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는 7월이 제철이다. 그러니까 노지에서 재배하면 7월에 수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엔 7월 참외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다. 농민들은 노지 참외를 재배할 수 없는 것이 오염 탓이라고 말한다. 껍질이 연한 참외는 산성비를 맞으면 그대로 썩어버린단다.
농민들은 7월 비닐하우스 참외가 봄날 참외보다 맛이 없다고 말한다. 하우스 온도가 올라가 참외가 빨리 성장하는 까닭에 맛이 싱거워지고 속이 빈 참외도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장맛비라도 내리면 참외는 더 싱거워진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여름 과일이라고는 참외와 수박이 대부분인데, 그나마 수박 가격이 폭등해 서민은 조금 싼 참외를 먹어야 할 처지다. 이런 때 싸고 맛있는 참외 고르는 방법을 알아두면 좋다.
사람들은 참외라고 하면 다들 ‘금싸라기’를 떠올린다. 노란색에 골이 깊은 참외인데, 우리나라 참외는 거의 이 금싸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면 된다. 금싸라기 계열의 참외는 1957년 일본에서 들여온 은천참외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중반 은천참외를 개량해 신은천참외가 나왔고, 1980년대 중반 이를 다시 개량한 것이 금싸라기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유래한 품종이지만 그곳에서는 금싸라기를 별로 재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아삭한 식감의 참외를 즐기기엔 일본인의 치아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최근 국내에서 재배하는 참외는 대부분 금싸라기 계열 품종인 ‘오복’이다. 참외 포장지를 보면 오복 또는 오복금싸라기라 쓰여 있을 것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오복참외에 대한 설명을 보면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과즙, 평균 15브릭스 이상의 당도가 특징”이라고 돼 있다. 오복이 신품종이고, 이 품종의 참외가 크게 번진 것은 ‘맛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로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품종 개량을 반드시 소비자 좋으라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농민이나 유통업자 편하라고 품종을 개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맛없는 쪽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일도 있다는 말이다.
오복은 참 단단하다. 막 수확한 것은 웬만한 높이에서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 참외끼리 부딪쳐도 멍이 들어 물러지는 일이 없다. 껍질을 두껍게 깎아도 단단해 이가 안 들어갈 때도 있다. 한국 소비자가 아삭한 식감을 워낙 좋아해 이처럼 단단한 오복이라는 품종이 크게 번진 것일까. 아니다. 생산자와 판매자가 수확 작업과 운송, 보관에 유리한 품종으로 오복을 ‘개량한’ 결과다. 선별기에 돌려도 흠집이 나지 않고, 운송 중 마구 다루어도 물러지지 않으며, 매장에서는 오래오래 팔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품종인가. 그 대신 소비자는 단단하다 못해 딱딱한 오복참외를 이가 아프도록 씹으며 ‘내가 참외 잘못 골랐나’하고 자신을 탓한다.
자, 이제 이 단단한 오복참외 가운데 싸고 맛있는 참외 고르는 방법을 알아볼 차례다. 방법은 쉽다. 무조건 작은 것을 사면 된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는 없고, 재래시장이나 트럭에서 파는 등외품의 작은 참외 말이다. 오복참외는 이게 연하고 맛있다. 작아서 딱딱하지 않다. 작은 참외 하나 들고 통째로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도 있다. 당도가 걱정이라고? 참외는 일정 숙기에 이르면 작으나 크나 당도가 거의 같다. 노란색이 짙고 골이 깊은 것은 작으나 크나 똑같이 맛이 든다. 혹시나 싶으면 맛보기로 하나 자르자 해서 먹어보고 사도 된다. 작고 싼 참외를 파니 상인도 그 정도의 맛보기에는 기꺼이 응한다.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옛날 외식업계에 떠돌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위생계, 소방서, 세무서 공무원이 모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누가 계산할까. 잘 알고 있겠지만,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옛날이라고 한 것은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 농담에 에피소드 하나를 더하고 싶다. 국회의원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누가 계산할까. 정답은 국민이다.
지난해 3월 국회의원이 부부동반으로 호텔에서 먹은 밥값을 국민 세금으로 정산했다는 최근 기사를 봤다. 세금으로 음식값을 정산한 명목은 ‘천안함 사태 관련 긴급 간담회’였고, 금액은 127만2700원이었다. 10여 명이 모였다 하니 1인당 10만 원 조금 넘는 셈이다. 국회의원 부인들까지 나서서 국가와 천안함 사태를 걱정하니 국민에게 그 정도 음식은 ‘접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즈음 국민은 대부분 삼겹살에 소주 또는 빈대떡에 막걸리를 먹으면서 천안함 사태를 어찌할지 토론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내의 의견까지 들으며 간담회를 열 만큼 열심이었으니 국민은 괜한 일을 한 셈이다. 괜히 음식맛, 술맛만 떨어뜨린 것이다.
음식값이 제법 나가는 식당, 그러니까 일식집, 한정식집, 고깃집 주인이나 지배인은 으레 정관재계 인사가 자기 식당의 단골이라고 자랑한다. “아, 그분이 엊그제도 다녀가셨는데…”라며 식당의 격이 상당함을 알아달라고 한다. 이런 식당은 서울 광화문, 여의도, 강남에 주로 있다. 물론 호텔 식당도 마찬가지다. 이들 식당의 음식값은 상당히 비싼데, 제 돈을 주고 이 음식을 편히 먹을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당은 대체로 접대 장소로 이용한다. 따라서 음식값이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재계는 법인카드로 결제할 테고, 정치인과 관료는 또 어떻게 알아서 할 것이다.
