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列仙小傳_사자연[謝自然]

醉月 2009. 10. 20. 08:35
列仙小傳_사자연[謝自然]

 

집안, 아버지는 효성과 학문으로 벼슬하다
謝自然사자연은 당나라 때의 여자 신선이다. 그녀의 윗대 조상들은 山東산동 袞州곤주(현재 산동성 태안일대)에 살았다.

그녀의 부친 사환은 果州과주지역 南充남충(지금의 사천성 북부지역)으로 옮겨가서 살게 되었다. 사환은 재주 있는 선비로 고향에서 신임을 받았으며, 효성스럽고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벼슬에 천거되었다. 建中건중 연초 ‘大歷十才子’대력십재자의 한 명인 李端任이단임 과주자사가 ‘試秘書省校書’시비서성교서라는 관직에 사환을 추천하여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다.

사자연의 어머니인 胥氏서씨는 명망이 높은 집안 출신으로 학문을 갖춘 현모양처였다.
사자연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비린내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녀의 집은 사천성 남충 지방의 大方山대방산 밑에 있었는데. 이곳 대방산 꼭대기에는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太上老君像태상노군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정상의 태상노군상 옆으로 이사하다
어린 사자연은 처음 태상노군상을 보았을 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모든 정성을 쏟아 절하였다. 그리고는 산을 내려가지 않으려 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딸인 사자연의 뜻에 따라 집을 그곳 대방산 꼭대기로 이사하였다.

이때부터 사자연은 늘 ‘道德經’도덕경과 ‘太上黃庭內景經’태상황정내경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14세가 되던 그해 9월 어느 날, 사자연은 새로 막 추수한 햅쌀로 지은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뱃속의 메스꺼움을 겨우 진정하고 “이 밥알은 모두 구더기와 같다.”고 한마디 던지더니 이로부터 더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차례에 걸쳐 쥐엄나무를 넣고 끓인 물을 마셨다. 이 쥐엄나무 끓인 물을 먹고 아주 심하게 설사를 하였다. 몇 차례 설사를 하여 살펴보니 크고 작은 벌레가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데 붉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다.

이 일이 있고부터 갑자기 신체가 가벼워지고 눈이 밝아졌다. 밥을 먹지 않게 된 후 사자연은 다만 잣나무 잎을 매일 조금씩 씹어 먹었다. 잣나무 잎을 7년간 먹은 후 사자연은 잣나무 잎조차 먹지 않고 다만 맑은 물만 조금씩 마셨다. 그 후 2년이 지나자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녀의 부친인 사환이 여러 해 동안 외지로 나가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일간 감금, 벽곡하여 물조차 마시지 않다
사환은 딸 사자연이 修道수도 생활을 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대대로 儒學유학을 법통으로 하는 가문이다. 이 道敎도교는 先王선왕의 道法도법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 친구 등 五倫오륜 밖의 일이며, 완전히 요사한 말로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는데, 어찌 이를 믿을 수 있는가? 聖人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어찌 아무 것도 먹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하였다.

말을 마친 후 집안 하인을 시켜 사자연을 40여 일간 감금했다. 아버지인 사환은 집안사람들이 몰래 음식물과 마실 물을 가져다주는지 여부를 몸소 감독하였다. 뜻밖에도 사자연은 40여 일이 지났는데도 평온하여 아무 탈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안색과 풍채가 더욱 활기찼다. 사환은 이때서야 비로소 깜짝 놀랐다. 더는 딸이 수도하면서 辟穀벽곡하는 것을 감히 막을 수 없었다.
 

ⓒ 삽화 박영철

 

서왕모와 남악여선 위부인을 동경하다
謝自然사자연이 40여 일 동안 음식과 물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신체에 이상이 없고 풍채가 오히려 더 좋아보이자 아버지인 사환도 더는 딸의 수행을 막지 못했다.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사자연의 신태는 더욱 맑고 기상은 더 높고 상큼하였다. 말투나 태도는 高雅고아하였고, 거문고타기와 서예를 즐겼으며, 문장 쓰기를 좋아하였다.

