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8월의 신선학교, 중국 도교본산 순례

醉月 2014. 6. 8. 11:05

너울너울 춤추며 날아오른다

8월의 신선학교, 중국 도교본산 순례

 

신선학교(교장 김성환, 군산대 교수)가 다시 문을 엽니다.
너울너울 춤추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세속을 초월해 아득한 선경(仙境)에서 영생의 약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유유자적 노닙니다. 그이가 곧 신선(神仙)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기 오래 전부터 신선은 이 땅의 어른이었고 우리 문화의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신라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 말했습니다.
“세간의 요로통진(要路通津, 벼슬길)은 눈뜨고 볼 데가 없지만, 세상 밖의 청산녹수는 꿈에서도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人間之要路通津, 眼無開處, 物外之靑山綠水, 夢有歸時.)” <桂苑筆耕集> ‘再獻啓’)
이 글을 쓸 때 고운 선생은 고작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12세에 당나라 장안으로 유학을 떠나 18세에 급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장으로 이름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그런 젊은이가 남들이 다 꿰차고 싶어 아우성인 자리에는 “눈뜨고 볼 데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대신 “꿈에서도 돌아갈 때가 있다”며 청산녹수(靑山綠水)를 그리워합니다.

천년이 지난 지금, 너나없이 물질에 빠져 정신의 고상함을 잃는 시대에 다시 고운의 꿈이 그립습니다. 그가 찾았던 ‘청산녹수’는 단지 산천의 풍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천진한 인격, 자연과 만나는 인간 본성의 자리였습니다. 2014년 8월 신선학교의 테마는 <청산녹수의 꿈-중국 도교본산 종남산·무당산·화산을 찾아서>입니다. 천 년 전 신라 학자 최치원, 그리고 신라 선인(仙人) 김가기(金可紀, ?∼859)의 꿈을 따라 떠납니다. 8월 17일(일)부터 22일(금)까지 6일간 진행됩니다.


■종남산(終南山)


8월 17일(첫날, 일요일)
-07:00 인천국제공항 3층 A카운터옆 창측 여행사 만남의 장소 모임
푯말 : <신선학교 서안 6일>
-09:35 인천국제공항 출발(KE807) [비행시간:약 3시간10분]
-11:45 서안 도착
-점심식사
-섬서성역사박물관, 명대 성벽 답사(자유활동 : 자전거 타기, 전동카)
-종남산 자오곡 숙소로 이동



비행
신선학교 첫날 아침 7시까지 인천국제공항에 모입니다. 오전 9:35 출발 대한항공 항공편(KE807)으로 약 3시간 10분 비행하면, 현지 시각 11:45 무렵 서안에 도착합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면 점심시간, 버스 안에서 교장선생님의 <학교를 여는 모임> 말씀을 들으며 식사장소로 이동합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섬서성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합니다.

섬서성역사박물관, 명대 성벽
중국 전통건축의 미를 살린 섬서성역사박물관은 전체 면적이 7만여㎡에 이르는 비교적 큰 규모의 현대화된 박물관입니다. 특히 주, 진, 한, 수, 당 시대의 유물을 중심으로, 11만 여 건에 이르는 진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 년 전의 중국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시작됩니다. 박물관을 나오면 명(明)대에 지어진 서안 성벽으로 이동합니다.


서안성벽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고성입니다. 높이가 12m, 폭이 15m로 높고 두텁습니다. 게다가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둘레의 길이가 13.7㎞입니다. 이 성벽은 명나라 홍무제 3∼11년 사이에 건설, 이미 그 역사가 6백여 년 되었습니다. 이 성벽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보는 서안성 안팎이 거대한 야외박물관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비행에 지치고 굳은 심신을 ‘성벽에서 자전거 타기’로 풀겠습니다. 한여름이니 챙이 긴 모자와 마스크를 준비하세요. 1시간 30분 동안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 타기 어려운 분들은 대신 ‘전동차 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남산에 들어가 신선학교의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합니다.

종남산 자오곡
중국 도교에 이런 말이 전합니다.
“선계(仙界)의 신선 열 가운데 여덟은 종남산에서 등선한다.”
종남산은 도교의 주요 발상지이자 성지로, 예로부터 ‘신선의 도읍(仙都)’으로 불렸습니다. 지리상으로는 서안시 남쪽 15㎞ 지점에 펼쳐지며, 중국 중앙부를 남북으로 가르는 1천6백㎞의 진령(秦嶺)산맥 중앙에 위치합니다.

