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丹楓 名山 4選

醉月 2013. 10. 19. 01:30

丹楓 名山 4選

⊙ 단풍의 국가대표- 내장산
⊙ 우리나라의 가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악산
⊙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 대둔산
⊙ 속세에 찌든 삶을 씻어 내며 느리게 걷는 산- 속리산

내장산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국가대표 단풍명산

불출봉에서 본 망해봉 바윗길.
단풍에 국가대표가 있다면 내장산(內藏山·763m)이 1순위다. 평소 등산을 안 하는 사람도 단풍의 대명사가 내장산이란 걸 안다. 내장산 단풍이 유명한 건 나무와 지리, 기후의 삼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다양한 활엽수가 많고 일교차가 큰 기후와 지리적 조건으로 단풍이 선명하게 물드는 여건을 갖췄다. 내장사를 중심으로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싼 수려한 산세 역시 한몫한다.

이런 이유로 내장산은 10월 말부터 11월 초면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된다. 이 보름 동안 드는 입장객이 1년 중 나머지 기간 동안 찾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다. 내장산을 일러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의 단풍 명산이라고 말한다. 산도 물도 울긋불긋하지만, 사람들의 등산복색으로 온 산이 불그스레해질 만큼 인파가 몰리는 산이란 뜻이다.

내장산의 원래 이름은 영은산(靈隱山)이었다. 그러나 산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내장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일화를 보더라도 내장(內藏)이란 이름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내장산탐방안내소 인근의 이안사적비에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때는 1592년 임진 4월, 부산으로 침입한 왜적이 전주로 육박해 오자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왕조실록을 보존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이에 전라감사 이광은 숙의한 끝에 정읍현 내장산으로 이안키로 하고 이 일을 태인현의 안의와 손홍록으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했다.

안의, 손홍록은 30여 명을 이끌고 전주사고로 들어가 6월 22일 소장서적을 내장산 은봉암으로 옮긴 데 이어 7월 1일에는 조선 태조의 영정을 내장산 용굴암에 봉안하였다.

그후 7월 14일에 실록을, 9월 18일엔 영정을 비래암으로 옮겼다. 이때 감사 김홍무, 승려 희묵이 이끄는 승군 1000여 명이 주야로 호위했다. 이렇게 이안된 수기와 실록은 이곳 내장산에서 370일 동안 봉안되었다.>

실록은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에 보관되었는데, 내장산에 숨긴 전주의 실록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 타 버렸다. 그러니 내장산은 지금의 조선왕조실록을 있게 한 으뜸 공신인 셈이다.

佛出雲河

내장산에서도 단풍이 아름다운 구간은 내장사와 108그루 단풍터널, 우회정과 진입로, 원적계곡이다. 하이라이트 구간을 둘러보는 코스는 일주문에서 서래봉으로 올라 불출봉에서 내장사로 내려서는 코스다. 내장사 일주문에서 오르막 산길로 방향을 틀면 사람이 확 줄어든다. 관광객들로부터 벗어나 진짜 내장산에 든 것이다.

벽련암에서 흙길이 시작된다. 서래봉은 멀리서 보면 모를 심기 위해 논을 고르는 ‘써래’라는 농기구처럼 생겼다 하여 써래봉이라 불리던 것이 서래봉으로 바뀌었다. 서래봉은 약 1km에 이르는 바위절벽이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었다. 가을이면 기묘한 바위절벽을 단풍나무가 곱게 둘러싸고 있어, 여인이 고운 치마를 입은 자태다.

서래봉에 올라서면 내장 9봉이라 불리는, 내장사를 둘러싼 연봉을 모두 볼 수 있다. 좌장 격인 최고 높이의 주봉은 신선봉(763m)이지만 등산객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봉우리는 서래봉과 불출봉이다. 암봉이라 경치가 화려하면서도 코스를 잡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서래봉에서 불출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바위가 많지만 국립공원답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철계단을 오르내리고 바위능선을 우회하기도 하며 지난다. 사다리처럼 바짝 선 철계단을 지날 땐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불출봉은 조망이 뛰어나며, 정상에서 바라본 운해가 장관이라 하여 ‘불출운하(佛出雲河)’라고도 한다. 불출봉이란 이름은 정상 아래의 불출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 때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불출봉 정상 데크에 서면 서북으로 정읍시가 한눈에 든다.

