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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_프리존뉴스발췌

醉月 2010. 1. 3. 11:07

[국정원 개혁①] ‘골동품’ 국정원법, 이대로 좋은가

국정원 수사기능 회복에 반발하는 좌파단체들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첫째 주까지 국내 언론들에서는 ‘국가정보원 관련 법’을 성토하는 야당과 좌파단체의 주장을 실었다. 특히 좌파 언론들은 정작 법안의 내용은 설명하지 않고, ‘군사독재정권으로의 회귀’ ‘공안탄압 서막 알린다’ 등의 자극적인 문구를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중앙일간지에서는 이 문제를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 좌파들을 떨게 한 국정원 관련 법안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며, 왜 법안이 필요한지, 또 국정원의 당면과제는 무엇인지를 3회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편집자 주>
 

국가정보원 관련법의 실상
지난 10월 말부터 11월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국정원 관련 법은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국가정보원직원법>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등 모두 6개다.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조직과 기능, 역할 등에 대해 규정하는 법률로 『국외정보 및 국가안보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라는 국정원의 직무를 『국가안전보장 및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의 수립에 필요한 정보, 국가 또는 국민에 대한 중대한 재난과 위기를 예방, 관리하는데 필요한 정보,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 산업기술유출에 대한 보안정보』『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 자재, 시설, 지역 및 이를 취급 또는 출입하는 자에 대한 보안업무와 국가정보통신망에 대한 사이버 안전업무』로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현행 국가정보원법은 지난 1961년에 제정된 이래 13차례에 걸쳐 개정됐으나 1960~1970년대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직원법>은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공채가 어려운 특수 분야 전문가 영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전문관’ 제도를 신설하는 것과 국정원 임용대상자의 애국심, 성실성, 보안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신원조사를 실시하는 것, 그리고 현재 업무 연속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4~5급 직원의 ‘계급 정년’을 각각 1년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비밀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은 1962년 7월 만든 <비밀보호규칙(대법원규칙 제130호)>을 45년 넘게 사용해 오면서 조금씩 변경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조차 비밀로 지정되는 등 문제가 늘어나자, 이를 현실에 맞게 바꾼 법이다. 특히 관료들의 편의에 따라 불필요하게 지정된 비밀은 아예 공개하고, 비밀 관리자를 명시하는 한편, 산업기밀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에는 이 법을 적용해 관리하는 등 현실에 맞춰 만든 법이다.

<국가대테러활동기본법>은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이다. 우리나라는 1981년 88올림픽에 대비해 만들어진 <국가대테러활동지침(대통령훈령 제47호)>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알 카에다나 제마 이슬라미야와 같은 다국적 테러단체의 위협으로부터 국내외의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대테러 활동이 어려워 국제정세와 우리 현실에 맞게 새로 만든 법이다.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도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했다. 이 법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국가기반시설 및 기간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만든 법으로 기존의 사이버안전센터 등을 개편해, 보다 강력한 국가사이버안전센터 등의 조직을 새로 만든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이한성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으로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국정원의 불법감청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가안전보장, 강력범죄 모의, 인신매매, 납치 등 이 법률에서 규정한 사안에 대해서만 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좌파들의 ‘국정원 全知全能論’
이런 법률에 대해 좌파들의 반응은 난리도 아니다. 민노당 자주평화통일위원회는 <국가정보원법>에 대해 ‘국정원의 정치사찰은 물론이고 공작정치, 공안통치, 권한남용, 수사권을 이용한 인권침해 등 국정원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국정원법을 개악하는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행정공무원노조는 성명을 통해 ‘국가정보원을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로 되돌려 군부독재, 유신독재로 회귀하려는 시도’라고 혹평했다.

