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계 열전
인기와 성공 안겨주는 유머의 법칙
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유머는 디지털 신호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웃음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린다. 내가 기계가 아니고, 정보가 아니고,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을 웃음을 통해 확인한다. 유머는 인간의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미묘하다.
웃음은 타인과 교감하는 신호이고 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내뿜는 생명감이다. 하루하루 각박한 일상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유머는 일종의 보약이다. 유머는 인체에 꼭 필요한 비타민처럼 생활의 활력소다.
유머가 곧 실력이다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스타’들 중 개그맨 출신이 많다. 대학교수나 정치인 중에서도 유머가 있는 사람이 권위적인 사람보다 인기가 있다. 실력 있다고 평가된다. 남녀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이성에게 더 호감을 갖는 법이다. 처음에야 서로의 외모에 끌리거나, 조건을 보고 반하거나, 순간적으로 혹하겠지만, 재미있는 사람과는 애정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 쉽다.
유머가 없는 세상은 사막과도 같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유머에는 상중하의 층위가 있다. 지나치게 감정만을 자극하여 폭소를 자아내는 것은 저급하다고 볼 수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면 정서가 불안해진다. 지나친 즐거움은 폭풍 같아서 지나간 다음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웃음도 적당한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지나친 웃음을 금기시했다. 웃음에도 건강하고 밝고 아름다운 웃음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웃음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사기열전에는 사마천이 편찬한 세 명의 골계열전과 후대의 인물인 저소손이 덧붙인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지와 재치, 웃음을 통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 절대왕정 시대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왕이 자신의 실정(失政)을 반성하게 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의 문장은 쉽고 아름다워 듣는 이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는다. 대나무처럼 올바른 지적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면 지적하는 사람의 의도가 바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반발만 사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상대에 따라 처신을 달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잘사는 길이기도 하다.
왕에게 낸 수수께끼
중국의 춘추전국, 진나라, 한나라 시대엔 데릴사위의 지위가 매우 낮았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공개적으로 무시를 당할 정도였고, 죄수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마천은 제나라 사람인 순우곤이 데릴사위 출신이라고 밝힌 뒤, 골계열전의 문을 연다. 순우곤은 비록 출신은 비천했지만, 신분의 결점을 잘 극복하고 산 귀인이었고 재상까지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왕 바로 옆에서 의견을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지위에 올랐다. 그가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유머 넘치는 충언 덕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
순우곤이 이 수수께끼를 감히 제나라 위왕에게 낸 것은, 위왕이 국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나라가 엉망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데도 대신들이 직언을 하지 못하고 왕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순우곤은 왕이 평소에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때를 기다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수수께끼’로 만드는 기지를 발휘한다.
왕은 수수께끼를 푸는 심경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 자가 네가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하게 생활을 해서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재미있다. 그래, 나는 대붕이다. 그렇다면 멋진 답을 주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대답한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요즘 정치인과는 달리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고대 중국의 왕은 과연 그 다음부터 다른 행동을 했다. 순우곤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는 위왕은 자신이 국정을 소홀히 했을 때 각 지방의 책임자를 다 불러 모아 심사한 뒤 한 사람은 사형시키고, 모범적인 관리에게는 상을 주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왕이 쉬는 동안 할 일을 한 사람과 그때를 노려 횡포를 부린 자를 처단하여 자신이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순우곤이 기지를 발휘하여 수수께끼를 내지 않고, “왕이시여, 당신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국정은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라고 직언했다면 왕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쾌락에 빠져 있던 왕의 눈에 그는 무례한 인물로 비쳐 엄벌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우곤의 기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순우곤은 수수께끼라는 장치를 통해 왕의 심경을 움직였다. 그리고 병사를 움직여 그동안 제나라의 땅을 빼앗았던 주변국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국토는 다시 회복되었고, 이후 36년간 제나라는 번성했다.
순우곤은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바라는 마음’을 경계하는 일화도 남기고 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 중에서 ‘복권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복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것은 철저하게 운에 따르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될 수 없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간혹,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어 인생이 뒤바뀌었다는 풍문이 마음을 설레게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복권의식’은 은연중에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일으키게 한다. 예를 들어 100원을 주고 1000원의 물건을 사려고 한다면 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복권의식은 있었다.