불출봉에서 능선을 버리고 원적암으로 내려서면 수줍게 얼굴 붉힌 원적계곡 단풍나무숲을 지나 내장사에 닿는다. 내장사에서 108 단풍터널을 지나면 산행을 시작했던 일주문에 닿는다. 일주문을 출발해 서래봉과 불출봉 지나 내장사로 내려서는 하이라이트 코스는 총 6km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서울 센트럴시티고속터미널에서 정읍행 버스가 40분 간격(06:30~23:00)으로 운행한다. 우등 2만1500원, 일반 1만4600원이며 3시간 정도 걸린다. 정읍에서는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71번 시내버스를 타면 내장터미널에 닿는다. 30분 걸리며 요금은 1100원이다.

기차 이용 시 서울 용산역에서 정읍행 열차가 오전 5시20분부터 수시로 다닌다. KTX(3만4500원)는 2시간20분 걸리며, 새마을호(2만7900원)는 3시간20분 걸린다. 무궁화호(1만8800원)는 3시간40분이 걸린다.


숙식(지역번호 063)

내장산 입구에 식당이 즐비하다. 한일관(538-8981)은 24년을 이어 온 식당이며 산채한정식이 유명하다. 30가지의 밑반찬과 4가지 이상의 메인요리가 나온다. 이외에도 전주식당1호점(538-9448), 원조전주식당1호점(538-7929), 원조전주식당본점(538-8078), 원조전주식당(538-1232), 호텔세르빌(538-9487), 리베라모텔(538-4193), 파라다이스모텔(538-2546) 등이 있다.


감악산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산신령으로 남은 북한 전망대

임꺽정봉에서 본 감악산의 수려한 가을.
‘악(岳)’ 자가 들어가는 산은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설악산이나 치악산, 관악산을 보면 산세(山勢)가 거칠어 들어맞는 듯하지만 감악(紺岳)은 예외다. 밑에서 보면 산등성이의 바위가 거칠어 보이지만 막상 산을 오르면 위험하거나 어려운 코스는 없다. 일부러 긴 종주 코스를 잡지 않는 이상 4시간 정도면 돌 수 있어 부담 작은 가을 단풍산행지로 권할 만하다.

감악산(675m)은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다. 산봉우리가 파주, 양주, 연천 세 지역의 경계이며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산 입구인 범륜사는 파주 땅이다. 파주시 적성면의 전(前) 면장으로 600번 이상 감악산을 올랐다는 이곳 토박이 안배옥씨는 감악산의 매력으로 “단풍도 좋지만 경치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맑은 날에는 북한 땅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게 그 특별함이다. 반대로 남쪽으로는 북한산도 보이는 조망 좋은 산이다.

시야가 트인 만큼 감악산은 전통적인 군사적 요충지였다. 산 아래 임진강변에 흙으로 만든 칠중성(七重城)이 길게 전개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6·25전쟁 때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영국군이 중공군과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영국군 글로스터대대는 수적 열세로 중공군 3개 사단 4만2000여 명에게 완전히 포위되는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이 전투에서 글로스터대대는 652명 가운데 생존자가 67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생이 컸다. 지난 4월 23일에는 설마리전투 60주년을 기념해 백발이 된 영국군 참전용사들이 적성면 영국군 전적비(戰蹟碑)를 찾기도 했다.