종남산은 천하를 주유한 도교와 불교의 수행자들이 깊은 공부를 하려고 찾는 종착지 같은 곳입니다. 지금도 중국 최대의 은자 밀집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움막이나 토굴에서 은둔하는 수행자들이 종남산 70여 골짜기마다 터를 잡고 있습니다. 그 수가 5천을 헤아린다고 합니다.

종남산에는 노자가 <도덕경>을 관윤에게 전하고 떠났다는 누관대(樓觀臺)가 있습니다.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유해섬(劉海蟾)을 비롯한 전설적인 신선들도 종남산에서 수도했다고 전합니다. 한데 거기에는 단지 중국 신선들의 자취만 깃든 게 아닙니다.

신라 출신의 김가기(?∼859)도 종남산 자오곡에 은거해 도를 닦아 승천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대(五代, 907∼960)에 편찬된 <속선전>을 비롯해 <태평광기> <운급칠첨> <역세신선체도통감> 등에 그에 관한 전기가 보입니다. 거기에서 신라인 김가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김가기는 당나라에서 급제해 빈공진사(賓貢進士)가 되었다. 성격이 침착하고 도를 좋아해 사치를 멀리했다. 복기(服氣)·연형鍊形)의 수련을 즐거움으로 삼았고, 박학했으며 기억력이 좋고, 문장은 맑고 수려했다. 용모가 아름답고, 거동과 말에 중화의 기풍이 있었다. 급기야 벼슬에서 물러나 종남산 자오곡(子午谷)에 머물렀다. 흉중에 은둔의 뜻을 품고 직접 진귀한 꽃과 과수를 많이 심어 길렀다.

늘 향을 피우고 정좌해 앉아 사념하는 듯 했다. 또한 <도덕경>과 여러 선경(仙經, 도교 전적) 읽기를 그치지 않았다. 3년 간 그런 뒤에 본국으로 귀국할 생각을 하고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도사 복장을 하고 종남산에 들어갔다. 음덕을 행하기에 힘써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일을 돌봤으니 보통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었다.

대중(大中) 11년(857) 12월, 갑자기 황제에게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옥황상제를 받드는데, 부름을 받아 영문대(英文臺) 시랑(侍郎)이 되었으니 내년 2월 25일에 의당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선종(宣宗)이 아주 기이하게 여겨, 왕명을 전하는 내시를 보내 궁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굳이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또한 옥황상제의 조서를 보여달라고 하니 거절하며, 다른 신선이 이를 관장해 인간 세상에 남겨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침내 황제가 궁녀 네 사람과 향, 약재, 황금, 비단을 예물로 보냈다. 그리고 내시 두 사람을 보내 전담해서 시중들게 했다.

그러나 김가기는 고요한 방에 홀로 기거해, 궁녀와 내시들이 거의 접근하지 못했다. 매일 밤마다 방안에서 사람들이 담소하는 소리가 들려 내시가 이를 몰래 엿보니, 다만 선관(仙官)과 선녀(仙女)가 각자 용과 봉황을 타고 앉아서 공손히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또한 시위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이에 궁녀와 내시들이 감히 그들을 놀래키지 못했다.

2월 25일, 봄 풍경이 아름답고 화초가 만발했다. 과연 오색구름이 일더니 봉황이 울고 난(鸞)새가 날아들며, 온갖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날개깃 지붕에 옥바퀴를 단 수레가 내려왔다. 깃발이 공중을 가득 메우고 신선의 휘장이 한가득 펼쳐진 가운데, 김가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지켜보는 조정 관원과 백성들이 산 계곡을 가득 메웠으니, 이를 올려다보고 예를 올리며 감탄하고 경이로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김가기는 9세기 전반에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당나라 시인 장효표(章孝標)가 신라로 귀국하는 김가기를 송별하며 쓴 시가 아직도 전합니다. 게다가 근자에 종남산에서 김가기의 전기를 돌에 새긴 마애비가 발견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 마애비가 당(唐) 말이나 오대 무렵에 조성됐다고 추정합니다. 이로써 김가기의 실존은 물론 그가 종남산에서 구도 수행을 했던 것이 거의 분명해졌습니다. 이처럼 유서깊은 종남산 자오곡에서 신선학교 <청산녹수의 꿈> 첫날이 펼쳐집니다.

