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길 그리고 걷기

醉月 2012. 7. 10. 06:59

길 그리고 걷기_유철주

 

룸비니에서 쿠시나가르까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든 것이 보장된 왕자 신분을 버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기까지, 또 부처님이 된 이후에도 수천, 수만 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때론 혼자 때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 위에 섰습니다. 80 평생을 걸으면서 부처님은 당신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반에 들면서 “나는 아무 것도 설한 것이 없다.”라며 육신을 벗었습니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다소 ‘허망한’ 말씀처럼 길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렇게 있습니다. 다만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게 할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부처님과 길은 서로 닮았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사람들이 속도를 줄여가며 자신과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걷고 있는 ‘나’, 사유하고 성찰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옆 사람도 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길 위에 있습니다. 물론 걷는 이유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길(路) 위에서 길(道, 法)을 찾으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위치에 서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어느 가수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예~”

 


이 길에서는 동심童心과 염소도 도반이 됩니다. 낭만과 추억의 오솔길. ♩ ♪♬~~~


 

 

 

 

 

 

 

 

 

 

 

 

 

 

 

이제 막 구도의 길에 나선 행자님은 앞서가는 선배 스님만 보며 따라 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행자님은 후학들에게 깨달음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것입니다

 

(사)우리땅걷기 신정일 대표 인터뷰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잉태된다"

 

길 위의 삶과 꿈
제주 올레길에서 비롯된 걷기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둘레길, 해안길, 숲길, 오솔길, 성곽길, 옛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이 앞다퉈 조성되고 있다.
현재 새롭게 만들어졌거나 조성 중에 있는 도보여행길이 수백 개에 이른다. 어느 길을 가든 배낭 하나 짊어지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걷기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길 위에 서게 만드는 것일까? 도보답사의 산 증인이자 걷기의 달인, 문화사학자 신정일(59)‘(사)우리땅걷기’ 대표를 만나보았다.

 


길에서 인생의 비밀을 듣다
‘강호의 낭인’, ‘길의 철학자’, ‘현대판 김정호’라고 불리는 신정일 대표. 그는 걸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수십 만
km를 걸었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등 한국의 거의 모든 강을 따라 걸었고, 400여 산을 오르내렸다. 또한 영남대로(부산~서울), 삼남대로(해남~서울), 관동대로(서울~울진) 등 조선의 옛길과 동해 트레일(부산~통일전망대)을 도보답사해 책으로 펴냈다.
그의 걷기는 본격적으로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면서 시작되었다. 1주일에 최소 4일씩 역사문화 현장을 답사하며 전국 산천을 훑고 다녔다. 2005년에는 (사)우리땅걷기를 만들어 도보답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우리땅걷기 카페(cafe.daum.net/sankang) 회원은 9,000여 명에 이르며, 매주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함께 걷고 있다. 참여자는 적게는 50명, 많게는 300명에 이른다. 그에게 ‘걷기’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니체는‘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했어요.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차를 타고 가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유유히 걷다보면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저모퉁이를 돌면 어떤 새로운 풍경과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설렘과 기대감이 저를 걷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세상을 향해 걷다보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부딪히게 되니, 마음수행하기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걷기는 만병통치약이에요. 『동의보감』을 쓴 허준도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습니다. 매월당 김시습, 『택리지』를 쓴 이중환도 보약 한 재 안 먹고 떠돌아다녔어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어요. 저 또한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걷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길의 역사, 길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 문화유산 등을 느끼면서 걸으면, 인생의 비밀을 듣게 되고 삶도 풍요로워질 거예요.”

