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列仙小傳_엽법선[葉法善]

醉月 2009. 10. 31. 09:42

 

 

ⓒ 삽화 박영철

 

어려서 태상노군을 만나다
葉法善(엽법선)의 字(자)는 道元(도원)이고, 괄주 括蒼縣(괄창현) 사람이다. 원래 조상들의 고향은 남양땅 葉邑(엽읍)이다. 수양제 大業(대업) 9년(613)에 태어났다. 위로 조상 4대가 수도했다. 어머니 劉氏(유씨)가 어느 날 하루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하늘 위의 流星(유성) 하나가 입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을 배속에 삼키고 아이를 임신했다. 이후 15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엽법선을 낳았다고 한다.

엽법선이 일곱 살 때 조심하지 않아 강물에 빠졌는데 종적이 묘연하여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때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3년이 지나고 돌연 집에 나타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의 부모는 3년만의 邂逅(해후)를 기뻐하면서 그의 아들이 그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묻는다.

엽법선은 “강물에 빠진 후 靑童仙人(청동선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어느 낯선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분 신선이 주는 각종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지금까지 함께 살았습니다” 한다. 이어서 “청동선인께서 저를 데리고 太上老君(태상노군)을 배알하러 갔습니다. 태상노군께서 저를 만나본 후,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저를 태상노군 곁에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이때 저는 그곳에 머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이미 3년이 지났으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한다.

自初至終(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부모는 그저 놀랍고도 이상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天神(천신)들을 마음대로 부리다
엽법선은 타고난 성품이 淳朴(순박)하고 여유로웠으며, 가슴속에 품은 뜻도 率直淡白(솔직담백)했다. 음식은 淡白(담백)한 素食(소식)을 즐겨했고, 파·마늘 등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았다. 평소에 왕왕 홀로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깊은 방에 거주하면서 俗人(속인)들과는 접촉하지 않았다.

스스로 흥에 겨울 때에는 수풀이나 연못을 찾기도 하고, 혹 구름과 산천을 찾아 노닐기도 했다. 부모들도 엽법선에 대해 일체 干涉(간섭)하지 않았으며 그가 하는 대로 놓아두었다.

20세가 되자 신장이 九尺(구척)이나 되었고, 이마 위에는 은은한 모양의 십자(十)무늬 두개가 생겼다. 엽법선은 사실 이전 仙府(선부)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이미 天神(천신)을 마음대로 부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卯酉山(묘유산)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산 입구 가까이에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 산에 들어오고 나갈 때 그 바위를 빙 돌아야하는 번거로움으로 몹시 불편하였다. 이에 엽법선은 符籍(부적) 하나를 그려서 그 큰 바위를 향해 던졌다. 순식간에 큰 바위는 어디론가 날아가 사라졌고, 길은 바로 평탄하게 되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그저 驚異(경이)로울 뿐이었다.

엽법선은 일찍이 한번 괄창현 白馬山 (백마산)에 유람 갔는데, 그 산의 한 석실에서 세분의 神人(신인)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비단 옷을 입고 보배로운 冠(관)을 쓰고 있는데, 服飾(복식)으로 보아 보통사람들과는 달랐다.

 

ⓒ 삽화 박영철

 

神人(신인)들이 법술을 전수해 주다
白馬山(백마산) 석실 안에서 만난 세분 神人(신인)중 한 분이 葉法善(엽법선)에게 “우리들은 太上老君(태상노군)의 명령을 받들어서 密旨(밀지)를 당신에게 전한다. 당신은 원래 천상의 太極(태극) 紫薇宮(자미궁)의 左仙卿(좌선경)이었다. 그 당시 임무를 소홀히 해서 인간 세상에 잠시 귀양 왔다. 지금부터 당신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국가를 잘 輔佐(보좌)하여 응당 공적을 세워야한다. 공적을 세워 그 공적이 가득차면 그때 上界(상계)로 다시 돌아와 옛날에 맡았던 하늘의 관직을 回復(회복)할 수 있다. 이제부터 正一(정일) 三五(삼오)의 법술을 당신에게 전수하겠다. 또 당신은 사람들을 돕는데 부지런히 힘쓰고, 또 스스로 勤勉(근면)하기를 바란다” 말을 마친 후 세 사람의 신인들은 구름을 타고 사라졌다.

