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대게 살이 차오른다, 가자!… 박하 향 가득한 바다를 맛보다

醉月 2022. 12. 17. 15:31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없는 게 없는 겨울 명소 경북 울진


먹는 맛
제철 대게, 설날 무렵 가장 좋아
후포항 홍게, 대게 못지 않은 맛

보는 맛
망양정·월송정 ‘관동팔경’ 두곳
언덕·해변 옮겨 지어 정취 물씬

달리는 맛
바다·갯바위 사이 ‘스카이레일’
한번은 꼭 타봐야 하는 새 명소

걷는 맛
매화면 ‘이현세 만화거리’ 1㎞
공포의 외인구단 245컷 그려져


드물지만 ‘장소’가 저절로 여행을 이끄는 곳이 있습니다. 고르게 다양한 명소를 갖고 있는 건 물론이고, 즐거움의 종류까지도 균형이 잡혀 있는 곳들입니다. 기왕에 알려진 명소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그렇게 다니는 게 뭐 하나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는 곳. 경북 울진이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이만큼 다양한 매력의 여행지가 또 있을까요. 바다와 산, 사찰과 휴양림, 동굴과 정자, 온천과 먹거리까지…. 기왕에 품고 있던 매력과 새로 만든 명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울진 여행이 더 완벽해지는 건 겨울입니다. 박하 향 가득한 차고 푸른 바다가 있고, 거칠어진 겨울 바다가 내어주는 먹거리가 있는 때니까요. 울진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으셨다면 순서만 정하면 됩니다. 장소가 길잡이가 돼서 저절로 여행을 이끌어주니까요.


울진=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 올 크리스마스엔 대게 축제에 가볼까

겨울 동해안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을거리다. 겨울은 찬 바다가 내어놓는 탱글탱글한 해산물이 한창 맛을 내는 때다.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 상차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기까지 간 보람은 차고 넘친다. 여행지의 제철 먹을거리가 든든하면 그 여행은 절반쯤 성공한 것이다.

겨울 동해안에서 나는 바다 먹거리는, 울진을 중심에 두고 북쪽과 남쪽의 차이가 뚜렷하다. 동해안 북쪽 바다의 겨울 먹거리는 양미리와 도루묵을 비롯해 도치, 장치로 대표된다. 대부분 풍성하게 나고 값이 헐한 것들이다. 반면 동해 남쪽의 겨울 먹거리는 대게와 붉은 대게 그리고 가자미와 방어다. 상대적으로 비싼 축에 속하는 것들이다. 여기다 굵은 삼치와 혼획된 고등어들도 간간이 끼어든다. 그물이 찢어지게 오징어가 나는 때도 있다.

울진에서 가장 큰 포구는 죽변항이다. 죽변항에서는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죽변항 수산물 축제’가 열린다. 울진의 겨울 수산물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는 축제다. 수산물축제는 2019년 처음 열렸다. 축제 없이도 죽변항은 늘 북적거리니 별 관심이 없다가 당시 36번 국도 개통과 국립해양과학관 개관, 죽변해안 스카이레일 설치 등 관광기반시설 확충을 계기로 수산물 축제가 기획됐다. 그렇게 기대 속에서 시작한 축제는 첫해에 7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불러들이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축제가 개최되지 못하다가 이번에 다시 열리게 됐다.

울진의 겨울 수산물을 대표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대게다. 대게는 7월부터 10월 말까지가 금어기. 하지만 울진에서는 11월 한 달은 잡지 않고, 12월부터 조업을 시작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건 죽변항 횟집 수족관에서 알 수 있다. 7∼8월 딱 두 달만 빼놓고 연중 잡는 홍게로 가득 차 있던 수족관이 겨울이 되면 대게로 교대하기 시작한다. 대게잡이가 이제 막 시작됐지만 아직 대게는 이르다. 살이 단단하게 차지도 않았고, 특유의 달큼한 맛이 덜한데도 값은 비싸다. 그러니 겨울이 더 깊어지고 튼실하게 살이 차오르는 설날 무렵을 전후해 맛보는 걸 추천한다.

대신 요즘은 ‘홍게’다. 요즘 울진에서는 홍게를 ‘붉은 대게’라 부른다. 홍게 소비시장이 커지면서 이렇게 대접하는 게 장사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홍게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겨울에 맛이 좀 더 낫다. 문제는 ‘어떻게 잘 고르냐’다. 홍게라면 고개를 내젓는 이들이 있는데, 십중팔구 살이 마르고 물이 많은 ‘물게’에 속은 경험 때문이다. 사실 ‘좋은 홍게’를 고르는 건 전문가들도 쉽지 않다.