四川사천지방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화제가 미칠 때, 사자연은 卓文君탁문군이 司馬相如사마상여와 눈이 맞아 도망간 사실을 늘 경멸했다. 그러나 西王母서왕모와 여자신선 麻姑마고를 가장 존경하여 그들에게 분향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또 南岳女仙남악여선 魏夫人위부인(도호: 紫虛元君 자허원군)의 절개를 매우 존경하였다.

사자연은 독신으로 지내면서 40세가 되던 해, 고향 南充남충을 떠나 靑城청성, 峨嵋아미 등 명산을 두루 둘러보았다.

천태산 도사 사마승정을 찾아가다
집에 돌아와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사천성을 떠나 북으로 長安장안. 洛陽낙양을, 남으로는 長江장강, 淮河회하 유역을 돌면서 이름난 명산과 고적이 있는 곳이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둘러보았다.

그 후 사자연은 天台山천태산 옥소봉에 은거하고 있는 도사 司馬承禎사마승정의 도술이 정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 천태산으로 가서 사마승정을 拜見배견하고 그곳에 머물렀다. 도사 사마승정이 은거하고 있는 가까이에 초가집을 하나 지어 천태산에 거주하면서 매일 사마승정을 위해 밥을 지어드리고 산과일을 따다 드리는 등 잘 받들어 모셨다.

스승을 대하는 예절로 사마승정을 한결같이 모셨다. 이렇게 사마승정을 모시면서 천태산에서 3년을 지냈다. 도사 사마승정도 마침내 사자연의 굳센 의지에 놀랐다. 어느 날 사마승정이 사자연에게 “나는 무슨 道德도덕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 시중을 들고 있는가? 너는 나에게 무슨 요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솔직히 이야기해 보아라.”고 말했다.

오직 상승의 도법을 바랄 뿐
사자연은 “저는 도사님께서 지닌, 세상을 제도할 수 있는 道法도법을 배우고자 동경해 왔습니다. 그래서 만리를 멀다하지 않고 이곳에 왔는데, 도사님의 上乘상승의 도법을 전수받아 저 자신이 제도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것 이외 다른 바람은 없습니다.”하였다.

이 말을 듣고 사마승정은 잠시 주저하다 사자연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上乘道法상승도법을 수련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겨서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서 또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데 사자연은 사마승정이 종래 그녀에게 상승의 도법을 전해주지 않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탄식하면서 한마디 하였다. “이름난 밝은 스승이신 사마승정께서는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이것은 나의 운명 중에는 없는 것인가 보다!”고 하였다.

상심한 마음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태산 옥소봉 정상으로 터덜터덜 걸어 올라간 사자연은 저 멀리 눈이 닿는 곳까지 먼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 삽화 박영철

 

봉래산 신선을 찾아서
謝自然사자연은 天台山천태산 도사 司馬承禎사마승정이 자신을 제자로 받아주지 않자 낙심하여 천태산 정상인 옥소봉에 올랐다. 저 멀리 아스라이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가 보였다. ‘그럼 저곳 바다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데,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는 神仙신선이 산다는 蓬萊山봉래산이 있을 것이고 그곳까지는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간세상에서는 스승을 찾을 수 없으니 차라리 봉래도로 가서 신선을 만나 그 문하에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사자연은 도사 사마승정에게 작별을 고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짐과 돈을 버리고 단지 거적자리 하나만 가지고 천태산을 내려와 바닷가로 향했다.

이윽고 사자연은 望望大海망망대해가 보이는 바닷가에 와서 거적자리를 바다 위에 던지고는 그 거적자리 위로 뛰어 올랐다. 潮水조수를 따라 큰 바다로 표류해 갔다.

거적자리 타고 바다 항해
이때 사자연은 이미 ?穀벽곡을 하였고 물조차 마시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있었기 때문에 신체는 더욱 민첩하고 가벼웠다. 따라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으며 배가 고프거나 목마름조차도 없었다.