이때부터 엽법선은 가는 곳마다 妖怪(요괴)들을 베어 없애버리고, 凶惡(흉악)한 귀신들을 掃滅(소멸)시켰다. 무릇 엽법선은 사람을 救濟(구제)하는 것을 宗旨(종지)로 삼았다. 이 일을 알게 되자 엽법선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게 되었고, 그의 명성도 자꾸 널리 퍼져 나갔다.

唐(당) 高宗(고종)이 엽법선의 명성을 듣고 장안으로 불렀다. 고종은 엽법선이 과연 보통사람이 아님을 보고 몹시 기뻐하면서 그를 上卿(상경)으로 삼았다. 그러나 엽법선은 한사코 벼슬을 사양하고 단지 道士(도사)의 직만 받겠다고 한다. 고종도 그의 사양을 拒絶(거절)할 수 없어 그렇게 하도록 했다. 엽법선은 도사 신분으로 궁중에 머물렀으며, 궁중 금지구역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符籍(부적)으로 병자를 낫게 하다
그 당시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中岳(중악)인 崇山(숭산)에 건립하고 있던 祭壇(제단)이 이루어지자 고종이 친히 왕림해서 완성을 알리는 典禮儀式(전례의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하남 숭산으로 御駕(어가)를 출발시키려고 하는데 황제를 수행하려던 많은 신하들이 갑자기 發病(발병)하여 수행할 수 없었다. 엽법선은 이 소식을 듣고 곧 符籍(부적)을 불태워 물에 넣고 이를 한입 물고 환자들에게 내뿜자 환자들이 모두 나았다. 고종황제가 숭산에 가는 일정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엽법선은 낙양 凌空觀(능공관)에서 제단을 만들어 醮祭(초제)(도교에서 별을 향해 지내는 제사)를 지내는데, 성안의 남녀들이 다투어서 구경 왔다. 갑자기 구경꾼 중 십여 명이 불속으로 뛰어드는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이들을 구조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저 당황하고 놀랄 뿐이었다.

엽법선은 이에 대해 “조금 전에 불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귀신들에게 홀린 사람들이다. 내가 법술을 펼칠 때 그들을 불속으로 빨아들인 것이다”한다. 이 설명을 듣고 확인해보니 불속에 뛰어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질병이 모두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있고난 후 東都(동도)인 낙양과 西都(서도)인 장안 등 두 곳의 남녀 일천여명이 엽법선을 찾아와 도가전적이나 부적을 받았으며 그를 스승으로 모시어 받들었다. 이때 여러 곳에서 많은 재물을 시주하는데, 시주받은 金銀財貨(금은재화)는 모두 도교사원을 건립하는데 사용하거나, 고아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활용했다.

 

ⓒ 삽화 박영철

 

‘엽법선’을 걸고 내기 바둑 두다
당 고종 顯慶(현경) 연간에 葉法善(엽법선)은 황제의 명을 받아 天台山(천태산)에 黃菉齋(황록재)를 짓기 위해 장안을 출발했다. 그 당시 동쪽 광릉까지 간 다음, 이튿날 이른 새벽 과주에서 강을 건너 다시 천태산으로 가는 길을 잡았다.

마침 이날 과주나루터에는 나룻배들이 강가에 정박해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절이 늦은 봄이어서 강 연안에 초목이 싱그러웠고 강가 모래톱은 맑고도 따뜻했다. 이때 갑자기 강가에 노인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누른 옷을 입었고, 또 한 사람은 흰옷을 입었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이 한가한 시간을 틈타서 바둑 한판 겨루는 것이 좋겠다. 무료함을 좀 달래는 것이 어떤가?” 말을 마친 후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부른다. “冥兒(명아)야! 빨리 이리 오너라!”한다. 그러자 곧 강 한가운데서 어린 童子(동자) 하나가 물살을 가르며 솟아올라 오는데 옷에는 물기하나 묻어있지 않다. 노인은 그 아이에게 “바둑판과 바둑 둘만한 장소를 준비하여라”한다.