 



그는 스스로를 자연대학교를 나와 지금은 총장이 되었다고 소개한다. 길에서 자연, 역사, 문화, 사람을 만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맞닥뜨렸다. 그의 걷기는 스스로에 대해 반복해서 묻고 또 묻는, 스스로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견고한 카메라 끈이 일곱 번이나 떨어지도록 지독하게 걸어온 삶,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부터 연유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북 진안의 섬진강 기슭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어머니가 힘겹게 행상을 하며 마련한 돈으로 중학교에 진학할 두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노름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내성적이며 숫기 없던 그는 늘 외톨이였으며,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진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열다섯 살 무렵,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섰다. 운수납자가 되어 세상을 떠돌며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화엄사로 출가하게 되었다. 산내암자에서 두 달가량 머물며 행자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주지스님이 불렀다. “너는 아무래도 절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차비를 쥐어주는 것이다. 절망과 상처를 안고 절을 나섰으나, 갈 곳이 없었다. 무작정 여수에서 부산으로, 또다시 울산에서 대구로 발길을 옮겨다니다보니 여비가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남의 집 추녀 밑에서 자고 산 열매로 배고픔을 달래가며 고향 집까지 걸어갔다.


“그때의 여행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지 않나 싶어요. 다만 내가 혼자라는 것, 이 우주 속에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라는 것, 결국 인생은 내 식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다시 깨닫는 데 오랜기다림과 고통의 시간이 필요했고, 마침내 자유를 찾아 길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들과 걷다 보면, 오전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 가지만 오후로 넘어가면 ‘나’를 생각하면서 저마다 혼자 걷게 되요. 쉴 때도 혼자 쉬죠. 그것을 보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고, 인간은 결국 혼자 가는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맵고 바르게 한 길을 가라’는 뜻의 이름 ‘신정일辛正一’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16살 때 스스로를 개혁하고 운명을 개척하고자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후 그는 활자중독에 걸린 것처럼 책만 파고 들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도통 앞이 보이지 않던 절망적인 청소년 시절, 오직 책만이 그의 희망이자 탈출구였다. 등잔불 밑에 머리카락을 태워가며 책에 몰입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니체의 책들을 비롯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문학, 역사, 철학서를 섭렵해 나갔다.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
그의 운명은 이미 책을 통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9살 때 ‘광풍’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김시습의 삶에 깊이 매료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진안군 글짓기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는데, “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작가의 꿈이 가슴에 굳게 자리잡혔다. 글을 쓰겠다는 욕망은 너무나 팽배했지만, 머릿속 지식과 생각만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걸었고, 마침내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자신의 경험으로 체화된 글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그는 쉼없이 걸으며 전사처럼 글을 썼다. 그리고 지난 17년간 61권의 책을 펴냈다.


“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요. 조용헌 선생이 말하기를 ‘벼룩 간을 공부한 사람은 벼룩 간만 알 뿐’이라고 했어요. 경험한 것만큼만 쓸 수 있습니다. 『다시 쓰는 택리지』를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데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어요. 자기 전공 분야에만 집중하다보니, 지리를 공부한 사람은 역사에 대해 쓰지 않고 반대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지리에 대해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고 전공 분야도 없으니, 길을 걸으며 쌓아뒀던 자양분으로 역사지리학을 통합해 자유롭게 쓸수 있었지요.”


그의 걷는 모습은 참 가볍고 경쾌하며 편안하다. 나폴나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노루 새끼가 폴짝 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걸음 속에서 잊혀진 길들이 복원되고, 나루터와 고개마루에 주막집이 들어선다. 또한 5대강 박물관이 건립되고, 보행자 전용 도로가 생겨나며, 길의 날(11월 11일)이 제정되어 길문화축제가 열린다. 그가 걸으면 꿈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어 일어난다. 그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해파랑길(부산~통일전망대)을 이어 북한과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 포르투갈을 지나 아프리카 케이프타운까지 걸을 수 있는 세계 최장거리 도보 코스를 문체부에 제안했다. 또한 제주도와 육지에 한 곳씩, 풍류를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공동체마을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예요. 태어날 때부터 갖춰진 역량을 제대로 써보지 못한다는 것은 마이너스 인생 아니겠습니까. 요즘 현대인들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유없이 살아갑니다. 너무 바쁘면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 뿐 남는 것이 없어요. 한가하게 해찰할 줄 알아야 해요. 멈춰서 바라보며 해찰하는 사이에 새로운 것이 발견됩니다. 그 새로움이 희망이 되고 꿈이 되는 거예요. 꿈은 공짜입니다. 꿈을 꾸어야 꿈이 이뤄집니다. 끊임없이 내가 왜 사는지 물어야 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만들어가야 해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몹시도 걷고 싶어진다. 여름에 걷기 좋은 길 추천을 부탁하니, 망설이지 않고 몇 개의 길이 불쑥 튀어나온다. 해파랑길(영덕~울진 코스), 낙동강(봉화 석포면~명호면), 안동 퇴계 오솔길이다. 자연을 벗 삼아 걸으며 오롯이 ‘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걸어서 거제 한바퀴' 모임

