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25

醉月 2009. 11. 7. 10:07

  死灰復燃(사회복연)
  死(죽을 사) 灰(재 회) 復(돌아올 복) 燃(불사를 연)
 
  사기 한장유(韓長孺)열전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대,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수하에는 한안국(韓安國)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위법행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전갑이라는 옥졸이 그를 모욕하자, 한안국은  지금은 불 꺼진 재이지만 다시 타오르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자 전갑은  다시 탄다면 오줌을 누어 꺼버리겠다. 라고 했다.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 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死灰復燃 이란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득세함 을 비유한 말이다.
  
  牝牡驪黃(빈모려황)
  牝(암컷 빈) 牡(수컷 모) 驪(가라말 려) 黃(누를 황)
 
  열자 설부(說符)편의 이야기. 진(秦)나라 목공이 백락(伯樂)에게 말을 잘 고를 만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자, 그는 구방고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목공은 그에게 좋은 말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석달 뒤 구방고는 돌아와서 보고하길,  지금 사구라는 곳에 있습니다. 누런 색의 암놈입니다. 했다.   목공이 다른 사람을 시켜 알아 보니, 검은 색에 수놈이라 하였다. 목공은 곧 백락을 불러서  구방고라는 자는 말의 색깔과 암수조차도 구별하지 못했소. 라고 꾸짖었다. 백락은 크게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방고는 정수만을 파악하고 대체적인 것은 잊어버립니다. 그는 속을 살피고서 외모는 잊어 버리며, 보아야 할 것만을 보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습니다.
그는 살펴야만 할 것만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뜨린 것입니다. 그가 말을 골랐다는 것은 그 말의 귀중한 특징을 발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후, 그가 골랐다는 말을 데려와 보니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牝牡驪黃 이란 이렇듯  사물을 인식하려면 그 실질을 파악하여야 함 을 비유한 말이다.
  
  曲突徙薪(곡돌사신)
  曲(굽을 곡) 突(굴뚝 돌) 徙(옮길 사) 薪(땔나무 신)
 
  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
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하였답니다.
   曲突徙薪 이란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을 뜻한다.
  
  解衣推食(해의추식)
  解(풀 해) 衣(옷 의) 推(옮을 추) 食(밥 식)
 
  사기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 항우는 20만 대군을 보내 제나라를 지원하며 한신의 진격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무참하게 격파하였다.

한신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한 항우는 사람을 보내 한신에게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하였다.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항우의 부하로 있을 때, 그는 나를 하급군관에 임명하여 하찮은 일만을 시키고, 나의 계책을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이제 한나라 왕은 나를 대장군에 임명하고 수만 대군을 통솔하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자기의 옷을 벗어 입게 해주고, 자기의 먹을 것까지도 먹게 해주었소. 내가 어떻게 그런 분을 배신하고 스스로 왕이 될 수 있겠소?
   解衣推食 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사심없이 선심을 베품 을 비유한 말이다.
  
  鐵面皮(철면피)  
  鐵(쇠 철) 面(낯 면) 皮(가죽 피)
 
  송(宋)나라 손광헌(孫光憲)이 쓴 북몽쇄언(北夢 言)에 나오는 이야기.
  왕광원(王光遠)이란 진사(進士)가 있었다. 그는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 진사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그는 권세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아부를 계속했다.
  하루는 어떤 고관이 술에 취해 매를 들고 그에게  때려 주고 싶은데 한 대 맞아 보겠나? 하고 말했다. 아부꺼리만 찾고 있던 왕광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인의 매라면 맞고 말고요. 라고 하였다.
  사정없이 얻어 맞은 왕광원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친구가  자네는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나? 하고 물었다. 왕광원은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손해볼 게 없잖아? 하고 대답했다. 이런 왕광원을 가리켜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왕광원의 낯가죽은 열 겹의 철판만큼 두껍다. 라고.
  독도문제로 한참을 떠들어 대더니, 이번에는 일방적인 어업 협정 파기. 낯가죽이 두꺼워도 너무 두껍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  鐵面皮 란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捉襟見 (착금견주)
  捉(잡을 착) 襟(옷깃 금) 見(볼 견)  (팔꿈치 주)
 
  장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솜옷은 다 낡아서 껍데기가 없었으며,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종기가 곪아 터졌으며, 손발은 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집은 사흘 동안이나 불을 때지 못했으며, 십 년이 넘도록 옷 한 벌을 변변히 지어 입지 못했다.
  갓을 쓰려고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팔꿈치가 나오고(捉襟而 見), 신을 신으려 하면 뒤꿈치가 터져 버리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신발을 끌면서 시경을 읊으면, 그 소리는 사방에 가득차며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증자는 높은 벼슬도 하지 못했으며, 귀족들과 벗하지도 못했다.
  형편이 예전과 같지 않다보니, 70년대식 생활 모습이 차츰 나타나고 있다. 연탄이 인기를 끌고, 장작을 때는 아궁이도 다시 등장했다. 유행이 지난 옷을 입어도 쳐다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제 조그만 더 있으면 팔꿈치 뚫린 저고리와 구멍난 양말이 새로운 유행(?)을 이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捉襟見  란 옷깃을 여미면 팔꿈치가 나와 버린다는 뜻으로,  재정적으로 형편이 어려움 을 비유한 말이다.
  