잠시 후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나서 바둑판을 모래사장에 폈다. 두 노인이 얼굴을 마주하고 자리에 앉은 후 서로 약속하는데 “이번 내기 바둑에서 이기는 사람이 내일 북쪽으로부터 오는 도사를 잡아먹기로 하자”한다. 한바탕 큰 소리로 웃더니 한참동안 바둑 두기에 沒頭(몰두)한다.

흰옷 입은 노인이 누런 옷 입은 노인에게 “당신은 졌다! 내일 당신은 그 맛있는 먹잇감을 빼앗으려 해서는 안 된다” 고 한다. 말을 마친 후 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가로 가더니 사방을 둘러보고 주변을 한 바퀴 어슬렁거리다가 강물위로 걸어간다. 그러더니 파도 가운데로 아득히 사라져 버린다.

아무 일도 없을 터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그곳에 있던 뱃사공들은 이 두 노인이 내일 이곳에 오는 도사 엽법선에게 해코지를 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불안한 가운데 두렵기조차 하였다. 다음날 이른 새벽 內官(내관)들이 말을 재촉하여 나루터에 먼저 도착해서는 배를 준비하도록 감독한다.

그러는 중에 사공들이 어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내관에게 보고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내관은 필시 예기치 않은 뜻밖의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내관은 곧 바로 엽법선을 찾아가서 조금 전 사공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한바탕 그대로 전달한다.

이야기를 다들은 엽법선은 泰然自若(태연자약)하게 미소를 띠우면서 “그 일 때문에 걱정들 하는가? 당부하건대 모두들 이 일을 조금도 介意(개의)하지 말고 渡江(도강) 준비나 철저히 하시오!”한다.

엽법선이 설사 靈驗(영험)한 符術(부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행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웬일인지 두렵고 불안하였다. 엽법선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는 배를 출범시킨다.

배가 막 부두를 떠나자 갑자기 暴風(폭풍)이 불어오고 파도가 미친 듯이 일어난다. 그리고 하늘조차 깜깜해진다. 배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失色(실색)한채로 서 있다. 그러다가 이 危機(위기)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엽법선 뿐일 것이라며 일제히 엽법선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때 엽법선은 조용히 수행원 한 명을 불러서 “내 손에 있는 이 까만색 黑符(부적)을 가지고 가서 뱃머리 위에 놓아 두어라” 한다.

 

ⓒ 삽화 박영철

 

해코지 하려는 노인 죽음을 자초하다
葉法善(엽법선)은 잠시 후 뱃머리로 나아가 그곳에 놓아둔 까만 부적을 풍랑이 치는 강 가운데로 집어던진다. 순식간에 바람이 자고 물결이 가라앉는다. 잠시 후 배가 건너편 남쪽 강 沿岸(연안)에 무사히 닿았다.

엽법선은 배를 저어온 뱃사공 우두머리에게 “당신은 이곳에 동행한 사람들과 어부들을 불러 모아 이 나루터를 따라 십리쯤 내려가 보아라. 그곳에는 반드시 큰 물고기가 있을 터이니 그 고기를 나누어 가지고가면 큰 수확이 될 것인데, 이 機會(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시오!”한다,

어부들은 엽법선의 말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그 물고기를 찾으면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나루터에서 물고기를 찾아 몇 리 정도 내려오다 보니, 눈앞에서 길이가 30여 미터나 되는 큰 고기 한 마리가 모래사장에 뻣뻣이 누워있는 것을 봤다.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는 이미 파손되어 腦髓(뇌수)가 흘러내렸다.

어부들은 그 大魚(대어)를 큼직큼직하게 나누어 배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달 동안 그 고기를 잘 먹었다고 한다. 죽은 그 큰 물고기는 바로 전날 강가에서 바둑을 두었던 흰옷 입은 노인으로 엽법선을 해치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自招(자초)하였다.

法術(법술)로 많은 사람을 구제하다
엽법선은 당 고종 顯慶(현경) 말년(660년)에 고종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고향인 括蒼(괄창)으로 되돌아갔다.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法術법술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救濟(구제)했다.