제나라에 초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위왕은 순우곤의 기지를 믿고 황금 100근과 사두마차 10대를 예물로 조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때도 역시 순우곤은 위왕의 성정을 알아서 “너무 적은 것으로 큰 것을 바라면 낭패를 본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늘을 보고 크게 한번 웃었다. 왕명을 받고 갓 끝이 떨어질 정도로 웃어대는 순우곤을 보고 왕은 눈치를 채고, 이것이 적다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순우곤이 대답했다.
“어찌 그렇다 하겠습니까”
“어찌 감히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힌 대답이다. ‘예’라고 하지 않는다. 왕이 답답하여 웃는 이유를 재촉하자 그때 저잣거리에서 돼지 발 하나와 술 한잔을 손에 들고 풍작을 비는 사람들의 노래를 불렀다.
“높은 밭에서는 광주리에 넘치고
낮은 밭에서는 수레에 가득 차게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우리 집에 넘쳐나게 해주십시오.”
순우곤은 “저잣거리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그처럼 작으면서 원하는 것은 그처럼 큰 것을 보고 그 생각이 나서 웃은 것이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황금 1000일(鎰), 백옥 10쌍, 사두마차 100대로 예물을 늘렸다. 순우곤은 그 예물을 조나라 왕에게 전한 뒤 정예 병사 10만명과 전차 1000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구원병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초나라는 한밤중에 도망가듯이 군사를 물리고야 말았다.
위왕은 순우곤을 나라의 ‘선생’으로 극진하게 대접했다. 초나라의 군사를 물리치고 연회에서 왕은 순우곤의 주량을 묻는다. 순우곤은 한잔을 먹고 취할 때도 있고, 많이 마셔도 안 취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술을 좋아하는 왕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순우곤에게 비법을 배워서 밤새워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왕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순우곤은 때에 따라, 즉 왕과 문무백관이 있는 조정에서 한잔을 마셔도 취하지만, 여인들과 즐거운 자리에서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데,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란 지나치면 안 되며, 지나치면 반드시 쇠합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아 이후로는 술을 밤새워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왕실에서 주연이 열릴 때마다 순우곤을 곁에 두었다.
비유적으로 충고하라
순우곤 다음으로 초나라의 음악가인 우맹이 등장한다. 어느 날 장왕의 애마가 늙어 죽자, 말을 매우 사랑했던 왕은 신하들에게 말의 장례식을 대부의 예로서 지내라고 명령하였다. 당연히 올곧은 선비들은 지나친 처사라고 앞 다투어 직언했지만 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않고 오히려 더 이상 말의 장례의식에 대해 떠드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소식을 듣고 우맹이 궁궐로 들어가 곡을 했다. 왕이 놀라서 까닭을 물으니 왕께서 아끼시는 애마의 장례는 국왕의 예로서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솔깃한 왕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우맹은 이런 풍자시를 쓴다.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무늬 있는 가래나무로 바깥 널을 만들고, 느릅나무 단풍나무 녹나무로 횡대를 만들고, 병사를 동원하여 무덤을 파고, 노약자들에게 흙을 져 나르게 하고, 제나라와 조나라 사신을 앞쪽에 열을 지어 서게 하고, 한나라 위나라 사신을 그 뒤에서 호위하게 하고, 또한 사당을 세워 태뢰(太牢)로 제사지내고, 만 호의 읍으로써 받들게 해야 합니다. 제후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모두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왕은 정신을 차리고 애마의 말고기를 사람이 먹게 했다. 그것이 짐승에 마땅한 처사임을 깨달은 것이다. 왕은 말의 제사를 대부의 예로서 지내는 것에 의견을 내면 사형을 시키겠다는 생각은 싹 잊어버렸다. 자신의 잘못을 알았기 때문이다. 음악가라고 소개된 우맹은 관료가 아니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 이 풍자가 왕과 나라의 체면을 세워준다.
세상을 사는 일에 부모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 사회구성원의 통제를 위하여 시대별로 형벌이 있어 ‘법대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매사에 이렇게 근엄하고, 원칙만 따진다면 사는 일이 한여름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버린다. 유머 풍자 기지 해학은 우리의 일상을 부드럽게 하고, 성내면서 싸우는 토론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부드럽게 전하고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하는 고수의 화법이다.
“송곳 세울 땅조차 없고…”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의 기지는 죽어서도 이어진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가난하게 살 것을 알았다. 부잣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오지만, 부자가 죽으면 상가가 썰렁한 법이다. 그는 자신의 사후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 우맹을 찾아가라고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겼다.
