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경보’를 발령합니다. 매복해 있던 봄의 척후병들이 지난주부터 제주에서 막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당도할 본진 병력의 진주에 앞서 정찰을 위해 제주 땅에 상륙한 것이지요. 시작은 서귀포시 한림읍의 한림공원이었습니다. 수선화 동산 양지바른 쪽 매화나무 가지에 백매화 한 송이가 톡 하고 꽃망울을 터뜨린 게 첫 신호였습니다. 뒤를 이은 것은 대정읍 구억리 노리매공원의 매화나무입니다. 가지치기한 나무등걸에 새로 돋은 가지마다 순백의 매화가 다닥다닥 매달렸습니다. 그뒤부터는 아주 걷잡을 수 없습니다. 서귀포의 칠십리시공원 매화동산의 꽃들이 온통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문섬과 섶섬이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의 홍매화 나무는 선혈처럼 붉은 꽃을 피우고는 벌써 꽃잎을 하나 둘 떨구고 있었습니다. 어디 매화뿐이겠습니까. 산방산이 바라다보이는 대정읍의 들에는 진즉부터 수선화가 꽃을 피워냈으며 발밑으로는 봄까치꽃, 광대나물, 별꽃 같은 야생화들이 앞다퉈 아우성 치며 꽃으로 터지고 있었습니다. 봄의 기운은 바다에도 당도해 있었습니다. 유채꽃 일렁이는 해안가 너머 갯바위에는 진초록의 해초들이 융단처럼 깔리기 시작했고, 봄내음에 취한 왜가리들이 갯바위를 딛고서 한껏 게으른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육지는 잇단 폭설과 날선 추위로 봄은 아직 언감생심이지만, 바다 건너 제주에는 입춘을 건너가면서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올리듯 봄의 기운이 번져가고 있는 것이지요. 봄꽃이 앞다퉈 피어나듯 이즈음 제주에는 마을미술사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의 권위 안에 갇혔던 미술이 담을 뛰어넘어 일상으로 넘어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제주에는 또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을 비롯해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화사한 봄꽃만으로는 제주까지 간 보람에 값하기 부족하다 싶으면 미술을 일상의 공간으로 가져온 서귀포 일대의 풍경 속을 거닐어본다면 어떻겠습니까.
# 백매화 한 송이가 봄의 기운을 알리다 올들어 첫 매화 소식은 제주 섬 서쪽 한림공원에서 시작됐다. 재암수석관 뒤쪽 수선화 정원의 매화나무 가지 끝에 톡 하고 백매화가 터졌다.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올해 첫 매화였다. 그게 벌써 열흘도 더 전의 일이라고 했다. 해마다 공원에서 가장 이른 꽃을 피워내 ‘설중매(雪中梅)’로 이름붙여진 홍매화가 미처 꽃몽우리를 맺기도 전이었다. 첫 꽃에 이어 ‘남고(南古)’라 이름붙은 백매화 나무가 순식간에 타다닥 꽃을 피워냈고, 홍매 ‘홍천조’가 뒤질세라 선혈처럼 진한 붉은 꽃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흘여 만에 가지가 척척 늘어진 70년 묵은 수양백매에까지 꽃이 옮겨 붙었다. 따스한 햇살이 며칠만 더 허락되면 흰 꽃과 붉은 꽃이 한 나무의 가지에서 피어 제주 매화의 명물로 꼽히는 ‘백홍매’에도 희고 붉은 꽃이 피어나리라. 한림공원의 매화 소식은 이제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의 노리매공원으로 건너갔다. ‘노리매’란 ‘놀이’란 우리말에다 매화의 ‘매(梅)’자를 더해 만든 이름. 공원 주인이 20년 넘게 정성으로 길러낸 매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흐드러진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0일 남짓이라, 남은 345일을 위해 동백나무를 비롯한 갖은 꽃나무를 더 많이 심어두긴 했지만 노리매공원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매화다. 이쯤에서 살짝 귀띔 한마디. 노리매공원을 찾아간다면 그림보기를 청해보자. 본관 건물 2층에는 제주 출신의 화가 강요배의 매화 그림 한 점이 걸려있다. 화가가 매화를 좋아하는 주인에게 그려준 것이라는데, 여위었으되 힘차게 둥치를 뒤튼 늙은 매화나무 그림의 여운이 깊고도 짙다. 관람객들에게 내보이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윽한 매화향을 즐긴 뒤 정중하게 그림보기를 청한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듯 싶다.
