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의 지붕이라면 단연 가야산입니다. 경남 내륙의 한복판에 솟은 가야산은 기기묘묘한 암릉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능히 명산의 반열에 놓입니다. 갖은 형상 바위들로 가득한 만물상을 갖고 있음에도 가야산은, 그러나 그에 합당한 명성을 누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건 아마도 가야산 아래 해인사의 크고 넓은 이름 뒤에 가려진 탓이 크겠지요. 경남 합천에 갑니다. 오는 11월 10일까지 해인사 일대에서 열리는 대장경세계문화축전에 맞춰 떠난 걸음입니다. 축전은 진작 시작됐지만, 거기로 향하는 여정을 늦춰 잡았던 건 단풍이 물들 무렵 해인사로 오르는 계곡 홍류동의 아름다움을 아는 까닭입니다. 홍류동의 계곡을 따라 단풍나무의 잎들이 붉게 달아오른 모습이야말로 ‘선경(仙境)’이란 말을 붙여주기에 충분합니다. 단풍이 어찌나 뜨거운 화염처럼 달궈지는지, 붉게 물든 잎이 차가운 계곡 물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치익치익 김이 오를 것만 같습니다. 홍류동의 단풍 소식은 아직 일렀습니다. 바위 그늘 뒤편에 일찌감치 물든 단풍잎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홍류동의 단풍은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가 절정일 듯합니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의 열기가 달궈지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좀 더 아껴뒀다가 보름쯤 뒤에나 출발한다면 맞춤할 듯합니다. 청명한 하늘과 서늘한 대기 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돌아오는 것도 나무랄 데 없지만, 이 가을에 가야산까지 가서 단풍을 못 보고 돌아온대서야 어디 될 말입니다. 이 가을 합천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가야산 대신 가야산과 해인사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남산제일봉을 권합니다. 산의 크기나 풍경으로 겨룬다면 가야산이 단연 ‘한 수 위’지만,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을 함께 둘러본다면 오르는데 적잖은 노고가 필요한 가야산보다는 2시간 안쪽에 정상을 밟을 수 있는 남산제일봉이 제격입니다. 남산제일봉도 어엿한 가야산국립공원에 속한 만큼 거기 오르면 못잖은 암릉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해인사의 말사인 청량사에서 출발해 남산제일봉에 올랐다 해인사를 둘러본 뒤 홍류동 계곡을 따라 조성된 6.8㎞짜리 도보코스 ‘소리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 그 길을 두고 ‘이 가을을 만끽하는 최고의 코스’라 이른다 해도 누구도 시비하지 못할 듯합니다. 신라말 때 최치원이 혼란을 피해 숨어든 이래로 가야산 일대는 은거의 땅이었습니다. 가야산 홍류계곡에 숨었다가 홀연히 신선이 돼서 사라졌다는 최치원의 뒤를 이어 당쟁과 사화를 피하려 선비들이 훌훌 털고 가야산 아래로 찾아들었습니다. 거기서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 침묵이 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깊은 산중인 가야산 아래에는 ‘침묵’으로 이름을 삼은 오래된 고택 ‘묵와고가(默窩古家)’가 있고, 역모에 휘말려 피붙이를 다 잃고 홀로 내려온 선비가 그 아래 깃들어 살았다는 거대한 소나무가 장엄하게 서 있습니다.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인 월광태자가 나라를 잃고 절을 세워 말년을 보냈다는 월광사터도 거기서 멀지 않고, 석탑과 석등만 남아있으되 ‘비어있음’으로 더 충만하게 빛나는 영암사터도 합천에 있습니다. 이즈음 합천에 간다면 황금빛 다랑논이 흘러내린 합천호반을 드라이브해도 좋겠고, 차로 해발 1134m의 오도산 정상까지 단숨에 올라 일출이나 일몰의 장엄한 광경을 마주하고서도 좋겠습니다. 단풍이 물드는 계곡과 오래된 절터, 잘 익은 벼들의 물결과 환하게 피어난 억새까지…. 합천에서는 지금 가을 아닌 것이 없습니다.
