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안보’ 가늠쇠, 3대 국방포럼 실체
‘좌파정권 종식’ 목표, 경선 때 정책보고서 전달, 대선 때는 조직 동원 득표활동
● 서초포럼-용산포럼-마포포럼 順 창립
● 장성 출신만 238명, 대학교수 등 민간인도 참여
● 병력·부대 감축 반대, 전작권 재협상, 연합사 해체 반대, 국군포로 송환 요구, 방위사업청 폐지…盧 정부 국방정책 전면 수정
● ‘색깔’ 달라 통합 실패, 대선 때 독자 활동
● 일부 회원들, 대통령직인수위 진출
● 서초포럼은 대선 직후 해산, 용산포럼은 법인화 추진, 마포포럼은 새 정부 참여 모색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도운 예비역 장성 모임이 화제다. 대표적인 것이 서초국방포럼, 용산포럼, 마포안보포럼이라는 3대 포럼이다. 이들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족됐다.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대선 당시 한나라당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장)이 이끄는 한국안보포럼도 지원사격에 나섰으나 세 포럼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상관없이 20년 전에 결성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세 국방포럼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들이 내놓은 정책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 포럼은 모두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세 포럼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전달한 보고서엔 노무현 정부의 국방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몇몇 회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진입한 만큼 각 포럼에서 제안한 정책이 ‘이명박 국방’의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어색하지 않다.
세 포럼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포럼 관계자들이 새 정부 출범과 국방부 장관 인사를 앞두고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며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에 기여했다는 공치사로 비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 또 대선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한 만큼 조용히 묻히고 싶다며 접촉을 꺼리는 회원도 있었다.
군 장교의 위계질서는 전역 후에도 기본 틀이 유지된다. 고위계급일수록 더 그렇다. 재향군인회에 따르면 1월 중순 현재 예비역 장성은 2250여 명이다. 세 포럼에 가입한 예비역 장성은 238명이다. 전체 예비역 장성의 10% 남짓한 숫자다. 그런 점에서 포럼 관계자들이 선거에 관여하지 않은 대다수 예비역 장성들의 눈총을 의식해 취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해할 만했다.
용산포럼 관계자들의 경우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자가 사전에 취재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을 요구하자 난감해했다. 결국 주요 회원들이 기자와 한 시간 이상 논쟁을 벌인 끝에 마지못한 듯 취재에 응했다. “제발 표 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MB에 여러 차례 대면보고
포럼들이 이처럼 소극적 태도를 보인 데는 회원 보호라는 명분도 있다. 각 포럼의 핵심 관계자들은 회원 명단이 공개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일부 포럼은 회원들의 실명을 적정선에서 가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세 포럼의 주축은 예비역 장성이다. 하지만 용산포럼과 마포포럼의 경우 대학교수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등 ‘민간인’ 회원도 많다. 포럼 회원들은 한나라당 경선 및 대선 기간에 매주 몇 차례씩 모여 국방정책을 토론하고 그것을 보고서로 만들었다. 보고서는 이명박 후보 측에 전달됐다. 포럼 대표가 직접 대면보고하거나 이상득 국회부의장 등 핵심측근을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세 포럼 중 가장 먼저 결성된 것은 서초국방포럼이다. 이름 앞에 ‘서초’를 붙인 것은 포럼 결성을 주도한 정용범 전 준장의 집이 서초동인데다 포럼 사무실도 서초동에 있었기 때문. 서초포럼은 창립 초기부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연대했다. 서초포럼이 창립된 2006년 9월13일은 이 후보가 서울시장 임기를 마친 지 3개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서초포럼 위원장은 김인종(육사 24기) 전 육군 대장이다. 육군 2군사령관을 역임한 김 위원장은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정책보좌관을 지낸 정책통이다. 김 위원장과 이명박 후보 간에 사적인 인연은 없다고 한다.
