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한국인의 茶_08

醉月 2012. 11. 23. 10:39

차의 종류와 구별

세계의 차와 한국의 덖음차

 

차는 그 나라의 기후와 풍토 그리고 그 민족의 정서와 기호에 따라, 찻잎을 가공하는 방법이나 마시는 풍습이 달라진다. 만드는 방법에 의해 완전발효차, 반발효차, 덖음차, 찐차로 나누어지고 이런 방법을 혼합하여 만드는 차도 있다. 또 어느 한 방법을 택하여 만들어 두었다가 다시 가공하여 마시는 차가 있는데, 이러한 가공차로는 덩이차, 떡차, 돈차, 가루차가 있다. 작은 입자만을 모아 티백에 넣어 물에 흔들어 마시는 가루차가 있으며, 아예 곱게 갈아진 말차도 있다.

 

 
 

생잎으로 만드는 차와 발효시켜 만드는 차

만드는 방법을 나누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찻잎을 따자마자 단시간에 생잎을 가지고 차를 만드는 방법이요, 다른 하나는 발효를 가속화시켜 차를 만드는 방법이다. 전자가 덖음차와 찐차이고, 후자가 발효차와 반발효차이다. 그리고 전자나 후자에 관계없이 다른 초목의 꽃과 향을 가미한 차도 있다.

 

차나무뿐 아니라 모든 식물이 그러하듯 찻잎은 차나무에서 이완되자마자 갑작스럽게 모체로부터의 생명이 멈추게 된다. 찻잎의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단절의 충격으로 인해 퇴화가 시작되며, 나무의 일부분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다가 분리된 개체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와 전혀 다른 환경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충격과 다름이 없다.

 

차나무에서 분리되어 오는 변화가 발효라는 천부의 숙명적 작용이다. 발효(醱酵)란 효모세포, 미생물 등의 작용으로 유기물이 분해 또는 산화, 환원하여 알코올이나 탄산가스 등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찻잎으로 완전발효차를 만든다는 것은 차나무와 분리된 찻잎에서 생기는 발효열과 산화효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적정량의 찻잎을 용기에 쌓아두었다가 그 잎에서 완전히 발효가 무르익고 발효열이 식은 뒤 차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반발효차를 대표하는 차는 중국의 오룡차(烏龍茶)로 철관음(鐵觀音), 무이암(武夷岩), 봉황단총(鳳凰單叢) 등이 유명하다. 완전발효차로는 보이차가 대표적인 흑차류와 홍차가 있다.

 

발효차가 찻잎을 채취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만들기에 들어가는 차라면, 덖음차와 찐차는 빠른 시간 내에 바로 찻잎을 덖거나 찌지 않으면 변질된 차가 되어 특유의 향색미에 큰 차질을 가져온다. 찐차는 일본의 대표적인 차로 알려져 있으며 녹차(Green tea)라 부른다. 덖음차는 한국의 대표적인 차로서 산지나 생산자의 이름, 또는 생산자가 선호하는 고유의 이름을 붙인다. 위 두 방법을 혼합하여 만든 차로는 덖은 후 찌거나, 찐 후 덖는 차가 있다. 찐차는 찻잎을 시루에 찐 뒤 한두 번 비비는 과정을 거친다. 간혹 덖는 과정이 삽입되기도 하는데 이를 수제차라고 잘못 알기도 한다. 이때의 찐차가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 유학하고 돌아온 엘리트 스님들에 의해 한국의 사찰에서 유행한 시기가 있었다. 그로 인해 찐차로 만들어진 차가 수제차이며 사찰의 전통차라고 오해하는 풍습이 간혹 있다.

 

그리고 찐차를 가루로 내어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는 말차는 일본의 최고급차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이 찐차나 떡차, 전차 등 발효차를 전혀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어머니들이 음식재료에 따라 요리법을 달리 했던 것과 같다. 찻잎에 수분이 지나치게 많아서 덖음차가 어려울 때, 또는 찻잎을 따온 뒤 시간이 오래 지났거나 잎이 말라 있으면 시루에 쪄서 찐차를 만들었다. 찻잎의 보관상태가 나쁘거나 옮기는 동안 변질이 왔을 때는 떡차나 전차 등 발효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생선에 비유하자면 싱싱하면 잘 굽고 좀 덜하면 찌거나 끓여 먹고 몇 년이고 오랫동안 두고 먹으려면 젓갈을 담는 것과 같다. 잘 구운 생선은 덖음차이고, 찌거나 끓이면 찐차이며, 젓갈은 반발효차나 완전발효차라 할 것이다.

