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거대한 첩보 전쟁터
▲ 베이징의 자금성을 지키고 있는 중국 공안들.
ⓒAP연합 |
중국은 첩보 전쟁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니, 지구촌에서 유일무이하게 첩보전의 텍스트나 매뉴얼을 불문(不文)으로 남긴 원조라고 해도 옳다.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 이전인 춘추 전국 시대 때부터 이미 요즘 말로 하면 첩보원인 이른바 ‘세작(細作)’들의 천하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진시황이 천하 통일을 위해 주변 6국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모두들 세작일지 모른다는 의혹 하나 때문에 쫓겨날 뻔했을까.
이런 전통과 역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지금도 중국에 면면히 남아 있다. 아니, 체제 자체가 사회주의인 탓에 오히려 음지에서 더 만연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대상의 첩보전은 미국의 CIA, 러시아의 KGB, 영국의 MI5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을 완전히 제압한다. 한국은 아예 게임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중국 현지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대사관 고용원 등으로 위장 침투시키기도
중국의 1차적인 주적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다. 그러나 타이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위협적이지는 않으나 반드시 흡수 통일을 해야 하는 대상인 탓이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안전부’의 15국이 매년 3천명 이상의 공작원을 훈련시켜 타이완으로 침투시켰다.
흐물흐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양안(兩岸) 관계의 호전으로 인해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연스레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을 공작 대상으로 해 양성한 에이전트와 주로 이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프락치 인력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중국으로서는 자체의 첩보전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첩보 공작은 주로 각국 대사관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가능하면 신분을 위장한 고용원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들을 에이전트로 침투시킨다. 또 대사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보모나 운전기사로도 들여보낸다. 대사관이나 대사의 관저, 고위 간부들의 주택 외곽에서도 공작은 이루어진다. 휴대전화나 유선전화 도청은 거의 기본에 속한다. 이 때문에 베이징의 각국 대사관들은 기를 쓰고 공관 공사를 자신들이 직접 한다. 도청을 막기 위해 온갖 첨단 기술을 다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멍은 곳곳에서 날 수밖에 없다.
한국 대사관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보조 직원들을 채용할 때 주로 조선족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신원을 파악해서 고용하지만 그래도 믿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순진한 직원으로 들어왔다가 중국 공안의 공작에 넘어가 에이전트나 프락치로 변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하이 마타하리’로 불리는 덩신밍 씨 역시 이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들려온다.
대략 5백명에 이르는 외국 언론사 특파원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완전 ‘밥’이라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운전기사나 보모는 기본이고 우연을 가장한 채 주변에 얼쩡거리면서 접근하는 이들은 항상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귀중한 정보를 주는 척하며 환심을 산 다음 공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외신 특파원들은 슬프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신이 공작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첨단 기술을 비롯한 고급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기업인들은 더욱 훌륭한 먹잇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공작이나 정보 절취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만큼 해당 분야에 정통한 교육을 받은 수준 높은 스파이나 프락치가 동원된다.
중국이 자국에 장·단기적으로 체류하는 전세계의 유력 인사들이라고 가만히 놓고 볼 이유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통해 귀중한 정보를 빼내려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중국을 위해 유리한 활동을 하도록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친다.
공작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도 이루어진다. 대개 이런 경우는 이성(理性)을 마비시킬 만한 수준의 이성(異性)이 개입한다. 아예 작심하고 공작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프락치를 동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04년 자살한 주상하이 일본 영사관의 전신관이 당한 횡액은 바로 후자에 속한다. 별 생각 없이 하룻밤을 즐긴 가라오케의 호스티스가 프락치로 변신해 그의 목줄을 죄어온 탓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스파이·프락치가 ‘물 반, 고기 반’?
