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11

醉月 2009. 7. 3. 09:11

  人琴俱亡(인금구망)
  人(사람 인) 琴(거문고 금) 俱(함께 구) 亡(죽을 망)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晋)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는데,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 라고 물으면서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형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였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다. 그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자요는 이를 내던지며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 하면서

한참동안이나 애통하였다.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人琴俱亡 은  인금병절(人琴幷絶) 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 을 비유한 말이다.


  
  白眉(백미)
  白(흰 백) 眉(눈썹 미)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권39에는 마씨(馬氏) 5형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마량(馬良:서기187-222년)은 양양(襄陽) 의성(宜城) 사람으로서 자(字)는 계상(季常)이었는데,

동네에서는 흔히들  마씨 다섯 형제 중, 흰눈썹이 가장 낫다네(馬氏五常, 白眉崔良) 라고 하였다.

마량과  읍참마속(泣斬馬謖) 이라는 성어(成語)의 주인공인 마속 등 다섯 형제는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들의 자(字)에 모두  常 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오상(五常) 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들 형제 중 맏이인 마량의 눈썹에는 흰털이 나있었는데, 그의 재능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흰 눈썹이 최고 라고 하였던 것이다.
  유비(劉備)는 촉(蜀)땅에 들어와서 마량을 좌장군연(左將軍 )으로 임명하였으며,

제위(帝位)에 즉위한 후에는 그를 시중(侍中)에 등용하였다.

마량은 유비를 수행하여 이릉(夷陵)전투에 참가하였다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白眉(The best of all) 란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 을 일컫는 말이다.   
  
  多多益善(다다익선)
  多(많을 다) 多(많을 다) 益(더할 익) 善(착할 선)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에는 한신(韓信)에 관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진(秦)나라 말기, 전국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항하는 세력들이 봉기하였다.

한신은 먼저 항우(項羽)의 휘하로 들어갔으나 중용(重用)되지 못하자, 다시 유방(劉邦)의 휘하로 옮겼다.

유방은 황제가 되자, 한신의 병권(兵權)을 없애고, 그가 모반을 꾀하였다고 하여 그를 체포하도록 하였다.
  얼마 후 체포된 한신에게 유방은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많은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라고 묻자,

한신은  폐하께서는 불과 10만의 병마를 통솔하는 장수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유방이 다시  그렇다면 그대는 어떠한가? 라고 물었다. 한신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臣多多而益善耳). 라고 하였다.
  이에 유방은  이처럼 용병(用兵)에 뛰어난 그대가 어찌하여 나에게 붙잡히게 되었는가? 라고 묻자,

한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폐하는 장병을 거느리는 장수는 될 수 없으나 장수들을 이끄는 장수는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께 잡히게된 까닭입니다.
   多多益善(The more the better) 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을 뜻한다. 
  
  如魚得水(여어득수)
  如(같을 여) 魚(고기 어) 得(얻을 득) 水(물 수)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諸葛亮)전에는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얻었을 때의 심정을 기록한 대목이 있다.

동한(東漢) 말기, 천하가 대란(大亂)에 휩싸이자, 각 세력들과 다투던 유비는 인재(人才)를 찾고 있었다.

그는 제갈량이라는 인재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직접 세 차례나 그를 찾아가 자신을 도와 천하를 도모하기를 청하였다.
  제갈량의 도움으로 유비는 촉한(蜀漢)을 건국하고, 조조, 손권과 삼국정립(三國鼎立)의 국면을 형성하였다.

유비는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였으며, 제갈량 또한 유비의 대우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유비는 중대한 일들에 대하여 제갈량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제갈량에 대한 태도에 불만이었다.

이에 유비는 그들에게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자네들은 다시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라고 말했다.
   如魚得水(Like fish getting water) 란  수어지교(水魚之交)   수어지친(水魚之親)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얻거나 자신에게 매우 적합한 환경을 얻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邯鄲學步(한단학보)
  邯(땅 이름 한) 鄲(조나라 도읍 단) 學(배울 학) 步(걸음 보)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국(戰國)시대,

조(趙)나라 의 한단(邯鄲)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특별히 멋있었다고 한다.

연(燕)나라의 수릉(壽陵)이라는 곳에 살고 있던 한 청년은 한단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배우기 위해 직접 한단에 갔다.

그는 매일 한단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원래의 걷는 방법을 버리고, 걷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한걸음 한걸음 발을 뗄 때마다, 발을 어떻게 들고 또 어떻게 놓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다리의 조화와 걸음의 폭 등에 대해서도 주의해야만 했다. 이렇다보니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몹시 힘이 들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는 한단 사람들의 걷는 법을 배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래 걷는 법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그는 네발로 기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邯鄲學步 는  한다지보(邯鄲之步) 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면 양쪽을 다 잃게 됨 을 비유한 말이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왜색(倭色) 패션이 유행되고 있다한다. 혹시 이름까지 바꾸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老馬之智(노마지지)
  老(늙은이 로) 馬(말 마) 之(-의 지) 智(슬기 지)
 
  한비자(韓非子) 세림상(說林上)에는 경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제일의 위치를 차지하자,

많은 소국(小國)들은 제나라의 명을 받듬으로써 제나라의 보호를 받고자 하였다.

