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단풍 달아오른 설악

醉月 2011. 11. 3. 14:45

설악산 최고의 단풍명소로 꼽히는 곳이 천불동계곡이라면 천불동계곡에서도 최고의 단풍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오련폭포 부근이다. 오련폭포의 맑디 맑은 진초록 물빛과 석벽에 뿌리를 내린 활엽수의 붉고 노란 단풍이 한데 어우러졌다.

깊어가는 가을이 부쳐온 올해 첫 단풍 서신(書信)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하는 단풍은 설악이 일으켜 세운 수많은 능선과 계곡에 그득 고였다가 흘러넘치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옵니다. 가을 단풍의 최고 명소가 설악이라면, 설악에서 가장 화려하게 단풍이 물드는 곳은 누가 뭐래도 단연 천불동계곡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천불동계곡의 단풍색이 어쩐지 예년만 못합니다. 양폭대피소 위쪽의 물길이 말라 단풍이 물들기도 전에 바스락거리며 말라붙어 버린 것이지요.그럼에도 양폭대피소 아래쪽 단풍은 제법 현란한 색감으로 불붙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촉촉한 가을비까지 내려 지금쯤 산 허리 아래까지 내려온 단풍은 더 곱게 물들어 절정을 넘어서고 있겠지요.

단풍을 만나러 오가는 길에는 강릉의 안목해변에 들러볼 것을 제안합니다. 백사장을 끼고 있는 운치있는 해변에 10여년 전부터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커피전문점들이 줄지어 늘어서면서 ‘커피명소’가 된 곳입니다. 커피를 볶는 내음이 가득한 해변의 바닷가 커피숍 2층 테라스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따스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가을이 지난 풍경을 봐도 좋겠고, 안목에서 송정해안으로 이어지는 해안의 송림 숲에 들어도 좋겠습니다. 설악에도, 안목해변에도 지금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습니다.

# 느긋한 걸음으로 설악 최고의 단풍을 만난다

강릉의 안목해변에서 송정해수욕장을 거쳐 강문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 소나무 사이로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다.


가을 설악의 백미라면 단연 천불동계곡이다. 천불동은 대청봉에서 보면 신흥사와 울산바위를 향해 정북쪽으로 7㎞ 남짓 깊숙하게 이어지는 골짜기. 치솟은 암봉과 기암괴석, 푸른 담(潭)과 소(沼)가 이어진 계곡만으로도 사시사철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울긋불긋 곱게 물든 가을 단풍까지 여기에 더해지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즈음 설악의 대청봉을 오르는 이들은 거개가 천불동을 지나는 코스를 택하는데, 그건 바로 가을 대청봉 등반이나 종주등반 목적의 팔할쯤은 천불동을 만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악을 제대로 만나겠다면 종주등반이 정답이다. 그러나 평소 산을 즐겨 탔다면 모를까, 산행이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설악 종주 산행이란 ‘결심’이 요구될 만큼 힘겹다. 게다가 가을이면 종주 등반객들을 위한 설악산의 대피소들은 그야말로 미어터진다. 일찌감치 서둘지 않았다면 대피소 숙박 예약은 아예 꿈도 못 꾼다. 그렇더라도 실망할 것은 없다. 설악을 찾은 목적이 ‘단풍을 보겠다’는 것이라면 구태여 대청봉 등정이나 종주를 택하지 않고, 천불동계곡만 다녀와도 족하다.

지금이야 천불동계곡은 거친 암벽 사이를 딛고가는 철계단이 놓여져 길이 순하디 순하지만, 한때 천불동은 전문 산꾼들조차 ‘천불동계곡을 다녀왔다’는 걸 두고두고 자랑할 만큼 거칠고 험한 곳이었다.

천불동계곡의 명성은 그때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소수의 전문 산꾼들에게만 허락되던 풍경. 당시에 거친 암봉을 아슬아슬 오르고 위태로운 산길을 걸어들어가 천신만고 끝에 만났던 천불동계곡의 단풍은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지금은 설악동소공원에서 천불동계곡의 양폭대피소까지 그리 힘겹지 않은 등반로를 따라 편도 3시간 남짓만 걸으면 천불동계곡 단풍의 아름다움을 다 볼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천불동계곡의 풍광이야 무어 그리 변한 게 있을까. 쉽게 가닿을 수 없었던 때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천불동계곡이 설악의 단풍을 대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오름길에서는 암봉을, 내림길에서는 단풍을…

천불동계곡을 오르며 만나는 담과 소에 떨어진 낙엽들.
설악산에서 평상복에 구두차림으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곳. 등반이 아니라 온전히 행락으로 설악산을 찾은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이 비선대다. 신흥사 입구에서 평지와 다름없는 포장도로를 따라 너른 숲길을 1시간쯤 마치 산책하듯 걸으면 곧 비선대에 닿는다.

