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화천의 겨울서정

醉月 2012. 2. 2. 14:29

화천의 상징탑에서부터 화천군청까지 이어지는 선등거리 440m 구간에 매달아 놓은 산천어등(燈). 눈꽃송이처럼,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꼬마전구 사이로 날렵한 산천어들이 불을 밝히고 겨울 밤하늘을 날아간다. 주민들이 직접 만든 산천어등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정월 대보름인 오는 2월6일까지 불을 밝힌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실 겨울철 얼음낚시를 앞세운 축제는 어째 좀 마뜩잖습니다. 가족들과 꽁꽁 언 빙판에서 물고기 몇 마리 잡아올리는 운치야 시비 걸 일이 아니지만, 얼음판이 안 보일 정도로 빙판에 몰려든 사람들이 굶겨서 풀어 놓은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 갈고리 바늘로 훌쳐 옆구리를 찍어내는 모습을 보면 ‘이게 무슨 축제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퍼덕거리는 빙어를 산 채로 초고추장을 찍어 통째로 씹어 삼키며 아이의 입에도 산 빙어를 넣어 주는 모습을 보면 ‘꼭 저래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해마다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아온다는 강원 화천의 산천어축제. 그 축제가 열리고 있는 화천에 갔습니다. 여전히 얼음낚시를 하는 빙판은 북적였고, ‘산천어가 잡히지 않는다’며 주최측에 몰려가 항의하는 관광객들도 여전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고 온 차들로 정체는 극심했고, 축제장은 어디고 시장 바닥 같았습니다.

하지만 축제는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산천어 낚시를 내세운 축제지만, 낚시는 그야말로 겨울축제를 즐기는 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빙판에서는 일가족들이 얼음썰매를 밀고 끌면서 경쾌한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얼음조각이나 눈조각 전시장에서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밤마다 주민들이 손수 만들어 매단 산천어등(燈)에 불을 켜놓는 ‘선등(仙燈)거리’는 또 얼마나 화려하고 낭만적이던지요. 1주일을 굶겨 풀어 놓은 산천어가 낚싯줄을 물고 버둥거리며 얼음구멍에서 끌려 나올 때의 모습보다는, 화천군청 앞 선등거리에 산천어가 등불이 돼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겨울밤에 그 거리만 걸어 본대도 화천을 다녀올 이유는 충분하지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난 7일부터 시작한 화천 산천어축제는 오는 29일에 끝납니다. 축제를 다루겠다면 축제 개막에 맞춰 소개해야 하겠지만, 굳이 끝 무렵을 겨눠 화천을 다녀온 것은 겨울의 호젓함 속에서 ‘진짜 화천’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이 겨울에 축제가 끝난 뒤의 화천에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번잡스러움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중단되는 얼음 산천어 낚시만 뺀다면 축제가 끝난 뒤에도 화천에서 즐길 것들은 많습니다. 선등거리의 산천어등은 축제 뒤에도 한동안 불을 밝힐 것이고, 여전히 너른 빙판에서는 얼음을 지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눈 덮인 겨울의 강변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구곡(九曲) 중에서 실경이 남아 있는 두 곳 중 한 곳인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따라가며 화악산을 넘어가는 드라이브 코스도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기다가 딴산에서는 폭포가 얼어붙어 만들어진 우람한 빙벽 아래서 마을 주민들이 여는 소박한 겨울축제에 슬쩍 끼어들 수도 있을 겁니다. 겨울 화천은 화려한 축제가 다 끝난 뒤에 더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보여줄 것입니다.

화천의 북한강변에는 강과 딱 붙어서 자전거도로가 나있다. 꼭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꽝꽝 얼어붙어 눈이 쌓여 있는 북한강변의 길을 따라 겨울나무들이 실루엣으로 서있는 서정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타박타박 걷는 것도 좋겠다. 사진 위쪽의 푸른빛은 건너편 산자락이다.


# 밤하늘을 따스하게 밝히며 날아오르는 산천어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겨울의 화천. 이곳에는 굶주린 채 얼음구멍에서 관광객들의 낚싯바늘에 끌려 나오는 산천어보다 더 아름다운 산천어들이 있다. 바로 불을 밝히고 화천읍 중앙로를 따스하게 데우는 산천어등(燈)이다.

축제 무렵이면 화천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거리에는 밤마다 산천어축제에 맞춰 수천개가 넘는 산천어등이 켜진다. 화천군청 옆의 자그마한 광장에도, 중앙로 길 끝의 상징탑에도 색색의 산천어등이 내걸린다.

거리의 가게 앞에도 주택가에도 저마다 한지로 정성껏 만들어 켜둔 산천어등이 환하다. 이렇게 화천 일대에 내건 산천어등이 무려 1만7000여개에 이른단다.

