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4

醉月 2009. 5. 29. 10:00


  썩지 않을 튼튼한 기둥 하나,   一木難支(일목난지)
  一(한 일) 木(나무 목) 難(어려울 난) 支(지탱할 지)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편(任誕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의 사위인 임개(任愷)는 가충(賈充)이라는 사람과의 불화로 그만 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권세를 잃게 되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어떤 사람이 임개의 친구인 화교(和嶠)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친구인 임개의 방탕함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좌시만 하는거요? 라고 물었다.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던 화교는  임개의 방탕은 마치 북하문(北夏門)이 무너질 때와 같아서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쳐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非一木所能支). 라고 대답하였다.
   一木難支 는  一柱難支(일주난지) 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나무 기둥 하나로 떠받치지 못하듯 

이미 기울어지는 대세를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 을 비유한 것이다.
  개인의 경우 방탕함으로 얻게되는 최후의 결과는 망신(亡身)이고, 나라의 경우에는 망국(亡國)이다.

지금 우리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방탕과 다름없는 일들이 일어 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썩지 않을 충실한 기둥을 하나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  徙木之信(사목지신)
  徙(옮길 사) 木(나무 목) 之(갈 지) 信(믿을 신)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인 상앙(商 )의법령 시행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남문(南門)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十金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감히 옮기지 않았다. 상앙이 다시 五十金을 내걸자,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어 거짓이 아님을 내보였다. 이렇게 하여 신법을 공포하였는데,

일년후 백성들이 그 법령의 불편한 점을 고하며 도성으로 몰려왔다. 이때 태자(太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상류층 사람들이 범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徙木之信 이란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 는 것을 뜻하며,  移木之信(이목지신) 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정치인들도 상앙의  徙木之信 을 가지고 법을 만들어야 하며,

만든 법은 자신들부터 반드시 지키겠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주어야 한다. 


  한 끼 식사에 열 번 일어서기,  一饋十起(일궤십기)
  一(한 일) 饋(먹일 궤) 十(열 십) 起(일어날 기)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는 우(禹) 임금의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우 임금은 자신에게 도(道)로써 가르칠 사람은 와서 북을 울리고, 의(義)로써 깨우치려는 자는 와서 종을 치며,

어떤 일을 고하고자 하는 자는 방울을 흔들고, 근심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와서 경쇠를 치며,

소송할 일이 있는 자는 와서 작은 북을 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이에 우임금은 어진 사람들을 맞이 하기 위해 한 번 식사하는 동안에 열 번이나 일어났으며(一饋而十起),

한 번 머리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를 움켜쥐고 나와 천하의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이럴 때 선(善)을 다하거나 충(忠)을 나타내지 못한 자는 그 자질이 부족한 자이다. 라고 하였다.
   一饋十起 란  일이 몹시 바빠서, 한 끼 밥을 먹는데도 도중에 여러 차례 일어나야 했음 을 뜻한다.

이는 곧 통치자가 국민들을 위한 정치에 각별한 열성(熱誠)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는  一饋十起 하면서 열성적으로 국민을 위해 일했던 통치자가 몇이나 있었으며,

그리고 통치자들 때문에 국민들이 끼니를 건너 뛰어야만 했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일곱 걸음에 숨겨진 재능,   七步成詩(칠보성시)
  七(일곱 칠) 步(걸음 보) 成(이룰 성) 詩(시 시)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는 위(魏) 문제(文帝)인 조비(曹丕)와

그의 동생인 동아왕(東阿王) 조식(曹植) 간에 일어난 고사가 실려 있다.
  문제는 동아왕에게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으라고 하면서(文帝嘗令東阿王七步作詩),

못지을 경우에는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였다. 동아왕은 대답을 마치자 마자 한 수의 시를 지었다. 

콩을 삶아 콩국을 끓이고 콩물을 짜서 즙을 만드네.

콩깍지는 솥 아래서 불에 타고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

본시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건만 서로 지저댐이 어찌 이리도 급할까! 

 

문제는 조식의 이 시를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조조(曹操)와 그의 큰 아들인 조비, 셋째 아들인 조식은 중국 문학에서  삼조(三曹) 라 칭하는 유명한 문장가들이다.

이들중 조식의 시재(詩才)가 특히 뛰어났기 때문에, 조비는 천자(天子)가 된 후에도 조식에 대한 시기심이 변하지 않았다.
조비는 조식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죽일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어서 이러한 시를 짓게 했던 것이다.    

七步成詩 는  문재(文才)가 민첩함 을 말하며,  칠보재(七步才) 란  글 재주가 뛰어난 사람 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평양에선...  塗炭之苦(도탄지고)
  塗(진흙 도) 炭(숯 탄) 之(갈 지) 苦(괴로울 고)
 
  서경(書經) 중훼지고(中 之誥)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어진 신하였던 중훼가 탕왕에게 고하는 글이 실려있다.

탕왕은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것을 늘 괴롭게 여기고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구실 삼을까 염려하였다.

