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9

醉月 2009. 6. 23. 09:25

玩火自焚(완화자분)
  玩(가지고 놀 완) 火(불 화) 自(스스로 자) 焚(불사를 분)
 
  춘추좌전 은공(隱公) 4년조에는 무력의 위험성을 경고한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위(衛)나라 군주인 장공(莊公)의 첩이 아들을 낳자 이름을 주우(州 )라고 하였다.
주우는 어려서부터 장공의 총애를 받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무력 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장공이 죽자 환공(桓公)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주우는 기원전 719년 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주우는 왕위를 찬탈한 후, 송(宋), 진(陳), 채(蔡) 나라 등과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노(魯)나라에 알려지자 노나라의 은공은 중중(衆仲)이라는 대부에게 주주의 장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물었다.
  중중은 대답하길  주우는 무력만을 믿고 잔인한 짓을 하면서도 태연합니다만, 무력에 의지했다간 국민을 잃게 됩니다.

무력이란 불과 같은 것이어서, 단속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이 그 불속에서 타게 될 것입니다(夫兵, 猶火也. 弗 , 將自焚也) 라고 하였다.
   玩火自焚 이란  무모한 일로 남을 해치려다 결국 자신이 해를 입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지난 주 북한군의 도발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들은 이러한 불장난 이 곧 자신들을 불 태우는 일임을 모르는 것 같다.
  
  
  駟不及舌(사불급설)
  駟(사마 사) 不(아닐 불) 及(미칠 급) 舌(혀 설)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는 경솔한 말을 경계한 대목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위(衛)나라 대부(大夫)인 극자성(棘子成)이  군자는 바탕만 있으면 되었지 문(文)이 왜 필요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타깝습니다. 그대의 말씀은 군자의 말씀입니다.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 미치지 못합니다(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문(文)이 질(質)과 같고 질(質)이 문(文)과 같다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 개나 양의 가죽과 같다는 것입니까?
  송(宋)나라 구양수(歐陽修)의 필설(筆說)에도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한번 입을 떠나면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一言旣出, 駟馬難追) 라는 대목이 있다.  

駟不及舌(A word, once uttered, is beyond recall) 은  駟馬難追(Four horses can't overtake it -- a spoken word) 라고도 하는데,

이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모 정당의 경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쫓아 갈 수도 없는 약속을 마구 해대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공약(空約) 남발하는 연습을 미리 하고 있다는 것이다.
  
  喪家之狗(상가지구)
  喪(죽을 상) 家(집 가) 之(-의 지) 狗(개 구)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의 초라한 모습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춘추시기, 공자(孔子)는 제자들을 데리고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정(鄭)나라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과 길이 엇갈려버린 공자는 하는 수 없이 동문(東門)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초조해진 공자의 제자들은 모두 나뉘어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그를 찾았다. 제자들중에서 자공(子貢)이 가장 열심히 사방으로
스승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러던 중 어떤 정나라 사람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문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이마는 요(堯)임금과 같고, 그 목은 고요(皐陶)와 같으며, 어깨는 자산(子産)과 같았소.

그렇지만 허리 아래로는 우(禹)임금에 세치쯤 미치지 못하였고, 그 지친 모습은 마치 초상집의 개(若喪家之狗)와 같았소.
  제자들을 만난 공자는 자공의 이러한 말을 듣고  용모에 대한 말을 맞다고 하기 어렵지만

초상집 개 같다는 것은 딱 들어맞는 말이다(而似喪家之狗, 然哉然哉) 라고 했다. 

喪家之狗 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는 초라한 사람 을 비유한 말이며,

연말 대선에서 패배한 용들의 모습 또한 이러하리라.
  
  酒池肉林(주지육림)
  酒(술 주) 池(못 지) 肉(고기 육) 林(수풀 림)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방탕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주왕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달기( 己)라는 요부에 빠져 그만 극악무도한 폭군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 내어 자신을 반대하는 관리나 백성들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 여기에서 쾌락을 느꼈다.
  그는 향락을 위하여 높이가 천척(千尺)에 달하고 둘레가 삼리(三里)나 되는 궁전을 만들도록 명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노역케 하였다.