진보신당은 국정원 관련 법안들에 대해 ‘국정원이 최근 공안정국 조성으로 탄압을 일삼던 과거 독재정권시절의 위치를 되찾으려는 상황’이라고 주장했고, 민주당 또한 ‘이명박 정부가 사정정국,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과거 권위주의 시대 권부를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좌파 매체들도 이 법안을 맹비난하고 있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은 연일 이 법안들을 문제 삼으며 ‘70~80년대 공안정국으로의 회귀’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에 동조하는 블로거들까지 ‘막걸리 보안법의 부활’ ‘新공안정국’ 등의 용어를 써 가며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좌파들의 반발이 포털 사이트에 퍼지자 보통의 네티즌 또한 막연히 ‘국정원이 새로운 빅 브라더’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 좌파들의 주장은 사실 ‘국정원 전지전능론(全知全能論)’에 근거하고 있다. 70~80년대 운동권들은 소위 ‘투쟁’을 하면서 당시의 중앙정보부나 안전기획부,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에 대한 일종의 편집증을 갖게 된다. 자신들의 웬만한 활동을 모두 간파하고 있는 정보기관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 탓인지 좌파 단체들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미국 정보기관과 함께 헐리우드식 첩보영화에 나오는 온갖 첨단장비(심지어는 수억 달러가 넘는 NGA의 첩보위성이나 NSA의 에셜런 시스템, FBI의 카니보어 시스템 등)를 동원, 자신을 항상 감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편집증에 빠져 있다. 때문에 이들 단체들은 자신들의 ‘양심과 자유, 인권’을 위해서는 정보기관이 그 기능을 상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보기관 관련법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국정원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런 좌파들의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지난 10년 남짓 사이에 국정원의 역량이 크게 약화·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정원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수억 달러짜리 첩보위성은 커녕 요원들의 활동비가 줄어 쩔쩔매는 상황이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정원에 칼을 댔다. 수백 명의 고참요원을 내보내고, 국내 정보파트의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반공정신이 투철하다고 판단되거나 특정지역 사람들은 지방으로 발령 내기도 했다. 또한 외환위기를 핑계로 해외활동을 통폐합하고, 사업비를 대폭 삭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 ‘국정원 전지전능론’과 ‘국정원 수구론’에 빠진 자들이 권력의 핵심부에 진출하면서, 국정원 내에는 국정원을 없애야 한다는 자들까지 끼어들게 된다. 그 결과 심지어는 활동내역의 비밀이 생명인 정보 요원의 활동을 신용카드 사용내역으로 감시하기까지 한다.

한편, 북한과 해외에 대한 정보력도 날이 갈수록 줄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책임자로 통일부 장관을 임명하고, 통일부 내에 별도의 정보본부를 만들면서, 국정원은 가장 특화된 분야라는 대북정보에서까지 통일부의 보조적 역할만 맡게 됐다. 해외정보 또한 파견나간 요원들의 숫자와 예산을 줄였다.

그 결과 국정원은 북한 핵 개발과 관련된 주요 정보를 입수하지 못해 한국 정부가 6자 회담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2007년 해외에서 여러 건의 자국민 납치가 벌어졌음에도 현지에서는 거의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같은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국정원과 관련된 법들이 거의 없다시피 해 집권세력이 마음대로 조직과 운영방식 등을 대폭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와 가장 대비되는 게 바로 미국이다. 2007년 가을 美국가정보국장실(DNI)에 내놓은 정보기관 관련 법령자료에 따르면 1947년 CIA를 설립하는 근거가 된 국가안보법을 비롯, 한 때 논란이 됐던 애국법, 중앙정보국법, 국토안보부법, 방첩활동강화법, 해외첩보활동법, 연방정보보호관리법, 사생활보호법, 비밀보호절차법, 정보공개법, 군사조치법, 미국 보호법 등의 법률과 함께 수많은 대통령령, 시행규정 등이 있다. 그 분량이 무려 680여 페이지에 달한다.

미국에 이렇게 많은, 정보기관 관련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보기관의 숫자가 우리에 비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정보기관의 임무와 역할, 활동가능범위 등에 대해 구속력이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야만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한다’는 정보기관 본연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맞춰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 활동범위 등을 보다 합법적이고 현실적으로 바꾸기 위해 국정원 관련 법안들이 나온 것이다.

 

[국정원 개혁②] ‘안보 최후 보루’ 국정원의 꿈과 현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국정원은 '상상'에 불과,

실제 국정원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 크게 약화 국정원을 둘러싼 오해

국정원의 임무와 역할을 현대화하겠다는 법안으로 논란이 불거지는 지금, 국민들은 국정원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물론 사람들마다 국정원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

보통 어린 학생일수록 국정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 직원은 모두 총을 들고 다닌다’ ‘무술 고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왠지 국정원 직원이 되면 멋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되면 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진다. ‘과연 어떤 직장일까’ ‘연봉은 얼마고 출퇴근 시간은 언제일까’ ‘어떤 시험을 칠까’하는 궁금증도 갖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언론 보도와 주변에서 전해 듣는 이야기를 토대로 국정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특히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국정원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한편, 소위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지금도 국정원을 ‘권력의 개’ 정도로 취급하며 음모론에 심취한다.

이 같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나름대로 국정원을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시각에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어린 학생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해외 드라마, 영화에서 보듯 활발한 공작활동을 펼치는 미국, 영국, 이스라엘 정보기관과 우리 정보기관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드라마,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요원들은 대부분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때문에 학생 시절에는 국정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 美CBS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 'Alias'. CIA 요원들의 활약을 그렸다. 초기 시즌에서는 남녀 간의 로맨스 보다는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CIA의 비밀 활동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제니퍼 가너는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CIA 채용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美CBS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직장 초년병들은 최근 들어 국정원을 일종의 공기업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 취업대비학원 때문이다. 현재 고시학원으로 유명한 지역에는 국정원 대비반이라는 이름의 학원 강의가 개설돼 있다. 문제는 이 곳에서는 국정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다는 ‘카더라 통신’ 수준의 이야기가 마치 진실처럼 떠돈다는 것이다.

