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글로벌 도시이다. 첨단문명이 작동하는 대도시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유지되고 있다. 평창동의 보현산신각이 그것이다. 이 산신각은 불교사찰의 부속 건물이 아니다. 산신 그 자체만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보현(普賢)이라는 이름은 북한산의 보현봉(普賢峰) 자락이 내려온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21세기에도 이 산신각은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 박물관 유물이 아니고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타지의 신봉자들에 의하여 아직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아직도 유지 보수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영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영험이 없으면 바로 퇴출되기 마련이다. 빌어서 민원사항이 성취되는 영험이야말로 21세기까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그 존재가 유지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 영험이 조선시대 유교의 멸시와 탄압, 그리고 현대 ‘과학종교’의 탄압에도 꿋꿋이 저항하고 있다. 대개 산신각은 불교사찰에 빌붙어서 생명을 유지한다. 불교라는 전통 있는 브랜드에 기생하고 있는 셈이다. 산신 독자 브랜드로는 힘들다. 그러나 서울의 고급 주택가인 평창동에 있는 산신각은 사찰의 도움 없이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니 아주 귀중한 유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산신각의 영험을 분석해 보자. 우선 바위이다. 북한산 자체가 영발 화강암이다. 그중에서 보현봉은 그 기세가 날카로우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준다. 북한산의 옛 이름이 삼각산(三角山) 아닌가. 보현봉은 그 삼각산의 카리스마를 느끼게 해주는 뿔(角)의 기운을 내뿜는 봉우리이다. 그 보현봉의 바위 맥이 구불구불 내려와서 맺힌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장소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포인트는 그 바위들이 포진한 형국이다. 어떤 지점에 바위들이 솟아 있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산신각 바로 뒤편에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있다. 거의 집채만 하다. 이 집채만 한 바위가 인풋(in put)이 되는 역할을 한다. 보현봉 자기장의 인풋은 이 바위가 맡고 있는 역할이다. 인풋이 없으면 힘이 약하다. 인풋은 전기 콘센트와 같은 기능을 하기도 한다. 콘센트가 없으면 플러그를 꽂을 수 없다. 기도발을 일으키는 플러그를 어디에다 꽂아야 할 것인가? 콘센트가 있어야 꽂지. 그 콘센트 바위가 잘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다음에 살펴보아야 할 대목은 산신각이 깔고 앉아 있는 바닥이다. 이 바닥도 암반으로 되어 있다. 암반이어야만 압력솥에 해당한다. 밥을 쪄 준다. 암반에 있으면 기운이 쩌렁쩌렁 올라온다. 보통 사람도 이런 암반에서 고스톱을 치거나 바둑을 두면 기운이 들어온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는 지점들은 거의 대부분 바위 암반인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암반에서 잠을 자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암반의 자기장이 세게 흐르는 지점에서 잠을 자다가 입이 돌아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소위 ‘구안와사’라는 현상이다. 이 산신각은 바닥도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합격이다.
그다음에 볼 사항은 산신각 정면에 바위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에 바위는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준다. 에너지가 새는 현상을 차단해 주는 역할이다. 이 차단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지면 더욱 좋다. 한 번 체크하는 것보다 두 번, 세 번 체크하면 기운이 더 축적이 된다. 산신각 바로 앞에 바위가 하나 있고, 조금 더 떨어진 지점에 집채보다 큰 바위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더 멀리는 청와대 뒷산이 막아 주고 있다. 삼중으로 터의 에너지를 막아 주면서 기운을 머금고 있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이 산신각은 인풋 바위도 잘 되어 있고, 바닥도 암반이고, 앞으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주는 체크 바위도 이중인 데다가 멀리 청와대 뒷산이 삼중으로 막아 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명품 산신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지점은 바위굴이다. 산신각 앞으로 커다란 체크 바위가 있는데, 그 밑바닥으로 자연굴이 하나 있다. 굴로 들어가는 높이가 1m나 될까. 바닥에 거의 앉다시피 해서 들어가야 하는 굴이 있다. 여기에 촛불도 켜 있는 걸로 보아서 상당히 효험이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자연동굴이 산신각보다 더 오래된 기도터일 수도 있다. 이 굴에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었고, 그 소문이 나면서부터 뒤쪽으로 산신각 건물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커다란 바위 밑에 있는 자연동굴이야말로 최적의 기도처이기 때문이다. 원시불교에서도 사찰이라는 형식을 갖춘 건물이 있기 전에는 대개 자연동굴에서 명상을 하거나 수행을 하였다. 이 동굴 수행처를 가리켜 혈사(穴寺)라고 부른다. 구멍 혈(穴) 자이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이 대표적이다. 부탄에 가면 그 유명한 호랑이 사찰도 자연동굴에 조성된 절이다. 동굴에서 효험이 생기니까 그 동굴 앞에다가 건물을 올린 것이다. 경주 석굴암이 이런 사례이다. 자연동굴에다가 인공을 가미한 형태이다. 영지순례에서 다룬 설악산의 흔들바위 앞에 있는 동굴법당인 계조암도 자연동굴이다. 다른 데서 100일 기도해야 얻는 효험을 이러한 자연동굴에서 하면 10일 만에 성취하는 수가 있다. 그만큼 압력이 높은 압력밥솥 기도처이다.
보현산신각 앞에 있는 이 자연동굴 기도처는 서울에 살면서 돈에 시달리고, 질병에 시달리고,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조직에서 압박받고, 법적인 소송에 시달린 서민들에게 실낱같은 탈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 어느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없는 일반 민초들이 최후로 의지할 수 있는 탈출구는 이런 자연동굴 기도처이다.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깊은 강물이 앞을 가로막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 나간단 말인가? 초자연적인 원시신앙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의 제도권 종교가 해결의 실마리를 주면 제도권으로 가야 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민초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신앙이 바로 이런 산신각의 동굴 신앙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 산신각이 할아버지 산신각이고, 그 옆에 할머니 산신각이 있다는 점이다. 부부의 세계이다. 할머니 산신각 터는 좀 더 부드럽다. 평상시에 기도를 할 때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 터가 더 끌린다. 온화한 맛이 풍기는 터이니까 말이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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