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①] ‘골동품’ 국정원법, 이대로 좋은가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첫째 주까지 국내 언론들에서는 ‘국가정보원 관련 법’을 성토하는 야당과 좌파단체의 주장을 실었다. 특히 좌파 언론들은 정작 법안의 내용은 설명하지 않고, ‘군사독재정권으로의 회귀’ ‘공안탄압 서막 알린다’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중앙일간지에서는 이 문제를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 좌파들을 떨게 한 국정원 관련 법안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며, 왜 법안이 필요한지, 또 국정원의 당면과제는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편집자 주>
국가정보원 관련법의 실상
지난 10월 말부터 11월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국정원 관련 법은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국가정보원직원법>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 모두 6개다.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조직과 기능, 역할 등에 대해 규정하는 법률로 『국외정보 및 국가안보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라는 국정원의 직무를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중대한 재난과 위기를 예방, 관리하는데 필요한 정보,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 산업기술유출에 대한 보안정보』『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지역 및 이를 취급 또는 출입하는 자에 대한 보안업무와 국가정보통신망에 대한 사이버 안전업무』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현행 국가정보원법은 지난 1961년에 제정된 이래 13차례에 걸쳐 개정됐으나 1960~1970년대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직원법>은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공채가 어려운 특수 분야 전문가 영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전문관’ 제도를 신설하는 것과 국정원 임용대상자의 애국심, 성실성, 보안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신원조사를 실시하는 것, 그리고 현재 업무 연속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4~5급 직원의 ‘계급 정년’을 각각 1년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은 1962년 7월 만든 <비밀보호규칙(대법원규칙 제130호)>을 45년 넘게 사용해 오면서 조금씩 변경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조차 비밀로 지정되는 등 문제가 늘어나자, 이를 현실에 맞게 바꾼 법이다. 특히 관료들의 편의에 따라 불필요하게 지정된 비밀은 아예 공개하고, 비밀 관리자를 명시하는 한편, 산업기밀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에는 이 법을 적용해 관리하는 등 현실에 맞춰 만든 법이다.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은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이다. 우리나라는 1981년 88올림픽에 대비해 만들어진 <국가대테러활동지침(대통령훈령 제47호)>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알 카에다나 제마 이슬라미야와 같은 다국적 테러단체의 위협으로부터 국내외의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대테러 활동이 어려워 국제정세와 우리 현실에 맞게 새로 만든 법이다.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도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국가기반시설 및 기간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만든 법으로 기존의 사이버안전센터 등을 개편해, 보다 강력한 국가사이버안전센터 등의 조직을 새로 만든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한성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으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국정원의 불법감청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가안전보장, 강력범죄 모의, 인신매매, 납치 등 이 법률에서 규정한 사안에 대해서만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 국가보안법폐지연대와 한국청년단체연합회가 여의도 국회 앞 거리에서 국가보안법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 발의된 국정원 관련법을 비난하는 세력들의 상당수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는 점은 주의깊게 볼 대목이다. |
좌파들의 ‘국정원 全知全能論’
이런 법률에 대해 좌파들의 반응은 난리도 아니다. 민노당 자주평화통일위원회는 <국가정보원법>에 대해 ‘국정원의 정치사찰은 물론이고 공작정치, 공안통치, 권한남용, 수사권을 이용한 인권침해 등 국정원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국정원법을 개악하는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행정공무원노조는 성명을 통해 ‘국가정보원을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로 되돌려 군부독재, 유신독재로 회귀하려는 시도’라고 혹평했다.