감악산의 필수코스 임꺽정봉

감악산 까치봉 나무데크 길. 절정의 단풍이 화려하게 수놓았다.
감악산은 연천, 양주, 파주에서 올라오는 각각의 코스가 있지만 범륜사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다른 코스와는 달리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고 버스편이 편리하다. 범륜사~임꺽정봉~정상~까치봉~범륜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오르면 범륜사다. 터는 오래되었지만 1970년에 재창건해 등산객의 눈길을 끌 만한 건 없다. 볼 만한 건 단풍이다. 단풍나무들이 노랗고 벌겋게 수놓아 예술적인 터널을 만들었다. 돌이 깔린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지만 가을이 되면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한 길이다.

초가을에 찾았다면 산길을 올라갈수록 잎은 더 붉게 달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 덩달아 산객(山客)들의 마음도 달아오른다. 한 발짝씩 오를 때마다 달달한 색감의 풍경이 온몸을 덮쳐 온다. 그래서 평소 등산과 담 쌓은 이들도 가을에 산을 찾으면 절정으로 치달아 오르는 단풍의 쾌감을 온몸으로 맛볼 수 있다. 우리는 간혹 젊었을 적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세월이 흘러 깨닫게 되곤 한다. 그중에는 자연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우리나라의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산행(山行)이 얼마나 일상의 큰 위안이 되는지 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나무계단을 다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정상이고 오른쪽은 임꺽정봉이다. 임꺽정봉은 바위 꼭대기라 탁월한 경치를 자랑하므로 이곳을 들르지 않고 간다면 감악산 산행했다고 얘기하기 부끄럽다. 오른쪽으로 10분 정도만 능선을 타면 문득 절벽 꼭대기가 나온다. 임꺽정봉이다. 풍경은 험하지 않아 부드러운 성품의 줄기들이 색동옷을 입고 축제를 벌인 걸 감상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開城 보여

왔던 길을 되돌아가 잠깐 오르막을 오르면 너른 공터인 정상이다. 주말이면 막걸리장수며 아이스크림장수가 진을 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한 모습인 설인귀 옛빗돌(향토유적 제8호)이 있다. 일명 ‘비뜰대왕비’로도 불리는 이 비석은 《세조실록》에는 설인귀(薛仁貴)의 비석이라 기록돼 있다. 고구려와 신라를 침략했던 당(唐)나라 장군 설인귀는 감악산과 연이 깊다. 설인귀가 감악산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으며, 그를 산신(山神)으로 받드는 풍습이 전승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감악산사는 민간에 전하기를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북쪽 정면으로 군사 시설물이 있어 경치가 신통찮다. 대신 까치봉으로 이어진 길에 데크 정자와 전망대가 있다. 실망스러운 정상 조망을 단번에 만회하는 전망대다. 맑은 날엔 임진강 너머 개성땅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면 까치봉에 닿는다. 멋들어진 바위가 솟은 까치봉도 한참을 서서 단풍구경 하기 좋은 곳이다. 뒤돌아보면 정상이 기운 넘치게 솟았고 아래에는 산줄기가 고운 선으로 흘러내리는 걸 볼 수 있다. 등산객이 줄어드는 조용한 숲길을 지나 갈림길에서 묵은 밭으로 내려서면 범륜사에 닿는다. 6.5km에 4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의정부에서 25번 버스를 타면 범륜사 입구를 지나 적성면까지 간다. 의정부시외버스터미널과 의정부역~가능역~양주역~양주시청을 지나며 05시30분부터 24시2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숙식(지역번호 031)

파주 토박이 안배옥씨가 추천하는 먹을거리로 적성면 두지리의 강촌매운탕(959-3858)을 권한다. 임진강에서 3대에 걸쳐 고기를 잡아 직접 요리한다. 민물 매운탕으로 드물게 비린내가 없고 국물이 시원하다. 메기와 빠가사리, 참게로 만든 매운탕 등의 메뉴가 있다. 범륜사에서 7km 정도 떨어져 있어 차로 약 15분 걸린다. 범륜사 인근 식당으로 평풍바위식당(959-3839), 파주계곡휴게소(958-3841), 원조감악산휴게소(959-4755), 계곡산장(959-3841) 등이 있다. 숙소는 적성면사무소가 있는 구읍리 쪽에 많다.