포럼 관계자에 따르면 이 후보가 직접 김 위원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곧바로 지원에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 후보는 군에 대해 잘 몰랐으나 서초포럼 등이 자문에 참여하면서 빠른 속도로 국방 문제 전반을 파악해 지금은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갖고 있다는 게 포럼 관계자의 설명이다. 창립 초기 회원 수는 7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급격히 세를 불려 대선 때는 예비역 장성 113명, 예비역 대령 60명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서초포럼이 내놓은 보고서는 100여 건에 달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경선 때는 TV토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와 함께 예상질문을 만들고 답변을 연습하기도 했다. 포럼 관계자는 “경선 때는 우리 보고서가 상당한 구실을 했는데, 본선에서는 정책 토론이 이뤄지지 않아 준비한 것을 다 써먹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한나라당 안보자문위원장으로 활약한 김인종 전 대장은 이 후보에게 여러 차례 대면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포럼이 제시한 정책은 크게 대북관계 재설정, 한미동맹 관계 복원, 강군 육성, 병영환경 개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북정책의 경우 북핵 문제 해결과 포용정책을 연계했다. 또 ‘희생 장병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내세워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우선과제로 삼았다.
상황실 차리고 조직력 가동
한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재검토다. 전작권을 전환하더라도 그 시기는 재조정돼야 한다는 것. 서초포럼 관계자에 따르면 이명박 당선자도 이에 대해선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초포럼은 또 한미 간 우호를 강화하되 균형 잡힌 동맹관계를 지향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아울러 통일 후에도 주변 열강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한미연합체제를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강군 육성과 관련해서는 미래형 최첨단 전력구조를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형 무기 도입보다 R·D(연구개발)가 더 중요하다는 게 기본 시각이다. 첨단무기체계와 전략무기를 운용할 정예 장병 육성도 주요 목표다. 신세대 장병들이 병영 생활에 보람을 느끼도록 영어나 IT 관련 학습 프로그램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있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우리가 개발한 정책이 이명박 후보의 국방정책에 상당히 많이 반영됐다”고 귀띔했다.
서초포럼은 정책개발에 그치지 않고 조직활동도 했다. 173명의 회원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고 친지와 지인을 통해 득표활동을 벌였다. 지역별로 안보상황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이명박 후보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마지막 일주일을 남기고는 염창동에 상황실을 차리고 조직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서초포럼 회원 중 중장 이상의 고위계급 출신은 18명이다. 그중 김인종 위원장을 비롯해 대장 출신이 6명이다. 박세환 전 육군 2군사령관, 김진호 전 합참의장,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상 육군), 김영관 전 해군 참모총장은 고문을 맡았다. 이희원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중장 출신 고문으로는 박현진 전 합참 정보본부장, 강덕동 전 해군 작전사령관, 김무웅 전 해군 참모차장, 최기덕 전 해병대사령관이 있다.
나머지 중장 출신 예비역 장성 8명은 한 명 빼고는 다 육군 출신이다. 군단장 출신이 많다. 3군단장을 지낸 박봉식, 11군단장을 역임한 노연웅, 2군단장 출신의 박노숙, 8군단장으로 재임했던 방판칠 전 중장이 그들이다. 그밖에 국방부 정책실장을 역임한 차영구, 수방사령관을 지낸 김창호, 전 국방대 총장 이상태씨가 있다. 유일한 비(非)육군 출신은 천기광 전 공군 작전사령관이다.
실무진 중 대표 인사로는 육군 정책처장을 지낸 정용범 전 준장을 비롯해 신모 전 육군 준장, 변모 전 해군 소장,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을 지낸 배모 전 해병대 소장, 홍모 전 공군 준장을 꼽을 수 있다.
서초포럼은 대선이 끝난 직후 공식 활동을 접었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해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초포럼의 영향력은 살아 있다. 포럼의 핵심 회원인 정용범 전 준장이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으로 새 정부의 국방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를 맡았던 김인종 전 2군사령관이 국방부 장관 후보군에 포함된 점도 서초포럼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다.
매일같이 분임토의, 주 1회 총회
용산포럼은 세 포럼 중에서 회원이 가장 많다. 예비역 장성을 주축으로 예비역 대령, 교수 등 모두 22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군인 출신은 153명으로 예비역 장성이 103명, 예비역 대령이 50명이다.