진보신당은 국정원 관련 법안들에 대해 ‘국정원이 최근 공안정국 조성으로 탄압을 일삼던 과거 독재정권시절의 위치를 되찾으려는 상황’이라고 주장했고, 민주당 또한 ‘이명박 정부가 사정정국,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과거 권위주의 시대 권부를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좌파 매체들도 이 법안을 맹비난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은 연일 이 법안들을 문제 삼으며 ‘70~80년대 공안정국으로의 회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에 동조하는 블로거들까지 ‘막걸리 보안법의 부활’ ‘新공안정국’ 등의 용어를 써 가며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좌파들의 반발이 포털 사이트에 퍼지자 보통의 네티즌 또한 막연히 ‘국정원이 새로운 빅 브라더’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 좌파들의 주장은 사실 ‘국정원 전지전능론(全知全能論)’에 근거하고 있다. 70~80년대 운동권들은 소위 ‘투쟁’을 하면서 당시의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일종의 편집증을 갖게 된다. 자신들의 웬만한 활동을 모두 간파하고 있는 정보기관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탓인지 좌파 단체들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미국 정보기관과 함께 헐리우드식 첩보영화에 나오는 온갖 첨단장비(심지어는 수억 달러가 넘는 NGA의 첩보위성이나 NSA의 에셜런 시스템, FBI의 카니보어 시스템 등)를 동원, 자신을 항상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편집증에 빠져 있다. 때문에 이들 단체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자유, 인권’을 위해서는 정보기관이 그 기능을 상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인 CIA 본부의 모습. 버지니아州 랭글리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은 OSS의 후신으로 CIA를 만든 뒤 다양한 분야의 정보기관을 창설, 현재 15개의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Intelligence Military.com |
정보기관 관련법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국정원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좌파들의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지난 10년 남짓 사이에 국정원의 역량이 크게 약화·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정원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수억 달러짜리 첩보위성은 커녕 요원들의 활동비가 줄어 쩔쩔매는 상황이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정원에 칼을 댔다. 수백 명의 고참요원을 내보내고, 국내 정보파트의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반공정신이 투철하다고 판단되거나 특정지역 사람들은 지방으로 발령 내기도 했다. 또한 외환위기를 핑계로 해외활동을 통폐합하고, 사업비를 대폭 삭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 ‘국정원 전지전능론’과 ‘국정원 수구론’에 빠진 자들이 권력의 핵심부에 진출하면서, 국정원 내에는 국정원을 없애야 한다는 자들까지 끼어들게 된다. 그 결과 심지어는 활동내역의 비밀이 생명인 정보 요원의 활동을 신용카드 사용내역으로 감시하기까지 한다.
한편, 북한과 해외에 대한 정보력도 날이 갈수록 줄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책임자로 통일부 장관을 임명하고, 통일부 내에 별도의 정보본부를 만들면서, 국정원은 가장 특화된 분야라는 대북정보에서까지 통일부의 보조적 역할만 맡게 됐다. 해외정보 또한 파견나간 요원들의 숫자와 예산을 줄였다.
그 결과 국정원은 북한 핵 개발과 관련된 주요 정보를 입수하지 못해 한국 정부가 6자 회담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2007년 해외에서 여러 건의 자국민 납치가 벌어졌음에도 현지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같은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국정원과 관련된 법들이 거의 없다시피 해 집권세력이 마음대로 조직과 운영방식 등을 대폭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와 가장 대비되는 게 바로 미국이다. 2007년 가을 美국가정보국장실(DNI)에 내놓은 정보기관 관련 법령자료에 따르면 1947년 CIA를 설립하는 근거가 된 국가안보법을 비롯, 한 때 논란이 됐던 애국법, 중앙정보국법, 국토안보부법, 방첩활동강화법, 해외첩보활동법, 연방정보보호관리법, 사생활보호법, 비밀보호절차법, 정보공개법, 군사조치법, 미국 보호법 등의 법률과 함께 수많은 대통령령, 시행규정 등이 있다. 그 분량이 무려 680여 페이지에 달한다.
미국에 이렇게 많은, 정보기관 관련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보기관의 숫자가 우리에 비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정보기관의 임무와 역할, 활동가능범위 등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야만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한다’는 정보기관 본연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맞춰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 활동범위 등을 보다 합법적이고 현실적으로 바꾸기 위해 국정원 관련 법안들이 나온 것이다.
실제 국정원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 크게 약화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을 현대화하겠다는 법안으로 논란이 불거지는 지금, 국민들은 국정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물론 사람들마다 국정원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
보통 어린 학생일수록 국정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 직원은 모두 총을 들고 다닌다’ ‘무술 고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왠지 국정원 직원이 되면 멋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되면 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진다. ‘과연 어떤 직장일까’ ‘연봉은 얼마고 출퇴근 시간은 언제일까’ ‘어떤 시험을 칠까’하는 궁금증도 갖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언론 보도와 주변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를 토대로 국정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히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국정원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한편, 소위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지금도 국정원을 ‘권력의 개’ 정도로 취급하며 음모론에 심취한다.