짧은 겨울 해가 질 무렵 주민들이 손수 한지로 만들어 걸어둔 산천어등이 일제히 켜지고, 흩날리는 눈이나 밤하늘의 은하수를 형상화한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의 불빛과 어우러지면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지느러미를 펼치고 떼를 지어 흡사 밤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의 등이 켜진 거리를 걷다 보면 겨울밤의 추위보다 불빛이 주는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산천어등이 켜진 거리에는 ‘선등거리’란 이름이 붙여졌다. 선등(仙燈)이란 ‘신선이 사는 세상(선계·仙界)으로 안내하는 등불’이란 의미와 함께 화천의 ‘3락(樂)’, 즉 신선이 되는 즐거움과 심신이 아름다워지는 즐거움, 복을 듬뿍 받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 의미도 있다. 산천어등은 지난 2003년부터 켜졌지만, 올해부터는 산천어등만 따로 떼어내 ‘선등문화제’란 이름의 독립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산천어축제는 오는 29일 끝나지만, 산천어등은 정월 대보름인 오는 2월6일까지 화천의 밤하늘을 밝히게 된다.

선등거리에 산천어등은 그저 화려한 겉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디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 데다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으며 쉬지 않고 헤엄을 치는 특성 탓에 예부터 장수와 다산, 다복, 근면, 출세, 재물 등을 상징했다. 옛 공예품이나 그림에 물고기 문양이 자주 사용된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그러니 산천어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선등거리를 걸으며 새해를 맞는 기원과 함께 저마다 가슴속에 팔딱거리는 따스한 꿈을 만져볼 수 있겠다.



#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변을 따라 걷는 정취

산천어축제가 처음 관광객들을 끌어들인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얼음구멍을 뚫어 산천어를 낚을 수 있다는 기대였다. 꽝꽝 언 얼음판에서 낚시를 하며 색다른 겨울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던 데다, 깨끗한 물에서 산다는 산천어라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낚시터에 양식한 산천어를 푸짐하게 풀어 놓아 관광객들이 ‘손맛’을 즐길 수 있게 한 것도 축제 성공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제 산천어축제는 진화를 거듭해 산천어 얼음낚시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애초에 산천어를 잡아보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출발한 여정이 아니라면, 얼음낚시가 아니고서도 다른 즐길거리들만으로 한나절은 후딱 지나가고 만다.

사실 낚시에 취미가 있다면 모를까, 얼음구멍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위아래로 끊임없이 고패질을 해야 하는 얼음낚시는 금방 싫증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얼음판에서 가족들과 함께 썰매를 타거나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얼음을 지치고, 빙판 위에 만들어진 미니축구장에서 공을 차다 보면 추위도 저만치 물러가고 어른이나 아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산천어축제가 끝나고 나면 얼음낚시터의 문을 닫고 축제때 반짝 영업하는 사륜바이크 같은 우악스러운 탈거리들도 다 철수하지만, 화천의 얼음판은 축제장 말고도 많다.

예전이야 주변에서 쉽게 얼음판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즈음은 너른 얼음판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곳곳에 빙판이 만들어져 미끄럼을 즐길 수 있는 화천일대는 너른 얼음판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럽다.

여기다가 북한강의 물길을 따라 화천에서 붕어섬 너머 춘천쪽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에서의 정취도 모자람이 없다. 자전거길로 조성된 강변길은 겨울의 정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북한강은 아직 꺼먹다리 아래부터 붕어섬 하류까지는 얼지 않았다. 이쪽 구간에서는 강물 위로 낸 부교를 따라 겨울강 위를 걸을 수 있다. 붕어섬 하류쪽은 얼음이 꽝꽝 얼면서 그 위에 덮인 눈으로 순백의 풍경을 빚어내고 있다. 강변의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를 걸으며 얼어붙은 겨울 강을 따라 걷는 맛도 각별하다.

산천어축제장에 설치된 눈조각과 눈을 다져 만든 미끄럼틀. 축제장에는 낚시 말고도 즐길거리들이 많다.



# 소박한 시골 마을의 겨울 풍경… 딴산 겨울축제

소박하게 시작했던 산천어축제는 날로 성황을 이루면서 지금은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어 축제기간 내내 북새통을 이룬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는 크게 늘어난 반면 축제 초기의 소박한 정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화천에는 그러나 옛 시골 마을의 겨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화천의 딴산에서 진행되는 ‘딴산 겨울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딴산은 ‘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산이라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자그마한 물가의 벼랑이다. 울산에 있던 바위가 금강산의 암봉을 이루려 올라가다가 1만2000봉이 다 채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자리에 멈춰 서서 지금의 딴산이 됐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파로호 하류에 위치한 딴산 일원은 여름철 물놀이의 명소로 꼽히는 곳. 그러나 겨울철에도 바위 벼랑의 인공폭포가 꽁꽁 얼어붙어 장대한 빙벽을 이뤄 빙벽등반의 명소로 꼽힌다. 겨울에는 빙벽등반을 하는 등산인들만 알음알음 찾아들던 곳인데 올해부터 인근 대이리 주민들이 빙벽 아래 얼음판에서 송어·빙어낚시체험장을 만들고, 전통썰매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고 첫 축제를 시작했다.

