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27

醉月 2012. 7. 16. 06:56
꼭지를 따야 맛과 향이 좋아진다

수박

적당한 크기에 줄무늬가 선명하고 녹색이 짙어야 맛있는 수박이다.

1960년 4·19혁명 때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이기붕 부통령 집을 혁명 시민이 ‘접수’했는데, 그의 집에서 별의별 것이 다 나왔다는 말이 돌았다. 그중 백미는 “수박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한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수박이 그 봄날에 어찌 나왔는지 사람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이기붕의 수박’은 당시 독재권력이 강력했음을 상징했다. 중국 당나라 양귀비가 열대과일 리치(여지)를 좋아해 리치를 매단 나무를 수레에 실어 남중국에서 장안까지 두어 달씩 걸려 운송했다고 하니 ‘이기붕 수박’ 정도는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 시절에도 수박을 생산하는 국가에서 비행기로 실어 날랐을 수 있다. 또 하나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국내 하우스 생산이다. 1960년이면 수박이 무척 귀하긴 했지만, 봄 수박이 있긴 했을 것이다. 1950년대 경남 김해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당시 그 하우스에서 수박을 재배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농민의 작품’이 아니라 농업연구기관의 비닐하우스 시범포장에서 재배한 하우스 수박을 이기붕에게 바쳤을 수도 있다.

 

수박만으로 판단하면 요즘 일반인은 이기붕보다 훨씬 낫다. 수확 시기 경쟁이 붙어 한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닐하우스가 있어 초여름 수박도 가능하다. 노지에서 수박을 재배하면 8월은 돼야 먹을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 노지 수박을 내긴 하지만, 수박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 비를 피할 수 있으니 당도는 웬만하면 다 괜찮다. 그러나 수박은 단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럴 것이면 설탕 뿌려 먹으면 된다. 수박향이 더 중요하다. 향 좋은 수박을 고르는 요령 몇 가지를 정리했다.

 

수박은 줄기 아래, 즉 밑동과 뿌리는 대목을 쓰는데, 그 대목은 박과 호박의 것이다. 호박 대목 수박은 빨리 크게 자라지만 그만큼 맛이 없다. 박 대목 수박이 맛있는데, 이 수박은 느리게 자라고 크기도 대체로 작다. 문제는 수박 겉모습만 보고 박 대목인지 호박 대목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으로 봐서는 대체로 크기가 작은 것이 박 대목일 확률이 높다.

 

수박은 크다고 맛있는 것이 아니니 적당히 작은 수박을 고르는 게 요령이다. 적절한 무게는 6~8kg이다. 10~13kg 대형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은데, 이런 수박은 거름을 듬뿍 줘야 하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 가격만 비싸다. 또 수박은 싱싱할 때 가장 맛있기에 큰 수박을 사다 먹고 남은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달아난다. 박 대목 수박 가운데 박 성질이 올라와 조직감이 딱딱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수박은 겉면이 울퉁불퉁하다. 매끈한 수박을 고르는 것이 요령이다.

 

잘 익은 수박은 줄무늬가 선명하고 녹색이 짙다. 한여름 나뭇잎처럼 짙은 녹색인 것을 골라야 한다. 또 잘 익은 수박은 하얀 분이 일어난다. 수확과 운송 중에 분이 많이 닦이지만 군데군데 손자국으로 그 분을 확인할 수 있다. 수박꽃이 피었을 때 수정이 안 됐거나 불량일 경우 속이 꽉 차지 않는다. 이런 수박은 꽃자리(배꼽)가 큼직하므로 꽃자리가 작은 것을 골라야 한다. 수박 꼭지는 싱싱함을 확인해주는 구실을 하지만 오래 붙어 있으면 꼭지를 통해 수분과 맛이 달아난다. 수박을 사오면 그 자리에서 꼭지를 잘라버리는 것이 수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주변 가게는 다 죽어나간다

착한 업소 유감

‘착한 가격 업소’ 인증 마크다. 착한지 어떤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착하다는 기준은 제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행정기관에서 ‘착한 가격 업소’ 지정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업소로 지정되면 가게 앞에 인증 마크 현판을 붙인다. 식당뿐 아니라 각종 소매업과 서비스업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식당들이 유독 이 인증 마크를 많이 달고 있다.

 

착한 가격 업소로 지정된 식당들의 음식값은 정말 싸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이들 착한 가격 업소 중에서도 특히 가격이 싼 업소들을 모아 ‘베스트10’을 뽑았는데, 그 업소들의 음식값을 보면 짜장면 990원, 비빔밥 2000원, 칼국수 3000원, 김치찌개 3500원 등이다. 과연 그 가격에 음식을 팔아도 이윤이 남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 그렇게 싼데 과연 믿을 만한 음식재료를 썼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외식업은 대체로 음식값 대비 재료비가 30% 정도에서 운영돼야 한다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그래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경기도가 선정한 착한 가격 업소 베스트10에서 1위를 한 990원 짜장면의 경우 재료비가 300원 정도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데, 과연 300원으로 먹을 만한 짜장면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조건 싸다고 착한 가격일까. 적절한 이윤을 추구하는, 그러니까 소비자에게 바가지 안 씌우는 정도의 가격이면 착한 가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은 과연 어떤 가격을 착하다고 생각하는가.

