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銘千字

고사성어_12

醉月 2009. 7. 9. 09:09

 悖入悖出(패입패출)
  悖(어그러질 패) 入(들 입) 出(날 출)
 
  대학(大學)에는 덕과 재물과의 관계를 말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군자는 먼저 덕에 조심하는 것이다. 덕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사람이 생기고,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땅이 생기고,

땅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재물이 생긴다. 재물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용도가 생긴다. 덕은 근본이 되고 재물은 말단적 인 것이다.

근본이 되는 것을 밖으로 돌리고 말단적인 것을 안으로 들이면 백성들을 서로 다투게 만들고 서로 빼앗는 짓을 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말이 남에게 거슬리게 나가면 역시 자기에게 거슬리게 들어오고,

재물이 남에게 거슬리게 들어오면 역시 자기에게 거슬리게 나가는 것이다(貨悖而入者, 亦悖而出) 라고 하였다.
   悖 는  도리나 사리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이니, 

悖入悖出(Ill got, ill spent) 이란 곧  땀 흘리지 않고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쌓이지 않고 다시 나간다 는 뜻이다.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일부 주부들의 억대 비밀 도박이 보도된데 이어 미국에서 수십억의 외화(外貨)를 날린 사회지도층

해외도박꾼들이 구속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은 불의(不義)의 재물(財物)을 탐하여 패가망신(敗家亡身)한 본보기가 된 것이다.
  
  老益壯(노익장)
  老(늙을 로) 益(더할 익) 壯(씩씩할 장)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한(東漢)시기,
부풍군(扶風郡) 무릉현(茂陵縣)에 부풍군의 독우(督郵)를 지낸 마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군 태수의 명령으로 죄인들을 장안(長安)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는 죄수들의 형편을 동정하여 그만 도중에서 그들을 풀어주고, 자신은 관직을 버리고 변방으로 도망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조정으로부터 대사면(大赦免)을 받고, 과거의 일을 다시 추궁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항상 열심히 일하였다. 몇년 지나지 않아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가축들도 그 수효가 많아져서,
그는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변방으로 도망온 사람들에게 자주  대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생활이 궁핍할수록 그 의지를 굳게 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을 왕성하게 해야한다(窮當益堅, 老當益壯) 라고 말했다.
   老益壯(Live to agreen old age) 이란  나이는 비록 많지만 그 활동과 정신이 더욱 강성해짐 을 나타내는 말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대선 후보들의 활동은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對症下藥(대증하약)
  對(대할 대) 症(증세 증) 下(내릴 하) 藥(약 약)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화타전(華 傳)에는 동한(東漢) 말기 뛰어난 의술로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았던 화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번은 고을의 벼슬아치인 예심(倪尋)과 이연(李延) 두 사람 모두 고열(高熱)과 심한 두통(頭痛)을 앓게 되었다.

다른 의원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 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화타가 초빙되어 왔다. 그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후,

각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증상이 똑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약을 먹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화타는  예심은 신체 외부에 병은 없으나 잘못 먹어 내부에 배탈이 났으므로 사약(瀉藥)을 먹어야 하고,

이연은 신체 내부에 병은 없으나 외부의 영향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니 발산약(發散藥)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對症下藥(There is a slave for every sore) 는  증세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 는 뜻이며,

이는 곧  문제의 핵심을 바로 보고 대처해야함 을 비유한 말이다. 환경문제, 학원 폭력 문제, 기아(起亞) 문제 등을 놓고 말들이 많다.

증세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에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亡羊補牢(망양보뢰)
  亡(달아날 망) 羊(양 양) 補(기울 보) 牢(우리 뢰)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전국시대, 초나라 경양왕(頃襄王)은 간신들을 중용하고 주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대신(大臣) 장신(莊辛)은 경양왕에게  왕을 수행하는 주후, 하후, 언릉군, 수릉군 등은 사치하고 방탕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라고 간언하였다. 경양왕이 이 말에 몹시 분노하자,

장신은 자신이 조(趙)나라로 피난하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청했다.
  장신이 떠난 지 다섯 달이 되었을 때, 진(秦)나라는 과연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여 도읍을 점령하였다.

경양왕은 먼 곳까지 도망하고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장신을 찾아오도록 하여, 그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지를 물었다.

장신은  토끼를 발견하고 나서 사냥개를 생각하여도 늦지 않으며,

양이 달아난 후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고 들었습니다(亡羊而補牢, 未爲遲也) 라고 대답하였다.
   亡羊補牢(It is never too late to mend) 란 우리 말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와 같은 표현이다.



  齊人攫金(제인확금)
  齊(나라이름 제) 人(사람 인) 攫(붙잡을 확) 金(쇠 금)
 
  여씨춘추(呂氏春秋) 거유(去宥) 편에는 한 날치기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우 탐욕스럽고 재물(財物)을 좋아하여,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게 하루 일과였다.
  어느날 아침, 그는 의관(衣冠)을 잘 차려 입고 시장으로 구경을 나갔다. 그런데 그는 금(金)을 팔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다.

그는 느닷없이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 금을 한 웅큼 웅켜쥐고 도망하기 시작하였다(攫其金而去). 금을 팔던 사람은  도둑이야,

저 놈이 내 금을 훔쳐간다. 라고 외쳤다. 금을 훔쳐 도망가던 그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순찰을 돌던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포졸들이 그에게 대낮에 남의 금을 훔쳐간 이유를 묻자, 그는 뻔뻔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금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금만 보았지 사람은 보지 못했소.
   齊人攫金 이란  앞 뒤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以火救火(이화구화)
  以(-로써 이) 火(불 화) 救(건질 구)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대화가 실려 있다.