자오곡의 숙소는 어디에나 흔한 관광호텔이 아닙니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산장입니다. 여기서 저녁을 먹고 서로 인사도 나누며, 교장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집니다. 도교, 신선술, 김가기, 자오곡 등에 관해 배우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신선학교 전 과정 동안 시행할 간단한 수련법도 익힙니다.


■무당산(武當山)

 

8월 18일(둘째 날, 월요일)

-숙소 조식 후 무당산 이동
-중식
-남암궁, 자소궁 방문

8월 19일(셋째 날, 화요일)
-호텔 조식
-무당산 등정(케이블카 포함)
-무당산 금정 답사
-무당산 하산(케이블카 포함)
-중식 후 서안으로 이동(5시간)
-석식 후 호텔 휴식


무당산은 긴 말이 필요없는 ‘도교 문화의 성지’입니다. 예로부터 ‘천하제일 성산(聖山)’으로 불렸습니다. 무당산은 72봉우리, 36암, 24계, 11동으로 이뤄졌으며, 천주봉(해발 1,612m)이 그 중심입니다. 무당산은 본명이 선실산(仙室山)이었으니, 그야말로 ‘신선의 산실’이었던 셈입니다. 일명 태악산(太岳山) 혹은 태화산(太和山)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행정구역상 호북성(湖北省)에 속하지만 서북부에 치우쳐, 섬서성 서안과 호북성 무한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무당산은 태극권의 발상지이자, 도교 무술 무당파의 본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중국 역대 제왕이 제사를 지내던 성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무당산은 춘추시대부터 한말까지 이미 토착적인 종교 활동의 제장이었고, 위진남북조시대에 도교가 번성했습니다. 당 태종이 오룡사(五龍祠)를 건립했고, 당 말에 도교 72복지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송·원 왕조에서 무당산을 진무신(真武神)으로 호칭하고, 원나라 황제가 직접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제장이 되었습니다. 명대에 무당산은 ‘태악(太岳)’과 ‘치세현악(治世玄岳)’으로 봉해졌고, 황실의 가묘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중국 도교의 제1성소가 된 무당산에는 당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5백여 개의 도교 사찰이 건립됐습니다. 무당산 도교건축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입니다. 그 가운데 금정, 자소궁, 남암궁이 중국의 ‘국가중점문물보호구’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번 신선학교에서는 무당산의 대표적인 도관(도교 사원)들을 방문하고, 현지의 도사들과도 교류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18일 오후에 먼저 남암궁과 자소궁을 방문합니다.

남암궁(南巖宮)
남암궁은 무당산의 암벽에 세워진 유명한 도교 사원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송 시기에 이미 여기서 수도한 도사들이 있었고, 원나라 대원(大元)1년(1308)에 ‘천을진경만수궁(天乙真慶萬壽宮)’이라는 도관을 지었습니다. 그 뒤 원나라 말에 건물이 훼손된 것을 명나라 영락11년(1413)에 중건하고 ‘대성남암궁(大聖南岩宮)’으로 불렀습니다. 당시 크고 작은 전각 640여 개로 이뤄진 거대한 도관이었으나, 청나라 말에 대부분이 다시 훼손됐습니다. 현존하는 전각은 남암궁이 전성기였을 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절벽에 건축된 정교함과 무당산의 암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대한 기세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신비하고 경이로운 사원입니다.


자소궁(紫霄宮)
자소궁은 무당산 동남쪽 전기봉(展旗峰) 아래 웅장한 위용을 보이며 자리잡고 있습니다. 북송 선화(宣和)년간(1119∼1125)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중건과 확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무당산의 8대 도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된 도교 건축물입니다. 현재 모두 29동의 건물이 현존하며, 면적은 6,854㎡에 이릅니다. 특히 궁 안의 자소전(紫霄殿)이 무당산의 목조건축을 대표합니다. 자소궁은 도교를 특히 숭상했던 송나라 휘종(徽宗)이 꿈에서 본 명당에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역대 황제가 수명과 복을 빌던 제장으로 신성시된 도관입니다. 특히 성스럽고 영험한 수도터가 많기로 유명한 도관입니다.