비선대가 바로 천불동계곡의 시작이다. 비선대에서부터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루는 맑고 고운 곡류들이 펼쳐진다. 천불동계곡의 물가에는 지금 온통 단풍이다. 환한 초록빛이 감도는 물가에 붉고 노란 단풍들이 계곡을 온통 물들이고 있다.

올해는 가을 가뭄 탓인지 단풍색이 불붙듯 선명하지는 않지만, 어찌 해마다 단풍이 곱기를 바랄까. 아쉽기는 해도 이 정도만 해도 모자람이 없다.

천불동계곡은 양폭대피소를 지나 희운각대피소 너머까지 이어지지만, 단풍의 절경은 딱 양폭대피소 부근까지다. 그 위쪽의 단풍은 채 물들기도 전에 다 말라붙어 황량한 겨울풍경이다. 그러니 올해는 양폭대피소까지만 다녀와도 천불동계곡의 단풍을 다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천불동계곡을 보는 데는 요령이 있다. 산에서는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오를 때의 풍경과 내려올 때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때로는 전혀 다른 길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천불동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바로 그렇다. 요령이란 이렇다. 천불동계곡의 오름길에서는 시선을 멀리 두고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다가오는 설악 암봉들의 웅장한 위용을 감상한다. 본격적인 단풍의 감상은 천불동계곡을 되돌아 내려올 때 즐긴다. 계곡의 단풍은 올려다보는 것보다 내려다보는 게 몇배쯤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계곡의 물길을 중심으로 양 옆의 협곡으로 펼쳐지는 단풍을 발 아래로 굽어보면 그 길을 거쳐 올라오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이유에서 천불동계곡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의 반응이 확연히 갈린다. 비선대를 기점으로 삼아 줄곧 단풍만 올려다 보고 천불동을 올라온 이들은 대개 “소문만 못하다”며 실망하지만, 대청봉 쪽에서 단풍을 발 아래로 두고 천불동으로 내려선 이들은 곳곳에서 탄성을 지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똑같은 장소라도 쉽사리 가닿을 수 없는 곳이 감동이 더하듯, 똑같은 길을 가더라도 무엇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감동은 다른 법이다.

지금 천불동계곡에서 최고의 절경을 빚어내는 곳이 바로 오련폭포 부근이다. 폭포 옆의 깎아지른 직벽에 놓인 철계단에서 굽어보는 폭포 주변의 단풍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단풍과 협곡의 풍광이 어쩌면 이리도 완벽하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천불동계곡으로 단풍을 보러갔거들랑 되도록 거기서 오래 머물 일이다.

# 아는 이들만 아는 곳, 화암사 단풍을 호젓하게 즐긴다

천불동계곡은 등산로가 놓이기 전에는 어찌나 깊고 험했던지 전문 산꾼들도 한번 다녀온 뒤에 두고두고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협곡 사이로 철계단을 놓아 누구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해마다 가을이면 관광객들이 들끓는 속초며 설악산의 코 앞에 있지만, 열이면 아홉은 무심코 지나치는 곳이 있으니 바로 강원 고성의 절집 화암사다. 화암사는 설악산의 끝자락이자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숨듯이 들어서 있다.

화암사는 마주보는 능선에 ‘수바위’란 이름의 웅장한 암봉이 절집과 어우러져 범상찮은 기운을 뿜어내는 절집이다. 화암사의 백미는 단연 단풍이다. 절집 뒤편의 미타암 앞 계곡의 화암폭포 주변부터 불붙기 시작한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물들면서 절집을 포위하면 가히 장관이 펼쳐진다. 이곳의 단풍이 이제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 화암사 단풍은 가을이면 일시에 폭죽처럼 터지는데, 어찌된 게 올해는 단풍이 띄엄띄엄하다. 하지만 빛깔만큼은 설악의 것보다 훨씬 더 곱고 선명하다.

화암사의 빼어난 풍모는 아는 이들만 안다. 설악산이 온통 몰려든 단풍 행락객들로 북적거릴 때도 이곳 화암사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화암사는 속초쪽 미시령터널 부근에서 고작 4㎞쯤 떨어진 속초시 인근에 있지만, 행정구역으로는 고성군에 속해 있다. 그러니 속초 관광지도에는 화암사가 없다. 속초를 들른 사람은 화암사를 모르고 지나쳐간다. 그렇다고 고성을 찾은 이들이 화암사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고성에서는 화암사가 멀다. 그러니 이런 빼어난 풍광을 갖고 있음에도 화암사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 된 것이다.

