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7

醉月 2009. 6. 12. 09:35

  
  巧言令色(교언영색)
  巧(공교할 교) 言(말씀 언) 令(착할 령) 色(빛 색)
 
  상서(尙書) 경명( 命)편에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백경(伯 )을 태복(太僕)으로 임명하며 훈계하였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아래 사람들을 신중히 고르되, 교묘한 말을 하는 자, 좋은 듯 꾸민 얼굴을 하는 자, 남의 눈치만 보는 자,

아첨하는 자는 쓰지 말고, 오직 올바른 사람만을 쓰도록 하시오(無以巧言令色便 側媚, 其惟吉士).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에는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에는 인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교언영색선의인). 이라는 말이 있으며,

공야장(公冶長)편, 양화(陽貨)편 등에도  巧言令色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巧言(fine words) 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꾸민 말 을 뜻하며 

令色(an insinuating appearance) 이란  보기 좋게 꾸민 거짓된 표정 을 뜻한다.
  TV 토론회에 출연한 대선주자들은 예상 문제(?) 풀이와 답변 연습,

그리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얼굴 가꾸기에 적지않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말재주와 멋있는 표정이 아니었으리라.
  
  開卷有益(개권유익)
  開(열 개) 卷(책 권) 有(있을 유) 益(더할 익)
 
  승수연담록( 水燕談錄)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권6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였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하여 사서를 완성하였다.

55개부문으로 일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개칭하였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하며 매일 이 책을 읽었다.

스스로 하루에 세 권씩 읽도록 정하여 놓고, 정사(政事)로 인해 못 읽는 경우에는 쉬는 날 이를 보충하였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태종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으니, 짐은 이를 피로하다 여기지 않소(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
   開卷有益(Reading gives advantages) 이란  책을 읽으면 이로움이 있음 을 말한다.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모두들 황제(皇帝)보다 더 바빠진 탓일까? 
  
   轍 魚(학철부어)
   (물 마를 학) 轍(바퀴자국 철)  (붕어 부) 魚(물고기 어)
 
  장자(莊子) 외물(外物)편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실려있다.
  집이 가난한 장주(莊周:장자의 이름)는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고을의 세금을 거둬들여 그때 삼백금을 빌려주겠다는 감하후의 말에 장주는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지며 말을 했다.
   내가 이리로 오는데 도중에 부르는 소리가 있어 뒤를 돌아보니 수레 바퀴 자국에 붕어가 있있소(車轍中有 魚焉).

그 붕어는 약간의 물만 있어도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했소.

그래서 나는 남쪽의 오월(吳越)의 왕에게로 가서 촉강(蜀江)의 물을 보내주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붕어는 불끈 성을 내며 차라리 건어물전에 가서 자기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轍 魚(a fish in a dry rut-in extremities) 는 학철지부( 轍之 ), 철부지급(轍 之急), 고어학철(枯魚 轍), 학부(  ) 등이라고도 하며, 

극도의 곤경에 처하여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북한 인구의 4분의 1인 550만명이 기아선상에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역시  허울 좋은 주체 낙원 건설 이 아니라 

한 그릇의 강냉이 죽 이다.
  
  金迷紙醉(금미지취)
  金(쇠 금) 迷(미혹할 미) 紙(종이 지) 醉(취할 취)
 
  송(宋)나라의 도곡(陶谷)이 편찬한 청이록(淸異錄)이라는 책에는 당나라 말엽의 명의(名醫)인 맹부(孟斧)의 고사가 실려있다.
  그는 독창(毒瘡) 치료에 뛰어나서, 자주 황궁에 들어가 소종(昭宗) 황제의 병을 진료하였다.

차츰 황제를 진료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황궁내의 실내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 등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훗날 맹부는 사천(四川)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황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장식하였는데,

방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포장하였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돌아가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해 버렸다네(此室暫憩, 令人金迷紙醉).    金迷紙醉 는  紙醉金迷 라고도 하는데, 이는  지극히 사치스런 생활 을 비유한 말이다. 일부 초대형 호화 빌라의 실내장식에도 금빛나는 외제품들만 사용된다고
하는데, 입주자들의 건강(?)이 걱정스럽다.
  
  
  徒勞無功(도로무공)
  徒(헛될 도) 勞(힘쓸 로) 無(없을 무) 功(공 공)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다.
  춘추시기, 공자가 서쪽의 위(衛)나라로 유세(遊說)를 떠났다.

