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석미(韓國의 海石美)
<차례>
1. 韓國의 正統的 美의 性格
2. 傳統美術과 海石美의 鑑賞
3. 現代繪畵와 海石美의 鑑賞
4. 結語
1. 韓國의 傳統的 美의 性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바탕을 자연스러움에 두어 '自然의 美'에 귀결시키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연이란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민족의 삶과 더불어 전개된 예술활동의 배경이 되고 무대가 되었던 韓國的 自然을 말한다.
즉 東北亞細亞의 광활한 대륙을 지배했던 역사적 무대를 묻어두더라도 수천 년간 韓民族의 삶의 터전이었던 현 한반도의 자연은 白頭大幹을 남북으로 하여 옹골찬 산맥들을 동서 혹은 남으로 뻗쳐서 대륙을 둘러싼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러한 산맥들 사이사이에는 큰 강과 작은 강이 흐르며,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돌들을 아름다운 壽石으로 연마하고 있다. 강을 싸안은 산들은 첩첩이 봉우리를 세워 수려한 몸매를 자랑하며 그 風趣를 더해 왔고, 그러한 자연 속에서 익혀진 심성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가며 예술적 활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의 山水自然은 다른 나라의 큰 산들처럼 바위나 암벽이 깨어진 듯 날카롭지 않고 송곳같이 봉우리가 치솟아 아슬하지도 않다. 부드러운 능선, 그 능선이 겹겹이 중첩되는 가운데 곳곳에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溪流로 그 아름다움을 은근히 내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산수를 錦繡江山이라 노래하며 삶과 예술의 母體로 삼아왔다.
산봉우리는 대개 부드러워 둥글어 보이고 흐르는 물은 맑고 조용했다. 산을 등지고 양지바른 곳에 초가마을이 있다. 마을과 논밭을 잇는 길은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따라서 났기에 曲線인양 구불거린다. 길이 끝나는 곳 저 만치에 암자나 절이 보인다. 개울가에는 바위가 우뚝하고 물이 굽이쳐 아름다운 경치가 이루어지는 곳엔 으레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 앉아 잠시 바람이라도 쏘일라면 한 눈에 다가서는 절묘한 風光에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그러다 보면 자연의 위대하고 오묘함에 스스로 작아져 가며, 자기도 모르게 자연에 沒入되어 物我一體의 경지에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人間親和的인 자연이 한국의 자연이기에 한국인의 심성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고, 심성이 자연스럽기에 그 마음과 그 손으로 빚은 예술도 자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자연에는 사계의 변화가 뚜렷하다. 한국인은 이 사계의 변화를 자연의 순리이자 삶의 모습으로 터득하며 살았다. 봄이 오면 꽃 피고 새 울며, 여름이면 잎이 무성한 가운데 열매가 자란다. 가을이면 열매가 익고 단풍이 들며, 겨울이면 나무가 벌거벗은 裸木으로 서있게 된다는 그 평범한 일상의 언어를, 한국인들은 곧잘 인간적인 삶에 견주어 幼.小.壯.老가 사계의 변함, 그것과 다름이 아니고 生.老.病.死 또한 그것의 이치에 어긋남이 아님을 익혀가며, 이를 인간적인 삶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삼으며 긴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한국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바로 순리이자 攝理인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의 自然觀이요, 미의 세계이다.
이러한 자연미의 세계관을 가졌기에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외국의 침략을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떨쳐버리고 물 흐르듯 구름 가듯 하는 自適을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자적하는 가운데 매사에는 자연스런 흐름이 배어 어느덧 민족의 심성이 되었고, 자연 순환의 哲理를 따르면서 생각은 모나지 않게 둥글어졌다. 둥글어진 만큼 넉넉함으로 心的餘白도 넓어졌고, 여백이 있기에 서양처럼 '美의 完成'을 서두르지 않고 완숙해지기를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조지훈 시인이 말한 落木寒天에 이끼 낀 바위의 멋을 모르면 東洋의 미를 모른다는 말은, 미의 人爲的 完成을 거부하고 자연을 자숙히 觀照하는 자의 미의 完熟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런 흐름, 둥글음, 여백, 그리고 완숙한 경지는 한국적인 자연미이자 한국인의 美意識의 추상적 표현이요 실제다.
2. 傳統美術과 海石美의 鑑賞
해석에는 강이나 산에서 많이 탐석되는 景石이나, 形象石이 있으나 그 종류가 비교적 단순하다. 경석은 대부분 변화가 적은 遠山石이고, 形象石도 대부분 人像石이나 器形,果類나 抽象石으로 그 종류를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文樣石이나 色彩石은 많이 탐석되고 있어 바닷돌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文樣의 상징성이나 묘미를 가려낼 수 있는 眼目을 길러야 한다.
한편 단순한 点이나 線, 또는 面과 色 등은 현대회화에서 주요한 표현수단이므로 바닷돌 玩石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類의 바닷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문양이 구체적인 그 무엇을 닮지 않았다 하여 그냥 몽돌로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닷돌에 있어 形象石 감상은 강돌의 形象石 鑑賞法과 다르지 않으나, 바닷돌은 보다 형상이 單純化되어 있고 선의 흐름이 유연하여 느끼는 맛과 멋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 圓形石, 線石, 器形石이나 果類石은 강이나 산에서는 탐석이 어려운 편이다.
