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20

醉月 2009. 9. 11. 05:18

  功虧一 (공휴일궤)
  功(공 공) 虧(이지러질 휴) 一(한 일)  (삼태기 궤)
 
  상서(尙書) 주서(周書)의 여오(旅獒)에 나오는 기록이다. 주(周)나라가 상(商)나라를 물리치자,

서쪽에 살던 여족(旅族)들이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獒(오) 라는 큰 개를 공물로 바쳐왔다.

이때 태보(太保)였던 소공(召公)은  여오(旅獒) 라는 글을 지었다.

그는 이 글에서 오랑캐들이 바친 개 같은 공물은 임금의 위신과 관련이 있으므로 받지 말기를 충고했다.
   개나 말은 그 풍토에 맞지 않으면 기르지 마십시오.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부지런하지 않음이 있게 하지 마십시오.

자질구레한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결국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니,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음에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면 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爲山九 , 功虧一 ).

진정 이렇게 하신다면 백성들은 사는 곳을 보전할 수 있고, 당신은 대대로 임금 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功虧一  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함 을 비유한 말이다. 세계화의 구호 아래 국민 소득 1만불을 환호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폭등하는 환율 덕분에 늘어나도 시원찮을 소득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과 선진국을 향한 꿈이 사라지려는 순간이다.
  
  債臺高築(채대고축)

  債(빚 채) 臺(돈대 대) 高(높을 고) 築(쌓을 축)
 
  한서(漢書) 제후왕표서(諸侯王表序)의 이야기. 전국시대, 주(周)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난왕(周 王)은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명목상 군주의 자리에 있었지만 각 제후들은 그의 통치에 따르지 않았다.

그들 중 진(秦)나라는 국력이 강해지자 자주 다른 나라를 침공하였으며,

초(楚)나라 효열왕(孝烈王)은 각국과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그는 주나라의 난왕에게 진나라를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주난왕은 전쟁이 끝나면 이자까지 갚겠다고 설득하며 부호(富豪)들에게서 돈을 빌려 출전(出戰)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자, 돈을 빌려줬던 부호들이 궁으로 몰려와 난왕에게 빚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소란스런 소리가 궁궐 깊은 곳까지 들려왔다. 주난왕은 빚쟁이들을 피해,

하루종일 궁안의 높은 누대에 숨어서 근심과 두려움으로 지냈다(有逃債之臺).
   債臺高築 이란  빚이 너무 많아 갚을 방법이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傾箱倒 (경상도협)
  傾(기울 경) 箱(상자 상) 倒(넘어질 도)  (상자 협)
 
  세설신어(世說新語) 현원(賢媛)편의 이야기. 진(晋)나라 때, 태위(太尉)인 치감( 鑑)은 자신의 딸을 매우 예뻐하였다.

그는 사도(司徒)인 왕도(王道)의 아들과 조카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청혼하고자 했다.

중매인은 왕씨 집안의 젊은이들을 살펴 본 후, 치감에게 말했다.  왕씨댁의 자제들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만,

한 자제는 배를 드러낸 채 침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훗날 잠을 잤던 이 젊은이가 치감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는 왕도의 조카로서 후세에 이름을 날린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였다.

왕희지는 처남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사안과 사만 등과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번은 왕희지의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와서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씨 집안 사람들은 사안과 사만이 오면 광주리를 다 쏟아(傾箱倒 ) 음식을 차려 맞이하면서도,

너희들이 오면 평상시 처럼 대접하니 다음부터 번거롭게 왕씨 댁에 내왕하지 않도록 해라.
   傾箱倒  이란  가진 것을 모두 다 꺼내놓음 을 비유한 말이다. 

 

  叱石成羊(질석성양)
  叱(꾸짖을 질) 石(돌 석) 成(이룰 성) 羊(양 양)
 
  신선전(神仙傳)의 이야기. 옛날 황씨 성을 가진 형제가 있었다. 형의 이름은 황초기(黃初起)이고,

동생은 황초평(黃初平)이었다. 황초평이 14세가 되던 해, 하루는 산에서 양을 먹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도사(道士)가 나타났다.