바다 가운데서 여러 날을 표류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무역을 하는 新羅國신라국의 배 한 척을 만났다. 신라국 무역선은 여자 혼자 거적자리를 타고 바다위에 떠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그녀를 배에 태워 동행하게 한다.

사자연이 거적자리를 타고 바다를 표류하다가 마침 배를 얻어타고 항해를 시작할 그때 바다의 색깔은 짙은 남색이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 해가 지려고 할 때는 바닷물이 곧 붉게 변하였다.

파도가 울렁대는 가운데 그 일대를 지나는데 마치 뜨거운 불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항해한 지 몇 개월이 지나자 바닷물 색깔이 점차 더욱 짙게 변해서 새까맣게 보인다. 그러다가 바닷물 색깔이 점점 옅게 변하더니 이번에는 분홍색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수 일이 지나자 바닷물 색깔이 銀白色은백색으로 변하였으며, 깜깜한 밤이 되자 바닷물 색깔이 진주처럼 광택이 난다.

이름 모를 유황도에 오르다
항해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신라 무역선이 유황처럼 색깔이 노란 해역 안으로 배를 저어 들어갔다. 어느 날 하루 해풍이 돌연 방향을 바꾸어 불자 배는 어느 이름모를 유황으로 덮인 섬에 도착했다.

섬 위에는 산이 있는데, 태양이 이곳을 비추자 황금같이 번쩍인다. 사자연도 무역선의 선원들을 따라 해안선으로 올라갔다. 섬에 상륙하고서야 산이 황금색일 뿐만 아니라 섬 위에 있는 모든 草木초목 禽獸금수조차도 황금색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섬 위의 모든 바위들, 그곳의 크고 작은 것을 말할 것도 없이 전부 다 유황이었다. 그때 무역선의 상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배위에 있는 모든 화물들을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고, 그 귀중한 유황을 배로 옮겨 실었다. 유황을 실은 배가 그 섬을 떠나서 수 일을 항해하자 바닷물 색깔이 비로소 황색에서 점차 짙은 남색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탄 배는 모두 네 종류 색깔의 바닷물을 지나게 되었다. 색깔이 다른 이러한 바닷물을 지나는데 각기 여러 날이 소요되었다
 

ⓒ 삽화 박영철

 

고래를 처음 보다
謝自然사자연이 타고 있는 무역선은 바다위에서 계속 몇 달을 항해하였다. 한 번은 바다위에서 허리케인 같은 돌풍을 만났는데 그 기세가 마치 하늘을 뒤덮을 듯한, 집채만한 파도였다. 배위의 사람들은 모두 魂飛魄散혼비백산하였다.

그때 저 멀리 바다 수면위에 커다란 산 하나가 갑자기 솟아 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산꼭대기 위에는 붉은 색의 깃발들이 가득 꽂혀있다. 이것을 본 선원들은 사자연에게 "저 큰 산은 매우 큰 고래이다. 산위의 깃발들은 사실 고래의 등지느러미이다"라고 한다.

돌풍이 멈추고 파도가 고요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자연은 또 저 멀리 먼 곳에서 한 줄기 하얀색 기운이 공중으로 쭉 뻗치는 것을 보았다 . 수 십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다. 선원들은 사자연에게 "이것은 고래가 숨을 내쉴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한다. 아무튼 사자연은 큰 바다를 항해하면서 많은 괴상한 동물들과 기묘한 물건들을 처음으로 접해 보았는데 모두가 神奇신기한 것이었다.

이곳이 봉래산인가?
항해하던 중 어느 날 하루, 배가 이름모를 섬에 도착했다. 섬 위에는 삼림이 빽빽이 우거져 있고, 곳곳이 꽃향기와 새 울음으로 그득하였다. 그 경치는 아름답기가 말로 형용키 어려웠다.

