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3

醉月 2009. 5. 27. 09:41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   西施 目(서시빈목)
  西(서녘 서) 施(베풀 시)  (찡그릴 빈) 目(눈 목)
 
   莊子 <천운편天運篇>에는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미인인 서시(西施)의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서시가 가슴을 앓아 눈을 찡그리고 있으니, 그 마을의 다른 추녀(醜女)가 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와서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찡그렸다(西施病心而 ,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而 ). 

그 결과 어떤 이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어떤 이들은 아예 그 마을을 떠나버렸다.
  이 이야기는 공자의 제자인 안연과 악관(樂官)인  金 이라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중에 나온다.

장자는 당시 주(周)왕조에서 이상정치를 재현하려는 것을 서시의 찌푸림을 본받는 추녀의 행동같은 것으로서

사람들의 놀림받는 쓸데 없는 짓이라 여겼던 것이다.
   西施 目(서시가 눈을 찡그리다) 이란  아무런 비판 없이 남을 흉내 내는 것 을 비유한 것이며, 

효빈(效 :눈쌀 찌푸림을 흉내내다) 이라고도 한다. 맹신(盲信)과 맹목적 추종은 그 추녀다운 사고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유행에 민감해지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주관(主觀)과 합리적 비판에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
  苛(매울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예기(禮記) 단궁편檀弓篇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실려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 기슭을 지나고 있는데,

한 부인이 무덥 앞에서 울며 슬퍼하고 있었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그 까닭을 묻게 하였다. 그 부인은 대답하길  오래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게 죽음을 당하였고,

저의 남편 또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의 아들마저 호랑이게 목숨을 잃게 되었답니다. 라고 하였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그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無苛政). 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자로의 말을 듣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잘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다(苛政猛於虎也). 라고 하였다.
  춘추 말엽 노(魯)나라의 대부 계손자(系孫子)의 폭정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차라리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쪽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苛政 이란  번거롭고 잔혹한 정치 를 뜻한다.  政 을  徵(징) 의 차용으로 보아  번거롭고 무서운 세금과 노역 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잔혹한 정치, 무거운 세금이나 노역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들이다.
  
  사람을 찾습니다,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家(집 가) 貧(가난할 빈) 思(생각할 사) 良(좋을 량) 妻(아내 처)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 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가 적합합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 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다. 

家貧思良妻 나  國亂思良相 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 것을 뜻한다.
  
  킬링 필드,   肝腦塗地(간뇌도지)
  肝(간 간) 腦(뇌 뇌) 塗(칠할 도) 地(땅 지)
 
  사기(史記) 유경열전(劉敬列傳)에는 한(漢)나라 고조(高祖)와 유경의 대화가 실려 있다.

유경은 고조에게  폐하께서는 촉땅과 한을 석권하고, 항우와 싸워 요충지를 차지하도록까지 대전(大戰) 70회, 소전(小戰) 40회를 치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간과 골이 땅바닥을 피칠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자식이 들판에서 해골을 드러내게 된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使天下之民, 肝腦塗地, 父子暴骨中野, 不可勝數). 라고 하였다.
  유경은 덕치(德治)가 이루어졌던 주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한나라 고조는 많은 전쟁을 치르며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할 반발세력의 저항이나 외부의 침략을 예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고조에게 옛 진나라의 요충지인 함양(咸陽)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충고하였던 것이다.
   肝腦塗地(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다) 란 전란(戰亂)중의 참혹한 죽음을 형용한 말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겪어야하는 죽음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지난 주 TV에 보도되었던 르완다 사람들의  죽음의 귀향 열차 91명 압사 라는 화면은  肝腦塗地 를 연상케 하였다.


  물보다 더 미지근한 얼음(?),   靑出於藍(청출어람)
  靑(푸를 청) 出(날 출) 於(어조사 어) 藍(쪽 람)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군자가 말하길, 배움은 그쳐서는 아니된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하였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며,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라고 하였다(學不可以己. 靑取之於藍而靑於藍, 氷水爲之而寒於水). 
  성악설을 주장한 전국시대의 학자 순자는 남풀과 청색, 그리고 물과 얼음의 비유로써 교육에 의한 인성의 교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惡)하고 이(利)를 탐하고 질투하고 증오하므로,

스승의 가르침과 예의로써 이를 교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藍 이란 본시 그 잎으로 남색 염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식물의 이름이다. 

남풀 에서 챙색을 추출하는 과정이나 물이 얼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곧  교육을 비유한 것이니, 

靑出於藍 이란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게 변화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出藍 이라는 표현도 같은 뜻이다.
  진정으로  남풀 과  물 의 역할을 하는 스승,  챙색 과  얼음 으로 변화된 제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靑出於藍 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스승의 날 이 되었으면 한다.
  