무당산 금정(金頂)
9일 오전에 케이블카를 타고 무당산에 올라 금정을 등반합니다.
무당산의 주봉인 천주봉(天柱峰) 정상에 금정이 있습니다. 금정은 무당산 정기의 정화이자 상징이며, 또한 무당산 도교가 최고봉임을 황실로부터 인정받은 표지이기도 합니다. 금정은 무당산뿐만 아니라 도교 전체의 성스러움을 표상하는 최고의 혈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정 구역은 중관(中观), 황룡동(黄龙洞), 조천궁(朝天宫), 고신도(古神道) 위의 일천문(一天门)·이천문(二天门)·삼천문(三天门), 그리고 태화궁(太和宫)의 금전(金殿)·황경당(皇经堂)·자금성(紫金城)·조배전(朝拜殿)과 원대의 고동전(古铜殿)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중국 역대의 황제들이 무당산을 찾아온 뒤 금정까지 올랐으며, 여기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금정에 오르는 순간이 무당산 방문의 절정입니다. 교장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무엇인지,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청산녹수의 꿈>이 어떠한지를 몸소 느끼는 장엄한 체험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이동
신선학교 둘째 날(18일) 오전과 셋째 날(19일) 오후에는 버스로 서안과 무당산 사이를 이동합니다. 차안에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물론 잠이 모자란 분들은 이때 숙면을 취할 수 있겠죠^^. 19일 저녁에 서안 시내의 호텔에서 짐을 풉니다. 그리고 귀국할 때까지 3박을 이 호텔에서 보냅니다.

■화산(華山)


8월 20일(넷째 날, 수요일)
-호텔 조식 후 화산으로 이동(2시간)
-옥천원 방문
-화산 전일 등반(북봉/서봉 케이블카 포함)
-하산 후 서안으로 귀환.
-석식 후 이슬람야시장 관광(혹은 자유시간)
-호텔 휴식

 



화산은 중국 오악(五嶽)의 하나로, 서악(西嶽)입니다. 화산은 최고봉인 남봉이 해발 2,155m에 이르며, 오악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합니다. 구불구불 굽어진 12km의 등산로 도처에 깎아지른 절벽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험한 만큼, 기암이 빚어내는 경관 역시 오악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교 명산인 화산은 36동천(洞天) 가운데 제4동천입니다. 무협지에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화산파’의 본산으로, 옥천원(玉泉院)과 진무궁(眞武宮), 금천궁(金天宮) 등의 도관이 있습니다. 화산에서 북쪽으로 7km 떨어져 있는 서악묘(西嶽廟)는 옛날 서악 화산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입니다. 화산에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봉우리가 있어서, 예로부터 신선의 다섯 손가락에 비유되었습니다.

동봉(東峯)은 조양대로 불리는 전망대가 있어 새벽에 일출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이 전망대의 이름을 따서 ‘조양봉’으로도 불립니다. 서봉(西峰)은 봉우리 정상의 취운궁 앞에 있는 거석의 모양이 연꽃과 비슷해 ‘연화봉’으로도 불립니다. 남봉(南峯)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2,160m)로, 남봉 정상의 노군동(老君洞)에 노자가 은거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그밖에도 화산에는 ‘옥녀봉’으로 불리는 중봉(中峯)과 ‘운대봉’으로 불리는 북봉(北峯)이 있습니다.

화산은 오랜 옛적부터 신선의 산으로 숭배되었고, 도교가 성립된 뒤에 수많은 도사들이 여기서 수련을 했습니다. 특히 남북조시대의 저명한 도사인 구겸지(寇谦之, 365∼448)가 오래 머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뒤로 헤아릴 수 없는 도사들이 화산을 찾아 도관을 건립했습니다. 특히 명대에 화산의 세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화산은 지형이 매우 험준해서 건물을 짓기 어려운데, 그러다보니 도관의 형세가 더욱 장관을 연출하고 신기함을 더합니다.