용산포럼이 창립된 것은 지난해 3월15일이다. 예비역 장성 30명이 창립 회원이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이 자리 잡은 용산은 한국 안보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지금은 계룡대에 있는 육군본부도 오랫동안 용산에 터 잡고 있었다. 용산포럼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용산이 한국의 ‘안보 메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나라꼴이 엉망이었다. 예비역 장성들이 친목모임만 가져서는 좌파정권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선 건 오로지 ‘나라 구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이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국방정책인 ‘국방개혁 2020’. 매일같이 분임토의를 했고, 주 1회 총회를 열었다. 사무실 운영비와 연구비, 식비 등은 회비로 충당했다. 도서관에서 각종 자료와 씨름하는 한편 현역 후배들을 만나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등 발품을 팔았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회원 중에 국방개혁위원회와 육군개혁위원회에 몸담았던 사람도 있고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했던 사람도 있어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용산포럼은 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을까. 한나라당 경선 당시 국방 관련 자문단은 박근혜 캠프가 더 화려했다.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고위직 출신의 예비역 장성 상당수가 박 후보를 지지했다. “개인적으로는 친(親)박근혜 성향”이라는 포럼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방을 잘 모르는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문제라고 생각했다. 군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사실상 영부인 노릇까지 한 박근혜 후보는 군을 잘 아는 편이다. 반면 이 후보는 평생 장사만 한 사람이다. 경선 당시 여론조사로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박 후보보다 높았다. 그런데 이 후보 주변엔 상대적으로 국방 전문가가 적었다. 따라서 이 후보를 돕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경선 열기가 뜨겁던 7월 중순, 용산포럼은 이명박 후보에게 ‘국방정책 연구’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작전, 인사, 군수, 한미동맹 등 몇 달 동안 팀별 토의와 전체 토의를 거쳐 정리한 정책자료를 A4 용지 80쪽 분량의 책으로 묶었는데, 이 후보에게 전달된 것은 12쪽 분량의 요약본이었다. 모임 결성을 주도한 한광문 예비역 소장이 이 후보에게 대면보고했다.
“나중에 보고서 놓고 함께 토론하자”
당시 보고를 받은 이 후보는 “나중에 이 보고서 내용에 대해 함께 토론하자”며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포럼 관계자는 “이 후보가 받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고 전했다. 용산포럼 측은 자신들의 보고서가 TV토론에 활용됐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BBK 의혹 공방으로 정책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한다. 최근 인수위에서 이 보고서를 참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도일규(육사 20기) 전 육군참모총장이 용산포럼 대표로 취임한 것은 8월2일. 도 전 총장은 애초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후 합류할 생각이었다. 예비역 장성들이 박근혜파, 이명박파로 갈려 맞서는 것에 부담을 느낀 탓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캠프에서 ‘급하다’며 영입을 서두르는 바람에 경선 전에 가세했다. 도 전 총장이 대표가 된 후 용산포럼의 세력은 더욱 커졌다.
용산포럼 회원들은 대선 막바지엔 귀향해 지인들을 상대로 직접 득표활동을 벌였다. 또 회원마다 50명씩 연고자를 추천했다. 그들은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용산포럼의 정책은 분야별로 다양하다. 먼저 ‘국방개혁 2020’에 대해선 “정권이 정략적 차원에서 졸속으로 추진했다”고 혹평한다.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짜깁기 개혁안”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전제’란 안보상황에 대한 오판을 뜻한다. 즉 북핵 위협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한 상태에서 제시한 개혁안이므로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무기체계의 과학화나 기술군에 대한 기본 설계를 치밀하게 한 다음 병력이나 부대 감축을 추진해야 하는데, 순서가 틀렸다는 것. 또한 개혁을 해서 지금의 전투력보다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데, 예산 확보도 안 된 상태에서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어 결과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아울러 군 안팎에서 비판 여론이 높은 방위사업청을 폐지할 것을 주장한다. 군납이나 무기도입 비리는 개인 잘못이지 시스템 잘못이 아니라는 게 용산포럼의 견해다. 오히려 기획과 예산, 심의, 구매 등 모든 권한이 집중된 방위사업청에서 과거보다 더 큰 비리가 싹틀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병역특례자 줄이자”
국방경영 효율화도 주요 정책이다. 한 마디로 국방에도 경영마인드를 도입하자는 것. 군은 작전과 훈련에만 전념하고, 군수·정비·보급 등 전투지원 업무는 과감하게 아웃소싱하자는 주장이다. 군내 식당, PX, 복지관도 그 대상이다. 또한 기술군과 과학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군내 인력양성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보다 대학과 같은 외부의 우수한 기술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편다.
