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차향만리_07

醉月 2013. 3. 28. 01:30

달콤 개운한 맛…추위 걱정 끝!

무차

김대성 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세간에서는 겨울 무를 인삼과 다를 바 없는 보약이라고 말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게, 인삼 족보를 캐다 보면 무가 인삼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겨울 무는 숙성돼 그 맛이 단 데다 다양한 성분에 의한 약효까지 지닌다. 무는 대부분 수분으로 구성돼 있지만 비타민과 단백질, 무기질, 아밀라아제 같은 성분이 소화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공복에 먹어도 부담이 없다

.

약이 귀하던 시절, 무는 기관지 질환에 놀라운 효과를 발휘해 생무를 씹어 먹으면서 기침을 잠재우기도 했다. 무의 매운맛을 내는 시니그린이 점액 분비를 활발하게 해 기관지에 붙어 있던 가래를 묽게 해주기 때문이다. 식이섬유와 수분은 체내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하고 변비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일본 고문헌 ‘본조식감(本朝食鑑)’(1697)에는 무가 “곡류를 능히 소화시키고, 가래를 없애며, 토혈과 코피를 멈추게 하고, 어육의 독소, 술의 독소, 두부의 독소 등을 해소한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해독성이 강해 예전에는 민간요법으로 주로 쓰이던 무가 약이 흔한 요즘에는 요리에 주로 쓰인다. 무는 이제 찌개나 국을 끓일 때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재료가 됐다.

 

무는 생무와 익힌 무의 효능이 각각 다르다. 생무는 소염작용으로 몸을 차게 하지만 열을 가하면 그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한다. 편도염이나 기침이 심할 때는 생무를 씹어 먹으면 기침이 멎는다. 타박상이나 화상, 류머티즘, 관절염 등의 환부에 생무를 간 무즙을 바르면 열이 가라앉고부기도 빠진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숙취로 속열이 날 때 무즙을 마시면 염증을 예방하고, 콩나물과 함께 국을 끓여 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생무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사용하기 직전에 갈도록 한다. 변질되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차게 하는 힘과 접착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가 대세인 최근에는 무차가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구수한 맛, 발그스레한 차색과 마신 후 개운한 느낌이 여느 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손쉽게 구할 수도 있거니와 ‘가정표’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경내에서 산중다실을 운영하는 서근숙(50) 씨는 무차 만드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무차는 얼음이 살짝 어는 초겨울이 만들기에 가장 좋다. 무를 깨끗이 씻어 껍질째 골패 모양으로 썰어 채반에 넌 뒤 햇볕에 10여 일간 말린다. 살짝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에서 단맛이 강해진다. 말린 무를 깊이 있는 팬에 넣고 80~90℃ 불에서 1시간 정도 덖으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짝 마른다. 식혀서 밀폐용기에 담아 습기가 없는 서늘한 곳에 둔다. 우기인 여름에는 냉장보관하는 게 좋다. 일반 가정에서는 요리하고 남은 무를 이용해도 된다. 무를 채 썰어 뜨거운 팬에 살짝 볶아 익힌 후 채반에 널어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서 바짝 말린다. 말린 무는 깊이 있는 팬에 30여 분 볶아 보관한다. 가늘게 채 썰었기 때문에 오래 덖으면 탄다.

마실 때는 말린 무 다섯 조각을 찻주전자에 넣고 뜨거운 물 150cc를 부은 후 2분간 기다렸다가 붉은 차색이 우러나면 찻잔에 따라 마신다. 둥굴레차 맛처럼 구수하면서 달콤하고 상쾌하다. 무차는 남녀노소 다 좋아할 만한 맛이다. 다섯 번 정도 우려도 차맛이 그대로다. 많이 우릴 때는 차 양을 조금 줄인다. 여러 번 우려 마신 후 싱겁다 싶으면 녹차나 발효차를 넣어 함께 우린다. 그럼 쌉싸래한 차맛과 어울려 제법 맛이 난다. 음식 궁합으로도 환상적이다.

시중에서도 무차를 살 수 있다. 100g에 1만 원 정도 한다. 위가 나쁘거나 기침과 속쓰림이 잦고 배에 가스가 잘 차는 사람은 무차와 친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숙취가 심한 날 위가 약한 사람은 무차를 마시는 게 좋다. 위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녹차와 함께 우려 마시면 효과가 배가된다.