과연 그대로 되었다. 손숙오의 아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우맹을 찾아간다. 우맹은 자초지종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곁에서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일년간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행동과 말투도 흉내 내어, 왕이 우맹을 보고 손숙오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 손숙오를 그리워한 왕은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때 우맹은 아내와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다시 왕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가 재상을 하지 마십시오. 초나라의 재상은 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손숙오 같은 분은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청렴하게 초나라를 다스려 초나라 왕을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손숙오가 죽자 그의 아들은 송곳조차 세울 만한 땅도 없고 가난하여 땔나무를 져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손숙오처럼 될 바에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지어 불렀다. 노래를 다 듣고 난 왕은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이후 10대가 잘살 만큼의 재산을 내려주었다. 사마천은 이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진실로 말해야 할 시기를 알았다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맹은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왕에게 한마디를 하기 위해 궁리하고 행동했다. 즉 일년 동안 손숙오의 흉내를 내어 왕이 자신을 볼 때 손숙오 생각이 나게 만들었다. 사람은 죽고 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고 난 후에 얼마나 그를 기억할 것인가? 국정에 바쁜 왕의 경우에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맹은 일년을 기다려 왕에게 다가갔다. 이 절묘한 타임은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풍자에 뛰어난 우맹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즉 자신 아내의 입을 빌려 직언을 피하고 풍자를 하였으며, 더불어 시를 지어 불렀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을지 눈에 선하다.
사람을 울리는 일보다 웃기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골계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대 엘리트가 아니라, 마이너 출신들이었다. 순우곤은 데릴사위, 우맹은 가수, 또 이들보다 200년 뒤의 인물 우전은 난쟁이 가수였다. 우전은 진시황 때의 사람이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로 그 권위나 위엄이 역대 다른 왕보다 무겁고 무서웠다. 천하의 진시황도 우전의 재치 앞에서는 웃으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달았고, 그의 뜻을 들어주었다.
난쟁이 가수 우전은 진시황의 연회에 초대된 자리에서 호위병들이 비를 맞으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기지를 발휘했다. 연회에서 진시황의 장수를 빌면서 만세를 부를 때 난간으로 나아가 호위병들을 불러 “나는 키가 작지만 연회장에서 편히 쉬고 있고, 너희들은 나보다도 키가 큰데 가련하게 빗속에 서 있으니 키가 큰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을 들은 진시황은 웃으면서 호위병들을 반으로 나누어 교대로 쉬게 했다.
일단 상대를 긍정하라
같은 뜻을 지닌 말이라도 재치와 풍자를 섞어 이야기하면 듣는 이가 즐겁고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뛰어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골계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이 당대 마이너로서 혼자 공부를 했을 것이다. 문학과 경전을 통해 자신만의 화법을 개발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렀던 것이다.
풍자나 해학은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사람을 웃기려다가 ‘냉장고’ 취급을 받기 쉽다. 썰렁하다. 춥다 등의 표현으로 덜 익은 유머에 대한 지탄을 받는 것이다. 그저 웃자고 하는 이야기면 조금 창피하면 될 일이지만, 국사를 논하는 자리나 진시황과 같은 절대권력자 앞에서는 머릿속에 문장이 빙빙 돌아도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은 정확한 때를 알고, 또한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우전은 진시황이 궁전 정원을 크게 넓히려 하자 이렇게 풍자했다.
“좋은 일입니다. 그 속에 새와 짐승을 많이 풀어놓아 길러 적이 동쪽에서 쳐들어오면 고라니나 사슴을 시켜
그들을 막게 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골계열전의 유머 기법이 있다. 일단은 상대방의 말을 긍정한다. 잘못을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한번 꺾고 넘어간다. 그리고 거울을 디밀듯,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한다. 우전은 일단 좋은 일이라고 하고, 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진시황은 평생 암살 위험에 시달렸고, 호시탐탐 적의 칼이 제국을 노리고 있었다. 정원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일의 선후를 생각하게 하는 우전의 말은 진시황의 자존심도 지켜주었다. 수사법인 비유법은 위대하다. 서양의 예수 역시 이 비유법으로 어리석은 제자들을 교육시켰다.
