젤엔진은 잠수함에 싣기에 너무 크다는 점. 핵잠수함은 속력이나 수명에 있어서도 재래식 잠수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때문에 핵잠수함은 흔히 항공모함에 비견되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주변국들이 군사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이 잠수함에 잠대지 크루즈미사일이 장착되면 한국은 일본 중국은 물론 미국 등 대양 너머에 있는 나라 해안에까지 몰래 접근해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이 현 상황에서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이 옳으냐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다. 찬성측의 입장은 ‘이를 통해 해군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며 명실상부한 대양해군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장기적으로 한미동맹체제를 떠나 ‘자주국방’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대측은 ‘전략적 효용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이 핵잠수함을 추진하면 일본 또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확률이 큰 데다 동북아 유일의 핵잠수함 보유국인 중국이 이를 좌시할 리 없다는 것. 결국 동북아 전체가 군비증강 바람에 휩싸이게 되어 긴장과 불안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한편 대양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국과 달리 자국방어가 주임무인 한국 해군의 경우 핵잠수함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과는 달리 산소가 필요 없는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시스템을 대안으로 꼽기도 한다. 대표적인 AIP 시스템인 연료전지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대략 15일까지 잠행이 가능해, 독도는 물론 석유 이동 경로인 동남아 말래카 해협 등에서 활동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해군력 강화’ 아닌 ‘핵무장 추진’

그렇다면 해군력 강화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만 넘어서면 한국은 핵잠수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핵잠수함은 단순히 ‘제해권’의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핵잠수함의 경우는 IAEA나 비핵화선언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맞는 얘기일까.

결론적으로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언론보도는 물론 국방부 해명에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한국의 핵잠수함 추진은 단순한 ‘해군력 강화’가 아닌 ‘핵무장 추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이미 우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 열쇠는 군사용 시설의 경우에는 IAEA의 감시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는 현 핵확산금지협약(NPT) 체제에 숨어 있다.

NPT체제는 기본적으로 모든 당사국들이 핵분열물질의 출처와 최종처리에 대해 신고하고 이에 대해 IAEA의 감시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각 원전마다 감시카메라와 검측장비를 설치해 이 데이터를 IAEA에 전달한다. 사용이 완료된 연료(고준위 핵폐기물)를 보관하는 시설(방폐장) 역시 IAEA의 감시범위에 속한다. IAEA가 이처럼 저농축우라늄이나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이들을 농축·재처리하면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고농축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농축우라늄이든 저농축우라늄이든 군사시설에 사용되는 경우에는 이 같은 감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 잠수함 역시 당연히 제외된다. 따라서 사용이 끝난 핵연료가 어디로 가는지, 사용중이던 핵연료를 중간에 반출해 다른 곳에 전용하는지 여부를 IAEA가 확인할 수 없다. ‘핵비확산 리뷰(The Nonproliferation Review)’ 2001년 봄 호에 실린 한 논문은 핵잠수함의 사용후연료가 어디로 가는지 추적할 수 있는 감시시스템이 없음을 지적하고 이를 가리켜 ‘NPT체제의 틈새(NPT loophole)’라고 표현하고 있다.

최근 IAEA는 기존의 안전조치체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안전조치강화(SSS)’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신고되지 않은 핵시설에 대해서도 IAEA 사찰관들이 강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이 계획은 현재 NPT 당사국들의 승인을 기다리는 상태. 그러나 SSS가 실행돼도 군사시설의 틈새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핵잠수함이 감시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핵잠수함은 NPT체제의 ‘틈새’

일본이 1970년대부터 개발한 원자력선 무츠(MUTSU). 이 사업을 통해 일본은 2만5000건에 달하는 관련 데이터를 축적했다.

때문에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하면 여기에 사용되는 핵물질은 IAEA의 감시망을 벗어나게 되고, 한국은 언제든 핵무기로 만들 수 있는 핵물질 공급루트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기술수준이 열악한 북한은 우라늄 농축설비나 기술을 마련하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수십 년 원자력 운영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은 핵물질만 있으면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한 기술수준을 갖고 있다.

결국 한국이 저농축이든 고농축이든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추진한다는 것은 단순한 ‘해군력 강화’가 아니라 그대로 ‘핵무장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물질 보유량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북한 핵 위기’가 일어났듯, 한국의 핵잠수함 추진은 ‘남한 핵 위기’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이쯤 되면 비핵화선언은 신경 쓸 거리도 못 된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1990년대 이후의 모든 논의는 한국의 핵잠수함을 둘러싸고 그대로 반복될 수 있다.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의혹 국가 명단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미국 입장에서도 핵무장은 동맹 파기를 고려할 만한 사안. UN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에 대한 제재를 결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국이 입게 될 정치·경제·안보적 손실은 추산이 불가능할 것이다.

선례는 없지만 한국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핵잠수함 원자로를 IAEA의 감시 하에 둘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아이디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잠수함 내부에 IAEA의 감시장비를 설치하고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IAEA에 전송해야 하므로 잠수함의 활동이 1년365일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잠수함의 가장 큰 장점인 은밀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거액을 들여 핵잠수함을 건조할 이유가 없어진다.

