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15

醉月 2012. 2. 19. 11:51

노는 바다 따라 생선의 맛이 다르다

참 미묘한 생선

완도 어시장에서 만난 생선. 연안의 작은 배가 한 그물에서 올린 것이다.  

 

필자는 남녘 바닷가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어릴 때부터 온갖 생선을 먹었다. 볼락, 복어, 농어, 전어, 감성돔, 참돔, 돌돔, 망둥이, 대구, 갈치, 고등어, 조기, 부세, 아귀, 붕장어, 갯장어…. 어시장에 가면 이런 생선이 지천이었고 또 싱싱했다. 그때는 몰랐었다. 이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에 왔다. 또 얼마 후 온 가족이 서울로 살림을 옮겼다. 그러면서 고향 바다와 멀어졌다. 그 멀어진 고향 바다를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생선 때문이었다. 시장에는 온통 냉동 생선밖에 없었고 간고등어나 갈치는 한물간 것뿐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수산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는데, 거기라고 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장바구니에는 생선이 몇 마리 들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리를 톡톡 두들기며 “아이고, 서울에는 정말 먹을 게 없다”고 하셨다.

 

어느 때는 어머니를 따라 수산시장에 갔는데, 웬만해 보이는 생선도 “아니다, 아니다” 하셨다. 옛날 고향 어시장 것과 비슷한 전어를 보시고도 “이건 아냐, 이건 맛없어” 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나는 어머니의 그 까다로움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고향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진작가와 제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사진작가는 제주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자랑하려고 필자에게 온갖 것을 다 먹였다. 그때 정말 맛있게 먹은 게 고등어였다. 그는 말했다. “이건 그냥 고등어가 아니야. 근해에서 작은 배가 잡은 고등어야. 이게 진짜 고등어지. 제주 것이라 해도 먼바다에서 큰 배로 잡은 고등어하고는 달라. 해안가 바로 옆에서 잡은 게 맛있어.” 옥돔도 그렇고 갈치도 그렇다고 했다. 그때 내 고향 바다가 생각났고, 어머니 얼굴도 떠올랐다. ‘그래 맞아, 어머니 눈에는 그 바다가 다 보였던 거야.’

 

여기까지 읽고 무슨 만화 같은 이야기하고 있네 하는 독자도 있을 테고, “그래 맞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바다 가까이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 중에는 필자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가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육지와 가까운 바다의 생선과 먼바다의 생선이 왜 맛에서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 제주의 그 사진작가는 육지와 가까운 바다는 물살이 거칠고, 먼바다는 그렇지 않은 탓이라 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물고기가 연안에 몰렸을 때의 생리적 상태나 먹이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아무튼 무엇인가가 다르다.

 

그러나 그 바다의 차이를 말로 이해했다고 해도 생선을 보고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감각이 당장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슷비슷한 생선을 보면서 어찌 그놈들이 놀던 바다를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또 어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비록 생선 보는 눈은 없어도 또 다른 시각으로 연안의 생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요즘은 바닷가 어시장에도 먼바다 생선이 잔뜩 깔려 있으므로 이 방법이 유용할 것이다.

 

아래 사진은 전남 완도의 어시장에서 찍은 것이다. 농어, 불볼락(열기), 망상어, 참돔, 감성돔, 조피볼락(우럭) 등이 한 상자에 담겼다. 자세히 보면 산 놈이 있고 죽은 놈도 무척 싱싱하다. 이 생선은 육지와 아주 가까운 바다에서 한 그물에 잡힌 것으로, 작은 배가 잡아온 것을 부두에 닿자마자 시장에 푼 것이다. 먼바다 생선은 대체로 종류별로 분류해 어판장을 통해 경매하고, 이를 상인이 받아 팔기 때문에 이렇게 한꺼번에 살아 있는 상태로 팔리는 일은 없다. 또한 같은 종의 생선이 크기가 제각각인 것도 연안에서 작은 배가 한 그물로 잡은 것이라는 증거다. 바닷가 어시장에 갔다가 이런 생선 무더기를 만나면 복 받은 것이다. 이런 생선을 보면 무조건 사라.

 

‘상다리 부러져라’ 무조건 많이 차리기

한정식집 유감

 

 

 

전국에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한정식집이 많다. 취재를 위해 유명한 곳을 두루 다녔는데 아직 방문하지 못한 식당도 꽤 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여러 이유로 지방을 갈 일은 많다. 하지만 이들 한정식집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일이 허다하다. 최소 2인상, 보통 3~4인상을 내는데, 혼자 달랑 취재 가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3~4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돈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설령 인원을 채운다 해도 한정식집 가자고 하면 부담되는 일이 또 있다. 상에 가득 차려진 음식 때문이다. 필자는 한정식집 밥상에 올라온 음식을 다 먹어본 적이 없다. 음식 남기면 안 된다고 밥상머리 교육을 철저히 받았지만 다 먹으면 탈 날 것이 빤하기 때문에 음식을 남긴다. 또 많은 음식을 먹고도 만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 역시 문제다. 한정식집 문밖을 나서자마자 그 많은 음식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갖가지 음식이 제각각 다 맛있다 해도 인간의 미각과 관련한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보통은 강렬한 인상을 받은 한두 가지를 기억하기도 어렵다(각자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한정식집 상차림에서 인상 깊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손가락으로 꼽아보라. 몇 가지나 꼽을 수 있는가).