의료 부문 개선도 있다. 장비가 아니라 인력이 관건이라는 게 용산포럼의 진단이다. 열악한 군 의료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대학병원과 같은 민간 병원과의 인적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군 통합병원의 민간 위탁경영도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오랫동안 민원의 대상이 돼온 군사시설보호구역에 관한 내용도 있다. 군에 꼭 필요한 땅 외에는 과감하게 해제해 민간에 돌려주자는 주장이다. 보호구역 해제로 부대의 보안성이 떨어질 경우 울타리를 치자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한다.
아울러 군 복무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대선 한 번 치를 때마다 복무기간이 줄고 있어 군의 전투력 유지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 또한 병역특례자가 너무 많아 국민개병제가 퇴색됐다고 우려한다. 병역특례 범위를 좁히고 대상자를 엄선해 특례자 수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게 용산포럼의 제안이다.
용산포럼의 대표적인 회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위계급 출신 중에는 육군 참모차장과 병무청장을 역임한 강신육 전 중장을 꼽을 수 있다. 서초포럼 대표인 김인종 전 대장과 육사 동기지만, 용산포럼 대표인 도일규 전 육군 참모총장과의 근무 인연으로 합류했다. 육군 교육사령관을 지낸 김승광 전 중장도 회원이다. 김 전 중장은 전역 후 국방개혁위원회 부위원장과 군인공제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유우식 전 육군 군수사령관도 회원이다.
소장 출신을 대표하는 회원은 한광문 예비역 육군 소장이다.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직접 보고서를 전달하는 등 용산포럼을 실질적으로 이끈 한 전 소장은 육군 전투지휘훈련단장과 국방품질관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육군협회(협회장 백선엽 전 육군 참모총장) 지상군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장영수 전 공군 군수사령관, 손창선 전 해병대 2사단장, 천연우 전 합참 작전부장(육군)도 예비역 소장이다.
예비역 준장 중 육군 출신으로는 박재욱 전 국방부 대변인, 이수동 전 육사 교수부장, 최경식 전 육군 정보학교장, 김창해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이 꼽힌다. 정상태 전 탄약사령관과 김명철 전 군수지원사령관, 김덕수 전 특전사 공수여단장 등 3사 출신 장군도 눈에 띈다. 최한구 전 준장은 해군 경리감을 지냈다.
용산포럼은 법인화할 전망이다. 포럼 관계자는 “열심히 하다 보니 의외의 성과물이 많이 나왔다”고 자평하며 “포럼에 참여한 우수한 인적자원을 국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법인체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향 방문 득표활동
마포안보포럼은 사무실이 있는 마포구 용강동의 대농건물 이름을 따서 마포대농안보포럼이라고도 한다. 지난해 7월5일 발족했다. 회원 수로는 세 포럼 중 규모가 가장 작다. 정회원 33명에 지원인원 17명을 합해 모두 50명이다. 정회원 중 예비역 장성은 22명이고, 교수 등 박사학위 소지자인 민간인이 9명이다. 나머지 2명은 예비역 대령이다. “주로 학구파 예비역 장성이 많다”는 포럼 관계자의 소개대로 마포포럼 회원들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포포럼 위원장은 박승부(육사 23기) 예비역 소장이다. 마포포럼이 다른 포럼과 비교해 유난히 한미관계에 대한 정책을 많이 연구한 것은 박 위원장의 개인 이력과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장은 한미연합사 작전차장, 기획차장 등 연합사에서만 10여 년을 근무했다. 전역한 후에는 한미연합훈련 한국 측 선임관찰관으로 활동했다.
“좌파정부에서 한미동맹, 국민안보의식 등이 기존 안보관과 반대방향으로 흘러갔다. 30년 군 복무자로서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책임을 느꼈다.”
