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 굵고 갈수록 탱탱 늦가을 전어를 먹어라!
흔히 가을 전어라 한다. 그러나 도심의 횟집, 포장마차에서는 여름 전어라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여름이 끝나간다 싶은 8월 말이면 수족관에서 전어가 헤엄을 친다. 아직 잔챙이라 맛이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성급하게 먹는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성질 급한 한국인’ 시리즈에 꼭 어울린다.
9월과 10월이면 한반도 바닷가 여기저기서 전어 축제를 연다. 다들 자기 고장의 전어가 맛있다고 주장하지만 지역 따라 전어 맛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를까 싶다. 전어는 붙박이 물고기가 아니므로 어제 전라도에서 잡혔어야 할 놈이 오늘 경상도에서 잡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지역의 전어가 맛있다고 기억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전어를 먹을 때면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자신이 먹었던 전어 중 맛있던 것의 산지에 대한 이야기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하려면, 산지와 더불어 언제 먹었는지를 덧붙여야 한다. 전어는 언제 것이냐는 시기에 따라 맛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11월 중순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전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차렸겠지만, 이때 전어는 산지 따질 것 없이 다 맛있기 때문이다.
전어는 난류성 물고기다. 겨울에는 남쪽 저 먼 바다로 내려가 있다가 4월 즈음 연안에 붙기 시작해 7월까지 산란을 한다. 이때가 가장 맛이 없다. 살이 푸석하고 비린내도 심하며 고소함도 없다. 산란을 마친 후 내만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는데, 8월 중순을 넘어서야 조금씩 기름이 지고 살에 탄력도 붙는다. 이때부터 횟집에 깔리기 시작하지만, 전어의 참맛과는 거리가 한참 있다.
전어의 고소함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추석을 전후한 보름간이라 보는 게 일반적인 ‘설’이다. 대체로 이때 전어가 많이 잡히기는 한다. 그러나 이때 전어가 가장 맛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또 날씨에 따른 변수가 커 그 기간을 추석 전후라 잡기에도 무리가 있다. 올해처럼 추석이 일찍 든 해에는 더더욱 그렇다. 전어는 찬바람이 탱탱 일어 가을이 깊었다고 느껴지는 그때서야 진짜 맛있어진다. 연안의 전어는 가을의 찬 기운에 따라 점점 남쪽 깊은 바다로 나가는데, 한반도 연안에서 아주 멀리 달아나기 직전의 전어가 가장 맛있는 것이다. 바닷물이 따뜻하면 이 맛있는 전어가 초겨울까지 한반도 연안에서 버틴다. 그런데 가장 맛있는 이때 전어를 찾는 사람이 적다. 이르게는 여름부터 먹은 탓에 질린 것이다. 수요가 없으니 어부도 전어 잡는 일에 시큰둥하다. 진짜 맛있는 전어는 그렇게 먼먼 남쪽 바다로 사라지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전어 씨알이 굵어진다. 전어는 뼈째 씹어야 맛있다며 작은 것을 등뼈도 제거하지 않은 채 가로로 썰어 상에 내는데, 이건 상술일 뿐이다. 전어는 씨알이 굵을수록 맛있다. 씨알 굵은 전어는 뼈를 바르고 머리에서 꼬리 방향으로 길게 채치듯 썰어야 한다. 바닷가나 횟집 등에서 ‘철 지난’ 씨알 굵은 전어가 보이는데 한두 달 전에 먹었다고 모른 체하면 손해다. 진짜 전어 맛을 봐야 한다.
전어회에 대해 또 하나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다. 살아 있는 전어를 막 잡아서 회를 쳐야 맛있다는 통념이다. 숙성회는 도미나 광어같이 큰 생선류에나 통하는 것이고 전어를 비롯해 가자미나 도다리, 쥐치 같은 연안에서 잡히는 ‘잡어’는 싱싱한 것이 맛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최근 어느 횟집에서 사흘 숙성한 전어회를 먹은 적이 있다. 전어의 고소함이 숙성된 생선살의 감칠맛과 결합해 황홀하기까지 한 맛을 냈다. 전어회를 진공 포장해 냉장고에 넣어두는 방식으로 숙성한 것이었다. 수족관의 여러 비위생적 위험을 생각하면 전어도 숙성회로 먹는 것이 낫다.
한국음식에는 국, 탕 등 국물 있는 음식이 많다. 밥을 먹으려 하니 국물이 따라붙는 것이다. 국물에 건더기가 들어간다 해도 잡은 물의 양이 많으니 맛이 허전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감칠맛이다. 쇠고기, 버섯, 멸치, 다시마 등등이 그 감칠맛을 내는 재료다. 그런데 이런 것은 비싸다. 그 대용품이 화학조미료다. 한국에서 화학조미료가 기세를 떨치는 이유는 국물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 집에서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건강에 안 좋아서가 아니다. 화학조미료 제조사들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주장하니 필자는 그 말을 믿는다. 단지 이 화학조미료 맛이 음식 맛을 많이 버려서다. 같은 감칠맛이라 해도 자연에서 비롯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어 이를 쓰지 않는 것뿐이다. 또 질 좋은 음식재료를 사용하면 화학조미료 없이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낀다, 적어도 집에서는.
자연에서 얻는 감칠맛의 재료를 구입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쇠고기는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멸치와 다시마를 주로 쓴다. 이 두 재료는 질에 따라 가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좋은 것을 쓰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늘 빠듯해 고민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이 필자와 같을 것이다.