四川(사천)에 사는 張尉(장위)의 아내는 한번 죽었다가 다시 蘇生(소생)하였는데, 그 남편과 계속 부부로 살았다. 엽법선은 장위의 아내가 妖邪(요사)한 마귀에게 씌었다는 것을 알고는 장위에게 “속히 마귀를 제거하지 않으면 죽게 된다”고 한다.

말을 마친 엽법선은 符籍(부적)을 하나 꺼내어 장 씨 마누라에게 던진다. 그러자 장 씨 마누라는 곧 한 덩어리 시커먼 연기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후 다시 살아난 장 씨 마누라는 남편과 별다른 탈 없이 잘 살았다.

또 宰相(재상) 姚崇(요숭)에게는 딸 아이 하나가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어려서 죽었다. 요숭은 그 아이 생각에 밤낮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엽법선이 옆에서 보기가 딱하여 부적술을 사용하여 요숭의 여자아이를 起死回生기사회생시킨 적이 있다.

그리고 한번은 錢塘江(전당강)에 큰 무명조개(大蛤蜊)정령이 살고 있어 수시로 바람과 파도를 일으켜 그곳을 往來(왕래)하는 배들을 엎어 沈沒(침몰)시켰다. 마침 그곳을 지던 엽법선은 부적을 강에 던졌다. 그 큰 대합 정령은 神力(신력)에 의해 斬殺(참살)되었다.

나중에 엽법선은 신선들이 살고 있는 명산의 洞府(동부)를 두루 유람하였다. 靑城山(청성산)에서 趙元陽(조원양) 진인을 만나 遁甲術(둔갑술)을 배웠다. 嵩陽(숭양)에서 偉善俊(위선준) 진인을 만나 神化(신화)하는 법을 전수받았다. 蒙山(몽산)에서 신인을 만나 秘傳(비전)을 얻었다. 숭산에 올라 신선을 만나 검술을 배웠다. 천하 강산을 유람하다가 어느 때 한번 배를 타지 않고 황하를 걸어서 건넜다. 강위를 그냥 뚜벅뚜벅 걸어서 건너가다가 물속에 그만 빠졌다.

 

ⓒ 삽화 박영철

 

東海龍王(동해용왕)이 도움을 청하다
葉法善(엽법선)은 배를 타지 않고 물위를 걸어서 황하를 건너다가 물에 빠졌다. 물에 빠진지 한 나절이 되어도 물위에 떠오르지 않자,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었다고 여겼다.

물에 빠진지 7일 만에 엽법선이 강 가운데서 걸어 나오는데 의복이나 신발에 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으며, 물의 신인 河伯(하백)과 동행해서 蓬萊山(봉래산) 신선들이 사는 곳에 가서 놀다가 왔다고 한다.

엽법선은 일찍이 절강지역 四明山사명산에서 여러 해 머물렀다. 그곳은 天台山(천태산)에서 멀지 않았는데, 이때 제자 몇 명을 거두었다. 어느 해 5월1일, 갑자기 문을 두드리면서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자들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노인 한 사람이 다가와서 울면서 하소연한다. 제자들은 이 노인이 병이 있다고 여겨 스승인 엽법선에게 데려갔다.

노인은 울면서 사연을 아뢴다. “저는 東海龍王(동해용왕)입니다. 上帝(상제)의 명령을 받들어 사방 여덟 바다의 珍寶(진보)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천년을 한 번으로 하는 임기를 착오없이 잘 마치면 하늘에 올라가 신선의 품계를 받습니다. 저는 이곳 용왕으로 이미 970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별탈없이 30년이 지나 임기를 무사히 마치게 되면 늙은 몸의 행운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바라문의 스님 한분이 나타나 바다 한쪽 구석 산 사이에 거주하면서 이상한 幻術(환술)을 피우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주야로 제사를 지내고 邪術(사술)을 피워대는데 바닷물을 말아 올려 어디론가 가져갑니다. 앞으로 다시 4일이 지나 5월 5일이 되면 바닷물이 枯渴(고갈) 될 것 같습니다. 상제님 소유인 하늘을 통어하고 바다를 진압하는 보배와 신령한 물건들을 환술로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나아가서 늙은 이 몸도 非命비명에 죽을 지도 모릅니다. 5월 5일 정오에 尊師존사님을 초청하오니 제발 丹符籍(단부적)을 하사하시어 구해주십시오!”한다.