여기서 떠도는 이야기는 직원들 연봉에서부터 근무시간, 교육과정, 업무내용 등이다. 실제 기자가 관련 학원 강의를 듣고, 강사에게 경력을 물어본 결과 초급 정보장교로 전역한 사람, 신문기자였던 사람이 마치 국정원에 근무한 것처럼 강의하고 있었다. 국정원 입사요건도 단순 시험성적순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직장인, 특히 금융권과 대기업 근무자의 경우에는 연예계 루머 등 소위 ‘찌라시’형 정보를 이야기할 때 국정원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찌라시’ 생산과정에 검찰과 언론인, 정보요원이 참여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국정원이라는 이름이 풍기는 묘한 상상력과 신뢰성도 루머를 기정사실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여러 계층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상상력, 선입견 등이 모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둡고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권력을 가진 국정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국정원의 실상을 접한 사람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낡은 제도에 묶이고, 국정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력이 난도질하면서 그 역량이 크게 쇠퇴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에게 천대받은 국정원
그동안 현실에서 만난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은 총을 들고 있지도, 검은 선글라스를 끼지도 않았다. 우락부락한 근육질도 아니었다. 태도와 인상, 말투 등은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하다. 여기다 국정원 직원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두 번째로 충격을 받게 되는 게 이들이 권력에 대한 충성 보다는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유지와 안보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 작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단이 탈레반에 납치됐다.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이 사진의 '선글라스맨'과 동행, 세계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신원을 노출하지 말아야 하는 정보요원과 기관장이 세계 언론들과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두고 논란을 빚었다. 
국정원 직원과 처음 접촉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선입견을 떠올리며 주로 현 정권에 이익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소위 ‘민주화 세력’에 의해 국정원이 난도질당하면서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것만이 생존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직원과 오랫동안 만나며 조금 더 친분관계를 맺게 되면 이들의 어려움과 원하는 것을 조금씩 알 수 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정원 정상화’다. 지난 정권의 권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민주화 세력’들이 자신들의 선입견과 편견을 근거로 어줍잖은 해외 사례를 들이대며 난도질하는 바람에 국정원의 역량은 크게 축소됐다.

당시 ‘민주화 세력’이 해외 일부 사례를 내세워 ‘투명성’을 갖추라며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해외 및 대북 정보, 방첩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그 결과 나중에는 해외에서 일이 생겨도 공작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가 하면, 대북 정보나 방첩 분야 요원들이 정치권의 강요에 따라 급조한 조직에 파견돼,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정치권의 입맛에 맞게 일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국정원의 정치중립이 아니라 거의 ‘국정원 죽이기’에 가까웠다.

또한 경력에도 문제가 없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이 있어도 고위층에 밉보이는 바람에 진급이 누락돼 계급 정년에 묶여 그만두거나, 낙하산 고위직, 전문직을 빙자해 국정원에 들어온 ‘세력’들로 인해 한직에 머물다 그만 두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소위 ‘화이트’로 분류되는 공식파견 요원이 해외에서 원인불명의 병으로 급사했어도 정부가 신경을 써주기는커녕 오히려 별 일 아니라는 듯 취급하는 행태를 보였고, 분쟁지역에서 납치가 일어나도 주도적인 활동은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국정원의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해명은커녕 마치 자신들의 죄인 양 아무 변명도 하지 못했고, 수십 년 전의 일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도 ‘지금의 기관은 그 때의 기관과 사람도, 조직도 다르다’는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이런 사기 저하는 곧 전반적인 활동 위축으로 이어졌다. 해외는 물론 북핵과 중국 문제로 홍콩, 마카오처럼 국제 정보기관들의 각축장이 된 국내에서조차 그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그 사이 해외 정보기관과 국제 민간조사기관들의 국내 활동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불법세력들까지 들끓기 시작했다.

특히 정치권과의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국내 대형 조폭들은 일본, 중국 조폭과 결탁해 국내에서 사채, 불법도박, 환치기, 인신매매, 불법무기 유통 사업을 대규모로 벌이는가 하면, 다국적 테러조직, 국제마약조직들은 우리나라를 인력, 자금의 세탁기지로 활용했다.

 
▲ 한 국정원 대비학원의 홈페이지 화면. '국정원 사관학교, 2008년 ○명 합격'이라는 팝업(Pop up) 광고가 눈에 띈다. 이들의 개인정보는 과연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되자 국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졌고, 국정원 직원들이 사기는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은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바로 신규 임용요원 선발 문제다.