“황석영의 별명은 황구라”
우리 문단은 유머가 풍부한 곳이다. 문단에는 유머의 대가가 몇 명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선배인 황석영 선생을 우리는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감히 이렇게 부른다. ‘황구라!’ 우리나라에는 황구라와 더불어 ‘방구라’ ‘백구라’가 있다. 이 세 명은 그 이름만으로도 강력한 울림이 있는 우리 시대의 정신이기도 하다. 방구라는 방배추로 더 알려진 방동규 선생, 백구라는 백기완 선생이다. 이른바 조선의 3대 구라다. 구라는 비속어로 과장된 ‘거짓말’이라는 뜻이지만, 이분들은 긍정적인 의미로 단어를 바꾸어놓았다.
조선의 선비인 퇴계나 율곡 같은 울림이 있는 구라, 이 시대를 대변하는 또 다른 호인 구라. 어떤 이는 이분들을 조선의 3대 ‘라지오(라디오)’라고도 부른다. 라지오가 어느 지방의 방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라디오라고 하면 오기(誤記)다. 라지오라고 해야 의미 전달이 잘된다. 그럼 구라와 라지오는 무엇인가? 황석영 선생과 방동규 선생이 술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황: 저 형, 요즘에 우리들을 위협하는 신진 라지오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방: 그래. 야, 그런 일이 있어. 그게 누군데? 이름 한번 불어보라.
황: 유홍준이, 도올, 그리고 이어령 교수지요.
방: 야야, 갸들이 무슨 라지오야. 인생이 없는데. 갸들은 그냥 ‘교육방송’이야. 뭐 3대 교육방송으로 하면 되갔구먼.
황 선생이 언급한 존경받는 우리 시대의 3대 지성을 단박에 3대 교육방송으로 지정해버리는 방구라의 순발력, 과연 구라는 구라다 싶다. 이분들은 교육적인 분들이므로 뭐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이 구라를 곱씹어보면 라지오의 의미가 파악된다.
라지오에는 3대 조건이 있어야 한다. 뭐 좀 안다고, 입술을 나불거린다고 라지오가 되는 게 아니다. 콘텐츠가 꽉 찬 방송처럼, 일단은 남다른 인생이 있어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백·방·황 삼대 구라의 인생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가 지성이다. 뭘 알아야 된다.
세 번째가 남다른 경륜이다.
이들이 이 ‘구라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시대가 각별했다. 전쟁과 분단이 있고, 잔인한 슬픔이 있고, 가슴 찢어지는 이별과 회한이 사무쳐 있다. 방 선생이 설파한 인생이란 그런 인생이다.
우선 황구라를 보자. 황구라는 방북·망명·투옥 등으로 15년을 보냈다. 작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돈 벌고, 상 받고 하는 그런 세월 동안 그는 단 한 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냥 살아남았다.
“사람은 오늘을 사는 거야”
방북하기 전, 그는 이미 ‘장길산’과 ‘삼포 가는 길’과 같은 작품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황구라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황석영은 이제 갔다’는 말도 유령처럼 떠돌았다. 15년간을 그렇게 보냈으니 그런 악소문이 돌 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 황석영은 포스가 강한 문단의 어른이면서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다. 황구라의 저력을 잘 대변하는 구라가 있다.
“사람은 ××, 누구든 오늘을 사는 거야!”
어떤 이는 황구라 최고의 구라가 바로 이 문장이라고 했다. 그는 어제의 고통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어제의 슬픔으로 오늘 눈물 흘리지 않는다. 오로지 오늘을 산다. 그에게 어제를 이야기할 오늘은 없다. 오늘을 진정으로 살아낸 사람은 진정으로 아름다워라.
그럼 백구라는 어떤 구라인가? 백 선생의 구라는 장엄한 백두산과 같은 포부와 도도히 흐르는 한강 물줄기와 같은 깊이가 있다. 백 선생이 스물한 살 시절, 스무 살의 방 선생을 만났다. 이 상황은 ‘배추가 돌아왔다’ 39쪽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그 문장을 인용하는 대신에 내가 술자리에서 어떤 이에게 전해 들은 구라를 그대로 적어보자. 당시 방구라는 ‘짱’이었고, 주먹으로 자신의 ‘나와바리(영역)’를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백: 자네 주먹 좀 쓴다고 하던데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나?
방: 뭐 그저 한 삼십 명 정도는….