1). 傳統美術과 海石의 文樣美 鑑賞
과거의 西洋畵가 서양인의 기질답게 대상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자연을 再構成하려 했다면, 과거의 東洋畵는 화가의 사상이나 바람 등을 자연이라는 體를 활용하여 표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동양의 화가는 자신의 사상이나 원하는 바를 象徵的으로 또는 隱喩的으로 표현하고 있어 동양과 서양은 그 藝術的 動機를 달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東西洋이 자연을 바라보는 데 근본적이 視覺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서양은 인류의 부와 안정 등 그 文明的 발전을 위해서는 자연이란 활용하고 극복해야 할 하나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자연이란 순응해야 할 至高의 대상이자 價値로 보아왔다. 즉 동양에서의 자연이란,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그 攝理에 따라 살며 우러러야 할 대상인 것이다. 동양인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부터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맞이하게 되는 吉凶禍福과 生老病死, 그리고 壽福康寧 등이 모두 天地造化라는 자연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보았다.
가령 가뭄이 계속되어 흉년이 들면 그것은 그 나라의 통치자인 제왕이 不德한 탓에 하늘이 내리는 벌로 보았고, 반대로 풍년이 들면 제왕의 정성과 덕이 하늘에 닿아 하늘이 감동하여 내리는 베풂으로 보았다. 살고 있는 집터는 가정과 자손의 길흉화복의 진원지이며, 祖上의 묘터는 그 一家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어서, 땅도 하늘도 우러러야 할 대상이었다.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면 큰 별이 생겨 빛나고, 그 사람이 죽으면 별도 따라서 떨어진다고 하여 별 하나 하나에 사람 목숨 하나 하나를 걸어놓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의 삶과 마음과 생각을 자연을 빌어 해석하고 표현하려 했던 것이 동양인의 인생관이자 세계관이었다.
모란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부귀가 오래 갈 것으로 보았고, 아침에 까치소리를 들으면 기쁜 소식이 올 것이라 기대했다.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梅花를 보면 매화는 한평생 아무리 추위에 시달려도 결코 그 향기를 팔지 안는다(梅一生寒 不賣香)는 글귀를 화제로 하여 선비의 貞節을 내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하늘거리는 아래, 물위에서 짝을 지어 노니는 원앙 한 쌍을 그려 부부의 화합을 내보였고, 不動의 바위를 그려 長壽의 꿈을 펼쳤는가 하면, 꽃 지고 잎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無常에 가슴 저리며 생의 부질없음을 새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동양에서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As it is) 섬겨야 할 대상인 동시에 人間事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그림이라는 것은, 그리는 사람이 자기가 하거나 바라는 바를 자연을 빌어 화폭에 옮겨 놓는 일이었다. 이때 그림 속의 자연은 한 장의 편지나 한 편의 詩와 같이 의사를 전달하는 매체로 언어와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는 글귀를 보고 그것을 虛辭로 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동양화의 세계이기에 天敵인 뱀과 개구리가 한 화면에서 노닐 수 있고, 봄꽃과 가을꽃이 한마당에 피어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梅蘭菊竹을 四君子라하여 이를 주제로 삼아 같은 法으로 같은 대상을 여러 명의 화가가 그리고, 같은 畵題를 붙여도 작가의 화론이나 창의성을 놓고 굳이 따지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미 말했듯이 그림이란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빌어 화가의 뜻을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뜻이나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나 문자, 때로는 순리와 같은 것이다.
가. 山水景의 세계
동양화의 산수정경은 실경이면서도 그 속에 사유적 세계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문양석의 문양이 설사 틀림없는 山水景이라 할지라도 그 순수 자연의 돌 문양을 빌어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완상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옛 그림은 자연계에 있는 實體를 模寫한 것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과 연관된 마음(생각)을 묘사한 것이다. 즉 우리의 옛 그림은 인간의 마음과 조화되는 어떤 바람이나 자연에서 터득된 이치(진리) 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옛 그림은 그린 사람의 心象이자 상징물이다. 따라서 그림이 실제와 얼마만큼 닮았느냐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화가의 마음의 妙處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실체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힘든데, 돌의 文樣이 자연의 실경을 그대로 닮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에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신비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 옛 그림이 심상의 표현이라고 할 때 우리가 無爲自然인 돌 그림에서 읽은 것은 보는 이의 心象에 자연의 오묘함이나 그 어떤 섭리 같은 것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따라서 수석감상의 묘미는 自然과 會通하는 데 있다. 돌의 문양에서 마음의 묘처를 찾아내고, 그것에 감동하다가 心醉함으로써 어느덧 문양 속의 自然景에 漸入되고, 끝내 자연의 일부로서 회귀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즉 자연과 내가 주객을 떠나 하나로 융합되는 의식에 머물게 되는 것이 바로 玩石의 멋과 맛이다.
돌에 박힌 山水文樣, 보는 이에 따라서는 八景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고, 동양적 數値觀에서 최대의 수인 九를 찾아 九景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머지 一景은 石人의 心相景으로, 바로 수석의 景일 것이다. 이 一景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또 평소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세계가 오늘의 수석인들이 옛 그림과 옛 수석인과 만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문양 속으로 들어가, 흔히 산수화에서 한 개의 점으로 표시되는 자연인처럼 되어야 한다. 眼窓을 활짝 열어 다시 한 번 一景을 찾아볼 일이다.