‘국정원 ≒ 공기업’이라는 사교육 업자들
국정원이 신입사원을 공채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하지만 이 때는 국정원 직원을 선발함에 있어 출신학교나 학부성적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 임기응변, 판단력, 전공의 전문성 등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유명대학 출신도 있었지만, 특채를 통해 임용되는 경력직도 많은 수를 차지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현장요원들이 주요 인력이었다.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이 흔들린 적도 있다. 좋은 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들어온 분석관들이 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현장요원 보고의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국정원 내부에 대한 간섭은 적어 인력 충원 등에서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소위 ‘개혁’이라는 이름의 난도질이 시작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대량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조직 내부의 규칙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이제는 ‘국정원≒언론사, 공기업’이라는 등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때문인지 최근에는 입사 경쟁률이 200 : 1에 육박할 정도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 개설돼 있는 ‘국정원 입사대비’ 카페에서는 다양한 정보가 공유된다. 그 곳에서는 출신학교, 학점, 영어공인점수 등 일명 ‘스펙’이 국정원 입사의 최고 요건이라고 믿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국정원에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점. 이는 정보가 부족한 학생 대부분이 고시학원의 국정원 대비반에서 강의를 듣거나 자료를 구하는데 이 곳 강사들이 ‘국정원도 공기업’이라며 업무와 근무시간, 급여 등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과 거의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말을 믿는데서 비롯됐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학원에서는 국정원이 요구하는 정신(희생정신, 충성심)도 면접에서 쉽게 위장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국정원 입사지원자들에게 애국심이나 준법, 국가에 대한 희생 등은 한낱 허망한 구호로 들릴 뿐이다.

그 결과 최근 국정원 내부의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신규인력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국정원이 왜 존재하는지, 국정원 직원으로써의 생활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니까, 돈 많이 받는 철밥통 공기업으로 생각하고 입사한 직원들에게 위험한 업무를 제대로 맡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편하게 보이는 국내 정보나 정보 분석 분야에는 지원자가 많은데, ‘국익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정보(특히 오지 활동), 대북 정보, 대테러, 조직범죄 및 마약 수사 분야에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정원 고참요원일수록 국정원의 미래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정원 직원이 바라는 국정원
이런 국정원의 현실을 보는 직원들의 마음도 착잡하다. 일부 직원들은 ‘앞으로 좋아질 거예요’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하지만, 다수는 조직의 앞날과 국익수호에 대해 걱정한다.

 
▲ 英해외정보국 SIS의 본부건물. SIS는 'MI6'로도 불린다. 정보기관을 가장 잘 운영하는 나라 중 하나인 영국은 냉전시절에는 정보기관장의 이름, 얼굴 등 개인정보를 기밀로 취급했으나, 지금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조직을 현재에 맞게 바꿨다. 심지어 베일에 쌓여있다는 이스라엘 모사드조차도 온라인 채용을 하고 있을만큼 지금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은 변하고 있다.ⓒwww.londonleben.co.uk 
“우리 회사(注-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을 ‘회사’라고 부른다. 미국 CIA는 Company, 영국 MI6는 Firm이라고 부른다)가 옛날에는 정권의 하수인으로 많은 잘못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십 년이 지난만큼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조직이라는 걸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나 대외활동이 크게 늘어, 거의 모든 면에서 외부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언론과 정치인들에게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보니, 당장 국내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테러 센터와 사이버대응센터가 이미 운영 중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를 드나드는 다국적 테러조직이나 환치기 조직, 마약밀매조직을 감시하거나, 세계 수위의 해커를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국가기간시설을 제대로 보호하기에는 인력이나 조직 면에서 열악한 게 현실입니다. 여기에 맞는 법률이 존재하지를 않으니 예산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시대에 변한만큼 새로운 분야의 정보수집과 수사가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회사 전반에 대한 조직개편과 기능 확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거 정부에서의 행동으로 인한 오해도 있고, 지난 정권에서 특수 분야 인력을 특별 채용할 수 있는 ‘전문관’ 제도를 악용, 비전문가들이 들어온 게 알려지면서 예산과 조직이 모두 지금 수준으로 묶여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 같은 말을 하면서 ‘국정원이 국가정보기관으로써의 중립성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제로 붙였다.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난도질을 당하면서 본연의 기능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할 때 향후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기능, 직원의 역할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국가정보관련 학회에서 활동 중인 한 정보기관 전문가와의 논의 끝에 나온 결론도 국정원 직원들의 바람과 거의 비슷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되는 국내 정보 분야를 일부의 주장처럼 아예 없앨 것이 아니라, 현행 국정원법에서 ‘정부전복’으로 명기되어 있는 부분을 ‘체제전복’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헌법정신 수호를 그 본연의 임무로 삼자는 것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산업기술 비밀보호에 있어서도 규제 일변도의 법률을 제정할 것이 아니라, 국내 우수기술을 보호하고 육성, 지원하는 일에도 국정원이 나서 측면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해외의 정보기관에 비교해 형편없는 수준인 국내 정보기관들의 예산, 규모 등을 늘리고, 우주, 자원, 국제경제, 테러, 재외국민 보호 등 새로운 분야에 맞는 조직을 신설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법에 규정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해외 정보기관들처럼 현장요원의 활동에 분석, 과학, 총무 등 전 부서가 지원하는 구조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다 전 세계 정보기관이라면 모두 하고 있는 비밀활동(Clandestine Operation)을 우리나라 정보기관만 인권, 투명성 등의 규정 때문에 제대로 못하고 있는 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대로 변하기를 바라는 국정원임에도 지금 언론과 좌파단체들은 수십 년 전 악몽의 편린(片鱗)에 붙들려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고 그 언론을 믿는 국민들마저 무조건 반대하는 게 현실이다