이 같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나름대로 국정원을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시각에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어린 학생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해외 드라마, 영화에서 보듯 활발한 공작활동을 펼치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우리 정보기관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드라마,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요원들은 대부분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때문에 학생 시절에는 국정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 美CBS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 'Alias'. CIA 요원들의 활약을 그렸다. 초기 시즌에서는 남녀 간의 로맨스 보다는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CIA의 비밀 활동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제니퍼 가너는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CIA 채용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美CBS |
여기서 떠도는 이야기는 직원들 연봉에서부터 근무시간, 교육과정, 업무내용 등이다. 실제 기자가 관련 학원 강의를 듣고, 강사에게 경력을 물어본 결과 초급 정보장교로 전역한 사람, 신문기자였던 사람이 마치 국정원에 근무한 것처럼 강의하고 있었다. 국정원 입사요건도 단순 시험성적순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직장인, 특히 금융권과 대기업 근무자의 경우에는 연예계 루머 등 소위 ‘찌라시’형 정보를 이야기할 때 국정원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찌라시’ 생산과정에 검찰과 언론인, 정보요원이 참여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국정원이라는 이름이 풍기는 묘한 상상력과 신뢰성도 루머를 기정사실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여러 계층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상상력, 선입견 등이 모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둡고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권력을 가진 국정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국정원의 실상을 접한 사람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낡은 제도에 묶이고, 국정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력이 난도질하면서 그 역량이 크게 쇠퇴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에게 천대받은 국정원
그동안 현실에서 만난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은 총을 들고 있지도, 검은 선글라스를 끼지도 않았다. 우락부락한 근육질도 아니었다. 태도와 인상, 말투 등은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하다. 여기다 국정원 직원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두 번째로 충격을 받게 되는 게 이들이 권력에 대한 충성 보다는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와 안보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 작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단이 탈레반에 납치됐다.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사진의 '선글라스맨'과 동행, 세계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신원을 노출하지 말아야 하는 정보요원과 기관장이 세계 언론들과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두고 논란을 빚었다. |
직원과 오랫동안 만나며 조금 더 친분관계를 맺게 되면 이들의 어려움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알 수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정원 정상화’다. 지난 정권의 권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민주화 세력’들이 자신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근거로 어줍잖은 해외 사례를 들이대며 난도질하는 바람에 국정원의 역량은 크게 축소됐다.
당시 ‘민주화 세력’이 해외 일부 사례를 내세워 ‘투명성’을 갖추라며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해외 및 대북 정보, 방첩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그 결과 나중에는 해외에서 일이 생겨도 공작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가 하면, 대북 정보나 방첩 분야 요원들이 정치권의 강요에 따라 급조한 조직에 파견돼,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정치권의 입맛에 맞게 일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국정원의 정치중립이 아니라 거의 ‘국정원 죽이기’에 가까웠다.
또한 경력에도 문제가 없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어도 고위층에 밉보이는 바람에 진급이 누락돼 계급 정년에 묶여 그만두거나, 낙하산 고위직, 전문직을 빙자해 국정원에 들어온 ‘세력’들로 인해 한직에 머물다 그만 두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소위 ‘화이트’로 분류되는 공식파견 요원이 해외에서 원인불명의 병으로 급사했어도 정부가 신경을 써주기는커녕 오히려 별 일 아니라는 듯 취급하는 행태를 보였고, 분쟁지역에서 납치가 일어나도 주도적인 활동은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국정원의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해명은커녕 마치 자신들의 죄인 양 아무 변명도 하지 못했고, 수십 년 전의 일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도 ‘지금의 기관은 그 때의 기관과 사람도, 조직도 다르다’는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이런 사기 저하는 곧 전반적인 활동 위축으로 이어졌다. 해외는 물론 북핵과 중국 문제로 홍콩, 마카오처럼 국제 정보기관들의 각축장이 된 국내에서조차 그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그 사이 해외 정보기관과 국제 민간조사기관들의 국내 활동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불법세력들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국내 대형 조폭들은 일본, 중국 조폭과 결탁해 국내에서 사채, 불법도박, 환치기, 인신매매, 불법무기 유통 사업을 대규모로 벌이는가 하면, 다국적 테러조직, 국제마약조직들은 우리나라를 인력, 자금의 세탁기지로 활용했다.
▲ 한 국정원 대비학원의 홈페이지 화면. '국정원 사관학교, 2008년 ○명 합격'이라는 팝업(Pop up) 광고가 눈에 띈다. 이들의 개인정보는 과연 보호받을 수 있을까. |
‘국정원 ≒ 공기업’이라는 사교육 업자들
국정원이 신입사원을 공채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하지만 이 때는 국정원 직원을 선발함에 있어 출신학교나 학부성적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 임기응변, 판단력, 전공의 전문성 등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유명대학 출신도 있었지만, 특채를 통해 임용되는 경력직도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현장요원들이 주요 인력이었다.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이 흔들린 적도 있다. 좋은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들어온 분석관들이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현장요원 보고의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국정원 내부에 대한 간섭은 적어 인력 충원 등에서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소위 ‘개혁’이라는 이름의 난도질이 시작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대량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조직 내부의 규칙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이제는 ‘국정원≒언론사, 공기업’이라는 등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때문인지 최근에는 입사 경쟁률이 200 : 1에 육박할 정도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 개설돼 있는 ‘국정원 입사대비’ 카페에서는 다양한 정보가 공유된다. 그 곳에서는 출신학교, 학점, 영어공인점수 등 일명 ‘스펙’이 국정원 입사의 최고 요건이라고 믿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국정원에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 이는 정보가 부족한 학생 대부분이 고시학원의 국정원 대비반에서 강의를 듣거나 자료를 구하는데 이 곳 강사들이 ‘국정원도 공기업’이라며 업무와 근무시간, 급여 등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과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말을 믿는데서 비롯됐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학원에서는 국정원이 요구하는 정신(희생정신, 충성심)도 면접에서 쉽게 위장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국정원 입사지원자들에게 애국심이나 준법, 국가에 대한 희생 등은 한낱 허망한 구호로 들릴 뿐이다.
