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는 구룡계곡 아홉 개 폭포마다 놀고 있다는 아홉 마리 용 말고도 용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교룡(蛟龍)’입니다. 교룡이란 비늘로 뒤덮인 용을 뜻합니다. 남원의 북쪽에는 교룡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고 그 기슭에는 백제 때 지었다는 같은 이름의 산성이 있습니다. 교룡산성은 성벽이 무너져 쇠락하고 규모도 보잘 것 없지만, 그곳에는 동학혁명의 중심에 섰던 ‘그 사람’이 있습니다. 조선의 남쪽을 열어젖히겠다며 ‘열 개(開)’에 ‘남녘 남(南)’자로 개명했다는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서 불꽃처럼 타올랐고, 목숨을 던지는 싸움으로 변혁을 완성시키려 했던 인물입니다. 교룡산성을 찾아가는 까닭은 한 번도 타협을 믿지 않았던 그의 흔적을, 혹은 죽음으로 무너지고 만 그의 꿈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전북 남원. 누구나 춘향전과 광한루부터 떠올립니다. 광한루라면 낡고 오래된 것들, 혹은 스테레오 타입의 지겹고 뻔한 여행지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한루의 정원이 그려내고 있는 ‘달(月)의 세상’을 알고 본다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저물녘의 고즈넉한 시간에 찾아가 본다면, 고전 ‘춘향전’의 세트장쯤으로 들여다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격조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들여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남원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생을 쓸쓸한 방랑으로 일관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기거하며 ‘만복사저포기’를 지었다는 절집 ‘만복사’의 옛터도 남아있습니다. 광한루와 만복사. 이 두 곳에서는 풍경이 그것으로만 머물지 않고, 문학적 영감의 연결고리로 작동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달의 정서를 가져다 심은 정원 그리고 허물어진 탑과 석불 몇기만 남아 쓸쓸한 옛 절터, 스러지고 만 불온한 이의 꿈과 용의 전설을 품고 있는 계곡까지…. 남원의 여정은 이리도 다채롭습니다.
북# 지리산 심마니의 귀띔으로 구룡계곡을 찾아가다 전북 남원 쪽 지리산 자락에서 마주친 심마니에게 묻는다. “지리산에서 가장 빼어난 계곡이 어딘가요?” 길없는 험준한 산비탈을 바람처럼 뛰는 심마니 김용락(47)씨의 거침없는 대답. “구룡계곡이지요.” 뱀사골이며 피아골, 달궁…. 지리산은 그 깊은 산세로 허다한 계곡을 품고 있음에도 그는 낯선 구룡계곡을 첫손으로 꼽았다. 의외의 대답에 그 까닭을 묻는다. “계절마다 전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거든요.” 풀물이 든 손을 옷자락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그는 다시 깊은 숲으로 사라졌다. 구룡계곡을 찾아간 연유가 이랬다. 도회지에서 낙향해 14년 동안 지리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이잡듯이 뒤졌다는 심마니가 망설임없이 첫손으로 꼽은 곳이라니…. 구룡계곡을 말하자면 남원에서 정령치 쪽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는 것이 순서겠다. 전북 남원 시내에서 지리산의 중심으로 가닿는 가장 짧은 길은 정령치를 넘는 것이다. 정령치를 넘어서 달궁계곡과 만나 우회전해 성삼재 쪽으로 올라서면 거기서부터 노고단을 지나서 지리산 종주산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남원 쪽에서 정령치 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리다 보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주천면 소재지를 지나고 육모정을 지나 60번 지방도를 타고 지리산 자락에 붙어 깎아지른 아슬아슬한 계곡의 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비탈길을 오르는 길. 한참을 달려서 해발고도를 500m까지 높일 때쯤, 심심산골로 들어서리라 싶었는데 느닷없이 너른 평지의 마을과 논밭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주천면 고기리의 내기마을이다. 구룡계곡은 이 마을의 아래쪽에 있다. 대개 깊고 빼어난 계곡은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해발고도가 높은 쪽에 있으리라 믿었는데, 구룡계곡만큼은 영판 다르다. 계곡의 들머리는 저 아래 평지인 육모정쯤에 있고, 1시간20분쯤을 걸어야 하는 오름길의 정점에 난데없이 마을이 있다. 구룡계곡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구룡폭포가 마을 바로 아래쪽 논 밑에 있다. 이렇게 설명하니 계곡이 그야말로 대처에 나앉은 유원지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계곡의 들머리와 끝은 차로도 쉽게 닿긴 하지만, 계곡 중간 부근은 걷지 않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계곡 옆으로 길이 지나긴 하지만, 높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물길이 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을과 가까이 있긴 하지만, 깊고도 깊은 곳인 셈이다. # 구룡계곡에서 구곡을 딛고 오르는 길