 

[국정원 개혁③] 국익의 최전선에서...

세계정보기관, 테러조직은 급격히 변신 중
국정원은 손발 묶여 앞마당에서도 고전

 

새로운 첩보전의 중심, 서울
냉전이 끝난 뒤 세계 각국 정보기관은 ‘앞으로 테러, 환경, 자원 등이 세계 분쟁의 주요 요소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앞 다퉈 내놨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주장처럼 세계 각지에서는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90년대까지 냉전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련의 붕괴와 러시아의 경제 침체, 유럽 통합, 중국의 성장 등으로 각국은 새로운 세계 정치 구도 속에서 자기 자리 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상황이 급변하게 된 것이 바로 2001년 9월 11일의 테러다. 미국 중심부에서 일어난 알 카에다의 테러는 세계 정보기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상하관계가 불분명한 네트워크 조직, 인터넷을 활용해 서로 연락하고, 환치기 조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그들을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은 알 카에다의 수뇌부를 잡겠다고 아프간을 침공했지만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얼마 뒤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바로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이다. 이미 90년대부터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경고했지만, 작은 ‘깡패국가’ 북한이 이렇게 과감한 행동을 할지는 몰랐던 것이다. 여기다 서방 국가인 한국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김정일 정권에게 각종 물자와 현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핵 기술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됐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상황이 생겼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는 급성장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곧 세계 원자재의 블랙홀이 되었다. 여기다 중국이 원자재 도입을 명목으로 아프리카, 남미의 독재정권에도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서방 국가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떠안겼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계 정보기관들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활동을 늘렸다. 첩보전의 무대도 냉전시절의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독일 베를린에서 서울, 도쿄, 홍콩, 중국 각 대도시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은 북한, 중국, 일본의 동향을 파악하기 좋고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 탓에 감시를 피하기 쉬워 첩보요원들이 활동하기 편한 곳이었다.

 
▲ 우리나라는 유독 '외국인 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이 많다. 한 예로 남산타워의 경우에는 외국인관광객은 차를 타고 전망대 앞까지 올라갈 수 있는 반면 한국인은 버스만 이용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찾는 식당, 클럽 앞에는 불법주정차도 마음대로 허용된다. 심지어 일부 건물이나 驛舍에는 외국인 전용 화장실도 있다. 이런 환경은 외국 정보기관원들이나 테러조직원, 폭력조직원에게는 좋은 활동 무대가 된다. 사진은 노 정권 시절 만들어진 서울 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이 때문에 서울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 정보기관은 물론 러시아, 중국 정보기관들도 많은 거점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파키스탄 칸 박사와 연결돼 있고, 북한 핵 기술이 아랍권으로 전파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이스라엘도 한국에서의 활동을 늘였다.

안방 싸움에서 손발 묶인 국정원
서울에서의 외국 정보기관 활동은 주로 자국 교민사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미국의 경우에는 美대사관 ORS를 중심으로 공식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크롤, 핑커톤 같은 민간조사업체를 활용하거나, 비밀요원을 한국으로 보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가 좌우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어도 ‘영어 만능론’과 ‘미국 전지전능론’이 워낙에 팽배한 탓에 정보를 얻기가 쉽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의 경우에는 대학, 언론, 기업 등을 통해 많은 활동을 한다. 이들도 ‘백인’과 ‘영어’에 우호적인 한국인들의 정서와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권력층의 인맥을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중국, 러시아는 조금 다르다. 러시아는 한국 내 정보활동이 서방국가들처럼 활발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주한 러시아인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특히 선원과 언론인, 지방의 노동자들과 과학자들은 정보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 2002년 준공한 서울 정동의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최고 수준의 감청시설을 통해 서울 시내의 주요 통신을 감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해외로 나가는 자국민이 모두 정보원 역할을 한다. 국내에서 생활 중인 중국인의 숫자는 불법 체류자를 포함, 약 50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정보는 각 학교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대학 유학생 등이 수집해 대사관에서 취합한다. 조선족의 경우에는 정부부처 주변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탈북자 단체에 기웃거리면서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한편, 테러조직이나 국제범죄조직, 마약밀매조직 등은 한국을 신원 및 자금 세탁의 경유지로 활용한다.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것을 이용, 위장회사를 차린 뒤 각종 환치기 조직을 활용해 자금세탁을 한다. 신원 또한 이런 위장회사를 활용,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일부는 한국인들과 결혼 후 귀화하기도 한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서방 국가들이 별로 의심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다 외국인이라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성들에게 공짜 해외여행을 내세워 마약밀매 등에 이용하기도 좋다.

