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대둔산

醉月 2011. 11. 8. 08:59

대둔산 삼선계단 쪽에서 내려다 본 구름다리 부근의 모습. 구름다리로 이어진 암봉과 암봉 사이에 단풍이 온통 화려하게 불붙었지만, 대둔산을 자주 찾는다는 한 등산객은 “아직 단풍이 덜 들었다”며 “주말쯤이면 더 황홀한 풍경을 빚어낼 것”이라고 했다.
아마 차가운 가을 비 때문이겠지요. 멱살이라도 잡아 세우고 싶을 정도로 올해 단풍의 남하 속도가 맹렬합니다. 마치 연애편지처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단풍의 서신(書信)이 불과 일주일 만에 설악산에서 남도 땅까지 밀려 내려갔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올 가을 단풍구경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단풍은 남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붉고, 화사하고, 선명해지고 있으니까요.

단풍이 남도 땅으로 내려가는 길목. 단풍이 밀려오길 겨눴다가 대둔산을 올랐습니다. 단풍이 절정에 당도하기 딱 한 주 앞서 떠난 길이었습니다. 혹 기사를 보고 찾아갈 독자들이 더 황홀한 풍경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보여 드리는 단풍의 풍광은 딱 이번 주말까지만 유효합니다.

대둔산은 충남 논산과 금산, 그리고 전북 완주를 가릅니다. 어느 쪽에서 오르든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긴 코스를 잡아봐야 2시간30분 남짓이면 정상인 마천대에 닿거니와, 어느 쪽에서 오르든 단풍나무 이파리들이 흩뿌린 선혈이 암봉마다 낭자한 풍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내내 대둔산에서는 아찔한 구름다리 위에서도, 수직의 벽을 타고 오르는 철계단에서도, 거친 암봉의 능선에서도 산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단풍의 불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둔산은 그 산에 들어서 보는 단풍의 경관도 좋지만, 산 아래에서 뒤로 물러서 마치 수석처럼 주르륵 늘어선 암봉을 올려다보는 맛도 그만입니다. 충남 금산에서 전북 완주로 넘어가는 17번 국도의 배티재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것도 나무랄데 없지만, 대둔산 조망의 최고 전망대는 진산자연휴양림의 산책로에 꼭꼭 숨어 있습니다. 고즈넉한 숲길을 20분쯤 걸어서 당도하는 전망대의 팔각정에서는 6㎞에 달한다는 대둔산 암봉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다가 완주 땅에서 가을의 고요와 고즈넉함이 깃든 몇 곳의 오래된 성당과 늙어가는 절집을 여정에 보탭니다. 짙푸른 신록의 시기를 건너서 물든 단풍이 하나 둘 잎을 떨구며 저물어가는 가을이면 누구든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다 보게 마련입니다. 가을의 한복판으로 행하는 여행이 어찌 화려한 단풍과 떠들썩한 단풍놀이 뿐이겠습니까. 지난 시간들이 쓸쓸해지기도 하고,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가을 날, 위안이 돼 주는 곳들을 함께 둘러봤습니다.


# 선혈 같은 단풍 속 범상찮은 압도의 기운이 넘치는 곳

충남 논산과 금산도 나눠 갖고 있긴 하지만 대둔산은 전북 완주 땅에서 보아야 제맛이다. 전북 완주 쪽에서 대둔산과 처음 맞닥뜨린다면, 그것도 요즘처럼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맞닥뜨린다면 누구든 깜짝 놀라게 될 것이 틀림없다. 먼발치에서부터 험준한 산세의 암봉을 두르고 있는 산의 이마에서부터 범상찮은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둔산이 보여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웅장함과 아기자기함의 조화다. 정 반대의 느낌이 동시에 전해지는 것이다. 웅장하되 헐겁지 않고, 아기자기하지만 압도의 느낌도 전혀 잃지 않는다.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에서 낙조대 쪽으로 이어지는 암릉 끝에서 내려다본 칠성봉 전망대 쪽 풍경. 근육질의 우람한 바위 사이로 단풍이 불붙었고, 그 단풍 사이의 칠성봉전망대에 등산객들이 둘러앉아 단풍을 감상하고 있다.

