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21

醉月 2009. 9. 28. 05:43

  對牛彈琴(대우탄금)
  對(대할 대) 牛(소 우) 彈(퉁길 탄) 琴(거문고 금)
  
  남조(南朝) 양(梁) 승우(僧祐)의 홍명집(弘明集)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공명의 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어느 날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발견하였다. 그는 냇물 소리와 목동들의 피리 소리에 흥취가 돋자, 소를 향해 거문고를 퉁기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에 화를 내는 공명의에게 어떤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연주가 나쁜 게 아니고, 소가 당신의 음악을 모르는 것이오.  공명의는 이를 믿지 않고, 아무렇게나 거문고의 줄을 세게 그었다.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에 소가 머리를 들고 꼬리를 저었다. 공명의는 다시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거문고로 소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보았다. 소는 다시 머리를 들고 공명의를 향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고명의는 소가 고상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의 형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아무개의 잘못이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이지만,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같다. 야간 골프장과 향락업소가 여전히 붐빈다니 하는 말이다.  對牛彈琴 이란  어리석은 자에게 도리를 말함 을 비유한 말이며,

곧  소 귀에 경읽기 라는 뜻이다. 
  
  合浦珠還(합포주환)
  合(합할 합) 浦(개 포) 珠(구슬 주) 還(돌아올 환)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의 이야기. 중국 광서(廣西)지방의 합포(合浦)현은 합포주(合浦珠)라는 진주로 유명한 곳이었다. 한(漢)나라 때, 합포군의 백성들은 모두 진주조개를 채취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탐관오리들은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진주를 캐냈다. 이 바람에,

진주 조개가 자취를 감추고, 상인들의 내왕도 끊겼다. 백성들의 생활이 날로 궁핍해지고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자,

사람들은  진주 조개들이 합포에서 살기 싫어 모두 월남땅으로 달아났네. 라고 한탄하였다.
  동한(東漢)의 순제(順帝)가 즉위하자, 곧 맹상을 합포의 태수로 파견하였다. 맹상은 먼저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엄단하여 진주 조개의 생산과 보호를 적극 지원하였다. 일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합포 바다에는 다시 진주 조개가 나타나고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모두  떠났던 진주가 다시 돌아 왔네(去珠復還). 라고 말했다.
   合浦珠還 이란  잃었던 것을 찾거나 떠난 것이 돌아옴 을 비유한 말이다. 사라져버린 번영, 그리고 한때 근면으로 상징되었던 국민성. 이것들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지의 여부는 오직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幸災樂禍(행재락화)
  幸(바랄 행) 災(재앙 재) 樂(즐길 락) 禍(재화 화)
 
  좌전(左傳) 희공(僖公) 14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공자 이오(夷吾)는 진(秦)나라로 도망하였다. 이오는 귀국하기 전에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감사의 대가로 주기로 하였으나, 진(晋)의 군주, 즉 혜공(惠公)에 즉위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기원전 647년, 진(晋)나라에 가뭄이 들었다. 진혜왕은 지난 날의 일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부 백리해(百里奚)의 권유로 진(晋)나라에 양식을 보내 주었다.
  이듬해, 진(秦)나라는 기근이 들자 진(晋)나라에서 곡식을 사오려 했으나, 진혜공은 곡식을 팔지 않았다. 대부 경정은 진혜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혜를 잊는다면, 이는 무친(無親)입니다. 또한 남의 어려움을 즐기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물건을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은 불상(不祥)이며, 이 일로 이웃 나라에게 죄를 짓는 것은 불의(不義)입니다.  진혜공은 이를 틈타 진(秦)나라를 기습하였다가 포로가 되고 말았다. 幸災樂禍 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쁨을 느낌 을 뜻하는 말이다.
  
