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8

醉月 2009. 6. 18. 08:51

  時不可失(시불가실)
  時(때 시) 不(아닐 불) 可(옳을 가) 失(잃을 실)
 
  상서(尙書) 태서(泰誓)편은 주(周)나라 서백후의 아들인 발(發)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함에 임하여 군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심을 이루려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로 따르시오.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때가 되었으니 잃어서는 아니 되오(時哉弗可失)! 

기원전 222년, 서백후 문왕(文王)의 아들인 발(發)은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중국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무왕(武王)인 것이다.
   時不可失(Must not lose the opportunity) 이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 는 뜻이며, 

물실호기(勿失好機) 와 비슷한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부(富)와 명예는 보통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의 몫
이었다.
  
  空城計(공성계)
  空(빌 공) 城(성 성) 計(꾀 계)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에는 텅빈 성(城)에 속아 넘어간 조조(曹操) 휘하의 한 장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제갈량은 양평이라는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두고, 대장군 위연(魏延) 등을 파견하여 조조의 군대를 공격케 하였다.

때문에 성 안에는 병들고 약한 소수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 때,

조조의 군대가 대도독 사마의(司馬懿)의 통솔로 양평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성을 지키고 있던 유비의 군사들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는 군사들을 시켜 성문을 활짝 열고, 성문 입구와 길을 청소하여 사마의를 영접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리고 자신은 누대(樓臺)에 올라가 조용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고 성 앞에 당도하여 이러한 상황을 보고 의심이 들었다.

그는 성 안에 이미 복병이 두고 자신을 유인하려는 제갈량의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곧 군사를 돌려 퇴각하였다.
   空城計 란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사실은 준비가 전혀 없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피서철 빈집털이가 우려된다고 하는데, 제갈량의 계략을 응용해 봄직하다. 


  明鏡高懸(명경고현)
  明(밝을 명) 鏡(거울 경) 高(높을 고) 懸(매달 현)
 
  한(漢)나라 때의 괴담이나 전설, 일화 등을 수록한 서경잡기(西京雜記) 권3에는 진(秦)나라 때의 신기한 거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나라의 함양(咸陽)궁에 소장된 진귀한 보물들 가운데, 너비가 4척, 높이가 5척 9촌으로 앞뒷면이 모두 밝게 빛나는 거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그 앞에 서면 거울에는 거꾸로 선 모습이 나타나고, 가슴을 어루만지며 비춰보면 그 사람의 오장(五臟)이 나타났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이 비추면 환부가 나타났으며, 이 거울은 사람의 나쁜 마음까지도 비춰 보였다.

이 때문에 진시황은 이 거울을 이용하여 궁궐안의 모든 사람들의 충성심을 비춰 보았다. 심장이나 쓸개가 급히 뛰는 사람을 발견하면,

진시황은 즉각 그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 거울은 진나라 말기,

유방(劉邦)이 함양을 공격하던 혼란속에서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明鏡高懸(a clear mirror hung on high) 은  진경고현(秦鏡高懸) 이라고도 하며  높게 매달려 있는 맑은 거울 이라는 뜻이다.

이는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 판단하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법관 을 비유한다.

일전에 한 법관이 판결한 술자리의 한 턱(?) 값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는 것 같다.
  
  弱肉强食(약육강식)
  弱(약할 약) 肉(고기 육) 强(굳셀 강) 食(밥 식)
 
  한유(韓愈)의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는 한유가 문창이라는 승려에게 써 보낸 글로서,

한유의 불교에 대한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한유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道)에 있어서 인(仁)과 의(義)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예약과 형정(刑政)보다 더 바른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천하에 시행하면 만물이 모두 합당함을 얻게 되고,

그것들을 그 자신에게 적용하면 몸은 편안하고 기운은 평온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불교라는 것은 누가 만들고 누가 전한 것입니까?

새들이 몸을 숙여 모이를 쪼다가 몸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고,

짐승들이 깊은 곳에 있으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것은 다른 것들이 자신을 해할까 두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고 있는 것입니다(猶且不脫焉, 弱之肉, 强之食).
   弱肉强食(The weak become the victim of the strong) 이란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잡아 먹힌다 는 뜻이다.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요즘 사회에서도 이 말은 전투수칙(?)이나 생존법칙(?)처럼 쓰이고 있다.
  
  不可救藥(불가구약)
  不(아닐 불) 可(옳을 가) 救(건질 구) 藥(약 약)
 
  시경(詩經) 대아(大雅)에는 한 충신의 답답한 마음을 노래한  판(板) 이라는 시(詩)가 실려 있다.
  서주(西周) 말엽, 여왕( 王)은 포학하고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박하였다.
백성들은 몰래 그를 저주하였으며, 일부 대신(大臣)들까지도 그에게 불만을 품었다.

 여왕은 백성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유명한 관리였던 범백(凡伯)은 왕의 이러한 처사를 지나치다고 여겨 과감하게 글을 올렸으나,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되었다.
   하늘이 저리도 가혹한데 날 그렇게 놀리지 마소. 늙은이는 진정으로 대하는데 젊은이는 교만스럽네.

내 하는 말 망녕된 것 아닌데도 그대들은 농으로 받네. 심해지면 그땐 고칠 약도 쓸 수 없다오(不可救藥).
  기원전 841년, 백성들의 폭동으로 여왕의 폭정은 결국 종말을 맞게 되었다. 