화려한 궁실(宮室)이 완성되자 각지의 준마(駿馬), 명견(名犬), 미녀(美女) 등을 수집하여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그는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以酒爲池, 懸肉爲林)한 다음,

많은 젊은 남녀들로 하여금 발가벗고 서로 희롱하고, 음탕한 음악과 음란한 춤을 추게 하며,

자신도 먹고 마시면서 이러한 광란의 잔치를 감상하였다.
   酒池肉林(sumptuous feast) 이란  지극히 사치스럽고 방탕한 술자리나 생활 을 비유한 말이다.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 속에서도 향락 산업만은 불황을 모른다고 한다.
  
  
  同心同德(동심동덕)
  同(한가지 동) 心(마음 심) 同(한가지 동) 德(덕 덕)
 
  상서(尙書) 태서(泰書)에는 단결을 호소하는 주(周) 무왕(武王)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다.

상(商)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포학무도한 정치는 제후(諸侯)들과 백성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제후들 가운데, 주나라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아들인 희발(姬發)은 아버지를 이어 무왕으로 즉위한 후,

곧 제후들을 이끌고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정벌하고자 하였다.
  주나라 무왕은 군대를 이끌고 맹진(孟津)이라는 곳을 통해 황하를 건너, 상나라의 도읍인 조가(朝歌)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는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가성의 남쪽 들에서 진군의 선서식을 거행하였다.

그는 상나라 주왕의 죄상을 낱낱이 들어 밝히면서 정벌군의 협심과 단결을 외쳤다.
   억조의 평범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으나 마음이 떨어지고 덕에서 떠나 있고, 나는 다스리는 신하 열 사람이 있으나

 마음을 같이 하고 덕을 같이 하고 있소(予有亂臣十人, 同心同德). 비록 친한 사람들이 있다하더라도 어진 사람만 못하오.
   同心同德 이란  일치단결된 마음 을 뜻한다. 어려움에 처한 한 자동차 회사의 사원들이 회사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들의 단결된 마음과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한다.
  
  
  胸有成竹(흉유성죽)
  胸(가슴 흉) 有(있을 유) 成(이룰 성) 竹(대 죽)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동파문집(東坡文集)49에는 운당곡언죽기(  谷偃竹記)라는 글이 있다.

동파라는 호로 유명한 소식은 문장뿐만 아니라 서화(書畵)에도 능하였다.

그에게는 자(字)가 여가(與可)인 문동(文同)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또한 문장과 서화에 모두 뛰어났다.
  소식은 정치적으로는 불우하였으나, 그가 그린 대나무와 그 기법은 옥국법(玉局法)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일찍이 화죽기(花竹記)라는 책에서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마음 속에 대나무을 완성해야 한다(故畵竹, 必先成竹于胸中) 라고 하였다.

그의 친구 문여가는 생동적인 대나무를 그리기 위하여, 많은 대나무를 심어 두고 매일 관찰하며,

대나무의 특징과 모습을 기억해 두었다. 당시 유명한 한 문인은  문여가가 대나무를 그릴 때, 완전한 대나무가 이미 그의 가슴속에 있었다
(與可畵竹時, 成竹已在胸) 라고 칭송하였다.
   胸有成竹 은  成竹在胸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을 하기 전에 완전한 계획을 구상하여야 함 을 비유한 말이다.

지금도  成竹 은  속셈 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대쪽(?) 인물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벌써  成竹 이 있었던 것이다.
  
  難兄難弟(난형난제)
  難(어려울 난) 兄(맏 형) 難(어려울 난) 弟(아우 제)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동한(東漢)시기, 영천(潁川)의 허(許)지방에 진식(陳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공정하였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여 집안에 하인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기(紀)이고 자(字)는 원방(元方)이었으며, 작은 아들은 이름이 담(湛)이고 자(字)는 계방(季方)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명망이 드높은 인물들이었다. 원방에게는 장문(長文)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계방에게는 충(忠)이라 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각각 자기의 아버지의 공적을 다투었는데, 끝내 해결할 수가 없어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묻기로 하였다.

진식은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렵고, 계방은 동생이 되기 어렵다(元方難爲兄, 季方難爲弟) 라고 대답하였다.