# 암릉에서 해인사를 마주 보다…남산제일봉 힘차게 솟은 기묘한 암봉들의 형상이 마치 1000개의 부처와 같다고 ‘천불산(千拂山)’으로도 불리고, 능선의 바위들이 마치 매화가 핀 듯하다 해서 ‘매화산(梅花山)’, 해인사를 침범하는 불의 기운을 품은 산이라고 해서 ‘매화산(埋火山)’이라고도 불리는 산. 그 산이 바로 합천의 남산제일봉이다. 남산제일봉은 가야산과 정면으로 딱 마주 보고 서 있다. 가야산 상왕봉의 명성과 위세에 눌릴 법도 하건만, 남산제일봉(1010m)을 찾는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높이며 규모로 따지면 가야산(1430m)에는 못미치지만, 남산제일봉은 능선마다 솟은 기묘한 암봉이 빚어내는 경관만큼은 가야산 못지않다. 게다가 정상에 서면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가야산의 웅장한 위용이 펼쳐지고 가야산 그 발치쯤에 들어선 해인사와 산내 암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제일봉은 예부터 ‘불의 기운’을 가진 산으로 일컬어져 왔다. 산 능선을 따라 옹골찬 암봉들이 마치 불꽃처럼 도열해있기 때문이리라. 창건 이후 해인사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가 빈발했다.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을 건너면서 큰불만 6번이 났다. 마지막으로 큰불이 난 건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해인사의 잦은 화재가 대적광전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는 이 산의 기운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대적광전을 재건하면서 남산제일봉을 바라봤던 건물의 방향을 살짝 서쪽으로 돌려 기초를 놓았다고 전해진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대적광전 앞과 극락전 앞, 천왕문 앞 등에 돌로 만든 확을 놓고 소금 한 되에 물을 채워뒀다. 물과 소금의 기운으로 불의 기운을 막고자 한 것이었다. 남산제일봉의 불의 기운이 쇠했던지, 아니면 이런 조치가 효험이 있었던지 그 뒤부터는 해인사에서는 한 번도 불이 나지 않았단다. # 팔만대장경, 일촉즉발의 폭격 위기를 넘기다
그러나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18일. 해인사 일대의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된 우리 공군의 폭격기 편대에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을 폭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비행편대를 이끌던 김영환 편대장은 정찰기로부터 폭격 훈령을 받았다. 대원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면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 편대장은 폭격 대신 ‘명령 불이행’을 택했다. 그는 대원들에게 ‘절대로 폭탄을 발사하지 말라’고 명령하곤 해인사 뒷능선 너머 쪽에 폭탄투하를 지시했다. 이로써 팔만대장경은 전란 중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해인사로 이르는 숲길에는 당시 해인사 폭격명령을 거부했던 김영환 편대장을 기리는 대장경판 형상의 수호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등이 즐비한 해인사는 지금도 전국 124개 목조문화재 중에서 방재 우선 1순위로 꼽히는 곳이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에는 무인감시카메라와 적외선 화재탐지기 등이 촘촘히 설치돼있으며 해인사 경내에만 20여 곳에 달하는 소화전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 쌍둥이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대비로전에는 첨단 대피장치까지 마련돼있다. 불이 나면 자동화재감지장치가 불상 좌대 아래 설치된 승강기를 작동시켜 30㎝ 두께의 콘크리트로 만들어놓은 지하 6m 깊이의 지하 대피실로 불상을 자동 이동시키고 곧바로 내화벽돌로 만든 이중 방화문이 닫혀 열기를 막는단다. # 능선을 따라 온갖 형상의 기암이 펼쳐지다 남산제일봉은 해인사 암자인 청량사를 끼고 오르는 게 순서. 반대쪽 해인사관광호텔 쪽에서 오르는 길이 부드럽긴 하지만, 남산제일봉과 홍류동계곡의 도보코스인 ‘소리길’을 한데 묶어 잇겠다면 청량사 쪽에서 출발하는 게 낫다. 청량사에서 출발하는 가파른 오름길에서 올려다보는 보는 암봉의 경치가 더 빼어나다는 것도 이쪽에서 출발하는 게 더 나은 이유다. 청량사에서 출발해 첫번째 전망대가 나올 때까지는 지루한 오르막의 연속. 능선의 전망대까지 거리는 800m 남짓에 불과한데도 족히 50분쯤이 걸리니 그 길의 가파르기를 짐작할 만하다. 