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월간조선 신년특집_한국이 日本을 뛰어넘는 날

醉月 2009. 12. 29. 08:50

일본을 추월하는 한국 기업들  한국 기업, 톱 다운식 의사결정으로 과감한 투자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기 시작한 것인가. 조선·반도체·철강·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제조업체들은 일본업체들을 뛰어넘거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무역수지 흑자 규모에서도 일본을 훌쩍 넘어섰다. 국경제가 롤 모델이자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벽’으로만 여겨졌던 일본을 위협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의 반격은?

⊙ 한국 기업이 그동안 지나친 원低 상황에 고전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일본 기업은 엔低 혜택을 활용하면서 경쟁력 떨어져
⊙ 한국 기업이 도약하게 된 근본적 요인은 글로벌 시각에서 투자를 과감하게 결정하는  경영능력에 있다

李地平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1963년 일본 도쿄 출생.
⊙ 日 호세이대 경제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 수료.
⊙ 現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격월간) 편집장.
⊙ 저서 : <일본식 파워경영> <주5일 트렌드> <일본과 독일> <세계경제 전쟁의 승자> 등.

<한국 기업은 글로벌한 시각에서 발빠르게 국내 및 해외에 생산거점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사진은 현대모비스 베이징 공장.>

일본 기업들이 円高(엔고)에 苦戰(고전)하면서 대규모 赤字(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의 총수출은 세계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상 처음으로 세계 9위에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무역수지 흑자도 400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의 2009년 무역수지 흑자가 70억 달러 내외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수준이다.
 
  일본 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매진하면서 엔고 극복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도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을 뛰어넘는 실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의 저력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 우리 기업들이 왜 일본 기업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성과를 보고 있는 원인을 알아내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은 일본 기업의 역습을 막는 데에도 유익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기업의 활약상을 보면, 전자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위치로 우뚝 솟아오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세계 TV 시장의 경우 2009년 3분기에 수량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17.2%, LG전자가 14.8%를 기록해, 글로벌 1, 2위를 차지했다. 특히 LCD TV에서 삼성전자 18.4%, LG전자가 10.7%를 기록해 소니의 8.7%, 샤프 6.4%, 도시바 5.8%를 앞섰다. 세계 LCD TV 시장에서 일본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2008년 40.3%에서 2009년 3분기에는 34.3%로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2009년 3분기 기준으로 현대·기아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8.2%를 기록, 2008년의 6.5%에서 1.5%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이제 현대차는 일본 업체에 버금가는 글로벌 자동차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SK에너지·효성 등은 일본 기업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핵심 소재 분야 공략에 성공하고 있다. 일본 후지필림과 코니카미놀타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해 왔던 LCD 편광판용 TAC 필름 시장에서 이들 국내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TAC 필름은 LCD TV의 핵심 재료로, TV가 브라운관에서 LCD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계속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시장이다. TAC 필름은 지금까지 전량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對日(무역) 무역역조의 한 원인이 되어 왔다.
  
  일본 기업과 특허소송에서 승리한 서울반도체
 

LG화학 연구원들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녹색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그린 카의 핵심 부품인 2차전지에서는 LG화학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LG화학은 미국의 GM에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 납품 계약을 체결, 세계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철강 분야의 경우, 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돼 각국 철강업체들의 수익이 급감한 가운데 포스코가 건실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2009년 2분기(4~6월) 기준으로 포스코의 매출액은 前年同期比(전년동기비)로 14.9% 감소하고 영업이익도 91.0% 감소한 1704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같은 기간 동안 매출액이 37.8% 감소하고, 영업이익에서도 534억 엔의 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디스플레이용 제조 장비를 만들고 있는 미래컴퍼니는 삼성전자와 휴대폰 디스플레이인 AMOLED용 제조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LG디스플레이와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LCD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도약하면서 관련 부품·소재 분야의 중소기업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기술개발이나 고객 가치 제고에 노력하는 중소기업 중에는 실적을 올리는 기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기업과의 相生(상생) 관계를 기초로 성장한 중소기업 중에서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강화하면서 스스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서울반도체의 경우 LED(발광다이오드)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주목되면서 2009년 초 7000원 수준이었던 주가가 12월 초에는 4만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 회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 9월 기준으로 매출액 증가율 14.6%, 영업이익 증가율 15.9%를 기록했다.
 
  LED는 과거에는 여러 전자기기의 작은 조명 표시장치에 사용되어 왔지만 발광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LCD 등의 평판 TV용 光源(광원)으로 활용되거나 실내 및 옥외에서 사용하는 차세대 조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을 주도한 것은 일본의 니치아화학공업 등이기 때문에 LED 산업은 선진기업의 강력한 특허망이 구축되어 있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려면 여러 제약이 있는데, 서울반도체는 오랜 LED 사업 경험을 기초로 다양한 응용기술을 개발해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니치아화학공업은 서울반도체가 자신들의 원천기술을 침해했다고 특허소송을 제기했지만 敗訴(패소)했다. 결국 니치아화학공업은 서울반도체와 양사의 기술을 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반도체의 승리는 첨단 분야에서 원천 특허를 앞세운 일본 기업에 대해 다양한 응용기술로 맞선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승리를 거둔 사례로 주목된다. 
    
  일본 기업의 부진 이유
 
  한국 기업이 이처럼 약진하고 일본 기업이 부진에 허덕이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발생한 급격한 엔고와 원貨(화)의 약세가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일본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최근의 엔고와 원저 현상은 200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강력한 엔저 유도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엔저 현상이 시정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일본은 그동안 0%대의 超(초)저금리와 35조 엔이 넘는 막대한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엔저를 유도해 왔다.
 
  이러한 저금리와 엔저에 힘입어 엔캐리(저금리 엔화 자금을 조달해 고금리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자금 흐름) 자금이 한국에도 유입되면서 원화 강세가 지나치게 조장된 것이다.
 
  이미 1995년에 1달러당 79엔까지 엔고가 진행된 바 있고, 그동안 일본 물가가 미국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1달러당 80엔대 수준도 지나친 엔고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1995년의 엔고와 실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엔고가 되기 위해서는 1달러당 58.7엔이 되어야 한다는 계산도 나온다(美日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실효환율을 기초로 시산한 수치: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2009.11).
 
  한국 기업이 그동안 지나친 원저 상황에 고전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을 때 일본 기업은 엔저 혜택을 활용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開途國(개도국)으로 이전해야 할 분야까지 일본에서 생산하는 등 소위 ‘일본으로의 공장 회귀’ 현상도 그래서 나타난 것이다.
 
  지나친 엔저가 시정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들은 自國(자국) 내 공장의 채산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현재 각종 공장의 조업 중단과 폐쇄, 해외공장으로의 생산품목 이전 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생산거점 글로벌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배치
 
한국 전자업체들은 인도에 생산공장을 건설, 일본 전자업체의 도전을 물리쳤다. 사진은 LG전자 인도공장.

  이러한 생산 시스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공장 폐쇄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악화됐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 고급소비시장이 위축되면서 일본 공장에서 생산한 高(고)품질 고가격 제품이 타격을 받은 것도 일본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한국 기업은 2008년 초반까지 상대적인 원고라는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력 제고에 매진했다. 덕분에 한국 기업은 리먼 쇼크로 원화가 약세로 돌아서기 이전의 원고하에서도 수익성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리먼 쇼크 이후의 원화 약세는 세계경제의 위축에 따른 시장 축소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즉, 한국 기업의 약진은 단순한 환율 요인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원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섰지만 세계경제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수익 호조세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도약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글로벌한 시각에서 투자를 과감하게 결정하는 경영능력에 있다.
 
  일본 기업은 일시적 엔저를 믿고 일본 本國(본국)에 과도하게 생산거점을 집중시켜 현재 과잉설비에 고전하는 근시안적 경영에 빠졌다. 반면 한국 기업은 글로벌한 시각에서 발빠르게 국내 및 해외에 생산거점을 효율적으로 배치했다.
 
  특히 한국 기업은 최근 세계경제의 회복을 견인하고 있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비롯한 신흥시장에 일찍 진출했다. 한국 기업은 현지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일본 기업에 앞서 신흥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중국에 이어 거대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도 시장의 경우, 한국 전자업체들이 에어컨·냉장고 등의 백색가전, TV 등의 음향기기, 휴대폰 등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의 소니는 한국 기업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인도와 태국 간에 체결된 FTA를 이용해 태국 거점에서 인도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전개했다. 그러나 소니는 현지 사정에 보다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도에서의 현지생산 현지판매 체제가 강한 한국 기업을 누르지는 못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한 시각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해 발 빠르게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의 지도력을 활용한 톱 다운(top down)식 실행력에 힘입은 바 크다.
 
  이는 신규 유망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나 신규 사업 진출에서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 기업들은 차세대 제품인 LED TV가 글로벌 불황에도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판단, 앞 다투어 LED 생산 장비의 선제적 구매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량 확대를 결정했다. 한국 기업들은 2010년 이후에도 세계 LED TV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기업의 역습 전략
 
일본은 녹색산업 분야의 고기술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사진은 도요타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이에 반해 일본 기업은 전략적 투자 분야에 관해서도 여러 부처 간의 조정과 기업조직의 각 계층을 거치는 합의 도출 과정에서 결단이 늦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의 취약점이었던 부품 및 소재 분야도 부분적으로 보완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장기적 연구 및 투자와 함께 계열 중소기업을 조직화, 제품 개발 협력이나 분업 협력에 주력해 왔다.
 
  한국 기업도 이러한 수직적인 분업체계의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주 LCD단지에서는 LG디스플레이에 의한 LCD패널 생산 공장뿐만 아니라 관련 소재·부품 기업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는 대기업과 중소 소재·부품 기업이 함께 새로운 공정개발이나 원가 절감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일본 기업의 모노주쿠리(혼이 담긴 제조)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으며, 앞으로 OLED 등 차세대 패널 관련 기술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추진해 온 부품·소재 산업 육성정책이나 중소기업 지원정책, 외국의 우량 부품·소재 기업의 유지정책도 부품·소재산업 발전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일본 기업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상대적 우위가 지속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일본 기업의 구조조정 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각종 原價(원가) 절감을 통해 엔고를 극복할 수 있는 원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선진국 고급 시장이 위축되고, 고가격을 지향하는 일본 기업 제품이 타격을 받은 데 따른 대응책이다.
 