대둔산

원효대사가 반한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걷다

배티재에서 본 대둔산의 화려한 가을.
대둔산(大芚山·878m)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에서 모두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명산이다. 신라의 원효대사는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했다. 대둔산은 흔히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데 그만큼 암릉미가 탁월해서다. 집약된 암봉의 화려함만 놓고 보면 일부 국립공원들이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다. 아름다움의 밀도와 접근성에 있어 어느 명산과 비교해도 모자람 없는 것이 대둔산이다.

대둔산은 전북 완주, 충남 금산·논산 경계에 있다. 대표적인 산 입구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의 집단시설지구다. 이곳엔 케이블카가 있어 7부 능선 언저리까지 편안하게 올라 대둔산을 구경할 수 있다. 지긋한 연세의 부모를 모시고 효자·효녀 노릇 하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대둔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북리의 케이블카 매표소로 모인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주말이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한참을 기다리기도 한다.

산행 전 먼저 들를 곳은 배티재다. 케이블카 정류소로 이어진 17번 국도의 고개인 이곳은 대둔산 바위연봉의 멋들어진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잠시 차를 세워 충분히 눈으로 음미하며 기념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케이블카 타고 동양화 속으로

담력을 시험하는 삼선계단. 절벽과 절벽을 이은 짜릿한 고도감의 철계단이다.
산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조금 편안하게 하길 권한다. 7부 능선의 케이블카 정류소를 출발해 대둔산 명물인 구름다리와 담력 테스트에 제격인 철계단을 거쳐 정상인 마천대에 오른 다음 능선을 종주해 낙조대와 용문굴을 거쳐 다시 케이블카로 돌아오는 코스다.

케이블카를 타면 물들어 가는 가을의 무늬를 바라보며 단번에 고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케이블카는 편도보다 왕복비용이 더 저렴하므로 걸어서 하산할지 케이블카로 하산할지 미리 정하는 것이 좋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도를 높일수록 산은 화려해진다. 전설처럼 솟은 바위들이 나타나며 동양화 속으로 빠져드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케이블카 정류소에 닿으면 건물 옥상의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경치가 열린다. 특히 오른편에 불끈 솟은 동심바위가 눈길을 끈다. 동심바위는 거대한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양새로 1000년을 넘게 버텼다고 한다. 바위의 신기한 모습에 보는 이들이 동심(童心)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담겼다.

여기서부터 산행 시작이다. 정상까지는 700m 거리로 짧은 편이지만 급한 오르막이라 만만하게 볼 수 없다. 5분을 오르면 대둔산의 명소인 금강구름다리다. 80m 높이의 구름다리로 폭 1m에 길이 50m다. 튼튼해 보이지만 막상 걸어 보면 고도감이 만만찮다. 다리 가운데에 서면 발 아래로 색색의 단풍과 고풍스러운 빛깔의 바위가 펼쳐져 누구라도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된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작은 바위 전망대가 있어 다시 한번 지나온 풍경을 되새김질할 수 있다. 이후로는 바짝 선 계단길이다. 자연석의 폭이 좁고 불규칙적이라 걸음에 집중하며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들 쯤 한숨 돌릴 만한 너른 터가 나온다.

이곳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삼선계단이다. 바위 절벽을 이은 철계단인데 사다리처럼 가팔라 담력 테스트 계단으로 통한다. 계단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 고소공포가 있는 사람들은 우회길로 돌아가는 곳이다. 철계단은 오를수록 흔들림이 심해 까마득한 고도감을 생생히 맛볼 수 있다. 고도감을 극복하고 계단을 올라서면 화려한 경치가 기다려, 짜릿한 성취감과 전율을 느낄 수 있다.