선원 한 명이 먼저 상륙해서 그곳을 살펴보더니, 배로 돌아와서 멀리에 집들이 보인다고 하며 상륙해도 좋다고 보고한다. 마침 바람도 불지 않아 배를 해안에 정박시키고, 배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이 섬으로 올라가 유람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하면 그때 계속 항해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배위의 상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섬으로 올라가 사방으로 흩어져 한가롭게 유람하였다. 사자연도 홀로 그 섬을 둘러보고 있는데 섬 위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이곳이야말로 정말 蓬萊仙山봉래선산이 아닌가?"라고 짐짓 추측해본다.

드디어 도사를 만나다
막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 멀리 평탄한 곳에 잘 정비된 정원 하나가 눈에 뜨인다. 사자연은 그곳 정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원 안에는 요소요소에 奇花異草기화이초, 진기한 새와 기묘한 짐승들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자 쇠를 두드리는 듯한 맑은 소리가 났으며, 처음 보는 기이한 화초들은 모두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아름다운 난새와 백학이 날기도 하고 보금자리에 앉아 있기도 했다. 몸에 오색문양을 갖춘 특이한 개는 사람을 보고도 짖지도 않는다. 사자연이 정원을 통과하여 대청에 올랐는데 대청위에는 몇 명의 도사들이 앉아있다. 도사들 옆에는 푸른 옷을 입고 시중드는 侍者시자가 있었다.

도사들 중에는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몸에는 구름무늬의 겉옷을 걸쳤고 외모는 단정하고도 아름다웠다. 시자가 그 여자 도사에게 사자연을 인사시킨다. 여자 도사는 사자연에게 직설적으로 "당신은 왜, 무엇 때문에 고국을 떠나 망망대해를 가로 지르면서 이렇게 항해를 하게 되었는

가?"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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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박영철

 

사마승정이 진짜 신선
女道士여도사가 謝自然사자연에게 이곳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이 섬에 온 연유를 물었다. 사자연은 중국에서는 스승을 찾을 수 없어 중국을 떠나 蓬萊山봉래산으로 스승을 찾으러 온 그간의 경과를 빠짐없이 설명했다.

이 말을 다 듣고 난 그 여 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봉래산은 이곳에서 30만 리를 더 가야 한다. 그 중간에는 배가 뜰 수 없는 얕은 물로 되어있다. 다만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飛仙비선만이 날아서 갈 수 있으며, 보통 선박으로는 갈 수 없다. 당신들 당나라에 있는 天台山천태산에는 司馬承禎사마승정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은 신선들의 명부인 名列仙籍명열선적에 올라있다. 바로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스승이다. 그런데 당신은 하필 봉래산으로 가서 신선을 찾으려고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내가 당신이 되도록 빨리 중국으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주겠다.”

동풍을 타고 중국으로
이 말을 들은 사자연은 활연대오한 듯 가슴속까지 후련해졌다. 즉각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여 도사는 도와줄 侍者시자 한 사람을 골라 사자연을 배웅케 하였다.

사자연이 선착장으로 되돌아와 배에 오르자마자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였다. 배 위에서는 뱃사공들이 출발 신호음을 울리면서 상인들에게 빨리 배에 오르도록 재촉하였다. 모두 배에 다 오르자 돌연 동쪽에서 큰 바람이 일었다. 배는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스스로 움직여 나아갔다. 뱃사공들이 방향을 돌리고자 하였으나 불가능하였다.

큰 바람이 연달아 3일간 불고나자 선박은 어느덧 台州태주 해안가에 닿았다. 이에 사자연은 몹시 기뻐하면서 배에서 내려 해안에 올랐다. 그 즉시 이전에 사마승정을 모시고 많은 시간을 보냈던 天台山천태산으로 돌아갔다.

사마승정을 다시 뵙게 된 사자연은 그간의 일체 경과에 대해 사실대로 아뢰었다. 사마승정에게 자신이 스승을 구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부족했음을 고백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간절히 용서를 빌었고, 부족한 자신에게 道法도법을 전수해 주기를 간청했다.

사마승정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마승정은 비록 몸은 여자지만 사자연의 求道心구도심이 간절한 것과 곤란함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높이 사서 마침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사마승정은 吉日길일을 골라서 제단을 만들어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도법을 전수해 주었다.
도가의 상승수련법인 상청법을 다 배운 사자연은 스승 사마승정에게 이별을 고하고 果州과주로 되돌아와 계속해서 수련하였다. 사자연은 자신이 어린시절에 살았던 大方山대방산 위에서 살았다.

