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 조용헌의 영지 순례 ]여수 향일암,이곳에 가면 고민이 사라진다

醉月 2022. 12. 8. 17:42

무속은 모든 종교의 원형이다. 2만~3만년 전의 원시상태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속이 체계를 갖추고 이론을 정비하면 종교가 된다. 종교의 원료는 무속이다. 무속은 못 배우고 투박하지만 파워가 있다. 제도화된 종교는 영적 파워가 약해진다. 종교가 제도화되고 체계화될수록 영발은 사라진다. 영발이 없는 종교는 식은 감자와 같다. 제도화는 껍데기만 남게 만들 수 있다. 무속은 거친 영발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물질세계 너머의 그 어떤 힘을 느끼게 해준다. 무속을 인수분해하면 세 가지 갈래가 있다. 한민족이 1만년 전부터 신봉해왔던 무속의 삼지창이 칠성, 용왕, 산신이다. 칠성은 하늘의 별을 숭배하는 전통이다. 용왕은 바다와 강, 호수의 신을 가리킨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의 올혼섬이 이 용왕 신앙의 오래된 근거지라고 알려져 있다.

산신은 산악숭배 전통이다. 유대인 모세가 시내산에 가서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한민족의 전통에서 보자면 산신과에 속한다. 영발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 종류의 계보에서 어느 쪽에 소질이 있는가를 짐작해야 한다. 칠성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칠성기도를 해야 한다. 물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자기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용왕이 맞다. 사막이 많은 아랍 민족들은 칠성파가 많고, 배를 타고 다니며 해상무역을 했던 서유럽은 용왕파가 많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나 중국, 티베트처럼 산이 많은 동네는 산신과가 적합하다. 한국 사람들은 계곡에 들어가서 소나무 옆 바위에 앉아 휴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양 산수화는 대개 산속에 들어가서 쉬는 구도이다. 이에 비해 서양의 담배 선전하는 광고를 보면 요트 타고 바다에 나가거나 해안가에서 흰색 의자에 누워 다리 뻗고 쉬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서양은 바다를 보면 휴식을 느끼는 문화이다. 산신과와는 좀 다르다.

여수 향일암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절이다. 원래는 조그만 암자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규모는 갖춘 절이다. 향일암의 장점은 바다와 바위이다. 바다에서 수기를 받고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서 화기를 받는다. 수화쌍포(水火雙浦)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명당이다. 특히 바다가 압권이다. 남해안 일대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두 군데의 영지는 남해 보리암과 여수 향일암이다. 남해 보리암은 소문난 기도처이다. 거기에 비해 여수 향일암은 덜 알려져 있지만 숨은 고단자가 머무르기에 적합한 도량이 아닐 수 없다.

향일암의 최대 장점은 호수 같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일암 법당 앞에 놓여 있는 푸른 바다는 파도가 없다. 거의 호수같이 잔잔하다. 거기에 햇볕이 반사된다. 바다의 물 위로 은색의 햇볕이 반사되는 풍경은 몽환적인 풍경이다. 파도가 거칠면 햇볕의 반사를 감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파도가 거의 없이 호수 같은 바다에 은비늘 같은 햇볕이 반사되는 풍경이 연출된다. 이 바다를 보면서 근심 걱정 많은 범부중생들은 어떤 느낌을 갖는다. 그 어떤 느낌을 말로 표현하면 무엇인가. ‘무심(無心)’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 시간이 정지된 마음’. 시간이 정지된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멈춰버린 시간이 주는 절대 평화가 있다. 그놈의 시곗바늘이 째깍째깍 돌아가면 불안하다.

향일암 법당 앞의 바다는 마치 커다란 어항 속에 파란 물을 담아 놓은 것 같다. 그 평화와 고요. 돈에 시달리고, 인간들로부터 사기당해 시달리고, 조직에서 버림받은 월급쟁이의 심정을 달래줄 수 있는 풍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극한 우울 상태에서는 인간의 말이 필요없다.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풍광만이 인간을 달래줄 수 있다. 그 풍광, 그곳을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

바다의 용왕은 물로써 인간을 달래주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향일암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저 앞 바다 밑에 용궁이 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바다 밑에 용궁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용궁도 아무 데나 있는 게 아니다. 있을 만한 곳에 있어야 한다. 그 용궁의 최적 후보지가 바로 향일암 법당 앞의 바다였던 것이다.


호수 같은 바다의 위로

평화로운 바다는 신령함을 선사한다. 무심을 느끼게 하는 그 바다를 보고서야 ‘여수(麗水)’라는 지명이 이해가 되었다. 왜 ‘고울 여(麗)’를 써서 지명을 지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이 법당 앞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며 그 의문이 풀렸다. 너무나 고운 바다였던 것이다. 그 고운 바다를 지금 사람도 느끼는데, 천년 전 사람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인간사 생로병사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감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변하지 않는 셈이다.