화암사는 신라 때 진표율사가 창건한 절집으로 1200년의 내력을 헤아리는 곳이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가 불과 20년 전쯤 다시 세워졌다. 화암사에서는 절집 뒤편에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화암폭포 주변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있는 정취가 으뜸인데, 이쪽에 산양산삼이 심어져 있어 폭포로 향하는 오솔길이 아쉽게도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다. 그렇더라도 화암사에서는 찻집 ‘란야원’의 수바위와 단풍이 밀려들어오는 창문 앞에 앉아서 향긋한 차 한 잔을 앞에 두는 정취만으로도 그곳을 찾은 보람은 충분하다.

# 강릉의 안목해변에서 그윽한 향기의 커피를 앞에 두다

천불동의 들머리인 속초의 설악동으로 가려면 미시령터널을 통과할 수도 있고 미시령옛길 또는 한계령을 넘는 방법도 있다. 영동고속도로로 강릉까지 가서 주문진을 거쳐 속초로 향하는 방법도 있다.

어디든 가을색으로 물드는 요즘은 길 위에서도 빼어난 풍광을 만나게 되는 때다. 그러니 모처럼 나선 길에서 똑같은 도로를 타고 오고가는 것보다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낫겠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에 속초가 있는 동해안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강릉의 안목해변을 추천한다. 안목해변은 갓 볶아낸 커피향이 짙은 곳이다. 강릉은 인구 20만이 조금 넘는 중소도시지만, 프랜차이즈가 아닌 이른바 ‘커피의 장인’들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100여개나 된다. 서울에서 이름난 바리스타 몇몇이 강릉으로 하나 둘 이주하면서 생겨난 독특한 지역의 문화다.

그런 강릉에서도 커피로 이름난 곳이 안목해변이다. 안목해변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저마다 다른 배합의 커피를 선보이던 커피자판기만 수십대가 늘어섰던 곳이다. 그곳에 하나둘 커피전문점들이 문을 열기 시작해 지금은 바다를 마주보는 건물들에 10여곳이 넘는 커피전문점들이 늘어서있다. ‘보헤미안’ ‘테라로사’ ‘커피커퍼’를 비롯한 커피숍들은 커피콩을 직접 볶아내 만든 향긋한 커피를 내고 있다. 요일마다 다른 품종의 커피를 내놓는 곳도 있다.

가을의 철지난 해수욕장과 짙은 향의 커피 한 잔은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커피전문점 2층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파도치는 긴 백사장을 걷는 연인들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겠고, 해변의 커피자판기에서 500원짜리 헤이즐넛 커피 한 잔을 종이컵에 뽑아들고 바닷가 백사장이나 안목항에서 송정해변으로 이어지는 ‘딴산마을 산책로’의 울창한 솔숲의 벤치에 앉아 가을볕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커피 한 잔 마시자고 강릉까지 먼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될지는 모르겠지만, 안목의 해변에서 맛보는 것이 어디 한 잔의 커피뿐일까. 이 가을, 안목해변에는 철지난 가을바다와 그 바다를 보며 걷는 송림 숲, 향긋한 커피의 향기와 함께 마주앉은 이와의 따뜻한 대화가 기다리고 있다.


산행경험이나 체력에 자신이 없는 이들은 설악산의 단풍을 만나려면 주로 남설악의 흘림골이나 주전골, 외설악의 울산바위 코스 등을 찾게 된다. 이들은 짧으면서도 그 자체로 완결된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천불동계곡은 잘 찾지 않는다. 대청봉을 향해 오르거나 내려가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대청봉을 오를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천불동계곡만 보고 오자니 마치 산행을 중도에서 포기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단풍을 보겠다면 천불동계곡까지만 가도 좋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천불동계곡의 양폭대피소까지는 편도 3시간 남짓. 왕복 6시간이면 천불동을 다 둘러보고 내려올 수 있다. 코스도 그다지 험하거나 거칠지 않아 부담없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천천히 다리쉼을 하며 둘러본다 해도 왕복 7시간이 채 안 걸린다. 문제는 단풍시즌에는 피할 수 없는 설악동 일대의 교통 체증과 주차전쟁. 아예 이른 새벽에 가거나 속초 시내에서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는 게 속편하다.


외설악을 끼고 있는 강원 속초는 여행지로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렇다 할 대표 먹거리가 없다. 어느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광어며 우럭, 오징어 등의 수산물이 고작이었다. 겨울철에 양미리와 도루묵이 있다지만, 그건 풍성한 물량 탓에 유명세를 치른 것이지 맛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속초는 홍게의 주산지(主産地)다. 속초의 홍게 어획량은 전국 어획량의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이렇게 잡은 홍게는 동해안의 다른 항구로 팔려가서 그곳의 특산물로 둔갑하거나 식품가공업체에 통째로 넘겨졌다. 가장 생산량이 많다는 속초에서 정작 홍게를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속초시가 올해부터 지역 특산물로 홍게를 알리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맛이나 품질에 비해 저평가된 속초의 저염도 젓갈도 자신있게 내놓는다. 속초시는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청호동 아바이마을 일원에서 ‘속초 젓갈·붉은대게 축제’를 연다. 속초에서는 홍게를 ‘붉은 대게’라고 부른다. 이번 축제는 단풍시즌에 맞춰 개최돼 설악산 단풍 산행 뒤에 속초관광을 겸해 가볍게 들를 수 있다.