 

“잠깐! 차 한 잔”… 막중한 국정의 쉼표 왕실의 ‘다방제도’

조선시대 다방을 재현한 모습.

 

제18대 대통령이 선출됐다. 신라 선덕여왕 이후 1300여 년 만에 여성 최고지도자가 이 땅에서 나왔다. 외유내강형인 박근혜 당선인이 어머니가 안살림을 잘 꾸려 가족이 편안하듯,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가꿔 국민이 경제, 범죄, 교육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경험에서 답을 찾고 옛사람의 지혜를 구해서라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소통과 믿음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대통령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도 국정을 믿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아 열심히 일할 수 있다. 부디 어진 백성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랏일을 잘 살펴달라는 마음을 담아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박 당선인에게 올린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왕이나 관리들은 중대한 국사를 결정할 때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머리가 맑아지는 차 한 잔을 마셨다. 차 속 카페인이 머리를 맑게 하는 작용을 해 아예 국가 부서로 ‘다방’도 설치했다.

이러한 다방제도는 차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고려 문종 1년(1047) 처음으로 실시했는데, 다방은 궁궐을 지키고 임금을 모시는 일을 맡은 성중관(成衆官)에 소속된 관청으로, 임금이 건강을 위해 마시는 차부터 국정을 돌볼 때 마시는 차까지 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전문적으로 관장했다. 국가적 축제인 팔관회와 연등회 등을 비롯해 설과 추석 같은 명절, 종묘제사, 사신맞이, 때로는 왕자책봉식이나 공주가 시집가는 자리에도 차가 의례물로 등장했다.

이같이 크고 작은 국가 행사에 차를 활용한 것은 차의 약용성과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의례적인 정신에서 비롯됐다. 고려 성종 때는 80세 이상 노인이나 중환자에게 차를 내렸고, ‘고려사열전’에는 아끼는 신하 최지몽이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 향과 차 200각을 부의품으로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다군사(茶軍士)’가 뒤따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궁중 밖에서 왕족에게 차를 올리거나 부처에게 헌다(獻茶)하기 위해 차도구와 짐을 나르는 의장대 행렬에 휴대용 화로를 들고 가는 행로군사(行爐軍士)와 다구를 포함한 차짐을 들고 가는 다담군사(茶擔軍士)가 뒤따랐던 것이다. 다군사는 군역을 면제받는 특전도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보충 인원이 수백 명이나 되는 폐단이 생겨, 그 수를 줄이려고 용모 단정한 자로 100명만 뽑았고, 때로는 종군하도록 했다.

 

조선 초에는 야다시(夜茶時)라 해서 밤중에 다방을 여는 경우도 있었다. 신하 가운데 간사하고 분에 넘치며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집 근처에서 야다시를 열어, 그 사람의 죄상을 흰 널빤지에 써서 집 대문 위에 걸고 가시나무로 문을 단단히 봉한 뒤에 서명했다. 이 경우 그 사람은 죄인으로서 세상에서 유폐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차를 마시는 의례를 행함으로써 세한(설 전후 매우 심한 한겨울 추위)에도 치우침 없이 엄정하고도 신중한 판단을 얻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에서 푸른 차나무의 성품을 다시에 적용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목이 말라 마시는 음료의 범주를 넘어,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에서 한몫할 수 있었던 차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커피가 수입되면서 흔히 다방이라고 하면 외국 문화의 일부로 여기지만, 고려 500년과 조선 500여 년 역사에서 다방은 엄연히 국가 기관으로 존재했다. 이외에도 일반 백성이 차를 마시는 공간인 다점(茶店)도 있었다. 이러한 다방 제도는 차 종주국이라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풍속이다. 조선 후기까지 존재하던 다방은 왕권이 무너지면서 일반 대중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요즘 외국 관광객으로 붐비는 한국관광공사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다동(茶洞)은 조정에 있던 다방이 궁 밖으로 나와 성황을 이루던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 수장이 여성이라 아마도 술보다 차를 더 가까이할 것이다. 옛말에 “차를 마시면 흥하고 술을 마시면 망한다”고 한 뜻을 새겨 차를 즐겨 마시면서 차처럼 맑고 기품 있는 정치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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