나. 長生의 세계
不老長生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이, 학, 사슴 등 열 가지의 長生物에 의탁해 그린 그림이 十長生圖다. 이러한 십장생도는 위에서 열거한 열 가지의 장생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昌德宮에 있는 십장생도에는 위의 十長生 이외에 대나무와 복숭아가 추가되어 있고 景福宮 慈慶殿 굴뚝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포도가 추가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十長生이란 당시의 사람들이 불로장생의 세계, 즉 仙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그들이 가장 기리는 것을 그려 넣은 그림이라 볼 수 있어서 넓게는 長生圖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러한 바람을 담은 십장생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매력과 수석인 스스로의 바람 등으로, 해석인들은 일찍부터 장생 문양석을 모아 왔고 오늘도 십장생을 완성시키려 계속 노력하고 있다. 십장생을 모으는 일은 앞으로 살펴볼 十二支神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완성해 나가는 과정의 즐거움과 완성되었을 때의 벅참으로 해서 보람이 있는 일이다.
십장생도를 보면 우뚝우뚝한 산에 五色 구름이 걸쳐있고, 빛나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靑鶴과 白鶴이 날고, 산에서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괴암과 기석 사이에 흐르는 물에는 금거북이와 은거북이가 놀고, 사슴들이 한가로이 무리 지어 있다. 앞에는 붉은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그 아래에는 불로초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더욱이 장생도는 모든 자생물을 화려한 진채로 묘사하여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가 감돌고 있다.
다. 十二支神의 세계
子(쥐), 丑(소), 寅(호랑이), 卯(토끼), 辰(용), 巳(뱀), 午(말), 未(양), 申(원숭이), 酉(닭), 戊(개), 亥(돼지)의 열두 종류의 동물을 十二支神이라하여 땅의 신을 대표한다. 이들은 하늘의 질서인 天干인 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짝을 지어가며 60년을 一甲으로하여 한 바퀴 돌면서 위의 열두 동물의 속성을 잣대로 하여 우주의 질서와 변화를 시간적으로 표현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사에 깊이 관여해온 동물들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四柱라하여 한 바퀴 돌면서 위의 열두 동물의 속성을 잣대로 하여 우주의 질서와 변화를 시간적으로 표현해왔다. 따라서 이들은 동양문화권에서 인간사에 깊이 관여해온 동물들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四柱라하여 생년월일시에 干支를 달아, 이들의 일생 동안의 命運을 점치는 바탕으로 쓰였는가 하면 공간의 방향까지 이들로 표시하여 사회와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해석인들 사이에서 이 십이지신은 十長生과 더불어 커다란 수집 장르가 되고 있다. 따라서 전통미술이나 문화에서 이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동.식물과 관련하여 어떠한 상징을 이루어내고 있느냐는 것은 해석의 문양이나 형태를 완상하는 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 달의 세계
해와 달에 관한 우리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라 아달라왕 4년 동해변에 사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이들은 각기 해와 달의 精이었기에, 이들이 일본으로 간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만다. 이 신화에서 달의 정기인 세오녀는 여성이므로, 달은 여성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의 민속에서 달은 농사에 관련되어 풍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와 시절의 운행을 상징하고 있다. 달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고 3일간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춘다. 이렇게 달이 변하는 것은 주기적이고 항구적이다. 따라서 달은 榮枯와 起伏과 興亡盛衰를 상징한다. 달은 그 빛이 부드럽고 감싸는 듯 푸근하다. 달빛은 언제나 물기를 머금은 듯해 여성적인 서정성과 조화와 융합, 내밀스런 공감, 은근함 등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달빛에는 정화하는 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달에는 이상과 같은 긍정적인 상징 이외에, 그 차가운 듯한 느낌 때문에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소외의 은유로 쓰여 情恨의 서정을 표상해 왔다. 유교에서 달은 淸閑이나 청정하고 은일한 군자의 덕으로 칭송되었고, 불교에서는 달이 밝고 원만하되,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아 圓融自在하므로 진리나 佛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달은 해와 달리 어둠에서 빛나고 있어 無明과 有明을 상징하였다. 끝으로 달은 전통적인 시문학에서는 詩情, 절개, 고독, 정한, 평화를 일깨워주는 매체이다.
마. 四君子의 세계
꽃을 보면 향기를 맡고 싶고, 향기에 취하면 그 향기를 그려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는 동양화에서 각각 다른 계절에 피는 꽃을 한데 어울려 그리고 四時群芳이란 화제를 단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양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그림이지만 꽃의 향기와 그 정신세계를 그려내는 동양화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향기는 人品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깊숙한 산 속, 저 만치에 피어있는 난초, 비록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은은히 풍기는 향기가 있기에 그곳에 난초가 피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인품을 갖추어야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賢者를 가까이 하는 것을 지초나 난초를 얻음과 같다(親賢者如就之蘭)고 하였다. 즉 현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난초의 향기를 맡는 것처럼 그 사람의 인격에 감화되어 인품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계절에 각각 피는 꽃을 한데 어울려 그린 그림을 걸어 놓고 보는 것은 일년 내내 인품이 높은 사람들과 곁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런 생각에서 종종 梅, 蘭, 菊, 竹을 한데 그려 놓고 四時淸香이란 화제를 붙여, 혹한을 견디어낸 매화가 풍기는 의지의 향기와, 은은히 풍기는 난초의 고고하고 청초한 인격의 향기를, 그리고 가을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있는 국화의 군자다운 지조의 향기와, 늘 푸르르며 올곧게 서있는 대나무의 절개의 향기를 일년 내내 맡으며 스스로의 인품을 다듬었던 것이다.