# 수선화 그리고 그 아래 핀 들꽃들 노리매공원 인근에서 멀지않은 안덕면 사계리 일대는 산방산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제주 수선화의 정취가 으뜸이다. 여기 수선화는 이른바 ‘금잔옥대’라 불리는 거문도의 수선화와는 종류가 다르다. 제주의 수선화는 속 꽃잎이 마늘(마농)뿌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몰마농꽃’이라고 부른다.
제주의 수선화에 대해 말하자면 이곳으로 유배온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겠다. 추사는 유배지 주변에 피어나는 꽃을 유독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수선화를 아꼈다. 서울에서 수선화는 어쩌다 중국에 다녀오는 이가 가져온 것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곳 제주에 그렇게 귀한 수선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모습을 보고 추사는 크게 감탄했다. 추사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수선화는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구름이 질펀하게 깔려있는 듯, 흰눈이 광대하게 쌓여있는 듯하다”고 썼다. 당시에 수선화는 지금보다 좀 더 늦게 피었던 대신, 훨씬 더 많았던 모양이었다. 수선화 피어나는 사계리의 밭과 들 앞에 서면 발바닥이 근질근질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초록이 완연한 초지 아래서 야생화들이 저희들끼리 수런거리며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봄까치꽃, 광대나물, 별꽃…. 허리숙여 발밑을 뒤져보면 작은 봄꽃들이 온 들판을 다 뒤덮을 기세로 화사하고 선명한 빛깔로 꽃을 피워내고 있다. # 순백의 동백, 그 귀한 자태 우리 땅에서 겨울이 가장 따뜻한 곳이 제주라면,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남쪽의 서귀포다. 서귀포의 겨울 기온은 제주의 동쪽과 서쪽에 비해 평균 2∼3도 이상 높다. 일찌감치 도시로 개발된 서귀포에는 꽃이 드물지만, 이중섭미술관 앞 작은 정원에서 잘 가꿔진 봄꽃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그루의 동백나무. 동백이야 제주 어디서나 흔전만전이지만, 여기 동백은 붉은 색이 아닌 순백색의 홑동백꽃을 피운다. 순백의 홑동백은 귀하디 귀하다. 지금 막 꽃잎을 연 동백의 색이 어찌나 맑고 깨끗하던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흰꽃을 피우는 동백나무가 여기 심어진 사연은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근 주민 강치균(75) 씨의 설명이 이렇다. 고교시절 강 씨는 노루사냥꾼으로부터 한라산 중산간의 미악산에 사냥을 갔다가 흰동백을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이웃들과 함께 동백나무를 캐러갔단다. 강 씨는 그렇게 캐온 나무를 집에다 심어 키웠는데 몇년 전에 그만 죽고 말았고, 15년 전쯤 가지 몇 개를 잘라 이중섭미술관 정원과 천지연 폭포에 심은 것만 살아 꽃을 피운다는 얘기다. 이렇듯 귀한 꽃이니 서귀포에 갔거들랑 지금 한창 피고 있는 흰동백 꽃구경을 놓치지 말기를…. 여기까지 갔다면 이중섭미술관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 이중섭이 한국전쟁의 와중이던 1951년 전란을 피해 서귀포로 내려와 일본인 아내, 두 아들과 함께 기거했던 집 뒤편에 미술관이 있다. 이중섭이 제주에 머문 기간은 11개월 남짓. 끼니를 걱정할 만큼 궁핍했던 피란생활이었건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제주는 늘 지상낙원으로 그려졌다. 가족과 함께 보낸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쩌면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섶섬과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이중섭은 수많은 그림을 그려냈다. 이중섭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대여한 것까지 합쳐도 9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술관 마당에서 생전에 화가가 바라보았던 봄기운 완연한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과 섶섬을 바라보노라면 거기까지 간 보람은 충분하다. # 담을 넘은 미술, 생활이 되다 서귀포의 천지연폭포 위쪽의 칠십리시공원 안에도 매화나무를 심어둔 소공원이 하나 있다. 서귀포시가 일본 이바라키현 와카시마시와의 자매도시 체결을 기념해 민단에서 출연한 기부금으로 매화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이다. 여기는 올해 매화가 좀 늦어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됐다. 26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한 곳에 심어져 있으니 한창 꽃이 피어날 때면 공원은 온통 그윽한 매화 향으로 가득찬다. |