경선을 한 달 여 앞두고 결성된 마포포럼은 한나라당의 안보 싱크탱크를 자처했다. 안보의제 30개를 선정해 매주 2~3개씩 토론했다. 토론 내용은 e메일을 통해 회원들에게 발송됐다. 마포포럼은 토론 내용을 정리한 정책보고서를 이명박 후보에게 전달했다. 이상득 의원을 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몇 년 전 서울시장실에서 이명박 당선자를 만난 적이 있다. 예비역 장성 20여 명과 안보모임을 결성하고 정기적 토론을 하던 때였다. 서울시에서 우리 모임 회원들을 초청해 청계천복원사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이명박 시장이 직접 설명했는데, 그 전문성과 치밀한 분석에 큰 감명을 받았다. 자신감이 넘치고 추진력이 대단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분이 국가지도자가 되면 확실하게 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경선이 끝난 뒤에는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예비역 장성들과 화합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한 김재창 전 대장과 육군 1사단장을 지낸 조남진 전 소장 등을 영입한 것이다. 김 전 대장은 정회원이 아니라 지원인원 명단에 올라 있다.
대선 막바지에는 다른 포럼들과 마찬가지로 득표활동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요 회원 12명은 군부대, 대학, 교회, 지자체 등을 돌며 안보 특별강연을 실시했다. 예비역 장성으로는 박승부 위원장을 비롯해 5명이 나섰고, 민간인 회원 중에는 김태우 박사 등 7명이 동참했다.
또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눠 해당 지역 출신 회원들이 득표활동을 책임지도록 했다. 회원들은 각자의 고향에 내려가 교우나 친지, 단체장 등을 방문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선거 막판 며칠 동안은 지인들에게 전화와 e메일 공세를 폈다.
한미동맹 원상복구가 목표
마포포럼의 국방정책 중 대표적인 것은 한미동맹관계 회복과 힘을 바탕으로 한 남북관계 재정립이다. 한미동맹 약화로 안보의 주춧돌이 무너졌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한미동맹의 핵은 군사동맹이고, 군사동맹의 핵은 한미연합사다. 또 연합사의 핵은 전시작전통제권이다. 그런데 좌파정부에서 이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마포포럼은 1월6일 인수위에 ‘국방안보정책’이라는 보고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아’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는 마포포럼이 개발한 주요 정책이 담겨 있다. 요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新)한미안보동맹 선언이다. 한미동맹 복원 및 강화,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가 골자다. 원상복구가 목표지만, 양국 정부의 합의로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적어도 북핵 포기가 실현되고 남북의 군사적 신뢰가 구축될 때까지는 연기하자는 주장이다. 아울러 2012년 4월 이후 한미연합사를 대체할 한미군사협조기구를 연합사 기능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격상할 것을 주문한다.
마포포럼은 또 1994년 12월1일 한국군에 환수된 평시작전통제권에 대해 한국군의 탐지 및 타격 능력이 제한돼 있다며 ‘내용 없는 껍질’이라고 지적한다. 전쟁계획 작성, 위기 조치, 전쟁 연습 등 핵심 권한을 모두 연합사에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전력 향상을 위해서는 연합사로부터 작전통제권의 핵심 권한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게 마포포럼의 주장이다.
마포포럼은 강한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군 스스로 유·무형의 전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한미연합작전체제는 형식적으로는 한미 양국이 대등하지만 실제로는 한국군의 능력이 크게 제한돼 있어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마포포럼의 판단이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에 위기다. 하지만 새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를 발판으로 한국군의 자주역량을 향상시키면 위기가 호기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게 마포포럼의 전망이다.
둘째, ‘국방개혁 2020’ 재검토 요구다. 한미연합사 존치와 유사시 미군 증원세력 전개, 작계 5027 유지 등 기존 한미연합방위체제를 전제로 만든 개혁안이기에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화, 현대화가 선행된 다음 병력감축이 이뤄져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됐다는 비판은 용산포럼과 같다.
셋째,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이다. 북미 수교가 이뤄질 경우 북한이 중국보다 미국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분석에 근거한 것이다. 중국의 김정일 체제 붕괴 유도나 북한 내부 사정으로 북한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에 대비해 치밀한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넷째, 부국강병을 위한 틀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가 계획한 대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통령은 안보 문제를 논하는 자리에 국방 전문 학자와 군 출신을 균형 있게 배치해야 한다.