용왕, 바위산 허리에 물이 흐르게
엽법선은 알겠다며 응낙한다. 5월 5일 정오를 기해 동해용왕이 부적을 동해에 던져 넣자 바닷물이 옛날의 모습대로 회복된다. 바라문의 그 승려는 성공을 바로 눈앞에 두고 실패로 돌아가자 스스로 부끄럽고 한스러워 하면서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하고 만다. 그 다음날 동해용왕은 珍奇(진기)한 보물을 가져와 엽법선에게 바친다.

엽법선은 받지 않으면서 “숲과 들에 살고 있는데, 素朴(소박)한 차와 음식이면 그저 만족한다. 이런 진기한 것들은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이곳은 바위 벼랑 위에 위치하고 있어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용왕이 만약 꼭 보답을 하고 싶다면 나를 위해 이곳에 한줄기 맑은 샘물이 나도록 해주시오. 그러면 나는 그저 感激(감격)할 뿐이오!”한다. 용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이별을 고한다.

이날 밤 비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다음 날 날이 밝았는데, 산기슭 사방을 둘러싸고 새로 한줄기의 도랑이 생겼다. 그 도랑에서 샘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도랑을 따라서 맑은 물이 흘러오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그 수로를 ‘天師渠’(천사거)라고 불렀다.

 

ⓒ 삽화 박영철

 

神人이 미래의 황제를 보필하라고 하다
세월이 한참 지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황제에 취임한 후, 무후는 葉法善(엽법선)을 다시 장안으로 불렀다. 측천무후의 집권 시대가 지나고 中宗(중종) 李顯(이현)이 복위(705)했으나 여전히 무삼사가 조정의 모든 권한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엽법선을 꺼려하여 南海(남해)로 귀양을 보냈다. 엽법선은 1년 귀양살이를 하다가 洪州(홍주) 西山(서산)에 입산했다. 이 산에서 養身修道(양신수도)하면서 은거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중종 景龍(경룡) 4년(710) 3월 9일 젊었을 때 괄창현 白馬山(백마산)에서 만났던 세 사람 神人(신인)이 다시 하늘에서 내려왔다. 엽법선에게 太上老君(태상노군)의 諭旨(유지)를 전달하면서 “그대는 睿宗(예종황제)(당나라 9대 황제)와 開元聖帝(개원성제)(당 현종 10대)를 보필하라. 산속 바위 밑에 숨어있지 말고 넓은 도량으로 세상을 구제하라”라는 말을 마친 후 사라진다.

이때 예종황제가 卽位(즉위)하지도 않았고, 개원성제인 당 현종은 3년 정도가 지나야 즉위(712)하게 된다. 아직 즉위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의 황제 廟號(묘호)와 年號(연호)에 대해서 천상의 천인들은 먼저 다 알고 있었다.

이해 8월, 당 예종이 과연 재차 엽법선을 부르는 조서를 내리고 장안으로 불렀다. 예종이 3년간 황제의 직분을 마치자 玄宗(현종)이 계속하여 大統(대통)을 이어갔다. 엽법선은 현종을 보좌하는데 더욱 성심을 다했다. 세상의 吉凶動靜(길흉동정)을 살펴서 반드시 일이 발생하기 전에 현종에게 조언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독화살(毒箭)로부터 현종을 구해내다
吐蕃(토번)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토번 사자가 보석함 하나를 들고 와서 황제에게 進上(진상)한다. 보석함의 외관이 精美(정미)하여 눈에 확 뜨인다. 토번 사자가 “이 보석함은 폐하께서 직접 열어야 합니다. 함속에는 기밀이 들어 있습니다. 조정의 대신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입니다”하고 아뢴다.

당시 조정관원들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에 대해 책임있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黙黙不答(묵묵부답)이었다. 오직 엽법선만 앞으로 나서서 아뢴다. “이것은 凶計(흉계)가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직접 보석함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토번의 사신이 열도록 하십시오.” 한다.