좋은 벗과 함께 걷는 삶의 터전

 

보도를보니어린이날과 숲길 어버이날을 앞둔 시점이었던 5월 첫 주는 전국이 명절처럼 들썩였다고 한다. 날이 날이니만큼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멀리 남해안 거제도에는 여느 일요일처럼 섬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걸어서 거제 한바퀴’ 모임의 회원들이다.


 

 걸으면서 배우는 거제의 역사와 문화
5월 6일 오후 2시, 10여 명의 회원들이 거제시 능포동 주민센터 앞에 모였다. 날이 날인지라 평소 모였던 사람의 절반 수준이다. 그래도 참가한 사람들을 보니 회사 동료와 부부 등 다양하다. 매주 얼굴을 보는 사이여서인지 스스럼없다. 시간이 되자 모임의 2기 단장을 맡고 있는 김윤경 거제시종합사회복지관 사무국장의 안내로 이내 모임이 ‘공식’ 시작됐다.
“오늘은 능포동 주민센터에서 양지암 등대까지 갈 예정입니다. 산을 따라 걷는 만큼 조금 쉽지 않은 코스입니다. 산의 신선함과 바다의 시원함을 맛보면 서 즐겁게 오늘 일정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정 안내에 이어 죽비에 맞춰 서로에게 3배를 올린다.
3배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첫 1배는 스스로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다른 1배는 같이 걷는 도반에 감사하며, 마지막 1배는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자연에 감사하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맨바닥에서 서로를 향해 올리는 3배는 그 어떤 ‘절’만큼이나 소중하다.



‘걸어서 거제 한바퀴’라고 쓰인 미니 깃발을 하나씩 들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주위의 풀과 나무가 반갑다. 지난 일주일간 어떻게 살았는지,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봄 바다보다 더 싱그러운 웃음꽃이 피어난다. 웃으며 걷는 사이 양지암 조각공원이 나왔다.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공원에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런데 궁금했다. 왜 ‘양지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까? 공원을 관리하고 있는 관계자에게 물었다. “원래 이곳에 양지암이 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1959년 태풍 사라가 와서 그 암자를 삼켜버렸지요. 그때 그 양지암의 이름을 따서 이 공원이 만들어진 것입니다.”다들 처음 듣는 눈치다. 고개를 한참이나 끄덕인 뒤에 일행은 다시 걸었다.

거제 구석구석을 누비다!
회원들은 이렇게 걸으면서 거제의 역사와 문화 등을 배워간다. 거제에 살고 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이제는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주민들보다 회원들이 거제의 역사에 대해 더 잘 알 정도라고 한다. ‘걸어서 거제 한바퀴’는 2009년 3월 29일 시작됐다. ‘거제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11차례의 예비 모임과 54회의 정기 모임으로 1차 걷기를 마쳤다. 1차에서만 거제의 해안 길 700리, 내륙길 300리, 12개의 산과 6개의 섬 길을 걸었다. 말 그대로 거제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추석과 설에도 쉬지 않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걸었다.
그리고 2011년 2월부터 2기 모임을 시작해 회향을 앞두고 있다. 2기 역시 1기에 못지않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1기와 2기를 합해 연인원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걸어서 거제 한바퀴’모임을 이끌고 있는 박기련 거제시종합사회복지관장은 “우리는 행복과 즐거움의 길을 걷고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자연과 생명이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으며, 나태와 게으름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우리는 그 행복과 즐거움 속에서 사각死角과 소외疎外를 넘어, 배려와 소통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날 걷기에 동행한 조삼래(41).김연경(41.거제시 고현동) 부부는 “딸이 함께 못 와서 아쉽긴 하지만 좋은 벗들과 함께한 좋은 시간이었다. 5월이 가정의 달인데, 다음 주에는 많은 회원들이 가족과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거제라는 큰 울타리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또 걷고 있다.