반면, 이들을 감시해야 하는 국정원은 한동안 비용 문제와 인권단체들의 주장 때문에 외국 정보기관은커녕 테러조직이나 범죄조직에 대한 감시조차 하기 어려웠다. 외국 정보요원과 테러리스트, 범죄조직원들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지문채취 등 신원파악이 필수지만, 2003년 만들어진 인권규정 때문에 외국인 지문채취는 금지되어 있다.

 
▲ 지난 9월 10일 중국에서 체포돼 한국으로 압송된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두목 프랭크. 그는 2002년 서울 이태원 등지에서 미국인 사업가를 사칭하며 한국여성에게 접근, 공짜로 해외여행을 시켜준다고 속여 마약을 운반하게 했다. 결국 10여 명의 한국인이 마약밀매혐의로 세계 곳곳에서 체포, 수감됐다. 
또한 외국 정보요원들은 한국 상황을 십분 활용, 주로 특급호텔이나 대학가 등에서 많이 활동한다. 이들에 대한 감시는 그 특성상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에서는 방첩활동의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국정원을 닦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테러조직이나 국제범죄조직 활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비밀활동은 아예 금지되어 있는데다 정부가 인권을 내세워 감시활동을 제약하면서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때문에 국정원은 억울하게 욕을 먹어야 했다. 여기다 국정원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던 권력층들이 예산에서까지 불이익을 줬다. 그 결과 덕을 본 건 외국 정보기관과 한국을 안방 드나들 듯 하는 테러조직, 국제범죄조직들이었다.

강대국 정보기관들의 변신
이처럼 지난 정권의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국정원이 ‘냉전’이라는 틀 속에서 난도질당할 때 해외 정보기관과 테러조직, 국제범죄조직들은 거듭 변신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기관들과 알 카에다 네트워크다.

미국은 과거 CIA와 FBI, DIA, NSA로 대표되던 정보기관을 IC(Intelligence Community)로 묶고, 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가 총괄 감독하도록 만들었다. 그 산하에는 CIA, NSA, DIA, NGA, DHS, INR(국무성), OIC(에너지성), FBI, DEA(법무성), OTFI(재무성) 등과 군 정보기관 등을 두고 모든 정보기관의 예산과 기능을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최근에는 각 기관끼리의 권력 다툼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비밀활동(Clandestine Operation)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법률을 마련해 주고, 테러 등에 대비하는 정보활동이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필요할 때마다 태스크포스를 조직,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CIFA(Counter Intelligence Field Activities)로 DIA 요원을 주축으로 FBI, NSA, NGA 요원을 지원받아 3천여 명으로 태스크 포스를 구성, 활동했던 일이다.

각 정보기관의 활동도 냉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냉전 시절에는 정보수집과 함께 다양한 파괴공작도 병행되었지만, 전쟁이 아닌 테러에 대응하는 것이 주 임무가 되면서 군사작전 같은 형태의 활동보다는 범죄 수사에 가까운 활동이 더 많아졌다. 심지어는 군 정보기관조차도 민간인으로 위장,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러시아의 경우에도 큰 변화를 겪었다. 고르바초프 때 해체의 길을 겪으면서 옐친 때까지 과거 소련의 망령처럼 여겨졌던 KGB는 푸틴 대통령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 때 15국 50만여 명의 요원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KGB를 SVR(연방대외정보청), EPS(연방국경경비청), FSB(연방보안청), FAPSI(연방통신정보국)으로 나눠 버렸다. 이 시기 KGB 요원들은 많은 설움을 겪었다. 민간경비회사에서 일하는 가하면, 마피아에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남아있던 요원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 시기 체첸 사태가 발생하고,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KGB 출신들은 ‘실로비키’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후 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FSB가 새로운 KGB가 된다.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모델을 연구, 러시아의 경제를 다시 살려내면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다. 그의 뒤에는 KGB와 FSB출신들이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6천여 명의 KGB, FSB 출신들이 모스크바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정부 핵심직책 1천여 명 중 78%가 KGB, FSB 출신이라고 한다.

