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겨울 복판 남도의 섬… 가는 해를 재촉하는 ‘애기동백 붉은 절정’

醉月 2022. 12. 23. 17:09

■ 박경일기자의 여행 - 전남 신안의 섬… 압해도·암태도·자은도·팔금도·안좌도

압해도 ‘천사섬 분재정원’
산다화 2만여 그루 군락지
겨울 추위 시작되며 ‘만개’
실내온실엔 ‘2000살 주목’
힘찬 기운에 영험함이 물씬
‘저녁노을미술관’엔 낭만이

천사대교 건너 네개의 섬
섬 전체가 백사장인 자은도
아늑한 해변서 ‘조용한 휴식’
암태도 승봉산 바다조망 일품
‘추상미술’ 김환기 고향 안좌도
내년 하반기엔 ‘플로팅 뮤지엄’


신안=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기습적인 한파와 폭설로 온통 세상이 짱짱하게 얼어붙었습니다. 한겨울에도 초록 덩굴을 휘감은 늘 푸른 상록림이 자라는 남도의 섬도 이번 추위를 비껴가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어디 차가운 직선의 도시만 하겠습니까. 남도의 섬사람들은 ‘춥다 춥다’ 했지만, 더 추운 북쪽에서 내려간 여행자에게 섬은 한결 온화했습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전남 신안의 섬 여행을 제안합니다. 목적지는 압해도를 딛고 천사대교를 건너 만나게 되는 암태도와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입니다. 눈 속에 만개한 붉은 산다화를 보고, 작은 미술관에서 바다로 지는 노을도 보고, 텅 빈 너른 백사장을 산책하고, 근사한 리조트에서 따스하고 안온한 휴식을 즐기고…. 겨울에도 남도의 섬에서는 얼마나 할 게 많은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겁니다.



# 그 섬에 산다화 붉게 피어나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만개하는 꽃이 있다. 눈밭에서 뜨거운 선홍색으로 피는 ‘산다화(山茶花)’다. 한자 이름을 풀면 ‘산에서 피는 차(茶)꽃’이다. ‘애기 동백’이라고도 부르는 건 ‘꽃이 작아서’라는데 선홍색 겹꽃잎을 치렁치렁 매단 산다화는, 절대 작은 꽃이 아니다. 홑꽃잎으로 피는 동백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크다. 산다화는 동백의 한 종류지만, 우리가 익히 봐온 ‘비장하게 모가지가 뚝 떨어지며 지는’ 그런 동백과는 좀 다르다. 겹꽃잎이 한 장 한 장 분분히 날리며 진다. 낙화 때면 산다화 나무 아래가 분분히 떨어진 꽃잎들로 온통 붉게 물든다. 꽃도 이르다. 홑꽃잎의 동백이 겨울의 끄트머리쯤 핀다면, 산다화는 혹한이 시작될 때쯤에 절정을 이룬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전남 신안의 압해도에는 지금 산다화가 군락을 이뤄 피고 있다. 압해도는 목포에서 압해대교만 건너가면 금세 닿는 섬. 신안의 섬들은 가까운 순서대로 하나둘 연륙교가 놓여 육지가 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육지와 이어진 섬이 바로 여기 압해도다. 압해도는 신안의 서남해안 섬으로 건너가는 첫 징검다리다. 암태도와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그리고 거기 딸린 부속 섬으로 건너가려면 천사대교로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 천사대교는 압해도에서 암태도까지 이어진 다리이니 무조건 압해도를 딛고 가야 한다.

압해도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천사대교가 놓이기 전, 그러니까 ‘압해도까지만’ 다리가 놓였을 때다. 그 무렵 일대 섬으로 건너가려는 배는 모두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출발했다. 배를 따라 사람들이 들어왔다. 안개며 바람에 배가 끊기기라도 할라치면 섬사람들은 꼼짝없이 압해도에서 발이 묶여 먹고 잤다. 천사대교를 건너 훌쩍 섬으로 건너가게 된 지금이야, 압해도는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풍경일 따름이다. 다리가 놓여서 주목받던 섬이, 또 다른 다리가 놓이면서 관심 밖으로 멀어진 셈이다. 지금은 압해도가 섬이었다는 것조차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 붉은 꽃잎을 토하며 절정으로 향하다

압해도에 산다화가 군락을 이뤄 피어난 곳은 ‘천사섬 분재정원’이다. 13만㎡(3만9000여 평)의 부지에 국내 최대 산다화 군락지를 비롯해 야생화정원이 있고 수목원, 산림욕장, 온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기증받은 분재를 전시하는 분재기념관도 따로 있고, 낙조를 볼 수 있는 테라스와 북카페를 가진 낭만적인 미술관도 있다.