보통 홍게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살이 마르고 짠맛이 나서 저급의 먹거리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 그러나 홍게도 홍게 나름이다. 살이 마르고 짠맛이 나는 홍게는 모두 물게라고 부르는 저급품이다. 제대로 살이 찬 홍게는 탱탱한 살이나 쫄깃한 맛이 대게 못지않다. 축제 때는 주최측이 이 같은 소비자들의 인식을 감안해 일일이 중량을 재서 물게를 가려내 살이 튼실하게 든 것만 내놓는다.

젓갈이라면 남도를 먼저 떠올리지만, 속초에서도 젓갈생산이 적지않다. 속초의 제조업 종사자의 78%가 젓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단다. 오징어, 창난, 명란젓 등이 대표상품인데 속초의 젓갈은 다른 지역의 젓갈과 금세 구분이 된다. 속초의 젓갈은 남도의 젓갈에 비해 훨씬 덜 짜다. 염도를 낮춘 젓갈은 신선한 재료 때문에 가능하다.

축제 현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홍게와 젓갈을 구입할 수 있다. 축제가 펼쳐지는 아바이마을에는 축제 때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판매관이 들어선다. 축제 때는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와 함께 홍게와 젓갈의 무료시식 코너는 물론이고 축제의 부대행사로 진행되는 젓갈만들기 체험, 젓갈요리 시연, 어촌향토음식촌 등도 기웃거려볼 만하다. 속초시청 033-639-2471



가을 단풍시즌이면 설악산의 모든 대피소들은 몰려드는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단풍시즌이 당도하기 두어달 전쯤 치열한 경쟁 속에 숙박 예약은 다 끝나버린다. 대피소는 좁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단풍시즌에 제 몸 하나 누일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나 매일 설악의 대피소에서 잠을 자는 ‘팔자 좋은’ 이들도 있다, 다름아닌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 분소의 직원들이다. 양폭대피소에서 근무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이원후(47)씨는 매일매일 물들어가는 단풍을 일상처럼 바라보며 지내고 있다.

“자연만큼 지루하지 않은 게 또 있을까요. 매일 보는 경치지만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천불동계곡의 단풍을 보면 가슴이 다 저릿해지지요.”

이씨가 설악산 분소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 6월말. 국립공원관리공단 입사 직후 소백산에서 1년 근무한 뒤로 20년 넘게 서울의 북한산에서 일하다가 이곳 설악산으로 온 지는 석 달이 좀 넘었다. 워낙 오래 근무해서 북한산은 손금보듯이 훤하지만, 이곳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설악산의 매력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산이 일터이다 보니, 쉬는 날에 또 산을 가게 되지 않더라구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직업으로 갖게 되면 지겨워지는 것과 비슷하지요.”

보통 직원들은 대피소 근무를 꺼린다. 대피소에서 1주일 동안 먹고자고 근무하다가 내려와서 닷새를 쉬고 다시 대피소로 올라가 1주일을 근무하는 일과가 고되기도 하지만, 세상과 단절돼 생활하는 고립감도 이겨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씨는 스스로 대피소 근무를 자원했다. 서울의 가족들과 어차피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혼자 속초에 방을 얻어 살림을 하자니 엄두가 안 났다.

“깜짝 놀랐습니다. 주변의 풍광이 어찌나 좋은지요. 북한산은 여기다 대면 산도 아니지요.(웃음) 설악산의 맑은 공기와 짙은 자연의 기운을 다른 산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북한산에서 단풍명소로 망설임없이 ‘숨은벽’을 꼽았다. 그러나 이곳 양폭대피소 주변의 풍광에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또 이곳 대피소에서 근무하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즐겁다고 했다. 설악산의 대피소 중에서 산행 경유지점이 되는 중청이나 희운각, 수렴동대피소는 종주등반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지만, 비선대에서 불과 두 시간 거리인 양폭대피소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이다. 단풍시즌이라 이달말까지는 예약이 다 끝났지만, 다른 때는 평일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종주등반을 하려는 산꾼들보다 진짜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찾아와요. 풍광도 풍광이지만 그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재미도 제법이지요.”

그는 체력이나 산행경험이 모자라 설악산 종주가 힘겹다면 이곳까지만 와서 하루 묵어가길 권했다. 저물어가는 천불동계곡에서 늦도록 물소리를 듣고, 이튿날 새벽의 여명 속에서 설악의 기운을 느낀다면 그저 오르기만 하는 산행과는 또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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