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여행. 우리 말로 바꾸면 ‘치유 여행’쯤이 되겠지요. 다친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아무래도 여행만 한 게 없는 듯합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언제나 ‘자유로운 시간과 장소를 만난다’는 뜻입니다. 여행의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일상에서 관성처럼 지켜왔던 가치와 태도를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 먹고 마시거나 보고 즐기는 여행도 즐겁지만, 때로는 여행은 명상과 사색이 돼야 합니다. 저를 돌아보는 여정의 소중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떠들썩한 즐거움의 여행이 아직은 조심스러운 때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진초록의 여름이 밀고 올라오는 남녘의 섬 제주로 갔습니다. 거기서 방해받지 않은 채 스스로와 대화하고, 삶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곳들을 찾아봤습니다. 관광객들이 좀 덜 붐비고, 고요한 곳들이라야 했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다친 상처를 치유하겠다면 바쁘지 않은 차분한 걸음과 여러 번 되새기는 묵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바로 한라산 중산간(中山間)의 ‘성 이시돌 목장’이었습니다. 여기는 한국전쟁이 막 끝난 뒤 제주로 들어온 벽안의 신부가 평생을 기도와 노동에 바쳐 이뤄낸 곳입니다. 고된 노동의 기억과 경건한 기도, 그리고 청빈한 삶이 다져진 그곳은 늘 ‘새벽’ 같은 곳입니다. 성인의 이름을 딴 목장 곳곳에는 새벽이슬처럼 정갈한 정신들로 가득 고여 있습니다. 너른 초지의 목장 경관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던 건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자신의 일생을 바꾼 노 신부의 삶이었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쉬지 않고 있는 노 신부의 따스한 손을 목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다친 이들의 마음쯤은 너끈히 치유해주는 것이 제주의 자연입니다. 청정한 자연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으되 사람들의 발길로 어지럽혀지지 않은 곳. 거기가 바로 한경면 청수리의 청수곶자왈입니다. 청수곶자왈은 서귀포 안덕의 도너리오름에서 대정읍 영락리까지 길게 이어집니다. 무려 6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곶자왈은 와락 무섬증이 들 정도로 깊었습니다. 숲이 어찌나 깊은지 대낮에도 초록의 그림자로 어둑어둑했습니다. 곶자왈의 숲을 관통하는 탐방로가 놓이긴 했지만, 그 길은 사람 대신 노루와 망아지를 거느린 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깊은 숲의 터널로 들어서면서 그만 생각을 놓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정한 초록과 맑은 기운 속에서는 몸이 마음보다 먼저 가니 말입니다. 어쩌면 여행에서 ‘치유’란 ‘다 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난대림과 양치식물들이 그득한 숲길에서 꽃향기와 새소리를 데리고 오래 걷다보면, 불쑥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른 새벽에 찾아갔던 금능의 바다가, 관광객들이 드나들지 않는 낮은 돌담을 둘러친 제주 해안 마을이 그렇게 도시에서 다친 상처를 하나씩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종교적 경건함이 빚은 고요 … 성 이시돌 목장 하나의 쟁기로 천사와 힘을 보태서 ‘세 고랑의 밭’을 갈았다고 전해지는 스페인의 농부, 이시돌. 그는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쯤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영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이었다. 가난했지만 농사일에 전력을 다했고, 작은 것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1947년 2월 로마교황청에 의해 농부의 수호 성인이 됐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목장 ‘성 이시돌’의 이름은 이 수호성인에서 따왔다. 먼저 한라산 중산간에 ‘성 이시돌 목장’이 들어선 내력부터 시작하자. 제주를 휩쓸고 간 전쟁과 학살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4년, 푸른 눈을 가진 젊은 사제가 제주의 한림 공소에 부임해 왔다.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였다. 그가 제주에서 목격했던 건 학살의 상처와 전란 후의 비참한 가난이었다. 전쟁으로 버려진 척박한 땅도 절망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그를 비관으로 빠뜨렸던 건 희망이나 기대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그래서 ‘살아 있음’ 자체가 그대로 고통이었던 제주 사람들이었다. 맥그린치 신부에게 시급했던 것은 기도보다는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었다. 신부는 중산간의 버려진 땅을 사들였고, 주민들과 팔을 걷어붙이고 목장을 개간했다. 제주에서 성 이시돌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제주 중산간 지역에는 이곳 말고도 소와 말을 키우는 목장이 여럿 있다. 어디든 목가적인 풍경이 물씬 풍기지만 이곳 성 이시돌 목장은 어쩐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성 이시돌 목장의 아름다운 풍광에 깃들어 있는 건 청빈함과 종교적 경건함이다. 