  둘째,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세계시장의 중심이 신흥시장으로 이전되는 데 따라서 앞으로 신흥국의 고급 소비계층뿐만 아니라 현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볼륨 존(volume zone)을 공략해 한국 기업으로부터 주도권을 되찾는다.
 
  셋째, 한국 기업 등과 차별화된 고기술 신제품 영역을 개발하되, 특히 親(친)환경 트렌드에 맞게 녹색산업 강화에 주력한다. 부품·소재 등 기반산업의 경쟁력을 활용해서 태양전지,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자동차, LED 조명 등의 신규 녹색산업 분야를 개척하는 한편, 가전제품이나 기계·조선·철강·화학 등 기존 제조업 분야에서도 녹색기술을 활용해서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환율 부문, 큰 걱정 없을 듯
 
  이러한 일본 기업들의 역습전략을 고려할 경우, 앞으로 엔고가 엔저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화할 때 한국 기업의 상대적인 우위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당분간 과거와 같은 초엔저 현상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를 해소하면서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엔화 강세가 어느 정도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가치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은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엔화의 급격한 절하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적어도 2010년 3월까지 정부계 금융기관의 채권이나 부동산 담보증권의 구입을 위해 계속 자금을 방출할 예정이다. 단기금리의 인상도 2010년 하반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여 2010년 상반기 중에는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뚜렷한 약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원화는 2009년 3월의 1달러당 1500원대에서 2009년 12월에 1115원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한 상태이며, 추가적인 상승 여력이 거의 소진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한국 기업으로서는 일본 기업의 원가 절감 대책이나 환율 추이를 지켜보면서 일본 기업 못지않은 원가 절감 노력이나 글로벌 생산체제 및 글로벌 조달 체제의 효율성 제고에 힘쓸 경우 일본 기업에 대한 가격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은 낮다.
 
  일본 기업의 신흥시장 재도전 전략의 경우, 일본 기업의 강점이 고가격이지만 고품질의 ‘모노주쿠리’ 전략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한계도 있을 것이다.
 
  일본 기업이 단순히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려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신흥시장의 중산층 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신흥시장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일본 기업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신흥시장에서의 기반을 중·장기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에 매진해야 한다.
 
  일본 기업이 기술적인 면에서 한국 기업을 능가하고 있는 것은 한국 기업에는 불안요인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나 일본 정부는 현재 재정상태가 악화되고 있어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세대 녹색산업의 핵심 부분을 공략하면서 일본 기업과 제휴 및 협력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또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부품·소재, 장비 부문의 중소기업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 대기업도 이들 분야를 계열기업으로 육성하면서 이들과의 심도 있는 분업이나 지식 공유체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차세대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 기업이 소니 ‘워크맨’이나 평판 TV,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원천적으로 개발한 것처럼, 한국 기업도 자체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면서 세계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이노베이터가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일본 기업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일본이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힘   ‘기술’의 일본,‘표현력’의 한국 그 승부처는?

⊙ 2009년 한국의 무역 흑자액(345억8300만 달러)이 일본(200억 달러)을 추월…   ‘제조업 왕국’ 일본의 자존심 구겨질 만한 수준
⊙ 한국 기업들, 미국 유럽 등 제3국 시장에선 일본 기업을 이기고 있지만,   일본 제품에 비해 기술력이 ‘2% 부족’해 일본시장에선 패퇴

車炳錫 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chabs@hankyung.com〉

<‘2009 ISU 그랑프리 파이널’ 프리스케이팅에서 안도 미키에 역전 우승한 피겨퀸 김연아가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김연아처럼 기술로도 일본기업을 완전히 추월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기술의 아사다 마오(淺田眞央), 표현력의 김연아.’
 
  일본 언론들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를 비교할 때 항상 이런 말을 쓴다. 고도의 점프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주무기로 삼는 아사다 마오와 성숙하고도 화려한 표현력이 특기인 김연아를 가장 선명하게 비교하는 표현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특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일본 기업은 자동차건, 전자제품이건 최고 품질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한국 기업은 전반적 기술이 일본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국 기업은 다소 뒤진 기술을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 ‘표현력’으로 보완해 왔다.‘기술의 일본 기업, 표현력의 한국 기업’인 셈이다.
 
  ‘표현력의 한국 기업’은 최근 ‘기술의 일본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경제 위기 이후 도요타자동차·소니 등 일본의 간판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현대자동차·삼성전자·LG전자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 기업만 보면 한국 경제는 이미 일본 경제를 따라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요타자동차의 한 간부는 얼마 전 필자를 만나 “현대자동차를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30~40%의 판매 감소로 고전했지만, 현대차는 중국·인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판매를 늘렸다”며 “그 비결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全(전) 세계 자동차 회사의 교과서였던 도요타가 후발 주자인 현대차를 역(逆)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현대차의 도약은 눈에 띈다. 현대차는 지난 1년간(2008년 10월~2009년 9월)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를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9% 늘렸다.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판매가 각각 28.6%와 40%로 줄고, 도요타(-24.4%) 혼다(-20.2%) 닛산(-20.8%) 등 일본 회사들도 20% 안팎의 감소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거둔 실적이다.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 중 거의 유일하게 판매를 늘린 회사가 현대차다.
 
  현대차는 지난 1년간 판매대수가 450만 대를 기록해 포드를 제치고 세계 4위에 올랐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568만 대로 세계 1위, GM은 551만 대로 2위, 도요타는 546만 대로 3위였다. 현대차의 好調(호조)는 도요타가 최근 미국에서 사상 최대인 426만 대 리콜(무상 수리·교환)을 실시해 ‘도요타 품질 신화’에 치명타를 입은 와중에 달성한 것이어서 더욱 돋보인다.
  
   “소니가 삼성에 패한 이유는 상품력”
 
  전자 부문에선 한국과 일본의 명암이 더욱 뚜렷하다. 한국의 전자산업은 이미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TV, 휴대폰 등에서 일본 경쟁사를 따돌린 지 오래다. 특히 최근 실적에서 일본 전자업계는 한국의 삼성전자·LG전자 등에 완패했다는 충격에 빠져 있다. 2009년 3분기(7~9월) 중 삼성과 LG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3배씩 증가한 데 비해, 일본 전자업체들은 겨우 적자를 탈피한 수준에 머물렀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약 3260억 엔(4조2300억원)에 달해 소니·파나소닉·히타치제작소 등 일본의 주요 9개 전자회사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1519억 엔)의 두 배를 넘어섰다. 1 대 9의 경쟁에서 더블 스코어로 이긴 셈이다.
 
  소니의 오네다 노부유키(大根田伸行) 부사장은 “소니가 삼성에 패한 근본적 이유는 상품력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한국 대표기업들의 善戰(선전)으로 2009년 한국의 무역 흑자액은 일본을 넘어섰다. 1~10월 중 한국의 누적 무역흑자는 345억8300만 달러로, 연간 400억 달러 돌파가 확실하다. 반면, 일본은 1~10월 중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에 그쳤다. 아무리 엔高(고) 역풍을 맞았다지만, ‘제조업 왕국’ 일본의 자존심이 구겨질 만한 수준이다. 무역흑자 규모로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기는 사상 처음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을 어떻게 따라잡은 것일까.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업계를 이긴 이유’로 제시한 다음 세 가지가 해답이 아닐까 싶다.
 
  첫째, 삼성전자는 불황기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전자업체들은 경기 침체기에 투자를 줄이기에 급급했지만, 삼성은 오히려 거액이 투입되는 반도체와 LCD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경기 회복기에 대비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기에는 설비 가격도 싸지기 때문에 이때를 투자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90년대 메모리 반도체에서 구축한 이 같은 ‘성공 방정식’이 최근 LCD와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고 분석했다.
 
  둘째, 오너의 리더십이다. 삼성전자가 경기 침체기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李健熙(이건희) 전 회장이란 존재가 있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해석이다. 일본 전자업체의 월급쟁이 사장들이 몸을 사릴 때 삼성은 오너 회장의 결단으로 과감한 투자에 나서 오늘의 고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逆샌드위치 효과’
 

삼성전자가 디지털TV 부문에서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건설한 ‘디지털 연구소’. 지상 36층 규모에 최첨단 설비가 들어가 있는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석·박사급 인력만 1500여 명에 달한다. 2001년 완공된 정보통신연구소(왼쪽)와 합치면 두 건물에서만 1만여 명의 R&D관련 인력이 근무한다.

  셋째, 글로벌 경영에 대한 熱意(열의)다. 삼성전자는 좁은 한국 內需(내수)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상품의 타깃을 글로벌 시장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내수시장에 安住(안주)하는 바람에 세계 시장에서 삼성에 밀렸다고 분석했다.
 
  휴대전화나 LCD TV 등 가전 부문에서 삼성이 세계 시장 점유율을 계속 높여가는 데는 글로벌화라는 ‘유전자’가 조직 내에 배어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삼성전자의 勝因(승인)은 현대차나 LG전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엔 엔고 好材(호재)까지 겹치면서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부품시장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고질적인 對日(대일) 역조 분야인 부품·소재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일본 공략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산 부품은 중국산보다 품질이 우수하고, 일본산에 비해선 저렴해 소위 ‘역샌드위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도요타는 2009년 1월부터 포스코에서 자동차 내부용 도금 강판을 납품받아 쓴다. 품질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도요타는 그동안 신일본제철 강판만 고집했다. 하지만 2008년과 2009년 두 해 연속 대규모 적자에 빠지자, 도요타는 비용절감을 위해 품질은 비슷하면서도 신일본제철 강판보다 5% 안팎으로 값이 싼 포스코 강판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소니와 샤프도 ‘가급적 한국 부품 조달을 늘리라’는 지침을 최근 부품 구매부서에 통보했다. 핵심 부품이 아닌 범용 부품은 몇 엔이라도 싸면 한국산을 쓰라는 지시다. LG재팬 관계자는 “샤프의 경우 LCD TV에 들어가는 편광확산필름 등 화학제품의 구매 의사를 밝혀 왔다”며 “그동안은 우리쪽에서 매달려도 안됐는데 스스로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일본의 안방에 완전히 진출한 건 아니다. 아직도 일본의 완제품 내수시장은 여전히 한국 기업에 難攻不落(난공불락)이다. 현대차가 일본에서 승용차 판매사업을 중단하기로 최근 발표한 것은 상징적이다. 현대차가 일본 내 승용차 판매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은 판매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2001년부터 일본에서 승용차를 판매한 현대차는 현재까지 누적 판매대수가 1만5000대에 그친다. 2009년 1∼10월 판매대수는 764대에 불과했다. 일본 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로는 0.54%로 미미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일본내 TV시장에 한때 도전했다가 지금은 철수한 상태다. 현대차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일본 내수시장에선 완패
 