신선학교 넷째 날은 아침에 일찍 서둘러서 화산으로 출발합니다. 전날 화산까지 이동해서 산 아래 호텔에서 묵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무당산에서 이동하는 거리가 너무 멀고, 또 큰 짐을 호텔에서 풀었다 쌌다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 서안에 호텔을 정하고 당일치기로 화산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서안에서 화산까지는 버스로 2시간 거리입니다. 아침 일찍 가벼운 배낭을 들고 버스에 올라 한숨 눈을 붙이면 화산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화산의 장엄한 풍광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화산 옥천원(玉泉院)
화산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도관이 있습니다. 그 중에도 옥천원이 화산 도교를 대표합니다. 옥천원은 중국 북방의 저명한 전진도(全眞道) 도관입니다. 송 인종 황우(皇佑)연간(1049∼1051)에 처음 건립된 도관으로, 도사 가득승(賈得升)이 스승인 진단(陳摶, 872~989)을 위해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훼손과 수리를 반복하며, 청대에 지금의 규모를 갖췄습니다. 도관의 본래 이름은 ‘희이사(希夷祠)’였는데, 이는 송 태조가 진단에게 희이선생(希夷先生)이란 호를 내린 데서 유래했습니다. 경내에 우물이 있으며, 물이 옥처럼 깨끗하고 달콤해서 훗날 ‘옥천’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산이 높다고 대수가 아니고 신선이 살면 곧 신령하다(山不在高,有仙則靈)”는 말이 있습니다. 화산은 산이 높기도 하거니와, 수천 년간 무수한 도인들이 수도하여 영험해진 산입니다. 특히 화산파는 전진도의 한 유파로, 북방 7대 진인의 한 사람인 학대통(郝大通)을 문파의 시조로 삼습니다.

학대통은 자가 태고(太古)요 호가 광우자(廣寧子)로,전진도의 시조인 왕중양(王重陽)의 제자입니다. 원나라 세조 지원(至元)6년(1269)에 ‘광우통현태고진인(廣寧通玄太古真人)’으로 봉해졌고, 무종 지대(至大) 3년(1310)에 ‘광우통현묘극태고진군(廣寧通玄妙極太古真君)’으로 다시 추존되기도 했습니다. 이 문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유명한 화산파를 이뤘고, 옥천원이 전국 화산파의 본원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 유서깊은 도관을 그저 관광지의 하나로 스쳐갑니다. 하지만 신선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의 인솔로 옥천원을 방문하고, 이 도관의 최고 어른인 도장(道長)이 직접 일행을 맞아 환대합니다. 도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중국 도교 화산파의 진솔한 면모를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옥천원 방문을 마치고 서안으로 돌아옵니다.

이슬람 야시장, 혹은 내 맘대로
서안에서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입니다. 서안의 명물인 이슬람야시장(回民街) 어슬렁거리기를 추천합니다. 실크로드의 도시 서안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유입니다. 발마사지를 받으러 가건, 혹은 호텔방에서 빈둥거리건...다만 신선학교의 공식 일정상 술은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날 다시 종남산에서 아주 중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계(齋戒)가 필요한 밤입니다.

■다시 종남산


8월 21일(다섯째 날, 목요일)
-호텔 조식 후 종남산으로 이동
-봉고차를 환승하여 금선관으로 이동
-금선관 개광의식 참가
-중식 후 병마용으로 이동
-화청지, 병마용 답사
-석식 후 <장한가 가무극> 관람

-호텔로 귀환하여 휴식




신선학교 <청산녹수의 꿈>은 종남산에서 시작해 종남산에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김가기 선인(仙人)의 자취가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사람인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림광기(事林廣記)>에 따르면, 천하의 도사들이 모두 김가기가 승천한 날에 그의 명복을 비는 제사를 드린다. 그렇다면 천하 사람들이 비록 아녀자나 어린아이라도 그가 진선이 된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고 옛 서적도 전하는 것도 없다. 처음부터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라, 심지어 중국인이 물어도 대답할 수 없으니 또한 부끄럽지 않은가?(<해동이적>)

그렇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김가기를 기리는 제사를 지냅니다. 위의 <사림광기>는 남송 시기에 복건(福建) 사람인 진원정(陳元靚)이 지은 민간 백과사전으로, ‘도교류’ 항목에서 2월15일을 ‘김가기 진인 승선일(金可記真人昇仙日)’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남산 자오곡에는 김가기 선인을 기려서 세운 도관인 금선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매년 두 번 특별한 제의를 올립니다. 첫째가 음력 2월15일 ‘김가기 진인 승선일’이고, 둘째가 금선관 건립 기념일입니다.

신선학교 교장선생님이 올해 음력 2월15일 금선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한데 한국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더랍니다. “김가기가 진선이 된 것을 천하에서 다 알고 기리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아는 이조차 없다”고 한탄한 홍만종의 말이 다시 떠올랐답니다. 해서 올해 신선학교 일정을 금선관에서 꽤 큰 제의가 있는 날과 맞췄습니다. 그게 8월 21일입니다.

