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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료사고의 현실

醉月 2011. 3. 6. 08:35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병원에서 죽어 나온다”

노진섭 no@sisapress.com 

   

 

 

일반인들은 병원을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의료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의료 과오로 환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의외로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장애를 당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의료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럴까. 국내 의료 사고의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병원에 걸어서 들어간 사람이 죽어서 나왔다” “식물인간이 되었다”라는 소식을 접할 때가 종종 있다. 한마디로 의료 사고라는 주장이다. 이런 모든 주장을 의료 사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대 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인의 실수로 뜻하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건양대병원에서는 차트가 서로 바뀌어 위암 환자의 갑상선을, 갑상선질환 환자의 멀쩡한 위를 잘라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수술·투약·검사 등 진료 과정에서 단순한 실수는 사망·장애·후유증 등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다.

 

    ▲ 한 여성이 인공무릎관절 수술을 받은 후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어 보조기와 지팡이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의료 사고에 노출되어 있을까? 비공식적이지만 일부 단체의 조사 결과 등을 살펴보면 의료 사고의 규모와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5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의료 사고 피해 구제 신고 건수는 연평균 9백61건이다. 상담 건수는 더 많다. 의료사고가족연합회에 연간 2천건, 의료소비자시민연대에 연간 7천2백건의 의료 사고 상담이 접수된다. 한 법률사무소에 따르면, 법정 소송 건수도 2004년 8백여 건에서 2010년 1천7백여 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각 단체가 집계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환자가 모르고 넘어가거나 알면서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의료 사고 규모는 상당하다. 그만큼 의료 사고는 지금 이 시각에도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산재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2천5백명, 교통사고 사망자가 5천5백명인데, 의료 과오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2만명에 육박한다. 미국이 19만명, 영국에서도 4만8천명이 의료 과오로 사망하는데 한국만 예외라고 할 수 없다. 지난 2009년 의료 사고 8천건을 조사해보니 50% 정도가 정형외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한 조사는커녕 오히려 덮어두려고 하는 것 같다. 공식적으로 통계를 집계하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해마다 발간되는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분석한 연구 결과도 있다. 이상일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2009년 입원 환자 5백35만명 가운데 의료 과오가 발생한 사람이 9.2%, 이 중에서 사망한 사람은 7.4%로 나타났다. 최소 1만1천명, 최대 4만명인데, 평균 3만6천명의 입원 환자가 진료 과정에서 본래의 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망하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에서 잘 대응했다면 살았을 환자 비율(예방 가능 비율)이 30~40%에 달해, 미국(15%)과 싱가포르(22%)에 비하면 의료 후진국 수준이다. 또 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애를 입거나 후유증을 겪은 사람은 더욱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환자와 가족에게만 고통 강요하는 구조

   

의료 과오는 병원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발생하므로 환자와 가족은 그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예컨대, 수술 중에 의사의 실수로 위험한 고비가 생겼더라도 그 사실은 수술실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약물을 과다 투여했어도 아무도 모르게 적절히 조치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실제로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시사저널>이 제1109호(지난 1월25일 발행)에서 ‘병원에서 안 죽어도 될 사람 4만명이 죽어 나간다’라는 기사를 보도한 후 많은 사람이 실제 사례를 제보했다. 김영희씨(가명·여·80)는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뇌손상을 입은 사례이다. 그는 지난해 감기 증세가 심해져 폐렴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의사의 권유로 시술을 받아 회복되었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김씨의 딸 이소민씨(가명)는 “인공호흡기에서 오작동 신호음이 들렸다. 마침 채혈하러 온 간호사에게 조치를 해달라고 했지만, 채혈만 하고 듣는 둥 마는 둥 자리를 피했다. 환자의 몸이 풍선처럼 부푼 후에야 응급조치를 취해 목숨을 건졌지만, 결국 뇌손상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채 식물인간으로 병실에 누워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움직여서 호흡기 관이 빠져 일어난 불상사라고 했지만, 사실은 간호사가 호흡기 튜브를 잘못 연결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라고 말했다.