중국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나 프락치들이 노리는 것은 다양하다. 우선 자국에게 유리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정치·국방 문제와 관련한 정보는 웬만하면 거의 수집한다. 또 첨단 기술이나 관련 정보 역시 차츰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의 간첩 내지 외국 정보기관에 고용된 자국민 스파이나 프락치를 색출하는 이른바 반탐(反探) 공작도 이들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공안을 비롯해 국가안전부, 보밀국(保密局) 등이 심심하면 꼼짝 못하도록 증거를 제시하는 간첩 사건을 빵빵 터뜨리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분명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05년 4월 타이완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동안 징역을 산 홍콩 출신의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청샹(程翔) 특파원의 경우가 그렇다. 최고의 중국 변호사까지 동원해 어떻게든 혐의를 벗으려 했으나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는 데에는 방법이 없었다.
한국인이 걸려들어 횡액을 당할 뻔한 사례도 많다. 특파원 출신인 ㄱ씨의 경우가 그 대표적 예이다. 필자와도 친한 그는 금세기 초에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때 필자는 그와 빈번하게 교류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백방으로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중국 공안 당국에 빌미가 잡힐 만한 모종의 일을 한 탓에 체포될 위기에 몰리자 칭다오(靑島)에서 배편으로 탈출한 것이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중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외에 스파이나 프락치의 활동에 의해 중국에서 외국인이나 중국인이 횡액을 당한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때문에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일하게 되는 외국의 외교관, 특파원, 기업체 고위 임직원들은 주변에 스파이나 프락치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각별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여리박빙(如履薄氷), 즉 얼음 위를 걷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친다. 때문에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상하이 스캔들은 바로 이런 교훈을 망각해 발생한 한국 외교의 대참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스파이 세계에 ‘휴전’은 없다 |
인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이어져…‘미인계’는 중국이 가장 잘 활용, 동독은 ‘미남계’도 써 |
▲ 1930년대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여성 스파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색계>의 한 장면. |
타이완 검찰은 지난 2월9일 무려 7년간이나 중국 스파이로 활동해 온 타이완군의 현역 소장인 뤄셴저(羅賢哲) 육군사령부 통신전자정보처장을 구속했다. 뤄 소장은 타이완에서 지난 1960년 국방부 차관이 구속된 이후 반세기 만에 중국 스파이로 활동한 최고위급 인물이다.
뤄 소장은 지난 2004년 태국 주재 대표부 무관으로 근무할 당시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의 유혹에 빠졌다. 뤄 소장은 미모와 큰 키, 늘씬한 몸매에 사교술이 능란한 30대 초반인 이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기밀들을 넘겨주었다. 이 여성은 뤄 소장에게 그 대가로 10만~20만 달러를 주었다. 이 여성은 태국과 중국, 미국 등에서 무역업을 하는 호주 여권을 가진 화교로 신분을 위장했다는 것 외에 신원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뤄 소장의 간첩 활동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때문에 꼬리가 잡혔다. FBI는 미국 출장이 잦은 뤄 소장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했다. FBI는 뤄 소장과 이 여성이 밀회하는 장면을 몰래 찍어 타이완 군 수사 당국에 넘겼다. 타이완 군 수사 당국에 체포된 뤄 소장은 수사 초기에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 FBI의 자료를 내밀자 혐의를 인정했다.
