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18

醉月 2009. 8. 23. 08:06

予取先與(여취선여)
  予(나 여) 取(취할 취) 先(먼저 선) 與(줄 여)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의 이야기. 진(晋)나라에 지백(知伯)이라는 귀족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귀족인 위환자(魏桓子)에게 영토를 강요하였다. 위환자는 후에 위나라의 선조(先祖)가 된 사람인데,

그도 당시에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차지하려 하였으므로, 지백의 요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에 임장(任章)이라는 사람이 위환자에게 지백의 요구대로 땅을 떼어 주도록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백에게 땅을 떼어준다면, 지백은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자만하여 적을 얕보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들도 이러한 피해를 입게 될까봐 단결하여 공동으로 지백을 상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백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주서(周書)에서는  상대를 물리치려면 반드시 먼저 그를 키워주고,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에게 미리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故予之) 라고 했습니다.  

위환자는 임장의 말대로 하였다. 지백은 과연 교만과 횡포, 그리고 탐욕 때문에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불렀다. 

予取先與 란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함 을 뜻하며, 사회생활의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진리이다.
  
  鶴立鷄 (학립계군)
  鶴(학 학) 立(설 립) 鷄(닭 계)  (무리 군)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 康)의 아들 혜연조( 延祖)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延祖卓卓如野鶴之在鷄 ).    鶴立鷄  는  군계일학(群鷄一鶴) 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 을 비유한 말이다. 정신없는 정치판과 경제판을 장악할 인물이 나타난다면,

바로 그는 한 마리의 학이 되는 것이다.
  
  舟中敵國(주중적국)
  舟(배 주) 中(가운데 중) 敵(원수 적) 國(나라 국)
 
  사기(史記) 손자오기(孫子吳起)열전의 이야기.

전국(戰國)시대, 위(魏)나라 장군인 오기(吳起)는 문후가 죽자 그의 아들인 무후(武侯)를 계속 섬기게 되었다.

어느 날, 무후가 서하(西河)에 배를 타고 가다 중간쯤에 이르자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이 산과 강의 험난한 조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위나라의 보배로다. 라고 했다.
그러자 오기는 이처럼 대답하였다.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은 임금의 덕일뿐, 지형의 험난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옛날 삼묘씨의 나라는 동정호(洞庭湖)의 왼쪽을 끼고 팽려호(彭 湖)를 오른쪽으로 끼고 있었으나,

임금이 덕의(德義)를 닦지 않아기 때문에 우왕(禹王)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임금의 덕에 있지 지형의 험난 함에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우리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시면 이 배 안의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舟中之人盡爲敵國也). 
舟中敵國 이란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이탈함 을 비유한 말이다.   
 


  竭澤而漁(갈택이어)
  竭(다할 갈) 澤(못 택) 而(말 이을 이) 漁(고기 잡을 어)
 
  여씨춘추(呂氏春秋) 의상(義賞)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진(晋)나라 문공(文公)은 기원전 632년,

성복(城 )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당시 진나라는 병력이 열세였으므로, 진문공은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호언(狐偃)이라는 자가 속임수를 써보자는 의견을 냈다.
  진문공은 호언의 계책을 옹계(雍季)에게 알려주며, 그의 견해를 물었다. 옹계도 하는 수없이 동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연못의 물을 말려서 고기를 잡고, 숲을 태워서 사냥을 한다면 못잡을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듬해에는 잡을 고기나 짐승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이는 계책도 이러합니다. 비록 어쩌다 한번은 성공할 지 모르지만,

다음 번에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먼 앞날을 내다보는 계책이 아닙니다. 
竭澤而漁 란  멀리 내다 보지 못하고 눈 앞의 이익만을 꾀함 을 비유한 말이다.
 


  一枕黃粱(일침황량)
  一(한 일) 枕(베개 침) 黃(누를 황) 粱(기장 량)
 
  당(唐)나라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이야기. 옛날 노생(盧生)이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만난 여옹(呂翁)이라는 도사에게 고단한 처지를 이야기했다.

도사는 그에게 베개 하나를 꺼내주면서 그걸 베고 자보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여관 주인은 기장을 삶고 있었다.
노생은 잠이 들자 곧 꿈을 꾸게 되었다.
  꿈속에서 노생은 부잣집의 아름다운 딸과 결혼하여, 재상(宰相)이 되었다가, 다시 조국공(趙國公)에 봉하여졌다.