  세 사람이 만들어낸 호랑이,   三人成虎(삼인성호)
  三(석 삼) 人(사람 인) 成(이룰 성) 虎(범 호)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 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 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 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 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였다.
   三人成虎 란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들이 말하게 되면 진실처럼 들리게 되어버린다 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말들이 혹시 진짜 호랑이를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하루가 삼년같은 그리움,   一刻三秋(일각삼추)
  一(한 일) 刻(새길 각) 三(석 삼) 秋(가을 추)
 
  시경(詩經) 왕풍(王風)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채갈(采葛) 이라는 시(詩)가 있다.
   그대 칡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석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그대 대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아홉달이나 된 듯하고(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그대 약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세 해나 된 듯하네(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고대 중국에서는 일주야(一晝夜)를 일백각(一百刻)으로 나누었는데, 절기(節氣)나 주야(晝夜)에 따라 약간 다르다.

예컨대, 동지에는 낮이 45각, 밤이 55각이었고, 하지에는 낮 65각, 밤 35각이었다.

춘분과 추분에는 낮이 55각반이었고, 밤은 44각반이었다.

청(淸)대에 이르러서는  시종(時鐘) 으로 시간을 나타내게 되었으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15분을  一刻 이라 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一刻 이라는 말로써 매우 짧은 시간을 표현하였다. 

 一刻三秋 나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라는 말은 이 시의  一日三秋 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두 같은 의미이다.
 一刻三秋 란 짧은 시간도 삼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말이다. 
  
  관 뚜껑에서 밝혀지는 진실,   蓋棺事定(개관사정)
  蓋(덮을 개) 棺(널 관) 事(일 사) 定(정할 정)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의 한 산골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이다. 마침 그곳에는 자신의 친구 아들인 소계(蘇係)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소계에게 한 편의 시를 써서 그를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의  군불견 간소계(君不見 簡蘇係) 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계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다. 

蓋棺事定 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80년 5월에 관 뚜껑이 덮혀졌던 많은 이들, 그들은 거의 20년만에야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지게 된 셈이다.
  
  낙엽에서 가을을 찾다,   一葉知秋(일엽지추)
  一(한 일) 葉(잎 엽) 知(알 지) 秋(가을 추)
 
  회남자 설산훈(說山訓)에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고(見一落葉而知歲之將暮),

병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에 추위가 닥쳐옴을 아는 것은 가까운 것으로써 먼 것을 논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당나라 한 시인의 시(詩)에는  떨어지는 잎새 하나로 천하가 가을임을 알다(一落葉知天下秋). 라는 구절이 보인다.
   一葉知秋 는  하나의 낙엽을 보고 곧 가을이 왔음을 알다 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써 큰 것을 알며,

부분적인 현상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전체, 발전추세 등을 미뤄 알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들은 정치와 경제에서, 그리고 교육에서도 낙엽들을 보았으며, 지금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이 떨어지는 많은 잎사귀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서양 속담에  One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성급한 판단을 삼가라는 뜻이다. 지금 몇몇의 낙엽들이 눈에 띄인다고 해서 가을과 겨울의 뒤를 이어 나타날 봄까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一葉知秋 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以偏槪全(이편개전) , 즉  반쪽으로 써 전체를 짐작하다 라는 말이 있다.
  
  
  오래사는 미인은 가짜 미인,   佳人薄命(가인박명)
  佳(아름다울 가) 人(사람 인) 薄(엷을 박) 命(목숨 명)
 
  소동파(蘇東坡)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송대(宋代)의 시인 소식(蘇軾)은 진사, 학사, 예부상서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정치적으로는 순탄하지 않았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이러한 환경은 그로 하여금 심도 있는 작품을 쓰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佳人薄命 이라는 말은 그의 칠언율시  박명가인(薄命佳人) 에 나온다.


   두 볼은 엉긴 우유빛 머리는 옻칠한 듯 검고 /  눈빛이 발에 비추어 구슬처럼 반짝인다. /

하얗고 하얀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어 입고 / 타고난 바탕을 더럽힐까 입술연지는 바르지 않았네. /

오나라 사투리의 예쁜 목소리 앳되기만 한데 / 한없는 근심은 전혀 알 수 없네. /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自古佳人多命薄) / 

문을 닫은채 봄이 지나가면 버들꽃도 떨어지리.


  본래 이 시에서는  佳人命薄 이라 하였으나 후에는  佳人薄命 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美人薄命(미인박명) 이라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佳人薄命 이란  미모가 뛰어난 여자는 그 운명이 기구하거나 길지 못함 을 뜻하는 말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뜯어고친 여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외모를 위해 수명과 운명이라는 내실(內實)을 포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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