不可救藥 이란  일이 만회할 수 없을 지경에 달하였음 을 형용한 말이다. 학원 폭력의 심각한 상황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모두가 좋은 약을 찾아야 할 때이다.
  
  知難而退(지난이퇴)
  知(알 지) 難(어려울 난) 而(말 이을 이) 退(물러날 퇴)
 
  춘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12년조에는  사정이 좋음을 보고 진격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난다는 것은 용병의 바른 원칙이다(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 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정(鄭)나라는 패권(覇權)을 다투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위치하였는데, 정나라는 먼저 진나라에 의지하였다.

그러자 초나라는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자국(自國)의 안전을 위하여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먼데 있는 물로는 불을 끌 수 없듯 진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정나라는 초나라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군대를 통솔하던 환자(桓子)는 정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진나라로서도 승산이 없었다. 이에 그는 철군하려 하였으나,

지휘에 따르지 않던 부하들은 초나라 군사와 교전을 하여 크게 패하고 말았다.
   知難而退 란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마땅히 물러서야 함 을 뜻한다.

대권을 향한 용(龍)들이 아직껏 꿈틀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대세의 불리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얄팍한 자존심과 환상(?) 때문일 것이다.
  
  物腐蟲生(물부충생)
  物(만물 물) 腐(썩을 부) 蟲(벌레 충) 生(날 생)

 
  진(秦)나라 말년, 범증(范增)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여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다.

항량이 죽은 후, 그의 조카 항우가 그를 계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항우는 용맹하였지만 지모(智謀)가 없었으므로 주로 범증의 계획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였다.

범증은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곧 유방은 범증과 항우를 이간시키는 공작을 꾸몄다.

항우는 이 계략에 휘말려 범증을 의심하여 그를 멀리 하였다. 범증도 몹시 분개하여 항우를 떠나고 말았다.

얼마후 범증은 병사하였고, 항우는 유방에게 망하였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은  범증론(范增論) 이라는 글에서 범증이 항우의 곁을 떠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이고(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사람이란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야 모함이 먹혀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物腐蟲生(Worms breed in decaying matter) 이란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된다 는 뜻이다.

불건전한 사회와 부패한 정치는 곧 범죄와 비리(非理)의 무대인 것이다.
  
  조장(助長)
  助(도울 조) 長(길 장)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 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싹이 빨리 자라지 않자 그 싹을 조금씩 뽑아 올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나는 오늘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도와주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아들이 궁금하게 여겨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싹들은 자라기는커녕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 이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 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버려 두어도 잘 될 일을  쓸데없이 건드려 망쳐버린다 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南郭濫吹(남곽남취)
  南(남녘 남) 郭(성곽 곽) 濫(함부로 람) 吹(불 취)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에는 남곽처사(南郭處士)라는 무능한 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피리 우) 라는 관악기의 연주를 매우 즐겨 들었다.

그는 많은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특히 좋아하여, 매번 300명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다.
  우를 전혀 불지 못하는 남곽이라는 한 처사가 선왕을 위하여 우를 불겠다고 간청하였다.

선왕은 흔쾌히 그를 받아들여 합주단의 일원으로 삼고, 많은 상을 하사하였다.

남곽은 다른 합주단원들의 틈에 끼여 열심히 연주하는 시늉을 했다. 몇 해가 지나,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민왕(緡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민왕은 아버지인 선왕과는 달리 300명의 합주단이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듣지 않고 단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연주하는 것을 즐겨 들었다.

난처해진 남곽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 오자 도망치고 말았다.
   南郭濫吹(남곽이 우를 함부로 불다) 는  남우충수(濫 充數) 라고도 한다.

이는 무능한 자가 재능이 있는 척하거나,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利用厚生(이용후생)
  利(이로울 리) 用(쓸 용) 厚(투터울 후) 生(날 생)
 
  상서(尙書) 우서(虞書)의 대우모(大禹謨)에는 우(禹)와 순(舜)임금과 익(益) 세 사람의 정치에 관한 대담이 기록되어 있다.
  우는 순임금에게 말하길  임금이시여, 잘 생각하십시오. 덕으로만 옳은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는 백성을 보양(保養)하는데 있으니, 물·불·쇠·나무·흙 및 곡식들을 잘 다스리시고,

또 덕을 바로 잡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삶을 두터이 함을 잘 조화시키십시오(正德利用厚生, 惟和) 하고 하였다.

또한 춘추좌전(春秋左傳) 문공(文公) 7년조에도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의 여섯가지가 나오는 것을 육부(六府)라 하고,

백성의 덕을 바르게 하는 정덕(正德)과, 백성들이 쓰고 하는데 편리하게 하는 이용(利用)과,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후생(厚生), 이것을 삼사라 이릅니다(正德利用厚生, 謂之三事) 라는 대목이 보인다.
   利用厚生 이란  모든 물질들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여 백성들의 의식(衣食)을 풍족하게 하다 라는 뜻이며,

정치의 핵심을 집약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판에는  利用厚生 은 커녕 국민들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들의 삶과 지위
를 풍족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鈍銘千字'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성어_10  (0) 2009.06.27
고사성어_09  (0) 2009.06.23
고사성어_07  (0) 2009.06.12
고사성어_06  (0) 2009.06.09
고사성어_05  (0) 2009.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