貞元 6년(790) 4월, 새로 부임한 과주자사 韓佾한일이 사자연을 찾아왔다. 그는 사자연이 능히 辟穀벽곡 絶水절수할 수 있는 비법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면서 그것이 거짓이라고 의심하였다.
 

ⓒ 삽화 박영철

 

수개월을 먹지 않고도 건강해
果州과주 자사 韓佾한일은 ‘사자연이 곡식과 물을 정말 먹지 않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특별히 사자연을 과주 청사내 북쪽에 있는 東閣동각으로 초청했다. 초청한 후 동각의 문을 수개월 동안 닫아걸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자사 한일은 몸소 가족들과 관리를 거느리고 와서 잠가두었던 동각을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사자연은 아무 탈 없이 평안하였으며 오히려 피부는 더욱 광채가 났고 음성은 밝고 활기찼으며 주린 기운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사자연이 확실히 ?穀벽곡, 絶水절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자리에서 한일은 자기의 딸인 韓自明한자명으로 하여금 사자연의 제자가 되도록 하였다.

貞元정원 7년(791) 11월, 한일은 딸 한자명이 사자연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받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군청 곁에 道觀도관을 새로 지었다. 사자연을 초청해서 이곳에서 거주하게 하였다.
貞元정원 9년(793) 과주자사 한일이 임기가 만료되자 신임자사 李堅이견이 부임해 왔다. 사자연은 이견에게 “이곳 군청 소재지는 지나치게 시끄럽다. 산중으로 옮겨가고 싶다.”고 하였다.

금천산에 도관을 세우다
이에 자사 이견은 金泉山금천산에 도관을 세워 주겠다고 하였다. 貞元 정원 10년(794) 3월 3일, 사자연은 金泉道觀금천도관이 완성되자 그곳으로 옮겨갔다. 자사 이견은 도교를 독실히 믿었으므로 시간이 날 때면 늘 금천산으로 가서 사자연을 찾아뵙고 사자연에게서 大道至理대도지리의 가르침을 받았다.

사자연이 금천도관에 있을 때 매우 좁은, 한 칸의 방에 거주하였는데, 방안에는 침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방안에 침상이 놓이고 나자 사방에는 겨우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통로만 남을 정도로 작았다. 사자연이 이곳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오후, 문밖에 홀연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뱀들이 둘러싸며 수련을 돕다
큰 뱀의 몸 둘레는 3자, 길이는 한 키가 넘었으며 머리위에는 두 개의 작은 흰색 뿔이 돋아 있었다. 큰 뱀은 방 입구 문지방을 베개로 하고 입으로는 빽빽하고 짙은 하얀 안개를 품어 내는데 순식간에 짙은 안개가 방 전체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짙은 안개가 의자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사자연을 엄밀히 둘러 싸버린다. 그 형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한참이 지난 후 짙은 안개가 점점 사라지면서 큰 뱀도 사라졌다.

이 일이 있고난 후 늘 십여 마리 작은 뱀들이 침상 주변에 출몰하였는데, 크기는 보통 사람의 팔뚝 굵기였고 더 큰 것은 사람의 다리 굵기였다. 검은 색 또는 흰색이었으며, 어떤 것들은 하얀 안개를 품어내었고, 어떤 것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서로가 뒤얽혀 또아리를 틀기도 하였다.