  買 還珠(매독환주)
   買(살 매)  (궤 독) 還(돌아올 환) 珠(구슬 주)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어떤 초(楚)나라 사람이 진주(珍珠)를 얻게 되었다. 그는 진주를 높은 값에 팔기 위해, 향내나는 목란(木蘭)으로 작은 상자를 만들고, 다시 계초(桂椒) 등으로 향기를 물씬 풍기게 하였다. 그런 뒤 진주를 상자 안에 넣고, 다시 여러 가지 보석으로 상자의 겉을 장식했다.
  초나라 사람이 진주 상자를 들고 시장에 나타나자, 정(鄭)나라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진주 상자에 마음이 끌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진주상자를 샀다. 그는 진주 상자를 반나절 동안이나 살펴보고 비로소 상자을 열었다. 초나라 사람은 이 정나라 사람이 진주를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정나라 사람은 진주를 초나라 사람에게 돌려주고는 빈 상자만을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떠나버렸다. 초나라 사람은 상자 파는 솜씨는 훌륭했지만, 진주 파는데는 실패하였던 것이다.
  모든 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선후(先後)가 있는 법이다. 허세 때문에 내실(內實)을 망친다면, 이는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買 還珠 란  본연의 일은 잊고 지엽적인 일만을 추구함 을 비유한 말이다.
  
  負荊請罪(부형청죄)
  負(질 부) 荊(가시나무 형) 請(청할 청) 罪(허물 죄)
 
  사기(史記)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수하에는 인상여와 염파라는 두 인물이 있었다. 이들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279년, 진나라 소왕(昭王)이 혜문왕을 면지( 池)의 연회석상에서 만났을 때, 인상여는 혜문왕의 기선을 꺾으려던 진나라 왕의 계책을 무산시켰다. 이에 앞서 인상여는 진나라로부터 화씨벽을 되찾아온 바 있는터라 명성이 염파를 능가하였다.
  장군인 염파는 이러한 인상여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염파를 피하는 까닭을 묻는 부하들에게 인상여는  지금 진나라가 우리 나라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위급을 뒤로하고 사사로운 원한만을 따진다면, 이는 진나라가 바라는 일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염파는 이 말을 전해듣고, 웃옷을 벗은 채 가시나무를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앞에 와서 크게 사죄하였다.
   負荊請罪 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함 을 뜻한다. 이제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인책론이 일고 있다. 이는 회초리를 꺾어 들고 스스로 매 맞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리라.
  
  梁上君子(양상군자)
  梁(들보 량{양}) 上(위 상) 君(임금 군) 子(아들 자)
 
  후한서(後漢書) 진식전(陳寔傳)의 이야기. 동한(東漢) 시기, 태구현에 진식이라는 현령(縣令)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정직하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웠던 어느 해, 진식의 집에 도둑이 들어 대들보에 숨었다. 진식은 이를 모르는 척하며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나쁜 사람들도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평소에 배우지 아니하고, 자신을 엄하게 다스리지 아니하여, 차츰 나쁜 성품이 자라게 된 것이다. 지금은 대들보 위에 올라가 계신 군자가 바로 그러하니라.  이 말을 듣고 있던 도둑은 얼른 대들보에서 내려와 진식에게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에게  모습을 보아하니 악인은 아닌 것 같구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느냐. 했다.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 필을 주며, 그것을 본전으로 하여 장사를 하라고 하였다.
   梁上君子 란 곧  좀도둑 을 비유한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이 도둑은 그래도  군자 다운 편이다. 뻔뻔스런 나라 도둑(?)과는 달리 배고픔때문에 남의 집 담을 넘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사죄했으니 말이다.
  
  雪中送炭(설중송탄)
  雪(눈 설) 中(가운데 중) 送(보낼 송) 炭(숯 탄)
 
  송사(宋史) 태종기(太宗紀)의 이야기. 북송(北宋) 초, 토지 겸병을 둘러싼 귀족들의 분란이 심해짐에 따라, 일반 백성들의 삶도 몹시 궁핍해졌다. 서기 993년, 즉 북송 태종 순화(淳化) 4년 봄, 빈곤을 참지 못한 농민 왕소파(王小波)와 이순(李順)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사천(四川)에서 봉기하였다.
  그 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날씨 또한 매우 추웠다. 태종인 조광의(趙光義)는 왕소파와 이순 등의 농민 봉기에 두려움을 느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다시 봉기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사람을 시켜 몇몇 어려운 노인들과 가난한 백성들의 집에 돈과 쌀, 땔감을 보냈다(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민심을 수습하려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부를 잘하는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이 일을 역사에 기록하게 하였다. 雪中送炭 이란  급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 을 비유한 말이다.
  