현종은 이 말을 쫒아 토번의 사신에게 열도록 한다. 토번사신이 뚜껑을 열자 보석함 속에서 독화살(毒箭)이 발사되었는데, 토번사신 몸에 적중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조정을 가득 메운 문무관원들은 일제히 황제의 무사함에 慶賀(경하)를 외친다. 현종은 엽법선을 더욱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 현종이 통치하던 開元(개원)(713-741, 29년간)연간은 천하가 태평하였다. 어느 해 1월 15일인 정원 대보름 元宵節(원소절) 밤이 되자 장안의 밤은 燃燈(연등)하는 등불로 온 거리를 메워졌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번화한 그 모습이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장관이었다. 그 당시 현종도 연등회를 구경하기 위해 어가에 올라 上陽宮(상양궁)으로 향하는데 백관들이 호종하여 따라왔다. 상양궁에 걸려있는 각종 연등은 明匠(명장)들이 성심을 다하여 제작한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삽화 박영철

 

원소절(보름날) 상양궁의 연등회
보름날 밤 上陽宮(상양궁)에서 열리는 燃燈會(연등회)는 가관이었다. 상양궁은 단청을 한 누각이 30여 채나 되었다. 각 건축물마다 양식이 달랐는데 건물에는 금이나 비취, 구슬 등으로 상감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가장 큰 누각은 높이가 150여자나 되었다. 미풍이 불어올 때마다 은은히 풍경소리가 들여온다. 매달려 있는 채색 등불이 모두 아름다웠으나 그중에서 백가지 짐승모양의 百獸燈(백수등)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용·봉황·이무기·기린 등이 각기 그 자태를 잘 드러냈고, 사자·코끼리·호랑이·표범 등도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唐 玄宗 (당 현종)은 연등회 등불을 보면 볼수록 더욱 매료되었다. 이때 현종은 갑자기 엽법선을 상기하고는 곧 이 자리에 불러 오라고 한다. 잠시 후 엽법선이 단청 누각 밑에 도착하자 현종과 함께 연등을 감상한다. 엽법선은 “오늘 밤 연등회의 화려함에 신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서경(장안)의 오늘밤 연등회가 비록 성대하여 볼만하다고 하나 이곳 京師경사인 낙양과 비교하면 더 이상 말할 것도 못 됩니다.”한다. 현종은 “오늘 밤 서경의 연등회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나의 스승인 그대가 설마 그곳에서 막 돌아온 것은 아니겠지요!”하고 묻는다. 엽법선은 “폐하, 英明(영명)하십니다. 일의 전말을 귀신같이 헤아리십니다. 신은 막 서경에서 돌아왔습니다. 폐하의 부름을 받고 조금 지체한 허물이 있사옵니다. 간청하오니 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한다. 현종은 엽법선의 말을 듣고 半信半疑(반신반의)하면서 다시 묻는다. “짐이 오늘 서경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존경하는 그대가 무슨 술법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데리고 가줄 수 있겠는가?

공간이동으로 순식간에 서경을 갔다 오다
엽법선은 “폐하께서 오늘 저녁 서경에 한번 가보실 요량이면 이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다만 두 눈을 꼭 감기만 하시면, 신은 즉시 폐하가 서경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폐하가 두 눈을 꼭 감은 후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됩니다. 만약 두 눈을 떠서 보게 되면 깜짝 놀랄만한 광경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경에도 갈 수 없습니다.”한다. 그래서 현종은 엽법선의 요구에 따라 두 분을 꼭 감았다.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지며 날아오르는 것 같은데 이미 하늘 높이 은하수 사이를 지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갑자기 두 다리가 땅에 닿은 듯하다. 엽법선의 말이 들려온다. “서경에 이미 닿았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두 눈을 뜨고 보아도 됩니다.”