공원 건너편에는 전국 최초의 시립미술관인 기당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에서는 제주 출신의 화가 변시지가 그린 ‘바람’을 만날 수 있다. 화가가 그린 제주는 아름다움보다는 거친 삶과 소외의 공간에 가깝다. 화폭에는 풍경까지 휘어버릴만큼 거센 바람과 위태로운 초가집,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사내와 말 한 마리가 등장한다. 그림 속의 제주는 나른하게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또 비장하다. 칠십리시공원에서는 미술관 담을 넘어 일상으로 들어온 미술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우선 설치미술 작품인 공원 내 연못의 징검다리를 건너보자. 징검다리 딱 중간쯤에는 거울로 된 자동문이 설치돼 있다. 발밑만 보며 징검다리를 딛고 가다보면 일순 자동문이 열리면서 연못 건너편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제야 연못의 건너편이라고 믿었던 것이 거울에 비쳐진 이쪽의 형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가닿게 될 것으로 믿었던 길이 실은 ‘지나온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의도가 어렴풋하나마 읽힐 듯하다. 연못 인근의 2층 목조주택에는 제주 사람들이 삶을 의탁했던 땅과 바다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 작품이 있다. 노동을 상징하는 호미와 집어등 등으로 실내를 꾸미고, 2층에는 화산석을 깔고 행위예술가의 공연장면 사진 등을 전시해 두었다. 한쪽의 방에는 한라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세로로 긴 창을 내놓았는데, 창 높이가 낮아 누구든 허리를 구부리고 밖을 내다보도록 해놓았다. 제주의 미술가들이 여기다 붙인 이름이 ‘겸손의 창’이다. 이런 미술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귀포시의 지원을 받아 서귀포 행복마을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토피아’란 주제를 내건 이 프로젝트는 이중섭이 머물던 서귀포시에 후배 예술가들의 힘으로 도시에 ‘예술혼’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이뤄지고 있다. 서귀포를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꾸미기 위해 의기투합한 예술가들이 바다가 보이는 해안에 조형물을 세우고 빈집에 디지털 설치미술을 들이는가 하면, 문닫은 사진관에다 낡고 오래된 제주 신혼여행 사진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마무리 작업을 거쳐 이달말이면 관광객들에게 모두 공개된다. 봄날의 한복판 코를 간질이는 꽃향기 속에서 미술이 된 도시를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주는 지금 빼어난 자연 위에 ‘예술의 옷’을 입으며 아름답게 진화하고 있다. |
제주에 또 하나의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롯데호텔 제주의 온수 야외수영장 ‘해온(海溫)’. 무려 100억 원을 투입해 새로 문을 연 제주 최대의 야외온수풀이자 테마정원이다. 해온이 들어서면서 롯데호텔 제주는 ‘럭셔리 리조트’의 풍경을 완성했다.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철에도 따스한 온수풀에 몸을 담근 채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풀바, 풀사이드의 럭셔리카바나와 건식사우나 등은 이름난 해외 초특급 리조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온수풀 옆에 사해소금 입욕제를 풀어놓은 야외 자쿠지 3개가 설치됐고, 키즈풀에는 어린이 전용 워터슬라이드를 들여놓았다. 해온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단연 풀사이드에 마련된 풀바. 특히 수중 조명이 켜진 풀바의 밤풍경은 그 자체로 한 장의 그림엽서다. 소파베드와 오디오, 벽난로, 커피머신 등이 구비된 풀사이드의 독립공간인 카바나도 고급스럽다. 해온을 이용하는 투숙객들에게 아이패드와 MP3 방수 이어폰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패드에 그려준 자신의 캐리커처를 스마트폰으로 전송받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호텔측은 해온을 들여놓으면서 바다를 끼고 있는 풍차 정원 일대를 다시 다듬었다. 실개천 산책로를 새로 조성하고 연못으로만 관리돼 발길이 닿기 어렵던 곳까지 도보코스로 편입한 뒤 길가에는 제주의 들꽃을 심었다.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외벽과 돌다리도 전체적인 조경과 썩 잘 어울린다. 롯데호텔 제주는 ‘해온’의 오픈을 기념해 오는 3월 말까지 디럭스룸 1박과 조식, 올레 트레킹, 풀바 칵테일 등을 제공하는 숙박 패키지를 주중 27만 원부터 판매하고 있다. 1577-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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