잔잔한 바다가 사람을 침잠하게 만든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스파크도 필요하다. 인간사 음양이 모두 작동한다. 불대포를 쏘아서 에너지를 격발시키는 무기가 바로 바위 아닌가. 물과 불이 만나면 충돌하거나 아니면 묘용을 일으킨다. 주역의 수화기제(水火旣濟) 괘. 물이 위에 있고 불이 밑에 있으면 잘 버무려졌다는 의미의 기제(旣濟)로 풀이한다. 결제가 이미 되었으면 ‘기제’이다. 결제가 안 되었으면 ‘미제(未濟)’다. 주역에서는 화수미제(火水未濟) 괘가 있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밑에 있으면 ‘미제’로 풀이한다.

향일암 터는 바다 옆의 바위 언덕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형국이다. 바위가 많다. 바위 절벽을 깔고 앉아 있는 터라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바위 기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기운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 기운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바위 암벽군이 절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즉 물기운과 불기운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걸 미제로 만들 것인가, 기제로 만들 것인가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 터에서 사는 수행자나 도인의 내공이 좌우한다. 내공이 없으면 충돌하고 내공이 있으면 조화를 이룬다.

그 내공이란 무엇인가? 겸손함과 평정심이 아닌가 싶다. 수행자가 바위의 불기운을 많이 받으면 공격적인 기질로 바뀌게 된다. 그냥 넘어갈 일도 넘어가지 않고 화를 낼 수 있다. 이걸 경계해야 한다. 바위 기운의 영향이다. 좋은 점은 추진력과 자신감을 준다. 바위는 밀어붙이는 힘을 준다. 아울러 뼛속까지 에너지를 채워 준다. 바위산에 사는 도사는 이 불기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용량이 커야 되는 것이다. 아무리 불이 들어오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자기를 숙이는 겸손함을 유지하면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가 된다. 불을 못 다루면 사고를 낸다. 심하면 살인사건도 난다. 설악산 바위가 많은 터에서 간혹 살인사건이 나는 것은 이러한 불기운을 컨트롤하지 못한 불상사이다. 이런 불기운을 잡아 주는 역할이 물기운이다. 물기운이 많은 터에 살다보면 잘못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다. 자신감도 없어지고 내면세계로 지나치게 침잠할 수 있다. 저녁 노을이 좋은, 석양이 보이는 바닷가에 오래 살면 대개 우울증이 오는 게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바다나 호수를 마주보는 터에 있으면 치밀어오른 불기운을 잡아준다. 열받은 머리를 식혀주는 효과라고나 할까.


거북이 등에 올라탄 절

향일암 대웅전 법당에서 좌측 바위 언덕으로 약간 올라가면 관음전이 나온다. 그런데 좌측 바위 언덕이 흥미롭다. 바위 틈새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바위 틈새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도록 자연스럽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 석문(石門)이다. 석문은 중요하다. 에너지를 차단하고 공간을 구획 지어주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석문 안쪽의 세계는 성스러운 공간이고, 석문 바깥쪽의 공간과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중국에 가면 도사들이 공부하던 도관들이 대개 이런 석문을 끼고 있다. 석문을 지나가면서 에너지 정화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석문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수행터의 급수를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고대의 수행터는 석문 안에 있는 바위 동굴을 최고로 꼽았다. 이것이 혈사(穴寺)의 유래이다.

향일암 대웅전에서 위쪽의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중간 100m 정도가 구불구불하면서 비좁은 바위 석문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원시 도사들의 수행터를 연상케 한다. 이점도 아주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는 향일암 터 전체가 거북이 등에 올라앉아 있는 형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향일암을 영구암(靈龜庵)이라고도 불렀다. 신령스러운 거북이 위에 올라타 있는 절인 것이다. 굳이 문자로 표현하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물로 들어가는 영구입수(靈龜入水) 터이다. 법당 앞에서 언덕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거북이 머리가 보인다. 거북이 머리가 바다 쪽으로 뻗어 있다. 주지스님이 필자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저 거북이 이마 위에다 근래에 새로 지은 군 시설물이 보이죠? 아주 보기에 흉합니다. 군인들이 머무르는 숙소 건물이 거북이 이마 위에 있는 격입니다. 절에 오는 사람마다 저 건물이 보기 싫다고 합니다. 저 건물 좀 어떻게 이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예불할 때마다 부처님에게 저거 좀 치워달라고 염원하고 있습니다.” 명당의 신령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건물을 짓는 게 아니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