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23

醉月 2009. 10. 21. 08:21

  有備無患(유비무환)
  有(있을 유) 備(갖출 비) 無(없을 무) 患(근심 환)
 
  춘추좌전 양공(襄公) 11년조의 이야기. 기원전 641년, 진(晋)나라 도공(悼公)은 11개 동맹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당시 약소국으로서 맹주(盟主)인 진나라 덕분에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 정나라는 악사, 전차, 가녀(歌女)와 많은 악기를 감사의 예물을 진나라에 보냈다. 진나라 도공은 이를 받고 대단히 기분이 좋아 예물의 반을 대신 위강(魏絳)에게 주었다.
  그러나 위강은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이렇게 화평하게 된 것은 우리 국가의 복이옵고, 8년간에 제후들을 아홉 차례나 화합시키어 제후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 것은 군주의 덕택입니다. 신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길, 편안히 있으며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잘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신은 이것을 규범으로 삼으시도록 아룁니다  有備無患 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걱정이 없음 을 뜻한다.
  

  捲土重來(권토중래)
  捲(말 권) 土(흙 토) 重(거듭 중) 來(올 래)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두목은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채 자결해 버린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수치를 삼키고 참는 것이 바로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재능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올 것은 알지 못 하였구나(捲土重來未可知).
  국치(國恥)를 경험했던 이 해가 저물었다. 새로운 다짐으로 새해를 맞아야 할 때이다. 

捲土重來 란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함 을 비유한 말이다.
  

  近悅遠來(근열원래)
  近(가까울 근) 悅(기쁠 열) 遠(멀 원) 來(올 래)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 섭공(葉公)이라 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 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기뻐하고, 먼데서는 오는 것입니다(近者悅, 遠者來).   이는 정치를 잘 하면 인근 국가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되어 기뻐하고, 먼 나라의 사람들도 정치 잘하는 것을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것을 뜻한다. 

 近悅遠來 란  좋은 정치의 덕(德)이 널리 미침 을 비유한 말이다.
  

  未能免俗(미능면속)
  未(아닐 미) 能(능할 능) 免(면할 면) 俗(풍속 속)

 
  세설신어 임탄(任誕)편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완함(阮咸)과 숙부 완적(阮籍)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길의 남쪽에 살았으며, 그밖의 완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길의 북쪽에 살았다. 그런데 북쪽의 완씨들은 모두 부유했지만, 남쪽의 완씨들은 매우 가난했다.
  당시에는 매년 7월 7일에 겨울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마치 잘 사는 티를 내는 시합을 하는 것같았다. 어느 해 7월 7일, 관습대로 북쪽의 완씨들은 옷을 꺼내 말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훌륭한 비단 옷들뿐이었다. 하지만 남쪽의 완함과 완적은 이 일에 대해 이미 신물이 난 상태인지라, 완함은 긴 장대에다 낡은 포대기와 헌 바지를 걸어 놓고 햇볕을 쪼였다. 어떤 이가 이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완함에게 물었다. 완함은 웃으면서  풍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오. 라고 대답했다.
  한때 신정(新正)에 밀려 구정(舊正)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풍양속이란 제도보다 강한 것이어서, 대부분 구정을 설로 쇠고 있다.  未能免俗 은  전해 내려온 습속을 따를 수 밖에 없음 을 뜻한다.
  

  竹頭木屑(죽두목설)
  竹(대 죽) 頭(머리 두) 木(나무 목) 屑(가루 설)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파양( 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은 시켜 이것들은 전부 모아 기록해 놓도록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어느 해, 새해 모임이 있었던 날, 많은 눈이 내린 후 날씨가 풀리자,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도간은 즉시 나무 가루을 꺼내 길위에 뿌렸다. 그는 후에도 많은 폐품들을 모아서 여러 가지 급한 곳에 사용하였다.
  쓸 만한 물건들이 자주 버려지고, 아파트 내부 개조를 위해 멀쩡한 시설물을 떼어 버리는 일이 잦다. 싫증이 났거나 구식이 아니면 싸구려이기 때문이란다. 정말 배 부른(?) 소리다.  竹頭木屑 이란  못 쓰게 된 것들을 모아 후에 다시 활용함 을 비유한 말이다.
  