이날 신선학교 일행의 방문에 맞춰 금선관의 도사들이 성대한 도교 의례를 거행합니다. 이는 물론 김가기 선인을 기리는 의미가 있지만, 신선학교 참가자들에게 중국 도교의 의례를 직접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도관이 도교의 유형문화라면, 의례는 도교의 무형문화입니다. 무당산과 화산에서 도교의 대표적인 유형문화유산 여러 곳 둘러봤다면, 종남산 금선관의 의례에 참여함으로써 도교의 무형문화에 접할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의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여 년 전 장안 종남산에 들어와 도를 구하고 마침내 진선(眞仙)으로 추앙받은 신라 출신 구도자의 꿈과 만나는 일입니다. 금선관에는 김가기 선인과 나란히 최치원 선생도 모셨습니다. 요로통진(要路通津)을 벗어나 청산녹수로 돌아가려했던 선생의 꿈도 거기에 함께 서려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곧 혼탁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천진한 인격,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내 본성의 자리를 회복하려는 열망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김가기 선인은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종남산의 자오곡까지 들어왔습니다. 종남산에서 그 꿈을 함께 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안 둘러보기

5일간의 구도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내려옵니다. 서안은 전 세계에서 연간 1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중국 최대의 관광도시입니다. 그러니 산에만 다니다가 그냥 귀국할 수는 없겠죠. 점심을 먹고 그래도 서안을 대표하는 유적인 화청지와 병마용 정도는 둘러봐야겠지요. 만약 병마용과 화청지를 이미 다녀왔다거나 이런 유적보다 공부하는 게 더 좋다는 참가자에게는 별도의 옵션이 제공됩니다.

8월 21일 오후에 섬서성 사회과학원에서 ‘한중도교문화의 교류’를 주제로 한국과 중국 두 나라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립니다. 이날 오후에는 교장선생님도 이 세미나에서 발표를 합니다. 희망자는 이 행사에 같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옵션을 택해도 저녁에 화청지에서 열리는 <장한가 가무극>은 교장선생님과 함께 관람합니다.

병마용(兵馬俑)
병마용은 흙으로 구운 병사와 말입니다. 불사(不死)를 꿈꿨던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병마용은 세계8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만큼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1974년 3월,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병마용을 발견한 것은 유명합니다. 현재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고, 7백여 개의 실물 크기의 도용과 100여 개가 넘는 전차, 40여 필의 말, 10만여 개의 병기가 발굴되었습니다.

병마용갱은 총 4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졌습니다. 1호갱은 동서쪽을 향한 긴 모양으로 6천여 개의 토용과 말들이 묻혀있습니다. 선발부대, 주력부대, 우측 수비군, 후익 수비군 등 네 부대로 구성되고 구조는 지하갱도식으로 땅굴을 파고 토용들을 구워서 안에 세워놓았습니다. 2호갱은 보병과 기병, 마차병, 궁수병의 혼합진이라 하는데 아직까지 미개발 상태입니다.

일부 출토된 토용과 병기를 유리 안에 전시해 놓아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토용들의 손톱, 눈동자, 머리카락, 신발바닥 등에서 병마용을 만든 사람들의 섬세함과 고대인들의 뛰어난 재주를 알 수가 있습니다.

3호갱은 진나라 장군들의 지휘부라고 합니다. 68명의 장군과 그 부대원들이 사용하던 단거리 격투용 검, 장거리 사격용 활 등의 병기가 출토되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들이 전쟁하기 전 길흉을 점치는 동물의 뼈도 출토되었습니다. 청동마차전시관은 진시황릉에서 출토된 청동마차와 부속품 등을 모아 놓은 진열실입니다.

화청지(華淸池)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엮인 화청지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당나라 왕실 원림입니다. 고대부터 수려한 풍경과 질 좋은 온천수로 유명했던 장소입니다. 해서 일찍이 서주의 유왕(幽王)이 이곳에 여궁을 지었으며, 진시황과 한무제도 이곳에 행궁을 건립했습니다. 특히 당 현종이 건립한 궁전누각이 가장 화려하며, 이때 정식으로 '화청궁'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귀비지(貴妃池)는 목욕탕의 모양이 해당화와 같다는 의미에서 해당탕(海棠湯)이라도 합니다. 양귀비의 생일날에 당 현종이 양귀비한테 선물한 독탕입니다. 연화탕(蓮花湯)은 목욕탕의 모양과 남아있는 주추돌의 모양이 연꽃과 비슷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안록산이 당 현종과 양귀비한테 선물한 부부탕이라고 합니다.