숨 가쁘게 전망대에 당도하면 다음부터는 기암 풍경의 연속이다. 정면으로 가야산의 상왕봉이 흰 구름을 이마에 두르고 있고, 멀리 해인사의 전경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서고 누운 크고 작은 암봉들은 그대로 수석전시장이다. 가파른 철계단을 딛고 굽이를 돌고 넘을 때마다 탄성은 이어진다. 계단 길은 점점 급한 경사를 이루지만, 이 구간에서는 누구도 힘든 줄 모른다. 주변 경관에 시선을 빼앗겨 자주 걸음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서 홍류동 계곡 상류 쪽인 치인주차장까지 내려서는 길은 사뭇 부드럽다. 두세 명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널찍하고 경사도 순하다. 정상에서 해인사관광호텔 앞 주차장까지는 넉넉잡아도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내림길에서는 성보박물관 쪽에서 해인사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는 게 당연한 순서다. 해인사의 경내로 들어서면 대장경세계문화축전 프로그램인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설치미술작품들이 마중을 나온다. 해인아트프로젝트는 국내외 작가 30팀이 참가해 ‘마음’이란 주제로 현대인들에게 종교와 사찰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는 미술작업. 작업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에는 돌을 싼 붉은 보자기 수백 개를 놓아뒀다. 관람객들이 본인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만큼 붉은 보자기에 돌을 싸서 생년월일과 출생지를 써서 마당에 모아 둔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염원의 무게를 담은 붉은 보자기들이 절집 마당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 뭉클한 감상과 독특한 미감을 함께 전해준다. 경내의 미술품들은 절집을 둘러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더불어 문화축전 기간에만 개방하는 장경판전 뒤편의 법보전 마당을 꼭 들어가 보자. 법보전은 평소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곳. 법당 마당은 성스러운 공간이라 낙엽 한 잎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 가을 단풍으로 물까지 붉게 물드는 홍류동 계곡 해인사를 둘러보고 성보박물관 쪽으로 나오면 여기서부터 ‘소리길’이 시작된다. 신라말 최치원이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신선이 돼서 홀연히 사라졌다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가는 도보코스다. 소리길은 대개 해인사 들머리의 대장경문화축전 행사장에서 출발해서 해인사를 향해 오르는 게 보통인데, 남산제일봉을 넘어왔다면 거꾸로 해인사에서 내려가는 코스가 된다. 계곡의 상류에서 출발해 내내 부드러운 내리막길을 걷자니 발길이 한결 가볍다. 소리길은 홍류동 계곡을 따라 6.8㎞ 구간이 이어지는데, 이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홍류동 계곡의 정취를 맛보려면 멀찌감치 건너편 도로에 서서 오가는 차를 피해가며 발돋움을 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소리길이 놓이면서 홍류동의 비경을 느긋하게 완상할 수 있게 됐다. 계곡에 가까이 다가서면 우르르 힘찬 물소리가 따라오고, 멀어지면 산새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길이 워낙 유순해 오르든 내리든 헐떡임 없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길. 자연의 속도에 몸을 내맡기고 걷는 이 길이야말로 잠념을 떨치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길이다. 소리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라면 길상암에서부터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농산정까지의 구간. 특히 길상암 부근의 칼로 자른듯한 바위 아래 계곡물이 푸른 빛으로 고여있는 낙화담 부근의 경관이 단연 빼어나다. 물빛이 어찌나 고왔던지 진주에서 나들이 왔던 기생들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넋을 잃고 꽃잎처럼 물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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