바. 새(鳥)의 세계
새는 나무에서 산다. 이 때문에 새와 나무와 꽃은 전통적으로 한데 어우르는 그림으로 발전하여 하나의 畵科로 자리잡아 왔다. 이러한 花鳥畵의 상징성을 돌의 문양과 비교해보기 위해 화조화의 畵意를 살펴보자.
새는 날아 움직이는 것이고 꽃이나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움직이는 動의 새와, 움직이지 않는 靜의 꽃이 조화되는, 음양이 조화되는 묘를 인간의 염원에 실어 표현하는 것이 화조화이다. 이때 새나 꽃은 이러한 화의를 토해 내는 소재일 뿐이다. 두견새 울음소리에 배꽃빛을 더해 素服斷腸의 哀傷美를 더 했는가 하면, 꽤꼬리의 구르는 듯한 소리를 버드나무 가지에 실어 더욱 그 교성을 하늘거리게 했고, 나아가 봉황을 연꽃과 짝을 지어 정신적으로 가장 높은 세계를 열어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화조화는 새와 꽃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자연의 섭리를 걸출하게 내보이는 세계이다.
사. 물고기(魚)의 세계
'莊子'의 '秋水'편을 보면 장자와 惠子가 濠江을 지나는 다리를 거닐면서 강물을 내려보며 나눈 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말하기를 "물결 속의 물고기가 자유로이 뛰노는 것을 보니 저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인가 봅니다." 이 말을 듣고 혜자가 비아냥거리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고기가 아닌데 어찌 고기가 즐거운지 알 수 있는가?" 이에 장자가 대답하되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 하시오?"
장자와 혜자가 나눈 이런 도가적 이야기를 보고, 후세 사람들은 물고기가 자유로이 노니는 것을 大自由 또는 安分知足, 無碍, 悠悠自適, 上樂이라 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足蹟의 좌우 발바닥에 물고기를 각각 한 쌍씩 새겨서 해탈의 경지를 내보이고 있는가 하면 밤낮 없이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를 보고, 아예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木魚를 걸어두고 수행정진을 즐겨하는데 썼으며 木鐸은 물고기의 형태를 추상화한 것이다.
유교에서는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모습이 군대의 행진과 같다는 생각에서 이를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사,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보았 다. 물고기 魚와 남을 餘의 발음이 같아 물고기는 여유와 풍요를 상징하는가 하면 물고기가 黃河에 있는 龍門의 급류를 통과하면 용이 된다하여 명성이나 시험의 어려운 관문을 登龍門이라 했다.
또한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임금과 백성의 관계로 비교하기도 했다. 물고기의 이러한 상징성을 빌려서 왕릉의 정문에 물고기를 施紋하여 그곳이 신성한 곳임을 표시하고 물고기의 비늘을 본떠서 갑옷을 만듦으로써 將師를 상징케 하기도 하였다.
2) 形象美의 鑑賞
가. 韓國의 造形美와 海石
거의 자연석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十二支神 돌 조각을 보려면 아무래도 景福宮 越臺에 있는 十二支神 石像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方位에 따라 열두 동물을 배치한 공간 경영의 묘도 놀랍지만 돌이 빚어낸 匠人의 솜씨는 가히 神工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각 아닌 조각, 형상이면서도 형상을 벗어난 탈속한 모습이 자연스럽기 한량없다. 우리 조각의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우리 나라 考古學界의 원로였던 金元龍 박사의 글을 보자.
"나는 여기(경복궁 월대) 申石(원숭이)이 가지는 겸손하고도 위대한 한국의 미에 발을 멈추고 탄성을 올렸다. 이 무명의 石匠이 곰방대를 물고 쪼아낸 조각 아닌 조각은 근대 한국이 낳은 뛰어난 조각이 아닐 수 없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미를 일개 花岡石위에 凍結시킨 일대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나라의 조각가들이 외국 조각 작품집에 열중하기에 앞서 먼저 이러한 無名의 한국 고대작가가 만들어 낸 우리 자신의 전통에 눈 돌릴 것을 권하고 싶다. 전통 위에 서있지 않고는 새로 자기 자신의 스타일이 생길 수 없고, 전통과 배경과 기반이 없는 "發展"은 맘보바지를 입은 아프리카 인들의 트위스트 춤처럼 허무하다. (중략) 당시의 美術人들은 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직업공장(工匠)들이었지만, 그들의 본질적인 氣質은 조금도 직업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제작 태도는 물처럼 밝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는 虛飾 衒氣와 오만이 없고 쌀밥과 같이 담담하고 가을꽃처럼 천진난만하다."