뤄 소장은 이 여성의 주선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연락부 소속 린이순(林義舜) 소장과 만나기도 했다. 총정치부 연락부는 첩보 공작을 주로 하는 부서이다. 뤄 소장은 통신병과 출신으로 국방부 국제정보처 부처장을 역임했고, 2008년 1월 소장으로 승진해 지금까지 통신전자정보처장으로 근무해왔다. 뤄 소장이 넘긴 정보 중에는 미국-타이완 간 군사 전자정보통신망 프로젝트, 타이완 육·해·공 정보통신망, 군사 광섬유케이블망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본 영사, 계략에 걸리자 자살하기도
스파이는 매춘에 이어 두 번째로 인류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해 온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스파이가 수집한 정보는 한 국가의 운명이나 국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각국의 스파이 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허니 트랩(honey trap·미인계)’을 비롯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똑같다. 여성을 이용한 미인계는 어떻게 보면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도 있다. 미인계를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고대 병가(兵家)를 집대성한 <삼십육계>에서도 미인계는 제31계로 중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4년 5월 중국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 영사가 자살한 사건이다. 이 영사는 술집에 드나들다 만난 호스티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이 사실을 알아챈 중국 정보 기관은 이 영사를 협박해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이 영사는 총영사관과 본국 외무성 사이에 오가는 전문(電文)을 담당하는 베테랑 전신관이었다. 중국 정보기관은 이 영사를 통해 일본의 암호문이 작성되는 시스템과 이를 해독하는 방법 등을 빼내려고 했다. 이 영사는 이를 거부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미인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외교관에게 ‘친하게 접근해 오는 이성을 조심하라’라는 내용의 교육까지 시키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미인계를 이용해왔다. 영화 <색계(色戒)>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주인공인 왕자즈(중국 여배우 탕웨이가 맡은 역할)는 1930년대 상하이 사교계의 꽃으로 불렸던 국민당의 정보원 정핑루이다. 뛰어난 미모에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녀는 주로 일본 고관들을 상대로 고급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맡아왔다.
당시 국민당 조사통계실(정보기관)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친일파 왕정웨이(汪精衛) 괴뢰 정권이 상하이에 비밀리에 만든 정보기관인 ‘76호’와 최고 책임자인 딩모춘이었다. 국민당 조사통계실은 그녀에게 딩모춘에게 접근해 제거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녀는 두 차례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중국은 옛 여성 스파이 추도회까지 열어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스파이는 선안나(沈安娜)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그녀가 사망하자 베이징(北京) 팔보산(八寶山) 혁명공동묘지에서 추도회까지 열었다. 그녀는 국공(國共) 내전 당시 장제스(蔣介石)가 이끌던 국민당에서 스파이 활동을 했었다.
1분에 2백자를 기록할 만큼 뛰어난 속기사였던 그녀는 1937년 공산당의 지시를 받고 국민당에 들어갔다. 미모까지 뛰어난 그녀는 장제스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녀는 1949년 국공 내전이 끝날 때까지 장제스 및 국민당과 관련한 고급 정보를 공산당에 넘겼다. 당시에는 모든 문서가 속기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국민당의 당 간부회의에 항상 참석했다. 장제스가 바로 곁에 공산당 스파이를 두고 자신의 말을 빠짐없이 기록하게 한 셈이다. 국민당은 그녀의 간첩 활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타이완으로 데려가려 했었다. 그녀는 상하이에 있는 가족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말한 뒤 탈출했다.
러시아도 미인계를 상당히 선호한다. 지난해 6월 FBI에 체포된 스파이 안나 채프먼은 요즘도 화제가 되고 있다. 채프먼은 러시아 볼고그라드 출신으로, 본명은 애나 쿠스첸코였다. 모스크바의 인민우호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외정보국(SVR)에서 스파이 교육을 받은 뒤 2002년 심리치료사 수습생이었던 영국인 알렉스 채프먼을 만나 결혼해 영국에서 살다 2006년 이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녀의 위장 신분은 온라인 부동산회사 CEO였다.
그녀는 밤에는 각종 파티는 물론이고 레스토랑과 고급 클럽을 드나들며 뉴욕 사교계의 거물로 활동했다. 그녀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스파이 맞교환 협상에 따라 러시아로 추방되었다. 국가 최고훈장을 받은 그녀는 스파이 생활을 청산하고 남성 잡지의 모델, 디자이너, TV쇼 진행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중국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 영사 등 외교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덩신밍 씨.
ⓒ서울신문 제공 |
스파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은 마타하리이다. 인도네시아 말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마타하리는, 프랑스 파리 물랭루즈에서 일하던 네덜란드 출신의 스트립 댄서였다. 본명은 마가레타 젤러. 마타하리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프랑스 당국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마타하리는 매혹적인 미모를 이용해 프랑스 군부와 정계 고위층, 재계 인사, 네덜란드 총리, 프로이센의 황태자 등을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였다. 마타하리는 이들로부터 들은 정보를 독일에 넘겨주다 들통이 났다.