  미국 유럽 등 제3국 시장에선 일본 기업을 이기고 있지만, 아직 일본 내수시장에선 완패하고 있는 게 한국 기업의 현실이다. 한국 제품이 일본 시장에서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최고 품질 제품에 길들여진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못 맞추고 있어서다. 요컨대 일본 제품에 비해 기술력은 여전히 ‘2%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다지만, 여전히 핵심 부품·소재는 대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표현력의 김연아’는 부단한 노력으로 점프 기술을 향상시켜 2009년 ‘기술의 아사다 마오’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이제 김연아는 ‘표현력’만이 아니라 ‘기술’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완전히 추월할 수 있는 열쇠도 김연아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본 제조업이 위기 맞고 있는 이유  ‘품질위주’ 경영방식이 아시아 중산층 시장에 적응 못해

⊙ 일본 기업들의 高품질, 高가격 제품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 시장 붕괴하면서 곤경에 처해
⊙ 일본이 자랑하던 기술·품질·현장중심 경영이 소비자의 요구와 괴리 초래

朴紀任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
⊙ 1976년 부산 출생.
⊙ 경희대 경제학과 졸업. 日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사,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일본 기업이 자랑해 온 기술 중시, 품질 중심 경영이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진은 도요타자동차 공장.>

2008년 9월 발생한 미국 리먼 쇼크는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이멜트 CEO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닌, 자본주의의 재정립이다. 순환적 변화가 아닌, 不可逆的(불가역적) 변화”라고 말했다. 歐美(구미)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급감한 글로벌 소비수요는 경기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예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리먼 쇼크가 가져온 변화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시아 신흥국 시장의 부상이다. 과거 글로벌 기업은 구미의 선진 소비시장에 의존했고, 아시아 시장은 생산공장 역할을 담당하면서 구미시장을 일부 보완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이제 선진 시장은 더 이상 새로운 소비수요를 창출할 수 없게 됐고, 기업들은 예전처럼 선진국 시장에 의존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게 됐다. 경제성장, 소비, 설비투자 등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경제는 앞으로 신흥국 경제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G20 頂上(정상)회담이다. 예전에는 글로벌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G7 정상회담이면 충분했다. 선진국 경제 성장세가 탄탄하고, 경제규모 역시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선진국 경기가 활기를 잃어 가고, 2000년 이후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흥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 신흥국이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부상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투어 아시아 시장에 대한 연구와 진출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들이 새롭게 주목하는 시장은 아시아 시장 내에서도 특히 ‘중산층 시장’이다.
 
  아시아 중산층 시장이란 ‘연간 가구별 可處分(가처분) 소득이 5000달러에서 3만5000달러로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하는 의류·가전·승용차 등 일반적인 소비재에 대한 실질적 구매력을 보유한 계층’을 말한다. 일본의 <2009년 통상백서>에 따르면 아시아 중산층 인구는 1990년 1억4000만명에서 작년 8억8000만명으로 약 6.2배 증가했다. 특히 중국(4억4000만명), 인도(2억1000만명) 시장이 가장 두꺼운 중산층을 보유한 유망시장이다. 
   
  아시아 중산층 소비시장의 급부상
 
  지금까지 일본 기업들이 추진해 온 수출전략을 축약하면 ‘구미·상류층·부품소재’ 중심이다. 이 수출노선에 힘입어 일본은 제조업 수출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일본의 ‘모노즈쿠리’(일본 제조업 특유의 조직능력. 장인정신을 갖고 혼신의 힘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뜻)는 세계적으로 널리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시장은 ‘아시아·중산층·소비재’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은 주력 시장을 아시아 중산층 소비시장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데 과거 ‘구미·상류층·부품소재’로 특화했던 일본 기업들은 그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탄탄한 디딤돌이라고 믿고 완전히 무게중심을 실었던 시장이 어느새 진흙의 늪으로 바뀌어, 이제는 발을 빼려 해도 좀처럼 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수출전략을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구미 중심 수출
 
  위기 이전인 2005~2007년 3년간 일본의 지역별 수출을 보면 선진시장인 미국·EU 지역으로의 수출비중은 36.4%로, 신흥지역인 중국·아세안으로의 수출비중 26.8%보다 9.6%포인트 높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수출증가율은 중국·아세안 지역이 평균 13.3%로 미국·EU 지역의 평균 8.2%보다 오히려 높다. 즉 일본은 지금까지 수출증가율이 낮은 구미 선진시장을 중심으로 수출해 왔다.
 
  일본 수출의 미국시장 의존도는 특히 자동차의 경우 심각한 수준이다. 2009년 1~8월 중 일본의 총수출 중 자동차(부품 포함) 수출은 10.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對美(대미) 수출이 34.5%에 달한다.
 
  자동차 강국 독일과 비교해 보면, 독일은 총수출 중 자동차의 비중은 12.6%로 일본보다 다소 높지만, 대미 수출비중은 24.3%로 10%포인트가량 낮다. 일본 자동차 산업이 대미 수출에 의존하여 불균형적으로 성장한 반면, 독일 자동차 산업은 미국 외에도 영국·스페인·체코 등 인근 EU국가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성장해 온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의 타격을 유독 크게 받은 직접적 이유는 일본 수출의 과도한 대미 의존도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對(대) 세계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자동차 수입의 경우 위기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당연히 대미 자동차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수출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2009년 9월까지 한국·중국·독일의 대미 수출 감소율은 前年同期(전년동기) 대비 15% 전후인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의 대미 수출은 30% 이상 감소했다. 
    
  너무 고기능, 값비싼 제품에 주력
 
  부품소재 중심의 수출
 
  2009년 1~9월 중 일본의 용도별 수출을 보면 자본재 비중이 50.8%, 원자재 비중은 23.9%를 차지하고 있다. 자본재·원자재의 수출 비중을 합하면 74.7%이며, 소비재의 비중은 겨우 19.3%에 불과하다. 특히 소비재 수출 중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되는 비중은 6.4%에 불과하다.
 
  일본 기업이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부품소재 분야 역시 소비재가 아니다. 일본 기업은 수출단가가 높고 後發(후발) 경쟁자의 추격이 어려운 부품소재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부품소재는 결정적으로 시장규모 자체가 작은 틈새시장이다. 대표적 부품소재로서 일본 기업이 9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HDD(1.8형), LCD용 편광판 보호필름, DSC용 이미지 센서 등의 세계 시장 규모는 1조 엔이 채 안된다. 세계 시장 규모가 100조 엔 전후인 자동차·정보통신기기, 컴퓨터 등의 소비재에서 일본 기업의 점유율은 40% 정도에 불과하다.
 
  상류층 중심의 수출
 
  일본 기업의 소비재 수출을 보면 가전·승용차 등의 主(주) 타깃시장은 高(고)가격 고기능을 탑재한 프리미엄급 제품 중심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일본 기업들이 해외시장 개척보다는 안전한 內需(내수)시장 확보를 우선시해 왔다는 점이다. 일본 내수시장은 인구 규모가 1억3000만명인 데다 고소득층 시장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품질요구 수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일본 기업들은 自國(자국)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은 상품은 해외시장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상품기획 단계부터 철저히 고소득층인 일본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삼았고, 내수시장에서 판매 히트한 품목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구미 선진국의 상류층을 주로 공략했다.
 
  둘째, 일본은 과거 1, 2차의 엔고 시기와 최근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엔고 위기에 직면하면서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를 고기능·고부가가치화 전략을 통해 극복해 왔다. 신뢰중시, 최고의 품질, 최첨단 기술, 친환경, 인본주의 등 일본 기업들이 추구해 온 소위 ‘일본적 가치’는 궁극적으로 ‘고급스러움’으로 귀결되는 일본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이는 주로 상류층이 추구하는 가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과잉품질’의 함정에 빠지다
 

중국 소비자들이 매장에 진열된 LG전자의 TV를 살펴보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 중산층 소비자들은 일본 제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구미 상류층 소비자들처럼 고급스러운 ‘일본적 가치’를 추구하여 기꺼이 비싼 돈을 내고 일본제품을 구매할까?
 
  머릿속에 간단한 상황을 그려 보자. 상점 진열대에서 최첨단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에 반해 상품을 집었다가 비싼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라고서, 이내 “아, 일본 제품이구나. 역시…”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사고 싶기는 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몇 번이나 지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게 만드는 제품. 일본 제품에 대해 아시아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바로 이렇다.
 
  이렇게 고민하는 소비자 중 일부는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만,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게 된다. 문제는 아시아 중산층 소비자 중에는 이처럼 일본 제품을 ‘그림의 떡’으로 생각할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느끼는 품질의 만족도는 절대치가 아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주는 만족감. 즉 품질 만족도는 상대적인 가치다. 일본 기업들이 오늘날 심각한 판매부진에 허덕이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이러한 품질의 ‘상대적 가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내부에서 일본 제품의 ‘過剩(과잉)품질’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과잉품질’이란 소비자와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 품질이 넘친다는 뜻으로, 바꿔 말하면 기대보다 가격이 너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중국 등 동남아産(산) 제품의 품질 수준이 기대치보다 못한 경우를 ‘過少(과소)품질’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과소품질의 중국산 제품을 외면하지만, 과잉품질인 일본산 제품도 외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들은 어쩌다 이처럼 소비자의 요구에 맞지 않는 ‘과잉품질’ 제품을 생산하게 됐는가? 크게 세 가지의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품질 제일주의, 현장중시의 경영
 
  일본 제품의 과잉품질은 일본 기업의 ‘바텀 업(Bottom Up)’형 지배구조에 기인한 바가 크다. 구미기업의 지배구조는 ‘톱 다운(Top Down)’형으로 기업 조직 중에서 최상부에 위치한 경영자층의 의견이 하부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반면 일본 기업의 ‘바텀 업’형 지배구조는 하부에 위치한 다수의 실무자의 의견이 조정과정을 거친 뒤 상부의 경영층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일본 기업의 경영 스타일을 ‘현장중시’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을 읽지 못했다
 
  기업의 실무자는 엔지니어들이다. 이들의 사명은 첫째도 품질提高(제고), 둘째도 품질제고, 셋째도 품질제고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러한 엔지니어들의 품질제고 노력과 독창적 아이디어를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인식하여, 기업의 全社的(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최대한으로 이들을 지원해 왔다.
 