이들은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시절에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세계적 재벌이 된 ‘올리가르히’ 길들이기에 성공하면서 이들의 자산과 영향력을 러시아 중산층 확대, 저소득층 지원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JIC(합동정보위원회)가 SIS(MI6), SS(MI5), GCHQ, DIS 등의 정보기관을 관리하는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기관장의 이름까지도 비밀로 하던 관행은 크게 바꿨다. 각 기관마다 홈페이지를 여는가 하면, 인원 채용도 공개로 바꿨다.

대테러 활동 또한 특수부대를 활용한 방첩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킬로와트 그룹’과 ‘에그몽 그룹’ ‘베른 회의’ 등 국제협력회의를 통해 테러예방이 아니라 테러조직을 색출해 검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테러 예방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 서울 명동에 신축 예정인 중국 대사관의 조감도. 하지만 서울시가 담장을 투명하게 만들 것을 요구하면서 계획이 중단된 상황이다. 완공 시 지하 2층, 지상 24층, 연면적 1만7천여 ㎡ 규모로 내부에는 국가안전부 등 중국 정보기관도 들어서게 될 전망이다. 한편, 서울시는 서대문구 연남동 일대에 30만 ㎡ 규모의 아시아 최대 차이나타운 건설을 계획 중에 있어 지역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은 국가안전부(MSS)가 대표적 정보기관이다. 과거에는 5만이 넘는 정보요원을 활용, 필요할 경우 현지인을 포섭하거나 정보원을 파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광객이나 유학생, 화교 등을 활용해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 여기에 현지 대사관은 중국 정보기관을 지원해 교민이나 유학생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필요할 경우에는 자금도 지원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이 정보요원을 중심으로 필요한 곳에 대해서만 정보를 수집할 때 저인망식으로 거의 모든 주변정보까지 수집한다. 때문에 국제 정보계에서는 ‘어떤 해변의 모래가 필요할 경우 서방 국가들은 첩보원이나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샘플을 채취하지만, 중국은 유학생과 관광객을 보내 해변 자체를 옮겨버린다’는 농담까지 떠돈다.

여기다 중국 정보기관은 필요하다면 현지에서의 실력행사에도 나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지난 5월 성화 봉송 당시 세계 곳곳에서의 중국인 난동이다. 당시 수만 장의 오성홍기가 중국에서 제작돼 공수됐고, 성화 봉송에 즈음해 중국인들이 단체로 해당 국가에 대량 입국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국 각지에 있던 중국인들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왔는데, 그 자금이 중국 대사관에서 나온 게 확인된 바 있다.

한편, 테러조직들도 변신하고 있다. 9.11테러, 발리 나이트클럽 폭파, 런던 버스테러, 마드리드 지하철 역 폭파 등으로 악명이 높은 알 카에다 네트워크 소속 테러조직들은 과거의 좌파 테러조직과는 달리 형식과 계급에 얽매이지 않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와 메일을 통해 지도부의 메시지가 전달되면, 각 조직마다 테러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이 승인되면 지도부에서 환치기 조직을 통해 자금을 전달한 뒤 목표를 공격한다. 이들은 또한 서방 국가들의 붕괴가 목표인 만큼 국제범죄조직과도 결탁해 테러를 자행한다. 여기다 자금 조달을 위해 마약을 제조, 유통하면서 국제마약조직과도 연계돼 있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 퍼진 무슬림을 자살테러요원으로 활용하는데 인종과 출신국을 가리지 않는다. 필리핀의 아부 샤아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제마 이슬라미야, 소말리아 해적의 주류를 이루는 무슬림 민병대 등은 겉으로는 알 카에다와는 어울리지 않는 국가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체첸 또한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알 카에다와의 연계성을 의심받고 있다.

알 카에다 요원들은 서방 문물을 잘 알고, 현지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아 서방 국가에서 생활을 해도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지인들과 어울려 술과 섹스에 탐닉하는 것조차 ‘성전(聖戰)’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동아시아 국가를 경유해 서방 국가로 잠입하는 경우가 늘었다는 점도 이들에게는 큰 변화다.