# 지금은 대게보다는 홍게가 제맛

이즈음 울진에 갔다면 후포항 위판장에서 경매를 구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포구의 위판은 꼭두새벽에 진행돼 가보기가 쉽잖다. 후포항에서는 오전 4시 30분 가자미와 활어부터 시작해 오전 5시 방어, 오징어, 정치망 선어, 오전 6시 30분 붉은 대게, 활어 경매로 이어진다. 이걸 가보기는 쉽잖은 일이다. 대게 경매는 오전 8시에 있고, 오전 9시 30분에도 붉은 대게와 활어 경매가 있다. 멀리서 게를 사러 오는 상인들을 위한 배려다. 이른 새벽에 서두르지 않아도 이 시간에만 맞춰 가면 위판장 바닥에 가득 부려놓은 대게와 홍게를 볼 수 있다.

같은 홍게라고 해도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산 채로 한 마리씩 부려놓는 것도 있고, 죽은 홍게를 얼음에 채운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위판하는 것도 있다. 산채로 내놓은 게살이 차고 맛있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홍게잡이를 하는 어민들은 그걸 어떻게 가려낼까. 비밀은 ‘잡는 자리’다. 홍게는 어느 자리에서 잡느냐에 따라 품질 차이가 크게 난다. 좋은 홍게가 나는 자리가 있고, 살이 마른 홍게만 잡히는 자리가 있다. 어디에 통발을 던져놓느냐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는 셈이다. 당연히 좋은 홍게가 나는 자리에는 잡히는 마릿수가 적다.

홍게를 먹었는데 마르고 살이 없어 짰다면 필시 이렇게 얼음에 채워 거래되는 죽은 홍게인 게 틀림없다. 보통 이런 것들은 쪄서 먹는 것보다 어묵 국물을 내거나 하는 용도로 쓰는데, 이걸 가져다가 쪄서 파는 악덕상인들이 있다. 죽은 홍게도 겉모양이야 똑같으니 소비자들은 속을 수밖에….

후포항 인근에서 30년 넘게 홍게를 쪄서 게살 가공식품을 제조하고 있는 대정산업의 최승걸 대표는 “홍게도 좋은 건 대게 못지않은 맛을 낸다”며 “무턱대고 싼 것만 골라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꼭 게를 사서 통째로 쪄먹는다는 생각을 버리면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울진에 게살 가공공장이 예닐곱 곳 있는데, 홍게를 쪄서 다리 살만 발라내 가공식품으로 제조한다. 게살은 150g에 1만5000원 선인데, 현지에서는 1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보통 홍게 한 마리에서 다리 살이 30g 정도 나오니 150g이면 홍게 5마리 분량이다. 공장마다 홍게를 찌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날짜와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 대정산업은 매주 화요일에 홍게를 찐다.


# 옮겨 지어도 관동팔경 정취는 그대로

동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이 관동팔경이다. 관동팔경은 강원 고성, 강릉, 삼척, 양양 등이 하나씩 나눠 갖고 있는데, 울진은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을 갖고 있다. 고성도 청간정과 삼일포 두 곳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삼일포가 북한 땅이니 실제로 고성이 가진 건 청간정 하나뿐이다. 망양정은 울진 북쪽 왕피천 물길과 바다가 만나는 산포리의 언덕 위에 있다. 지금의 망양정은 그러나 정철이 시를 읊고 겸재가 그림을 그렸던 관동팔경 시절의 망양정이 아니다. 본래 망양정은 지금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4㎞ 떨어진 현종산 아래에 있었다. 망양정이 퇴락해 허물어져 버리자 1860년에 지금으로 치면 울진군수쯤 되는 울진 현령이 현판을 가져다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본래 망양정이 있었던 평해는 지금은 울진에 속한 땅이지만, 그때는 행정구역이 달랐다. 기록도 없고 고증도 안 된 이야기지만, 대략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울진에는 하나도 없는데, 평해에만 망양정과 월송정 두 개의 관동팔경이 있으니 울진 현령은 배가 아팠을 터. 마침 망양정이 허물어져 버렸으니 울진 현령이 ‘망양정을 넘겨 달라’해서 현판을 가져다가 지금의 울진 땅에다 다시 지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지금의 망양정이 160여 년 전쯤 자리를 옮겨 지은 것이니 정철이 남긴 ‘관동팔경’도, 김시습의 시도,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과 단원 김홍도의 화첩 속에 그려진 그림도 지금의 망양정을 노래하거나 그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옛 망양정 터가 더 풍류 넘치는 자리가 아닐까 싶은데, 가서 보면 대번에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망양정 터에다 현판 없이 정자를 지어놓았는데, 전깃줄이 어지럽게 지나가는 옛 망양정 터의 정취는 지금의 망양정에 대면 어림도 없다. 망양정에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내린 숙종 임금이 관동명승첩에 취해 지었다는 시도 지금의 망양루에서 읽는 게 훨씬 더 낫다. ‘ 골짜기 첩첩 둘러보니 구불구불 열렸고 /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았네 / 만약 바다를 술로 만들 수 있다면 / 어찌 다만 삼백 잔만 마시겠는가.’