노생은 여든이 넘도록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꿈에서 깨어난 노생은 여관 주인이 아직도 기장을 삶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곁에서 이를 보고 있던 도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인생이란 본시 이런 것이오. 라고 말했다.
  취업과 수능을 앞두고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장원급제 셔츠에 도깨비나 부적이 그려진 팬티, 족집게 점쟁이, 사주관상 등등.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노력이지, 부질없는 짓에 혼(?)을 뺄 일이 아니다.  一枕黃粱 이란  황량일몽(黃粱一夢) 이고도 한다.

이는 본시  부귀의 무상함 을 뜻하지만, 지금은  환상적이고 허황된 일 을 비유하기도 한다.
 


  中原逐鹿(중원축록)
  中(가운데 중) 原(근원 원) 逐(쫓을 축) 鹿(사슴 록)
 
  한서(漢書) 괴오강식부( 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 通)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 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己飢己溺(기기기익)
  己(자기 기) 飢(굶주릴 기)  溺(물에 빠질 닉)
 
  먼 옛날 대홍수(大洪水)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요(堯)임금은 곤( )에게 치수(治水)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가 없자, 요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舜)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이 일을 맡겼는데,

우는 13년후 치수에 성공하였다. 또한 직(稷)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농업을 좋아하여 항상 곡식의 종자를 모아 땅에 심었다.

후에는 간단한 농기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전국(戰國)시대, 맹자(孟子)는 우와 직을 칭송하여  우는 천하의 사람들이 물속에 빠진 것을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직은 천하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고통을 받게 되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굶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餓者, 由己餓之也) 라고 말했다.

이는 맹자(孟子) 이루상(離樓上)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己飢己溺 은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 라고도 하며, 지금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함 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喪心病狂(상심병광)
  喪(죽을 상) 心(마음 심) 病(병 병) 狂(미칠 광)
 
  송사(宋史) 범여규(范如圭)전의 이야기. 송나라 때, 비서성(秘書省)의 관리인 범여규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금(金)나라의 남침에 사람들은 항전을 주장하였으나, 대신(大臣) 진회(秦檜)는 투항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나라의 사신(使臣)이 송나라에 오게 되었는데, 그

들을 묵게 할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진회는 그들을 비서성에 묵게 하려고 했다.   범여규는 이 사실을 알고 극력 반대하였다.

범여규는 재상인 조정(趙鼎)에게  기밀상 중요한 비서성에 어떻게 적국의 사신들을 묵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송나라에 도착한 금나라 사신들은 그 언행이 오만하여 송나라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범여규는 진회에게 글을 써서 그의 편견과 굴욕적 행동을 비난하였다. 

이성을 잃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일할 수 있겠소(公不喪心病狂, 奈何爲此)? 라며. 
喪心病狂 이란  이성을 잃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佛頭著糞(불두저분)
  佛(부처 불) 頭(머리 두) 著(붙을 저) 糞(똥 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여회선사(如會禪師)편의 이야기. 송(宋)나라 때, 최(崔)씨 성을 가진 한 사나이가 하루는 절에 갔다가,

참새들이 불상의 머리에 똥 싸놓은 것를 보게 되었다(鳥雀于佛頭上放糞).

그는 절의 주지가 너무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화를 내며 주지에게 말했다.
   이런 참새들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소?  주지는 이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대답했다.  물론 있지요. 

최씨 사나이는 주지의 이런 대답을 듣고, 그가 어떤 식으로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여 다시 질문을 하였다.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떻게 부처의 머리에 똥을 쌀 수 있겠소? 

주지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참새가 불상에 똥을 싼 것은 바로 부처가 자비하여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새들이 독수리의 머리에 가서 똥을 싸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나이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佛頭著糞 이란  경멸이나 모욕을 당함 을 비유한 말이다.   
 


    呑棗(홀륜탄조)
   (온전할 홀)  (완전할 륜) 呑(삼킬 탄) 棗(대추 조)
 
  주자어류(朱子語類) 논어(論語) 16편에는  도리란 조리가 분명한 일이지 뭉뚱그린 것이 아니다(不是  一物) 라는 말이 있다.
  옛날, 한 의원이 사람들에게  배를 생으로 먹으면 치아에는 좋지만 비장(脾臟)에는 좋지 않고,

반대로 대추는 비장에는 좋지만 치아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스스로 총명하다는 한 사나이가 이 말을 듣고, 의원에게 말을 하였다. 

저에게 배와 대추의 좋은 점만을 취하고, 그것들의 나쁜 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의원은 이제껏 이런 방법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에 찬 말투로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 사나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배를 먹을 때는 씹기만 하고 삼키지는 않으며, 대추를 먹을 때는 씹지 않고 통째로 삼켜 버리는 것입니다.  
呑棗 란  꼼꼼하게 이해하지 않고 뭉뚱그려 넘어감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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