마천대 지나 낙조대로

대둔산 정상은 마천대(摩天臺)라고 하며 ‘하늘을 어루만질 만큼 높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상에는 개척탑이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띈다. 마천대에 서면 이름값 하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단풍에 둘러싸인 암봉들은 화려한 도포를 둘러쓴 곱사등의 신선인 듯 황홀한 모양새다. 보고 있노라면 천재 화가가 일생의 재능을 바쳐 완성한 동양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수준 높은 착각을 누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올라왔던 길을 되밟아 케이블카 정류소로 내려간다. 등산 좀 해야겠다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능선을 따라 낙조대로 가는 것이다. 낙조대 쪽으로 능선을 이어 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둔산을 만날 수 있다. 시끄럽던 관광 인파가 사라지고 고요한 산다운 산이다. 능선길에는 드문드문 바위 전망대가 있어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대둔산의 숨은 속살이 드러난다. 낙조산장을 지나면 대둔산의 뒷모습이 드러나는 낙조대다. 바위라곤 전혀 없는 순한 산등성이들이 낮게 엎드린 풍경이다. 평범하지만 뻥 뚫려 있어 시원한 맛이 있는 전망터다.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가 용문골로 내려선다. 용문골 지나 갈림길에서 사면을 이어 가면 산행을 시작했던 케이블카 정류소다. 사면길이 희미한 편이므로 길냄새를 맡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을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던가 느끼게 만드는 산, 대둔산이다. 마천대와 낙조대, 케이블카 정류소를 잇는 산행은 4.2km에 3~4시간 정도 걸린다.

 




교통

대전서부터미널에서 대둔산행 버스가 하루 3회(07:45, 13:20, 17:30분) 운행하며 40분 걸린다. 전주터미널에서도 대둔산행 직행버스가 하루 5회 운행한다. 대전서부터미널에서 34번 버스를 타면 배티재까지 갈 수 있다. 40분 간격(06:00~22:00)으로 운행하며 대둔산 입구까지 1.7km 정도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케이블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8500원, 편도 5500원이다.


숙식(지역번호 063)

케이블카 정류소가 있는 대둔산 집단시설지구에 식당이 즐비하다. 소문난전주식당(263-9358), 전주고향식당(263-9151), 전주식당(263-3473) 등 비슷한 이름의 식당이 많다. 산채비빔밥, 파전, 인삼튀김, 동동주 등이 주 메뉴다. 케이블카 정류소 바로 아래에 있는 대둔산온천관광호텔(263-1260)은 620m 암반수를 사용하는 유황사우나다. 인근에서 가장 큰 숙소로 식당, 노래방, 사우나를 구비하고 있다.


속리산

속세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가을 풍경

용바위골에서 문장대로 이어진 계단길. 국립공원답게 경치가 화려하고 정비가 잘되어 있다.
속리산(1058m) 단풍은 속세를 잊을 정도로 아름답다. 걸어 들어갈수록 자연스레 속세를 잊어 버리게 하는, 진득하고 선명한 빛깔의 흡인력이 있다. 얼른 한 바퀴 휙 돌고 내려와야지 하고 생각해선 속리산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초입에 너른 숲길이 길게 이어지는 속리산에서는 오감으로 단풍을 맛보고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 내며 느리게 걷는 것이 알맞은 속리산 산행법이다.

신라의 최치원이 산을 둘러본 후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떠나는구나(道不遠人 人遠道 山非俗離 俗離山)’라고 읊어 산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에는 수령 6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이품송이 있다. 조선조 세조로부터 정이품 품계를 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체 높은 소나무(천연기념물 103호)다. 세조가 법주사로 향하던 중 나뭇가지에 연(輦·가마)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처졌던 가지가 저절로 들려 임금의 가마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는 그 자리에서 소나무에 정이품을 제수했다고 한다.

속리산 정상은 천황봉이지만 문장대를 정상으로 삼아 산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문장대의 조망이 더 화려하기도 하지만 천황봉은 주능선 남쪽 끄트머리에 있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법주사에서 출발해 천황봉~문장대 능선을 밟은 뒤 법주사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는 속리산 산행의 고전 중 고전이다. 지금은 운동화를 신은 관광객들이 찾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올랐던 길을 그대로 다시 내려온다는 데 지루한 감이 있다.