울진이 가진 또 하나의 관동팔경인 월송정도 근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고려 때 처음 지어진 월송정은 본래 정자가 아니라 성의 문루였는데 지금의 자리에서 남서쪽으로 450m쯤 떨어져 있었다. 오래돼 퇴락해 사라져버린 월송정을 이 지역 출신 재일교포들이 찬조금을 거둬 지금의 자리에다 소박한 정자로 지었고, 그게 옛 모습과 너무 달라 1980년 격조 있게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월송정이다. 재일교포들은 본래 자리에다 정자를 세우려 했으나 오래전에 그 자리를 차지한 사찰이 나가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닷가 근처 땅을 골라 거기 정자를 지었다. 월송정 옛터에는 비포장도로 옆으로 자그마한 절집 선적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좀 초라해 보인다. 과거에 어땠을지는 몰라도, 바다와 가까운 지금의 월송정 자리가 정취로는 훨씬 더 근사하다는 얘기다. 역사적 의미는 빼놓고 말이다.

# 새 명소, 스카이레일·해중전망대

이즈음의 울진여행을 대표하는 건 ‘죽변해안 스카이레일’이다. 스카이레일이란 공중에다 설치한 레일을 따라 자동으로 운행하는 작은 모노레일 형태의 탈것. 죽변 등대 아래에서 후정해수욕장까지 4.8㎞ 해안에 기둥을 박고 5m 높이에 레일을 설치해 운행하고 있다.

겨울 바다 파도가 흰 포말로 부서지는 갯바위 해변을 배경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스카이레일을 보는 기분은 좀 복잡하다. 자연스러운 해안 풍경을 훼손하는 ‘과도한 개발’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마음이 쓰이지 않아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바다와 어우러지는 스카이레일의 모습이 근사하다. 성난 바다와 거친 갯바위 사이를 저렇게 가까이 딱 붙어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또 있을까. 스카이레일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가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인 ‘어부의 집’이다. 여기서 바다를 끼고 달리는 스카이레일을 본다면, 도무지 타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스카이레일이 좀 실망스러운 건, 전적으로 기대가 커서다. 개방감이 느껴지지 않아 바다와 가까이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어렵다. 발아래로 보석 같은 바다색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타서 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내부의 차체 마감도, 승차감도 그리 좋지 않다. 한 번 타본 사람이 또 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것 때문에 타지 않을 이유도 없다. 결론은 ‘한 번은 꼭 타봐야 한다’는 얘기다. 스카이레일의 선로는 지난해 개통 때부터 후정해수욕장까지 4.8㎞를 다 놓았지만, 운영상의 이유로 전체 구간의 절반이 조금 넘는 봉수항까지만 왕복 운행한다. 죽변에서 봉수항을 왕복하면 40분 남짓이 소요된다. 이용요금은 4인승인 차량을 대당 책정하는데 탑승객 숫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1, 2인이 탑승하면 대당 2만1000원, 3명이 타면 2만8000원, 4명이 타면 3만5000원을 받는다.

국립해양과학관의 해중전망대. 수심 6m 바닷속을 관찰할 수 있다.

후정해수욕장 북쪽 해변을 끼고 1045억 원을 들여 지은 국립해양과학관이 있다. 해양과학기술 등을 주로 전시하는 과학관에는 10개 주제로 각각 구성한 상설전시관과 함께 가상현실(VR) 체험관, 3면 영상관 등 첨단 시설을 갖췄다. 과학관의 인기 시설은 해중(海中)전망대다. 육지에서 400m쯤 떨어진 바다 위에 들어선 해중전망대는 8층 높이의 거대한 구조물인데 바다 아래 수심 6m의 바닷속을 볼 수 있다. 수시로 청소를 하고 있다는데도 유리창이 뿌옇게 흐려 시야가 좋지 않지만, 너울거리는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수족관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 골목을 걸으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다

이번에는 울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곳, 울진에는 이른 봄 피는 꽃 매화(梅花)에서 이름을 딴 ‘매화면’이 있다. 본래 원남면이었는데, 쇠락해가는 마을에 관광객을 불러들이고자 2015년 매화면으로 지명을 바꿨다. 매화면 소재지는 매화리다. 매화리는 이름처럼 봄이면 깊고 그윽한 매향(梅香)이 가득 차고, 마을을 관통하는 천변에는 홍매화가 가득 피어난다. 매화가 이만큼 핀 곳이야 다른 지역에도 많지만, 지명을 매화면으로 바꾼 것에서 읽을 수 있는 건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매화면 매화리는, 그런 마음으로 단장된 곳이다.