이러한 돌 조각을 감상한 壽石人이라면 강과 바다가 유구한 시간과 물로 彫琢 해낸 수석의 세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각가의 창작의도에 따라 치열하게 쪼아낸 有意的인 작품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 따라 손길 따라 무심결에 만들어 진 듯한 돌 조각들, 무위의 손길인 양하여 수석과 짙은 심정적인 밀착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만일에 이 돌 조각들이 강에서 만년, 바다에서 몇 만년을 수마가 된다면, 그래서 수마로 요철을 다 털어 버린다면, 우리와 만나는 바닷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는 생각을 탐석에 빠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나. 造型美(海石)의 形成과 消滅
돌 조각이 쪼아냄과 갈아냄의 미학이라면, 수석은 모래의 스침과 물의 어루만짐의 미학이다. 돌 조각이 사람의 한 생을 거는 有限的이고 인위적인 몸짓이라면, 수석은 돌이 磨盡될 때까지 그 과정이 반복되는 무한적이고 무위적인 저절로 임이다. 이렇게 보면 바닷돌이 바다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일이란, 모래에 씻기고 씻기며, 파도에 구르고 굴러 마침내 둥근 돌이 되어 一圓相이 되고, 그 자리를 頂點으로 하여 스스로 몸을 털어 내며 한없이 작아지다가, 끝내는 사라지는 몸짓으로 볼 수 있다. 球形(卵形)의 一圓相은 그 생김만으로도 가득차 있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형상이다. 이것은 圓融無碍의 세계인 동시에, 버릴 대로 다 버려 꽉 차있으면서도 비어있는 空과 직결되는 사유의 세계이다.
바닷돌의 形象的 분류란 일원상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의 모양을 가려보는 것에 불과하다. 바닷돌은 기본적으로 둥글음을 바탕으로 한 抽象내지 이에 가까운 형태이다. 따라서 형태가 대부분 단순. 간결하고 이미지가 순수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禪的인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바닷돌은 형태의 單調性 때문에 강돌과 같이 다양한 표현의 物象이 생길 수 없다. 일반적으로 海石界에서 통용되고 있는 바닷돌의 형태적 분류는 크게 보아 圓石(球形 또는 卵形), 人物石, 器皿石, 果石, 線石, 物形石과 이들의 異形 내지 變形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바닷돌에도 아직 角이 남아 있거나 절단된 面으로 된 面體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는 四角器形類나 圓柱形 등도 즐길 수 있다.
3. 現代繪畵 와 海石美의 鑑賞
1) 해석문화의 발전적 課題
이제까지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지닌 미의식을 바탕으로 해석 감상의 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석 감상의 세계를 전통문화의 미의식에 바탕을 둔 것은 실제 이러한 전통적인 미의식이 해석의 장르를 이루며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우선 접근하기 위한 것이고, 다음으로 전통문화의 미의식에 바탕을 둘 때, 적어도 우리 민족의 정서와 체취를 담아내는 해석문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에 서였다.
나아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먼저 우리 것인 전통문화를 해석문화의 큰 틀로 했을 때 우리의 해석문화가 세계적인 해석문화가 될 수 있다는 확신 또한 컸기 때문이다. 어차피 각국의 문화는 세계문화라는 큰 틀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할 것이지만, 문화적 우월성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측은 우리 수석인들로 하여금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문화의 주체성을 생각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이러한 주체성을 확립하는데 무엇보다 긴요한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수석문화를 발전시키는 토대이자 토양이며 길잡이인 것이다.
한편 전통문화를 세계적인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려면 우리 전통의 틀과 振幅을 넓혀야 하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지닌 문화 전반을 이해하고 그것을 消火하고 吸收할 수 있는 문화적인 胃腸을 키워가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위장을 키우는 데는 별다른 王道가 있을 수 없다. 오직 각국의 문화를 유기적인 관점에서 깊이 탐구하는 길뿐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각국의 문화를 여기서 두루 취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해석을 감상하는 주된 방법이 회화와 조각적 안목에 있으므로, 현재 각국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現代美術의 내용과 경향을 살피는 것으로 해석문화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고자 한다.
미술의 세계는 넓고 깊다. 특히 현대미술은 난해한 존재이다. 이런 미술의 세계를 海石과 관련하여 살펴본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석문화를 발전시켜 세계적인 것으로 나아가려면 해석인이 어차피 넘어야 할 커다란 바위이기에 스스로 파도가 되어 부딪혀볼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에 관한 이해와 소화, 그것은 세계를 향해 가는 海石文化의 課題이다.
2) 海石美 감상과 現代美術의 흐름
바닷돌을 탐석하다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형상이나 문양을 자주 만난다.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돌의 숫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더욱이 이런 돌에 웬일인지 마음이 자꾸만 끌리면 모셔갈 것인가 아닌 가로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고민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도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흐름을 해석의 감상이라는 관점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가. 눈으로 보는 그림
자연현상이나 사물을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은 누가 보아도 그것이 무엇을 그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그림과 같은 돌의 문양이라면 우선 그 문양을 감상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사실과 꼭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라고 감탄할 일이다. 사람이 그린 것도 아닌데 자연의 문양이 어쩌면 이럴 수 있나 하는 묘감에 젖어들어 이런 문양석과 만났다는 사실을 수석 하는 보람으로 생각 할 것이다. 더욱이 이런 사실적인 문양을 이미 살펴본 전통문화의 미의식을 바탕으로 감상을 할 때는, 사실적인 문양이라는 신비감이나 묘감에 더하여 그 감상의 깊이와 폭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이런 사실적인 그림을 좀더 짚어보면, 아무리 사실을 그래도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사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어디까지나 회화적인 표현을 한 것에 불과하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는 알다시피 몇 가지의 표현기법이 있다. 역으로 사실적인 그림이란 이런 표현기법에 따른 그림이다.