딴산 겨울축제장은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산천어축제가 열리는 화천천이 불과 4㎞에 불과하니 관광객들이 온갖 체험현장과 놀이시설이 있는 산천어축제장을 벗어나 작은 마을까지 찾아들 리 없다. 썰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욱 호젓하게 한겨울의 정취를 누릴 수 있다.

# 곡운구곡 따라 화악산을 넘어가는 드라이브

딴산 폭포 물길 건너편 마을에는 민물고기생태관도 있다. 지난해 8월 개관했는데 산천어를 비롯한 다양한 민물고기들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도 무료이니 부담없이 찾을 수 있다.

민물고기생태관을 지나 호젓한 샛길을 따라 들어가면 파로호가 나온다. ‘깨뜨릴 파(破)’에 ‘포로 로(虜)’자를 쓴 파로호란 이름은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보병 1사단과 해병 12연대 장병들이 중국군 3개 군을 섬멸해 수장한 전과를 올려 ‘오랑캐를 격파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

6·25전쟁 당시 파로호는 전기발전소가 있다는 이유로 요충지 중의 요충지로 꼽히던 곳이다. 전기가 부족하던 시절 파로호를 탈환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숙원이었다. 유엔군이 파로호 인근에 주둔한 중국군을 향해 끊임없이 폭격을 퍼부었지만, 그때마다 탱크와 대포가 새로 배치돼 공격을 망설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일명 켈로부대라 불리던 주한첩보연락처(KLO) 대원들이 중국군의 탱크와 대포가 실제로는 유엔군의 정찰기를 속이려 전나무를 깎아 만든 가짜임을 확인함에 따라 일제히 공세를 가해 대대적인 승전을 거뒀다.

파로호 아래에서 댐까지는 ‘물고기 하늘길’이 있다. 물고기 하늘길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니고 물고기를 실어나르는 모노레일 코스다. 5년 전쯤 지어진 모노레일은 댐 방류를 중단할 경우 파로호 아래 여울의 물고기들이 물이 말라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파로호 아래 물가를 따라 거슬러 온 물고기를 포획해다가 모노레일로 운반해 위쪽의 댐 안에 풀어 놓는 시설이다. 이는 어획량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떼죽음을 당하는 물고기들의 생명을 지키자는 따스한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더욱 반갑다.

화천에는 이 밖에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곡운 김수증이 말년에 머물며 은둔생활을 했다는 곡운구곡도 찾아가볼 만하다. 사내면 용담리의 곡운구곡은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구곡 중에서 화양구곡과 함께 구곡의 실경이 남아 있는 곳이다.

한때 매월당 김시습이 거쳐갔고 다산 정약용이 여행기를 써냈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데, 계곡의 물길이 꽝꽝 얼어붙은 겨울철에는 아무래도 풍류가 덜하긴 하지만, 곡운구곡을 따라 가다 정상 부근에 화려하게 눈꽃이 피어난 화악산을 넘어 가평쪽으로 드라이브하는 맛이 각별하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46번 국도를 타고 춘천을 지나 5번 국도를 따라가면 화천읍에 닿는다. 서울~춘천 고속도를 타고 가다 춘천나들목으로 나와 소양2교를 지나 102보충대를 거쳐 407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화천에 닿는다.

남춘천나들목으로 나와 춘천을 지나 화천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산천어축제장은 화천읍에 있다. 딴산 겨울축제 현장은 읍내에서 10분 정도 걸린다.





화천에는 축제의 위세에 걸맞지 않게 숙소시설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읍내에 모텔들이 몇 곳 있지만 대부분 지은 지 오래돼 낡은 편이다. 화천군청에서 운영하는 아쿠아틱리조트(033-441-3880)를 가장 추천할 만하다.

화천의 맛이라면 단연 민물고기 요리다. ‘화천어죽탕’은 잡고기 어죽탕으로 유명한 곳. 잡고기를 갈아 우거지를 넣고 푹 끓여서 내온다.

콩사랑(033-442-2114)은 맛깔스러운 두부보쌈, 특선정식 등을 차려내는 곳이다. 화천한우셀프구이촌(033-442-1300)은 한우구이보다 된장소면으로 이름난 곳. 된장찌개에 삶은 소면을 넣어 끓여내는 화천의 향토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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