  일례로 혼다자동차의 경우 자동차 설계를 담당하는 혼다 연구소는 子(자)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독립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제품설계’는 오로지 연구소만의 聖域(성역)으로 인정해 줬다.
 
  덕분에 자동차 특성상 총생산비의 90%가 설계단계에서 결정됨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 모든 부서가 초긴축 원가절감에 주력할 때에도 설계부서만큼은 예외였다. 일본 기업이 과거 ‘잃어버린 10년’간 지속적인 원가절감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그 성과가 미진했던 것은 이런 ‘과잉품질’에 대한 개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갇혀 시장변화를 읽지 못해
 
  일본 기업이 시장의 요구와 동떨어져 성장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이 철저한 ‘매뉴얼’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일본의 현장중시 경영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경영에 대해 문외한인 실무자 엔지니어가 최고경영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형화된 매뉴얼에 근거하고,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반복적인 테스트의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실무자가 차후의 경영판단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철저한 매뉴얼에 입각하는 것이다.
 
  매뉴얼과 테스트의 결과에 의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와는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다. 시장 트렌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소비자의 요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自社(자사)가 속한 산업은 계속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보다는 실험실 안에서 무한 반복한 테스트의 결과를 분석하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의 假定(가정), 또 가정을 거듭해 품질의 極限(극한)을 추구한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은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보다는 기술적으로 우수한 제품, 불량률 제로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더 주력해 왔다. 노키아가 高價(고가)와 低價(저가)시장의 양면을 공략하여 점유율을 높여 온 반면, 기술 중심주의, 현장 중심주의가 강한 일본 전자기업들은 저가시장 성장이라는 환경 변화를 읽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일본, 한국 부품 많이 찾을 것
 
  부품소재는 B2B 거래 중심으로 소비자 분석이 불필요
 
  일본 기업들이 시장의 요구를 읽는 데 상대적으로 게을리했던 것은 지금까지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수출해 온 품목은 부품소재·자본재로서 대부분 B2B(기업 대 기업) 거래로 이뤄진다.
 
  부품소재나 자본재의 경우 품질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완제품 생산업체가 요구하는 사양에 품질조건만 우수하다면 판매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와 시장의 니즈를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아시아 중산층 시장공략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현재의 시장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 기업보다는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업계를 필두로 한 일본 기업들의 암담한 실적에 비해 한국 기업들은 눈부시게 화려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영업손실 규모는 구조조정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실제 손실보다 부풀려져 있다는 점과, 한국 기업들의 성과는 환율효과에 의한 錯視(착시)라는 등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보다 앞으로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필요한 실탄이 두둑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최근의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일본 기업들은 신규 설비투자를 무기한 연기하거나, 사업규모를 축소하는 등 방어적 경영태세에 주력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오히려 설비투자를 과감히 확대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시장점유율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불황기에 확보한 시장점유율은 경기 회복기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므로 앞으로 한국 기업의 전망은 상대적으로 밝다.
 
  일본 기업들은 앞으로 아시아 중산층 소비시장 공략을 위해 부품의 아웃소싱을 적극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중국을 중심으로 인도, 아세안(ASEAN) 지역에는 이미 한국의 수많은 중소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현지 진출 한국 대기업 외 글로벌 기업의 현지법인 또는 로컬 기업들과도 활발히 거래하고 있다.
 
  품질제일주의를 지향해 온 일본 기업들에 있어 새로운 부품 조달처로서 우선 검토대상은 대만·중국계 기업보다는 한국계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韓日 기업 간 네트워킹이 필요
 
  일본 기업의 생산시설은 이제 대부분 해외로 이전한 상황으로, 중국 등 현지에서 가공 조립한 제품의 상당수가 다시 일본으로 逆(역)수입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현지 일본 공장으로 부품을 납품할 경우 한국 부품은 완성품 형태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것이다.
 
  중국 등 해외지역에서 한일 기업 간 비즈니스 성사는 향후 한국 기업의 대일본 직접수출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시장 진출에 빈번히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기업만의 독특한 商(상)관행에 대한 경험부족이다. 일본 기업과의 비즈니스 경험과 그들을 상대하는 노하우 등이 축적되면 한국 기업들은 對日(대일) 수출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나아가 우리나라의 대일 적자 해소에도 보탬이 될것이다.
 
  아시아 中低價(중저가) 소비시장은 한일 기업 외에도 구미·대만·중국 등 무수한 글로벌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단기전 승부에 치중하면 업체 간 무모한 출혈경쟁으로 번질 우려가 높다.
 
  아시아 시장의 키플레이어로서 한일 기업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장기적으로 아시아 중산층 소비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넘어야 할 山, 日本  일본 기업들, ‘21세기형 곤충전략’으로 저력 발휘

⊙ 농업, 에너지산업 등의 분야에서 21세기 산업혁명 진행 중
⊙ 强小 중소기업들, 기술력 바탕으로 대기업과 공존
⊙ 신용과 사회적 책임 중시하면서 혁신 거듭하는 장수기업들

廉東浩 호세이대 비교경제연구소 겸임연구원
⊙ 1966년 광주 출생.
⊙ 경희대 졸업. 일본 호세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 저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시스템 개혁> <괴짜 경영학>.

<일본은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태양광 마을.>

20세기는 ‘시간’과 ‘정보’, 그리고 ‘공간’의 차이를 해소하고 선점하는 주체가 사회경제적 富(부)를 차지하는 시대였다. 일본은 이를 極小化(극소화)를 통한 ‘곤충전략’으로 정복하고 시장을 확대하며 경제대국을 이뤘다.
 
  ‘곤충전략’이란 곤충은 지구 생물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물속이든 공중이든 어디에든 서식한다.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인데, 일본 기업들은 작지만 장수할 수 있는, 즉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21세기는 물질과 정보의 공급과잉으로 넘쳐나 희소가치는 ‘量(양)’에서 ‘質(질)’로 변했다. 게다가 수명이 늘어난 인간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만족’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감동’으로 사고의 축이 바뀌고 있다. 여기에 인간 본연의 요소와는 다른 ‘지구온난화’라는 환경변화가 21세기 최대 테마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의 현 위치를 직시하고 21세기 일본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지금 일본은 ‘경제의 기둥’이라던 제조업이 흔들리고, 사회안전망이 약화된데다 高(고)실업률, 고령화와 低(저)출산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한시적인 뒷걸음질’이라는 견해와 ‘녹슬어 가는 제국’이라는 분석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일본 기업은 ‘가이젠’(改善)의 형태로 창조적 파괴를 거듭했다. 그들의 성장전략은 ‘곤충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콘셉트라는 개념에 투영되는 형태로 21세기에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잉태한 ‘곤충전략’의 바탕에 ‘長壽(장수)기업’이 있었고, 이들 장수기업은 지금 그들만의 전통기술에 첨단기술을 융합하는 형태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아직도 ‘첨단기술=경쟁력=고용창출=성장’이라는 20세기 성장공식에서 허우적거리는 정치가와 경제인이 적지 않지만, 산업 간 벽이 사라지고, 최첨단 컴퓨터 칩이 미래의 농업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일본 기업들의 ‘장수전략’과 ‘21세기형 곤충전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 산업 ■
 
  농업혁명: 농산품 공장에서 14모작까지 가능
 
  21세기 성장동력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식량산업과 에너지산업이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 농업분야다.
 
  일본에서 농업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견인산업’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에 브랜드쌀을 수출하고 대기업이 농산품 공장을 세워 2모작에 불과했던 농산물을 14모작까지 해내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 기운에 따른 것이다. 기업의 첨단기술과 자금력, 경영노하우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인구 4500만명의 內需(내수)시장을 지닌 우리에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세계시장 확보다. 그래서 FTA(자유무역협정)가 지지를 받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흐름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비켜갈 수 없는 대세다.
 
  여기에 커다란 걸림돌로 인식되어 온 것이 농업이다. 그러나 식량의 70%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우리로서는 농업은 걸림돌이 아니라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으로 인식해야 한다.
 
  일본이 모든 경제교섭에서 농업을 양보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농업종사자의 이해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장래 일본의 생존권이 달려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유엔인구기금의 세계인구보고서(2009년)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세계인구는 7970만명이나 증가했다. 이런 속도라면 2010년에 지구 인구는 70억명을 돌파한다.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위해서는 곡물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곡물산업으로 몰려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에게도 기업형 영농법인화 등 몇 가지 성공사례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규모와 파워로는 21세기 식량문제와 FTA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남극기지에까지 야채공장을 만든 일본은 화학회사가 콘크리트 야채공장을 만들고 반도체 센서 연구자가 농장을 자동화할 땅속에 묻을 센서를 개발하는 등 21세기형 농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산업
 
  에너지는 성장동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1차에너지의 89%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도 에너지 문제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상시 국가비축 95일분, 민간비축 80일분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 석유위기 이후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국가의 안전보장에 직결되는 과제로 선정하고 모든 기회와 채널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주력해 왔다.
 
  이때부터 시작된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1970년대 이후 선샤인계획(1974), 신재생에너지법(1997) 등을 통해 태양열·地熱(지열)·수소에너지 등의 연구 개발로 이어졌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海藻(해조)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개발은 民官(민관)합동의 해상플랜트 건설 계획인 ‘아폴로&포세이돈 2025’ 등으로 이어졌고, 길이 2km, 폭 70m의 해상을 떠다니는 거대 해상 풍력발전소 건설 추진으로 발전했다.
 
  이 가운데 가장 앞서고 있는 태양광은 발전 코스트를 현재의 46엔/kWh에서 2030년에는 7엔/kWh까지 줄이고, 배터리 성능을 2020년에 현재의 3배, 2030년까지 7배로 늘린다는 기술개발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이상대로라면 20세기 중동에 의존했던 에너지를 21세기에는 일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전통과 첨단산업의 융합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산업의 벽을 무너뜨리는 융합도 있다. 땅속에 반도체 센서를 묻어 수분, 영양분, 온도 등의 자료를 수집해 자동으로 제어한다는 발상은 아마 일본 아이치현 농업종합시험장이 처음일 듯싶다. 도요하시기술과학대학 사와다 교수의 협력으로 성공한 이 농장은 물과 비료 산포는 물론 창문 개폐를 자동으로 제어해 온도를 조절한다.
 