여성 스파이들 중에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된 인물도 있다. 영국 MI5의 첫 여성 국장을 지낸 스텔라 리밍턴이 그 주인공이다. 한 가정의 평범한 어머니였던 그녀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MI5를 이끌었다. 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M’이라는 암호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스파이 세계에서는 남성을 이용한 미남계도 있다. 옛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대외정보부장이었던 마르쿠스 볼프는 서독 정부 주요 부처에 비서로 일하고 있는 미혼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로미오 작전’을 벌였다. 볼프는 미녀 스파이를 통해 정보를 빼오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미남 스파이들을 파견해 여성 비서들에게 접근시켰다. 볼프의 작전은 예상 밖으로 크게 성공했다.
스파이의 역사는 ‘비공식 세계사’라는 말이 있다. 스파이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세상에 알려진 스파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스파이 전쟁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성패에 따라 거대한 역사의 흐름마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공관 홀린 미소 뒤에 무엇을 숨겼나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소속 영사들과의 스캔들로 ‘상하이 마타하리’로 불리게 된 중국 여성 덩신밍 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녀에 대해서는 중국 공안 당국의 고위층과 연결된 ‘고급 프락치’라는 설과, 중국의 실세 그룹인 ‘태자당’의 일원이라는 설 등 갖가지 추측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그녀는 어떤 인물인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추적했다.
“영사관 내에서도 함부로 ‘그분’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덩 씨’를 만나면 만날수록 정체가 불분명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신밍 씨(33)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이처럼 극에서 극을 오간다. 30대 초반의 의문투성이인 이 중국 여성이 지금 한국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주상하이 총영사관’의 최고 책임자였던 김정기 전 총영사(51)를 비롯해, 법무부 출신의 허 아무개 전 영사(41), 지식경제부 출신의 김 아무개 전 영사(42), 외교통상부 출신의 박 아무개 전 영사(48), 경찰청 출신의 강 아무개 전 영사(43) 등 국내 전·현직 고위 외교관들이 줄줄이 이 여성과의 치정 관계에 얽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덩 씨와 꾸준히 접촉해 온 이들조차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판이하게 엇갈린다. 김 전 영사는 덩 씨를 ‘그분’이라고 표현했고, 강 전 영사는 ‘덩 씨’라고 표현했다.
위정성 당서기 취임 후부터 생활 달라져
▲ 덩신밍 씨와 전 상하이 주재 영사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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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마타하리’로 불리는 덩신밍 씨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우리 외교관들과 덩 씨의 치정 관계가 드러나자, 처음에는 그녀가 중국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이내 비자 장사를 하는 사기꾼이거나 단순 ‘브로커’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렸다. 그러나 덩 씨의 실체에 더 접근하면 할수록 단순치 않은 어떤 ‘함수 관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그녀가 중국 공안 당국의 고위층과 연결된 ‘고급 프락치’이거나, 아니면 실제 ‘태자당(太子黨)’과 연결이 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태자당이란 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를 일컫는 말로 4천여 명에 달하는 이들 ‘이너서클’이 중국의 모든 요직을 독점하거나 그 주변 세력으로 존재한다.