 수술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 사망한 사례도 있다. 심한수씨(가명·41)는 지난해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70세의 아버지와 정형외과를 찾아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신경 차단 시술을 받고 증세가 잠시나마 호전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붓고, 배가 불러오고, 심지어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심씨는 “정형외과에서는 신경외과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버지를 신경외과 병원으로 옮겼다. 신경외과에서는 환자 상태를 살피더니 별 이상이 없다면서 환자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결국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2시간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심장 정지 등이 사망 원인이라고 했다. 정형외과의 진료 기록을 살펴보니 신경 차단 시술 과정에서 신경을 건드려 마비증후군이 생겼다. 그런데도 병원은 아버지가 10년 전 건강검진에서 심근경색 증상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아 사망 책임을 환자에게 돌렸다”라고 말했다.

 

   

사인도 모른 채 어린아이를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도 있다. 강민주씨(가명·35)는 지난해 8월 4kg의 셋째아이를 정상 분만했다. 그 아기는 태어난 지 3시간 만에 사망했다. 강씨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이의 호흡이 좋지 않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세상을 떠났다. 사인이 불분명해서 부검까지 했지만 사인 불명이라는 결과만 받았다. 부검 결과가 수개월 만에 나온 것도 의심스러운데, 죽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가슴에 한만 쌓였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현재 환자나 가족이 의료 사고인지 아닌지 확인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은 없다. 그래서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정보를 교환하고 대응책도 모색한다. 이진렬 의료사고가족연합회 회장은 “의료 사고를 당한 가족이 20년째 이 단체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사고를 당한 가족은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이 없다. 결국 법정 소송으로 가는데, 그나마 돈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막대한 소송비를 들이고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비전문가인 일반인이 의사를 상대로 승소하기가 쉽지 않다. 또 일각에서는 돈을 뜯어내려고 소송한다고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럼에도 소송까지 하는 이유는 억울함을 풀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민주씨(가명·여·28)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50세인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허리 통증 완화 수술을 받은 지 며칠 만에 과다 출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8년 이상 루프스(자가면역질환)을 앓았고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했다. 수술 1주일 전에는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해야 출혈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의사가 이를 무시했다고 한다. 박씨는 “어머니가 루프스 환자이고 아스피린 복용 사실을 아는 의사가 수술 날짜를 급하게 잡았다. 이틀만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다. 결국 수술 후 출혈이 심했고, 수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시 복용하는 아스피린을 수술 이틀 전에 중단해도 된다는 최신 연구 논문을 들이대며, 의사는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중에 병원 진료 기록을 살펴보니 사실과 다르게 조작된 점도 발견했다. 받지도 않은 치료와 그 날짜가 받은 것처럼 적혀 있었다. 또 들어보지도 못한 수술 문제점을 환자 보호자인 나에게 설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억울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최근에 불기소 처분될 것 같다는 경찰의 말을 들었다. 1인 시위를 해서라도 억울함을 풀겠다”라고 말했다.

 

법에 호소해도 승소할 가능성 작아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나 가족은 법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10년 이상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를 상대로 승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서로법률사무소의 서상수 의료 전문 변호사는 “사인이 의심스러워서 부검을 결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인이 마취약 과다로 보이더라도 마취약은 체내에  쌓이지 않으므로 부검으로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노인을 부검하면 다른 질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오히려 환자보다 병원에 유리한 자료가 된다. 여러 정황상 고소를 결정하겠지만, 대부분은 무혐의 판정이 난다. 그러므로 큰 사고가 아니라면 합의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또 고소를 결정하더라도 일반 변호사보다는 경험 많은 의료 전문 변호사와 상담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의료 사고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병원 수가 증가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의료 사고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자동차 수가 늘어나는 만큼 교통사고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료 사고를 줄이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일반인이 의료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

1. 의무 기록을 신속·정확하게 확보하라

추후 위·변조, 추가 기재 등 증거 인멸을 예방하고, 의료 소송을 할 때 모든 사실 인정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의무 기록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무 기록을 열람할 때 간호 기록지 등 중요한 의무 기록이 빠지지 않도록 정확하게 열람 및 복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폭언·폭력 등의 사용을 자제하라(자력 구제 금지의 원칙)

의료인 중 고의로 의료 사고를 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폭언이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오히려 의료인으로부터 업무 방해, 폭행 등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 및 형사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3. 사고 경위에 관한 진술서를 육하원칙에 맞게 시간대별로 작성하라