마가 스님과 함께하는 걷기명상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서로의 ‘미모’를 뽐내고 있던 5월의 남산공원. 꽃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걷고 있다. 주변의 걸음들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앞 사람을 따라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걷기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마가 스님이다. 사람들은 마가 스님을 따라 걸으며 ‘나를 내려놓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조심조심’이 명상의 시작
마가 스님과 10여 명의 사람들은 걷기명상을 하고 있다. 스님의 지도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을 떼어 나갔다.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마음에 는 평화를 담아 보세요. 걸음은 조심조심해서 내딛어야 합니다. 앞사람과의 간격은 1.5m 정도로 유지합니다. 조금 가깝게 붙으면 ‘내가 급하구나’, 조금 떨어지면 ‘조화롭지 못하구나’라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눈은 1%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 앞을 보고 99%는 발을 봅니다. 허리는 세우고 몸의 힘은 뺍니다.”
사람들은 진지하게 걸었다. 아마도 이렇게 조심스럽게 걷기는 처음일 것이다. 낙엽 위를 걸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 “여러분
들 주위를 보면 꽃이 참 예쁘죠? 꽃에게 인사 한번 해볼까요?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이렇게 네가 피었구나’ 우리도 꽃과 같은 마음이 되어서 걸어 봅
시다.” 마가 스님은 ‘특유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명상 동참자들을 격려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얼마 전까지는 달리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걷기가 대세입니다.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걸으면서 명상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걸으면서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빠져 있으면 그냥 운동일 뿐이에요.” 딸에게는 절대 쏘이지 않는다는 봄볕이 명성(?)만큼이나 꽤 따가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쉴 겸 자리를 잡았다.


“자, 돌에 앉아서 눈을 감고 허리를 펴고 몸의 모든 감각 기관을 열어 세상을 그대로 느껴볼까요? 음악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바람이 다가와 내 몸과 닿는 그 느낌을, 눈을 감은 채 손으로 주변을 만지면서 느껴지는 것을 확인합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2인 1조가 되어 손을 잡고 걷는다. 그런데 그냥 걷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길에서 내려놓았으면 하는 한 가지를 정해 서로에게 얘기를 하며 걷는다. 쑥스러움도 잠시, 이내 서로의 상담자가 되어준다.



회향하고자 시작한 걷기명상
2시간여 동안 이어진 걷기명상은 그렇게 ‘나’를 느끼고, ‘주변’을 느끼고, 주변의 생명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가 스님이 걷기명상을 시작한 것은 작년 4월부터다. 우연히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에 다녀온 뒤부터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 목사님은 오로지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밥을 펐습니다. 아무 조건이 없었죠.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사회에 회향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모이기 쉽고 주변 환경이 좋은 남산에서 매주 걷기명상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되는 마가 스님의 걷기명상에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보통 50명 이상, 많을 때는 80여 명 정도가 함께 한다. 스님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다. 응어리를 풀어야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날 걷기명상에 참석한 박종헌(76.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씨는 걷기명상을 하면서 삶의 행복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매일 아침 40분씩 걷기명상을 하며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노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이 없어졌습니다. 머리도 맑아지고 기억력도 좋아지고 있어요.” 조원진(65.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씨는 “내 마음을 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려 한다. 마음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것들을 걷어내고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보려 하니 너무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마가 스님의 말처럼 걷는 순간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