핵잠수함의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NPT 핵보유 당사국 다섯 나라 이외에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일본은 재처리시설까지 갖고 있지만 핵잠수함을 개발할 엄두는 못 내고 있다. 상업용 재처리시설은 IAEA의 감시를 받지만 잠수함은 그럴 수 없기 때문. 인도 브라질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핵잠수함 보유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들은 모두 NPT체제 밖에서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거나 이미 근접한 나라들이다. 한국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 같은 상황전개를 무시하고 잠수함을 건조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연료를 구할 방법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현재 발전소용 우라늄을 판매하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정도. 그러나 이들도 발전소용이 아닌 잠수함용 우라늄은 판매할 수 없다. 이들이 속해 있는 핵공급국그룹(NSG·Nuclear Suppliers Group) 협정은 평화적 목적이 아닌 군사용도로는 핵물질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들 나라는 국내법으로 개별기업의 군사목적 핵물질 수출을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국제적으로 대대적인 금수조치가 뒤따른다.

발전소용이라고 ‘속이고’ 우라늄을 들여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같은 저농축우라늄이라 해도 발전소에 쓰이는 것과 잠수함에 쓰이는 것은 농축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천연우라늄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가공하는 작업의 반복횟수. 미국과 러시아 핵잠수함이 사용하는 90% 이상의 우라늄(그대로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급 우라늄’)은 가공작업을 대략 40회 이상 반복하면 나오는데, 이 작업을 7~8회 정도에서 중단한 것이 3~5% 저농축우라늄이다.

용도에 따라 다른 농도의 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은 같은 출력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연료봉의 분량과 안전성, 수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자로의 효율이 같을 경우 3% 연료봉은 90% 연료봉의 30배를 넣어주어야 수명이 같다. 또한 농도가 낮을수록 불순물이 많아 가동중에 피복관이 깨지는 등 안정성도 떨어진다. 농도가 낮은 연료봉은 금방 닳기 때문에 그만큼 자주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가동하는 발전소용 원자로라면 이 같은 단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닷속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운영해야 하는 잠수함 원자로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때문에 90% 이상의 고농축우라늄을 150년 이상 쓸 수 있을 만큼 비축해두고 있는 미국은 모든 핵잠수함에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농축시설이 빈약한 중국의 한(漢)급, 프랑스의 루비(Rubis)급 같은 저농축우라늄 잠수함들이 3~4년 주기로 연료봉을 교체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잠수함은 20년 이상 연료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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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3~5% 연료봉을 사용하는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개발한다면 1년에 한번 꼴로 연료봉을 교체해야 한다. 원자로 용기를 해체하고 새 연료봉을 넣는 과정에서 방사능 유출사고가 일어나기 쉬우므로 많은 안전설비가 필요한데, 공간이 매우 협소한 잠수함의 경우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기 어려워서 교체주기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3~5%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잠수함을 만드는 것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발전소용이라고 속이고 잠수함 연료를 들여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핵잠수함을 추진한다면 이는 곧 농축시설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물론 농축시설 건설 자체는 NPT가 금지하고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비핵화선언을 위반하게 되는 것임은 물론 한국의 핵무장 시나리오도 기정사실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무츠, 일본의 영리한 우회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핵무장 의혹을 받지 않으면서 핵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뒤집어 말하면 핵잠수함을 추진하려면 그 같은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나 군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핵무장까지 염두에 둔 핵잠수함 보유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까지의 행보는 극히 어리석은 것이었다. 핵무장의 필요성 여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논쟁거리지만, 핵잠수함 보유를 위해서는 보다 ‘영리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68년부터 원자력선 무츠(Mutsu)를 만들어 1992년 3월부터 1년간 실험항해했다. 소규모 원자로를 장착한 이 배는 공식적으로 ‘원자력의 해양이용방안 연구를 위한 실험선’이었다. 물론 평화적 이용에 해당하는 이 배의 원자로는 IAEA의 감시하에 투명하게 가동됐다. 핵물질 전용이나 핵무장 논란도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이 원자력선을 실용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엄청난 예산을 탕진할 것이 뻔한 이 배를 일본은 왜 만들었던 것일까. 일본은 이 사업을 통해 배에 쓸 수 있는 소형원자로 기술이나 노하우를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무츠에서의 경험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잠수함을 건조·운영할 수 있는 원자력기술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어긋난 야심’이 불러올 타격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은 보다 빠른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원자력을 사용하는 러시아 쇄빙선을 도입해 그 원자로로 대형 컨테이너선을 제작하는 것이다. 러시아 쇄빙선은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므로 이 원자로를 저농축우라늄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선박용 원자로를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를 것이다. 더욱이 이 배는 기존의 컨테이너선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력으로 태평양을 오갈 수 있으므로 수지타산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를 통해 잠수함용 원자로를 위한 실질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음은 불문가지다.

앞서 설명한 대로 한국의 KAERI도 소형원자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자로는 아직까지 한번도 실물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 설계도와 논문 속에 머물고 있는 상태인 것. 한 해군 관계자는 “이번 핵잠수함 논란으로 주변국들이 한국의 관련연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은 이미 ‘삼엄한 경계상태’에 돌입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정말 핵잠수함을 원했다면 일본처럼 ‘영리한 우회로’를 택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가 실제로 핵잠수함 보유계획을 검토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제 우리의 관련연구 움직임은 둔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애초에 극단적인 상황을 각오하지 안고서는 완성할 수 없는 사업을 두고 일각에서 품었던 ‘어긋난 야심’ 때문에 애꿎은 원자력 연구만 타격을 입게 된 셈이다.

과연 이들 ‘핵잠수함 보유론자’들은 한국의 보유시도가 곧장 핵무장 의혹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했을까. 핵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은 쉽게 핵잠수함 보유를 이야기하지만, 핵을 잘 아는 이들은 함부로 입밖에 내는 것조차 꺼린다. 한국 정부와 군, 언론과 군사전문가들은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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