  夜郞自大(야랑자대)
  夜(밤 야) 郞(사나이 랑) 自(스스로 자) 大(큰 대)
 
  사기(史記) 서남이(西南夷)열전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중국의 귀주(貴州)와 운남(雲南) 지방은 지리적인 조건으로 한나라 조정과의 내왕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 지방의 사람들은 한나라의 정치적 상황에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당시 귀주에는 야랑국(夜郞國)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운남에는 전국( 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크기는 한나라의 현(縣)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서기 122년, 한무제는 왕연우라는 사신을 두 나라에 파견하였다. 먼저 전국에 도착한 사신들에게 전국의 왕은 세상 넓은 것을 모르고  한나라와 우리 나라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라고 물었다. 왕연우는 전국의 국왕이 오만하고 무지한 사람으로서 내왕할만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야랑국을 방문하였는데, 뜻밖에 양랑국의 국왕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들은 중원과 단절되어 외국의 상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夜郞自大 란  좁은 식견에 제 잘났다고 뽐냄 을 비유한 말이다. 
  
  矯枉過正(교왕과정)
  矯(바로잡을 교) 枉(굽을 왕) 過(지날 과) 正(바를 정)
 
  후한서 중장통(仲長統)전의 이야기. 중장통은 동한(東漢) 영제(靈帝) 때의 유명한 문인이다. 그는 이란편(理亂篇)이라는 글에서, 당시의 정치적 혼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제왕(帝王)들 중 어떤 이는 썩 총명하지 못하여, 나라 안에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만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라 안의 모든 업적을 모두 자기의 공로로 돌리며 아무도 자신을 뒤엎지 못하리라 믿게 된다. 그 결과, 온 나라가 분란에 휘말리게 되고, 이민족들은 이 틈을 노려 침범해 오며, 마침내 나라는 무너지고 왕조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하길  정치가 잘 이루어지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부정한 기풍과 혼란을 바로 잡고자 하나, 굽은 것을 바로 잡으면서 마땅한 정도를 지나치게 되기도 한다(復入于矯枉過正之檢). 때문에,

효과를 얻으려다 도리어 예상한 목적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라고 하였다.
  정부의 금융 증권 안정대책이 발표되었다. 비상 처방이라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된다.  矯枉過正 은  교왕과직(矯枉過直) 이라고도 하며,  잘못을 바로 잡음에 그 정도가 지나침 을 뜻한다. 
  
  流芳百世(유방백세)
  流(흐를 유{류}) 芳(향기 방) 百(일백 백) 世(대 세)
 
  진서(晋書) 환온전(桓溫傳)의 이야기. 동진(東晋) 시기, 진(晋)나라와 북방 이민족들은 서로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서기 354년, 환온은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 전진(前秦)을 공격했다. 환온의 세차례에 걸친 북벌은 저족( 族), 강족(羌族), 선비족(鮮卑族) 등 북방 이민족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서기 363년, 환온은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으며, 조정에서는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여 그의 지위는 제후들보다 더 높았다. 환온은 군사대권을 장악하고 중원(中原)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여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환온은 일찍이  대장부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죽은 뒤 나쁜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한다. 라는 말을 하였다. 서기 373년, 61세의 환온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야망을 버리지 않았으나, 재상 사안(謝安)의 저지로 야심을 이루지는 못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야망을 갖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러운 이름으로 역사에 전해지는 것은 악취만년(惡臭萬年)일 뿐이다.  流芳百世 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영원히 전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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