걸어라, 거기 삶이 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의 성공을 보고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걷는 길을 개설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근사한 도보여행 길이 갖추어졌다. 걷는 것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일까?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
바람결에 날아가지 않도록 눌러쓴 밀짚모자 아래로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지리산을 생명 평화의 산으로 가꾸고자 지리산종교연대가 주관하는 1,000일 순례. 스님, 목사님, 원불교 교무님 등이 하루에 한 명씩 릴레이로 노란 몸자보를 입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봄이 깊어지면서 지리산 둘레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적잖은 이들이 울긋불긋한 배낭과 등산복 차림으로 둘레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걷기 여행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큰 흐름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실상사 도법 스님을 대표로 하여 (사)숲길이 2007년 1월 설립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제주도 올레길을 만드는 (사)제주올레가 설립되었다. 2007년 가을부터 제주 올레길이, 2008년부터는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길, 새로운 방식의 여행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폭발적이었다.
둘레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차도에 자동차가 질주하는 것이 보인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고속도로를 만든다. 먼 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이 속도경쟁의 심리 가운데 하나는 결과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이리라. 미래의 성공, 목표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양보하고 헌납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삶을 곰곰이 통찰해보면,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과거와 미래를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삶이 충실해지고, 과거나 미래에 붙잡히면 공허한 삶이기 십상이다.
걷는 것은 늘 과정인 현재의 가치를 자각하는 것이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좋은 수행이다. 도착하는 곳이 중요하다고 하여 한꺼번에 두 걸음을 내딛을 수 없으며, 중간을 생략할 수도 없다. 생각에 빠져 걷다보면 발을 헛디디는 경우가 생기고, 빨리 가려는 욕심이 앞서면 곱절로 힘들어진다. 이런 것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걸음이다. 반면 두 발로 땅을 딛는 몸의 규칙적인 리듬에 몸을 맡기면 난마처럼 얽힌 생각도 가벼워지고 정리된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새로운 관계로 다가오는 모든 존재들을 바라보고 느끼다 보면, 온 세상과 내가 끊을 수 없는 고마운 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이것은 존재의 실상을 통찰하는 깨어있는 행복한 걸음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길을 걷는 것이 그대로 인생이라고 한 것일까.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돌아가신 분이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두 강대국 국왕의 절대
적 귀의를 받으셨다. 호화로움이나 편안함을 얻고자하면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련만 당신은 코끼리나 마차를 마다하고 늘 두 발로 땅을 걸으셨다. 동물의 수고로움으로 자신의 편안함을 얻고자 하지 않는 자비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당신께서는 걷는 행복을 늘 자각하셨으리라.



걸음걸음이 극락정토!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하면서 땅을 내딛는 단순한 동작, 그러나 이 걸음은 더없는 신비요 기적이다. 한걸음 내딛는 그 동작에 온 우주가 참여한다. 해와 달과 별이 참여하는 질서로 자연이 펼쳐지고, 흙은 발을 받치고, 물은 흙을 덩어리지게 하고, 공기는 숨으로, 밥은 움직일 에너지로 참여한다. 밥 한 알에도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으니, 밥을 자양분으로 하여 움직이는 이 순간도 또한 온 우주의 참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각으로 걷는 걸음은 늘 충만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The pure land at every step.”이라고 실상사에 적어놓으셨는데, 이 또한 같은 말이 아니겠는가. 걸음걸음이 극락정토다.


천천히 걸으면서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찰하는 깨달음의 걸음, 느리게 걸으면서 주변을 발견하고 감상하는 여유로움의 걸음, 의미를 담아 나아가는 순례의 걸음, 몸에 활력을 주는 율동감 있는 걸음, 이렇게 어떤 걸음이라도 현재에 깨어있게 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에 건강과 풍요와 평화를 가져 다주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낯선 곳에 다녀올 때 우리가 곧잘 하는 말이 있다. “갈 때는 제법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올 때는 금방이네.” 이 말에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사실 한 조각이 담겨져 있다. 처음 찾아갈 때의 시간과 돌아 나올 때의 객관적 시간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갈 때의 우리 마음은 직면한 낯선 것을 받아들여 인식하고 기억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이미 새로운 정보가 아니므로 마음은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 객관적 시간이 같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느낀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인생의 시계에서는 객관적 시간보다 주관적 시간이 더 중요하다.