대둔산은 한 눈에도 ‘특별해 보이는’ 산이다. 산세의 기운이 차고 넘쳐 영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예로부터 이 땅의 이름난 절경에는 선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암봉의 자락마다 그곳을 다녀간 이들의 이름이나 운치를 다룬 시 구절 몇 개쯤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지만, 절경으로 치자면 모자람이 없는 대둔산에는 그런 자취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이름난 관광지 주변에 흔하디흔한 ‘팔경’ 따위도 없다. 대신 임진왜란 때 왜군과 벌인 승전의 기록과 동학혁명 당시의 동학교도들이 벌인 관군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사연들이 흥건하게 고여 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수소문해 듣자니 이렇다. 전북의 북쪽은 온통 험준한 산들이 가로막고 있다. 완주에서 진안으로 가자면 험한 곰티를 넘어야 했고, 금산을 가려 해도 굽이굽이 배티를 넘어야 했다. 한 뼘의 농토가 소중했던 시절에 험한 산은 적잖이 홀대를 받았다. 그나마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면 모를까 험준한 암봉으로 치솟은 대둔산은 접근불가의 지역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발을 디뎌야 했을 때는 전쟁과 전투 때뿐이었다. 그랬으니 대둔산은 오래도록 미답의 산이었다.

천주교 순교자들의 잠들어 있는 천호성지는 맑고 순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 케이블카로 등산로 절반을 접어서 만나는 만산홍엽

그러나 지금은 대둔산을 가볍게 딛고 오를 수 있다. 완주 쪽에서 협곡을 타고 오르는 케이블카가 가파른 등산로의 절반쯤을 가뿐하게 접어주기 때문이다. 대둔산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케이블카가 놓이기 훨씬 전인 1972년부터. 아찔한 암봉 사이를 금강구름다리로 잇고, 경사도 51도의 가파른 암봉을 타고 오르는 아찔한 삼선계단이 놓인 뒤에야 비로소 대둔산을 오르는 길이 열렸다.40여년 전. 여행이나 등산이 ‘호사’쯤으로 간주되던 때였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대둔산이 빼어나긴 하되 ‘내로라’ 하는 특급 명소는 아닐진대 어찌 이리 일찍 관광지로 개발이 됐을까 하는 것이다.

완주의 향토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 1960년대 말 전주의 한 여고에 곽주훈 지리교사가 부임해왔다. 일찌감치 대둔산을 보고 반한 곽 교사는 답사기를 이곳저곳에 썼고, 관공서마다 ‘이런 곳을 개발해야 한다’는 청원을 올렸단다. 그 결과 1970년에 대둔산의 개발이 이뤄졌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대둔산의 등산로 개발은 주민들에게 ‘쓸모없는 산도 개발하고 개척하면 훌륭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대둔산의 정상인 마천대에 정상석이 아니라 난데없이 승전기념비를 연상케 하는 ‘개척탑’이 세워진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다.

어찌 됐던 대둔산은 지금 단풍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둔산의 단풍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것은 치솟은 암봉들이다. 거대한 직벽의 암봉에 선혈이 새어나온 듯 불붙은 단풍의 색감은 농염하기 이를데 없다. 단풍과 어우러진 암봉의 절경을 딱 두 장면만 꼽으라면 첫번째는 대둔산 정상인 마천대에서 구름다리를 굽어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낙조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칠성봉 뒤편의 암봉능선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여기에다 70m 높이에 걸린 금강 구름다리를 걷는 맛과 하늘로 오를 듯한 삼선계단 위에서 오금이 저린 듯한 느낌이 보태진다.

# 고즈넉하고 적막한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

가을 여정이 어디 단풍의 화려함과 떠들썩한 단풍놀이뿐일까. 사실 가을의 여정은 왁자한 관광지의 소란스러움보다는 차분하고 적막한 풍경이 더 잘 어울리는 법이다. 한때 청춘의 신록을 뿜어내던 나뭇잎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한 장씩 낙엽으로 내려놓는 고요한 시간을 온전히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대둔산 인근에서 그런 정취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완주의 화암사다.