덩신밍 씨의 생을 살펴보면, 비교적 평범했던 그녀의 신변에 갑자기 큰 변화가 닥친 것은 2007년부터였다. 그녀는 1978년 중국 산둥 성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부모는 없고, 홍콩에 있는 이모 손에서 자랐다는 얘기가 있다.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중학교를 다녔고, 14세 때인 1992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는 설도 있고, 홍콩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는 설도 있다. 그녀는 국내의 이화여대를 잠깐 다닌 적이 있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한다.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국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인이 된 이후 덩 씨는 2001년 한국 투자기업인 ㅅ사에서 사장 비서로 일했고, 같은 해 국내 기업의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진 아무개씨(37)와 결혼했다. 그리고 2004년 딸을 낳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저 한국에 시집 온 평범한 중국 며느리였다. 결혼 생활도 비교적 무난하게 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2007년부터 그녀는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당서기가 2007년 10월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뒤를 이어 상하이에 부임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덩 씨는 평소 자신이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주석의 손녀뻘이자, 부총리급인 위정성 당서기의 조카라고 말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덩 씨가 남편 진씨와 사실상 별거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당시 덩 씨는 진씨에게 “외삼촌이 당서기로 새로 부임했다. 상하이 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예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덩 씨가 상하이 주재 한국 외교관들과 접촉하기 시작한 것도 역시 이때부터였다. 덩 씨는 이후 상하이 시내 최고급 빌라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보유한 부동산 액수는 1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기 전 총영사는 지금도 덩 씨가 위정성 당서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덩 씨는 상하이 비공식 고위 공무원이며, 태자당 출신으로 위 당서기와도 부담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사이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파문이 불거지자 주변에 “덩 씨를 잘못 건드리면 향후 한·중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위정성 당서기는 중국의 차세대 ‘잠룡’으로 꼽힐 정도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은 인물이다. 최근까지 국내 언론사의 중국 특파원을 지낸 ㄱ씨는 “위정성은 엄청난 거물이고, 실세 정치인이다. 상하이 당서기 자리는 후진타오 국가주석, 시진핑 부주석 등이 거칠 정도로 중앙 권력의 핵심으로 가는 요직으로 꼽힌다. 위 당서기는 전형적인 태자당이다. 그의 집안은 실제 덩샤오핑 집안과 연결된다. 그의 부친은 초대 톈진 시장을 지냈고, 모친은 베이징 부시장을 지낸 화려한 가문의 소유자이다”라고 설명했다.
덩 씨의 실체에 대한 질문에 ㄱ씨는 이런 점을 주목한다. 그는 “중국이라는 사회는 굉장히 무서운 곳이다. 상하이 최고의 실력자이자, 중국 내 권력 서열 몇 위 안에 드는 이런 거물급의 최측근 또는 조카를 만약 사칭하고 다녔다면, 덩 씨는 곧바로 중국 공안이나 정보기관에 의해 감시를 받게 된다. 덩 씨가 만약 사기꾼에 불과한 단순 브로커였다면 정상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그럼에도 덩 씨가 3년 이상을 한국 교민 사회에서도 명성을 날릴 정도로 오래 활약했다면 그냥 단순한 브로커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고위 외교관들과 중국 유부녀가 몇 년간에 걸쳐 불륜을 저지르고 교민 사회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면, 중국 공안 당국이 이를 몰랐을 리는 절대 없다. 그런데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고, 덩 씨가 오히려 더 마음껏 활개치고 다녔다면,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이다. 중국 공안에게 약점을 잡힌 탓에 그녀 스스로가 프락치가 되어 정보 수집 역할을 했든가, 그것이 아니면 중국 공안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뭔가 그 윗선의 줄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이다”라고 덧붙였다.
상하이 시에 오래 머무르며 현지 사정에 밝은 ㄴ씨는 “코코(덩신밍의 또 다른 이름)는 덩샤오핑의 친·인척이 맞다. 그녀는 태자당 일원이지만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영사들과의 불륜설은 사실 (상하이에서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코코를 활용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된 점에 대해서 이곳 교민들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ㄴ씨는 상하이 현지 교민 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그의 확신에 찬 말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내부 알력에 주먹 다툼까지 상하이 총영사관에서는 어떤 일이…
덩신밍이라는 의문의 여인이 중국 상하이에 주재하는 우리 총영사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과연 지난 2~3년간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현지 관계자들이 전하는 얘기는 실로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이 이번에 덩 씨의 한국인 남편 진 아무개씨의 폭로가 나오기 전까지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상하이 시에 오래 거주하며 현지 사정에 밝은 ㄴ씨는 “김 아무개 전 영사와 허 아무개 전 영사는 서울대 88학번 동기들이다. 덩신밍 씨를 먼저 안 것은 김 전 영사였다. 그는 윗선의 지시를 이행하는 데 상하이 인맥의 고급 네트워크가 필요했고,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 이가 바로 덩 씨였다. 하지만 이문에 밝은 덩 씨는 ‘내게도 뭔가 이익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비자 발급 지분을 달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 당시 이 업무를 담당하던 이가 허 전 영사였다.