걷는 것, 그것은 주관적 시간에서 남들보다 더 장수를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경이로움으로 충만한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다. 걷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많다. 명상이 좋은 줄 알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운동도, 봉사활동도,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단다. 그러나 이들에게 정말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하고 값진 것인지를 헤아리는 지혜가 아닐까.
걷는다는 것, 그것은 온전히 살아있다는 말이다.



치유와 명상의 사찰 숲길

불교에서의 숲은 수행자들이 머무는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다. 사찰 숲은 사찰의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게 지켜져 온, 사찰 숲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요 명상이다.
오감을 활짝 열고 천천히 숲길을 걸으며 싱그러운 숲이 주는 생명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느껴보자. 여름으로 가는 길목, 사찰생태연구소에서 추천하는 걷기 좋은 사찰 숲길 열 곳을 소개한다.


문경 김룡사 숲길


김룡사 숲은 들머리부터 그윽하다. 참나무류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서어나무, 층층나무, 생강나무, 단풍나무, 화살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전나무 숲이 곳곳에 그윽하게 자리하고 있다. 몸집도 다들 좋아서 거목들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울진 불영사 숲길
불영교를 건너면 햇살 좋은 숲길이다. 길섶과 숲속 다양한 초본류와 참나무를 비롯한 산벚나무, 왕버들, 오리나무, 산초나무 등이 잡목 숲을 이루고 있다. 천길 벼랑 위로는 금강송들이 저마다 화두를 들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 불영산수화’가 바로 이것이다.


 

 

해남 대흥사 숲길

겨우 한두 사람 비켜 다닐 좁은 숲길이지만, 숲길은 넓을수록 멋이 적은 법이다. 풍치 좋은 이 골짜기 길은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불린다. 편백과 삼나무
군락은 일본을 본토로 하는 외래종이지만, 우리 나무들과 천연덕스럽게 잘 어울려 있다.


 

 

 

고창 선운사 숲길

도솔천 물가엔 늙은 나무들이 총림의 노장들처럼 온화하게 나와 서 있다. 부도와 탑비들을 둘러싸고 편백, 삼나무, 전나무 등이 그윽한 숲을 만들고 있다. 피톤치드와 타르펜 방출량이 많아 고도의 정신수행을 하는 스님들에게 매우 유익하다.


 

 

 

 

 

포항 보경사 숲길
일주문에 들어서면 주위로 노송 숲이 그윽하다. 절집의 노거수는 살아있는 역사물이다. 노거수 목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그 속에 화재나 풍수해 등등 흔적이 입력되어 있다. 그래서 노거수를 생명문화재라 한다.


 

 

 

 

 

평창 월정사 숲길
일주문부터 큰절까지 활엽수를 수하에 거느린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숲속을 걷는 동안 숨소리와 걸음걸이와 물소리 등을 관하면서, 내 몸이 어떻게 나무가 되고, 물소리가 되고, 솔바람이 되는지를 본다.


 

 

 

 

 

강화 전등사 숲길
성곽을 따라 한 바퀴를 걷다 보면 늙은 소나무와 젊은 활엽수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혼효림을 만날 수 있다. 대웅보전 뒷 숲을 수행의 숲이라고 한다면 남문 밖 솔숲은 탐방객들을 위한 휴식의 숲이라 할 것이다.


 

 

 

 

보은 법주사 숲길
오리五里숲에는 활엽수들이 노송들과 함께 터널을 이루고 있다. 오리숲은 참 아름다운 길이다. 소나무와 전나무 등 키 큰 교목들이 만들어내는 직선미와 구불구불한 숲길이 만들어내는 곡선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합천 해인사 숲길
홍류동에서 해인사까지는 계곡을 끼고 숲길이 나 있다. 소나무들이 층층이 분재처럼 자라고, 인적이 드물어서 새들의 도솔천이다. 계곡 숲은 ‘자연의 비타민’인 음이온이 넘친다. 알파파를 활성화해 명상과 신경안정에 효과가 높다.


 

 

 

 

 

양산 통도사 숲길
계곡을 따라 ‘무풍한송無風寒松’ 소나무숲이 늘어섰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기가 붉은 전형적인 적송이다. 이를 두고 옛 사람들은 적룡赤龍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솔숲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용틀임하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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