두 손자는 이 말을 듣고 모두 만족하여 물러났다.
   難兄難弟 란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서로 엇비슷하여 우열을 분간하기 어려움 을 비유한 말이다.

일본,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과 9승에 도전하는 박찬호. 이들은  難兄難弟 의 좋은 예이다.
  
  
  泰山壓卵(태산압란)
  泰(클 태) 山(뫼 산) 壓(누를 압) 卵(알 란)
 
  진서(晉書) 손혜전(孫惠傳)에는 한 장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나라 때, 손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부와 부친은 모두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당시 진나라는 각지역 황족들의 다툼으로 몹시 혼란한 와중에 있었다.

손혜는 처음 제(齊)나라의 사마(司馬) 경( )의 부하로서, 조왕(趙王) 사마 윤(倫)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그후 성도(成都)의 왕 사마 영(潁)의 장군이 되어 장사(長沙)의 왕 사마 의(義)를 정벌하러 가기도 했으나,

이후 그는 한때 은거생활을 하였다. 동해(東海)의 왕 사마 월(越)이 군사를 일으켜 그 세력이 커지자,

그는 사마월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를 칭송하였다.  그대의 깃발이 한번 휘날리면 오악(五岳)이 무너지고,

그대의 입김 한번이면 강물이 거꾸러 흐르니, 그대의 이러한 힘으로 역사의 흐름을 밀고 나아가 반역의 무리들을 토벌하고,

정의를 바로 잡으소서. 이는 실로   맹수가 여우를 삼키고, 태산이 계란을 깔아 뭉개고,

작은 불씨가 바람을 타고 넓은 들을 태우는 것처럼(泰山壓卵, 因風燎原), 쉬운 일입니다 .
   泰山壓卵 이란  매우 강하여 상대가 없거나 일이 매우 용이함 을 비유한 말이다. 
  
  實事求是(실사구시)
  實(열매 실) 事(일 사) 求(구할 구) 是(옳을 시)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에는 학문을 즐겼던 한 왕에 관한 기록이 있다.

한(漢)나라의 경제(景帝)에게는 유덕(劉德)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유덕은 하간(河間:지금의 하북성 하간현)에 봉하여지고 하간왕이 되었다. 그는 고서(古書)를 수집하여 정리하기를 좋아하였다. 진시황이 모든 책을 태워버린 이후 고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적지않은 책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사오기도 하였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도 하간왕 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진(秦)나라 이전의 옛책들을 그에게 받쳤으며, 일부 학자들은 직접 하간왕과 함께 연구하고 정리하기도 하였다.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하자, 유덕은 한무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과 고대의 학문을 연구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는 학문 탐구를 즐길뿐만 아니라 옛날 책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修學好古, 實事求是) 라고 말했다.
   實事求是(By verification of the facts to get the truth) 란  실제에 근거하여 진리를 밝혀 냄 을 뜻하며, 바로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이다.
  
  以卵擊石(이란격석)
  以(-써 이) 卵(알 란) 擊(부딪칠 격) 石(돌 석)
 
  묵자(墨子) 귀의(貴義)편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라는 말이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기,

묵자는 노(魯)나라를 떠나 북쪽의 제(齊)나라로 가는 길에 점장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점장이는 묵자에게 북쪽으로 가는 것이 불길하다고 말했다.

묵자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북쪽으로 향하여 치수(淄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때 치수의 물흐름이 너무 빨라 건널 수 없게 되자 묵자는 다시 돌 수 밖에 없었다.
  되돌아 오는 묵자를 보고 그 점장이는 거만하게 굴며 묵자의 기분을 건드렸다.
묵자는 제나라에 가지 못하게 된 판국에 점장이의 비웃음까지 받게 되자, 몹시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말은 근거없는 미신이오. 당신의 말을 믿는다면 천하에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러한 말로써 나의 말을 비난하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과 같소(以其言非吾言者, 是猶以卵投石也).

천하의 계란을 다 없앤다 해도 돌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오.    

以卵擊石 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는 뜻이니, 이는 곧  손해만 볼 뿐 이익이 없는 어리석은 일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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