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固城). 그곳에서 가을걷이를 앞둔 끝 간 데 없는 너른 평야의 풍요로움과 이제 막 갯것의 농사를 준비하는 어촌 마을의 설렘을 만났습니다. 여행 목적지로 알려지기로는 ‘공룡 발자국’과 상족암이 고성을 대표합니다만, 하늘이 하루하루 높아지는 이즈음 고성에서 봐야 할 것은 풍요로 출렁이는 바닷가 마을의 느리고 아름다운 정취랍니다. 이런 정취를 눈으로, 또 가슴으로 가득 담을 수 있는 최고의 가을 전망대가 있으니 바로 고성의 문암산에서 거류산으로 건너가는 능선입니다. 그 능선 바위에 서면 청색 남쪽 바다가 내륙 깊숙이 밀고 들어온 당동만과 함께 조각보 같은 다랑논들이 산자락에서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들녘과 진청색 바다로 만나는 눈부신 가을이 거기 있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차곡차곡 쌓은 돌담으로 둘러친 하일면 학동마을의 담장 아래에는 순백의 취꽃이 만발해 있고, 잘 익은 벼들이 물결치는 논을 지나 당도한 회화면 봉동리의 초가에도 가을볕이 환했습니다. 고성의 바다와 섬을 병풍처럼 굽어볼 수 있는 문수암부터 옥천사와 운흥사, 계승사로 이어지는 고성의 절집 기행도 요즘 같은 가을날에 맞춤입니다. 여기에 하이면 덕명리 일대의 공룡 발자국과 상족암을 거쳐 자란만의 고요한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저무는 저녁노을까지 끼워 넣는다면 고성으로 향하는 최고의 가을 여정은 완성됩니다. #다랑논이 흘러내린 당동만, 그 독특한 가을의 풍경 이즈음 경남 고성 땅은 풍요로움으로 빛난다. 남쪽 바다를 끼고 있는 고성은 뜻밖에도 가을이 출렁이는 너른 들을 갖고 있다. 고성읍의 서쪽 영현면과 영오면 일대에는 평야라 이름 붙여도 좋을 만한 끝 간 데 없는 들이 있고, 고성읍을 비롯해 거류면과 마암면, 구암면 일대에도 너른 논이 얕은 계단을 이루며 펼쳐진다. 예부터 고성은 논농사로 이름났다. 조선시대 경남 통영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수군통제영이 들어섰을 때 여기에 공급되던 곡식인 이른바 ‘통영곡(統營穀)’의 8할을 고성에서 공급했을 정도다. 고성지역 농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고성농요’가 탄생한 것도 너른 논과 분주한 농사일 때문이었으리라. 고성농요와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 한 토막. 조선 말엽 고성 땅을 지나던 경상감사가 농부들이 논일을 하며 부르는 소리를 듣고 행렬을 멈췄단다. 그 자리에 서서 밤늦도록 소리를 듣던 경상감사는 급기야 농부들의 사랑방까지 따라가 농요를 청하고 밤새워 감상한 뒤에 후한 상을 내리고 떠났다고 전한다. 고성 땅에서 이런 풍요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을 ‘딱 한 곳’만 들라면 한 치의 주저 없이 ‘당동만(灣)’ 일대를 꼽을 수 있겠다. 이곳의 풍경은 독특하다. 코발트빛 바다가 내만(內灣)으로 깊이 들어온 해안가에 천수답 다랑논들이 조각보처럼 펼쳐져 있다. 마치 논이 구릉에서 바다 쪽으로 주르르 흘러내린 듯하다. 논 너머는 곧바로 바다다. 바다를 배경으로 짓는 다랑논의 농사는 노동의 수고로움보단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논물을 보러 나온 허리 굽힌 농부 뒤로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5t 남짓의 작은 어선들이 지나는 풍경이라니….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당동만의 논과 바다 사이에는 해안을 따라 이어진 부드럽게 휘어진 길이 있다. 한쪽으로는 잘 익은 벼가 물결치는 논이, 반대쪽에는 장판지처럼 잔잔한 푸른빛 바다가 펼쳐지는 고요한 길이다. 화당리 포구에서 논과 바다를 나누며 하원마을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다랑논과 바다가 어우러져 낯설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빚어낸다. 다른 어디서도 보지 못한 느낌의 길이다. 당동만의 바다 위는 이즈음 흰 부표들로 그득하다. 부표 아래에는 날이 더 차가워지면 수확하게 될 굴과 미더덕이 매달려 하루가 다르게 살쪄 가고 있다. 야트막한 구릉을 넘어가는 그 길은 아쉽게도 성동조선소쯤에서 닫혀 있어 고스란히 간 길을 되짚어 돌아 나와야 한다. 그러나 왕복 4㎞ 남짓한 그 길에서 느껴지는 가을의 논과 바다의 정취는 빼어나기 이를 데 없다. 땅과 바다가 키워 내는 것들의 그득한 풍요로움 사이로 걷는 짧은 산책은 마음을 절로 푸근하게 만들어 준다. #특급 조망대에 올라서 당동만을 굽어보다 당동만의 전경은 고도를 높여 멀리서 내려다볼 때 더 환하게 빛이 난다. 