 

착하다는 말은 감성언어다. 착하다는 판단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게는 착한 자식인데 남에게는 착하지 않은 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감성언어를 행정용어로 사용하는 일 자체에 문제가 있다. 착한 가격 업소로 지정되면 현판만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원과 혜택이 따르는 모양인데, 착한 가격 업소에서 탈락한 식당이 “무엇이 착한지 그 기준을 대라”고 따지면 할 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초저가 업소’라고 현판을 붙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싶다.

 

착한 가격 업소 지정 사업의 더 큰 문제는 가격을 싸게 책정한 업소가 한편에서는 절대 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옆의 업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악덕 업소일 수도 있다.

한때 초저가 피자가 휩쓸었을 때 외식업계에 밝은 인사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저 가격은 결국 다 죽자는 전략입니다. 저 초저가 피자는 반경 500m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주변에 있는 피자집을 적어도 다섯 곳은 문 닫게 합니다. 그다음에는 저 초저가 피자도 사라집니다. 저 가격으로 버티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거죠. 초저가는 상권 황폐화를 가져오는 공적입니다.”

 

행정기관은 소비자물가 잡기에 열심이란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고자 착한 가격 업소 지정 사업을 기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50여만 외식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판에 단지 가격 하나를 두고 식당들을 착하다 착하지 않다 단정하는 것은 행정력의 오만이다. 외려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물가 담당 행정기관이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착하다고 칭찬할 자격이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착한 가격 업소로 ‘반드시’ 지정됐어야 할 가게가 빠졌다. 대형할인마트다. ‘통 큰’ 시리즈를 내놓으며 일반 가게들은 상상도 못 할 초저가 프라이드치킨 또는 피자 등을, 그것도 주변 ‘고마진’ 소규모 점포들의 방해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그야말로 ‘악착같이 착하게’ 소비자에게 팔았던 그 대형할인마트의 커다란 벽면에 ‘착한 가격 업소’라고 현수막이라도 하나 걸어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약수로 지은 밥 몸에 좋을까요?

약수가 약이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물은 아니다.

 

술 빚는 이에게 물었다. “술맛을 내는 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요?” 그는 좋은 쌀과 누룩, 적절한 온도 등에 대해 설명하다 마지막에 이 말을 했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게 있다면, 물이죠. 술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게 물이잖아요.”

 

술뿐이겠는가. 음식할 때도 물은 반드시 필요하다. 조리된 상태로 봐도 음식에는 상당량의 물이 들어 있다. 그러니 음식맛에 물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식할 때 물맛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까닭은 여럿일 텐데, 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는 물이 좋다”는 신화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계의 물 사정을 들어보면 석회질과 철분 등 각종 무기물이 많아 그냥 마시기에 버거운 지역이 많다고 한다. 한반도의 물이 이들 지역에 비해 나은 것은 맞겠지만 “한반도는 물이 좋다”고까지 확대해 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무기물 등 불순물이 적어 마시기에 거북하지 않다”는 정도가 바른 표현일 것이다.

 

언젠가 일본 메밀국수 장인이 한국에 와서 시연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이 필자에게 말을 전했다. 메밀을 반죽하기 전 그 장인은 물맛부터 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물은 세네요”라고 하더란다. 이 물로는 메밀 반죽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으리라는 표현이었다. 메밀국수 시연장은 최상의 조리시설과 재료 등을 갖춘 상태였을 텐데, 일본 장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다소 놀라웠다. 필자에게 말을 전하는 이에게 “거기엔 연수기가 없었나 보네” 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물은 대체로 마시기에 거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요리하기에 딱 좋은 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일본 메밀국수 장인이 말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물은 센 경우가 많다. 과학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물에는 센물(경수)과 단물(연수)이 있다는 것을. 물에 칼슘이온이나 마그네슘이온이 많이 들었으면 센물이고, 이 두 성분이 적거나 없으면 단물이다. 과학 교과서는 단물에서는 비누가 잘 풀리고 센물에서는 잘 풀리지 않는다는 정도의 지식을 전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물과 센물은 음식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단물은 음식맛을 좋게 하고 센물은 음식맛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단물이 특정 성질을 지녀 음식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이 적거나 없으니 음식이 이 두 성분의 영향을 받지 않아 맛이 좋아질 뿐이다. 그러니까 센물의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이 음식맛을 좋지 않게 하는 불순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은 물 자체여야 음식을 하는 데 가장 이상적이라는 의미다.

 

여름이면 계곡에 약수를 마시러 가는 이가 많다. 물이 약이 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약수 대부분은 음식을 하기에 좋은 물이라 할 수 없다. 물 안에 무기물이 너무 많아 쓰고 떫고 비린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 약수로 밥이며 닭백숙을 해놓고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약수가 몸에 좋다 하니 그 음식이 맛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물은 그냥 물일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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