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24

醉月 2009. 10. 28. 12:57

 取而代之(취이대지)
  取(취할 취) 而(말 이을 이) 代(대신할 대) 之(그것 지)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이야기. 진(秦)나라 때, 초(楚)나라의 귀족이었던 항량은 조카 항우(項羽)가 학문을 하거나 무술을 연마해 주기 바랬다. 하지만 항우는 숙부인 항양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글 공부는 자기의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하고, 검법은 한 사람만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배울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


  항우가 20세 되던 해, 숙부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오중(吳中)으로 피신하였다.
당시 진시황(秦始皇)은 6국을 통일하고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전국을 순시하고 있었다. 항량과 항우가 오중에 있던 그 해, 마침 진시황도 그곳에 오게 되었다. 사람들 속에 끼어 진시황의 행렬을 지켜보던 항우가 항량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자리를 제가 대신할 것입니다(彼可取而代也). 
  대통령직 인수위를 두고 잡음이 좀 있었다. 잘못한 구관(舊官) 사또와 꾸짖는 신관(新官) 사또가 서로 다투는 듯했다. 이를 보고 가능하다면 좀 빨리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取而代之 란  지위나 물건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로 대신함 을 뜻한다.
  
  一暴十寒(일폭십한)
  一(한 일) 暴(사나울 포) 十(열 십) 寒(찰 한)
 
  맹자 고자장구 상편의 이야기. 전국시대, 유세(遊說)가 성행하였는데, 맹자 또한 당시의 세객(說客)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여러 나라를 유세한 적이 있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선왕(宣王)의 객경(客卿)을 지냈다. 맹자는 제나라에 있을때, 선왕이 국가를 다스림에 별 업적이 없으며, 일처리가 경솔하고 참언을 쉽게 믿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맹자는 선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쉽게 자라는 물건이 있다 할지라도, 하루 동안 해를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하면(一日暴之十日寒之) 자라날 물건이 없다. 내가 왕을 만나 보긴 하지만 그 기회는 역시 드물고, 내가 물러나면 그를 차게 하는 자가 오니, 내가 싹을 트게 해 준다고 한들   새 정부에서 초등학교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전면 폐지하자는 의견
도 있고, 수정 보완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본 정책의 일관성이리라.  一暴十寒 이란  어떤 일에 일관성이 없어 자주 끊김 을 비유한 말이며,  하다 말다 하는 것 을 뜻한다.
  
  彈冠相慶(탄관상경)
  彈(탄알 탄) 冠(갓 관) 相(서로 상) 慶(경사 경)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왕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면서도 항상 밤 늦도록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참으로 대추를 내놓았다. 어느 날, 왕길은 아내가 옆집 대추나무에서 그 대추를 몰래 따냈음을 알고,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웃사람들은 그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옆집 사람이 대추를 수확한 다음에 아내를 데려 오겠다고 했다.

 

  왕길은 황제들에게 몇 차례 글을 올려 그들의 향락 행위와 조정의 일에 대하여 간언하였다. 이 일로 그는 큰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고향 친구인 공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벼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기 모자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풍자하여,  왕길이 벼슬에 나가니, 공우가 부임할 채비를 하네. 라고 하였다. 벌써 새 정부의 인선(人選)이 관심거리다. 하지만 될 사람이 되어야지 친구 덕에 모자의 먼지나 터는(?) 그런 사람은 곤란하다.  彈冠相慶 이란  벼슬하게 됨을 서로 축하함 을 비유한 말이다.
  
  明珠彈雀(명주탄작)
  明(밝을 명) 珠(구슬 주) 彈(탄알 탄) 雀(참새 작)
 
  장자(莊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안합(安闔)이 도를 터득한 인물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예물을 들고 그를 찾아가 보게 하였다. 애공의 사자가 찾아가 보니, 안합은 허술한 집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소를 돌보고 있었다. 안합은 사자를 돌려 보냈다. 사자가 다시 그의 집을 찾았지만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장자는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안합은 부귀에 뜻이 없었으며, 부귀가 찾아오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군자들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부귀를 추구하는데,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사람이 수후(隨侯)의 보석으로 천길 벼랑 위에 있는 참새를 쏘았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분명 그를 비웃을 것이다(以隨侯之珠彈千 之雀).
  요즘 금모으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돌반지, 결혼반지 등등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들이 모아 지고 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 틈을 노려 묵직한 금붙이를 사 모으고 있다니, 이야 말로 금 몇 돈 때문에 나라를 말아 먹을(?) 짓이다.  明珠彈雀 이란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음 을 비유한 말이다.
  

  庭訓(정훈)
  庭(뜰 정) 訓(가르칠 훈)
 
  논어 계씨(季氏)편의 이야기. 공자의 제자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아버님에게서 다른 말씀이라도 들은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백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 것을 보시더니 저에게  시를 배웠느냐? 라고 물으시기에  아직 안 배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러 나와 시를 공부했습니다. 다른 날, 역시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예(禮)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저는  아직 안 배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의 앞에 나설 수가 없느니라 라고 하시기에 저는 예를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들은 것은 이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자의 아들은 뜰을 걷다가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를 일러  정훈(庭訓) 이라 한다. 어려운 형편에 학원비까지 올라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하니, 모두  庭訓 을 받고 있는 셈.  庭訓 이란 곧  가정에서의 가르침 을 뜻한다.
  