분재정원 구릉의 한쪽 사면에는 지금 산다화 붉은 꽃으로 아예 사태가 났다. 나무마다 발치에 토하듯 붉은 꽃잎을 우수수 쏟아놓으면서 산다화는 절정으로 치닫는 중이다. 만개에 때맞춰 오늘 1월 말까지 ‘섬 겨울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라 해봐야 작은 먹거리 판매장이 들어서는 것 말고는 뭐 별다른 게 없지만, 저 스스로 불붙어 꽃피우는 산다화만으로 충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군락지의 산다화는 모두 2만여 그루에 달한다. 이 나무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면 얼추 4000만 송이다. 홍등을 켠 듯 양쪽으로 온통 붉은 꽃을 매달고 있는 산다화 사이로 오솔길이 있다. ‘갈 지(之)’ 자로 구릉을 오르는 2.5㎞ 남짓의 ‘애기동백 탐방로 코스’다.산다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눈 내린 직후. 흰 눈과 붉은 꽃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남쪽이라 겨울에도 따뜻한 신안은 눈이 적다. 분재정원에 제설기를 가져다 놓은 이유다. 겨울날 이른 아침이면 탐방로 들머리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탐방로에 문정희 시인의 시가 새겨있다. 제목은 ‘동백’.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 가장 눈부신 꽃은 /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모가지째 뚝 떨어지는 동백을 노래한 시였을 텐데 산다화 앞에서 읽어도, 마찬가지로 비장한 느낌이 선명하다.

 압해도 천사섬 분재정원의 온실에 전시된 수령 2000년 된 주목 분재. 기이하게 가지를 뒤튼 나무에서 귀기가 느껴진다.



# 2000살 먹은 분재의 힘찬 기운

산다화 군락지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전망대와 카페가 있다. 전망대라고 해야 컨테이너 부스를 쌓아 만든 것이고, 카페도 실내에 커피 자판기를 가져다 놓은 정도지만 거기서 보는 풍경이 제법 훌륭하다. 혹한의 겨울날에 이렇게 붉은 꽃 무더기를 볼 수 있다니. 고개를 들면 저 아래로 김 양식 지주를 박아놓은 다도해 풍경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분재정원 실내온실에는 1500년 된 주목으로 만든 분재가 있다. 1500년 된 나무를 분재로 만들어 옮겨놓은 세월도 45년이다. 기이하게 둥치를 뒤틀며 자라는 모습에서 영험함이 물씬 느껴진다. 나무에 매달아 놓은 관리표에 적어놓은 가격이 자그마치 ‘10억 원’. 실제 거래되는 가격이 10억 원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귀하다는 뜻일 테다. 전시장 바깥 온실에는 이것보다 더 오래된 2000살 된 주목 분재가 있다. 생육관리를 위해 반투명온실 안에 두어서 관람객은 아쉽지만 온실 바깥에서 봐야 한다. 이 주목은 크기도 클뿐더러 나무가 뿜어내는 힘찬 기운도 강렬하다. 1500살에 10억 원을 매겼다면, 2000살 주목은 대체 얼마나 귀한 걸까.

분재정원에 갔다면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저녁노을미술관’은 빠뜨릴 리 없다. ‘저녁노을’이란 미술관 이름을 보고도 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미술관 한쪽에는 아기자기하지는 않지만 서재 느낌의 카페가 있다. 카페 앞 테라스에서는 신안의 바다 너머로 지는 낙조를 볼 수 있다. 창밖의 바다를 내다보며 아늑하게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미술관에서는 지금 축제에 맞춰 ‘겨울 풍경 그림전시회’를 열고 있다. 신안군이 보유한 미술작품 중에서 겨울을 주제로 한 것들을 걸었다. 겨울에 섬에서 미술관이라니, 그 미술관에 걸린 겨울 그림이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자은도 겨울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하다. 섬 전체를 뒤덮다시피 한 대파밭 때문이다. 전남 신안은 국내 최대의 겨울 대파 산지. 우리가 겨울에 먹는 대파의 70%가 신안에서 난다. 총생산량은 임자도가 더 많지만,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따지면 자은도가 압도적이다.



# 신안이 새로운 명소를 만드는 방법

전남 신안은 행정구역 전체가 섬이다. 섬이 ‘비(非)일상의 특별한 공간’인 건 맞지만, 그건 육지와 비교했을 때 얘기. 섬과 섬은 사실 크게 다를 게 없다. 그것도 이웃한 섬이라면 더 그렇다. 관광에서 섬의 미래를 찾으려는 신안은, 그게 고민이었으리라. 그래서 ‘퍼플섬’처럼 섬에 색을 입히기도 했고, 섬에다 작은 예배당을 짓고 순례길을 만들기도 했다.