그림의 역사에서 사실적인 표현기법이 발견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컨대 고대의 고분벽화나 원시의 고분벽화는 사실을 그렸음에도 실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그림은 2차원적인 平面畵이기 때문에 사실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사실로 보이게 하려면 우선, 현실을 화면에 옮겨온 듯한 空間感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간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遠近法이다. 즉 멀리 있는 것은 멀리, 가까이 있는 것은 가깝게 느껴져야 공간감을 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된 방법이 원근법이다.
둘째로, 어떤 물체가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려면 입체적인 것으로 보여야 한다. 이와 같은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가려 표현하는 기법이 明暗法이다.
셋째로, 사람이든 새든, 꽃이든 간에 그림은 살아 있는 것 같아야 된다. 다시 말해 생기가 있어야 되는데, 이미 창백해진 시체에서 생기를 느낄 수 없듯이 사물에는 색채가 있어야 된다. 따라서 실체를 그리려면 색채를 적합하게 칠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어떤 사물에 원근감을 주고, 빛의 밝기를 불어넣고, 색칠을 한다고 해서 실물과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생물인 경우는 이와 같은 표현기법으로 실체를 그대로 그리는데 별 문제가 없겠지만 생물인 경우에는 生動感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동감을 주려면 아무래도 구조적 메카니즘이 동원 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解剖學 등 生態分析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끝내는 魂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표현기법을 사람들이 찾기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 방법 때문에 그림은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눈으로 보는 사실적인 그림의 세계다. 실제 우리가 탐석을 해보면 어느 정도는 모르지만 사실적 그림과 같이 원근이나 명암이 처리된 문양석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분석적인 면이나 색채가 실물의 것 그대로 되어있는 것은 더더욱 드물다. 하물며 혼을 이야기해서 무엇하겠는가.
사실 문양석의 대부분은 고분벽화나 우리의 민화같이 2차원적인 평면화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면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실화로 보고 있다. 또한 옛 그림이 대부분 평면화라 해도 그것을 사실화로 감상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우리가 문양석을 보는 방법은 화가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특징적인 요소, 즉 회화적인 요소로 그림을 그려내듯이, 우리 수석인들도 문양에서 특징적인 요소를 가려내어 감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문양에서 이런 특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데는 直視的인 판단이 가능한 대상 이외에는 우선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보는 눈을 기르려면 평소 자연과 사물을 세심히 살펴보고 그것을 돌의 문양과 견주어 보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年輪이나 眼目은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연륜이 쌓이고 안목이 깊어지면 공중에 떠있던 매가 물 속의 고기를 낚아채듯이 문양의 상징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돌의 문양이 사실적이라 해도 보는 이에 따라서 解釋이 다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수석의 묘미이자 眼目의 함정일는지 모른다. 따라서 海石은 解釋을 잘 해야 된다.
끝으로 우리가 이미 수석이론에서 문양석은 사실을 그대로 닮은 것보다는 비슷하면서 정서나 해학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 더 묘미가 있다는 점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나. 마음으로 보는 그림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그림에는 사실적인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에 따라서는 사실적인 표현기법인 원근법이나 명암법, 해부학적 분석법, 그리고 색채를 아예 무시한 그림도 많이 있다. 즉,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사람의 마음인 주관이 강조된 그림으로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 있다. 마음으로 느끼는 불안, 공포, 기쁨, 고통 등을 형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나무가 빨갛다고 느껴지면 빨갛게 칠하고, 태양이 검다고 느껴지면 검게 칠한다. 또 태양이 빙빙 돈다고 느껴지면 태양에 팔랑개비를 단 듯 빙빙 도는 모습으로 그린다. 즉 가슴속에 묻혀 있던 뜨거운 감성을 일깨워내는 그림이 바로 마음으로 보는 그림이다. 다시 말하면 주관적 표현주의의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 그림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였는지, 나아가 무엇을 그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이런 그림은 아름답고 무엇인지 모를 뭉클함이 있고 무척 감미롭다. 격정이 저절로 치솟게 하는 등, 화면을 뛰쳐나오는 그 어떤 메시지에 흡입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술에 문외한은 이런 그림의 회화적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답답하다.
이 답답함을 때때로 '요새 그림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치부하고 아예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있다. 좋으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그림들, 돌밭에서 이런 그림을 보면 알 수는 없으나, 문양이나 색채에 마음이 끌려 일단 주워들었다가 아무리 보아도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그대로 돌밭에 두고 온 경험이 해석인들 중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에 그 문양이 명화처럼 명석이었다면 어쩌나 하는 아쉬움도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후회 없는 탐석을 위해서, 또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도 마음으로 보는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수석감상의 제2의 도약일는지 모른다. 마음으로 보는 그림을 살펴보면.
첫째, 뭉크의 '절개'와 같이 눈으로 보는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마음으로 느낀 불안이나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 형태를 일그러뜨린 그림이 있는가 하면.