의료 사고에 관한 사실은 환자나 보호자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해내는 데 한계가 생기기 때문에 빨리 시간대별로 임상에 관한 사실을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진술서는 추후 의무 기록 기재 내용의 신빙성을 다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4. 부검은 신중히 결정하라

의료 사고로 환자가 사망한 경우 무턱대고 부검부터 하는 것은 금물이다. 반드시 부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결정해야 한다. 부검 결과가 오히려 환자에게 불리한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5. 의료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라

의무 기록 및 진술서가 준비되면, 반드시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의료 사고는 의료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고,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전문적인 소송 기술뿐만 아니라 의료 소송에 관한 경험이 많은 변호사로부터 상담받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여 무조건 환자측이 승소하는 것도 아니며, 불가피한 의료 사고는 의료 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인터넷 등을 활용해 의학 지식을 습득하라

환자측이 적어도 전문가인 의사만큼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상당한 의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의학 교과서나 논문 등을 검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7. 담당 의사로부터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을 들어야 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자신의 신체에 발생한 나쁜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의료인으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고, 의료인은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의료인이 그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의료 과실이 개입되어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8.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 의료 사고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시민단체를 적극 활용하라

의료 사고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시민단체를 통해 무료로 전문 변호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유사한 의료 사고 피해자들과 의료 사고 해법에 대한 정보 교환 등을 할 수 있으며, 상당한 정신적 위로도 얻을 수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1600-4200   www.medioseo.or.kr

    의료사고가족연합회 02-3462-4043   www.malpractice.co.kr

 

9. 병원을 옮길 때 유의하라 

통상 의원급 의료 기관에서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의원이 잘 아는 대학병원으로 옮기라고 의뢰할 수 있다. 이 경우 추천된 대학병원이 사고가 발생한 의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 무방하나,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두 병원을 왕래할 때 불편을 덜 수 있다.

 

10. 의료 분쟁을 할 때에는 소송보다는 합의가 낫다

최상의 판결보다 최악의 화해가 낫다는 법률 격언이 있다. 소송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사자가 지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손해를 감수하면서 합의를 보라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1. 소멸 시효에 주의하라

의료 사고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년 내에, 사고가 발생한 지 10년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소멸 시효 기간을 벗어나면 보상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전공의 격무가 의료 사고 부른다 10명 중 6명 이상,

1주일 80시간 근무…연차 올라가도 연구·논문 준비 등으로 고된 나날

노진섭 no@sisapress.com

 

    

 

▲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의료 사고를 줄이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원인 가운데 하나는 환자의 무리한 의료 요구이다. 수술이나 투약이 필요 없는데도 의사에게 강요하는 환자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원인은 의료인의 실수이다. 물론 의료인도 사람이어서 실수를 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혹은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병실 환자를 책임지는 전공의(전문의가 되기 전 단계인 레지던트)가 특히 그와 같은 환경에 있다. 실제로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가 의료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의료인의 과한 업무를 덜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미국에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4~0.05%(소주 2~3잔) 상태에서 환자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진료의 연속성 때문에 교대 근무도 어려워

 그렇다면 국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의 업무량은 얼마나 될까. 기자는 실제 전공의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연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 전공의는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해서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8시부터 30분 동안 회의를 하고 오후 6시까지 병동 주치의로 근무한다. 환자들의 입·퇴원 여부를 확인하고 수시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간다. 점심 시간은 12시부터 1시까지이지만 짬이 나지 않으면 거르는 경우도 있다. 외과 전공의(3년차)라면 온종일 수술에 매달리기도 한다. 오후 6시 이후에는 회진을 돌면서 환자 상처를 소독하거나 투약 등을 한다. 밤 10~12시에 일과를 마쳐도 다음 날 해야 할 일에 대한 지시 사항이 떨어지면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일쑤이다.