 

‘사진1’은 충북 보은군의 한 한정식집 상차림으로, 이곳 음식은 참 맛있다. 식당을 연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살아 계실 때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때에 비해 맛이 조금 빈 듯하지만, 여느 식당과 비교하면 그래도 훌륭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주방 일꾼은 여전해 그럴 것이라 짐작한다. 사진 속 밥상은 2인상이다. 다 먹을 수 있겠는가. 물론 씨름 선수 정도의 대식가라면 이 음식으로 모자랄 테지만, 보통은 다 먹을 수 없다.

 

‘사진2’는 ‘사진1’의 상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담은 도시락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식당은 식탁 옆에 빈 도시락을 놔둔다. 남은 음식을 싸 가져가라는 ‘배려’다. 남은 음식을 손님이 원하면 포장해주는 그 ‘배려’도 손님 처지에서 보면 당연한 권리다. 빈 도시락을 눈에 띄게 준비해놓은 것만도 한국 식당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므로 ‘배려’라고 작은따옴표를 붙였다.

‘사진2’의 도시락이 꽉 찬 것은 미리 도시락이 있음을 확인하고 상에 놓은 음식을 계획적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음식, 물기가 없는 음식은 젓가락을 대지 않고 도시락에 담았다. 이렇게 싸 가져온 ‘사진2’의 도시락으로 집에서 두 끼니를 먹었다. 참 엄청난 양의 음식이 상에 오르는 것이다.

 

한국인은 전통 한국 음식이라 하면 한정식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어원이 어떻든 한정식을 ‘한국의 정식’이라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 “한정식의 상차림은 어때야 하느냐”고 질문하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정식은 손님이 절대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차리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면 한정식집 주인도 웃고 손님도 웃는다. 웃기는 일이 맞다. 음식물 쓰레기를 일부러 만들어내는 상차림이란!

보은군의 저 식당에서 도시락을 들고 나오며 ‘이거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또한 웃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러 갔지 반찬 사러 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남을 게 빤한데도 저 상차림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한정식집 주인님들, 왜 그래요?”

 

달콤한 유혹 ‘설향’이가 너무 이~뻐
겨울 속 봄 딸기

하우스 딸기다. 품종은 ‘설향’이지만 눈의 향이 아니라, 봄의 향기를 담고 있다.  

 

딸기는 예전에 양딸기라고 했다.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딸기가 있어 서양에서 온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 위치가 바뀌어 양딸기는 그냥 딸기가 됐고 그 원래의 딸기에는 ‘산-’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딸기는 아메리카 지역이 원산지다. 18세기 유럽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해 전 세계로 번졌다. 한반도에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딸기는 예전에는 노지에서 재배해 수확이 가능한 5월 말에나 먹을 수 있었다. 1970년대 대학에 다녔던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5월이면 대학은 축제기간에 돌입하는데, 이때 미팅을 많이 했다. 특히 딸기밭에서 하는 이른바 ‘딸기팅’이 인기였다. 그때 수도권 딸기밭은 서울 서대문구 일대, 경기 수원에 많았다. 81학번인 필자는 ‘딸기팅’의 거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어느 지역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날 딸기밭 원두막에서 처음 본 청춘 남녀가 단체로 둥그렇게 앉아 바구니에 가득 담긴 딸기를 엄청 먹었더랬다. 그때 앞에 앉았던 여학생 얼굴은 생각나지 않고, 작고 맛없는 딸기에 소주를 마셔야 했던 쓴 기억만 생생하다.

 

그 봄날의 딸기가 계절을 잊은 지 오래다. 요즘에는 크리스마스 전후에 비닐하우스 농사로 지은 딸기가 그해의 첫 생산품이라도 되는 양 시장에 깔린다. 당도와 때깔은 노지 딸기에 비해 월등하지만(필자 기억으로는) 옛날 정취가 나지 않아 섭섭하다. 또 5월에 나오는 것이라 해도 노지 재배는 없다는 것이 더 서운하다.

 

딸기 농부에게 물어봤다. “왜 노지 딸기가 없어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비가 옛날 비가 아니에요. 산성비가 내려서 딸기가 다 녹아요.” 아 그렇구나! 딸기 하나 노지에서 키우지 못하는 환경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딸기는 한때 ‘장희’ ‘육보’ ‘레드펄’ 등 일본 품종을 많이 심었다. 국내 품종보다 당도가 높고 생산성도 좋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로열티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0년대 중반 국내 품종 ‘설향’이 나와 농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설향’ 맛이 일본 품종보다 낫고 생산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설향’은 충남도농업기술원 논산딸기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엔 ‘향’자 돌림의 ‘매향’ ‘금향’도 있다. 향을 특화한 딸기라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인데, 한곳에서 ‘설향’과 일본 품종의 딸기를 비교해 먹어보면 그 상큼한 향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일본 품종은 그냥 단맛만 있는 정도다.

 

요즘 시장에선 딸기 상자에 품종을 표시한다. 일본 품종은 로열티를 줘야 한다니 한국 품종을 찾아 먹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설향’이 낫다, ‘매향’이 낫다, ‘금향’이 낫다 등 말이 많은데, 필자 입에는 ‘설향’이 맛있다. 향도 좋고 과육도 단단하며 알이 굵다. 한 알이 한입에 꽉 차는데, 입안 가득 ‘설향’을 베어 물면 이른 봄 물기 머금은 풋풋한 식물 향이 물씬 올라온다. ‘설향’ 개발자가 겨울에 주로 수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눈의 향’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겠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은 봄이다. 눈 속에서 맛보는 봄 향기다. ‘딸기팅’을 위해 딸기밭에서 만났던 청춘들도 이 겨울의 딸기를 먹으며 눈부신 봄날을 추억하고 있을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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