성진탕(星辰湯)은 밤에 목욕할 때 별이 보여 붙인 이름입니다. 당 태종 이세민과 그 후대 황제들이 목욕하던 독탕이라고 합니다. 성진탕 바로 옆에 탈의실이 있는데 당나라 시기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답니다. 상식탕(尙食湯)은 황제를 위해 요리하는 신분이 높은 주방장과 신하들이 목욕하던 탕입니다. 여기에 흘러들어가는 온천물은 위에서 황제들이 씻고 난 물이었다고 합니다.

장한가 가무극


성당 시기, 당 현종은 황후 무희비가 죽은 후 자기의 열여덟 번째 아들인 수왕의 아내 양귀비를 첩으로 궁중에 들입니다. 양귀비의 미모에 반해 나라의 정사를 돌보지 않자 755년 안록산과 사사명이 범양에서 ‘안사의 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안록산의 군대에 패한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도망가는데, 신하들이 재상 양국충을 죽이고 다시 현종을 핍박해 양귀비도 죽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양귀비가 나무에 목을 매 자결하는데 당시 나이가 38살이었습니다. 그 후에 현종의 혼백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 달나라에서 두 사람이 만납니다. 그리고 서로 그리움을 하소연하면서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리(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라는 사랑의 맹약을 합니다.(백거이의 <장한가>에서)

장한가는 중국에서 제일 처음으로 진짜 산수를 무대로 제작한 초대형 ‘산수역사가무극(山水歷史歌舞劇)’입니다. 중국의 올림픽 개막공연을 기획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작품입니다. 3백여 명의 전업 배우들이 백거이의 <장한가>를 가무로 재현합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부터 시작해 두 사람의 애정이야기, 안사의 난, 생사 이별, 선경에서의 만남 등 총 4막으로 이뤄집니다.

양귀비의 별장 화청지 뒤에 있는 여산 전체를 배경으로, 구룡지에 수상무대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자연과 화청지를 배경으로 3백여 명의 공연자가 펼치는 엄청난 스케일과 무대가 환상적입니다. <장한가 가무극>은 고가의 공연이어서 일반적인 여행상품에 잘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 신선학교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할 공연입니다. 신선학교에서는 문화가 밥보다 중요합니다.

■귀국하는 날


8월 22일(여섯째 날, 금요일)
-호텔 조식
-팔선궁 방문
-공항으로 이동
-12:55 서안 출발 [비행시간:약 2시간 55분]

-16:50 인천 도착



선궁(八仙宮)
팔선궁은 서안시 동관(東關) 밖의 북화항(北火巷)에 있는 도교 사원입니다. 당나라 때의 궁궐인 흥경궁(興慶宮)의 일부에 건립된 도관으로, 송대에 건립되었습니다. 송나라 때 성이 정씨인 선비가 여기서 팔선(八仙)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후 백성들이 팔선을 기려 만든 사찰입니다. 여동빈이 여기서 종리권을 만났다는 전설이 있어, 예로부터 도교 신도들이 숭상했습니다.

원, 명, 청 시기에 몇 번 보수했는데, 현재 건물은 대부분 청나라 때 건축된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소장된 유물도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해마다 음력 1월1일과 정월 대보름, 그리고 음력 4월 14·15·16일이면 팔선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만큼 서안에서 제일 유명하고 큰 도교사원일 뿐만 아니라 섬서성도교협회 소재지이기도 합니다. 귀국하는 날 오전, 호텔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위치한 팔선궁을 들러보고 공항으로 갑니다. 중국에 연구차 체류중인 교장선생님과 공항에서 작별하고 8월 신선학교 <청산녹수의 꿈>을 마칩니다.