  狐疑不決(호의불결)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不(아닐 불) 決(터질 결)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의심많은 여우의 성질을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 이는 사람들이 여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지나친 의심은 사회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이제는 서로 믿는 분위기가 필요한 때이다.  狐疑不決 이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面壁功深(면벽공심)
  面(낯 면) 壁(벽 벽) 功(공 공) 深(깊을 심)
 
  오등회원(五燈會元) 동토조사(東土祖師)편의 이야기.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흥성하자, 많은 인도 승려들이 중국으로 왔다.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왕자인 달마(達摩)는 광동지방을 지나 양나라의 수도인 건업(建業)에 도착하였다. 달마는 건업을 떠나 북위(北魏)의 영토인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少林寺)에 머무르게 되었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밤낮으로 벽을 향해 앉은채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面壁而坐, 終日默然,). 그에게 무슨 오묘함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달마가 이렇게 수행하기를 9년. 그리고 그는 죽었다.
  소림사의 서쪽에는 높이가 2 장(丈)이나 되는 석벽(石壁)이 있다. 얼핏 보면 보통 돌 같지만, 대여섯 걸음 물러나서 보면, 달마가 정좌(靜坐)하고 있는 모습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달마가 9년 동안 면벽하며 도를 닦아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요즘 벽 뚫는(?) 범죄가 부쩍 늘고 있다. IMF시대의 도둑들은 달마신공(?)이라도 연마한 것일까. 정말 기막힌 공력들이다.  面壁功深 이란  오랜 수련을 통하여 깊은 경지에 이름 을 비유한 말이다.
  

  蕭規曹隨(소규조수)
  蕭(맑은 대쑥 소) 規(법 규) 曹(나라 조) 隨(따를 수)
 
  한나라 양웅(楊雄)의 해조(解嘲)에 실린 이야기.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고조 유방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이 컸기 때문에,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의 함양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 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蕭規曹隨 란  전인(前人)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답습함 을 비유한 말이다. 
  

  遼東之豕(요동지시)
  遼(멀 요)  東(동녘 동)  之(-의 지)  豕(돼지 시)
 
  후한서(後漢書) 주부(朱浮)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말, 주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쟁에 참가하여 약간의 무공을 세워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로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여 항상 자랑하고 다녔다.  천하가 태평해지자, 주부처럼 평범한 군인들은 별 볼일이 없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요동에 갔다가, 검은 돼지가 머리털이 흰 새끼를 낳은 것을 보고 매우 희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머리털이 흰 돼지 새끼를 황제에게 바쳐 환심을 사고자 하동(河東)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서 보니 검은 돼지 뿐만 아니라 머리털이 흰 돼지는 말 할 것도 없고, 몸 전체가 흰 돼지도 엄청나게 많았다. 주부는 끌고 갔던 돼지 새끼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에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곧장 돌아온 그는 다시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첨단 시대. 희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흰 돼지 따위에 감탄할 틈이 없는 때이다.  遼東之豕 는  요동의 돼지 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아 무엇이든지 희귀하게 여김 을 비유한 말이다.
  

  投筆從戎(투필종융)
  投(던질 투) 筆(붓 필) 從(좇을 종) 戎(되 융)
 
  한서 반초(班超)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집안은 서한 말의 시대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점차 빈곤해지기 시작했다. 형 반고가 낙양(洛陽)에서 관직을 맡게 되자, 동생 반초도 어머지와 함께 낙양으로 왔다. 낙양에서는 생활이 어려웠으므로, 반초가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문서를 베끼다가 변방을 안정시켰던 역사적인 인물들을 생각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홧김에 붓을 내던지면서 외쳤다.
   대장부는 큰뜻을 품고 나라의 변방을 안정시키는 일을 해야 하거늘 어찌 하루종일 붓만 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곧 군에 입대하여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41세 때에는 서역으로 가서 흉노의 세력을 제거하였다. 31년 후 그는 백발 노인이 되어 귀국하였다. 반초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 일단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하려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흉노 보다 무서운 IMF 때문이다.   投筆從戎 이란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從軍)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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