흐려진 국정원 개혁의 초점
이렇게 해외 정보기관과 테러 조직들이 변하고 지난 정권들이 ‘국정원 개혁’을 내세우면서 국정원도 자극을 받았다. 그런데 국정원 개혁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 국정원 전문가들이 문제의 핵심을 흐렸다. 이 ‘전문가’들은 교수, 시민단체, 전직 관료 등 그 이력도 화려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발전 보다는 자기 상상에 맞는 새로운 정보기관 만들기나 국정원 활동 축소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면서 정보기관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서방 국가처럼 해외 정보국과 국내 정보국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왜,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 2006년 10월 31일 국정원 동문 앞에서 있었던 민노당과 라이트 코리아의 동시집회. 우파는 국정원의 방첩기능 강화, 예산 증액을 국정원 개혁으로 생각하는 반면, '자칭' 인권단체와 좌파들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정원 관련 법 폐지, 활동범위 축소가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 들고 나온 국정원 개혁안에는 정치적 목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수사권 폐지, 정치활동 금지가 국정원 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자칭 ‘인권단체’나 좌파세력들은 국정원 개혁의 핵심을 ‘투명성’이라며 범죄에 대한 감청, 위험인물 감시, 방첩 등의 임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들 모두 ‘자칭’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언론에 나와 이야기한다. 국정원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으면서, 언론에 드러난 해외 정보기관의 일부 사례가 마치 정보기관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일부는 대학 내 과정을 통해 국정원 지망생들이나 학생들에게 선입견을 심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대다수가 국정원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정원을 없애고 새로운 기관을 만들거나, 그 역할을 축소시킨다면 정보공백은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까? 새로운 인원은 어떻게 교육시킬 건가? 지금도 문제라는 국정원이 간판만 바꿔달면 당장에 경쟁력이 강화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가 정보기관 전반의 구조조정을 통해 정보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과 군의 정보사, 기무사, 감청부대, 경찰 정보국과 보안수사대, 외사국 등이 정보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을 관리하는 게 체계적이지 않으며 업무조정도 국내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과거 정권들은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을 경쟁시켜 권력이 쏠리는 것을 방지했다. 이런 관점은 국내 정보를 통한 권력유지 마인드에서 비롯된다. 물론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GDP는 9천억 달러에 달하고, 세계 190개국에서 교민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수출이 GDP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또한 해외요인의 영향을 즉각 반영한다. 즉 해외에서의 정보수집이 국내 정보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북핵 문제, 중국 문제 등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내 정보, 대북정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도 짐작할 수 있다.

 
▲ 국정원 안보전시관 내에 마련된 '얼굴없는 신화' 코너. 왼편의 별은 그동안 순직한 요원을 나타낸다. 별의 숫자는 모두 46개다. 순직자 다수가 해외에서 작전 중 사망한 직원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정원 개혁의 초점은

▲해외정보역량(금융 포함) 강화

▲국내 방첩기능(사이버, 금융 포함) 강화

▲대북-대중 정보기능 강화

▲과학정보 기관의 분리 강화

▲과학, 자금, 인원모집 등의 지원역량 체계화 등으로 귀결될 것이고 한 마디로는 국정원의 정보수집 역량 강화를 위한 정보수집 임무 및 예산 확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자칭’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을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개혁’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국정원의 역할과 예산을 줄이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국민과 국정원의 꿈
그렇다면 국정원 서비스의 고객인 국민들은 국정원에게 뭘 바라고 있을까. 국민들이 바라는 국정원의 역할은 단 하나 ‘세계 어디에서든지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 중 독재정권이 아닌 나라는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미국 CIA, DIA의 테러와의 전쟁도, DEA의 마약조직 소탕, DHS의 히스패닉계 범죄조직 소탕, ICE의 불법체류자 검거도, 영국 SS의 무슬림 커뮤니티 감시도, 캐나다 CSIS의 대북 정보활동도 모두 세계 어디서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지난 해 나이지리아와 소말리아, 필리핀 등에서 있었던 한국인 납치 사건, 외교통상부에서 언론에 잘 공개하지 않는, 연간 수백 명에 달하는 해외 실종자, 국내에서 위장회사를 차려 움직이는 테러조직 활동이나 야쿠자 자금으로 세력을 키운 국내 사채업계, 불법 도박업계의 활황,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와 손잡은 국내 조폭의 준동, 러시아 마피아의 불법무기 유통, 불법 체류자 조직범죄 등은 지금 국정원이 자국민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넘어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국정원의 꿈도 국민들의 바람과 같이 ‘언제 어디서든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민간 기업이 아닌 만큼 역량강화를 위해서는 절차와 예산확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최소한의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권력에 의한 도청, 개인사찰이 아닌, 범죄예방과 국민보호를 위한 감청과 감시활동,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기술유출 수사가 아닌 기술유출 예방을 위한 조치, 권력을 위한 국내정보활동이 아닌 권력을 감시하는 국내정보활동, 국내 다른 정보기관과의 경쟁을 위해서가 아닌 해외 정보기관과의 경쟁을 위한 역량 강화 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최근 발의된 법률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과 이를 통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이런 합법적 토대가 있어야만 국익을 지키는 최전방을 지키며, 언제 어디서 충혼탑 속 ‘별’이 될 지 모르는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일 없이 자국민 보호를 목표로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