김성환 신선학교 교장선생님은 국립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1990년대에 중국 북경대(北京大)에서 도교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올해는 중국 서안에서 섬서성사회과학원(陝西省社會科學院)의 방문학자 겸 도학연구센터(道學硏究中心) 특별연구원으로 현지 도교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8월의 신선학교는 교장선생님이 진행하는 생생한 현장 강의 외에, 여러 도관을 방문하고 현지의 도사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집니다. 대개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도사들이라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종남산에서 무당산과 화산을 거쳐 다시 종남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현지의 도사들만 알고 전하는 특별한 기운자리를 돌아보는 보너스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김성환 교장선생님은 8월의 신선학교 <청산녹수의 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울너울 춤추며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세속을 초월해 아득한 선경(仙境)에서 영생의 약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유유자적 노닙니다. 그이가 곧 신선(神仙)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들어오기 오래 전부터 신선은 이 땅의 어른이었고 우리 문화의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고조선 단군의 다른 이름이 선인(仙人) 왕검이었고, 고구려의 주몽은 용의 머리를 발로 딛고 홀연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명산대천에서 대자연과 한 몸이 되어 천지의 기운을 호흡하고 신명을 밝혔으니, 이를 '풍류(風流)'라고 했습니다.

한국에 선도(仙道)와 풍류가 있다면 중국에는 도교가 있습니다. 중국 작가 노신(魯迅)도 "중국의 뿌리는 죄다 도교에 있다"고 했습니다. 신선문화는 단지 우리 문화만이 아니라 중국 문화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제 신선학교에서 잊혀진 옛 신선문화를 찾아 다시 <청산녹수의 꿈>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나라의 명산대천에 들어 옛 신선의 자취와 숨결을 느끼고, 신선의 수련과 풍류로 현대 물질문명에 찌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쉼표를 찍읍시다. 그리고 또 대륙으로 건너가 신라 사람으로 당나라에서 우화등선한 김가기 선인의 발자취를 좇고, 또 화산·무당산 같이 이름난 명산에서 중국 도교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신선학교는 국내외 현장답사 및 체험을 위주로 운영하며, 답사 현장에서 이론 강의를 함께 합니다. 다만 꼭 때와 장소를 정하지 않고,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수시로 운영합니다.

신선학교의 운영 규칙과 재계(齋戒)는 다음과 같습니다.

<규칙과 재계>
신선학교에서는 다음 세 가지 규칙에 따라 공부하고 놉니다.

▷천지의 기운을 호흡한다.
▷술 없이 맑은 정신에서 논다.
▷문화의 향기를 느끼며 논다.

학교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늦어도 3일 전부터는 공부에 대비한 아래의 5가지 재계(齋戒)를 최대한 지켜주십시오(재계는 중요한 행사나 일을 앞두고 심신을 깨끗이 하고 근신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로부터 중요한 행사나 장거리 여행이 있을 때, 조상들은 꼭 재계를 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가급적 끊거나 자제합니다.
▷채식과 소식 위주로 식사를 조절합니다.
▷가까운 등산이나 가벼운 운동으로 기초체력을 기릅니다.
▷경건하고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소란하고 번잡한 환경을 멀리하고 맑고 담백하게 지냅니다.

규칙과 재계는 신선학교에 참가하면서 크게 보람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전제입니다. <청산녹수의 꿈>은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서 평소의 삶과 아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꿈의 세계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일상과 분리된 나름의 고유한 질서가 지배합니다. 규칙과 재계는 이런 질서를 지키는데 필요합니다. 만약 질서가 파괴되면 그 순간 꿈의 세계는 무너집니다. 예컨대, 아이들의 학교놀이에서 교사와 학생의 역할모델(role model)이 무너지면 그 순간 학교놀이가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청산녹수의 꿈> 참가자들은 단지 신선의 흉내 내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신선학교로 향하는 차에 올라타는 순간 당신은 전혀 새로운 꿈에 발을 디딘 셈이고, 그 때부터 이미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다른 차원의 존재여야 합니다. 그것이 단지 ‘꿈’이라는 생각조차 물리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규칙과 재계는 당신이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청산녹수의 꿈>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번 신선학교의 중국 도교본산 기행 <청산녹수의 꿈>은 8월 17(일)~22(금)일, 5박6일로 진행되며 참가비는 참가자 20명 기준 168만원입니다(모든 여행경비 포함하되 유류할증료 제외며 NO-TIP NO-OPTION NO-SHOPPING). 이번 트레킹은 마중여행사(주)와 중국 현지의 서안인투어가 준비·진행합니다. 자세한 일정 문의와 참가신청은 마중여행사(주) 전화 02-730-2270 팩스 02-730-7911 정상준(judy4@naver.com) 담당자, 빠른 답변은 김창원 본부장(010-3351-6738, kimcwman@naver.com)에게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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