  또 후쿠이현의 건축자재회사 아사노 불연목재는 지역의 전통산업인 섬유산업의 섬유에 방부제를 주입하는 특수 기술을 응용해 쇠나 콘크리트 수준의 불연목재를 개발했다.
 
  미야기현의 센주기켄은 화산재의 일종인 모래로 SPG-시라스 다공질 유리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로 반도체 칩에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한다볼’을 직경 30미크론, 즉 현재의 10분의 1 크기인 100분의 3mm 크기로 개발해 휴대전화와 의료기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모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규슈지방에서는 너무 많아 처치곤란의 골칫거리였다. 기술이 융합되면 화산재도 황금모래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여성인력을 활용하라
 
  일본 도쿄에 직원의 20%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회사가 있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복사도 하고 가슴에 안고 컴퓨터 작업도 한다. 이 회사는 연간 4만 개의 외출용 수유복을 제조 판매하는 모-하우스다. 보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 수에 관계없이 데리고 출근해도 된다.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직원은 150명 정도인데, 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회사는 우수한 인재를 얻을 수 있었다. 출판사 편집인, 건축사, 통역사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스태프가 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여성의 약 70%가 출산을 계기로 퇴직을 하고 있다. 퇴직 이유는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가 어렵다는 것. 우리도 노동력 추이와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환경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회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
 
  일본 중소기업 연구의 大家(대가)인 기요나리 다다오(淸成忠男) 호세이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지속가능 성장 메커니즘의 열쇠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小國(소국)전략”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 중소기업은 全(전) 기업의 99.7%나 된다. 고용의 66.9%(한국 83.9%)를 담당할 만큼 국민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중소기업이 相生的(상생적)인 공존관계에 있고, 중소기업 정책의 전제 인식이 보호나 지원대상, 또는 ‘소수’가 아니라 ‘활력있는 다수’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1960~70년대에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격차를 시정하고 근대화해야 하는 보호대상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을 전제로 해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 脫(탈)중소기업화로 중소기업의 개성이 상실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이후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대·중소기업의 분업, 중소기업의 다양성과 전문성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중소기업이 존재하게 되었다.
 
  중소기업 정책과 중소기업의 선택에 대해 기요나리 다다오 교수는 “우수한 관료나 정책이 자립형 强小(강소)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므로,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중소기업은 정책의존적 기업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는 기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도 처음부터 대·중소기업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일본의 상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부품기술이 母(모)기업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모기업 의존적인 상생관계는 일본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청기업의 기술수준이 낮으면 가격인하를 요구 받거나 퇴출되는 사례는 일반적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기업이 지금 대기업의 하청기업이 되었고, 대기업도 기술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부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상생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商道(상도) 등 기업문화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기업의 자비나 도덕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기업의 냉엄한 현실을 알기 때문에 일본 중소기업들은 기존 기술을 지속적으로 연마하고 발전시켜서 오늘날 개발형 강소기업이 늘어난 것이다.
    
  ■ 기업 ■
 
  1. 상장보다 존속
 
  20세기 일본 기업의 성장전략은 성장을 우선시하는 ‘코끼리 전략’이 아니라 정밀기술과 수익을 추구하는 ‘곤충전략’이었다. 코끼리는 지구상에 인도와 아프리카 두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곤충은 지구 생물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물속이든 공중이든 어디에든 서식한다. 그만큼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인데, 일본 기업들은 작지만 장수할 수 있는, 즉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21세기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장수’는 바로 ‘생존’을 의미한다. 일본은 세계에서 장수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30년 이상 존속한 기업 가운데 24년 이상 흑자를 내고 15년간 매출액이 증가한 기업을 장수기업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일본에는 100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이 5만 개나 된다(10만 개라는 연구도 있다).
 
  200년 이상 장수기업의 국제비교에서도 일본 기업의 장수성은 현저하다. 전세계 200년 장수기업은 5586개. 이 가운데 아시아대륙에 57.41%인 3214개가 있고, 그중 3146개가 일본에 있다. 1000년 이상 된 기업도 전 세계 8개 가운데 7개가 일본에 있다.
 
  통계자료를 구할 수 있는 도쿄상공리서치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00년 이상 業歷(업력)의 기업은 66.3%가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上場(상장)기업은 2.19%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95%에 달하는 기업이 향후 상장할 의사가 없다. 상장이 기업가의 꿈이자 지상명제로 생각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과는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2. 신용은 생명이다
 
  이러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요시하는 경영요소는 고객(98.7%)과 거래처(92.6%)와의 신뢰였다. 自社(자사)의 최대 강점을 신용력이라고 평가하는 경영자도 54%나 됐다. 이는 가격이 아니라 기술력과 서비스로 경쟁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용을 중시한 경영 사례는 산처럼 많다. 한 예로 1689년에 창업한 스즈키 주조점은 고객과의 신뢰를 위해 창업 이래 320년 동안 다음과 같은 경영원칙을 지켰다. ①과분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②자사 제품의 80%를 지역주민에게만 판매하며 ③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前年(전년) 판매량의 5%만 증산한다는 경영원칙이다.
 
  여기에는 지나친 성장을 추구하면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기업이 경영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며, 지역주민이라는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정된 성장도 어렵고 존속도 어렵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3. 전통기술과 신기술의 융합,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라
 
  100년 기업의 47.4%가 기업의 전통적인 노하우나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독자적인 기술 보유율이 63.3%나 됐다.
 
  이런 원기술을 바탕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해 온 대표적인 기업이 金極細線(금극세선) 세계 공급량 1위의 다나카귀금속(1885년 창업)이다. 금 1g을 0.05㎜의 선으로 3000m까지 늘릴 수 있는 나노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전당포와 환전상으로 시작했다.
 
  전당포에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금속을 처분할 때 제값을 받지 못하자 이 회사는 金地金(금지금)으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얻었다. 이어 전화와 TV산업이 발달하자 금덩어리는 다시 혹한과 폭염에서도 변형되지 않는 극세선으로 변했다. 전통기술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응용한 다나카귀금속의 연간 매출액은 1조 엔을 눈앞에 두고 있다. 
    
  4. 창업이념을 잊지 마라
 
  ‘개선’이라는 형태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 왔지만, 이들 100년 기업 가운데 87% 가까이가 창업 이래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바로 ‘창업이념’이다. 社是(사시)나 家訓(가훈)의 형태로 남아 있는 창업이념은 이들 경영자에게 경영의 좌표로 인식되고 있다.
 
  창업이념이란 바로 初心(초심)이다. 기업이 ‘초심’을 잃었을 때 부패가 발생하고 방만한 경영의 길로 들어선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에 발생한 유키지루시유업(雪印乳業)의 집단 식중독 사건이다. 불과 10여 일 만에 1만3420명에 달하는 집단 식중독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경영진은 변명으로 일관하며 제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각 사업부문은 다른 회사로 넘어가는 등 전면적인 재편이 이어지면서, 결국 社名(사명)이 시장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1925년에 창업해 오랫동안 업계 수위를 지켜 왔던 이 회사는 연결매출액 1조 엔이 넘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품회사였다.
 
  원인은 자사 기술과 관리체제의 과신, 자동화로 인한 현장경험과 판단력 저하, 소비자를 경시하고 이익을 중시한 ‘경영합리화’였다. 마쓰오카 노리오(松岡紀雄) 가나가와대학 교수는 “초심을 잊었을 때 기업은 부패한다”고 말한다. 
    
  5. 경영자는 소비자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
 

2000년 6월 일본 최대의 식중독 파문을 일으킨 유키지루시유업 간부들이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야마이치(山一) 증권이 망하던 날, 폐업 기자회견에서 사장이 직접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눈물을 흘리며 사회를 향해 직원들의 재취직을 호소하던 모습을 12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국민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 대표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아키오 부사장이 창업가 일족의 복귀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국민들을 향해 포부를 밝혔던 것처럼, 일본 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자신의 경영방침을 소개하고 기업의 현 상태를 밝히는 사회와의 소통에 인색하지 않다.
 
  한 달에 2~3일밖에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니혼덴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사장도 잡지 인터뷰와 TV를 통해 국민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다. 4년 전 교토 본사에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서슴없이 “그게 기업 경영자의 책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6. 사회 책임경영(CSR)을 넘어 기업의 전략적 사회공헌 추진
 
  대부분 일본 기업의 사시나 경영원칙에는 ‘사회에 대한 공헌’이 들어 있다. 사회의 公器(공기)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성장과 존속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도치기현에 있는 ‘빵 아키모토’는 통조림 빵을 제조하는 회사다. 이 빵은 2009년 1월 미국 NASA의 우주식으로 선정돼 우주비행사들의 식량으로 제공됐다. 캔 한 개에 400엔으로 비싼 편이지만 37개월이나 맛의 변화 없이 보존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빵 아키모토’는 수익금으로 세계 각지의 자연재해지에 자사의 빵을 무료로 보내고 있으며, 구캔초(救缶鳥) 시스템을 통해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통조림 빵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전략적 사회공헌(책임) 경영으로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런 활동은 장래 시장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도 전략적인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7. 경쟁보다 相生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교토식 경영이 바로 대표적인 상생 경영의 산물이다. 교토에 근거지를 둔 기업들은 같은 분야의 다른 기업을 지원하며 새로운 기업의 잉태를 서포트한다. 대표적인 예로 1973년 창업해 중소형 모터와 전원장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니혼덴산을 들 수 있다.
 
  나가모리 사장 스스로가 인정하듯 니혼덴산도 경영위기시 파트너로 생각해 온 옴론의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두세 명의 기술자로 시작한 이들 후발 기업은 선발 중견 대기업들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성장 후 이들 대기업에 세계 최고의 기술과 부품을 제공하는 상생 구조를 일궈낸 것이다.
 
  우리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리스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금융위기나, 리먼 쇼크 등을 통해 실감했다.
 