  一丘之 (일구지학)
  一(한 일) 丘(언덕 구) 之(-의 지)  (담비 학)
 
  한서(漢書) 양운(楊 )전의 이야기. 양운은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의 외손자이다. 그는 재물을 탐하지 않고 청렴결백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결점 또한 용납하지 않았다. 한편 양운과 원한이 있었던 대장락이라는 관리는 양운이 황제를 비방했다는 글을 직접 황제에게 올렸다. 대장락은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양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능한 왕은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책략을 쓸 줄도 모르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 과거 진나라도 충신을 죽이고 소인들만을 등용하여 결국 망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한 산속의 담비로구나. 
  양운과 대장락은 모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결국 허리를 절단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一丘之  이란 같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담비라는 뜻으로,  나쁜 사람들의 무리 를 비유한 말이다.
  
  愚公移山(우공이산)
  愚(어리석을 우) 公(존칭할 공) 移(옮길 이) 山(뫼 산)
 
  열자 탕문(湯問)편의 이야기. 태행산과 왕옥산은 원래 기주의 남쪽, 하양의 북쪽에 있었는데, 산 밑에는 90세가 다 된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로 막은 두 산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의 부인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반대했으나 다른 가족들이 모두 찬성했기 때문에 곧 공사에 착수했다.
  이를 본 지수라는 사람은 이름 그대로 우직하고 미련한 노인네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그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있고, 또 그 손자의 아들이 또 있을게 아닌가.

이와 같이 자자손손 일을 계속한다면 이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네.
  하늘에서 이 말을 들은 천제(天帝)가 우공의 꾸준한 노력과 성의를 가상히 여겨,

산 하나는 삭동 땅에, 다른 하나는 옹남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 때, 묵묵히 노력하는 우공의 정신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같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愚公移山 이란  아무리 큰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짐 을 비유한 말이다.
  
  招搖過市(초요과시)
  招(부를 초) 搖(흔들릴 요) 過(지날 과) 市(저자 시)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의 이야기. 공자는 광(匡) 지역을 떠나 포(浦)땅에서 잠시 머문 뒤, 위(衛)나라에 와서 거백옥( 伯玉)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위나라 영공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을 보내 공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공자는 이를 사양하다가 부득이 그녀를 만나러 갔다.
부인은 휘장 안에서 답례하였는데, 이때 허리에 찬 구슬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공자는 돌아와서 불만스러워하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기왕에 만났으니 이제는 예로 대해 주어야겠다. 만일 내가 잘못이라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영공은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인 옹거(雍渠)를 시위관으로 옆에 태우고 궁문을 나섰다. 공자는 뒷 수레에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뽐내며 시내를 지나갔다(使孔子爲次乘, 招搖過市之). 이에 공자는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라고 말했다.   招搖過市 란  야단법썩을 피우며 자랑하고 다님 을 뜻하는 말이다.
  
  後起之秀(후기지수)
  後(뒤 후) 起(일어날 기) 之(-의 지) 秀(빼어날 수)
 
  세설신어 상예(賞譽)편의 이야기. 동진(東晋) 때, 왕침(王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은 어려서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왕침이 삼촌인 범영(范寧)의 집에 갔는데, 마침 장현(張玄)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다. 범영은 장현과 왕침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그러나 장현은 자리에 앉은채 왕침과는 인사도 하지 않았고, 왕침도 말을 하지 않고 나와버렸다.

범영은 왕침이 장현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을 꾸짖었다. 그러자 왕침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진정으로 저를 알고 싶어한다면, 스스로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범영은 왕침의 성격을 칭찬하며 말했다.  너는 매우 희망이 있으니, 참으로 후배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로다.  왕침은 말했다.  삼촌 같으신 분이 안계셨다면, 이런 조카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전해 들은 장현은 왕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왔다. 왕침도 그를 맞아들여 그들은 곧 좋은 친구가 되었다. 훗날 왕침은 형주자사(荊州刺史)를 맡아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後起之秀 란  후배들 중의 우수한 인물 을 가리키는 말이다.
  
  曳尾塗中(예미도중)
  曳(끌 예) 尾(꼬리 미) 塗(진흙 도) 中(가운데 중)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의 이야기. 어느 날, 장자가 복수( 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왕(楚王)이 보낸 두 대부(大夫)가 찾아왔다. 그들은 장자에게 왕이 관직을 맡기고자 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장자는 낚시대를 쥔 채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제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지 이미 3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서는 이 거북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의 위에 모셔 놓았다지만,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귀한 대접을 받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사신들이  그거야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장자는 곧바로  그렇다면 어서 돌아 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고 싶으니까요. 라고 대답하였다.
  새 정부의 인사청문회가 있을 것 같다. 거론되는 인사들이 진정한 선비라면 장자처럼 머드팩(?)의 효과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曳尾塗中 은  벼슬을 하지 않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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