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국밥 한 그릇 고향의 情 듬뿍 먹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향토음식 개발에 열중이다. 특정 지역에 향토음식 타운을 형성하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상품 판매시장을 개척해 지역 생산자에게 경제적 이득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만든 향토음식은 소비자에게도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전국이 비슷비슷한 음식을 내는 중앙집권의 대한민국에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 다양하게 있다면 단조로운 국내 여행에 즐길 거리를 하나 더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집에서 그 향토음식을 주문해 택배로 받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향토음식이란 게 한 지역에서 유명해진 아이템이 있다 하면 너도나도 따라하는 탓에 희귀성에서는 빵점인 것이 워낙 많다. 안흥에서 찐빵이 뜨자 그 주변의 온갖 지역에서도 이를 지역 특산물로 내놓아 안흥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식이다. 또 그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데, 유명해졌다 하면 전국에 그 음식이 쫙 깔리는 것도 문제다. 안흥 찐빵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니 찐빵 먹자고 안흥 갈 일도 없고, 또 그렇게 흔한 것을 굳이 먹을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브랜드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최악의 상황이 향토음식 분야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몇 주 전 경북 경주에 갔다. 경주는 한국 최대 관광도시다. 관광도시답게 길거리마다 향토음식을 내놓고 팔았다. 황남빵 또는 경주빵이라 부르는 단팥빵 가게가 제일 많고, 최근에 개발한 보리빵 파는 가게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황남빵이든, 보리빵이든 그 빵이 경주에서 비롯한 것임에도 전국 어디를 가나 다 있다. 희소성 빵점인 것이다. 황남빵 원조 가게가 있다 하는데, 그 가게의 것이면 몰라도 나머지는 아무 의미 없는 향토음식의 나열로만 보였다.
또 하나의 경주 향토음식으로 쌈밥이 있다. 천마총 옆 골목길에서 시작된 이 쌈밥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손에 채소 따위를 올리고 그것으로 음식을 싸서 먹는 방법이 일본 관광객에게 독특하게 보여 유명해진 경우다. 1990년대 초창기 쌈밥집만 하더라도 반찬에 정성이 들어 있고 토속적으로 보여 먹을 만했다. 그러나 지금의 쌈밥은 최악의 관광음식으로 변했다.
쌈밥집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주문도 받지 않고 머릿수에 따라 음식을 순식간에 깐다. 그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인데, 30가지 정도 되는 반찬을 1~2분 만에 세팅 완료한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해도 이보다 빠르지 않을 터. 반찬은 미리 담아놓아 겉이 다 말랐고, 정성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어 기겁하게 된다. 그래도 쌈밥집은 대박 장사를 한다. 관광버스가 그 앞에 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은 경주 관광객이니 그리 음식을 내어도 영업에 아무 지장이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손님이 오는 것이다.
이래저래 먹을 것 없는 경주의 향토음식을 훑다가 팔우정의 해장국 골목에 가게 됐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는데 여러 해장국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혼자 그 앞을 지나가는데도 호객 행위가 있었다. 관광도시 경주가 이렇다. 주방에서 혼자 밥을 드시느라 호객에 나서지 않은 어느 할머니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앞부분은 주방이고 그 뒤로는 좌식의 손님방이 있었다. 이 구조는 시골장터 주막에서 가끔 보는 것인데, 따지자면 조선시대 국밥집 형태다. 손님방에 앉아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이렇게 개방된 식당 구조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해장국은 메밀묵에 콩나물, 신 김치가 들었고 모자반이 올려진,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할머니도 말을 잘 받아주어 고향집에 와 저녁을 먹는 기분이었다. 겉치레만 잔뜩 낸 음식이 아닌, 이 소박한 해장국에서 경주의 향토 관광음식을 발견하고는 팔우정 해장국 골목 앞을 한참 서성거렸다. 손님은 거의 없었다. |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이 일 때였다. 급식비 분담과 질에 대해서만 말들이 오갔는데, 어느 누군가가 ‘입맛의 획일화’를 걱정했다. 급식이 인스턴트 음식으로 왜곡된 아이들의 입맛 교정에 일정 구실을 하리라 생각하던 나는 의외의 의견에 충격을 받았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당연히 해야 할 생각을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다.
