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01

醉月 2009. 5. 19. 16:07

온고지신(溫故知新)
  溫(익힐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 신)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공자는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라고 하였다.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인과(因果) 관계 속에서 발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립과 단절만을 만들어낸다.

구세대와 신세대, 여기에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Z세대라는 표현들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이다.

올챙이를 한자로  과두(  ) 라고 하고, 올챙이 적을 가리켜  과두시절(  時節) 이라 한다.

올챙이 없는 개구리, 개구리 없는 올챙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선인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야말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가장 적절한  溫故知新 의 도구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우리말의  복습(復習) 을  온습(溫習) 이라 표현하고 있으니,

이는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혀 늘 가슴 속에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두꺼운 얼굴에 부끄럼은 없다 후안무치(厚顔無恥)
厚(투터울 후)  顔(얼굴 안)  無(없을 무)  恥(부끄러워할 치)

 

옛날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끝내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난다.

이에 그의 다섯 형제들은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書經 의 <五子之歌>편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막내가 불렀다고 하는 노래에는 이러한 대목이 보인다.
  만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萬姓仇予, 予將疇依. 鬱陶乎予心, 顔厚有  .


   厚顔 이란  두꺼운 낯가죽 을 뜻하는데, 여기에  무치(無恥) 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 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지난 주 동안, 한보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들 중에는  후안(厚顔) 을 무기로 나온 이들이 많았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수치(羞恥)의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만백성들은 지금 그들이 태강의 동생들이 불렀다는 이 노래를 한번만이라도 읊조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자식이 상팔자   난신적자(亂臣賊子)
  亂(어지럽힐 란) 臣(신하 신) 賊(해칠 적) 子(아들 자)
 
   孟子 <등문공 文公>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 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亂臣賊子 란  임금을 죽이는 신하와 어버이를 죽이는 아들  또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나 역적  등의 뜻이다.

옛날 영국에서는 국사범들을 런던탑(the Tower of Londen)에 감금하였는데, 이 탑의 Thames강 쪽의 문을  the Traitor'sGate 라 하였다.

이는 곧  亂臣賊子之門 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亂臣賊子 들이 탄생과 함께 이슬로 사라져 갔지만,

여전히 기억속에 살아있는  난신(亂臣) 의 탄생은 불과 18년전인 1979년  10월 26월 에 있었다.

하지만 한 시기에  亂臣 과  賊子 의 출현을 모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동에 번쩍, 서에 캄캄 신출귀몰(神出鬼沒)
   神(귀신 신) 出(날 출) 鬼(귀신 귀) 沒(없어질 몰)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는  교묘한 자의 움직임은 신이 나타나고 귀신이 걸어가는 듯하며(神出而鬼行),

별이 빛나고 하늘이 운행하는 것 같아, 진퇴 굴신의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한계도 없어, 난조(鸞鳥:전설 속의 새이름)가 일어나듯,

기린이 떨치고 일나는 듯, 봉황새가 날 듯, 용이 오르듯, 추풍과 같이 출발하여 놀란 용과 같이 빠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으로 하여금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도록 철저한 보안 유지나 위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神出鬼沒 이란 바로  神出而鬼行 이라는 구절에서 연유된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뜻이며,

행동이 신속하고 그 변화가 심하여 헤아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神出鬼沒 했던 홍길동의 출생지를 놓고 요즈음 관련 지방 자치단체들의 논쟁이 매우 진지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거니와, 귀신 같은 양반을 서로 모시겠다고 열을 올리는 후손들의
 길동 할아버지 에 대한 존경심은  시대적 해결사의 출현 을 고대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개구리는 짠물에서 못 산다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 蛙(개구리 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 은,  우물 속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그가 좁은 곳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오(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井中之蛙 란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생각이나 식견이 좁은 사람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井蛙不知大海 라거나  井底蛙 라는 표현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Globalization 인지  세계화 인지를 외치며  우물 안의 개구리 소탕을 선도했던 사람을 요즘 들어선 보기 어렵다.

뜬금없이 우물 밖으로 나가라 하니, 영어 과외가 급증하지 않고 국제 공항이 붐비지 않고서야,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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