이러한 뱀들은 비록 사람을 공격하여 상하게 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무서워서 사자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조용히 수련하고 있는 사자연을 일부러 방해하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부모조차도 사자연이 거주하는 방으로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사자연은 이 심산유곡 가운데 있는 금천도관에서 아침, 저녁으로 늘 혼자 있게 되었고, 또 혼자 있는 것을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함을 즐기면서 오로지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 삽화 박영철

 

왕모가 갑자기 방문하다
貞元정원 10년(794) 7월15일 새벽녁, 盧氏노씨 성을 가진 使者사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자신을 金母元君금모원군 즉 西王母서왕모가 파견했다고 소개하며 “특별히 서왕모가 행장을 갖추어 곧 강림해 올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얼마 되지 않아 다섯 가지 색깔의 구름과 안개가 둥글게 둘러싼 가운데 서왕모는 푸른색의 난새를 타고, 그 뒤를 따라온 신선들 중 어떤 신선은 학을 타고 또 어떤 신선은 용을 타고 공중에서 내려와 사자연이 거주하고 있는 정원으로 들어섰다. 사자연이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면서 예를 올렸다. 서왕모는 사자연을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너와 내가 헤어진 지 이미 二劫이겁이 지났구나!” 하였다.

서왕모는 사자연에게 앉으라고 하면서 먼저 와서 서왕모의 왕림을 알려준 노씨성의 사자에게도 앉으라고 권한다. 노사자는 서왕모의 지시를 받고는 “저는 먼저 紫極宮자극궁에 가서 미리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금일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자극궁에 모여서 中元節중원절(음력 7.15일 백중일)행사를 거행하는데, 반드시 몹시도 흥청거릴 것 입니다.” 하였다.

서왕모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러라고 하였다. 노사자는 그 자리에서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노사자가 순식간에 다시 돌아와 서왕모에게 보고하였다. “금번의 행사는 지난해보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종이를 불태우고 향을 불사르는데 지난해의 그 역겨운 냄새가 없습니다.”

동극진인의 과위를 얻다
서왕모는 사자연이 수련 성취한 上淸法상청법의 그간 경과를 묻고는 한 마디 하였다. “앞으로 얼마 있지 않으면 너와 천상에서 서로 만날 것이다. 그때 너는 東極眞人동극진인의 과위로 복귀할 것이다.”하였다. 그리고 서왕모는 사자연과 천상 신선들의 일을 한참동안 이야기하다가 천상으로 올라가려 했다.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서왕모는 같이 온 많은 신선들에게 “돌아갈 때는 이곳 과주 소재지를 거쳐서 가자.”고 하였다. 많은 신선들은 그러겠다고 하면서 각자 학이나 용을 타고 오색구름이 빙글빙글 돌면서 둘러싸는 가운데 천천히 공중으로 날아 올라갔다.

이날 과주 청사에 근무하던 관리들이 刺史자사 이견에게 “아름다운 무지개가 과주 상공에 떴다가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원근의 많은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았다. 다음날 자사 이견은 사자연을 찾아와서야 비로소 서왕모 등 신선들이 이 도관에 왔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색구름에 둘러 싸여 승천하다
貞元정원 10년(794) 11월 9일 사자연은 갑자기 군 소재지로 와서 자사 이견과 이별을 고하면서 “이달 중순에 승천해서 이곳을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1월 11일부터 수많은 남녀들이 사자연이 飛昇비승하는 장관을 보기위해 金泉道觀금천도관으로 몰려왔다.

11월 20일 이른 새벽 사자연은 어머니 胥氏서씨, 동생 사자유, 제자 이생 등을 불러서 이별을 알리고 그들이 大道대도를 부지런히 수련할 것을 특별히 당부하였다. 다섯 가지 색깔의 구름이 사자연의 거실에서부터 솟아오르더니 점차 금천도관이 있는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이 광경을 보기위해 그 자리에 와있던 수천 남녀들은 이때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것을 느꼈으며, 하늘에서 신선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주변을 가득 메운 오색구름이 점차 공중으로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이 서둘러 사자연이 거처하는 방으로 들어가 보니 사자연은 이미 승천하고 없었다.

과주자사 이견이 이 일을 당나라 德宗덕종 황제에게 보고하자, 덕종은 조서를 내려 이를 장려하고 찬미하였다.

이견은 金泉道場碑금천도장비를 세웠는데, 그 비석에 이견이 친히 사자연에 대한 ‘東極眞人傳’동극진인전을 짓고 이를 새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