둘째로,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과 같이, 어떤 사물 등 대상에서 받은 감동을 그대로 표현한 그림이다. 나무가 빨갛다고 느끼면 빨갛게, 태양이 빙빙 돈다고 느끼면 돌아가는 듯 그린 그림이다. 즉 마음으로 느끼는 형태나 색깔을 과장하거나 변형시켜 가슴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뜨거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셋째로, 근대의 산업문명이나 도시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으로 느끼는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그림이다. 고갱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지니려고 타히티 섬으로 가서 원시인이나 다름없는 그곳 원주민과 더불어 살면서, 원시의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새롭게 다시 보고 이것을 화폭에 옮겼다. 이상에서 살펴본 그림들은 사실적 눈이나 이지적인 눈과는 달리 비논리적이고 비분석적이다. 이런 그림에서는 형태의 윤곽이 분명치 않고 어느 그림은 아예 형태가 깨져있는가 하면 색채가 지니는 미묘한 감성의 차이도 무시되어 있다. 물론 원근이나 명암, 그리고 입체감도 무시하고 있다. 즉 눈으로 보는 객관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이렇게 객관성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어서 결국 화가가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하게 된다.
넷째로, 마티스는 고흐나 고갱보다 형태를 더욱 일그러뜨렸고, 고갱보다도 더 격렬하게 색채를 칠해나가 野獸派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격렬한 색채를 칠하다 보니 형태에서 색채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여 결국 형태에서 색채가 해방되었다. 위에서 예시한 뭉크나 고흐, 고갱의 그림에서는 형태가 깨지고 색채가 형태의 예속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 수 있는 그림이어서,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충분히 미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회화적 변화다.
다섯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상화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즉흥35'라는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을 보면 형태와 색채의 구별이 없다. 색채가 형태에서 빠져 나와 색채만을 그림이 이루어졌다. 결국 칸딘스키는 형태 없이 색채만으로 그림을 시도한 것이다. 아무 형태 없이 인간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끌어내어 화면에 격렬하게 쏟아 붓는 그림이 바로 '즉흥35'와 같은 추상화이다.
여섯째로, 잭슨 플록의 '집중'과 같이 화가가 아예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그린 그림을 보자. 캔버스로 들어간 잭슨은 마음을 완전히 풀어 젖히고, 자신의 내면 세계의 율동에 따라 슬픔과 놀람과 분노 등을 분출시킨 그림이다. 결국 뭉크나 고흐의 방법을 가지고 스스로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더욱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칸딘스키나 잭슨 플록의 그림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인간 내면의 형태 없는 에너지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만일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 수석인이라면 그는, 보아서 이것이 무엇이라고 얼른 알아낼 수 있는 직시적이고 사실적인 문양석에만 안주하지 말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같이 울려주는 문양석, 즉 共嗚하는 문양석을 찾아 즐기며 더욱 넓은 애석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마음의 눈으로 보는 그림의 세계를 간추려 보는 의미에서 마음의 눈을 살펴본다. 마음은 뜨거운 용광로이다.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용광로이다. 가령 바위에 앉아있는 仙人像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그림으로 그리기 위해 이 마음의 용광로에 넣는다고 가정해보자.
첫 단계에서는 뭉크의 '절규'와 같이 형태가 일그러져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둘째 단계에서 더 열을 가하면 형태는 더 일그러지고 색채는 형태 밖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셋째 단계에서 더 열을 가하면 완전히 녹아버려, 녹아 헝크러지는 형태가 되어 결국 그것이 무엇이었나를 알 수 없는, 즉 正體性이 없는 기이한 형태가 될 것이다. 넷째 단계에서는 형태와 색이, 사람으로 보면 뼈와 살이 녹을 정도로 완전히 녹아버리면 용광로 바닥에는 진한 액체, 또는 찌꺼기만 남을 것이다. 이것을 그릇에 담아 캔버스 위에 흘리고 뿌리면 잭슨 플록의 '집중'과 같이 전혀 형태가 없는 그림인 추상화(추상표현주의)가 될 것이다. 이런 그림이기 때문에 칸딘스키나 잭슨 플록의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사실적인 그 무엇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현대의 그림이 난해한 것이다.
다. 理性으로 보는 그림
감각적인 눈이나 주관적인 마음의 눈보다는 이성의 눈을 강조하고 있는 그림이다. 즉 물리적인 감각으로 대상을 보는 눈(眼)이나 五慾七情에 따라 대상의 느낌이 달라지는 마음의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知的인 思惟過程을 통해서 대상(事物)을 分析하여 그린그림으로, 현대미술의 대부분은 이런 분석적인 눈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석적인 눈을 통한 몇 가지 표현방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묶어볼 수 있다.
첫째, 형태의 본질을 빛으로 본 印象派의 그림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제까지 화실에서 그리던 캔버스와 붓을 들고 밖으로 나와서 야외의 햇살 아래서 그림을 그렸다. 모든 물체는 내리쬐는 햇살로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음을 보고, 빛을 형태의 본질로 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外光派라고도 한다.