  구글 자신이 수많은 미니 구글을 만들어 내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창조적 파괴를 지속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정열’로 가득한 벤처와 중소기업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가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마인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다.⊙

 

駐韓 일본특파원이 바라본 한국경제  ‘일본의 실패’ 답습하지 말아야 진정한 ‘추월’ 가능

⊙ 필리핀에 노동시장 개방을 두려워한 ‘일본의 실패담’을 거울 삼아 韓國은 이웃 나라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야
⊙ 일본의 NGO 단체, 필리핀의 젊은 인재 양성에 헌신.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오사와 분고(大澤文護)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필리핀 마약단속청(PDEA) 소속 마약분석관 앤 도밍고(왼쪽)씨와 자펫 산티아고 씨. 대검찰청에서 마약감식 기법을 배우고 있는 이들은 “한국의 감식 기법을 배워 필리핀의 마약 퇴치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4조2300억원 對(대) 1519억 엔(약 2조원)’. 한국의 최대 기업 삼성전자와 同種(동종) 분야의 일본 기업 9개사의 영업이익을 비교 소개하는 경제지 기사를 보고 있자니 과연 수긍이 갔다. 2009년 4월, 7년 만에 다시 한국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몰라보게 현대적으로 변모한 서울의 거리 모습을 보고 全(전)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투자가 가능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 모색에 고전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세계적인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경제 底力(저력)을 탄탄하게 다져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7년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불안이 솔솔 싹트고 있었다. 번영의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제 한국인들도 생각할 시점에 온 것은 아닐까? 독자들이 필자의 불안감을 이해할 수 있도록 4년 동안 필리핀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리핀에는 일본의 원조가 넘쳐난다. 고속도로, 공항, 교량 등 대형 公共(공공)건축물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로 건설되었다’는 표시가 있다. 일본과 필리핀의 戰後(전후·제2차 세계대전) 60년은 일본이 필리핀에 행한 원조와 지원의 역사였다.
 
  특히 ‘Japan is number 1’이라 불리던 경제 고도성장기에는 자동차, 전자, 섬유, 식품 등 모든 기업이 진출해 저마다 공장을 필리핀에 세우고 생산을 확대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근로자들에게 일본은 ‘황금의 나라’였다.
 
  일본의 필리핀 진출과 더불어 많은 필리핀 여성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국내경기 침체로 취직이 어려워지자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의 일자리로 눈을 돌렸던 것이다. 많은 이가 ‘황금의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門戶(문호)를 굳게 닫은 일본에서 ‘취업비자’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수나 무용수를 대상으로 하는 ‘흥행비자’를 취득하는 일이 그나마 유일한 예외였다.
 
  가장 많을 때는 연간 8만명이나 되는 젊은 필리핀 여성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실제는 술집에서 접대하는 일인 줄 알면서 흥행비자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알게 된 일본 남성과 인연을 맺어 그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예도 많았다. ‘일본인과 결혼하면 滯在(체재) 비자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신닛케이진의 존재
 

2009년 5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필리핀 양국 정상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건배하고 있다.

  지금도 일본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신닛케이진(新日系人)’이 많다. 그러나 일본인 아버지가 養育(양육)과 認知(인지)를 거부해 어머니와 아이만 필리핀으로 돌아가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속출했다.
 
  세부 섬에서 15세, 12세 두 형제를 키우고 있는 한 필리핀 여성은 ‘흥행비자’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은 경우다. 그러나 그 여성은 이혼 후 두 아이를 데리고 필리핀으로 귀국했다. 고향의 여동생에게 두 아이의 양육을 맡기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소식이 끊겼다.
 
  두 아이를 떠맡게 된 여동생은 아이들이 병에 걸리자 일본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는 위로금을 보내 왔다. 아버지는 전화로 “아이들이 보고 싶다”면서도 “일본으로 오라”, “필리핀으로 만나러 가겠다”는 말은 없었다. 15세 난 형은 “아버지는 일본에서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면서 “그래서 우리에게 만나자는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꾹 눌러 담았다.
 
  일본과 필리핀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다준 ‘사건’이 벌어졌다. 2006년 일본과 필리핀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합의한 것이다. 일본은 FTA를 ‘경제연계협정’이란 의미로 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라고 부른다.
 
  자유무역협정 내용 가운데 일본이 필리핀 간호사, 介護福祉士(개호복지사·Care Worker)의 진출을 허용한다는 합의 내용이 가장 큰 주목을 끌었다. 이 내용이 공표되자 필리핀인들은 실망스런 반응을 보였다. 진출 가능한 인원이 2년간 고작 1000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3~4년의 연수기간 동안 일본어를 습득해 일본어로 일본 정부의 간호사, 개호복지사 자격시험을 치러 합격하지 못하면 일본을 떠나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필리핀의 대학에서 간호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인터뷰했을 때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결국 일본은 진정으로 우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일본 기업은 값싼 임금으로 필리핀 사람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경기가 나빠지자 공장을 인건비가 더 저렴한 나라로 옮겼고, 필리핀 사람들은 해고당했다. 간호사나 개호복지사 얘기도 결국 싼 임금으로 우리를 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거 아니냐?”
    
  “일본인도 취직하기 힘든데 외국인까지…”
 
한국에 시집 온 필리핀 여성 아말리아(왼쪽 첫 번째)씨가 남편 이대환(오른쪽 두 번째)씨, 딸 영미(오른쪽 첫 번째)와 함께 필리핀 수비크의 친정집을 방문했다.

  분명 3~4년 만에 일본어를 습득해서 일본인에게도 어려운 국가시험에 합격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배운 필리핀의 간호대 학생들은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지 않아도 캐나다, 미국에 가면 단기간에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일본은 또다시 필리핀 사람들에게 ‘먼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필자는 필리핀 근무를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필리핀은 일본의 구세주’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까? 테러와 범죄, 부정부패 등 많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필리핀이지만, 거기에는 일본의 미래를 지탱할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력부족,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일본 국내에서만 심각하게 논의할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자.
 
  바다 건너 남쪽의 이웃 나라에는 “도와 달라”고 말만 하면 바로 달려와 줄 필리핀 사람들이 수만 명이나 존재한다. 과거에 일본 정부는 필리핀에 연간 8만 건이나 되는 ‘흥행비자’를 발급했다. 대상자의 거의 대부분은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일본에서 ‘예능 업종’에 종사했던 여성들 중에는 일본 남성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은 사람들도 있다. 지금도 행복하게 사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일본 남성이 아이의 인지와 양육을 거부하여 ‘신닛케이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안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일자리를 잃은 母子(모자)는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고 있다. 신닛케이진의 어머니들은 지금 “아이들을 위해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는 각오를 내비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들이 다시 밤의 세계에서 불법취업을 할까봐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를 훨씬 웃도는 연간 8만 건의 흥행비자를 발급해 놓고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 주고자 하는 어머니들의 희망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
 
  흥행비자로 일본에 건너와 어렵게 일본어를 익히고 일본의 생활습관에도 익숙해진 여성들은 어느 외국 노동자들보다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반발이 거센 외국인 가정부나 가정에서 노인들을 수발하는 외국인 介護(개호) 助手(조수)로서 우선 필리핀 여성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가정 내 노인 간병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고령자를 수발하는 간병 부담은 집안일도 벅찬 주부 등 여성들이 떠맡게 된다. 특히 노인 부부만 사는 경우, 간병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하다. 그런 가정에 대가족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노인과 어린이 돌보는 일에 익숙한 필리핀 여성이 들어온다면, 어둡게 가라앉은 일본 가정이 훨씬 밝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간병과 가사로 지칠 대로 지친 일본 여성들이 활력과 여유를 되찾아 다시 사회로 나갈 의욕을 되찾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대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본 독자들은 “외국인이 들어오면 범죄가 늘어난다”, “일본 사람도 취직하기 힘든데 외국사람까지 고용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인들의 지원 노력
 
인천시 서구 가좌동 한국산업수출5공단 내 중장비 부품생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근로자들.

  필자는 지금도 그 기사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필리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가능한 한 일본 노동시장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했다. 성장 일변도의 경제발전을 경험한 일본인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그러나 일본은 결코 국제사회에서 충분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받은 필리핀이지만 그것을 이유로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다. 오히려 전후 일본과 필리핀의 관계를 이유로 일본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상대해도 언젠가 외면당할지 몰라 걱정이다.” “일본을 좋아하려 해도 일본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자기네만 번영하면 그걸로 끝이다. 번영의 공유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일본 내에 있다.”
 
  이것이 필리핀에서 접한 필리핀인들의 ‘혼네(속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잠자코 상황을 방치했던 것만은 아니다. 문제를 깨닫고 해결을 위해 애쓰는 외교관이나 기업가, NGO 리더들도 많다. 일본 정부는 정부군과 이슬람 무장세력의 전투가 계속되는 필리핀 남부의 민다나오 섬에 民生(민생)지원 전문가를 파견했다. 평화가 찾아왔을 때, 일본은 어떠한 지원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농업 지원이나 교육 지원 등 다양한 지원 아이디어도 제안하고 있다. 민다나오 섬에 거주하는 일본인 기업가는 현대적인 農園(농원) 경영을 희망하는 이슬람 지도자들과 손을 잡고 “작물의 일본 수출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의 한 NGO는 현지에서 직접 민다나오 국제대학을 운영하며 인재를 발굴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 대학에서는 좋은 인재를 선발, 일본에서 전문교육을 시켜 필리핀의 발전에 도움이 될 일꾼으로 키워 돌려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군과 이슬람 세력의 전투 격화와 天災(천재)로 인한 농작물 피해, 일본의 불황으로 인한 NGO 자금부족 등으로 각각의 활동이 모두 순조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의 노력은 ‘존경할 수 있는 일본’의 대표가 돼 필리핀 역사에 새겨질 것이다.
    
  한국정부의 ‘고용 허가제’에 주목한 필리핀인들
 
  마지막으로 화제를 한국으로 돌려보자. 필리핀 근무 당시, 필리핀 정부가 받아들인 최대의 해외투자는 한국기업의 설비 건설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들이 주목한 것은 대기업에 의한 본격적인 투자보다 한국 정부가 시작한 ‘고용 허가제’였다.
 
  한국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과 협정을 체결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연간 인원을 정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필리핀은 한국에 가장 많은 노동자를 보내는 나라로, 한국에서의 취직희망자를 모집할 때는 매회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필리핀 현지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어학교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지도 모른다.” “한국과 함께 우리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목소리가 귓가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필자는 서울특파원으로 발령받아 다시 한국을 찾았다. 공장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東南亞(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휴일이면 필리핀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시내를 거닐며 自國(자국)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며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한국에 친근감과 신뢰를 갖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그것을 고국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모국에 돌아가 한국에서 얻은 체험과 지식을 많은 고국 동포에게 전파할 것이다.
 
  필리핀인들은 한국 제품을 손에 들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 우리 친구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접한 사람들도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한국을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관계가 됐을 때, 한국은 진실로 일본을 추월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실패담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다 보니 한국도 이웃나라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부족한 듯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韓流, 한국의 日流  일시적인 ‘붐’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야

⊙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일본 여성들에게는 한국 드라마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됐다.
    전체적으로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부터 꾸준히 저변을 넓혀 가면 된다.
⊙ 무리한 전략을 세우고 억지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성공 가능성도 작고 자원낭비만 초래할 뿐.