그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특급 전망대’가 바로 당동만 뒤편에 우뚝 솟은 거류산(570m)에 있다. 출발 지점은 거류산 아래 대숲과 야생차밭을 둘러친 작은 절집 장의사. 장의사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원효대사가 632년 창건했으며 효봉스님이 중건했다니 의외로 내력이 만만찮은 절집이다. 절집 약수터 뒷길로 들어서면 길 옆으로 거대한 돌로 쌓은 돌탑들이 줄지어 서 있다. 탑으로 삼은 돌들이 어찌나 큰지 중장비의 힘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크기의 돌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길을 지나 갈림길의 이정표를 읽으며 ‘엄홍길 기념관’ 방향으로 향하다 다시 ‘문암산’ 방면으로 30분쯤 오르다 보면 사방이 탁 트이는 6분능선 쯤에서 바위를 만나게 된다. 그곳이 바로 동쪽으로 당동만 일대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특급 전망대다. 남해안의 바다는 대부분 옥빛인데 이쪽에서 내려다보는 당동만의 바다는 파란색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진한 청색으로 반짝인다. 청색이되 어둡지 않은, 진하고 맑은 청색의 바다다. 그 청색의 바다 위로 구릉에서 초록색과 노란색의 기운이 뒤섞인 다랑논이 흘러내리고 있다. 저마다 채도가 다른 색감의 조각보들을 이어 붙인 듯한 다랑논의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깊숙이 들어온 내만의 바다에는 굴 양식장의 부표들이 줄 맞춰 떠 있고, 방파제 사이로 출항하는 고깃배들이 고요한 물 위로 길게 곡선의 자취를 그리며 미끄러지고 있다. 고개를 들어 먼바다 쪽을 바라보면 당동만 너머로는 어의도·가조도·수도·칠전도가 떠 있고, 더 멀리 앵산이 우뚝 솟은 거제도의 모습이 뚜렷하다. 이 한 폭의 풍경 속에서는 풍요와 평화가 함께 느껴진다. 당동만의 전경을 탄성과 함께 바라보다 보면 되돌리는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 내친김에 거류산 정상을 향몇 개의 철계단을 딛고 능선까지 올라서 보자. 이쪽의 능선을 따라가는 길 내내 오른편으로 당동만의 전경이 각도를 달리하면서 펼쳐진다. 멀리 올려다보이는 거류산의 정상까지 오른다면야 높아진 고도로 풍광은 더 장쾌해지겠지만,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 본격적으로 거류산을 종주하려면 대여섯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하니 굳이 정상을 욕심내기보다는 능선 위에서의 풍광만 즐기다가 아쉬움을 접고 내려오는 편이 낫겠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갑자기 산세가 바뀌면서 조망이 닫힌 숲길이 나오는데, 여기까지만 다녀온대도 당동만 일대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1시간여쯤의 수고로 이 정도 풍광을 만난다는 것은 속된 말로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 고성의 옛 마을에서 따스한 고향의 정서를 만나다 고성에는 옛 정취로 그득한 농촌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다.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인 하일면 학림리의 학동마을. 아름다운 옛 담장을 두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돌담은 인근 사태산 자락에서 지고 온 납작돌을 쌓고 황토를 이겨 발라 만든 것이다. 마을 전체가 담쟁이와 호박 넝쿨로 뒤덮인 이런 돌담을 두르고 있어 지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학동마을에는 돌담을 따라 제법 기품 있는 한옥이 몇 채 있긴 하지만 마을 전체가 반듯하게 정비돼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 안에 볼만한 게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볼거리’만을 찾자면 필시 실망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시선을 낮추고 여유 있게 돌담을 따라 골목을 거닐다 보면 고색창연한 돌담과 어우러지는 농촌 마을의 푸근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학동마을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솟을삼문을 거느린 번듯한 한옥과 삭아 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의 모습이 이리도 자연스러울 수 없다. 게다가 이즈음에는 학동마을 곳곳에 순백의 취꽃이 하얗게 피어나 정취를 더해 준다. 