 인턴은 이틀에 한 번, 전공의는 3일에 한 번씩 야간 당직도 선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병동을 책임진다. 평균 3~4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응급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외과 전공의는 응급 수술로 24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내과 전공의도 응급실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당직을 마치면 오전 8시부터 또 하루를 시작한다. 한 대학병원의 3년차 전공의는 “나도 지난 3년 동안 주말 없이 근무했다. 정규 근무에 당직, 응급 상황 근무까지 겹치면 연속으로 36시간 동안 근무할 때도 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고, 다음 날 정규 근무도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환자의 안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것이 한 전공의만의 특별한 경우는 아닐까. <시사저널>은 한 의료 관련 단체가 지난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전공의 3백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전공의의 37%가 1주일에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100시간도 28%여서 80시간 이상인 전공의가 전체의 65%를 차지했다. 특히 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전공의는 대부분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10명 중 6명은 휴일에도 근무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10명 중 7명은 과도한 업무로 휴가도 갈 수 없을 만큼 업무량이 과다하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근무 시간 제한을 법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미국 뉴욕 주는 전공의가 24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거나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간호사나 경찰 등은 교대 근무를 하지만 전공의는 교대 근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진료의 연속성 때문이다. 환자를 맡은 주치의이기 때문에 다른 의사로 바뀌면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가 까다롭고 응급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연차가 올라가면 근무에 조금 여유가 생기지만 연구하고 논문 준비하느라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환자에게 운동을 하라고 권하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운동은 언감생심이다. 한 4년차 외과 전공의는 “약을 필요 이상으로 투여할 때가 있다. 특히 독한 약을 많이 투여하면 환자에게는 큰 해가 간다. 밤에 당직을 서면서 쪽잠을 자다가 응급 전화에 깨지 못해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료 과오는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의료 사고라고 오해하지는 말아달라. 약도 부작용이 있듯이 치료를 잘했지만 환자에 따라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학도 발전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탈진증후군·우울증에 시달리기도

    ▲ 서울의 한 종합병원 진료실 앞에서 외래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공의가 할 일을 간호사가 넘겨받아 하기도 한다. 간호사는 간호조무사에게 자신의 일을 넘긴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니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투약 등 의사나 간호사가 할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의는 “병원 입장에서는 전문의보다 전공의,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의료 사고로 인한 손실 비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가 많다”라고 털어놓았다. 

 과중한 업무는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 자신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전공의 10명 중 7명 이상이 탈진증후군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탈진증후군은 자신의 업무에 오랜 기간 죽기 살기로 매달렸던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업무를 남의 일처럼 느끼며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로 인해 투약 오류 등 의료 과오를 매달 한 번 이상 저지르는 전공의가 53%에 달했다. 특히 여학생 전공의의 자살률은 일반 여성보다 다섯 배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자살할 때 사용할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어느 정도 투여하면 죽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공의는 이와 크게 다를까. 상당수의 전공의는 우울증을 경험한다. 자살까지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나도 전공의 때 목을 맨 후배를 보았고, 스스로 마취약을 주사한 선배도 있었다. 여자 후배가 남편과 아이를 두고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최근에도 내 강의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묻던 학생이 며칠 후 죽은 채 발견되어 밤새 뒤척인 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 전공의들의 상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큰 병원일수록 일처리 관점에서의 분업 체계는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의료인은 자신이 맡은 일만 신경 쓰므로 환자 상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전국적 ‘오류 보고 체계’ 만들어라

환자 안전 개선 위한 다섯 가지 조건 / 의료 사고 현황 파악 철저히 하고 주무 부서도 명확히 해야

이상일│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수년 전부터 일부 전문가들이 환자 안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그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무 유기이고,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무사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 진료 현장에서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의료인도 환자 안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적지 않은 환자들이 진료 과정에서 위해 사건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손상을 받았다. 이러한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환자 안전의 현황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환자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일들을 제안한다.

 

체계적 분석과 개선 활동 활성화 필요

     첫째, 환자 안전에 대한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여러 국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입원 환자의 약 9%가 위해 사건을 경험하고, 이 가운데 약 7%가 사망한다. 그러나 한국은 환자 안전 현황조차 파악된 바가 없다. 환자 안전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이슈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현황 파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안전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환자 안전 개선을 주관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보건복지부 산하 연구 기관인 AHRQ 내에 환자안전센터를 설치해 환자 안전에 대한 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보고서를 매년 의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영국도 NPSA라는 독립 기구를 설치해 환자 안전에 관한 업무를 통합·조정하고 있다. 한국은 보건복지부의 어느 부서가 환자 안전 주무 부서인지조차 불명확한 상태이고, 국가 수준의 환자안전센터로서 활동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기구가 없다.