명승의 풍경 하나하나에 이름이 없을 수 없다. 구룡계곡에는 ‘구곡’으로 이름붙여진 곳들이 있다. 세월이 흘러 자취가 희미해져 다 찾을 수는 없었지만 3곡 학서암과 4곡 구시소, 5곡 유선대 그리고 8곡 경천벽과 마지막 9곡 구룡폭포만큼은 뚜렷하다. 바위에 구멍을 뚫거나 금이 그어져 있어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선대와 힘찬 물길이 암반을 마치 말구유처럼 깎아낸 구시소 그리고 수저로 아이스크림을 떠낸 듯 깎인 암반을 휘감으며 네 번을 담겼다가 떨어지는 구룡폭포가 그중에서 돋보이는 곳들이다. 특히 구룡폭포는 폭포가 시작되는 천룡암 쪽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폭포 위쪽 석벽에는 돌을 쪼아 새긴 ‘방장 제일동천(方丈 第一洞天)’이란 글귀가 뚜렷하다. 방장이란 ‘지리’의 다른 이름이니, ‘지리산에서 최고로 치는 경치’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구룡계곡은 그러나 속도를 내서 달리듯이 오르내린다면 실망하기 쉽다. 마을의 논밭을 흘러온 물이니 상류 쪽은 물빛이 좀 탁한 듯하고, 구곡의 경치도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라다. 하지만 거대한 지리산의 원경과 함께 바라보면 그 참모습이 보인다. 그저 제가 딛는 길이나 물길만 보고 가는 것보다는 간혹 고개를 들어 깊고 거대한 지리산의 첩첩한 산자락을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룡계곡은 녹음이 짙어가는 지금이 가장 좋다. 지난달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눈엣가시같던 계곡의 취수보를 철거해 과거의 정취를 되찾았다. 게다가 곧 장마가 시작되면 물은 맑아지고 비폭동 일대에 걸리는 폭포와 물길로 전에 없던 선경이 펼쳐진다. 아직 아는 이가 적어 호젓한 계곡 아래에서 고요하게 탁족을 즐기는 맛도 그만이다. # 남원에는 또 하나의 용이 있다 구룡계곡에 아홉 마리 용이 있다면, 남원 시내 서쪽 자락에는 ‘교룡(蛟龍)’의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교룡이란 뱀과 비슷한 몸에 비늘과 사지가 있고, 머리에 흰 혹이 있는 전설의 용을 뜻한다. 교룡산성이란 이름은 ‘고룡(古龍)’에서 나왔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 ‘오래된 용(龍)’이니 이래저래 용인 건 다름없다. 구룡계곡의 용이 기암과 폭포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교룡산의 용은 그다지 멀지않은 역사 속에 있다. 아니 용이라기보다는, 스러지고 만 꿈을 품은 이무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교룡산성은 백제 때의 성이다. 돌로 쌓은 옹성 안 아치형의 홍예문의 자태는 빼어나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은 이곳 저곳이 무너져내렸다. 마치 쓰러진 용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몸을 뒤틀고 있는 듯한 형상이랄까. 허물어진 성에서 느껴지는 것은 웅장하거나 힘찬 느낌보다는 애잔한 정서다. 이곳은 한때 서슬퍼런 동학의 정신이 숨쉬던 곳이었다. 동학혁명의 중심인물이었던 김개남. 동학혁명 당시 전라좌도에 전봉준이 있었다면 전라우도에는 김개남이 있었다. 그는 평생 강경했다. 세상의 모순에 대한 분노로 일어선 그에게는 타협이란 없었다. 그는 늘 목숨을 걸었다. 그의 이름 아래 모인 6만명의 농민군과 함께 매번 치열하게 싸웠으며 남원부사와 고부군수를 잡아다 목을 벴고, 적들을 혹독하게 징벌했다. 그러나 그는 농민군을 이끌고 나선 청주성 공격에서 일본군에 대패했고, 의병장의 고발로 붙잡혀서 참수당한다. 어찌 의병장이 김개남을 밀고했을까. 그건 ‘임금에 대한 충(忠)마저도 거부하는’ 강경한 그의 불온함 때문이었으리라. 조선왕조의 틀 안에서의 변혁을 지향했던 이들에게, 김개남은 왕조마저 부정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하고 불온한 인물이었던 것이었다. 참수당한 그의 머리는 서울로 이송돼 서소문에 사흘 동안 내걸렸다. 마침 조선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그때의 장면을 목격한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 실린 비숍의 기록은 이렇게 끝난다. “동학군은 너무나 확고하고 이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란자들’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장한 개혁자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 달과 은하수의 공간… 광한루를 새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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