마을 주민들이 텃밭에 취를 길러 봄이면 잎을 뜯어 취나물을 수확한다는데, 취들이 밭을 벗어나 길섶에도, 산자락에도 번져 나가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온통 화사하게 피어난 취꽃으로 그득하다. 학동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민들의 친절이다. 대개 관광지로 개발된 전통 마을을 찾아가면 가장 불편한 것이 주민들의 귀찮아하거나 경계하는 시선이다. 그러나 학동마을에서 고택을 기웃거리다 보면 필시 집주인으로부터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오시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툇마루를 내주고 마을의 내력을 설명해 준다. 마을에서 오가며 마주치는 주민들도 ‘마을에 볼 것이 별로 없지만 잘 보고 가시라’며 걱정 반 미안함 반의 말을 던진다. 마암면의 작은 마을 석마리에는 옛 마을의 풍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색적인 볼거리도 있다. 마을 당산 아래 돌로 만든 말인 이른바 ‘석마(石馬)’ 한 쌍이 그것이다. 호랑이가 마을에 자주 출몰하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데 주민들은 이 석마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그래서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석마에 콩 한 말을 올리고 촛불을 밝히는 마을 제사를 지내 왔다. 지금은 좁은 공간을 철제 울타리로 가둬 초라해 보이지만, 돌로 만든 말은 인근에서도 제법 유명했던 모양이다. 마을 주민들은 “‘석마리(石馬里)’라는 마을 이름도 이 석마에서 나왔고, 말바위라는 뜻의 ‘마암면(馬岩面)’이란 지명도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오랜 시간의 깊이와 멀리 굽어보는 높이 여행지로서 경남 고성은 누가 뭐라 해도 ‘공룡’으로 대표된다. 30년 전쯤 하이면 덕명리 해안가에서 7000만년 전 우르르 달려간 초식공룡과 육식공룡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이 발견되면서 고성은 하루아침에 ‘공룡의 나라’가 됐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저편에서 멸종된 공룡들이 딛고 간 뚜렷한 발자국은 감동을 넘어 경이에 가깝다. 그 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이 공룡박물관과 상족암이 있는 덕명리 해안 일대다. 이곳이야 고성을 찾는 여행자들이 빠짐없이 들렀다 가는 곳이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러나 금태산 깊은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계승사를 아는 이는 적다. 계승사는 절집의 운치보다 ‘시간의 지층’이 더 감명 깊은 곳이다. 절집 이곳저곳에는 백악기 때의 지층 구조와 초식공룡의 거대한 발자국, 그리고 찰랑이던 물살의 흔적과 빗방울의 자취가 바위에 뚜렷이 남아 있다. 절집 옆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지층이 시루떡처럼 겹쳐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백악기 때의 지층 구조. 거기까지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러나 절집 한쪽 끝의 요사채로 쓰는 시멘트 건물 앞 암반에 뚜렷이 찍힌 물결무늬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1억년 전쯤 이곳이 호숫가였고, 그 호숫가의 부드러운 진흙땅에 찰랑이는 물이 그려 놓은 물결무늬 흔적이다. 그 오랜 시간을 건너와 어쩌면 저리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보타전 옆의 암반에는 빗물이 떨어진 흔적도 남아 있다. 이것 역시 1억년 전쯤의 자취라는데 금세 떨어진 빗방울처럼 선명하다. 또 약사전으로 오르는 계단 부근에는 거대한 용각류 초식공룡의 발자국 몇 개가 남아 있다. 발자국의 크기가 무려 90㎝를 넘으니 공룡의 크기가 얼마나 컸을까. 계승사와 함께 가 볼 만한 절집으로는 무이산 자락의 문수암을 들 수 있다. 가파른 산자락에 문수암을 들인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그곳에서 내다보는 전망 때문이리라. 문수암으로 드는 길은 갈지(之)자로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왕복 2차선의 잘 닦인 길이라 차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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