 셋째, 환자 안전에 관련된 전국적인 오류 보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망 혹은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 위해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를 의무화하고, 경미한 위해 사건 또는 발생할 뻔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자발적 보고를 장려해야 한다. 의료 기관들이 보고한 사건들은 근본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동일하게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이를 위해 미국은 AHRQ가 환자 안전 기구(Patient Safety Organization)를 지정해 오류 보고 체계를 구축했고, 영국은 NPSA가 국가 보고 학습 체계(National Reporting and Learning Service)를 운영하고 있다. 자발적 보고를 활성화하려면 의료 기관 내부의 환자 안전 및 질 개선 활동 자료 또는 외부 보고 자료에 대한 법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입법 사례로는 미국이 2005년에 제정한 환자 안전과 의료 품질 개선법개선법(Patient Safety and Quality Improvement Act)을 들 수 있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넷째, 의료인의 면허 및 자격 인정, 전공의 수련 기관 지정, 의료 기관 개설 허가와 의료 기관 인증, 의약품 및 의료 기기의 승인 및 시판 후 감시 등 환자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도나 정책을 점점해 환자 안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성과 표준을 정해야 한다. 이에 속하는 예를 하나 살펴보면, 미국에서는 레지던트 근무 시간의 연장이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주당 8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다섯째, 의료인 또는 의료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환자 안전을 개선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기관 내부의 보고 체계를 활성화하고, 체계적 사전 점검 또는 사건 분석 결과에 근거한 개선 활동, 표준화·단순화·자동화 등과 같은 일반적인 안전 원칙의 적용, 팀 훈련의 강화 등이 필요하다. 의료 기관들의 자발적인 환자 안전 개선 활동에 기술적 지원이 주어진다면, 의료 기관들의 참여를 더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무과실, 의사가 입증해야 한다 의료 사고 발생 때 환자나 가족이 원인 규명하기는 거의 불가능…

보상 체계도 제도로 정착시켜야

강태언│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

 

    ▲ 지난 1월8일 병원의 의료 사고로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병원측이 진료 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박 아무개씨가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의료 사고 피해 구제를 위한 법안이 올 2월 임시국회에서 복지부의 핵심 과제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 법은 지난 10년간 의료 시민단체의 숙원 사업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의료 사고 피해 구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현재의 법안으로는 의료 사고 피해 구제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료 사고는 의료인이라는 전문가에 의해, 제한된 공간에서 진단·치료·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쁜 결과를 총칭하는 말이다. 의료 사고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사람이라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이다.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진료 기록뿐이다. 진료 기록은 사고 당사자인 의료인에 의해 작성되고 보관되는 한계로 인해 전문 지식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들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현행 법, 의료인-환자 불균형 상황 해소 못 해

대법원도 의료 소송에서 환자측이 의료 과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입증을 완화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의료가 특수한 영역임을 고려해 전문가인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은 현재 의료인과 환자의 불균형적인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증 책임 전환 규정)이다. 그러나 계류 중인 법안은 그동안 시민단체가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입증 책임 전환 규정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복지부는 법안에 부분적으로나마 입증 책임 전환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관련 조항은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변명하는 구실로 변질되어버렸다.

의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험이 중요하다. 의료 사고에 대한 현존 보상 시스템으로 대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의사공제회가 있는데, 현재 평균 배상액이 3백50만원에 불과해 실효가 없다. 게다가 임의 가입 형태여서 의사들의 가입도 미흡한 실정이다. 시민단체는 완전한 책임보험(강제 가입)과 종합보험(임의 가입)에 의한 보상 체계를 주장한다. 이는 교통사고 가해 운전자가 전적으로 보상이나 배상을 책임지는 형태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교통사고 발생 시 종합보험에만 가입되어 있으면, 가해자는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되고, 피해자는 보험회사로부터 협의와 보상금을 지급받는 시스템이 사회적 제도로 정착되어 있어 가해자측에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의료 사고에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에 대한 합리적인 피해 보상이 담보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필요한 재원이 충분하게 확보되어야 한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의료 사고가 그 원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는 법안을 재검토해서 의료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를 제대로 구제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 또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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