그 결과 최근 국정원 내부의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신규인력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국정원이 왜 존재하는지, 국정원 직원으로써의 생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니까, 돈 많이 받는 철밥통 공기업으로 생각하고 입사한 직원들에게 위험한 업무를 제대로 맡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보이는 국내 정보나 정보 분석 분야에는 지원자가 많은데, ‘국익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정보(특히 오지 활동), 대북 정보, 대테러, 조직범죄 및 마약 수사 분야에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정원 고참요원일수록 국정원의 미래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 직원이 바라는 국정원
이런 국정원의 현실을 보는 직원들의 마음도 착잡하다. 일부 직원들은 ‘앞으로 좋아질 거예요’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하지만, 다수는 조직의 앞날과 국익수호에 대해 걱정한다.
▲ 英해외정보국 SIS의 본부건물. SIS는 'MI6'로도 불린다. 정보기관을 가장 잘 운영하는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은 냉전시절에는 정보기관장의 이름, 얼굴 등 개인정보를 기밀로 취급했으나, 지금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조직을 현재에 맞게 바꿨다. 심지어 베일에 쌓여있다는 이스라엘 모사드조차도 온라인 채용을 하고 있을만큼 지금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변하고 있다.ⓒwww.londonleben.co.uk |
“대테러 센터와 사이버대응센터가 이미 운영 중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다국적 테러조직이나 환치기 조직, 마약밀매조직을 감시하거나, 세계 수위의 해커를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국가기간시설을 제대로 보호하기에는 인력이나 조직 면에서 열악한 게 현실입니다. 여기에 맞는 법률이 존재하지를 않으니 예산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대에 변한만큼 새로운 분야의 정보수집과 수사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회사 전반에 대한 조직개편과 기능 확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거 정부에서의 행동으로 인한 오해도 있고, 지난 정권에서 특수 분야 인력을 특별 채용할 수 있는 ‘전문관’ 제도를 악용, 비전문가들이 들어온 게 알려지면서 예산과 조직이 모두 지금 수준으로 묶여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 같은 말을 하면서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써의 중립성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제로 붙였다.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난도질을 당하면서 본연의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할 때 향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기능, 직원의 역할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국가정보관련 학회에서 활동 중인 한 정보기관 전문가와의 논의 끝에 나온 결론도 국정원 직원들의 바람과 거의 비슷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되는 국내 정보 분야를 일부의 주장처럼 아예 없앨 것이 아니라, 현행 국정원법에서 ‘정부전복’으로 명기되어 있는 부분을 ‘체제전복’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헌법정신 수호를 그 본연의 임무로 삼자는 것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산업기술 비밀보호에 있어서도 규제 일변도의 법률을 제정할 것이 아니라, 국내 우수기술을 보호하고 육성, 지원하는 일에도 국정원이 나서 측면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해외의 정보기관에 비교해 형편없는 수준인 국내 정보기관들의 예산, 규모 등을 늘리고, 우주, 자원, 국제경제, 테러, 재외국민 보호 등 새로운 분야에 맞는 조직을 신설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법에 규정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해외 정보기관들처럼 현장요원의 활동에 분석, 과학, 총무 등 전 부서가 지원하는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다 전 세계 정보기관이라면 모두 하고 있는 비밀활동(Clandestine Operation)을 우리나라 정보기관만 인권, 투명성 등의 규정 때문에 제대로 못하고 있는 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대로 변하기를 바라는 국정원임에도 지금 언론과 좌파단체들은 수십 년 전 악몽의 편린(片鱗)에 붙들려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고 그 언론을 믿는 국민들마저 무조건 반대하는 게 현실이다
[국정원 개혁③] 국익의 최전선에서... | |||||||||||||||||||||||||||
세계정보기관, 테러조직은 급격히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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