金智龍
⊙ 1964년 인천 출생.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일본 게이오대학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 저서: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 <승부에 강한 딸로 키우는 법> <전교 1등 하는 법> 등 다수.
金智龍 문화평론가

<한류스타 배용준이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일본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한때 韓日(한일) 양국의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韓流(한류)’라는 말이 이제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붐’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의 ‘한류’는 2003년부터 시작된 한국 드라마의 붐을 말한다. 그리고 2005년경부터 붐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류’ 붐이 끝나가는 원인을 굳이 분석하려 한다면 이런 키워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전략의 不在(부재), 방송사 및 연예기획사의 횡포, 저변 확대의 실패….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이유를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한류’ 붐이 가라앉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붐’이었기 때문이다. ‘붐’이란 언젠가 종말을 맞는 운명을 타고난다. 따라서 요즘 일각에서 들리는 ‘한류 붐의 再(재)점화’라는 것도 그리 적절한 전략은 아닐 것이다. 꺼져가는 ‘붐’을 다시 살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다, 다시 살려내도 어차피 ‘붐’은 ‘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붐’ 이후의 새로운 전략을 짜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 키워드는 ‘문화化(화)’일 것이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무척 많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가 생활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떻게 축하를 해 주고, 평소 어떤 음식을 먹고, 특별한 날에는 어떻게 축하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결혼을 하는지 그 틀이 되는 것, 즉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방식을 말한다.
 
  기업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런데 만약 비즈니스가 문화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는 삶의 틀이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문화화’된 비즈니스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거대한 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밸런타인데이’다.
 
  西歐(서구) 사회의 밸런타인데이는 ‘연인의 날’로 사랑하는 연인과 꽃이나 카드, 케이크 같은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초콜릿을 주는 밸런타인데이 문화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1960년, 일본의 대형 제과업체인 모리나가제과는 신문광고를 통해 ‘1년 중 단 하루만이라도 여성이 사랑 고백을 할 수 있는 날을 만들자. 그리고 그 증표로 초콜릿을 주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 초콜릿을 많이 팔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시대를 너무 앞섰다. 1960년대의 일본은 보수적인 분위기여서 여성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백화점 앞에서 도우미들이 밸런타인데이의 의의를 역설하고 초콜릿 판매에 열을 올렸지만 전체 매출액은 170엔에 불과했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의 교훈
 
  하지만 모리나가제과는 포기하지 않았다. 문화라는 것이 한두 번의 캠페인으로 삶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콜릿 판매량은 미약했지만, 매년 밸런타인 캠페인은 지속됐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 일대 轉機(전기)를 맞았다.
 
  당시의 일본은 여성해방운동이 본격화하는 시기였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이 높아지면서 연애의 주도권도 서서히 여성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성도 사랑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쉽게 말하면 “너는 내 남자야”라고 선언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바뀐 것이 밸런타인데이의 인기를 급상승시켰고,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생활문화가 되어버린 밸런타인데이는 멋대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내면서 스스로 증폭되어 갔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밸런타인데이는 국민적 이벤트로 발전했다. 그때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의리 초콜릿’ 때문이다. 이성적인 감정은 전혀 없지만 의리상 할 수 없이 건네주는 초콜릿을 의미한다. 부모 자식 사이에 주고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직장여성이 동료나 상사인 남성에게 주는 초콜릿이었다.
 
  1980년대 이전, 일본 여성에게 직장은 결혼 전에 잠시 거쳐 가는 곳이었다. 따라서 직장 내 인간관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다. 오랫동안 있고 싶고 나아가 출세도 하고 싶다면, 상사도 챙겨야 하고 동료와도 친해져야 한다. ‘의리 초콜릿’은 여성들이 직장 내 인간관계에 얽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일본의 직장여성들이 선물하는 ‘의리 초콜릿’은 평균 9개에 이른다고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용도라면 한 개만 팔렸을 초콜릿이 9배 이상 판매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에서 밸런타인데이용으로 판매되는 초콜릿은 연간 7000억원 정도이고, 연간 총 판매량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이 여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친구 초콜릿’도 등장했다. 남성이 여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逆(역) 초콜릿’ 같은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친구 초콜릿’과 ‘역 초콜릿’은 1960년대와 마찬가지로 모리나가제과에서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인 결과인데, 이것 역시 서서히 문화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리카쨩 인형과 세일러문
 
  全(전) 세계 어느 나라건 어린 여자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패션 인형’을 좋아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비 인형’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리카쨩 인형이 독보적인 존재다. 일본의 소녀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리카쨩 인형으로 소꿉놀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카쨩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도쿄(東京)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의 관심이 세계로 향하던 시기였다. 리카쨩은 바비 인형을 일본인에 가깝게 새로 만든 것이지만, 기본 설정은 서양인이었다. ‘비행기 파일럿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를 둔 중산층 가정의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라는 설정이 리카쨩 인형의 핵심이다.
 
  1960년대의 일본은 비틀스와 미국의 홈드라마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은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었다. 소녀들은 리카쨩 인형 놀이를 하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었다.
 
  1990년대 들어서 리카쨩의 판매량은 감소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출산율 저하로 아이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미소녀 戰士(전사) 세일러문’의 인기였다. 매주 TV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는 소녀들이 리카쨩을 버리고 세일러문을 택한 것이다. 1993~95년 시기에는 세일러문 인형의 매출액이 리카쨩 인형을 누르고 패션 인형의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리카쨩 인형의 제조회사인 다카라社(사)의 관계자들은 판매 감소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카쨩을 주인공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세일러문 못지않은 인기를 쉽게 얻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영업 상무는 이런 말을 했다.
 
  “애니메이션은 언젠가 끝이 난다. 애니메이션이 끝나면 붐도 사라진다.”
 
  실제로 리카쨩은 세일러문의 인기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한 1996년 다시 선두를 탈환했다. 그리고 현재 세일러문은 사라지고 없지만, 리카쨩 인형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류’라는 말은 대만에서 제일 먼저 사용됐다. 한국 댄스음악이 붐을 일으키던 현상을 지칭하는 新造語(신조어)였다. 2003년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붐이 일어날 때 이 말이 일본에 수입되어 지금은 ‘한류’하면 일본을 떠올리게 됐다. 시장 규모가 크다는 점, 그리고 일본에 대한 경쟁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과연 ‘일본문화 붐’이 있었는가?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유희왕 카드.

  ‘한류’ 붐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 ‘日流(일류)’라는 새로운 조어가 탄생했다. 일본 내의 한국 드라마 붐을 ‘한류’라고 부르는 것처럼, 한국 내의 일본문화의 인기를 ‘일류’라고 부른 것이다.
 
  일본에서 ‘한류’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국내에서 ‘일류’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 문화가 ‘붐’을 일으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문화산업의 진정한 힘이다.
 
  요즘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에게도 출판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인 여가 활동에 속한다. 그리고 대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긴다. 초등학생들이 만화 대여점에 가면서 ‘오늘은 일본 만화나 한 번 볼까’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읽고 싶은 만화, 흥미를 돋우는 만화를 고르면 대부분이 일본 만화다. 애니메이션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이미 아이들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본 문화 자체가 붐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
 
  대신 개별 상품이 붐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유희왕 붐’ 같은 것이다. 먼저 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만화를 모티브로 만든 ‘유희왕 카드’가 수백만 개 판매됐다. 남자 초등학생용 운동화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의 절반은 유희왕 캐릭터다. 스케치북에서도 볼펜에서도 수첩에서도 유희왕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붐은 그동안 수없이 많았다. ‘포켓몬스터 붐’ ‘DDR 붐’ ‘스티커 사진기 붐’ ‘다마고치 붐’ ‘세일러문 붐’ ‘슬램덩크 붐’ ‘드래곤볼 붐’….
 
  지금의 성인세대도 청소년 시절 ‘스트리트 파이터’나 ‘갤러그’ 같은 오락실 게임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갤러그’는 추억 속의 게임이다. 한때 맹위를 떨쳤던 ‘DDR(댄스 댄스 레볼루션)’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붐’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무서운 기세로 전국을 휩쓸지만 하루아침에 식어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이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언제든 파괴력 있는 상품이 나타나 거대한 붐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유희왕 붐’도 이미 꺼져가고 있지만, 그 ‘붐’이 가라앉은 후에도 일본 문화가 생활의 일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다시 소구력이 강한 상품이 나타나면 새로운 붐이 형성될 것이다.
 
  이런 점은 할리우드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워즈 붐’ 같은 개별 상품 붐 현상이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 붐’이라는 것은 없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이미 생활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생활의 일부가 되려면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일본 대중문화는 젊은이들의 생활의 일부다. 몇 년 전부터 일본의 먹을거리 문화가 젊은이들의 생활 속으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왔다. 일본식 우동집, 라면집, ‘이자카야’라고 불리는 일본식 호프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길거리 좌판에서도 일본식 꼬치구이나 다코야키(문어빵)를 판매하고 있다.
 
  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일본 소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제 기이한 일도 아니다. 실용서 분야도 마찬가지다. 패션에서도 ‘니뽄필’이라는 일본發(발) 패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먹을거리 문화, 소설과 실용서의 인기, 니뽄필 패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문화의 특징은 역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일본 만화를 읽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에게 일본 문화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힘은 서서히 침투해 생활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 있다. 인위적으로 ‘붐’을 조성하지도 않고, 어떤 ‘붐’이 인다고 ‘붐’에 도취되어 무리하지도 않았다. 특정 스타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거창한 이벤트를 벌이지도 않는다.
 
  우리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생활로 자리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밸런타인데이를 문화로 만든 모리나가제과처럼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이 정답일 것이다. 그것 외에 문화로 정착시키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모리나가제과보다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
 
  한류 붐이 가라앉았다는 말이 더 이상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중파의 중요 시간대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심야 방송이나 재방송 시간, 위성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붐이 사라졌다는 것은 “요즘 한국 드라마가 인기라는데 나도 한번 볼까”나 “한국 드라마가 붐이라는데 안 보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겠지”라는 동기로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말이다.
 