인상파는 빛을 형태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에 마네의 '해돋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형체의 밝은면 만을 그리되, 빛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모양이 달라지므로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 되도록 그림을 빠른 순간에 그리려 했다. 나아가 빛에 따른 색채의 가시석 효과를 노리기 위해 물감을 점으로 찍어 가는 표현방법(新印象派)을 쓰기도 했다. 바닷돌 중에서 검은 바탕에 노란 점을 붓으로 찍어낸 듯한 돌을 보면 그 색이 마치 강한 햇살인 양 유난히 선명한 것을 보면 이 點描法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형태의 본질을 원통으로 본 세잔은 인상파의 순간 포착이나 빛나는 색채는 인정하면서도 그림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이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형태라는 것이다. 그는 인상파의 말대로 아침에 보는 사과와 점심에 보는 사과, 그리고 저녁에 보는 사과가 빛에 따라서 달리 보일지라도 사과는 사과로서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형태라는 것이다.
그는 미술의 본질은 형태에 있고, 지상에 있는 모든 형태는 球나 圓筒, 그리고 원뿔(圓錐)이라는 본질적인 형태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예컨대 사람을 머리인 求와 원통인 몸체와 팔다리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형태에 빛나는 색채를 주기 위해 표현의 필요에 따라 빛의 영향을 자의적으로 조정해가며 그림을 그렸다. 즉, 그는 원근법의 시점을 자유롭게 잡아갔을 뿐만 아니라 명암법도 파괴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림이 내부의 造形世界로 급속히 발전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점 때문에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다.
셋째, 圓筒을 입체로 본 피카소, 피카소도 미술의 본질을 형태로 보아 세잔의 造形思考를 계승했다. 그는 '형태란 面과 面의 集合'이라고 했다. 즉, 형태란 앞면, 뒷면, 윗면으로 구성된 입체의 덩어리로 보았다. 또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 시간마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존재임을 보고 그림에서도 전. 후. 상에서 본 이 면들을 펼쳐놓는다(2단계). 그런 다음 각각의 면 조각들을 짜 맞춘다(3단계). 이렇게 하면 입체파 그림(分析的 立體派)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종래의 3차원적에서 4차원으로 차원을 높인 것이지마는 도대체 무엇을 그렸는지 혼란스럽다.
인간이란 대상을 볼 때 눈의 초점은 그것이 설사 순간적일지라도 고정되어 늘 3차원적인 것을 보고 살아왔기 때문에 4차원적인 것에서는 삶의 정서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이에 피카소는 분석적인 방법은 유지하되, 기쁨이나 슬픔 등 삶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즉 사물의 형태는 유지하되 그 속에서 분석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울고 있는 여인을 그리되, 양 측면에서 본 결과 정면에서 본 얼굴을 결합하면 얼굴의 형태가 유지되어 기쁨이나 슬픔 등 삶의 정서가 표현되는 것이다.(綜合的 立體派)
넷째, 입체를 면으로 본 몬도리안, 빈 맥주 캔을 세워놓고 위에서 발로 밟아 납작한원이 되게 하듯이 피카소가 단순화시켜 놓은 입체를 한 번 발로 밟아보자. 그러면 단순화된 평면이 될 것이다. 이것이 소위 현대의 幾何學的 抽象美術이다. 예컨대, 나무를 단순화 시키면 수평선과 수직선이 결합한 형태가 될 것이고, 이것을 밟아 압축하면 수직선이 될 것이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조형적인 美感에 따라 배치한 그림이 '적.황.청의 콤포지션'이다.
이렇게 몬드리안에 이르면 그림은 더 이상 외부의 사물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것이다. 즉 그의 미술은 자연이나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點이나 線. 面(면). 色(색)과 같은 純粹(순수) 造形(조형)으로 그려진 미술세계인 것이다. 선과 선, 색과 면, 선과 면의 조화의 세계이다. 그러나, 자연물인 돌에도 순수 조형을 느끼게 하는 문양이 있으니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고, 이것을 발견하여 즐기는 수석인 이야말로 행복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결국 삶의 이야기를 그림에서 지워버렸지만 수석인들은 그런 그림으로 오히려 풍류적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4. 結語
이제까지 한국미의 특성을 시작으로 형.색.선의 세계를 살펴본 다음, 우리 해석인들이 즐겨 탐석하고 있는 十長生, 十二支神과 花鳥, 魚, 動物, 草木 등의 문양을 전통미의 관점에서 해석의 감상과 연계하여 살펴보았다. 또한 형상석으로서 人物相, 器, 果 기타 등도 역시 전통적인 미의식에서 살펴본 다음 우리 해석문화의 문화적 消化力을 키워 세계적인 해석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한 힘인 수석인의 眼目과 철학을 북돋우기 위해, 현대미술의 전반을 수석감상의 필요성이라는 범위에서 수석인의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해석을 즐긴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고, 그 역사의 흔적도 계속 밝혀지고 있지만, 현대적인 해석은 그 본격적인 출발이 지난 世紀末(1980년대 이후)이어서 아직도 그 이론적인 체계를 세워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렇게 이론을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론 체계를 어느 관점에 두고 있느냐 즉, 사상성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가가 역사를 기술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實證과 더불어 史觀이기 때문이다.
사관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植民史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니 일부에서는 아직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그 미의식을 강하게 의식하며, 그것을 해석문화의 토대로 자리 매김 하는데 노력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는 결코 해석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면, 우리의 해석문화가 가장 세계적인 해석문화로 꽃 피우기 위해서는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해석미의 발견과 발전은 이 시대의 해석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통미술이나 현대미술 그 어느 쪽도 넓고 깊지 않은 것이 없었다. 따라서 학식이 남다르게 부족한 필자로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다만 이 글이 해석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조그만 보탬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