다시마는 중간 크기 정도면 그런 대로 맛을 낸다. 그러나 멸치는 중간 크기 정도만으로는 감칠맛 나는 국물을 얻기 어렵다. 흔히 ‘다시용’이라고 파는 대멸의 경우 기름내가 너무 강하다. 자칫 묵은 것이라도 사면 그 기름내가 진동해 음식 맛을 다 버린다.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것은 흔히 ‘고주바’라고 일본어에서 온 이름 그대로 하는 부르는 중멸이다. 이 멸치는 국물용보다 볶음용으로 더 많이 쓰인다. 멸치로 국물을 낼 때 짧은 시간 끓인 뒤 멸치를 건져내라고 하는데, 중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쓴맛이 적기 때문이다. 중멸이 국물 내는 데 더없이 좋은 멸치긴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대멸에 비해 한참 높은 몸값을 부르니 시장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멸치 대용으로 최근 인기를 끄는 것이 디포리다. 멸치와 달리 몸의 폭이 넓고 제법 크다. 멸치와 마찬가지로 남녘 바다에서 잡히며 난대성 어종으로 가을에 주로 난다. 디포리라는 이름은 등쪽이 푸른데 ‘뒤가 파랗다’ 해서 붙은 것이다. 표준어는 밴댕이다. 흔히 서해안에서 나오는 반지(주로 회로 먹고 젓갈을 담근다)를 밴댕이라 잘못 말하는 탓에 표준어 밴댕이를 쓰면 큰 혼란이 생겨 그냥 디포리라고 부르는 게 나을 것이다.
남녘에서 이 디포리를 멸치 대용으로 쓴 역사는 길다. 멸치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쓰는 생선이었다. 전에는 하도 많이 잡혀 사료로나 썼다. 일부 지방에선 말린 디포리에 된장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강된장을 끓여내기도 한다. 오래 끓여도 쓴맛이 나지 않으니 이런 음식이 가능한 것이다. 된장에 푹 조린 디포리가 의외의 맛을 낸다. 이 디포리가 멸치 대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묘한 일이 생겼다. 가격이 멸치와 비슷해진 것이다. 국물용이니 중멸 수준은 아니고, 대멸과 거의 같은 가격에 팔린다. 수요가 넘쳐서인지 도매시장에는 수입 디포리도 나와 있다.
디포리의 장점은 앞서 말했지만 오래 끓여도 쓴맛이 없고 맛이 가볍다는 것이다. 멸치 국물은 약간 탁하고 무거운데, 멸치에 디포리를 섞으면 독특한 국물이 탄생한다. 중멸과 디포리의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국물 음식에 이 같은 새로운 재료가 유입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가격이 적당하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고려와 조선이 도자기의 나라’였다고 배웠다. 고려에서는 청자를, 조선에서는 백자와 분청사기를 잘 만들었다고 알고 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 도공을 납치해 가 일본의 찬란한 도예문화를 일궜다고 배웠다. 일본에서 가장 귀한 국가적 보물로 여기는 다완이 조선의 막사발이라는 사실도 들었다.
한국인 가정집에서는 많이들 도자기를 식기로 쓴다. 잘 깨지지 않는 강화유리 제품을 주로 사용하지만 기본은 도자기다. 한민족은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도자기를 사용한다. 도자기 식기를 쓰는 것은 지구상 거의 모든 인류의 공통 문화다. 도자기가 음식을 담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식당에서는 다르다. 많은 대중음식점에서는 도자기 대신 멜라민 식기를 쓴다. 고려와 조선의 그 훌륭한 도자기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대한민국 땅에 있는 대중음식점은 대부분 멜라민 식기를 선호한다.
멜라민 식기의 재료 멜라민수지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무색투명해 착색을 할 수 있으며 열에도 강하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만든 멜라민 식기는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기야 인체에 유해하다면 언론에서 많이 지적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중국산 저질 멜라민 식기에 대한 보도가 있을 때도 “제대로 만들면 안전하다”고 토를 단 것을 보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안전하니까 그렇게 식기에 많이 쓸 것이다.
음식점에서 멜라민 식기를 쓰는 까닭은 가볍고 깨지지 않고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비쌀뿐더러 무겁고 잘 깨지니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도자기에 담지 않다는 것은 기본 품격을 잃는 것이고, 세계인의 보편적 문화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멜라민 식기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가격이 저렴해 저개발국가에서도 흔히 쓸 듯싶다. 그런데 많지 않은 필자의 해외여행 경험에서 멜라민 식기를 본 기억이 없다. 세계 여행을 취미 겸 직업으로 갖고 음식문화에도 밝은 사람에게 멜라민 식기를 쓰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멜라민 식기요? 아프리카에서나 봤습니다.”
최근 서울 을지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 갔었다. 한국에 돈을 벌려고 온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들락거리는 대중음식점이다. 한국인을 위한 음식점이 아니다. 그날 샤슬릭, 채소수프, 빵, 양고기 찜, 보드카, 맥주를 먹었는데 여느 한식당보다 저렴했다. 이 식당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릇이었다. 음식은 모두 도자기에 담겨 나왔고, 대부분 코발트색이 강렬한 청화백자였다. 러시아 여행 중에 가끔 봤던 그런 도자기였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틈에 끼여 그 아름다운 도자기에 담긴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먹으면서 필자는 가보지 못한 우즈베키스탄의 하늘과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생각했다. 흐리멍덩한 색깔의 멜라민 식기에 담겨 나왔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대한민국의 2010년 경제규모는 1100조 원으로 세계 13위다. 국민소득은 2만759달러. 만일 대중음식점의 그릇을 보고 국가 순위를 매긴다면, 우리는 한참 밑에 랭크될 것이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문화 수준까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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