도사는 초평을 제자로 삼고자 금화산의 한 동굴로 그를 데리고 갔다. 도사는 초평에게 신기한 재주를 가르쳐 주었다.
  형인 황기초는 양치러 나간 동생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방으로 찾아 나섰다.

몇일 후 산 꼭대기에 올라서야 동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초평은 동생에게 물었다.  양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황초평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동쪽 산 위에 있다고 대답했다. 형은 급히 양을 찾으러 달려 갔만,

그곳에는 양은 없고 흰 바위 하나만 있었다.
  동생인 황초평은 자신을 원망하는 형과 함께 동쪽 산으로 갔다. 그는 흰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양들아, 일어나라! 

흰 바위는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양들로 변하였다.  叱石成羊 이란  신기한 기술이나 괴이한 현상 을 비유한 말이다.
세상이 갈수록 답답해진다. 돌맹이를 금덩이로 바꾸는 기술이라도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   



  妄自尊大(망자존대)
  妄(허망할 망) 自(스스로 자) 尊(높을 존) 大(큰 대)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의 이야기. 동한(東漢) 초, 유수(劉秀)는 동한을 건국하고 광무제(光武帝)가 되었지만,

전국은 여전히 군웅들이 날뛰는 상태였다.
당시 최대의 세력 중의 하나인 공손술(公孫述)은 사천지방에서 황제가 되었다.

한편 감숙 일대를 점거하고 있던 외효(  )는 정치적인 출로(出路)를 찾기 위해, 마원을 공손술에게 보냈다.

마원은 공손술과 동향이었므로, 그가 자신을 환영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마원은 공손술의 의례적인 접견에 매우 실망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 왔다.

그는 외효에게 말하길  공손술은 진지한 마음으로 인재들을 받아들여 함께 일을 하려고 하기는커녕 스스로 잘난체 교만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식견이 얕은 사람으로서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을뿐이며,

스스로 잘난체 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있었습니다(井底蛙耳, 妄自尊大). 우리의 뜻을 동쪽의 유수에게 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妄自尊大 란  교만을 부리며 잘난 체 함 을 뜻한다.

역대 대선 후보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국정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모두들  妄自尊大 했을 뿐이었다.
  
  
  狼狽爲奸(낭패위간)
  狼(이리 랑{낭}) 狽(이리 패) 爲(할 위) 奸(범할 간)
 
  당(唐)나라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의 이야기.  狼 과  狽 는 모두 이리를 뜻하는 말이만, 

狼 은 앞 다리가 길고 뒷 다리가 짧은 이리이고,  狽 는 앞 다리가 짧고 뒷 다리가 긴 이리이다. 

狼 은  狽 없이 혼자서 일어설 수 없고,  狽 는  狼 없이 걸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狼과 狽는 항상 한 몸이 되다시피 하여 양을 훔치러 다녔으나, 울타리가 높고 단단하면 그들은 그걸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럴 때면  狼 은  狽 의 목에 올라타고  狽 는 긴 두 다리를 이용해 일어섰다.

그런 후  狼 은 울타리 너머로 긴 앞 다리로 뻗쳐 양을 잡아챘던 것이다.
   이리(狼) 의 다리는 사실 앞뒤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나  狽 는 가공의 동물인 것 같다. 

실패나 사고, 또는 아주 난처한 상황 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이는  낭패(狼狽) 라는 말은,

다리의 길이가 다른 두 이리를 묶어 걷게 하면 기우뚱거리며 넘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
  유령회사를 차려 4천억원에 가까운 돈을 사취한 일당이 적발되었다. 모두들 狼과 狽처럼 서로 손발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던 모양이다. 이렇듯  狼狽爲奸 이란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함 을 비유한 말이다.
  