중훼는 이러한 탕왕의 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 그를 격려하였다.
   하늘은 총명한 이를 내셔서 이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夏)나라 임금은 덕에 어두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게 되었으니(民墜塗炭),

하늘은 이에 임금님께 용기와 지혜를 내리시어, 온 나라의 의표가 되어 바로 다스리게 하시어,

우(禹)임금의 옛 일을 계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법을 따라서 하늘의 명을 받드시는 것입니다.
   塗 는 진흙을 뜻하고  炭 은  숯불 을 뜻하니,  塗炭之苦 란  진흙수렁이나 숯불에 빠진 것과 같은 괴로움 을 말한다.

이는 재난(災難) 등으로 몹시 곤란한 처지에 빠져있음을 나타낸다.

북한의 어려운 형편을 묘사함에  도탄(塗炭) 이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은 지금  塗炭之苦 를 겪고 있는 것이다.
  
  刻舟求劍(각주구검)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편(察今篇)에는 융통성 없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의 한 사나이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 가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칼을 그만 강물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황급히 다른 칼을 꺼내어 그 배의 옆부분에 칼 빠뜨린 곳이라는 자국을 새기면서(遽刻其舟)  여기는 내 칼이 빠진 곳 이라고 말했다.

배가 목적지에 이르자, 그는 자신이 새겨 놓았던 곳을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어 그 칼을 찾으려 했다(求劍).

그러나 자신이 탔던 배는 칼을 빠뜨린 곳을 지나 계속 이동하여 왔으므로, 그가 칼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刻舟求劍 이란  뱃전에 새겨놓은 표시만을 믿고 물에 빠뜨린 칼을 찾으려함 을 뜻한다.

이는 곧  시세(時勢)나 세상 형편에 어둡거나 고지식함 을 비유한 말이다.

 법 조항이나 문구(文句)에 얽매어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경우에도  刻舟求劍 이라는 말은 들어 맞는다.
  이렇듯 현실 감각이나 융통성이 전혀 없는 사람,

반대로 시류(時流)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약삭 빠르게 앞서 가는 사람은 대사(大事)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鷄口牛後(계구우후)
  鷄(닭 계) 口(입 구) 牛(소 우) 後(뒤 후)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 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鷄口牛後 란  큰 집단의 말단보다는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낫다 는 것을 뜻한다.

이제 대선(大選)이 가까워지면서  鷄口 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맛으로 치자면  꼬리곰탕 이 훨씬 나은 것을......
  
  食言(식언)
  食(먹을 식) 言(말씀 언)
 
  서경(書經) 탕서(湯誓)에는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정벌하려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맹서가 기록되어 있다.
  탕왕은 박( )땅에서 출전에 앞 둔 전군(全軍)에 다음과 같이 훈시한다.  나는 감히 난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시니 그를 치려는 것이오. 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니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소.

하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하나라 고을을 해치게만 하였소. 

탕왕은 하나라 걸왕의 죄상을 설명하며, 계속하여 정벌의 불가피함을 외친다. 

바라건대 나를 도와 하늘의 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爾無不信).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오(朕不食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제시한다.
   食言 이란 밥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듯  약속을 슬그머니 넘겨 버리는 것 이니,

이는 곧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을 말함 을 뜻한다.
   떡값  받아 떡을 사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선거 때 내뱉었던  공약의 말(言) 까지도 깡그리 먹어치우는

이들은 탕왕에게서 신의(信義)를 배워야 한다.
  
  越俎代 (월조대포)
  越(넘을 월) 俎(도마 조) 代(대신할 대)  (부엌 포)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는 요(堯)임금과 기산에 숨어 살았다는 은자(隱者) 허유(許由)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요임금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이야기 하며 허유에게 천하를 맡아줄 것을 권유한다. 

일월(日月)이 밝은데 횃불을 계속 태우면, 그 빛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이러한 요임금의 권유에 허유는 뱁새와 두더지를 비유로 들며 다음과 같이 거절의 뜻를 표한다.  그대는 돌아 가시오.

내게 천하란 아무 소용없소.

요리사가 음식을 잘못 만든다고 할지라도 시동이나 신주가 술단지와 고기그릇을 들고 그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오

( 人雖不治 , 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越俎代  란  자신의 직분을 넘어 타인의 일을 대신하는 것 을 말한다.  越俎之嫌(월조지혐) 이라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는  자신의 직분을 넘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다 라는 뜻이다. 일 처리가 썩 훌륭하지 않더라도,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亡國之音(망국지음)
  亡(망할 망) 國(나라 국) 之(갈 지) 音(소리 음)
 
  한비자(韓非子) 십과편(十過篇)에는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에 들었다는

멋있는 음악에 관한 고사가 기록되어 있다.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산동의 복수( 水)라는 곳에서 들었던 음악을 자랑하였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는 이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  이건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
입니다(亡國之音). 라고 말하며 연주를 중지시켰다.
  사광은 그 음악의 내력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것은 주나라의 악사인 연(延)이 주왕(紂王)을 위해 만든 음탕한 음악입니다.
무왕(武王)이 주나라를 정벌하자 연(延)은 복수까지 도망와서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음악은 복수 강변에서만 들을 수 있으며, 최초로 듣는 자는 반드시 나라를 빼앗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亡國之音 은  亡國之聲(망국지성)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음란하고 사치스러워 나라를 망칠 음악 을 말한다.

최근 일부 유행가의 가사에도 음란한 표현이나 욕설 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주왕의 음악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음악이라면 곧  亡國之音 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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