현종이 그 말에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니 등불이 빛나고 있는데, 등불 행렬이 몇 리나 잇닿아 있다. 거리에는 수레소리가 요란하고 구경나온 남녀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끌벅적 야단이다. 길가에는 술집과 찻집이 늘어서 있고 그곳에 걸려있는 연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현종은 길가의 어느 한 酒樓(주루)에 들어갔다.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 쇠구슬인 鐵如意(철여의)를 저당 잡히고 술을 사서 마셨다. 서경의 술은 도수가 높아 몇 잔을 마시니 술에 취한다. 술집을 나와 거리로 나가서 연등을 구경했다. 거리의 채색연등이 비록 화려하나 낙양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현종은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어 엽법선에게 돌아가자고 한다. 엽법선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현종에게 두 눈을 감게 하고 공중을 날았다. 순식간에 경사인 낙양의 상양궁 앞에 도착했다. 화려한 연등행사는 출발하기 전 그대로 였고, 춤과 노래도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 삽화 박영철

 

 중추절 밤, 달에 올라 하늘 음악을 듣다
원소절 연등행사가 끝난 다음날, 玄宗현종은 태감 두 사람을 불렀다. 태감에게 어제 서경에 간 이야기를 한 다음 서경의 그 술집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저당 잡힌 쇠구슬인 鐵如意철여의를 찾아오도록 엄밀히 분부하였다. 하루가 되지 않아 태감이 철여의를 찾아서 돌아왔다. 현종은 태감이 찾아온 철여의를 직접 확인해보니 어제 자신이 술집에 맡긴 그것이었다. 순식간 공간이동을 확인한 현종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또 한 번 8월15일 중추절 밤에 엽법선과 현종은 月宮월궁(달나라의 궁궐)에서 같이 놀았다. 그들은 서경 연등회 구경 갈 때와 똑같이 눈을 꼭 감고 달 위에 올라갔다. 현종은 달에서 선녀들이 연주하는 하늘의 음악인 天樂천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연주되고 있는 그 곡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선녀가 ‘紫雲曲’자운곡이라 한다. 현종은 음률에 造詣조예가 깊어 그 곡조를 묵묵히 마음에 새겼다.

그래서 월궁에서 돌아온 후 ‘霓裳羽衣曲’예상우의곡으로 만들어 음악을 관장하는 梨園이원의 악공들에게 연주하도록 하였는데, 아직도 이곡이 전해져온다고 한다.

달나라에서 돌아오는 도중, 潞州城노주성 상공을 지나는데 현종은 눈을 뜨고 땅위의 광경을 보고 싶어 엽법선에게 눈을 떠도 괜찮은지 묻는다. 엽법선은 한번만 그렇게 하라고 한다. 현종이 눈을 뜨고 노주성내를 굽어보니 그림처럼 잘 정돈되어있으며, 한밤중이서 마치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노주성 상공에서 현종이 옥피리를 연주하다
이때 엽법선은 현종에게 옥피리로 월궁에서 들은 곡을 한번 연주토록 요청하였는데, 옥피리를 궁중 침전에 놓아두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엽법선은 곧 사람을 시켜 가져오도록 했다. 잠깐 만에 옥피리를 가져오자 현종은 노주성 상공에서 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피리연주가 끝나자 몸에 지니고 있던 돈 꾸러미 한 무더기를 노주성으로 던졌다. 그리고 난 후 궁중으로 돌아왔다.

그해 8월 하순 무렵 노주자사가 상소를 올렸다. 그 내용은 “지난 8월 중추절 날 한밤중에 노주성 상공에서 하늘의 음악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떨어진 돈을 모아서 황제폐하께 진상합니다”한다. 진상된 돈을 확인해보니 현종 자신이 노주성 상공에서 집어던진 그 돈이었다. 이러한 진기한 경험을 한 현종은 엽법선을 더욱 恭敬공경하게 되었다.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 燕國公연국공 張說장열이 엽법선을 방문했다. 엽법선이 술대접을 하는데, 탁자위에 큰 술잔이 세 개 놓여있었다. 장열은 기이한 듯이 “오늘 단지 저와 엽도사 두 사람 뿐인데, 어찌하여 술잔을 세 개나 준비하셨습니까? 혹 다른 손님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엽법선은 “오늘 麴處士국처사라는 다른 사람이 옵니다. 줄곧 산속에서 隱居은거하였는데, 그의 성품이 고지식하고 사람 된 것이 좀 우둔합니다. 그러나 주량은 대단한데, 한 번 마시면 술 열 말을 마십니다. 오늘 우리와 함께 자리하여 즐겨도 상관없겠습니까?”한다. 장열은 그것 좋다 면서 동의를 표시한다.