그래서 김 전 영사가 덩 씨를 허 전 영사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이후 허 전 영사와 덩 씨가 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이때부터 덩 씨를 사이에 두고 두 영사 간의 다툼이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허 전 영사는 전형적인 엘리트형이었다. 정말 공부만 했을 것 같은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덩 씨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다시피 했다. 국정원에서 파견 나와 있던 장 아무개 부총영사는 이런 영사관 내의 일을 정식으로 문제 삼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기 전 총영사와 또 심각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장부총영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덩 씨 문제에 역시 부적절하게 개입되어 있는 김 전 총영사가 이를 방해하면서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파문을 지켜본 주변 관계자들 사이에는 김 전 총영사의 부적절한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내 언론사의 중국 특파원을 지낸 ㄷ씨는 “나도 중국에서 김 전 총영사와 몇 차례 함께한 적이 있다. 그는 외교관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정치인이었다. 몸은 상하이에 있지만, 신경은 온통 한국 정가에 쏠려 있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선거에 출마하려는 생각만 가득한 듯했다. 그런 그에게 예를 들어 한국에서 이상득 의원 같은 거물급 정치인이 온다면 어떻겠는가. ㄴ씨 역시 “김 전 총영사가 정치인이다 보니 상하이의 당서기나 시장을 만나는 일도 대단히 중요시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라인이 없었다. 솔직히 그에 대한 중국 상하이 정부의 인식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영어로만 얘기하며 유식한 체한다는 불쾌감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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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신밍의 ‘또 다른 금고’ 실체는? |
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혀내야 할 ‘상하이 스캔들’의 5대 의문점 / 기강 문란 등 철저히 조사해야 |
▲ 서울 도렴동의 외교통상부 청사.
ⓒ시사저널 윤성호 |
‘상하이 스캔들’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정부 합동조사단 활동이 본격화했다. 3월20일까지 상하이에 머무르며 이번 사건을 통해 불거진 각종 의혹들을 조사할 방침이다. 조사 이후 외교가에는 이와 관련한 후폭풍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혀야 할 의문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 기밀 정보 유출되었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전·현직 외교관들은 “상하이 총영사관에는 기밀이라고 부를 만한 핵심 정보가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는 단순한 치정·이권 사건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의 상하이 엑스포 방문 일정과 관련한 정보가 유출되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도 유출되었다. 영사관 비자 발급 현황도, 상하이 영사관 비상 연락망 등도 다 넘어갔다. 그 자체를 국가 기밀 정보라고 볼 수 있는가에는 판단의 여지가 있으나 국가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자료라고는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는 도청에 이용당할 수 있다. 상하이 영사관 비상 연락망 등도 도청이나 미행에 이용될 수 있다. 중국 여성 덩신밍 씨가 단순하게 이권 브로커였다면 이런 자료가 왜 필요했을까?
덩 씨의 남편 진 아무개씨가 말한 ‘덩 씨의 또 다른 개인 금고’의 실체도 주목된다. 진씨가 열어보지 못한 덩 씨의 또 다른 개인 금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안에서 어떤 자료가 나오는가에 따라 국가 기밀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여부를 가늠하기가 쉬울 것이다.
