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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걷고싶은 길_보곡산길

醉月 2011. 3. 12. 10:13

봄은 완강하게 산천을 움켜쥐고 있었다. 발밑 흙부터 먼 산 능선까지 완전한 봄이다. 바람에 흙 냄새, 풀 향기가 배어난다. 길가에 햇살이 곧추섰다. 해 그림자 짧은 발걸음이 땀에 젖는다. 마을 동구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왔던 길을 500m 정도 돌아와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 섰다. (임도 입구에 ‘산벚꽃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자 돌길이었다. 축제기간만 아니면 이 길을 자동차를 타고 돌아볼 수도 있지만 파스텔 톤으로 산천을 물들인, 꾸미지 않은 봄의 자연을 온전하게 느끼기 위해 걸었다.

 

 

 

봄은 강하다

 

산풍경이 그 길을 따라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록 사이에 서 있는 산벚꽃의 흰 빛이 폭죽 같았다. 신록과 산벚꽃은 그렇게 어우러져 봄 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화사한 꽃 색 보다 푸르른 신록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산 능선에 촘촘하게 서 있는 나무에 신록이 물들었다. 햇빛을 받은 신록은 금방이라도 연둣빛 물방울을 떨어뜨릴 것 같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먼데서 불어가는 바람에 새 잎이 하늘거릴 때는 향긋한 향기를 머금은 봄처녀의 머릿결이 얼굴을 스치는 것 같았다. 더 깊은 산으로 길은 이어졌고 우리는 길에 홀려 빠져들었다. 봄은 블랙홀처럼 풍경 안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골짜기를 돌아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저 먼 산 능선의 푸른 성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능선을 따라 사열하고 있는 나무들이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었다. 푸른 새잎의 빛이 저렇게 강렬할 줄이야! 신록이 쌓은 봄의 성벽은 장엄했다. 그 앞에 선 여행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푸른 신록과 하얀 꽃이 어울렸다. 자연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치 클래식 음식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향연

 

굽이굽이 돌아 올라온 길, 어느덧 정자가 있는 높은 곳에 도착했다. 지나온 길이 한 눈에 들어왔으며, 앞으로 가야 할 길도 저 아래에서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산 앞에 산이고, 산 뒤에 산이다. 그 사이사이를 구불거리며 돌아온 길은 길을 잃지 말라고 풀어 놓은 실타래 같았다.

 
봄의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잠시 길을 잊는다. 원색의 봄에 익숙해진  눈을 씻는다. 한 줌 햇빛을 머금고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것은 꽃과 신록만이 아니었다. 숲도 그랬고, 숲을 뒤덮고 있는 공기도 이곳에서는 제 빛을 찾는다. 신록과 희고 붉은 산천은 자연이 선물하는 향연이다. 이색 저 빛이 섞여 만들어내는 자연의 한 빛이 거칠면서도 아름답고, 보드라우면서도 강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절벽꽃

 

‘보이네요정자’, ‘산꽃세상정자’, ‘봄처녀정자’를 지나는 길은 산벚꽃, 조팝나무, 생강나무, 진달래가 신록과 어우러진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 속을 걷는 길이다. 마른 봄계곡과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산길, 그곳에 피어난 꽃과 신록의 물결은 거칠면서 아름다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봄을 만들고 있었다. 계곡이 앙상한 속내를 다 내보이고, 돌산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아! 저런 곳에 생명의 씨를 뿌려 꽃을 피우게 한 건 누구였을까. 절벽은 길을 내주고 꽃을 피웠다. 연둣빛 새잎에게도 절벽은 생명을 허락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온 봄을 맞아 절벽은 꽃과 새순을 피워 잔치를 열었다. 절벽에 핀 꽃은 보곡산이 여행자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절벽꽃’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젖혀 절벽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강이 되고 구름은 강물 위에 흐르는 꽃무리가 된다. 하늘에도 땅에도 봄 아닌 곳이 없었다. 절벽에 핀 꽃 앞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야 한다. 인생도 내려놓을 때가 있어야 한다. 비어 있어야 새것을 채우지 않겠는가.

 

  

봄을 안은 마을

 

길은 마을로 이어졌다. 오후의 게으른 햇살이 마을에 내려앉았다. ‘또랑’에서 오리 몇 마리가 놀고 있었다. 그림자는 길어졌고 햇볕도 은은해졌다. 오래된 집 흙벽에 붉은 흙빛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집 마당에 개 한 마리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햇볕 고인 봄날 오후의 나른함이 몰려든다.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키 작은 풀잎에서 밥상 위의 봄나물 향기가 나는 것 같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가는 길
현지교통은 드물고 불편하다. 금산시내버스터미널에서 보광리행 시내버스를 타고 산안2리(보곡산 산벚꽃 임도길 입구 또는 보곡산 산벚꽃 축제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해야 한다.(버스 내리는 곳에서 산안2리 임도 시작하는 곳까지 약 1km 정도 거리다.(±300m) 오전 11시40분 차를 타야 산길 다 걷고 다시 돌아 나와 금산으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문의 : 한일교통 041-754-2830.

 

주변여행지
산꽃축제가 열리는 산안2리에서 약 25km 정도 떨어진 곳(옥천군 군서면 금산리)에 장령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산꽃축제가 열리는 산안2리에서 약 30여 km 정도 떨어진 부리면 수통리 적벽강을 따라 이어지는 풍경이 볼 만하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4월 중순과 하순 사이)

주소 : 금산군 군북면 산안2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 30분

문의 : 군북면사무소(041-753-2302)

 

 

산 임도를 걷는 길이라 험한 구간은 없지만 산세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이기 때문에 산행 시간도 4시간 30분 정도는 잡아야 한다.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기에 담으며 쉬고 걷다보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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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