그때 백이 벌떡 일어나 방의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주먹 제일 방구라는 어이가 없었다. 피죽도 못 끓여 먹은 것 같은 파리한 지식인 청년 백기완은 그야말로 한주먹감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어떤 시추에이션인가 싶어 방구라가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자 백구라가 천천히 앉으면서 말했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삼천 명이나 삼만 명은 상대해야지 겨우 삼십 명이야. 에이,
너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마. 어서 썩 꺼져.”
백 선생 역시 방 선생의 그릇을 짐작하고 그런 언행을 했을 것이다. 동네 양아치에게 그렇게 했다가는 시쳇말로 뼈도 못 추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와 가섭의 염화미소, 선불교에서 임제선사가 스승인 황벽선사에 세 번이나 ‘싸대기’를 맞고서야 깨달은 ‘거시기’와 같은 구라였다. 백 선생이 황벽선사의 흉내를 낸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대장부끼리의 이러한 구라는 이제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되어버린 일들이다. 한 시절 당대의 민족방송, 민중의 라지오인 백기완 선생은 그 장대한 구라로 일세를 풍미했다.
“석영아 들어라. 저 드넓은 만주 벌판의 우리 여인네들이 한번 월경을 하면, 그 설원이 모두 장엄하게 핏빛으로 물들었도다.”
한마디로 백 선생의 구라는 민족적이고, 지금은 사라진 수컷들, 대장부의 기개가 넘치는 민중의 방송이었다. 우리 어린 것들은 백 선생의 그러한 구라 밑에서 다 꺼져가는 의협심의 불씨를 다시 지피곤 하였다.
“나는 아직도 배 고프다”
백 선생의 전설적인 구라는 히딩크라는 네덜란드의 라지오를 감복시켰다.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정신교육 강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조선 범의 기상을 선수들에게 불어 넣어주었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강인한 조선 범처럼 뛰어라. 그 강연 덕분이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우리 선수들은 조선 범의 기상으로 뛰고, 차고, 날았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히딩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했다. 히딩크 역시 만만치 않은 구라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와 같은 절묘한 구라로 우리 국민의 축구 한을 풀어주었으니, 히딩크를 조선 구라 반열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히딩크는 백기완 선생을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한국인으로 손꼽았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어느 해이던가, 연말 모임에서 황석영 선생이 이제 환갑을 맞아 우리에게 마지막 구라를 터뜨린 적이 있다. 일본 여인의 신음소리와 요코하마 항구의 뱃고동소리가 울려 퍼지는 남녀 운우지정의 카세트 테이프였다. 이제 그 음란 방송은 사모님의 간곡한 부탁, ‘이제 당신도 환갑인데 그런 건 좀…’으로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하나, 둘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구라가 있다.
말은 글이 아니다. 글은 말이 아니다. 글은 눈으로 읽어서 느낀다. 하지만 말은 귀와 온몸으로 스며들어 심장을 터뜨린다. 그래서 ‘근사한 구라’는 예술이다.
한편 구라는 독일의 히틀러를 만들어냈고, 미국의 링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요즘 뜨고 있는 오바마도 만들어낸다. ‘근사한’ 구라에는 감동과 몸 울림이 있다. 그 감동을 생방송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들은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기열전에는 사마천의 골계열전이 끝나고 서한 시대의 저소손이 원고를 보충하였다. 저소손은 골계 인물에 대한 여섯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것을 읽어 보면 기분이 유쾌해지므로 후세 사람들에게 보일 만하다’라고 쓴다. 그 여섯 편 가운데 위나라의 서문표 이야기는 요즘 개그맨들이 보면 자신의 작품으로 각색해서 쓸 만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위나라의 업현이라는 마을에 ‘현령’으로 부임한 서문표는 그 마을 장로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의논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황하의 신인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막은 이러했다.
업현의 관리들이 백성에게서 거둔 세금 중 상당량을 하백에게 여자를 바친다는 명목으로 착복한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무당이 백성들 집에서 예쁜 여자를 하백의 아내로 지정하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처럼 신부 화장을 시키고, 물가에 제궁을 지어 그곳에 열흘 정도 기거하게 하면서 고깃국과 밥을 준다. 그리고 날짜가 되면 여자를 신부랍시고, 뗏목에 방석을 깔고 강가로 띄워 보낸다. 처녀는 결국 물에 수장되고 만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딸을 가진 집에서는 무당이 자신의 딸을 하백에게 시집보낼 것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성안 백성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세금 때문에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악습이 계속되는 이유는 ‘하백에게 아내를 얻어주지 않으면, 백성들을 익사시킬 것이다’라는 민간의 속언 때문이었다. 장마철 하천 범람에 따른 수해에 대한 두려움이 나은 속언이었다.