화암사는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사랑’으로 그 진면목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시인은 ‘말의 붓’을 들고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로 화폭에 화암사를 그려냈다. 그리곤 화암사에 발을 들여서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등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순간을 말했다. 시인은 시의 말미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시를 읽은 이들이 화암사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화암사로 향하는 자그마한 계곡을 따라 잰 걸음으로 등산하듯 오른다면 20분 안쪽에 절집의 입구에 가닿지만, 단풍 짙고 새소리 가득한 그 길에서는 가능한 보폭을 줄이고, 속도를 늦춰야 한다. 늦춘 속도만큼, 더뎌진 걸음만큼 만나는 생각은 더 깊어질 테니 말이다.

화암사의 극락전은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 처마구조로 알려져 있지만 화암사에서는 건축물들을 뜯어보는 것보다 단청이 다 지워져 맑은 기운이 감도는 대웅전과 적묵당의 높고 낮은 지붕선들이 만들어내는 아늑함을 전체적으로 느껴야 하는 곳이다. 비스듬히 기우는 가을햇살 속에서 적묵당의 툇마루에 앉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되돌아 나오는 길은 계곡 길을 되짚지 말고 절집 뒤편으로 난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편이 더 낫겠다. 2.4㎞ 남짓한 그 길에서는 산자락의 단풍과 멀리 첩첩이 이어진 산자락들이 만들어내는 산그리메를 감상할 수 있다. 그저 제 발자국소리만 데리고 갈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 맑고 순한 기운으로 가득한 숲길을 거니는 맛

고즈넉한 정취로 말하자면 화암사에 버금할 만한 곳이 완주에 또 한 곳 있다. 비봉면 내월리의 천주교성지인 천호성지다. 150여년 전 기해박해 이후부터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다가 하늘의 부름을 받아 순교한 성인들의 피를 담은 땅이다. 이곳에는 1866년 무렵 전주와 공주, 여산에서 순교한 성인 5명과 이름없는 순교자 10명이 묻힌 곳이다.

성지 일대는 솔숲과 편백숲이 어우러져 맑고 순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독특한 미감의 부활성당과 종탑 주변으로는 순례자들이 조용한 걸음과 묵상이 이어지고 솔숲의 기도처에는 두 손을 모은 기도의 기운이 맑게 흐른다. 굳이 신도가 아니더라도 가을볕 속에서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성지를 둘러봐도 좋겠고, 피정의 집 뒤편으로 나 있는 도보 순례길인 ‘품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인근 천호공소의 마당에는 종으로 삼은 포탄의 탄피가 매달려 있어 아직도 둥글고 청아한 종소리를 내고 있다.

천호성지에서 차로 15분 남짓 떨어진 화산면 승치리의 외딴 마을에는 서울의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 땅에 두 번째로 완공된 본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인 되재성당이 있다. 역시 고요 속에 저절로 축복이 내려질 것 같은 그윽한 곳이다.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전북 완주 쪽 대둔산의 들머리를 찾아가려면 대천∼통영간 고속도로 추부나들목으로 나와 복수면소재지를 거쳐 17번 국도를 따라 배티재를 넘으면 된다. 대둔산은 논산 벌곡면 수락리 쪽에서 계곡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마천대에서 낙조대 쪽으로 이어진 암봉 능선에 올라 발아래로 깎아지른 바위를 온통 단풍의 핏빛이 흥건한 모습도 못지않다.

대둔산을 들렀다가 화암사와 천호성지를 다 둘러보려면 완주 쪽 대둔산 입구에서 17번 국도로 운주면 쪽으로 따라가다 화암사를 들른 뒤 경천면 소재지 못 미처 경천저수지를 끼고 우회전해 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우월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천호성지로 잇는 순서를 따라가면 된다.