 

ⓒ 삽화 박영철

 

麴處士(국처사)가 큰 술통으로 바뀌다
잠시 후 麴處士(국처사)가 왔다.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키는 불과 석자 남짓하였다. 허리는 굵고 단단해 보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보기에도 어리석은 듯 순진해 보인다.

국 선생을 상석에 앉히고 자리를 정하자 술상이 들어왔다. 국 선생은 연달아 쉬지 않고 술을 마신다. 짧은 시간에 술통이 비었는데도 국 선생은 얼굴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중에 술좌석이 흐트러지자 장열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엽법선은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는 국 선생을 큰 소리로 꾸짖는다. “너는 高談峻論(고담준론)은 간곳없고 줄곧 술만 탐하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엽법선은 마침내 국 선생을 칼로 베어 죽인다. 국 선생이 칼을 맞고 죽어 있는 곳을 보니 시체는 간곳없고 그곳에 큰 술통이 하나 달랑 놓여있다. 엽법선이 幻術환술을 보여준 것이다.

李邕이옹, 꿈속에서 비석을 쓰다
엽법선은 일찍이 그의 祖父(조부)를 위해 그 당시 가장 著名저명한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李邕(이옹)을 만나 조부의 碑文(비문)을 부탁했다. 사실 이옹(678∼747)은 당나라의 서예가이자 문인이고, 자는 泰和 (태화)다. 行書(행서)에 능하고 그가 쓴 비석이 800개에 달하는 등 측천무후와 당 현종 때 활약했던 인물이다.

이옹이 엽법선 조부의 비문을 다 짖고 나자 이번에도 엽법선은 이옹에게 글씨를 좀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옹이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하루 이옹은 꿈을 꾸었는데 엽법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옹에게 보배가 될 만한 훌륭한 글씨를 써달라고 한다. 이옹은 왠지 꿈속에서 기분이 매우 좋아서 엽법선에게 비문을 써주겠다고 하였다. 꿈속에서 글씨를 쓰다가 마침 ‘丁’정자를 쓸 때 새벽종이 울렸다. 이에 이옹은 꿈속에서 깜짝 놀라면서 깨어났는데, 꿈속에서 깨어나기 전에 의식적으로 ‘丁’정자 밑에 점을 몇 개 찍었다.

다음날 엽법선이 이옹을 방문하였는데, 이옹이 꿈속에서 썼던 글씨를 들고 와서 감사를 표시한다. 이옹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나자 놀랄 뿐이었다. 그래서 이 碑帖(비첩)을 후세사람들은 招魂碑(초혼비) 또는 丁丁碑(정정비)라고 불렀다.

엽법선은 開元(개원) 8년(720)에 羽化登仙(우화등선)했다. 임종할 때 오언율시 3수를 남겼는데, 그 제목이 ‘留詩’(유시)이다. 그중 두 번째를 소개한다.


留詩유시(2)
適向人間世 時復濟蒼生 度人初行滿 輔國亦功成 [적향인간세 시부제창생 도인초행만 보국역공성]
但念淸微樂 誰忻下界榮 門人好住此 翛然雲上征 [단념청미락 수흔하계영 문인호주차 수연운상정]

인간 세상에 왔다가, 때맞추어 다시 창생을 구제했다.

사람을 제도하여 공행을 가득 채웠고,

나라를 도와 공을 이루었다.

다만 생각이 청정하고 즐거움은 적었는데,

누가 하계의 영화를 기뻐할 손가?

문인들이여 이곳에 잘 머물러 있다가,

날듯이 구름위로 올라가세

우화등선할 때 하늘의 음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도관 안에는 그윽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조정에서는 조서를 내려 ‘金紫光祿大夫’(금자광록대부), ‘越州都督’(월주도독) 관직에 봉했다. 靈柩(영구)를 고향인 括蒼縣(괄창현)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