 

차의 종류에 따른 특성

완전발효차는 18세기 초부터 영국을 비롯한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주로 마셔온 차다. 중국의 완전발효차는 17세기 초 복건성 숭안(崇安)에서 시작되었다. 국토가 광활하고 인구가 많아 먼 곳까지 차를 운반하는 데 시일이 많이 걸리므로 변질을 막기 어려웠다.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찻잎을 완전히 발효하여 만든 것이 홍차가 되고 보이차가 된 것이다. 다량의 찻잎을 쉽고 간편하게 발효하여 두고 오랫동안 많이 마실 수 있는 것은 발효차가 제격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기름에 튀긴 음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특히 보이차는 입맛을 개운하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음료였다. 홍차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인도, 스리랑카, 네팔, 티벳,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 교목성 차나무 벨트의 생산국에서 많이 마시며 케냐, 터키, 러시아, 호주에서도 생산된다. 지금은 러시아, 유럽연합, 파키스탄, 미국 등지에서도 다량의 홍차를 수입해 애용하고 있다.

반발효차는 완전발효차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차이다. 반발효차는 완전발효차에 비해 발효도가 낮기에 우린 차색이 좀 더 맑다. 반발효차의 보관기간은 백년을 넘겨도 변질이 없는 완전발효차에 미치지는 못하나, 각기 다른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발효의 사전적 의미는 효모(酵母)균 즉 엽록소가 없는 단세포균과, 어디든 조금이라도 습하면 발생해 포자를 번식하는 하등 균류가 작용하는 것이다. 발효가 부패와 다른 것은 인체에 이롭게 하는 균이 확산되어 나쁜 균의 발생을 방어하는 데 있다. 그러나 흑차를 제외한 차는 찻잎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폴리페놀이 산화되어 그 과정에서 취합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발효의 조건, 즉 습도, 온도 등 환경적인 요인과 발효의 경중, 차나무 산지의 조건 등이 각자 다른 특색을 내게 되고, 이는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상용된 발효차의 힘이다. 반발효차 종류로는 청차(淸茶) 또는 오룡차(烏龍茶)가 있는데 생산지에 따라 차이도 뚜렷하다. 가장 유명한 것이 철관음(鐵觀音)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차나무 품종도 다양하며 다량으로 생산, 저장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찐차는 일본의 녹차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로 대기 속에 습기와 염기가 함유되어 있어 덖음차를 만들기도 어렵고 만든 차를 보관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일본이 다수확을 목표로 품종 개량한 야부기다는 찌는 방법이 최적이다. 찻잎은 본래 녹색이고 차를 만드는 과정에 의해 차색이 결정된다. 발효하면 암갈색이 되고 찌면 녹색이 되며 덖으면 감()색이 된다. 감색은 푸른 바탕에 붉은 색을 띤 색깔을 이른다.

 

일본 사람들은 생선의 비린내를 신선하다고 여기며 차에서도 비린내와 풋내가 나야 최고의 차라 한다. 찻잎이 어릴수록, 햇빛을 덜 받을수록, 질소비료를 많이 공급 받을수록 풋비린내가 진해지고 텁텁한 맛이 난다. 곡우 전에 우전차를 만들고 조금 크면 중작, 대작이라 하여 차등으로 친다. 일본은 이렇게 녹색이 나는 찐차에 ‘Green tea’라는 이름을 붙여 외국에 수출하였다.

 

현재 한국은 커피에 밀리고 있지만, 그나마 녹차와 중국 발효차가 차 마시는 인구를 석권하고 있다. 덖음차는 찻잎 생산이 저조하고 만들기가 까다로우며 사람 손으로 일일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된 수고로움을 차에 희생하려 하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모든 식물 중 차나무만이 지닌 고유한 특성을 가장 잘 연출하는 덖음차를 한국인들은 차 중의 차로 여겨 늘 만들어 마셔왔다. 지금도 소수의 선견지명이 있는 이들이 손쉬운 차보다는 어려울지라도 자연섭리를 인체에 전달하는 덖음차의 영역을 확장하여 세계적인 차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유구한 역사 속에 우리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는 한국 덖음차가 모든 차 중 가장 우수한 차가 될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일구향사호원람(一區香社號鴛藍)

한 곳에 절이 있어 원람(鴛藍)이라 부르노니

문경청허대벽강(門徑淸虛對碧崗)

문으로 가는 길이 맑게 비어 푸른 산봉우리 마주하네.

밀수저운롱상전(密樹貯雲籠象殿)

밀림에 구름이 잠겨 큰 집은 코끼리 같고

박유화월호예상(薄帷和月護猊床)

엷게 가린 달은 어우러져 사자자리에 둘러졌네.

강회송함음혼고(講廻松檻吟魂苦)

법문하고 돌아서면 괴로운 마음 소나무 난간에 걸리고

배료다원갈폐량(焙了茶園渴肺涼)

차 밭에 차 볶는 향기만 폐를 씻어 서늘하네.

괘석이수위학지(掛錫已酬爲學志)

부처를 배우려는 뜻 지팡이에 걸어두고

고산환몽구주당(故山還夢舊栖堂)

고향 산천 옛집을 꿈속에 그려보네.

 

-의천 대각(義天 大覺, 1055~1101):

순천 선암사에서 뇌원차(腦原茶)를 만들어 송나라 용봉단차와 교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