당시, 산융(山戎)이라는 나라가 제나라에 의지하고 있던 연(燕)나라를 침범하자, 환공은 산융을 공격하였다.
  기원전 663년, 제나라는 산융을 크게 물리치고 도읍을 점령하였다. 산융의 국왕인 밀로(密盧)가 고죽국(孤竹國)으로 도망하자,

환공은 계속하여 고죽국을 공격하였다. 제나라는 봄에 고죽국을 공격하였으나,

고죽국의 장군인 황화(黃花)가 지형을 이용하여 응전하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전쟁은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제나라 군대는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함께 참전하고 있던 국상(國相) 관중은  이럴 때는

늙은 말의 지혜를 써보는 게 좋겠소(老馬之智可用也) 라고 말하고, 늙은 말 몇 마리를 골라 대열의 앞에서 마음껏 달리도록 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그 말들의 뒤를 따라 곧 출로를 찾아 귀환할 수 있었다.
   老馬之智(An old dog for a hard road) 란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 를 비유한 말이다.
  
  
  口蜜腹劍(구밀복검)
  口(입 구) 蜜(꿀 밀) 腹(배 복) 劍(칼 검)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에는 이임보(李林甫)라는 사람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임보는 당 현종 때의 재상(宰相)으로서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다른 재주도 많아서,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상하고 제거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이임보는 황제가 병부시랑(兵部侍郞) 노현(盧絢)과 엄정지(嚴挺之) 등을 중용하려 하자 그들을 비방하여 그들의 승진을 막기도 하였다.
  이임보는 겉으로는 매우 선량하게 좋은 말만을 하였으나, 속으로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세상 사람들은 마침내 그의 위선적인 면목을 알고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지만 뱃속에는 칼이 들어있다(李林甫口有蜜, 腹有劍) 라고 말하였다. 

口蜜腹劍(A honey tongue, a heart of gall) 이란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품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亡羊補牢(망양보뢰)
  亡(망할 망) 羊(양 양) 補(기울 보) 牢(우리 뢰)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전국(戰國)시대,

초나라 경양왕(頃襄王)은 간신들을 중용하고 주색(酒色)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대신(大臣) 장신(莊辛)은 경양왕에게  왕을 수행하는 주후, 하후, 언릉군, 수릉군 등은 사치하고 방탕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라고 간언하였다. 경양왕이 이 말에 몹시 분노하자, 장신은  만약 신의 말을 믿을 수 없으시다면,

신이 조(趙)나라로 피난하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장신이 떠난 지 다섯 달이 되었을 때, 진(秦)나라는 과연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여 도읍을 점령하였다.

경양왕은 먼 곳까지 도망하고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장신을 찾아오도록 하여, 그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를 물었다.

장신은  토끼를 발견하고 나서 사냥개를 생각하여도 늦지 않으며,

양이 달아난 후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고 들었습니다(亡羊而補牢, 未爲遲也) 라고 대답하였다.
   亡羊補牢(It is never too late to mend) 란  일이 발생한 후에라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함 을 비유한 말이다.

각종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대비는 결코 늦는 법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赤子之心(적자지심)
  赤(붉을 적) 子(아들 자) 之(-의 지) 心(마음 심)
  
맹자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에는  대인이란 그의 어린 아이 때의 마음을 잃지않은 사람이다

(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라는 대목이 있다.
   赤 에는  붉은 색 이라는 뜻이외에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옷을 걸치지 않고 몸을 드러냄 이라는 의미가 있다. 

적빈(赤貧) 이란 극빈(極貧)을,  적수(赤手) 란 맨손을,  적지(赤地) 는 불모지를 뜻한다.

순자(荀子)는 참되고 정성스런 일편단심(一片丹心)을  적심(赤心) 이라고도 하였다.
   赤子 란 갓 태어난 아이의 몸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에서  갓난 아이 를 가리키는데,

서경(書經)에서는  赤子 를 백성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맹자는 순진 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이를 대인(大人)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니,  赤子之心(a child's heart) 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 즉  어린 아이 때 그대로의 순진한 마음 을 뜻한다. 이는 곧  사람의 마음이 선량하고 순결함 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名從主人(명종주인)
  名(이름 명) 從(좇을 종) 主(주인 주) 人(사람 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환공(桓公) 2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름철 4월, 노(魯)나라는 고( )나라에서 만든 큰 솥을 송(宋)나라로부터 입수하여, 무신(戊申)날에 주공(周公)의 대묘에 바쳤다.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이름은 그 주인을 따르고, 물건은 중국을 따르는 법이니(名從主人 物從中國), 고나라의 큰 솥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큰 솥(大鼎)은 본시 고나라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후에 송나라 가 이것을 차지하였다가,

 다시 송나라의 화보독(華父督)이 환공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이었다.

따라서 노나라에서는 내력이 복잡한 이 물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공자의 의견을 들었던 것이다.
   名從主人 이란  사물은 원래 주인의 이름을 따라 짓게 됨 을 뜻하며,

이는 곧 사물의 명칭이 그것의 소재지나 나라의 호칭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명함에 표기된 보조(?) 국호(國號)로 물의를 일으켰던 모 국회의원은 단순히 한자권 인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몇몇 무식한 중국인들의 편의만을 위해 국민적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은 발상에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스스로 지킬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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