마포포럼은 또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연합사 훈련에 참석해 전쟁지휘 기법을 익힐 것을 제안한다. 일종의 전쟁연습(War Game)으로 을지포커스렌즈훈련(한미합동지휘소 연습)은 그간 연합사가 주관해왔다. 그에 따라 한국군 합참이나 각군 본부는 전쟁지휘 기법이나 위기관리 훈련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었다.
“대통령이 연합사 훈련에 참가해야”
하지만 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 결정에 따라 올해부터 연합사 부사령관인 한국군 대장이 훈련을 주관하게 됐다. 말하자면 ‘홀로서기’ 연습인 셈이다. 따라서 연합사가 남아 있는 4년 동안 합참은 물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훈련에 참가해 전쟁지휘 기법을 익히고 위기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포포럼 회원 중 육군 출신 장성은 13명이다. 중장 출신으로는 이호승 전 국방대학원장, 김필수 전 기무사령관, 오현구 전 1군단장이 있다. 포럼 대표인 박승부 위원장을 비롯해 이수희 전 육군대학총장, 조남진 전 1사단장, 김동식 전 11사단장, 신현배 전 육군 종합행정학교장은 예비역 소장이다. 그밖에 주미 군수 무관을 역임한 이정수, 중국 남부지역 총영사를 지낸 신현수, 국방부 장관 보좌관 출신의 이부직, 기무부대장으로 재직한 최재림, 72사단장을 지낸 노남섭씨는 예비역 준장이다.
해군(해병대 포함) 출신 회원 6명은 모두 예비역 준장이다. 김기태, 김정석, 김일영씨는 해군 출신이다. 해병대 출신으로는 해병대 부사령관을 역임한 안희경, 한미연합사 연습처장을 지낸 강신길, 박정수씨가 있다.
공군 출신 회원 3명도 다 준장 출신이다. 구정회 전 한미연합사 계획처장, 최영찬 전 기무부대장, 장진수 전 군수참모차장이 그들이다.
마포포럼 민간인 회원 중 김우상 연세대 정외과 교수와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팀장은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듯 마포포럼 측은 새 정부에서 뭔가 역할을 맡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포럼 핵심 관계자는 “좋은 자질을 가진 후배 회원들이 새 정부에서 적절한 일을 맡기를 바란다. 한나라당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가 좀 더 기여할 길이 있을 것”이라며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방특위와 주도권 다툼
예비역 장성들이 포럼을 만들어 대선에 참여한 것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전문적인 식견과 풍부한 현장경험이 녹아 있는 정책 개발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정책 수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세 국방포럼이 대선 과정에서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 제각각 활동한 데 대해 곱지 않은 눈길도 있는 게 사실이다. 대선 후의 논공행상을 의식해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모 포럼 관계자는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데는 자리 욕심도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게 더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세 포럼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 이종구(현 성우회장) 전 국방부 장관이 한나라당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장을 맡으면서다. 이 전 장관은 세 포럼을 통합해 업무 분담을 하려 했으나 포럼들은 그다지 호응하지 않았다.
그나마 용산포럼과 마포포럼은 국방특위 활동에 참여했지만, 서초포럼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미 1년 전부터 이명박 후보에게 정책 자문을 해온 서초포럼으로선 그 시점에 굳이 국방특위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서초포럼은 독자 활동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서초포럼 김인종 위원장은 안보자문위원장을 맡아 국방특위와 별개로 활동했다.
용산포럼은 국방특위 산하 위기관리특위에서 활동했다. 마포포럼은 한미군사발전기획단을 이끌었다. 마포포럼 관계자의 표현대로라면 국방특위와의 관계는 “독립적 협조관계”였다. 두 포럼은 국방특위에 협조하면서도 독자적인 득표활동에 주력했다. 이에 대해 이종구 성우회장은 “세 포럼은 대선 기간에 자발적으로 생겨난 조직들”이라며 “안보정책을 두고 서로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국방특위를 만들어 조정하려 했다. 그 일에 관해선 더 얘기할 게 없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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