완주 쪽 대둔산 입구 부근에는 대둔산관광호텔(063-263-1260)을 위시해 청학산장(063-263-1602), 금강산장(063-263-4508), 경향산장(063-263-8783) 등 그만그만한 산장과 여관들이 즐비하다.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은 대둔산을 마주보고 있는 배티재의 진산자연휴양림(041-753-4242). 완주 쪽 대둔산 들머리가 코앞이지만 휴양림의 행정구역은 충남 금산이다. 휴양림은 여기저기 걸어둔 글귀들로 다소 수선스럽고, 숙소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 휴양림이란 이름이 무색하지만, 산자락에 놓인 산책로 만큼은 일품이다.

완주의 먹거리로는 소양면 화심리 일대의 두부가 첫손으로 꼽힌다. 화심순두부(063-243-8268)가 대표적인 맛집. 송광사 주변의 송광순두부(063-243-8134)도 제법 이름난 곳이다. 대둔산 부근에는 산채백반을 내는 한밭식당(063-263-9870)과 전주식당(063-263-3473)을 빼놓을 수 없다. 화산면은 국내 면 단위 가운데 한우 사육두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산골한우촌(063-262-6222), 화산한우직판가든(063-263-3777) 등이 알려진 맛집이다.


“가을 단풍을 봤다면 그다음은 겨울의 설경을 보러 와야 합니다.”

대둔산케이블카의 상부정류장의 작은 매점 ‘케이블카 휴게실’을 운영하는 임채용(51·사진)씨는 올해로 26년째 대둔산을 지키고 있다. 임씨는 바람이 심해 케이블카가 운행하지 않는 날을 빼고 휴일도 없이 매일 대둔산을 지킨다.

임씨는 지난 1984년 등산로가 재정비됐을 때부터 대둔산과 인연을 맺었다. 구름다리를 새로 놓고 등산로를 정비하는 업체에서 자재공급 일을 맡았던 것. 험한 대둔산의 암봉 사이의 등산로를 정비하는 일은 지금 되돌아봐도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고됐다.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산 아래 텐트를 치고 자면서 등짐으로 시멘트며 모래, 자갈, 철근 따위를 여기까지 옮겼습니다. 보통 고된 노동이 아니었지요. 시설물을 설치할 때도 발파를 못하고 일일이 정으로 돌을 깨야 했지요.”

그렇게 3년의 공사를 거쳐 대둔산의 등산로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공사가 마무리된 뒤 그는 다른 곳의 공사현장으로 투입됐지만, 10여년이 지난 뒤인 1998년 ‘케이블카 휴게실’ 영업권을 인수해 대둔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둔산과의 인연을 ‘무슨 운명과도 같다’며 웃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지요. 여기 오는 이들은 인상을 쓰는 사람이 없어요. 하루종일 기분 좋은 표정의 사람들을 대할 수 있으니 즐겁지요. 충분치 않지만 벌이도 그럭저럭 되고요.”

그는 간혹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거나 급작스러운 일 때문에 출근을 하지 못하는 날에도 좌판이며 테이블에 팔 물건들을 그대로 두고 간다. 그래 봐야 음료수나 과자 같은 것들이지만 처음에는 혹시 손을 탈까 싶어서 출입구를 막고 물건을 천으로 덮어뒀단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문을 열어둔 채 물건을 그대로 두고 간다. 주인이 자리를 비워도 손님들이 물건을 가져가며 돈을 남겨두니 10여년 동안 한 번도 계산이 빈 적이 없단다.

그는 가을 단풍의 절정으로 치닫는 무렵에 대둔산을 오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사이를 피하라고 귀띔해줬다. 전국에서 단풍행락객들을 싣고 온 관광버스들이 산 아래 케이블카 정류장에 당도하는 시간이 대략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무렵. 그때 대둔산 등산로는 걸음도 못 뗄 정도로 정체가 벌어진다. 그러나 오전 시간대에는 늘 한적하고, 행락객들이 빠져나간 오후 늦은 시간에는 호젓하게 단풍구경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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