울진 매화면에는 ‘이현세 만화거리’가 있다. 마을 담벽에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 두 편의 만화를 그려 넣은 1㎞ 남짓한 골목이다.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벽화 마을이 만들어져 피로감마저 느껴질 정도지만, 이곳의 벽화는 다르다. 일단 극화 만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도 그렇고, 골목 전체를 한 작가의 작품으로 다 채웠다는 것도 그렇다. 만화도 몇 장면만 그려 넣은 게 아니라, 만화책 한 권 전체의 스토리를 한 장 한 장 뜯어 붙인 것처럼 이어붙여 그렸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매화중 담장 246m에 모두 245컷으로 그려졌다. 벽화는 만화책과 똑같이 지문도, 말풍선도 있다. 그러니 벽화를 보면서 천천히 골목을 걸으면 만화책 한 권을 다 읽게 된다.

매화리 골목에 만화가 그려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시작은 매화중 재학생 16명이 마을 작은 도서관 벽에 그린 소박한 벽화였다. 마을 단장을 위해 주민들이 칙칙한 도서관 벽면에 학생들에게 저마다 자신의 꿈을 벽에 그리게 했는데, 그게 뜻밖에 인기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마을 이장이 한수원 지원사업 모집에 마을 벽화사업을 신청했다가 덜컥 선정된 것. 지원 사업비 1억2500만 원을 받아놓고 ‘무얼 그릴까’ 고심하던 주민들은 만화작가 이현세를 떠올렸다.


# 만화공원·만화도서관, 만화열차까지

이현세 작가의 고향은 경북 포항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바로 여기 매화면이었다. 몇 달에 걸친 간곡한 설득 끝에 작품 사용권을 공식 승인받았다. 벽화는 모두 이현세 작가가 아니라 처남인 광고기획자이자 화가 안창회(63) 씨가 그렸다. 원작 만화책 그림을 빔프로젝터로 벽에 쏘아서 모사하듯 그려낸 그림은 원작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똑같은 톤이다. 선과 색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이렇게 공들여 그리다 보니 벽화작업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벽화 중에서 특히 눈길이 갔던 건, 골목 한쪽에다 이현세 작가가 ‘울진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만화책 속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좌판에 조개며 해산물을 잔뜩 벌여놓은 시장 아주머니 그림 옆에 이런 글이 있다. “어릴 때 성묘를 오면, 먼 길 끝에 언제나 죽변에서 쥐치물회 한 그릇을 먹었다. 쥐치물회 한 그릇에 아버지 냄새가 있다.” 그 옆 담벽의 울진의 포구 그림 옆에는 또 이런 글이 있다. “밤새워 그림을 그리다 기분 좋게 피곤해지면 수유리 새벽 골목을 두부장수 아저씨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울진의 시원한 물곰탕이 생각났다.” 서울 변두리 주택가에서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아버지와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는 만화가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글이다.

매화마을에는 만화 골목 말고도 볼 게 많다. 마을 한복판에는 만화공원이 있고, 누구나 들어가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만화도서관도 있다. 새마을호 기차 1량을 가져다가 이현세 만화 ‘남벌’을 주제로 한 카페로 만든 ‘남벌열차카페’도, 1970년대 부녀회에서 연탄을 팔아 모은 돈으로 건립한 공동목욕탕을 리모델링한 마을 역사관도, 십시일반 주민들이 모은 돈으로 복원한 80년 된 일본식 목조가옥도 있다. 환갑이 넘은 삼일 다방과 동해약포(약방), 양조장도 눈길을 붙잡는 곳이다.

■ 울진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코스

동해안 여행의 백미 중 하나가 푸른 바다를 끼고 달리며 즐기는 드라이브다. 울진에서 가장 근사한 해안드라이브코스는 망양정 아래 망양정 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기성항까지 이어지는 21㎞의 해안도로다. 이웃 삼척이나 영덕의 해안도로는 높고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지만, 이 구간의 해안도로는 길과 해수면의 높이 차이 없이 바다와 딱 붙어서 이어진다. 이 길에는 시선을 가리는 높은 담이나 철제 울타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