■ 영사들과 덩 씨의 관계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의 행태는 한 편의 소설이다. 한 여자를 두고 주먹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최종 책임자인 총영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법무부 소속이었던 허 아무개 영사를 빼고는 덩 씨와 ‘특별한 관계’였던 이는 없다. 그러나 일부 영사가 ‘제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6억원을 드리고…’라는 내용의 각서를 쓴 것에서 보듯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이 드러났다. 합동조사단 조사에서 추가로 영사들이 덩 씨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공직자들의 윤리 문제와 관련해 거센 책임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영사들의 행태가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최고 엘리트로 꼽히는 외교관들은 국민들의 기대를 한순간에 저버렸다.
■ 국정원, 어떤 역할 했나
이와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제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사이다. 교민 사회에는 이미 영사들의 불륜 행각과 관련해 소문이 파다했다는 점에서 국정원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정원 소속 부총영사가 이런 상황을 파악해 본국에 보고하고 경고·조치하는 제 역할을 했는가도 조사 과정에서 밝혀야 할 대목이다. 김정기 전 총영사는 부총영사가 자신을 음해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 전 총영사의 말이 맞다면 부총영사가 김 전 총영사와 관련해 좋지 않은 보고를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고를 받았다면 국정원이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묵살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상하이 총영사관, 파벌 다툼 있었나
외교를 잘 모르는 정치인 출신 총영사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영사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내부 알력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라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김정기 전 총영사는 몸은 상하이에 있었지만 눈은 국내를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향후 총선 등에 출마할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그에게 ‘상하이 총영사’는 거쳐가는 자리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영사들이 그에게 ‘충성’을 보이면서 영사관 기강은 서서히 무너지고 알력이 표면화되었다는 것이 영사관 사정에 밝은 이들의 전언이다.
총영사와 부총영사, 총영사와 영사 등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강 문란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비자 발급 등에 비리는 없었나
상하이 총영사관 사람들이 덩신밍 씨의 힘을 실감한 것은 한 영사가 부임하는 과정에서 ‘밀수’라고 볼 만한 사건이 생긴 것을 해결해주면서부터다. 상하이의 한 소식통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무언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사안을 해결해준 사람이라면 이후 코가 꿰이기 마련이다. 덩 씨가 영사들을 바꿔가면서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밀수’ 사건이 정말 문제가 없었던 사건인지, 그리고 비자 발급 과정에서는 비리가 없었던 것인지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비자 발급 업무를 맡고 있던 허 아무개 영사가 덩 씨와 남다른 관계였던 만큼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낙하산 정치인’들에 점령당한 외교 무대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현직 외교관들은 한결같이 정권의 ‘보은 인사’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는 ‘잡놈’이라는 격한 표현을 쓰며 부적격 외교관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주미 대사, 주일 대사, 주중 대사가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김정기 상하이 총영사도 외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 출신이다. 현지어도 제대로 못하는 부적격자들이 공관장이나 외교부에 들어오면서 엉망이 되었다”라고 질타했다. 지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현지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교관이 없는 재외 공관이 26개국(16.7%)에 달했다. 한 명 있는 공관도 20개국(12.8%)이었다. 또 외교부는 외국어 시험 점수에 미달해 해외 근무 자격이 없는 직원 65명을 해외에 근무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주요 해외 공관장에는 정치인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갔다. 현재 주요 4개국 대사들 중에 정통 외교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한덕수 주미 대사와 이윤호 러시아 대사는 경제 관료 출신이며, 권철현 주일 대사는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또 류우익 주중 대사는 지리학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해외 공관장 출신 중에도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던 인사가 다수 있다. 김재수 전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나라당이 BBK 사건 공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네거티브 대책단의 해외팀장을 맡았었다. 이하룡 시애틀 총영사도 ‘보은 인사’로 꼽힌다. 이총영사는 대통령 예비 후보 정책 특별보좌관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현 정부의 공신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2월에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보은 인사로 분류된다. 김 전 청장은 경찰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고, 일본에 상당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용산 참사 때 강제로 진압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만큼 오사카 총영사 임명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자질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대통령의 측근이나 선거 공신이라는 이유로 외교가에 대거 포진한 것이 오늘날 한국 외교가 추락한 한 원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 2008년 4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권철현 주일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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