이런 고급 음식점 아래 단계인 서민풍의 식당에도 정관재계 인사가 종종 나타난다. 오래전부터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다. 이런 식당은 벽면 여기저기에 그들의 사인을 붙여놓는다. 그중 최고의 급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식당 입구에 ‘대통령의 맛집’이라는 간판까지 내건 집이 수두룩하다. 묘하게도 소비자는 그 간판을 보고 줄을 선다. 한국에서는 식당 평점을 매기는 데 미슐랭 가이드 암행 조사원보다 대통령이 몇 단계 위의 권위를 지닌다.
한국 소비자는 정관재계 인사가 들락거리는 식당에 대해 ‘그 식당의 음식은 맛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한국에서 잘 먹고 잘사는 이들이 선택한 식당은 뭔가 특별하리라고 넘겨짚는 것이다(어디 음식뿐이랴). 그러나 나는 이들이 과연 음식의 가치를 알까 싶다.
나도 상황에 따라 돈을 내지 않고 밥을 먹는 일이 있다. 이것저것 맛있다고 하지만, 이런 음식은 내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 음식의 가치를 오롯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내지 않으니 음식의 수준과 맛이 어떤지 감을 잡기 어렵다. 공짜 밥을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다시 찾아가 내 돈으로 먹을 땐 ‘이게 왜 이리 비싸지? 이럼 다른 데 가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대체로 돈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음식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인사동 뒷길의 2000원짜리 해장국이 최상의 음식이 될 수 있고, 재벌에게는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나오는 1인당 수십만 원짜리 밥상이 하찮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공짜 음식은 그 음식에 대한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도 음식값을 지불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의 주머닛돈을 빼내 공짜로 먹었다면 음식의 가치를 논할 수조차 없게 된다. 그것은 약탈이기 때문이다.
담백한 표현 남용
우리말의 장점 중 하나가 맛을 형용하는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맛을 표현하는 단어의 변용이 많다는 것이지만. 예를 들면 ‘달다’라는 표현은 달콤하다, 달큼하다, 들큼하다, 달달하다 등으로 변용할 수 있다. 짜다, 맵다, 시다 등 맛의 기본 단어는 모두 다양한 변용 단어가 있다. 한국인의 섬세한 미각이 관련 단어의 다양한 변용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 주장이 일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맛 외에 다른 감각을 나타내는 단어를 살펴보면 꼭 맞지는 않다. 예를 들어 ‘저리다’라는 감각을 나타내는 단어의 변용을 보면 저릿하다, 쩌릿하다, 짜릿하다 등이 있다. 그러니 한국인의 미각, 나아가 감각이 섬세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말 용언의 특징이라 하는 것이 더 맞을 수 있다.
우리말의 맛 표현 단어가 많다 해도 실제 생활에서 맛 표현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음식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는 뜻이다. “그 음식 맛이 어때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맛있어요” “맛없어요” 정도에서 끝난다. 음식이 맛있으면 왜 맛있는지, 맛없으면 왜 맛없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왜 맛있어요?” 하고 물으면 “화끈하게 매워요” “달콤해요” 라고 답하는 정도다.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 능력이 떨어지니 한 단어로 여러 맛을 두루 표현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담백하다’다. 한자로 담백(淡白)은 ‘맑을 담’에 ‘흰 백’을 쓴다. 국어사전에서의 뜻은 대충 이렇다.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한자대로 풀어보자면 “깨끗하고 맑은 맛” 정도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 담백하다는 말을 거의 모든 음식에 사용한다. 고춧가루와 마늘 등이 잔뜩 들어간 해물찜이나 매운탕을 먹으면서도, 기름내 풀풀 나는 튀김을 먹으면서도 “담백해요”라고 한다.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담백해요”다. ‘담백하다’는 표현에 ‘맛있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담백 오남용은 미식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맛은 담백함에 있다는 말을 퍼뜨린 탓이 크다고 본다. 한국음식은 짜고 맵고 달고 시고 고소하다. 이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반찬 구성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담백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러니까 다소 양념을 적게 해 싱거운 음식은 주로 단품 요리다. 이 요리를 소개하면서 담백하다는 말을 흔히 썼고, 이 말이 번지면서 요리라 할 만한 음식은 담백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보다 여기게 된 것이다.
문제는 ‘담백하다’는 말을 남용하면 음식의 맛을 섬세하게 느끼려는 의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백한 음식의 대표격으로 다들 이야기하는 평양냉면을 예로 들어보자. 평양냉면 한 그릇에는 수많은 맛 요소가 있다. 그러니 담백하다는 말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그 낱낱의 맛은 즐김의 대상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심심한 냉면 국물에는 혀끝으로 느껴지는 고기의 은근한 감칠맛에 찝찌름한 간장의 맛이 있으며, 면에는 입천장 저 안쪽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메밀 향이 있다. 또 달콤한 배와 시큼한 김치가 메밀의 구수함, 고기 국물의 감칠맛, 간장의 찝찌름함과 어울려 입안에서 요동을 친다. 그러니 이를 어찌 담백하다 할 수 있는지…. 그 담백의 용례에 대해 의심이 드는 것이다. 음식 맛을 표현할 때 담백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 그 음식의 숨어 있는 맛이 하나하나 입안에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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