스승인 공자의 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안연(顔淵)에게 사금(師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길을 가는 데에는 배가 가장 좋으며, 육지를 가는 데에는 수레가 최고이지.
그런데 만약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간다면 평생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네.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같으며, 주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도 이러한데,

공자께서 주나라에서 시행되었던 것을 노나라에서 시행하려는 것은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 애만 쓰고 보람은 없으며

(是猶推舟于陸也, 勞而無功), 틀림없이 몸에 재앙이 있을 걸세 . 
徒勞無功(Toil in vain) 은  도로무익(徒勞無益)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람이나 이익이 없음 을 뜻한다. 
   
  朝薺暮鹽(조제모염)
  朝(아침 조) 薺(냉이 제) 暮(저물 모) 鹽(소금 염)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 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朝薺暮鹽 이란 냉이와 소금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몹시 빈곤한 생활을 의미하며,

몇주전 KBS  일요스페셜 에 나타난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생활을 묘사하는데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人面獸心(인면수심)
  人(사람 인) 面(낯 면) 獸(짐승 수) 心(마음 심)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는 한대(漢代) 흉노들의 활동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흉노족은 서한(西漢) 시대 중국의 북방에 살았던 유목 민족이었다.

당시 한(漢)나라는 흉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부하였으므로,

흉노족들은 자주 한나라를 침입하였다. 흉노족의 수십만 기마병(騎馬兵)은 해마다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농가를 기습하
여 가축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133년, 한 무제(武帝)는 흉노 정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투를 겪으며 그들의 침공을 막아내었다.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흉노족의 잔악함을 묘사하여 

오랑캐들은 매우 탐욕스럽게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데,

그들의 얼굴은 비록 사람같으나 성질은 흉악하여 마치 짐승같다(人面獸心) 라고 기록하였다.
   人面獸心(man in face but brute in mind) 이란 본시 한족(漢族)들이  흉노 를 멸시하여 쓰던 말이었으나,

후에는 성질이 잔인하고 흉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得意洋洋(득의양양)
  得(얻을 득) 意(뜻 의) 洋(넘칠 양) 洋(넘칠 양)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는 겸손의 교훈을 주는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기, 제(齊)나라의 유명한 재상인 안영(晏 )에게는 한 마부(馬夫)가 있었다.
어느 날, 안영이 마차를 타고 외출을 하려는데, 마부의 처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의 거동을 엿보았다.

자신의 남편은 수레 위에 큰 차양을 씌우더니,

마차의 앞자리에 앉아 채찍질하는 흉내를 내며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意氣揚揚, 甚自得也).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그의 처는 그에게 이혼해야겠다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척도 못되지만 나라의 재상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그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매우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 넘으면서도 남의 마부가 된게 만족스런 듯 기뻐하니, 저는 이런 남자의 곁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후 마부는 늘 겸손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안자는 그를 대부(大夫)로 천거하였다. 
得意洋洋(triumphant) 은  의기양양(意氣揚揚) 이라고도 한다. 당선될 것처럼
득의양양 떠들어대는 대선주자들에게서 마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殷鑒不遠(은감불원)
  殷(성할 은) 鑒(거울 감) 不(아닐 불) 遠(멀 원)
 
  시경(詩經) 대아(大雅)편의 탕(蕩)이라는 시는 나라의 흥망(興亡)에 대한 교훈을 노래한 것이다.

하(夏)나라 최후의 왕인 걸왕(桀王)은 잔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핍박하다 결국 그들의 반항을 받게 되었다.

기원전 16세기경 상(商)부락의 지도자인 탕(湯)는 군사를 일으켜 하나라를 멸하고 상나라를 세웠다.

기원전 14세기경에는, 상나라의 왕 반경(盤庚)은 수도를 은(殷)지역으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은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1세기 중엽 당시 서백후(西伯侯)의
아들인 발(發)에게 나라를 잃고 말았다.
  은나라가 멸망하기 전, 서백후는 주왕에게 간언하기를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면 가지와 잎은 해가 없어도 뿌리는 실상 먼저 끊어진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라 걸왕 때에 있다(殷鑒不遠 在夏後之世) 라고 하였다. 

鑒 은  선례(先例)   본보기 라는 의미로 쓰였으니, 

殷鑒不遠(An example is not far to seek) 이란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남의 실패가 바로 가까이에 있음 을 뜻한다.
  
  一擧兩得(일거양득)
  一(한 일)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고사이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변장자(卞莊子)가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一擧必有雙虎之名) 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一擧果有雙虎之功). 
   一擧兩得 은  一石二鳥(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一箭雙 (일전쌍조: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 와 같은 표현이며,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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