미신을 역이용한 기지
수리시설 부족으로 자주 장마가 지니 백성들의 두려운 마음을 이용한 악랄한 행위였다. 서문표는 그 말을 듣고는 마을 장로들에게 그러한 행사가 있을 때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그날이 되어 서문표가 물가로 나갔다. 그곳에는 삼로, 관속, 호족, 마을의 부로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며, 구경나온 백성도 3000명은 되었다. 무당은 일흔 살이 넘은 노파로 여제자 10여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들 비단으로 된 홀옷을 걸치고 무당 뒤에 서 있었다.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시오. 내 그녀가 아름다운지 추한지 보겠소.”
장막 안에서 처녀를 데리고 나와 서문표 앞으로 왔다. 서문표는 그녀를 본 뒤 삼로, 무당을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 않소. 수고스럽겠지만 무당 할멈은 황하로 들어가서 하백에게 ‘아름다운 처녀를 다시 구해 다음에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주시오.” 그리고 바로 이졸들을 시켜 무당 할멈을 황하 속으로 던졌다.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 할멈이 왜 이렇게 꾸물거릴까? 제자들은 가서 서둘라 하라”며 제자 한 명을 황하 가운데로 던져버리게 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제자가 왜 이토록 꾸물거릴까? 다시 한 사람을 보내 재촉하게 하라”며 또다시 제자 한 명을 황하 속으로 던졌다. 모두 세 명을 던지고 서문표가 말했다. “무당과 제자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사정을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것이오. 수고스럽지만 삼로가 들어가서 말씀드려 주시오.”
다시 삼로를 황하 물속으로 던졌다. 서문표는 붓을 관에 꽂고 몸을 경처럼 굽혀 물을 향해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장로와 아전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했다. 서문표가 돌아보며 말했다. “무당과 삼로가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다시 아전과 호족 한 사람씩을 물로 들어가 재촉하게 하려 하니, 모두들 머리를 조아려 이마가 깨져 피가 땅 위로 흐르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서문표가 말했다. “좋다. 잠시 머물러라. 잠깐만 더 기다려보자.” 조금 있다가 서문표가 다시 말했다. “아전들은 일어서라. 하백이 손님들을 오래 머물게 하는 것 같다. 너희들은 모두 돌아가라.” 업현의 관리나 백성은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다. 이후로는 감히 다시는 하백을 위하여 아내를 얻어주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웃음은 가면이다
그는 사람들이 신으로 믿었던 ‘하백의 강’인 황하를 사람의 강으로 만들었다. 이후 백성들을 동원하여 12개의 하천 공사를 벌여 황하의 물을 백성의 논에 이어주었다. 노역이 번거롭고 힘들었지만, 서문표는 100년 뒤에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공사를 추진했다. 살아있는 처녀의 목숨을 바치면서, 그 일로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당하면서, 풍년을 기원하던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천을 파 수리시설을 정비해서 ‘신’인 하백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역사는 이렇게 뛰어난 한 사람에 의해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
이전에 서문표는 사람들이 믿고 있던 하백의 존재를 부정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구시대 인물들을 제거한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에 의해 사라진 무당이나 마을의 원로들은 희생양이었다. 법으로 강제집행했다면 거센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살벌한 골계는 웃음을 머금고 있다. 엉겁결에 강으로 던져지는 무당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우스운 일이다. 그 웃음 속에는 무서운 칼이 숨어 있다. 진정한 고수는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결과를 도출한다.
인간의 웃음은 일종의 가면일 수도 있다. 그 웃음 뒤에 슬픔이, 고통이, 죽음이, 번뇌가 숨어 있다. 우리의 하회탈은 그런 웃음의 조각이다. 골계열전은 우리에게 웃음의 탈을 선물하고 있다.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비주류 인생_08 (0) | 2009.10.25 |
---|---|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 열전_01 (0) | 2009.10.23 |
조선의 비주류 인생_07 (0) | 2009.10.19 |
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0) | 2009.10.15 |
심재우의 조선시대_죄와 벌의 사회사 (0) | 2009.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