안회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는 스승께  위나라 국왕은 제멋대로 독재를 한다고 합니다.

국권을 남용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 집에 환자가 많이 모이기 마련이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는 이에 따르려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위나라 왕이 어진 이를 반기고 어리석은 자를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

그는 왕의 권세로 너를 누르며 능숙한 말솜씨로 이기려고 덤벼들 것이니,

이는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붓는 일과 같다(是以火救火, 以水救水). 라고 하였다.
   以火救火 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氷山難 (빙산난고)
  氷(얼음 빙) 山(뫼 산) 難(어려울 난)  (기댈 고)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에는 부정한 권세의 무상함을 말한 대목이 있다.
당나라 현종은 양옥환(楊玉環)을 특별히 총애하여 그녀를 귀비(貴妃)에 봉하였다.

그녀의 사촌오빠였던 양쇠(楊釗)는 감찰어사에서 시어사(侍御史)에 이르는 15개의 관직을 겸하였으며,

현종은 그에게  국충(國忠) 이라는 이름까지 하사하였다. 얼마 후, 재상이 된 양국충은 40여개의 관직을 관장하며,

관리를 자기의 마음대로 임명하였다.
  당시 관직에 나서지 못한 장단(張彖)이라는 진사(進士)가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양국충에게 가면 금방 관직을 얻어 출세할 수 있다고 하며 그에게 양국충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장단은 그들에게  자네들은 모두 양국충을 태산(泰山)처럼 든든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는 한 덩이의 빙산에 지나지 않는다 네. 장차 천하에 변고(變故)가 있게 된다면,

그는 즉시 태양에 빙산이 녹듯 무너지고 말걸세. 라고 말했다.
   氷山難  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권세는 오래 가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이제 빙산과 같은 이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던 이들이 든든한 태산을 찾아 눈을 돌릴 때가 멀지 않았다.
  
  文君司馬(문군사마)
  文(무늬 문) 君(임금 군) 司(맡을 사) 馬(말 마)
 
  사기(史記) 사마상여(司馬相如) 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서한(西漢) 시기, 임공(臨 )이라는 곳에 탁왕손(卓王孫)이라는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일찍 남편과 사별(死別)하고 혼자 지내는 탁문군(卓文君)이라는 딸이 있었다.

평소 이러한 탁문군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젊고 유능한 사마상여는 연회에 참석한 기회를 이용하여

탁문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 날 밤, 탁문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몰래 집을 빠져 나와 사마상여의 집으로 달려가서 그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탁왕손은 딸의 이러한 행동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두문불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어려운 생활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많은 재물을 주었다.

이렇듯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자신들의 진실한 마음과 행동으로 행복한 애정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文君司馬 란  사랑하는 부부나 연인(戀人) 을 비유한 말이다. 

 

  
  骨肉之親(골육지친)
  骨(뼈 골) 肉(고기 육) 之(-의 지) 親(친할 친)
 
  여씨춘추(呂氏春秋) 정통(精通)편에는 혈연에 관한 글이 실여 있다.
   주(周)나라에 신희(申喜)라는 사람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였다. 어느 날,

걸식(乞食)하는 사람이 문밖에 서서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너무 슬퍼서 그것이 얼굴에까지 나타났다.

그래서 문지기에게 그 걸인을 집으로 불러오도록 하여, 그에게 어찌 걸인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보니,

그 걸인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 자식과 부모는 본디 한 몸뚱이에서 갈라지고, 동기(同氣)였다가 분리된 것이다.

풀의 꽃과 열매, 나무의 뿌리와 심(芯)처럼, 이 둘은 비록 있는 곳이 다르더라도 서로 통하고,

고통이 있으면 서로 도우고, 근심이 있으면 서로 느끼며, 살아 있을 때는 기뻐하고, 죽으면 서로 슬퍼하는 것이다.

이것이 골육간의 사랑이라는 것이다(此之謂骨肉之親). 라고 하였다.
   骨肉之親 이란 곧  혈육 관계인 부모나 형제의 관계 를 비유한 말이다.   
  
  
  逆鱗(역린)
  逆(거스를 역) 鱗(비늘 린)
 
  한비자(韓非子) 세난편(說難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용(龍)은 상냥한 짐승이다. 친하게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목 아래에는 거슬려 난 비늘이 하나 있는데 지름이 한 자나 된다(喉下有逆鱗徑尺). 만일 이것을 건드리는 날이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리게 된다. 군주에게도 또한 이러한 역린이 있다(人主亦有逆鱗).
  용은 본시 상상의 동물이지만, 봉(鳳), 인(麟), 귀(龜)와 더불어 네가지의 영물(靈物), 즉 사령(四靈)중의 하나이다.

또한 용은 비늘(鱗) 달린 짐승 중의 으뜸으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몰고 온다고 한다.

이러 점때문에 중국에서는 군주(君主)를 높여 용에 비유하였다.

용상(龍床)이나 용안(龍顔) 외에도, 황제의 후대를 뜻하는 용자(龍子), 

황제의 수레인 용여(龍輿) 등은 그 권위와 존엄성을 나타낸 말들이다.
逆麟 이란  군주의 노여움을 일으키는 일 을 비유하며, 군주의 노여움을 사는 것은  촉역린(觸逆麟)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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