섬을 서로 다르게 만들려면 섬마다 무언가 다른 걸 짓거나 들여야 하는데 문제는 비용이다. 그걸 신안은 ‘기부’로 풀어냈다. 신안의 섬에 들어선 전시관이나 기념관 등은 대부분 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압해도의 분재정원만 해도 그렇다. 전시관 건물 등의 인프라 비용도 그리 적게 드는 건 아니지만,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건 그 안에 들어갈 콘텐츠다. 분재정원의 분재를 모두 돈을 주고 사서 채워 넣었다면 행정이 감당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신안은 기증으로 해결했다. 주제를 정한 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건립 자문을 맡기고 개관 준비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여 작품을 기부받는 경우도 있었고, 이러저러한 인연이 있는 전문가들에게 아예 기부를 전제로 기념관이나 전시장 개장 등을 제안해 성사시킨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천사섬 분재정원의 분재전시관은 바로 이런 식으로 최병철 효림식물연구원장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분재전시관이 지어지면서 최 원장은 분재 작품과 도자기, 자료 등 8800여 점을 기증했다. 자은도의 수석미술관이나 수석 정원, 세계조개박물관 등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신안에 볼거리가 자꾸 생기고 있는 건 행정의 이런 적극적 태도가 비결이다. 여기에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관광명소가 잇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명소로 떠오른 ‘퍼플섬’(박지도·반월도)도 그렇고, 기점·소악도에 12개 작은 예배당을 지어 만든 ‘섬티아고 순례길’도 그렇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기념사진 명소가 된 암태도 기동삼거리의 ‘동백 파마머리’ 벽화도, 자은도 유각마을 담장의 ‘할머니 벽화’도 비슷한 경우다.

 여행자들의 기념사진 명소로 너무나 유명해진 암태도 기동삼거리의 ‘동백 파마머리’ 벽화.



# 다리 건너가는 섬에 명소가 줄줄이

신안의 섬 중에서 천사대교를 건너가서 닿는 네 개의 섬인 암태도와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에서 겨울에 가볼 만한 명소를 골라보자. 우선 암태도에는 매향비가 있다. 갯가에 묻은 향나무가 1000년 뒤에 떠오르면 그 나무로 향불을 피워 중생을 구원해줄 미륵을 부를 수 있다고 믿었던 종교의식의 전말을 기록한 비석이다. 실낱같은 내세의 희망을 찾았던 섬사람들이 겪었을 당대의 지독한 고난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

가거도의 독실산에 이어 신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자은도의 두봉산이나, 암태도의 승봉산에서 보는 바다 조망도 빼놓을 수 없다. 발품을 좀 팔아야 하지만 섬 정상에서 마주하는 다도해 경관은 그 수고의 대가를 넘어선다. 자은도 서쪽 끝에는 분계해수욕장이 있다. 일대 섬을 통틀어 가장 아늑한 해변이다. 고운 모래 해변 뒤쪽으로 펼쳐지는 아름드리 솔숲이 있는데, 자은도 명물 중 하나인 ‘여인송(女人松)’이 여기 있다. 나무는 거꾸로 선 여자의 하반신을 똑 닮았다.

자은도 서북쪽 양산해변의 ‘1004뮤지엄파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 새우란전시관, 세계조개박물관, 신안자생식물전시관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입장료가 좀 비싸다는 관광객들의 불만이 있지만 워낙 공들여 조성한 곳이어서 신안군이 자존심처럼 ‘입장료 1만 원’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관도 전시관이지만, 백사장 뒤쪽으로 조성한 바다 해양 숲 공원이 특히 근사하다. 축구장 70개 크기의 거대한 부지에다 팽나무정원, 자귀나무정원, 달빛정원 등 수많은 주제의 정원을 만들어 다양한 나무를 심고 숲을 다듬었다. 숲 너머가 바로 양산해변의 백사장이라 독특한 느낌이다. 겨울에 초록의 기운이 남아있다는 것도 그렇고, 바다를 끼고 있는 것도 그렇다.