  牝鷄司晨(빈계사신)
  牝(암컷 빈) 鷄(닭 계) 司(맡을 사) 晨(새벽 신)
 
  상서(尙書) 목서(牧誓)의 이야기. 은(殷)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정이 심해지자, 주(周)나라 서백(西伯)의 아들 발(發)은 주왕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발은 목(牧) 땅에 이르러 군사들을 격려하며 훈시를 시작하였다.
   나를 따르는 제후와 용사들이여. 그대들의 창을 들고, 그대들의 방패를 나란히 하며, 그대들의 긴 창을 세우시오. 내 훈시를 하겠소.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소.  암탁은 아침을 알리지 않는 것이니, 암탉이 아침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 고 하였소. 지금 은나라의 주왕은 오직 여자의 말만 듣고,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할 분들을 버리고 보답하지 않고 있으며, 살아 있는 임금의 부모형제들도 버렸소.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죄를 짓고 도망온 자들을 공경하며 믿고 그들에게 벼슬자리를 주고 있소. 그는 백성들에게 포학한 짓을 일삼으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소.

 

지금 나는 오직 하늘의 벌을 주려고 하는 것이오. 용사들이여, 힘을 내시오. 
   牝鷄司晨 이란  여자가 기승을 부림 비유한 말이다. 얼마 전 한 여인 때문에 곤경에 처했던 미국의 대통령.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리에 어긋나면 뒷탈(?)이 생기는 법이다.
  
  金石爲開(금석위개)
  金(쇠 금) 石(돌 석) 爲(할 위) 開(열 개)
 
  신서(新序) 잡사(雜事) 4편의 이야기. 주(周)나라 때, 초(楚) 지방에 웅거자(熊渠子)라는 유명한 활의 명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홀로 산속에 걷다가, 앞에 호랑이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풀무더기를 발견하고, 즉각 활을 잡아당겼다.
그는 호랑이가 맞아 죽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호랑이라면 죽기 전에 분명히 몸부림을 쳤을텐데, 이것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게 아닌가. 웅거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의심이 들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였다. 이러한 일은 웅자거의 강한 힘과 집중된 정신에서 나온 강한 신념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금(金)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금 화살로 달러의 바위를 뚫는 작전(?)이다. 국민들의 의지가 이렇듯 강한 이상, 머지않아 종이로 만든 달러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金石爲開 란  의지가 강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사석위호(射石爲虎)   중석몰시(中石沒矢)  등이 있다.
  
  半部論語(반부논어)
  半(반 반) 部(분류 부) 論(말할 론) 語(말씀 어)
 
  송(宋)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이야기. 북송(北宋) 초, 산동(山東)에 조보(趙普)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송 태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송나라를 건국하게 하였다. 태종(太宗)이 제위를 계승하자, 그는 승상에 임용되어 국가를 매우 잘 다스렸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가 겨우 논어 밖에 읽지 않아 학식이 없는데다, 별다른 재능도 없어서 중책을 맡기 어렵다고 모략하였다. 송 태종이 이를 알고 조보에게 묻자, 조보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대답하였다.
   저의 평생 지식은 분명히 논어를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논어의 절반 지식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일을 도왔으며, 이제는 그 나머지 절반의 지식으로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리도록 돕고 있습니다.
   半部論語 란 반 권의 논어라는 뜻으로  고전의 학습이 매우 중요함 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가벼운 읽을거리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때 골치 아픈 책을 읽지 않겠다는 독서 전략(?)이다. 하지만 약으로 말하면, 옛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고전은 인삼녹용이 든 보약중의 보약과 같은 것을....
  
  量體裁衣(양체재의)
  量(헤아릴 량) 體(몸 체) 裁(마를 재) 衣(옷 의)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고관(高官)이 있었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하였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할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경의 옷차림을 보고 경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런데 경과 같은 고관이 낡고 헤어진 옷을 입는 것은 조정의 체면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며, 백성들로부터 과인이 경을 천하게 대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소. 지금 옷을 함께 보내니, 좀 낡긴 했지만 새옷을 입는 것보다는 더 잘 맞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 옷들은 과인이 특별히 사람을 시켜 경의 몸에 맞게 고치도록 하였기 때문이오.    量體裁衣 란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하여 문제나 일을 처리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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