  酒囊飯袋(주낭반대)
  酒(술 주) 囊(주머니 낭) 飯(밥 반) 袋(자루 대)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은 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 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
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 라고 하며 얕보았다.
  마시고 노는데 귀한 달러를 뿌리는 일부 졸부들과 유학생들. 그들은 아직도 국가의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밥통에다 술자루같은 존재들이다.

이렇듯  酒囊飯袋 란  먹고 마실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 을 비유한 말이며, 한마디로 식충이(?)를 뜻한다.
  

  鐵杵成針(철저성침)
  鐵(쇠 철) 杵(공이 저) 成(이룰 성) 針(바늘 침)
 
  명(明)나라 진인석(陳仁錫)의 잠확류서(潛確類書)의 이야기. 당(唐)나라의 위대한 시인 이백(李白)은,

어렸을 때 공부를 싫어하고 놀기만을 좋아하였다. 어느 날 어린 이백은 들에서 백발이 성성한 한 노파가 손에 큰 쇠막대를 들고 돌에다 열
심히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이백은 그 노파에게  할머니, 지금 무얼하고 계시죠? 라고 물었다.

그 노파는 이백을 쳐다보더니  이걸 갈아서 가는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 라고 말했다.
  이백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굵은 쇠막대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어요?  그 노파는 이백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노력만 한다면 쇠막대를 갈아서 틀림없이 바늘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백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노파의 말은 도리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이백은 노파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곧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렇게 하여 훗날 이백은 대시인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 새마을 운동이나 국채보상 운동을 전개하자는 말이 들린다. 이는 어려운 경제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리라. 

鐵杵成針 이란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함 을 비유한 말이다.
  

  衆志成城(중지성성)
  衆(무리 중) 志(뜻 지) 成(이룰 성) 城(성 성)
 
  국어(國語) 주어(周語)의 이야기.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시장에서 유통되던 소액의 돈을 없애고 고액의 돈을 주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의 원성(怨聲)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2년 후,

경왕은 민간에 남은 동전(銅錢)들을 수집하여 엄청나게 큰 종(鐘)을 만들었다. 경왕은 악관(樂官)을 불러 그 소리가 어떤지 물었다.
  악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백성들에게 부담과 재물상의 손해를 주며 종을 만들었으니, 그 소리가 다른 악기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백성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으며, 백성들 모두가 싫어하는 일은 실패하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옛말에  많은 사람들의 뜻은 견고한 성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말은 쇠를 녹인다(衆心成城, 衆口煉金) 고 했습니다.

군주께서 하신 일은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주나라의 경제 위기. 굳이 따지자면 실정의 책임은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경왕에게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위기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단결일 것이다. 

衆志成城 이란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단결하면 그 역량이 커짐 을 비유한 말이다.
  

  對牛彈琴(대우탄금)
  對(대할 대) 牛(소 우) 彈(퉁길 탄) 琴(거문고 금)
  
  남조(南朝) 양(梁) 승우(僧祐)의 홍명집(弘明集)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공명의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어느 날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발견하였다.

그는 냇물 소리와 목동들의 피리 소리에 흥취가 돋자, 소를 향해 거문고를 퉁기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에 화를 내는 공명의에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연주가 나쁜 게 아니고, 소가 당신의 음악을 모르는 것이오.  공명의는 이를 믿지 않고, 아무렇게나 거문고의 줄을 세게 그었다.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소가 머리를 들고 꼬리를 저었다.

공명의는 다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거문고로 소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보았다. 소는 다시 머리를 들고 공명의를
향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고명의는 소가 고상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의 형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아무개의 잘못이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이지만,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같다.

야간 골프장과 향락업소가 여전히 붐빈다니 하는 말이다. 

對牛彈琴 이란  어리석은 자에게 도리를 말함 을 비유한 말이며, 곧  소 귀에 경읽기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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