법주사로 가는 길

법주사. 시원스레 뻗은 전나무 두 그루와 33m 높이의 금동미륵대불.
가장 알찬 당일 산행은 법주사~문장대~신선대~경업대~세심정~법주사로 도는 코스다. 문장대에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능선을 따라 신선대까지 종주한 뒤 경업대를 거쳐 법주사로 내려오면 된다. 원점회귀 산행이기에 대중교통과 자가용 모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6~7시간 정도 걸리는 꽉 찬 당일 산행이지만 임도 숲길을 걷는 편안한 구간이 많아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무엇보다 권할 만한 것은 문장대와 경업대 같은 최고의 조망대를 거치며 단풍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속리산 황금코스이다.

버스를 대절해 왔다면 2시간이면 능선에 오를 수 있는 시어동을 들머리로 법주사로 하산하는 게 합리적이다. 장암리 시어동 코스는 법주사에서 문화재관람료를 4000원으로 올려 받으면서 단체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아졌다. 문화재관람료를 안 내고 문장대에 올라 반대쪽 법주사로 하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승용차의 경우 하산 후 차를 가지러 먼 길을 둘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매표소에서 법주사까지 풍성한 숲이 사람을 반긴다.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류 고목들이 향기를 뿜어 내는 숲길로 5리쯤 된다 하여 ‘오리숲’이라 불린다. 법주사에서 33m 높이의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석연지, 쌍사자석 등의 국보를 구경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문장대로 이어진 용바위골은 산뜻한 오솔길로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었다. 오름길에는 휴게소가 여럿 있지만 비싼 편이므로 물과 간식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문장대는 문어 머리처럼 생긴 암봉이다. 철계단을 올라 꼭대기에 서면 달콤한 360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여느 산 정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망의 왕이라 해도 손색없는 빼어난 경치가 드러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경치의 뛰어나기가 속세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라 해서 유래한 이름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임경업 장군의 전설 어린 경업대

능선을 거쳐 신선대에서 경업대로 하산하면 다시 단풍을 구경할 수 있다. 임경업 장군이 무예를 익혔다는 경업대는 천길 낭떠러지 위의 널찍한 바위로 경치의 배포가 장군감이다. 여기 서면 장군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속리산을 둘러선 병사들을 향해 호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묘한 바윗덩어리들이 산세를 이룬 걸 볼 수 있는데, 그중 제일이 입석대로 네모반듯한 돌기둥이 눈길을 끈다. 우뚝 선 입석대는 임경업이 맨손으로 일으켜 세웠다는 설화가 있다. 이어 단풍의 알록달록함이 절정에 이른 계곡을 지나면 법주사에 닿는다.

속리산에 가면 남보다 먼저 정상에 가려 아등바등하지 않길 권한다. 산모퉁이 하나씩 돌 때마다 은근한 농담(濃淡)으로 처리한 동양화 같은 풍광이 번갈아 나타날진대, 그 구경에 한눈파느라 설혹 걸음을 헛디디게 될지언정 남보다 한발 빠른 정상 밟기에 마음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속리산행 버스가 07:30부터 18:30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1만6900원이며 3시간30분 걸린다. 청주에서는 속리산행 버스가 30분 간격(06:50~21:30)으로 운행한다. 1시간50분 걸리며 요금은 8600원이다.


숙식(지역번호 043)

법주사 입구에 식당과 숙소가 즐비하다. 문장대식당(543-3655)과 팔도식당(544-2531)의 버섯전골이 좋다. 단골식당(542-5131), 찬우물식당(543-4702)은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이 별미다. 도로를 경계로 서쪽 새마을금고 뒷골목에 숙소가 많다. 레이크힐스호텔(542-5281)은 인근에서 가장 크고 깔끔한 숙소다. 온돌방과 침대방을 비롯해 한식당, 경식당, 커피숍, 연회장, 스포츠바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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