목장 울타리 안에는 성당과 수도원이 있고, 묵상으로 걷는 ‘십자가의 길’이 있고, 침묵 속에서 스스로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있다. 가난한 이들의 평화로운 임종을 위해 지은 병원과 요양원도 있다. 이런 시설들은 다 목장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 이시돌 목장은 다른 목장처럼 소와 말을 기르고 있지만, 거둬들이는 건 단순한 우유와 고기가 아니라 묵상과 마음의 평화인 셈이다. 성 이시돌 목장은 성지순례를 나선 가톨릭 신도 외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제주의 자연 속에 묵상하며 제 삶을 되돌아보기에는 여기만 한 데가 없다. 명상과 치유, 혹은 평안을 위해 떠난 여행이라면 첫 번째로 찾아야 할 목적지다. 가톨릭 신도라면 더 좋겠지만, 믿음이 없다 해도 그닥 상관없다. 아니 어쩌면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에게 믿음으로 이웃들을 살펴온 노 신부의 삶이, 혼돈과 고통에서 평화를 일궈낸 그간의 역정이 훨씬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 기도와 명상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 성 이시돌 목장에서는 먼저 목장의 과거와 현재를 전시한 ‘성 이시돌 센터’부터 들르는 게 순서다. 여기에는 맥그린치 신부의 생애와 반세기가 넘도록 종교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과거, 그리고 여전히 고통받는 이웃들을 보살피는 현재의 모습이 사진과 문장으로 전시돼 있다. 150여 만 평의 초지를 끼고 있는 성당 수도원, 그리고 붉은 벽돌과 초록 지붕의 요양원 등도 고즈넉하지만, 성 이시돌 목장에서 무엇보다 가장 감동적인 공간이 ‘새미 은총의 동산’이다. 새미 은총의 동산은 삼나무 숲과 억새로 둘러싸인 목장 주변의 아름다운 연못 ‘새미소’ 일대를 묵주기도와 미사의 공간으로 차근차근 조성해오다가 본격적인 성서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이 공원에서 압권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묵상과 기도로 걷는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 수난의 열 다섯 장면이 130점이 넘는 대형 조각으로 세워져 있다. 다른 가톨릭 성지에도 조형물을 설치한 십자가의 길은 빠지지 않지만, 이곳의 십자가의 길은 세계 최대 규모로 일컬어질 만큼 규모부터가 다르다. 조각가 박창훈 씨가 실제 크기의 인물 조각으로 성서의 장면을 그려냈는데, 세심한 묘사와 사실감이 어찌나 뛰어난지 마치 ‘성화(聖畵)’ 속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특히 수난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예수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조각 앞에서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발길을 오래 멈추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당도하면 하늘이 열리고 호수 새미소가 나타난다. 주위의 삼나무 숲과 제주의 하늘을 거울처럼 비춰내는 새미소는 15단 묵주형태로 조성돼 있어 주위를 돌면서 명상을 하기에 적당하다. 새미소 주위에는 야외미사를 진행할 수 있는 성모동굴도 있고, 부드러운 오르막길 끝에는 저마다 다른 목적의 기도에 맞는 제단이 세워진 봉긋한 오름 정상이 있다. 새미 은총의 동산 동쪽에는 삼위일체 대성당이 있다. 5000명이 함께 미사를 올릴 수 있는 십자가 형태의 야외성당을 지붕으로 삼아 그 아래에는 실내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에서는 주민들과 순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매일 미사가 열린다. # 청수곶자왈, 그 깊은 숲의 아름다움 제주에는 새로운 관광 명소들이 등장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들이 훨씬 더 많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빼어난 곳들이 도처에 있다는 얘기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의 청수곶자왈이다. 곶자왈이란 화산의 암괴류가 분포하고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축축한 습지를 이룬 곶자왈은 우람한 난대림의 깊은 숲을 이루는데, 제주 일대에는 제법 이름난 곶자왈이 있지만, 숲의 깊이로만 말하자면 이곳 청수곶자왈만 한 곳이 없다. 청수곶자왈 입구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하나 있다. 곶자왈 숲 속의 노루며 방목한 말들이 내려와 물을 마신다는 곳이다. 연못은 활개를 치듯이 자라난 네 그루의 거대한 팽나무들로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팽나무의 크기며 자태를 보자니, 숲의 깊이가 짐작되고도 남았다. 마침 곶자왈에 도착한 건 늦은 오후였는데, 주민들은 한사코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렸다. 탐방로가 놓이지 않은 숲으로 들어섰다가는 자칫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청수리에서 나고 자란 동네 사람들도 해가 진 뒤에는 함부로 숲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곶자왈 숲에서 화려하게 명멸하는 반딧불이’ 얘기를 듣고는 돌아나올 수 없었다. 아직 반딧불이가 나오기에는 이른 계절이라지만, 혹시 일찍 나온 놈도 한두 마리쯤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조심조심 숲에 들어섰는데 10분이 되지 않아 그만 길을 잃었다. 뚜렷한 탐방로를 타고 들어갔음에도 사방이 온통 깊은 숲이라 도무지 동서남북의 분간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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