# 자은도의 극적 명소 ‘호텔과 리조트’

천사대교를 건너가서 닿을 수 있는 섬 중에서 가장 극적인 명소를 꼽으라면, 단연 자은도의 ‘라마다프라자호텔 & 씨원리조트’다. 관광지 호텔이나 리조트가 무슨 명소가 되느냐고 묻겠지만, 예전의 자은도 풍경을 떠올린다면 변변한 여관방조차 없던 외딴섬에 이런 훌륭한 리조트가 들어섰다는 건, 말 그대로 ‘기적과 같은 일’이다. 자은도를 찾는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겨울에도 이런 수준의 호텔과 리조트가 출혈을 감수하고 모든 시설을 다 가동하며 영업하고 있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자은도는 천사대교가 놓여 육지가 된 네 개의 섬 중에서 가장 눈길이 쏠린 섬이다.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수욕장만으로도 자은도는 특별하다. 섬 전체가 백사장이라 할 수 있는 자은도에서도 최고로 치는 해변이 백길해수욕장이다. 호텔 & 리조트는 백길해수욕장에 있다. 지난 6월에 문을 열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여행 비수기라 손님이 적은 편이어서, ‘수비적 운영’을 할 법한데도 호텔은 모든 시설을 다 가동한다. 비수기인 지금 가도 만족도가 높은 이유다.

리조트는 시설만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호텔 내부 곳곳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해 예술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이남 미디어아트 작가가 당대의 고전 명화를 디지털로 구현해낸 작품들이다. 호텔 로비에는 인상주의 쇠라의 두 작품을 하나로 결합해 팝적인 요소를 이용해 표현한 작품 ‘크로스오버 쇠라’가 있고,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작품이 있다. 대형 모니터를 수직으로 세워 폭포와 꽃, 빛이 쏟아지는 형상을 표현한 작품 ‘은혜의 폭포’나 수평의 산수풍경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디지털 8폭 병풍’도 근사하다. 여름 피서철에 휴가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라는 건 더 말할 나위 없지만, 지금 같은 겨울에도 조용한 휴식이 필요하다면 여기를 대체할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서 쉬고 싶다면, 바로 여기다.

# ‘물에 뜬’ 미술관이 섬에 만들어진다

신안에는 기왕의 명소도 있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명소들도 줄을 서듯 있다. 만들기만 해도 곧 명소가 될 게 의심되지 않는 곳들이다. 그런 장소가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천사대교로 건너갈 수 있는 섬 안좌도에 짓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다. 개관 예정일은 내년 하반기. 완공까지는 1년 가까이 남았음에도 벌써 기대를 갖게 되는 건 ‘플로팅’, 그러니까 ‘물에 떠 있는’ 미술관이라는 점 때문이다. 겉모양만 특별한 건 아니다. 이 미술관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 김환기 화백을 기린다.

안좌도는 김환기가 나고 자란 고향이다. 읍동마을에 그가 나고 자란 고택이 보존돼 있다. 플로팅 뮤지엄은 고택에서 400m쯤 더 들어간 곳에 있는 신촌 저수지 수면 위에 띄워진다. 미술관은 신안의 섬과 천일염을 모티브로 설계한 상자 형태의 전시실 5개 동을 비롯해 수장고, 사무실 등 모두 7동으로 이뤄졌다. 이미 전시실 몇 개의 외관을 완성해서 저수지 수면에 띄워놓았는데, 물에 띄워진 반투명 느낌의 독특한 모습만으로 완공 이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섬으로 건너가는 ‘무한의 다리’가 놓인 자은도에는 ‘인피니또 뮤지엄’이, 도초도와 비금도에는 ‘대지의 문화시설’과 ‘바다의 문화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신의도에 문을 열 동아시아 인권평화미술관도 역시 기대되는 곳이다. 아직은 계약 추진 과정이고 애초 생각대로 될 수 있을지도 확실치는 않지만, 세계적인 건축계 거장들에게 미술관 설계를 맡기기로 했다. 협상이 다 마무리되지 않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접촉 중인 해외 건축가 중에는 깜짝 놀랄만한 이름도 있었다. 퍼플섬이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로부터 ‘세계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됐던 것처럼, 낙도(落島) 취급을 받던 작은 섬에 당대 최고 건축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들어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 자은도의 해넘이길 걷기

10년 전쯤 걷기 좋은 해안 길을 골라 해양수산부가 ‘해안누리길’이란 이름을 달아줬다. 이렇게 골라낸 해안누리길이 전국에 52개 코스가 있다. 그중 하나가 자은도에 있다. 자은면 한운리와 송산리 일대를 바다를 끼고 잇는 12㎞ 남짓의 해안 길이다. 걷는 내내 낙조를 볼 수 있는 코스여서 ‘해넘이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의 시간에 걷는다면 딱 좋을 곳이다. 바닷바람이 강하거나 추운 날만 아니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