개인의 기호를 무시한 단체급식은 어찌 보면 전체주의적 방식일 수 있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계층을 위한 복지로서의 단체급식만 논의하기도 벅찬 사회여서 이런 점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기호를 존중하는 것도 교육에서 꼭 필요한 부분일 테니 “단체급식에 대해서는 일단 무조건 공감”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문제는 교육계의 일이니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는 사라진 학교 도시락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농업사회에서 밥은 집에서 먹는 것이었다. 노동 현장, 즉 논밭이 집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집에서 먹는 밥과 반찬을 싸서 이동해 먹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논밭에서 먹는 새참이 도시락의 원형일 수 있겠다. 그러니 흔히 도시락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것은 산업사회에 들어와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집과 일자리의 거리가 멀어지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게 된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도시락은 결혼식 답례 도시락이다. 학교에 다니기 전이니 1960년대 중반쯤 일일 것이다. 전통 결혼식은 결혼 당사자의 집안에서 음식을 마련해 하객을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는데, 도시생활을 하면서 접대 공간이 마땅치 않자 도시락을 싸줬던 것이다. 나무도시락에는 돼지편육과 각종 부침개, 약밥, 떡, 홍어무침이 들어 있었다. 1970년대에 이 결혼식 도시락이 홀연 사라졌다. 요즘에도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혹 도시락을 안 주나 살핀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 집안의 정성을 먹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학창시절 학교에 싸간 도시락은 초라했다. 김치가 기본 반찬이며, 좀 더 낫다 싶으면 김치볶음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어묵볶음이나 멸치볶음이 보태지기도 하고, 가끔 달걀을 발라 부친 분홍색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달걀 프라이가 올려진 날은 어머니가 곗돈이라도 탄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도시락 재질은 양은이었고 모양은 네모났는데, 그 안에 반찬을 넣는 곳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극도로 꺼렸다. 반찬 국물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병 반찬통을 따로 갖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는데, ‘거버’라는 이유식 병이 최고 인기였다. 시장에서 이 이유식 빈 병을 비싸게 팔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온도시락이 유행했다. 당시 경제 수준에서는 요즘의 명품 핸드백 정도로 비쌌다. 보온도시락을 사달라고 양은도시락을 마루에 던졌다가 빗자루로 맞은 뒤 문밖에 서 있었던 기억을 공유하는 필자 또래가 많을 것이다.
1970년대에는 선생님이 도시락을 점검했다. 쌀이 모자라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대로, 흰쌀밥만 싸오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혼·분식 장려 장부’를 꺼내들고 교탁에 섰다. 그러면 학생들은 도시락을 들고 나가 자신이 싸온 도시락 뚜껑을 열고 선생님 얼굴 앞에 내밀었다. 흰쌀밥 도시락이면 벌을 섰다. 무릎을 꿇고 도시락을 머리 위에 올린 뒤 “혼·분식을 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혼·분식 도시락’ 이야기를 꺼내면 웬 구석기시대 일인가 할 것이다. 필자는 도시락을 안 먹는 지금 학생 세대가 부럽다. “지금 대한민국 수준에 단체급식이 어딘데”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들 개개인의 기호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맛 칼럼니스트가 사는 대한민국이다. |
최근 ‘로컬푸드’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와 지역 생산자단체에서 자기 지역의 농수축산물이 ‘로컬푸드’라며 마케팅한다. 그런데 무엇이 로컬푸드인지 개념이 모호하다. 로컬푸드와 슬로푸드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슬로푸드와 마찬가지로 로컬푸드도 운동성을 포함한다. 즉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를, 로컬푸드는 글로벌푸드를 반대한다.
글로벌푸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의 먹을거리를 말한다. 따라서 글로벌푸드는 대체로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모르는 정체불명의 먹을거리’다. 글로벌푸드는 가공 및 유통업체의 이익 확보가 가능한 한도에서 그 재료와 완제품의 운송 거리를 무시한다. 또 비용 절감과 시장 확대를 위해 획일화한 가공법을 택한다. 그러니까 글로벌푸드는 원거리 농수축산물, 패스트푸드, 인스턴트푸드, 그리고 각종 공장제 식품을 두루 일컫는다.
이 글로벌푸드에 맞선 개념인 로컬푸드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소비자가 알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말한다. 또 재료와 완제품의 운송 거리를 이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거리’에 로컬푸드의 방점이 찍히는데, 그 외 부분은 슬로푸드 개념 또는 운동성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에서 로컬푸드는 슬로푸드에 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슬로푸드는 ‘조리된 음식’이라는 관념이 강한 반면, 로컬푸드는 지역의 농수축산물, 그러니까 ‘조리되기 전 음식재료’라 생각한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농수축산물을 소비자가 손에 쥐려면 직거래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많은 소비자가 집단 직거래를 추구하는 생협 등에서 파는 농수축산물이 로컬푸드라 생각한다. 지역 농수축산물 생산자가 로컬푸드를 앞세우는 마케팅 방식이 거의 직거래인 것도 이 때문이다.
로컬푸드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지자체와 지역농협 등 생산자단체가 로컬푸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자신의 지역에서 생산하는 여러 먹을거리에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케팅에 열심이다. 그런데 로컬푸드의 유통 범위는 전국이다. 물론 지역 학교와 단체, 업체에 지역 농산물을 고정적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벌이긴 하지만, 판매 범위를 제한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지역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과는 맞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긴 한국에서 ‘어느 범위까지를 로컬이라 하자’고 합의를 본 적 없으니 한반도 전체를 유통 범위로 잡는 로컬푸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를 어물쩍 넘긴다면 로컬푸드 전반에 대한 신뢰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 또 로컬푸드에 대한 개념과 운동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이 슬로푸드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 개념과 운동성에 손상을 입혔듯이, 여러 상업 주체가 이 단어를 이용해 이득을 취한 뒤 버릴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이 그리 넓지 않아 어찌 보면 한국 전체가 로컬이라 할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며 그들 대부분이 소비자인 점을 감안하면, 또 생산지 인근에 대형 소비처가 없는 한국 농어촌 환경을 생각하면, 로컬 범위를 구획한다는 것은 무척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물리적 거리를 기준으로 한 로컬푸드가 한국적 상황에 맞지 않는 개념이라면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는 일이 필요할 수 있다. 슬로푸드, 로컬푸드, 웰빙푸드 등 항상 서구에서 제안한 개념을 받아 먹는 일도 극히 로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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