  아직도 30대 후반에서 40~50대 여성들의 5~10% 정도는 여전히 한국 드라마의 팬으로 남아 있다. 그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는 철저하게 20세에서 35세 사이의 여성층을 상대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 이상의 연령대와 정서적인 괴리가 있다. 장면 전환과 스토리 전개가 지나치게 빠르고, 사랑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고, 황당무계한 만화 같은 설정이 많다는 점 등 중년 여성들이 일본 드라마에 등을 돌리게 하는 요소들은 무척 많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드라마들은 일본 중년 여성들의 정서에 묘하게 잘 들어맞는다.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신들이 20대 때 열광했던 청춘열애 드라마와 비슷한 것이다. 지금은 일본에서 사라져 버린 장르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 요인의 키워드로 항상 ‘향수’가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는 일본 여성들에게는 한국 드라마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됐다. 전체적으로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가 출발점이다. 여기서부터 꾸준히 저변을 넓혀 가면 된다. 성급하게 ‘20대도 공략하자’거나 ‘남성층도 공략하자’는 무리한 전략을 세우고 억지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성공 가능성도 작고 자원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팬으로 남아 있는 중년 여성들을 소중히 여기고 관리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됐든, 민간 기업이 됐든.⊙

 

共生과 통합의 파트너  韓日 FTA, 韓日 공동통화 등 검토해야

⊙ 일본 기업들 유례없이 강도높은 구조조정 중, ‘위기관리’를 넘어 ‘위기 後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어
⊙ 어려움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과의 인수·합병(M&A), 제휴 등 추진해야

崔聖煥
⊙ 1956년 대구 출생.
⊙ 고려大 경제학과 졸업. 美 펜실베이니아大 경제학 석·박사.
⊙ 한국은행 조사부·워싱턴사무소 과장, 조선일보 경제전문기자 역임.
⊙ 現 고려大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저서: <얼굴 없는 대통령> <직장인을 위한 생존경제학>.
崔聖煥 대한생명경제연구소 상무  (sungchoi@korealife.com)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이 끝나면 일본 기업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사진은 첨단 로봇을 이용해 작업하는 일본 자동차 공장.>

“우리나라 6위면 세계 6위.”
 
  全(전) 세계 造船業(조선업)에서 차지하는 우리나라 업체들의 위상이다. 10위권 내에 우리나라가 7개, 중국이 3개 업체가 포함돼 있는 반면 일본은 한 업체도 찾아볼 수 없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業力(업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와 전자제품, 자동차, 기계, 화학 등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많이 뒤떨어져 있지만 일단 일본을 앞서는 우리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런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고, 당분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近世史(근세사)에서 韓日(한일)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해서는 안될 말이지만, ‘靑出於藍(청출어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을 제치고 선두 자리를 향해 질주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일본이 앞선 기술과 상품을 베끼면 한국이 다시 베껴서 세계 시장에 내다 팔던 시절, 일본은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일종의 롤 모델(role model)이자 벤치마킹의 대상이었다.
 
  기술과 상품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 등도 거의 모두 일본에서 베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적도 있다. 특히 새로운 제도와 기관을 만들 때는 최우선 모델이 일본이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가장 먼저 진입해 저만큼 앞서 가고 있었던 데다 식민지下(하)에서 교육을 받은 선배와 上司(상사)들이 일본어에 능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일본을 따라가던 우리 기업들이 이제 일본을 제치고 앞서 나가면서 독자적인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
 
  필자는 주요국 경제의 浮沈(부침)을 보면서 돌고 도는 것은 돈이지만, 그 돈이 돌고 돌면서 만들어 내는 歷史(역사) 또한 돈에 못지않게 돌고 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경제가 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의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이후 유럽이 올라서고 미국이 올라서고 일본이 올라섰다. 지금은 죽은 줄 알았던 중국이 다시 전면에 나서면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경제를 들여다보자. 有史(유사) 이래 조선시대 초중반까지는 한국이 경제와 문화·군사력 등에서 일본을 앞서지 않았을까? 백제와 신라가 온갖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한 데 이어 임진왜란 후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그 沿道(연도)에 있는 일본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문화면에서는 18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가 앞서 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면 일본이 이미 조선보다 크게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鳥銃(조총)의 보유 수만 보더라도 당시 일본은 약 30만 정으로, 유럽 전체의 조총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결국 임진왜란 후에도 조선은 舊態(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1900년대 초반 일본의 식민지로 몰락하고 말았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될 때까지 중국과 동남아의 대부분을 竝呑(병탄)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과시했다. 패전과 함께 일본 본토로 영역이 줄어들었지만 본토의 산업시설은 거의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미국의 원조와 한국 전쟁·베트남 전쟁 特需(특수) 등에 힘입어 재건에 성공하면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35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초토화가 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전쟁의 와중이던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서 10년이 지난 1963년에도 100달러에 불과했다.
 
  다행히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이 세계적 時流(시류)에 맞아떨어지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 우리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로 늘어나는 데 빠르면 3년, 길어야 6년이 걸리면서 1995년에 1만 달러를 달성했고, 이어서 2007년에 2만 달러를 달성했다. 
    
  한국은 상용화 기술이 장점
 

삼성전자는 LED TV 등의 분야에서 소니 등 일본 기업들을 앞서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나라로는 단연 미국과 일본, 최근 들어서는 중국을 들 수 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여기서는 일본에 집중해 보자.
 
  1965년 한일 國交正常化(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교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對日(대일)청구권 자금을 경제개발에 유효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가 됐다.
 
  아울러 비슷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일본을 창구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보다 손쉽게 선진 제도와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식민지 시대에 교육을 받은 선배들과 상사들이 친분이 있는 일본인들로부터 받아오면 그것이 곧 교본이자 기술이었다. 물론 기술을 전수받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겠지만 수많은 일화와 에피소드를 거치면서 우리만의 기술과 산업문화로 體化(체화)되기 시작했다.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적잖은 반대가 있었지만 사후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교정상화가 늦으면 늦을수록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개발도 늦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에 더해 일본이라는 또 하나의 발전軸(축)을 가지게 됐다. 일본을 베껴서 미국에다 내다 파는 전략이 주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30~40년이 지나면서 일본을 추월하는 기업과 제품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이라는 방앗간 옆에 조그만 방앗간을 내서 기술과 영업전략을 배우더니 어느새 어엿한 독립된 방앗간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과정은 일본이 歐美(구미)의 장점만을 베껴서 구미를 앞선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그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이 그간 施行錯誤(시행착오)를 겪은 부분을 피해가면서 베낌으로써 그만큼 低(저)비용으로 高(고)효율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이 내놓은 길을 無賃乘車(무임승차)한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우리나라만의 장점이 가미됐다. 2006년 9월 黃昌圭(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한 강의에서 “중국이 ‘기초과학’, 미국이 ‘창의성’, 일본이 ‘匠人(장인)정신’을 들 수 있다면 한국은 ‘상용화 기술’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과 창의성, 장인정신에서는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상용화 기술에서만큼은 한국이 앞서 가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다른 기업과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지적이다. 
    
  일본기업들, 구조조정 후 다시 일어설 것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특히 최근의 성공이 상용화 기술력이나 마케팅능력 등 제품의 경쟁력 자체보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환율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일시적 두 가지 요인이 사라질 경우 다시 원위치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 기업들이 일시적인 작은 성공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은 마치 야구시합에서 主戰(주전)선수가 부상일 때 후보선수로 나와서 代打(대타) 홈런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주전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 기업들은 요즘 초강도의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끝마친 일본 기업들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대다수 전문가는 일본 기업들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거치면 또다시 세계 시장을 호령할 경쟁력 높은 기업으로 태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그에 이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것과 유사한 상황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구조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은 타고 가던 말이 시원찮으면 바로 다른 말로 바꿔버리는 반면, 일본은 시원찮은 말을 어떻게든 건강과 기운을 북돋워서 타고 다닌다.”
 
  외환위기 당시 일본의 은행과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편이기도 했지만 종신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기껏해야 은행 간 합병이 고작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은행과 대기업(30대 그룹) 절반 정도가 무너지고 사라졌다. 살아남은 은행들도 인원의 20~30%를 잘라냈다. 이렇게 태어난 새로운 말 중에 여럿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반면 일본 기업들은 유례가 없을 정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넘어 ‘위기 후 전략(post-crisis strategy)’ 수립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기업들은 이번에 위기관리를 잘해낸 데다, 일부 기업에서는 ‘위기 후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발표가 나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기업들은 연구개발(R&D)과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높여 놓은 시장점유율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다음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류 기업이 과거에 성공을 거두는 데 도움을 주었던 제품, 프로세스, 조직 형태가 이제는 파멸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생존 기업의 제1법칙은 과거의 성공을 미래의 가장 위험한 요소로 파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과의 인수·합병(M&A) 또는 제휴 등을 통해 한 차원 높은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는 동시에 R&D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FTA·공동통화 등 추진해야
 
  가까운 곳에 잘사는 나라 일본이 있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큰 행운이다. 실제로 ‘부자 옆에서 부자가 난다’는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은 통계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33개국 중 유럽국가가 23개국으로 가장 많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앵글로색슨족이 정치 및 지도세력의 핵심을 이루면서 유럽과 더 많은 문화·경제적 교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汎(범)유럽권이 무려 27개국이나 되는 셈이다.
 
  유럽국가들이 제1, 2차 세계대전 등 그간 수많은 알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을 만들어 유럽합중국으로 가고자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와 일본에 못지않은 앙숙관계인데도 불구하고 화합을 넘어 통합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싫건 좋건 앞으로도 일본과는 계속 교류가 빈번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는 현재 중단상태에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 한·중·일 FTA의 디딤돌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유로화처럼 한·중·일 공동通貨(통화)를 만드는 일도 가시권에 둬야 할 것이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영국에서 유로화를 自國(자국) 통화로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유로화를 사용할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이라는 더 큰 방어벽 또는 ‘최종대출자(lender of last resort)’를 가지게 되면서 환율이 급등락하는 위험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로화와 같은 지역 공동통화가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외부적 충격이 올 경우 환율이 크게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중국·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에다 27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이 있기는 해도 공동통화라는 방어벽보다는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한일 경제관계는 그간의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不可近不可遠(불가근 불가원)’을 넘어 서로 주고받는 共生的(공생적) 협력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임진왜란과 식민지 시대의 아픔은 물론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일본이 소극적이었다는 섭섭함도 훌훌 털어버리고 한일 양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래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는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치·외교·문화 등 모든 면에서 ‘共生(공생)과 統合(통합)’이 키워드가 되고 이것이 중국과 아시아 전체로 확산될 때 보다 나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